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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1화

도경의 수업이 시작되는 걸 확인하고 이재가 1층으로 내려갔다.계단 앞을 서성이던 고용인이 다가왔다.“사모님이 기다리고 계세요.”“네.”예상했던 일이었다.안서희가 기다리지 않아도 만나자고 청하려 했다.이재는 마음을 다지기 위해 숨을 크게 내쉬었다.이렇게 된 이상 머뭇거릴 이유는 없었다.“……안녕하세요, 사모님.”이재가 온 것을 뻔히 알면서도 보지 않는 안서희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자, 안서희가 그제야 고개를 돌렸다.“어어……. 그래요.”여기는 왜 왔냐고, 당장 나가라는 말 못 들었냐고 패악을 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서희는 예상과 달리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안서희 건너편에 앉으며 이재는 허리를 세웠다.고개를 들었다.머리로 가렸던 뺨이 드러났지만 그대로 두었다.안서희의 시선이 이재의 뺨에 난 상처에 잠시 머물렀다가 황급히 지나갔다.“사모님.”“한 선생.”두 사람이 동시에 말을 시작했다.안서희가 먼저 말하라는 듯 턱짓을 했다.이재는 주눅들지 않고 말을 이었다.“어제 말씀하신 대로, 그만두겠습니다.”“어……?”안서희가 뜻밖이라는 듯 잠시 놀랐다가 아닌 척 눈을 돌렸다.이재는 생각했던 말을 잊지 않으려 애쓰며 말을 이었다.“대신 시간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정리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서요.”“얼마나?”“일주일이면, 될 것 같습니다.”“흐음.”이마를 잔뜩 찡그린 안서희가 잠시 생각하다가 자비라도 베풀 듯 툭 다음 말을 내뱉었다.“그래요 그럼.”고맙다고 고개라도 숙일 줄 알았던지 안서희는 이재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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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2화

도언은 비서가 두고 간 커피잔을 이제야 들었다.시간이 그새 꽤 흘렀는지 이미 식어 있었다.다시 뜨거운 걸로 청할까 하던 도언은 그냥 마시고 내려놓았다.잔을 내려놓는 그의 눈에 보인 것이 있었다.“초콜릿……?”커피와 함께 비서가 내온 것일 텐데, 오늘만 특별히 내온 것인지 늘 같이 내오던 것인데 오늘에야 그의 눈에 띈 것인지 알 수 없었다.“이건 뭐…….”도언은 픽 웃음을 뱉으며 초콜릿을 집어 들었다.어제 이재가 내밀었던 것과 분명 다른 것일 텐데 그것만으로도 어제를, 이재를 떠올렸다.도언은 들고 있던 패드를 내려두고 의자에 몸을 뒤로 기대었다.그리고 초콜릿을 입에 넣었다.부드럽게 녹으며 단맛이 입에 감돌았다.곧 녹아든 초콜릿이 입안에 진득하게 번졌다.목구멍이 쓰도록 그 단맛은 이재의 것과 같았다.그녀의 입을 벌려 깊이 핥았던 초콜릿이었다.끝내 누구의 것인지 모르게 섞여 버렸지만.완전히 녹아 사라지고도 끈적하게 남은 초콜릿의 뒷맛이 묘하게 그녀를 상기시켰다.기억하는 한 초콜릿 따위를 일부러 먹어본 적은 없었다.그런데 어제 그토록 오래 맛을 보았다.제 입에 있는 걸로도 모자라 이재의 것을 빨았다.그렇게 한껏 빨아들여도 채워지지 않아 애가 타 멈추기가 어려웠다.샅샅이 빨아먹고도 모자라 그녀의 입술을 삼킨 채 놓아주지 않았다.그건 초콜릿보다 더 달았다면 착각이었나.아마도 그에게 초콜릿은 이재로 기억될 것이다.도언은 식어버린 커피를 입에 머금었다.커피의 쓴맛으로도 지워지지 않는 건 초콜릿이 아니라 이재일까.손등으로 입술을 닦아내도 여전한 단맛의 여운이 입가에 맴돌았다.똑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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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3화

데이트.도언은 이쯤에서 그만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그 시간, 이재는 도언에게 메시지를 보내놓고 볼 안쪽 살을 지그시 물었다.아릿한 통증이 전해졌지만 괜한 초조함에 자꾸만 씹어댔다.안서희에게 일주일의 시간을 달라고 했다.그 시간은 호명에서 했던 일을 정리하는 시간이기도 했지만 도언과 정리를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생각했다.안서희의 말대로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해도 정리는 해야 했다.어느 날 불쑥 나타나 마음을 헤집고 거짓말처럼 애원하던 것 모두가 그에게는 의미 없는 것들이라 해도 이재에게 마저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니 말이다.이상했고, 끔찍했다가 진저리가 나게 만들던 차도언에게 흔들리지 않았다면 명백한 거짓말이었다.뜨겁게 입을 맞추고 저를 안았던 그를, 제 인생의 처음을 모두 가져간 그를 어쩌면 오래 기억하게 될 것이다.그러지 않기 위해서라도 정리해야 했다.오래 기억하지 않기 위해. 쉬이 잊을 수 있게.이건 그를 위해서가 아닌 자신을 위해서라고, 이재는 생각했다.지잉-.메시지 알림음이 울렸을 때 비로소 이재는 물고 있던 입 안쪽 살을 놓았다. 연한 피 맛이 감돌았다. [좋아요.] 짧은 대답에 이재의 마음이 쿵, 내려앉는 것만 같았다.도언이 제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얼굴까지 달아올랐다. [차 보낼게요. 타고 와요.] 이어서 바로 도착한 메시지에 이재가 습관처럼 괜찮다고 보내자 다시 곧바로 도언의 메시지가 떴다. [타고 와요.] 이 메시지를 보내는 그는 웃고 있을까, 아니면 찡그리고 있을까.이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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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4화

“도경아.”“응.”“너 부모님께 배우 하고 싶다고 얘기했어?”도경이 머금었던 미소를 서서히 지우며 고개를 끄덕였다.짜증이라도 난 듯 턱을 든 도경은 한숨을 뱉었다.“왜? 엄마가 누나한테 뭐라고 했어?”“아니.”이재가 성급하게 도경의 말을 막았다.어제 숙소동에서 있었던 일은 도경이 알아서는 안 되는 이야기였다.호명의 모든 사람이 알아도 절대 몰라야 할 두 사람 중 한 명이 도경이었다.“도경이 너 진심이야?”“뭐가?”“배우 하고 싶은 거 진심이냐고.”도경이 어깨를 내려뜨리고는 주머니 안에서 담뱃갑을 꺼냈다.담배를 하나 꺼내 들며 도경이 중얼거렸다.“뭐 꼭 그렇게 다 진심이어야 하나.”“뭐?”“그냥 해보고 싶은 거 해본다는 거잖아. 되지도 않는 거 붙잡고 시간 낭비하느니 한번 해보겠다는데 왜들 난리인지 모르겠어.”“도경아, 그래도…….”“누나.”담배를 입에 문 도경이 삐딱하게 선 채 이재를 보았다.그 모습이 짐짓 불량스러웠지만 이재는 참아 주었다.“누나는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라.”“그게 무슨 소리야?”“나 그동안 누나 말 잘 들었잖아.”“네가 무슨 내 말을 잘 들어?”어림도 없는 말이라고 이재는 생각했다.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술이나 퍼마시고 수없이 데리러 가게 만든 녀석이었다.“하기 싫은 공부 지금까지 억지로 한 것도 누나 때문이고, 그나마 집에서 지금까지 버틴 것도 누나 때문이야.”아무렇게나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가려졌던 그의 눈이 순간 반짝 빛났다.이재는 무슨 말인가 하려다 입을 다물었다.셀 수 없이 속아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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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5화

도언에게 맥없이 끌려가듯 걸어가는 이재의 눈에 그제야 주변이 눈에 들어왔다.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로비에 있는 몇몇 사람들과 호텔 직원들까지 모두 도언을 보았다.다음으로 당연하게도 도언의 옆에 선 이재를 보았다.사람들의 시선에 이재의 얼굴이 화끈거렸다.그러나 도언은 전혀 상관없어 보였다.아니, 이런 시선쯤은 익숙한 걸지도 모른다고 이재는 생각했다.“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두 사람을 주시하던 직원이 다가와 안내했다.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도언이 그의 뒤를 따르며 이재를 이끌었다.“어디 가는 거예요?”이재가 묻자 도언이 픽 웃음을 뱉었다.“뻔한 거 아닌가?”“네?”동그래진 눈으로 올려다본 이재가 걸음을 멈추었다.그리고 허리를 잡은 그의 손을 밀어내며 한 걸음 물러섰다.“왜요. 뭐 잘못된 거라도 있어요?”“그게 아니라…….”얼버무리는 이재의 얼굴에 홍조가 드리웠다.도언이 그런 이재를 빤히 내려다보았다.“데이트하자면서요.”“그렇긴 한데.”“데이트가 이런 거 아닌가?”도언이 말하는 이런 거, 라는 게 뭔지 묻지 않아도 이재는 알 것 같았다.처음도 아니면서, 예상 못 한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이렇게 될 걸 뻔히 알면서 매번 이렇게 당황스러워하는 게 자신조차 우스웠다.도언과 이재가 멈춘 걸 모르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모퉁이로 돌아갔던 직원이 되돌아와 두 사람을 보았다.“가죠.”도언이 이번엔 이재의 손을 잡았다.크고 뜨거운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그러잡는가 싶더니 손가락 사이로 깍지를 껴 잡았다.엘리베이터는 로비에 멈춰 있었던 듯 바로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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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6화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어느새 다가온 직원이 안내에 따라 안으로 들어가며 이재는 자꾸만 뭔가 헛발질하는 듯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오늘 도언에게 데이트를 청한 건 어딘가 남게 될지도 모를 미련 같은 걸 지워내기 위해서였다.안 될 걸 뻔히 알면서 저도 모르게 가졌던 어떤 기대 따위 확실히 없애고 싶었다."몸이나 주고 놀아나는 것도 모르고……."안서희가 했던 말이 비수가 되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고작 몇 번의 입맞춤과 잠자리는 그녀가 했던 말과 다르지 않았다.그래서 이재는 차라리 놀아나는 게 뭔지 확인하고 싶었다.헛된 기대 따위 버리고 몸을 섞고 그와 놀아나길 바랐다.짧게 주어진 호명에서의 시간을 그렇게 완전히 허비해 버릴 생각이었다.그것이 이재에게 필요한 정리의 시간이었다.“뭐 먹고 싶은 거 있어요?”도언이 제법 매너 있게 물었을 때 이재는 피식 웃어 버렸다.“이미 다 정해놓은 거 아니에요?”도언이 눈썹을 들어 올리더니 펼쳐 보지도 않은 메뉴를 옆으로 치웠다.“맞아.”도언이 기다리고 있던 직원에게 눈짓을 보내자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도언이 느긋이 등을 기대며 이재를 건너다보았다.그가 잡았던 손은 마주 앉으며 이미 떨어졌지만 눈이 마주친 순간 얼얼하도록 맞물렸던 손가락 마디에 다시 통증이 느껴졌다.이재는 오른손으로 왼손 등을 문지르며 입술을 말아 물었다.“그래서.”그의 눈을 피해 통창으로 보이는 야경을 보고 있던 이재의 시선을 도언이 다시 끌어당겼다.“어떤 데이트를 하고 싶어요?”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이재가 빤히 바라보자 도언이 우습다는 듯 이마를 문지르며 키득댔다.“첫 데이트잖아. 한이재가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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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7화

도언이 룸으로 들어와 재킷을 벗어 툭 던졌다.“벗어요.”“……?”뒤따라 들어와 멀거니 서 있던 이재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도언이 그녀를 향해 몸을 돌렸다.“뭐 해요, 벗으라니까.”이재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도언이 넥타이 매듭을 잡아 내렸다.순식간에 넥타이를 풀어버린 그는 셔츠 단추를 풀어 내렸다.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이재가 고개를 돌렸다.“벗겨 달라는 건가?”이재가 얼굴을 구기며 돌아보자 도언이 표정도 바꾸지 않고 픽 웃음을 뱉었다.“뭘 그렇게 봐. 이미 볼 장 다 본 사인데.”“부회장님.”이재가 무슨 말을 하려 입술을 우물거리는 사이 도언은 멈추지 않고 단추를 다 풀어낸 셔츠를 벗었다.갑자기 드러난 도언의 벗은 몸에 이재가 하려던 말을 못 하고 고개를 돌렸다.불이 켜진 룸은 너무 밝았다.“너도 벗어.”도언이 벨트 버클을 풀며 명령하듯 말을 이었다.이재는 그를 보지 않고 고개를 저었다.“……씻고 올게요.”“뭐 하러.”이재가 겨우 카디건 단추를 하나 풀어내려다가 그의 말에 멈칫했다.도언이 벌어진 팬츠 앞섶을 가릴 생각도 없이 이재를 내려다보았다.“어차피 더러워질 거 씻을 필요 있나?”조소 어린 도언의 말투에 이재는 입술을 말아 물었다.그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욕실 쪽으로 몸을 돌렸다.“그래도 씻는 게 좋겠어요.”등을 돌린 이재 뒤로 도언이 성큼 걸어와 한 팔로 허리를 안아 세웠다.등 뒤로 바짝 닿은 그의 몸에 이재는 숨이 막혔다.어차피 이러기를 바라며 청한 건 자신이었다.이재는 흔들리지 않으려 애쓰며 고개를 틀어 그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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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108화

발갛게 달아오른 젖꼭지가 아릿하게 아프도록 문대는 동시에 아래는 손가락을 세워 음부 사이를 갈랐다.클리토리스를 건드리고 움칠거리는 구멍을 문질렀다.“흐윽, 흐으…….”구멍을 맴도는 그의 손길에 이재는 자꾸만 몸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수치심에 주저앉고 싶은 마음이 분명한데도 졸아드는 아랫배는 그녀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었다.“한이재.”“흐으…….”“어떻게 해줄까.”이재는 무너지지 않으려 그의 셔츠 자락을 잡았다.마주친 도언의 시선이 이재를 파고들었다.“침대로…… 가요.”도언이 그녀의 엉덩이 아래를 들어 올려 안았다.이재는 떨어지지 않으려 다리를 그에게 둘러 감싸며 그에게 매달렸다.도언의 입가에 언뜻 미소가 스쳤다.도언에게 안겨 침대로 옮겨진 이재는 그의 허벅지에 올려져 마주 앉은 채였다.그의 손에 벗겨진 옷은 바닥에 널브러졌다.마치 그녀처럼 모든 게 엉망이었다.불을 꺼달라는 말은 이미 삼켜져 버렸다.그것도 모자라 씻지도 못하고 그에게 안긴 건 차라리 모욕이었다.이 엉망인 상황에 자신이 제일 엉망이라고 이재는 생각했다.눈물이 가득 고여 흐릿한 시선이 도언에게 붙잡혔다.서늘하게 가라앉은 그의 눈이 이재를 놓지 않으며 마구 그녀를 희롱했다.제 얼굴 가까이 가슴이 오게 허리를 끌어안고는 그대로 가슴을 베어 물었다.다 삼켜지지도 않을 걸 알면서도 입안 가득 최대한 빨아들여 말캉한 그 살을 입안에서 마구잡이로 뭉갰다.볼이 패도록 힘껏 빨다가 이를 박아 하얀 살덩이에 자국을 내면 이재의 아래가 꿈틀거렸다.불안하게 들려진 엉덩이가 내려가면 다시 허리를 안아 올린 그의 손이 앉지 못하게 힘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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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9화

차라리 싫었으면, 그랬다면 견뎌내는 게 조금은 나았을까.예민해진 몸은 그의 손길에 의지와 상관없이 전율했다.건드려지는 모든 곳이 그를 느꼈고, 찌릿하게 관통하는 떨림에 흐느꼈다.흘러넘친 타액에 질척이는 키스가 끔찍했지만 멈출 수 없었다.“말해, 한이재.”“흐으…….”도언이 이재를 안아 올리더니 그대로 침대에 눕혔다.흐릿한 눈을 떠 제 위에 그를 보자 탁한 눈빛의 도언이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범벅이 된 입술을 핥았다.이재는 그제야 조금 안심이 되었다.엉망인 건 자신만이 아닌 것 같아서.그 역시 저 때문에 흐트러지고 있었다.“원하는 걸 말하라고. 말 잘 듣는 개새끼가 돼줄 테니까.”이재는 무도하게 말을 뱉는 도언에게 치가 떨렸다.기어이 자신을 굴복하게 만들어 놓고 마치 위하는 듯 위악을 떠는 것마저 모멸감이 느껴졌다.“빨리, 빨리…….”“뭐.”이재의 다리 사이에 버티고 선 채 기어이 그 말을 듣겠다는 듯 도언이 내려다 보았다.“……해줘요.”“하.”도언이 이재를 내려다보며 시선을 붙잡아 둔 채 보란 듯 사각 패키지를 뜯었다.이재는 차라리 눈을 감았다.여전히 불이 꺼지지 않은 룸은 눈이 부시도록 밝았다.지금 이 순간 감당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두려움을 피할 방법은 눈을 감는 것뿐이었다.그러나 곧 이재를 누르는 도언의 무게에 이재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소리가 터졌다.“한이재…….”맞물리는 동시에 그녀 안으로 푹 들어온 도언이 신음 같은 탄식을 뱉어내며 이재의 이름을 불렀다.빠듯하게 들어오는 그를 받아들이며 바들거리던 이재는 대답도 못 하고 숨이 넘어가듯 헐떡였다.“이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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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0화

“다시 시키죠.”식어버린 음식을 한입 먹어본 도언이 테이블에서 일어나자 이재가 고개를 저으며 그의 팔을 잡았다.“그냥 먹어요.”도언이 제 팔을 잡은 그녀의 손을 제 손에 들어오게 만들어 잡고는 자리에 앉았다.힘없이 잡힌 이재의 손은 더 이상 그를 거부하지 않았다.“맛없잖아.”“상관없어요.”음식이 식어버린 건 도언 때문이었다.이재가 잠든 사이 시켜 놓았던 룸서비스가 왔을 때 멈추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다시 이어진 관계에 이재는 녹초가 되었고 그사이 음식은 완전히 식어 버렸다.그러나 지쳐버린 이재는 맛 따위 상관없는 사람처럼 식어버린 고기를 오래도록 씹었다.“엉망이네.”도언이 힘없이 늘어진 이재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이재가 그를 돌아보자 도언이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어깨를 끌어당겨 그녀를 제게 기대게 했다.“이기지도 못할 거면서 왜 건드려.”“내가 뭘요.”힘없이 늘어진 주제에 꼬박꼬박 대답하는 이재가 어이없도록 우스웠다.도언은 어깨를 안은 손을 뻗어 그녀의 볼을 살짝 쥐었다.“한이재한테 좀 잘 보여 보려고 했는데.”말랑거리는 이재의 볼살을 손끝으로 뭉개며 도언이 느긋이 말을 이었다.“또 미친놈처럼 굴게 만들고.”이재가 제 얼굴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그의 손길을 뿌리치지도 않은 채 기대어 그를 올려다보았다.“상관없어.”“뭐?”도언이 꼬집듯 잡고 있던 손가락을 멈추고 저를 올려다보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졸음에 겨운 듯 가만히 눈을 내린 이재가 말을 이었다.“나한테 잘 보이지 말아요.”“왜.”“그냥…….”나에게 잘해주면 진짜라고 믿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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