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도SS'의 퍼펙트 배터리(The SS-Class Perfect Battery): Chapter 91 - Chapter 100

130 Chapters

#91. [세상을 하찮게 보는 너]

유환은 무심한 표정으로 마운드를 지배하러 올라갔지만, 상대 타자는 분을 이기지 못하고 험악한 욕설을 내뱉었다.“아, 씨발. 하필 내 타석에서 투수 교체냐고! 젠장!”그럴 만도 했다. 현재 주자는 만루. 단 한 방이면 전황을 뒤집을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이었다.서정우가 투아웃 상황에서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며 서진원에게 볼넷을 내준 게 화근이었다. 뒤이어 서진원이 영리하게 도루를 시도하자 당황한 유경호가 폭투를 범했고, 마운드가 흔들리며 몸에 맞는 공과 볼넷이 이어져 베이스가 꽉 채워진 채 유환에게 바통이 넘겨진 것이다.확실히 이번 대회 최대의 위기였다. 안타 딱 하나면 분위기는 완전히 K대 쪽으로 넘어가 역전까지 허용할 수 있는 상황인데. 3루 주자 서진원의 입가에 걸린 비열한 비웃음이 S대의 목덜미를 서늘하게 조여 왔다.‘하지만 난 유환이를 믿어.’장하늘의 혈관이 유환의 호흡에 맞춰 뛰기 시작했다. 유환의 손끝에서 공이 떠나는 순간마다 역사가 새로 쓰인다는 것을, 장하늘은 본능적으로 직감하고 있었다. ***장하늘은 유환의 승리를 추호도 의심치 않으며 첫 공으로 묵직한 직구를 주문했다.장하늘의 미트가 스트라이크 존 정중앙을 가리킨 그 찰나.시간이 멈춘 듯한 정적이 경기장을 무겁게 짓눌렀다. 유환의 입꼬리가 승리의 서곡을 연주하듯 살짝 치켜 올라갔다. 이 이닝은 내 손으로 끝낸다는, 오만할 정도로 당당한 자신감의 표출이었다. 유환이 가장 사랑하는 공, 그리고 그 어떤 프로 선수도 혀를 내두를 만큼 압도적인 구위의 공이 뿌려졌다.퍽-!“스트라이크!”타자가 배트조차 내지 못한,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든 강속구였다. 장하늘은 망설임 없
Read more

#92. [세상을 씹어 먹을 수재들의 반란]

“대단하다, 진짜! 유환이 네가 공 세 개로 저놈들을 아주 박살을 냈어!”김강무가 짐승 같은 포효를 내지르며 유환의 탄탄한 팔뚝을 덥석 움켜쥐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유환의 근육이 미세하게 경련하며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우리 천재 포수님 리드도 장난 아니었지! 마지막에 심장 쫄려서 나 같으면 절대 그런 코스로 주문 못 했을걸.”유경호가 유쾌하게 하이파이브를 건네며 분위기를 고조시키자, 더그아웃 입구까지 마중 나온 최우현과 서정우도 유환을 반갑게 맞이했다.“유환이의 그 자로 잰 듯한 칼제구를 믿었기에 가능한 리드였겠지? 하하! 다행이다, 정말. 자, 이제 우리 공격 차례야! 유환아, 고생 많았다!” “맞아요! 상대 투수도 이제 눈에 띄게 힘이 빠진 것 같아요. 덕분에 큰 고비 넘겼네요!”유환은 평범하게 모자를 벗어던지고 자리에 앉았고, 어느새 다가온 팀 매니저 현신이 차갑게 얼린 스포츠음료를 내밀었다.“마지막 커브 각도, 그건 진짜 예술이었어. 역시 우리 팀 에이스는 위기 상황에서 제일 빛난다니까! 불 끄는 솜씨가 아주 일품이야!”상대 팀의 타오르던 역전 의지에 얼음물을 끼얹었으니, 그야말로 완벽한 구원 투수였다.“시원하네.”음료를 들이켠 유환이 입가에 맺힌 물기를 쓰윽 닦아내며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장하늘은 그 모습만 봐도 절로 입꼬리가 귀에 걸렸다. 그때 현신이 새 음료수를 가져와 장하늘에게도 건넸다.“하늘아, 최고의 리드였어. 상대 분석을 정말 지독하게 한 모양이더라?”K대는 지방의 명문답게 유망한 고교 선수들이 대거 포진한 곳이었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이 없더라도, 조금만 발품을 팔면 그들의 약점을 파악할 자료는 충분했다. 타고난 스포츠맨은 아닐지 몰라도, 전생의 굴레를 몇 번이나 야구 선수로 버텨온 장하늘은 어느덧 이 분야의 진정한 전문가가 되어가고 있었다.“운이 따랐던 거죠. 유환이 피칭이 워낙 완벽하기도 했고.”장하늘의 대답에 유환은 다시 그라운드로 시선을 던지며 차분하게 음료를 마셨다. 분노에 휩싸여 한계를 넘어
Read more

#93. [여전한 예쁜 빌런, 내 애인]

유경호도 역시 긍정의 아이콘이라며 서정우를 다독였다.“아유, 귀여워! 그래, 우리 ‘마구마구’라고 꿈 못 꿀 거 있나? 주장, 저도 사실 엄청 비관적이었는데 정우 덕분에 인생관이 바뀌었다니까요?”모두들 앞날이 무지갯빛으로 빛나리라 확신하며 서로 의지를 불태웠다.“그래? 그럼 나도 정우의 그 전생인지 뭔지를 한번 믿어볼까? 하하!”최우현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더그아웃을 가득 채웠다. 장하늘은 그라운드로 나아가며 생각했다.1퍼센트. 확률은 지극히 낮았다. 하지만 서정우의 말대로 인생은 알 수 없는 변수의 연속이다. 평범함 속에 숨겨진 특별한 삶, 탄생과 죽음조차 기적 같은 경험인데 무엇인들 불가능할까.‘꿈이 현실이 되는 게, 그게 바로 인생이지.’장하늘은 배트를 꽉 쥐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유환을 바라보았다. 시선이 맞닿자 장하늘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배트를 몇 번 휘두르며 근육을 깨웠다. 유환의 어깨에 지워진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아, 장하늘은 타석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그날의 경기는 결국, 장하늘의 방망이 끝에서 축포를 터뜨렸다.최종 스코어 5대 0. S대 ‘마구마구’는 약속의 8회에 다시 한번 불꽃같은 타력을 선보이며 승기를 굳혔고, 승리 투수의 영광은 유환에게 돌아갔다.압도적인 스피드의 직구가 미트에 꽂힐 때마다 그라운드 전체가 웅웅거리며 진동했다. 전광판에 '160km'라는 비현실적인 숫자가 찍히는 순간, 경기장의 모든 이들은 경외심 섞인 찬사를 보냈다.첫 득점도 유환의 배트에서 시작되었고, 마지막 아웃 카운트 역시 유환의 피칭으로 마무리되었다. 관중은 유환의 이름을 연호하며 열광했고, 경기가 끝난 뒤
Read more

#94. [소름 끼치게, 불길하게]

장하늘로서는 나름 유환이 자신의 애인임을 각인시키려는 호기로운 태도였다.사귀고 있고 온 마음을 다해 좋아하고 있는데 이 정도도 못 하겠는가.평소라면 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오라고 배려했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단 1초도 유환을 저 남자 곁에 두고 싶지 않았다.그러자 유환은 곁에 두었던 짐을 챙기고 배트를 갈무리하며, 오직 장하늘에게만 더없이 다정한 시선을 던져주었다.“어, 가자.”유환은 서진원이 무안할 정도로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며 인사도 없이 몸을 돌렸다.하지만 남겨진 서진원의 눈가에 맺힌 감정은 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처럼 잔잔하면서도 깊은 울림을 머금고 있었다.“나중에 프로 팀에서 만나면, 배터리로 호흡 맞추고 싶다. 꼭 프로 무대로 올라와!”유환의 등을 향해 던져진 서진원의 시선에는 애절함이 뚝뚝 묻어나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그 모습을 목격한 장하늘의 심장이 거세게 철렁거렸다. 자신의 존재를 뻔히 알면서도 유환과 다시 배터리를 하겠노라 말하는 서진원의 오만함에 화가 나 주먹을 꽉 쥐었다.하지만 다행히 유환의 태도는 단호했다.“난 너랑 두 번 다시 배터리 할 생각 없으니까 돌아가.”유환은 서진원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은 채 장하늘에게 턱짓을 하며 발걸음을 재촉했다.서진원의 말이 가시처럼 가슴에 박혀 신경이 곤두서던 그때, 서정우가 경기장 내부 통로 문을 거칠게 열고 장하늘에게 다급히 달려왔다.“장하늘! 큰일 났어!”“큰일이라니?”경기도 이겼고 부상자도 없는데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걸까. 유환 역시 서진원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서정우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무슨 일인데 그래?”
Read more

#95. [기묘한 동행을 하는 이유]

“선배님, 조기범 선배가 쓰러진 거랑 그 스토커가 대체 무슨 상관인가요?”옆에 있던 서정우도 처음 듣는 정보인지 몸이 굳어 장하늘과 시선이 얽혔다. 아마 서정우도 장하늘과 같은 직감을 한 듯했다. 표정이 어둡게 굳어버린 김강무가 미간을 좁히며 대신 설명을 이어갔다.“이상하게도 그 스토커가 경기장에 나타나기만 하면, 조기범이 반드시 쓰러진다고 하더라고.”그런 이유였다니. 장하늘의 심경은 안갯속을 헤매는 나그네처럼 극도의 혼란에 휩싸였다. ‘전생의 악연과 마주하면 고통이 밀려온다!’는 가설이 머릿속에서 메아리치며, 현생의 고통마저 잔인한 운명의 굴레로 느껴졌다.“택시 타고 당장 병원으로 가봐야겠어.”최우현의 목소리에는 불꽃이 튀는 듯한 단호함이 서려 있었다.“다른 애들은 먼저 버스 태워 보낼 테니, 너희는 짐 좀 정리해 놔.”김강무와 최우현이 서둘러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던 장하늘은 유환을 향해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유환아, 나도 병원에 가고 싶어.”유환의 눈썹이 꿈틀 떨리더니 장하늘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다.“네가 왜 거길 가.”장하늘은 불길한 예감을 떨칠 수 없었다. 그저 의문만 키우느니 직접 가서 상태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에 급하게 말을 내뱉었다.“그래도 날 많이 챙겨준 선배잖아. 그냥······상태라도 확인하고 싶어서 그래.”“오지랖은······.”유환은 못마땅한 듯 인상을 구기면서도, 이내 결심한 듯 자신의 짐을 챙겨
Read more

#96. [전국적인 돌풍, 그리고 속보]

장하늘의 시야가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서서히 침잠하기 시작했다.전생의 악연이 현세의 비극적인 그림자로 되살아난 듯, 조기범의 비보는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에게 죽음에 가까운 공포를 안겨준 존재가 범죄자나 다름없는 스토커라니. 자신이나 서정우와 동일한 발작 증세를 보인다는 건, 전생의 악업이 현생까지 끈질기게 이어지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였다. 겹쳐진 운명의 굴레가 장하늘의 심장을 무겁게 짓눌렀다.“경찰은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신변 보호도 안 하고!”—놓쳤대. 경기장 인파 틈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나 봐.놓쳤다는 말에 날카로운 불안이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광적인 집착에 눈이 먼 이에게 유린당한 에이스의 추락 앞에, 지켜보던 이들은 모두 참담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침묵을 지키던 유환은 곁에 선 장하늘을 짧게 힐끔거리더니, 차창 밖 전방을 주시하며 낮게 읊조렸다.“응급실 입구에 사람들이 왜 저렇게 많지?”유환의 말대로 응급실 입구는 이미 인파로 빽빽하게 메워져 있었다. 마치 거대한 축제장의 포토라인을 방불케 할 만큼 번잡하고 소란스러웠다.“어? 정말 그러네. 무슨 일이라도 난 건가?”최우현의 말대로 병원 앞은 이미 난장판이나 다름없었다. 장하늘은 복잡한 심경에 젖어 차오르는 식은땀을 쓸어 넘기며 마른 한숨을 내뱉었다.“유환아, 우리 다른 입구로 돌아갈까?”조기범에 대한 걱정과 동시에, 그가 스토커와 전생에 어떤 참혹한 일을 겪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딴생각에 빠져 멍하니 발걸음을 내딛던 그때, 옆에 있던 최우현과 김강무의 눈썹이 동시에 치켜올라갔다.“유명 연예인이라도 실려 온 거 아니야? 취재진 기세가
Read more

#97. [씻어낼 수 없는 영혼의 흉터]

조기범을 만나러 가는 길목마다 진을 친 기자들의 기세는 상당했다.그들의 관심은 오직 전국적인 돌풍을 일으키는 S대 선수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특히 장하늘과 유환에게.“관심은 감사하지만, 우선 선배님 문병이 먼저입니다. 인터뷰는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장하늘은 난생처음 겪는 과도한 플래시 세례에 영혼이 탈탈 털려 나가는 기분이었다.응급실 복도는 몰려든 인파로 이미 포화 상태였다. 그 와중에 장하늘은 유환과 잠시 거리가 벌어졌고,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하는 고립된 처지가 되었다.그 순간, 눈앞에 희미한 유백색 막이 쳐진 듯 시야가 뿌옇게 흐려지기 시작했다.“장하늘 선수! 조기범 선수와 미국 동반 진출설이 돌고 있는데 사실입니까?”“S대 경영학과 수재라고 들었습니다! 월가 정보지에는 장하늘 선수가 주식 투자로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였다는 기사가 실렸는데, 야구는 취미입니까?”“작년 미국 모 구단의 포수 육성 프로그램에 참여했다는 제보가 있습니다!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실 계획인가요?”웅성거리는 목소리들이 뭉글뭉글 피어오르는 구름처럼 귓전을 어지럽게 맴돌았다.그런데, 그 순간.장하늘의 입술이 경련을 일으켰다. 소리가 되지 못한 파편들이 혀끝에서 허망하게 부서져 내렸다. 생각지도 못한 사태였다. 개인정보가 이토록 노골적으로 난도질당해 세상에 뿌려지고 있다니.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하며 충격으로 마비되는 순간, 끔찍한 감각이 전신을 훑었다.“아― 으윽, 읍!”속이 뒤집히는 울렁거림과 함께 갑자기 숨통이 막혀왔다. 아, 하필 다른 사람 병문안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서서히 목을 죄어오는 차가운 올가미의 감촉. 이건 장하늘이
Read more

#98. [잔인한 타이밍]

장하늘은 깊은 상념에 잠겨 허공을 응시하다가, 귓가를 울리는 유환의 낮은 부름에 퍼뜩 현실로 돌아왔다.“정신이 좀 들어? 괜찮은 거냐고.”유환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걱정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손가락이 장하늘의 어깨를 조심스레 붙잡아 당겼다. 등 뒤로 전해지는 유환의 묵직한 체온과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길에 장하늘은 가슴 한구석이 홧홧하게 달아올랐다.그 세심한 배려에 목구멍이 꽉 막혀왔다. 고마움과 미안함이 교차하는 찰나, 장하늘의 눈동자에 희미한 물기가 어린 채 일렁였다. 습관처럼 배어 나온 죄책감에 시선을 피하려던 장하늘의 눈길이, 여전히 초조함이 가시지 않은 유환의 그늘진 안색에 머물렀다.장하늘은 잠시 숨을 고른 뒤, 안심시키려는 듯 유약하게 웃어 보였다.“유환아, 또 걱정 끼쳐서 미안해. 나 이제 정말 괜찮아.”유환은 제 속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르는지 해사하게 웃는 장하늘을 보며, 얼굴에 파인 수심의 그늘을 지우지 못했다.“갑자기 왜 그런 거야? 스트레스 때문인가?”“뭐······ 그럴지도 모르지.”장하늘의 목소리에서 힘이 빠져나가자, 유환의 미간에 깊은 주름이 잡혔다. 민망함이 치밀어 오른 장하늘은 녀석의 집요한 시선을 피하며 서둘러 조기범에게 갈 채비를 했다. ***준비가 끝나 일어서려 하던 그때도 장하늘의 머릿속은 복잡했다.사실 유도완 때문에 겪은 고통이었으니, 스트레스라는 말이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었다.안색이 좋지 않아서인지 유환은 서늘한 냉기가 서린 생수병을 장하늘의 입술 끝에 조심스레 대주었다. 생수병 표면에 맺힌 차가운 이슬이 장하늘의 입술과 유환의 손끝
Read more

#99. [악연을 넘어서는 방법]

상황은 좋지 않았다. 오해하기 딱 좋고, 사실 이건 오해도 아니었다. 장하늘은 유환과 사귀고 있으니까 말이다.“아버지, 애 놀라잖아요! 제발 나가세요! 몸이 안 좋아서 부축하는 것뿐이라고요!”“이놈이 아비한테 어디서 소리를 질러!”유도완의 눈썹이 험악하게 치켜 올라가자, 장하늘의 가느다란 손가락이 유환의 옷자락을 파르르 떨며 움켜쥐었다.“저희 지금 나갈게요!”“가긴 어딜 가? 장하늘이라고 했나? 너 몸 관리 똑바로 해! 우리 환이가 너 때문에 너무 진을 빼는 것 같으니까!”병실 안엔 날카로운 고성이 오갔고, 열린 문틈 사이로 지나가던 간호사들이 깜짝 놀라 힐끔거렸다. 배가 뒤틀리고 식은땀이 비 오듯 흐르며 정신이 가물거리는 와중에 장하늘은 미칠 것만 같았다.그런데 그 절체절명의 순간, 기묘한 감각이 장하늘을 스쳤다. 이 고통을 여러 번 겪다 보니, 어떻게 해야 조금이라도 견뎌낼 수 있는지 본능적인 요령이 생긴 것이다. 장하늘은 숨을 멈추고 유도완의 그림자에서 시선을 완전히 거두었다.마음의 창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듯 생각을 멈추자, 거짓말처럼 저주의 무게가 조금씩 흩어지는 기분이 들었다.‘저분은 나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게 확실해. 전생에서도 내가 유환이랑 가까이 지내는 걸 시기해서 압박했던 거야!’고통과 공포가 해일처럼 밀려왔지만, 장하늘은 유환의 옷깃을 생명줄처럼 잡고 흩어지는 정신줄을 다잡았다. 살다 보면 본능적으로 사실 싫은 사람, 근처만 와도 불길한 예감이 드는 경우도 있지 않은가.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건 다 전생에 악연이 있어서가 아닐까 묘한 의심이 들었다.유환과 유도완이 실랑이를 벌이는 그때.
Read more

#100. [전생의 피안: 숨은 적]

조기범의 그림자가 창백한 형광등 불빛을 받아 천장까지 길게 뻗어 나갔지만, 정작 그의 고개는 폭풍을 만난 초목처럼 한껏 움츠러들어 있었다.거구의 어깨가 경련하듯 미세하게 떨렸고, 테이블 밑으로 숨긴 손끝은 축축한 식은땀을 쥐어짜며 시트만 구겨댔다. 장하늘은 본능적으로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조기범의 눈동자에 고인 짙은 불안이 날카로운 유리 파편이 되어 튀어 오르더니, 장하늘의 심장 가장 깊숙한 곳에 꽂히는 기분이었다.유환은 어느새 몰려든 Y대 학생들에게 둘러싸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타인의 관심이 그쪽으로 쏠린 것을 천만다행이라 여기며 조기범을 응시하자, 그가 치킨을 먹으며 웃고 떠드는 무리를 멍하게 바라보다 경직된 음성을 뱉어냈다.“있잖아, 장하늘. 난 그 스토커가 근처에만 있어도 가슴이 찢길 듯 갑갑해져. 머릿속이 시커먼 공포로 가득 차서, 도저히 제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어.”190cm가 넘는 신장에 100kg은 족히 넘을 법한 당당한 체구의 조기범이, 아이처럼 유약한 목소리로 무섭다 고백했다. 장하늘은 그가 자신이나 서정우와 같은 궤의 고통을 공유하는 회귀자임을 확신하며 무거운 고개를 끄덕였다.“심장이 터질 것처럼 조여 오고, 누군가 목을 조르는 듯한 숨 막히는 괴로움인가요?”“맞아! 정확해. 딱 그런 기분이야.”장하늘의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예상대로 조기범 역시 같은 형벌을 받고 있었다.“실은······ 전생에서도 끈질기게 나를 쫓아다녔던 아이였어.”역시, 짐작이 맞았다.“혹시 전생의 악연이었나요?”장하늘의 물음에 조기범은 미간을 좁히며 폐부 깊숙한 곳에서부터 묵직한 한숨을 끌
Read more
PREV
1
...
891011121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