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Chapter 111 - Chapter 120

130 Chapters

#111. [홈런보다 더 뜨겁게]

 경기는 어느덧 5회 말, S대의 파죽지세에 당황한 상대 팀이 비디오 판독을 요청하면서 잠시 경기가 중단되었다.상대측은 콜드게임 패배라는 굴욕을 피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안달이 난 모양새였다.조금 전, 장하늘은 홈 플레이트를 향해 몸을 날렸고 베이스를 꽉 밟았다. 상대 포수는 아웃이라고 강력히 주장하며 항의했고, 판독 시간은 길어지고 있었다. 만약 세이프가 선언되어 홈런이 인정된다면 점수는 11대 0. S대의 콜드게임 승리로 경기는 즉시 종료된다.더그아웃으로 향하던 장하늘에게 유환이 성큼성큼 다가왔다.“누가 봐도 완벽한 홈런이었어, 장하늘. 곧 비가 올 것 같은데, 이기는 게 좋지.”장하늘은 비록 판정이 번복되어 2루타로 깎인다 해도, 승리는 이미 우리 쪽으로 기울었음을 확신했다. 다만 이대로 경기가 끝나지 않는다면 유환은 6회에도 등판해 어깨를 소모해야 할 상황이었다.“유환아, 오늘 컨디션 정말 좋아 보이네. 혹시 6회에도 더 던질 수 있겠어?”장하늘은 꾹 참아왔던 애정을 담아, 평소처럼 활짝 웃으며 유환에게 스포츠음료를 건넸다. 유환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음료를 받아 뚜껑을 따며 매력적인 입꼬리를 올렸다.“이제 좀 풀린 거야?”풀렸냐니. 장하늘은 자신이 거리를 두려 했던 노력이 유환의 눈에는 그저 귀여운 투정 정도로 비쳤다는 사실에 헛웃음이 났다. 하지만 지금은 그 오해가 도리어 다행스럽게 느껴졌다.“응, 다 풀렸어.”그제야 유환은 안심한 듯 환하게 웃으며 장하늘의 어깨를 든든하게 다독였다. 개운한 표정으로 그가 말을 이었다.“너랑 정식으로 교제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우린 1년간은
Read more

#112. [정해진 이별이 전생의 업보일까?]

얼마나 마신 걸까.장하늘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차가운 유리잔 가장자리를 느릿하게 맴돌았다. 유환을 바라보는 장하늘의 눈동자에는 달빛 아래 잔잔히 일렁이는 호수처럼, 깊고 진한 애착과 탐닉이 서려 있었다.사랑이 밀물처럼 거세게 밀려오면, 그 뒤엔 반드시 뼈아픈 이별의 썰물이 찾아오는 법. 본능적으로 예감하며 두려워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장하늘은 그 본능을 거스르지 못한 채 태어난 가련한 죄인이었을지도 모른다.전생에서도 늘 이랬다. 이만큼 가까워져서 이제야 행복하다 느낄 때쯤,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끝나버리곤 했다. 지금 느껴지는 이 완벽한 충만함이 도리어 장하늘을 불길한 예감 속에 몸서리치게 만들었다.살아만 있다면, 멀리서라도 그를 지켜보며 응원할 텐데. 신이 자신에게 그런 자비로운 기회를 허락할지 의문이었다. 장하늘은 먹먹해지는 가슴을 누르려 연거푸 술잔을 비워냈다.“뭐야, 오늘 꽤 마시네?”유환이 나직하게 속삭이며 다가왔다. 장하늘은 녀석의 그림자만 스쳐도 심장이 수런거렸다. 온 마음이 유환이라는 중력에 이끌려 기울어지는데. 그와 멀어지는 삶 따위는 상상만으로도 숨이 막혔다.“너랑 같이 침대로 갈 거니까 걱정 마.”혀끝이 살짝 꼬부라졌음에도 장하늘의 눈빛만은 형형하게 유환을 꿰뚫었다. 1분 1초라도 더 뜨겁게 유환의 품을 만끽하리라. 1학기만 마치고 떠나야지, 아니 12월 24일 직전에는 정말 끝내야지. 혹시 모른다는 희망을 품으며 1년을 버텨 볼까.온갖 생각이 해일처럼 밀려왔다. 몇 년 뒤의 미래를 꿈꾸는 것조차 자신에게는 허락되지 않는 사치인 것만 같아, 장하늘은 결국 다시 술잔만 기울였다.***“장하늘, 기분 진
Read more

#113. [심장에 새겨진 찬란한 저주]

뜨거운 열기는 유환의 집 현관문에 들어서자마자 화약고처럼 터져 나왔다.씻고 자야 한다며 비틀거리는 장하늘의 뒤를 따라, 유환은 마치 그에게 매달린 그림자처럼 욕실의 습기 찬 공기를 가르며 파고들었다. 온몸에 밴 닭갈비 냄새가 민망했던 장하늘은 샤워볼에 잔뜩 거품을 내며 몸을 문질렀다. 이 냄새를 씻어내는 행위는, 유환을 온전히 받아내기 위한 밤의 의식처럼 경건하고도 관능적이었다.양치질을 했는지조차 가물가물해 한 번 더 칫솔질을 할 때쯤, 알몸이 된 유환이 옆에서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귀엽긴.”필름이 끊기기 직전이라 제대로 서 있기도 힘든 상태였다. 평소 주량보다 훨씬 과하게 들이켠 탓에 몸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너한테······ 상쾌한 향기만 주고 싶은데······.”쏟아지는 잠을 참으며 투정하는 장하늘의 목덜미에 유환의 입술이 와닿았다. 미칠 듯이 감미로운 감각에 장하늘의 입가에 흐뭇한 웃음이 번졌다. 유환의 손가락이 비눗방울을 튕기듯 척추 라인을 따라 미끄러질 때마다, 장하늘은 첫눈이 뺨에 닿은 듯한 경이로운 전율을 느꼈다.“그럼 머리라도 두 번 감겨줄까?” “아······, 맞다. 내 머리에서도······ 맛있는 냄새가 나는 것 같아.”유환은 대뜸 장하늘의 목덜미를 깊게 집어삼키며 허리를 단단히 끌어안았다. 묵직한 한숨이 욕실 안을 울렸다.“진짜 잡아먹고 싶네. 아, 미치겠군.”유환의 목울대에서 흘러나온 낮은 신음은, 사냥감을 목전에 둔 맹수가 억누르는 포효처럼 장하늘의 귓가를 핥았다. 내가 그렇게 맛있는 먹잇감인가 싶어 장하늘도 흐릿하게 웃음을 흘렸다. 비누 거품이 둘 사이를 가로막는 얇은 베일처럼 존재했지만, 오히려 그 매끄러운 촉감 덕분에 서로의 피부 열기가 더욱 예민하게 전달되었다.장하늘은
Read more

#114.[잠시 몸을 식힐 필요가]

대한민국 아침 드라마는 자고로 막장이어야 제맛이라던데, 지금 장하늘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 어떤 각본보다도 지독하고 자극적이었다.국내 굴지의 재벌가 후계자가 야구 선수가 된 것도 모자라, 하필이면 시커먼 사내와 엉켜 몸을 섞던 현장을 아버지에게 정면으로 들키다니. 남들이 보기엔 이보다 더 흥미진진한 구경거리가 없겠지만, 장하늘에게 이곳은 순식간에 불지옥으로 변해버린 생지옥이나 다름없었다.“이런, 아버지가 오실 줄이야······ 젠장. 장하늘, 미안한데 잠깐만 여기 있어 줘. 불편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장하늘의 젖은 어깨를 다급히 다독인 유환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그의 잘생긴 얼굴에는 미안함과 당혹감이 처절하게 일렁이고 있었다.“어, 괜찮아. 부모님이 아들 집에 불쑥 오실 수도 있지. 유환아, 어서 가 봐.”장하늘은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담담한 척 손짓했다.욕실 안의 로브는 단 한 벌뿐이었고, 수건 한 장 걸치고 나갈 용기도 없었기에 장하늘은 식어가는 탕 안에 몸을 숨긴 채 유환의 뒷모습만을 쫓았다. 유환은 서둘러 몸을 닦고 로브를 걸친 채 폭풍전야 같은 거실로 나섰다. 욕실 문이 닫히고, 그는 홀로 유도완이라는 거대한 벽과 마주했다.[아버지! 이 밤중에 예고도 없이 대체 왜 오신 거예요!]날 선 유환의 포효가 욕실 벽을 타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이 녀석이 어디서 큰소리야! 너, 저 비실비실한 포수 놈이랑 진짜로 욕실서 살까지 비비는 거냐? 정신 차려, 이놈아!]유도완도 이미 짐작했으리라. 금지옥엽 키운 아들이 자신 같은 남자와 살을 맞대고 있었으니 속이 오죽 타들어 갈까. 세상이 아무리 변했다 해도 남남
Read more

#115. [완벽하고 소름끼치는 엔딩이라니]

장하늘은 유환을 바라보자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져 갑자기 코끝이 시큰거렸다.“피곤해서 좀 늦었어.”대충 대꾸를 하고 고개를 돌리자, 유환이 다시금 다가왔다.“어디 아픈 건 아니고?”주변의 서정우와 유경호가 의아한 눈초리로 바라보는 게 느껴졌지만 유환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유환은 역시 이런 녀석이었다. 그는 글러브를 바닥에 툭 떨어뜨리더니 장하늘의 이마에 냅다 손을 올렸다.“컨디션 안 좋았던 거야? 미안.”애써 딱딱하게 굴려던 장하늘의 가시 돋친 방어막이 유환의 다정함 앞에서 허무하게 허물어졌다. 스스로를 책망하며 뻣뻣하게 굴다가도 결국 본심을 드러내고 마는 유환을 보며, 정작 먼저 무너진 것은 장하늘이었다.“너야말로 안 올 줄 알았는데.”그 말에 유환의 귓불이 순식간에 홧홧하게 달아올랐다. 그는 쑥스러운 듯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시선을 먼 그라운드로 돌렸다. 저 멀리 오늘의 상대인 L대 선수들이 몸을 푸는 모습이 보였다.“중요한 경기가 있는데 내가 왜 안 와.”“바쁘다길래.”“진짜 미안하다. 도저히 면목이 없어서.”유환이 찰나의 순간 주춤했다. 장하늘은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너무도 평온하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오히려 사흘간 ‘별일’이 아주 많았음을 증하고 있었다. 장하늘은 묵직한 미트를 끼며 시선을 잔디 위로 던졌다. 외야의 초록빛이 햇살 아래 눈부시게 선명했다.“오늘 경기 잘하자.”“당연하지, 장하늘. 오늘은 너 절대 혼자 안 둬.”장하늘은 쓰게 웃었다. 미트로 유환의 어깨를 가볍게 툭 치는 것
Read more

#116. [결심, 소리 없이 남기는 의지]

 유환과 오붓하게 데이트도 하고 소중한 추억도 쌓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이 너무도 잔인했다. 하필이면 춘천이라니. 전생의 유환이 처참하게 죽음을 맞이하고, 자신 또한 영혼이 조각나듯 기억을 잃어버렸던 그 저주받은 핏빛 무대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갈 수는 없었다.장하늘은 타들어 가는 마른침을 삼키며 본심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유환의 탄탄한 등을 가볍게 툭 쳤다.“유환아, 5월은 가정의 달이잖아. 우선은······ 어른들께 충실해야지.”나직하게 떨리는 목소리 뒤로 '그러니 제발 그 지옥 같은 곳으로 가자고 하지 마'라는 애원이 숨어 있었다. 그러나 사정을 알 리 없는 유환의 표정이 순식간에 정색하며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또다시 집안의 압박이 나타나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거냐는 밀어내기로 들렸는지, 그의 깊은 눈빛이 서운함과 차가움으로 얼룩졌다.“도S 안방마님이 아주 나를 제대로 한 방 먹이네. 미안해서 더 할 말이 없게 만드는군.”장하늘은 누가 도S냐며 입술을 비쭉 내밀었지만, 밀려드는 통증에 가슴이 저려와 짐짓 무심한 표정으로 그라운드를 향해 서둘러 걸어 나갔다. 유환이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 뒤를 따르자 관중석에서는 떠나갈 듯한 환호가 터져 나왔다. 5회에도 선발 투수가 마운드에 올랐다는 건, 이 경기를 완봉승으로 단숨에 끝장내겠다는 에이스의 강력한 의지였다.야구팬들은 새로운 슈퍼스타의 탄생을 목격하며 열광했다. 장하늘은 귀를 먹먹하게 채우는 이 눈부신 광경을 제 생의 마지막 풍경인 듯 눈에 담았다.“유환아, 이렇게 마운드에 서 있으니 정말 좋지?”그의 나지막한
Read more

#117. [흔적 따위 필요 없을지도]

샤워를 마친 부원들의 발길은 약속이라도 한 듯 녹두거리 춘천닭갈비집으로 향했다.장하늘은 유환의 차에 몸을 싣고, 어쩌면 제 생애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짧은 드라이브를 눈에 담았다. 양재의 정체 구간을 지나 예술의 전당 앞 신호 대기에 걸렸을 때, 장하늘은 묵묵히 운전대를 잡은 유환의 옆얼굴을 시리도록 투영하게 바라보았다.“유환아, 어깨 괜찮은 거 맞지?”결국 아이싱도 하는 둥 마는 둥 대충 끝내버린 녀석이 걱정되어 장하늘이 손을 뻗는 순간이었다. 유환이 전광석화처럼 고개를 돌리더니, 장하늘의 입술을 가차 없이 집어삼켰다.“자꾸 그렇게 야한 눈으로 쳐다볼 거야?”뜬금없는 말에 장하늘은 어이가 없어 미간을 찌푸리며 유환의 어깨를 밀쳐냈다.“걱정하는 눈이 어디가 야하다는 거야?”유환은 대답 대신 기분 좋게 낮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돌연 차를 좌회전시켜 예술의 전당 주차장 깊숙한 곳으로 꺾어 들어갔다.“어? 야, 어디 가!”차는 점점 더 어두운 산기슭 아래, 인적조차 드문 은밀한 공간에 멈춰 섰다. 묘한 긴장감이 장하늘의 아랫도리를 묵직하게 조여왔다.“이건 다 네 탓이야. 방금 씻고 나와선 상큼한 향기 풀풀 풍기면서 그런 눈으로 유혹하니까.”그의 논리에는 기적 같은 모순이 서려 있었지만, 장하늘은 반박할 힘을 잃었다. 유환의 다급한 손끝이 제 피부 위를 스칠 때마다 이성은 눈 녹듯 허물어졌다. 오늘이 마지막 스킨십일지도 모른다는 잔혹한 절박함이 장하늘의 남은 이성마저 마비시켜 버렸다.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금 질척하게 엉겼다. 야성적인 매력으로 따지자면 본래 유환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민트향이
Read more

#118. [운명과 충돌할 때]

장하늘은 주변 사람들의 들뜬 웃음소리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었지만, 그의 입가에 걸린 미소는 건드리면 금세 산산조각 날 유리 파편처럼 위태로웠다.손가락 끝으로 불이 꺼진 휴대전화 화면을 의미 없이 톡톡 두드리는 동작이 극에 달한 초조함을 대변했다.사실 전생의 기억이 떠오른 이후, 장하늘의 마음은 믿음과 불신 사이를 위태롭게 오가는 소용돌이 속에 있었다. 유환과 나누는 달콤한 순간들은 혀끝에 감기는 꿀처럼 황홀한 행복이었으나, 동시에 운명의 사슬을 끊어내기 위한 잔혹한 선택지가 끊임없이 심장을 옥죄어 왔다. 현생의 궤도를 뒤틀어서라도 그를 살리고 싶다는 열망이 머릿속에서 서슬 퍼런 칼날처럼 번뜩였다.그리고 마침내, 그 처절한 망설임에 쐐기를 박는 문자가 도착했다.[장하늘 학생, 이런 말까지는 안 하려고 했네만 나에게 유환이는 소중한 아들이자 우리 집안의 대를 이을 귀한 존재야. 처음엔 헤어지면 아프겠지. 하지만 결국 시간이 흐르면 다 해결될 일 아니겠나.][나이 든 사람의 황당한 소리라 치부해도 좋네. 하지만 내가 앞날을 내다본다는 용한 이를 만나 알아보니, 자네와 우리 유환이는 지독한 악연이라더군. 함께 있으면 둘 다 단명할 팔자라고 해. 야구도 절대 시키지 말라고 했어.][이런 말을 전하게 되어 미안하네. 돈이든 명예든, 미국에서의 야구 진로든 원하는 건 무엇이든 지원하겠네. 부디 유환이 곁을 떠나 주게. 올해가 가장 위험하다고 들었어. 유환이가 그저 마음 잡고 경영 수업을 받게 도와줘.]유도완이 보낸 문자를 내려다보는 장하늘의 눈시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점쟁이의 예언이든, 전생을 꿰뚫어 보는 이의 경고든 상관없었다. 그 말들이 장하늘의 가슴을 이토록 잔인하게 난도질하는 이유는 그것이 사무치는 진실이기 때문이었다.안 그래도 벼랑 끝에서 갈등하던 차였다. 장하늘 스스로도 이
Read more

#119. [감히, 예고 없이 사라져?]

장하늘이 자리를 비운 지 한참이 지나자, 유환은 형용할 수 없는 기묘한 이질감을 느꼈다.오늘따라 묘하게 가라앉아 있던 녀석의 표정, 자꾸만 제 눈치를 살피며 헤매던 그 위태로운 시선이 신경을 날카롭게 긁어댔다. 경기 내용도 완벽했고 결승 상대도 충분히 승산 있는 팀이라 분위기는 최고조였지만, 가슴 한구석에서 정체 모를 불안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장하늘 이 녀석, 어디 갔지? 또 귀엽게 양치하러 갔나.”유환은 장난스럽게 뇌까렸으나 눈동자 깊은 곳에는 이미 서늘한 기운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가글을 챙겨 화장실로 향했다. 하지만 화장실 그 어디에도 장하늘의 흔적은 없었다. 유환은 초조하게 굳어진 걸음으로 카운터 사장에게 다가갔다.“제 친구가 화장실 간 것 같은데 안 보여서요. 잘 웃고 인물 좋아서 아이돌 같다고 소문난 녀석인데, 혹시 못 보셨나요?”장하늘을 설명하는 제 목소리에 쓸데없이 열이 올랐지만, 그보다 심장이 터질 듯 불길하게 날뛰는 게 먼저였다. 그런데 사장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유환의 심장을 단숨에 얼려버렸다.“어머, 그 예쁘장한 선수? 오늘 계산 다 하고 간 그 기특한 학생 찾나 보네요.”유환의 목구멍으로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굴러떨어지는 듯한 감각이 스쳤다. 계산? 아직 파티가 한창인데 벌써 계산을 했다고?“계산을 이미 했다고요?”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술을 더 시키는 부원들도 있었고, 저 멀리선 볶음밥을 추가 주문하는 소리도 활기차게 들려오고 있었다.“그 학생이 음식값에 웃돈까지 넉넉히 얹어두고 좀 전에 택시 불러서 떠났어요.”순간 유환의 등골에 소름이 쫙 돋았다. 택시를 불러 떠나다니. 자신을 두고, 이 한밤중에 인사도 없이 사라졌다는 건 상상
Read more

#120. [꽃길을 걸어갈 미래가 아니라고 해도]

Rr-, Rr-, Rr-.유준철은 지금 불안해 견딜 수가 없었다. 유도완이 너무 유환을 긁어대서 어디로 튈지 몰라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 소파에 유준철과 마주 앉은 유도완은 계속 유환에게 통화를 시도하는 중이었다.김 비서 말로는 사라졌다고 하던데.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이라 비행기도 뜨기 힘들뿐더러, 어디로 이동하기도 만만치 않으니 결국 집으로 돌아가겠지 내심 기대는 한 그였다.어쨌든 올해는 유환에게 매우 불안정하고 위험한 한 해였다. 전생을 기억하는 유도완의 말에 의하면, 유환이 죽는 시점이 점점 빨라져 올해를 무사히 넘겨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들었기 때문이었다. 때문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여러 번의 시도 끝에 겨우 유환과 통화가 연결되자, 유도완은 격앙된 목소리로 말문을 열었다.“유환아! 너 지금 어디야! 왜 이 아비 전화를 안 받아?”평범한 대답이 들릴 거라 기대는 안 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첫마디는 대뜸 또 듣기 싫은 이름부터 귓가에 닿았다.-혹시 아버지, 장하늘에게 뭐 연락한 것 있습니까?낮게 깔린 유환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넘어 거실 전체에 서늘하게 울려 퍼졌다.“어? 그건 갑자기 왜 묻는 거냐.”-대체 왜 그러셨어요? 왜!유환의 외침이 고막을 찢을 듯 터져 나왔다. 유도완은 흔들리는 눈빛으로 유준철과 시선을 마주하다가, 헛기침을 뱉으며 언성을 높였다.“뭐! 아비가 아들 친구에게 연락 좀 할 수도 있지!”-두 분 지금 제 인생을 두고 무슨 짓을 하시는 겁니까!휴대전화 스피커 밖으로 유환의 목소리가 사정없이 튀어나오자 유준철의 어깨가 움찔 떨렸다. 유준철은 숨을 들이켜며 원망 가득한 눈으로 유도완을 쏘아보았다
Read more
PREV
1
...
891011121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