이 세계의 절대 악, 황제 고리타르.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진 라이신은 온몸이 굳어 자신의 표정이 어떠한지 살펴볼 여유조차 없었다.“네, 폐하. 그러합니다.”대충 라이신은 그리 말하며 스레기니에게 배운 예법대로 우아하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그때, 세실리에가 빤히 할 로드를 살펴보았다. 그녀는 뜬금없이 라이신의 옆에 서 있는 할 로드에게 성큼 다가서더니 나직하게 말을 건넸다.“기사님은 그럼?”황제 고리타르 역시 할 로드에게 시선을 던지고 있어, 오히려 지금은 할 로드가 대처를 잘해야 하는 일촉즉발의 판국이 되었다.“안녕하십니까, 저는 캔돔가 기사로 임명받은 할 로드라고 합니다!”어찌나 할 로드가 대답을 씩씩하고 당당하게 하는지, 라이신은 잘했다고 그의 등이라도 토닥여주고 싶을 정도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할 로드 경, 반갑습니다. 혹시 제가 에스메 황녀님께 함께 가도 될까요?”이런, 왜 그녀가 동행하려 하는 건지!이건 명백한 또 다른 위기였다. 라이신이 긴장한 채 할 로드를 바라보자, 그는 이미 사색이 되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레인이 앞으로 걸어 나와 세실리에와 고리타르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능숙하게 말문을 열었다.“대마법사 세실리에 님께서 황녀 전하의 미열 정도에 이리 늦은 시각까지 고생하시다니 당치도 않습니다. 조금 전 의원이 다녀갔습니다. 레이디 분들과 원래 내일 차를 마시기로 선약이 있으셔서 미리 들른 것뿐이니,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흘러나오는 말들이 그야말로 청산유수였다. 황궁에서 오랫동안 머문 노련한 기사답게, 레인은 여유롭게 기지를 발휘했다.그러자 세실리에는 아하, 하고 작게 탄성을 내뱉더니 황제를 한번 바라보며 걸음을 뒤로 물렸다.“아, 그러시군요. 폐하, 어서 침소로 가시지요.” “그래.”고리타르는 발걸음을 옮기며 한 번 더 할 로드와 라이신을 힐끔 바라보고는 이내 멀어져 갔다. 그 뒤를 황제의 호위 기사들이 엄숙하게 따랐고, 라이신은 그제야 조마조마했던 간담을 쓸어내릴 수 있었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