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은밀한 진료:대표님의 달콤한 처방: Chapter 561 - Chapter 570

578 Chapters

제561화

진하성과 권태혁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두 사람 사이에 순식간에 불꽃이 튀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다.그들은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소꿉친구였다. 그런데 여자 하나 때문에 서로 얼굴을 붉히게 될 줄이야.한참의 침묵 끝에 진하성이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피식 웃었다.“농담이야.”권태혁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어낸 진하성이 특유의 가벼운 태도로 상황을 무마했다.‘권태혁 이 자식 이번엔 진짜구나.’...자선 모금 행사장으로 돌아온 온세아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짜증이 밀려왔다.마침 샴페인이 가득 담긴 쟁반을 든 웨이터가 온세아의 곁을 지나쳐 갔다. 온세아가 잔을 집어 들어 단숨에 들이켰다.독한 알코올 기운이 불길처럼 온세아의 식도를 타고 흘러내렸다.“세아 씨, 여기서 또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온세아의 옆에서 갑자기 음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고개를 돌려 확인해 보니 놀랍게도 천정수였다. 천정수도 모금 행사에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천정수와 말을 섞을 생각이 없었던 온세아는 예의상 가볍게 고개만 까딱이고는 차갑게 돌아섰다.그런데 천정수가 팔을 뻗어 온세아의 앞길을 막아섰다.“세아 씨,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우리 친구나 할까?”온세아는 천정수와 친구 따위 조금도 하고 싶지 않았다.“됐습니다.”단칼에 거절했지만 천정수가 온세아의 팔을 덥석 붙잡고 놔주지 않았다.“다시 한번 생각해 봐.”온세아가 천정수의 손을 뿌리쳤다.“내 몸에 손대지 말고 저리 가요.”그녀의 날 선 외침이 행사장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 쏠렸다.수많은 눈동자가 꽂히자 체면이 깎인 천정수는 그제야 멋쩍은 표정으로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그 바람에 온세아가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한 몸에 받아야 했다.그녀는 더 이상 그곳에 머물지 않고 출구를 향해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행사장을 빠져나오자마자 온몸에 기운이 쫙 빠지고 머리가 핑 돌았다.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니 위장이 뒤틀리면서 구역질까지 밀려와 당장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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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2화

온세아의 눈동자가 급격히 흔들렸다.‘약? 이 미친 늙은이가 내 술에 약을 탔다고?’“파렴치한... 자식!”온세아가 분노를 터뜨리며 소리쳤다. 천정수가 그녀에게 품고 있는 끔찍한 흑심만 생각하면 구역질이 났다.“자기야, 지금 엄청 괴롭지? 내가 도와줄까?”천정수의 눈에 숨길 수 없는 탐욕이 번뜩였다.“꺼져! 내 몸에 손대지 마!”온세아가 혐오 가득한 얼굴로 악을 썼다. 하지만 몸이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고 시야도 흐릿해졌으며 정신마저 혼미해지고 있었다.“내가 꺼지면 그 불은 누가 꺼줘?”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악하게 웃으며 다가갔다. 그러고는 두꺼운 손으로 온세아의 훤히 드러난 어깨를 만지려 했다.지독한 구역질과 함께 온몸에 소름이 돋은 온세아가 젖 먹던 힘까지 쥐어짜며 버둥거렸다.“저리 가. 만지지 말라고.”하지만 천정수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오히려 온세아의 드레스를 거칠게 찢기 시작했다.온세아는 차라리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생각마저 들었다. 엄청난 공포가 덮쳐와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살려주세요. 제발 좀 도와주세요...”목이 메어 터져 나오는 비명이 처절하고 애처로웠다.“지금 목이 터져라 소리쳐 봤자 널 구하러 올 사람은 아무도 없어.”천정수가 득의양양하게 웃었다.이곳은 그가 치밀하게 골라둔 인적 드문 구석이었다.지금쯤 사람들이 전부 모금 행사장 안에 몰려 있을 테니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턱이 없었다.온세아의 마음에 짙은 절망이 드리워졌다. 만약 이 역겨운 늙은이의 뜻대로 된다면 정말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드레스가 완전히 뜯겨나가기 직전 핏발이 선 눈을 한 권태혁이 달려오더니 천정수의 팔을 잡고 온세아에게서 거칠게 떼어냈다. 그러고는 가차 없이 주먹을 날려 단숨에 천정수를 바닥에 처박아 버렸다.얻어맞은 천정수가 연신 앓는 소리를 내자 권태혁은 그 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듯 천정수의 골반을 힘껏 걷어찼다.끔찍한 고통에 천정수는 그 자리에서 기절해 버렸다.아직 공포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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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3화

의사는 권태혁의 의대 동문인 서강완이었다.서강완이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답했다.“형도 의대 출신이라 이런 종류의 약 기운을 빼내는 데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이 뭔지 알 텐데.”그야 당연히 권태혁이 직접 약효를 해소해 주는 것이었다.권태혁이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가 아무 말이 없자 서강완이 의아해했다.“설마 이 여자한테 관심 없다는 소리를 하려는 건 아니지?”아까 권태혁이 온세아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올 때의 다급하고 걱정 가득한 모습을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게다가 오늘 밤은 서강완이 당직도 아니었다. 권태혁이 당장 튀어 오라며 전화한 바람에 나온 것이었다.이 여자에게 마음이 없다면 왜 이렇게까지 유난을 떨었겠는가?권태혁의 조각 같은 얼굴에 씁쓸한 기색이 스쳤다.“이미 까였어.”게다가 이런 상황을 틈타 비겁하게 굴고 싶지도 않았다. 권태혁이 원하는 건 온세아의 진심이었다.서강완이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뭐? 형이 까였다고? 천하의 권태혁이 여자한테 차이는 날이 다 오다니.”과거 권태혁의 학교 후배였던 서강완은 권태혁이 여자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많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학교의 모든 여학생이 그를 짝사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런 남자가 여자에게 차일 줄이야.서강완의 입가에 고소해하는 미소가 번진 걸 본 순간 권태혁이 얼굴을 찌푸렸다.“너 즐거워 보인다?”서강완이 서둘러 고개를 내저었다.“아니. 절대 아니야!”권태혁의 심기를 건드려서 좋을 게 없었다. 서강완이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형이 직접 해결할 거 아니면 그냥 주사 놓을게.”“그래.”권태혁이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짧게 대답했다.서강완이 주사기를 가져와 온세아에게 억제제를 투여했다.온세아는 한동안 의식 불명 상태에 빠져 있었다. 하지만 몸속에 남아있던 약 기운 때문에 이내 다시 눈을 뜨고 말았다.뜨거운 열기가 또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온세아는 사방이 얼음장처럼 차가운 바다 한가운데에 빠진 것 같은 기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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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4화

“어젯밤부터 내리 굶었으니까 그렇지.”권태혁이 나직하게 일깨워 주었다. 그제야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의 허기가 몰려왔다.“이제 그만 일어나. 아침 준비해 놨어.”권태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달래듯 말했다.온세아가 욕조에서 몸을 일으키려다가 뒤늦게 몸에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거품이 가득해 미처 인지하지 못했는데 몸을 일으키자마자 알몸이 고스란히 노출되고 만 것이었다.“아악!”온세아가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며 다시 욕조 안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그 바람에 입안에 물이 들어가고 말았다.“콜록, 콜록.”그녀가 고통스럽게 연신 기침하자 권태혁이 그녀의 등을 두드렸다. 그러고는 안정을 되찾은 후에야 온세아를 번쩍 안아 올려 욕조 밖으로 꺼냈다.“지금 뭐 하는 거예요?”놀란 온세아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질렀다.‘지금 알몸 상태인데 날 안고 뭐 하려고?’“혼자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해?”권태혁의 낮고 쉰 목소리가 온세아의 귓가를 파고들었다.온세아가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솔직히 이 상태로 고집을 부려봤자 또다시 욕조에 넘어질 게 뻔했다.권태혁과 이렇게까지 밀착하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그의 도움을 거절하면 오늘 하루 종일 욕조에 있어야 할 판이었다.결국 권태혁의 품에 안긴 채 침대로 향했다. 권태혁이 온세아를 침대 위에 조심스레 눕히더니 이불로 꼼꼼하게 몸을 감싸주었다.“옷 입혀줄까?”그의 질문에 온세아가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도리질 쳤다.“아니요.”안 그래도 분위기가 야릇한데 옷까지 입혀준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연인 사이도 아니니 선을 지키는 게 맞았다.“알았어. 그럼 혼자 갈아입어. 내려가서 먹을 것 좀 가져올게.”권태혁이 침대 협탁 위에 올려놓은 옷을 가리킨 뒤 밖으로 나갔다.잠시 후 그가 다시 침실로 들어왔다. 온세아가 권태혁이 준비해 둔 홈웨어로 갈아입었다.피부가 하얘서 핑크색 홈웨어가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가녀린 몸매를 타고 흐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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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5화

온세아는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그래. 차라리 사귀었다고 둘러대는 게 낫겠어. 잠자리 파트너였다고 사실대로 말하면 더 어색해질 거야.’“저 피곤해요. 좀 자고 싶으니까 그만 나가줘요.”정말 권태혁에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온세아가 고개를 휙 돌려버렸다.그는 온세아가 잠이 들 때까지 침대 곁을 떠나지 않았다.사실 오늘 처리해야 할 중요한 업무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지만 온세아를 위해 전부 미뤘다. 그에게 세상에서 온세아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그렇게 침대 옆에 앉아 조용히 온세아의 곁을 지켰다.과로 때문인지 아니면 뜬눈으로 밤을 새운 탓인지 권태혁이 어느새 저도 모르게 침대 가장자리에 엎드려 잠이 들고 말았다.온세아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창밖이 새까맣게 어두워진 뒤였다.낯선 천장을 마주하자마자 이곳이 그녀의 집이 아니라는 사실을 단번에 깨달았다. 이전의 일들이 서서히 파편처럼 떠올랐다.권태혁이 온세아를 구해 주었다. 깨어난 후에는 온몸에 힘이 없어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그러다가 권태혁이 직접 떠먹여 준 전복죽을 먹은 뒤 또다시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다행히 지금은 어느 정도 기력이 회복된 것 같았다.온세아가 두 팔로 몸을 지탱하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들자마자 침대 곁에 엎드려 잠든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순간 저도 모르게 멈칫했다.‘권태혁? 여태 안 가고 여기 있었던 거야? 설마 내가 자는 내내 곁을 지켰어?’온세아의 마음속에 잔잔한 고마움이 피어올랐다.아까 욕조에서 깼을 때는 미처 주변을 둘러볼 정신이 없었다. 이제야 방 안을 찬찬히 살펴보니 권태혁의 별장이 아니라 호텔의 프레지덴셜 스위트룸이었다.어젯밤 권태혁이 온세아를 병원에서 이곳으로 데려온 모양이었다.그는 위급한 상황을 핑계로 비열하게 굴지도 않았고 그녀를 호텔로 데려와 밤새 곁을 지켜주었다.이런 상황에서 온세아의 마음에 아무런 파동도 일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온세아가 고개를 돌려 남자의 수려한 옆모습을 가만히 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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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6화

“아니, 이봐요!”온세아가 권태혁의 손을 찰싹 쳐냈다.“어딜 더 만지겠다는 건데요?”그러고는 권태혁을 쏘아보았다.‘적당히 좀 합시다, 네?’그녀가 진심으로 거부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권태혁은 더 이상 짓궂게 장난하지 않았다.“아직 해 안 떴어. 좀 더 자.”권태혁이 목소리를 낮추고 다정하게 속삭였다.하지만 하루 꼬박 잔 터라 온세아가 잠이 올 리가 없었다.“이만 가봐야겠어요.”온세아가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가려 하자 권태혁이 재빨리 말렸다.“이제 겨우 새벽 네시 반이야. 이 시간에 어딜 가려고?”꼭두새벽인 줄 몰랐던 그녀가 멈칫했다.“게다가 네 몸이 아직 덜 회복됐어. 눈 좀 더 붙여.”권태혁이 계속 타이르던 그때 온세아가 우물쭈물하며 물었다.“그럼 태혁 씨는요?”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자마자 바로 후회했다. 그와 같이 자고 싶어 안달 난 사람처럼 들렸을까 봐.권태혁이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온세아를 바라보았다.“네가 자라고 하는 곳에서 잘게.”온세아의 얼굴에 민망한 기색이 번지더니 이내 입술을 깨물었다.“여기 스위트룸이니까 방이 하나 더 있겠죠?”한 침대에서 같이 자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권태혁의 눈동자 깊은 곳에 찰나의 씁쓸함이 스쳐 지나갔다. 온세아의 말은 곧 그와 같이 자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사실 그럴 만도 했다. 온세아가 그를 밀어낸 게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그래. 푹 쉬어.”권태혁은 강요하지 않고 온세아의 의사를 존중했다. 그러고는 쓸쓸한 뒷모습을 보이며 문을 닫고 나갔다.그가 나간 뒤 온세아가 홀로 덩그러니 침대에 누웠다. 주먹을 꽉 쥐었다가 다시 스르르 풀었다.권태혁과 그녀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이였다. 길게 끌며 상처받느니 차라리 빨리 잘라내는 게 나았다.온세아는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했다.창밖으로 먼동이 터오며 하늘이 밝아질 무렵 조용히 침대에서 내려와 나갈 준비를 했다.권태혁이 깰까 봐 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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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7화

안용민의 주름진 얼굴에 경악이 스쳤다.“여자친구라고요? 비서가 아니었나요?”진하성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낮에는 제 비서지만 밤에는 제 여자친구예요.”안용민이 그 말에 담긴 뜻을 단번에 알아챘다.만약 온세아가 진하성의 평범한 부하 직원에 불과했다면 진하성을 적당히 구슬려 오늘 밤 그녀를 품어볼 작정이었다.하지만 진하성의 사람이라면 함부로 건드려선 안 되었다.안용민이 껄껄 웃으며 상황을 무마했다.“여자친구분 참으로 미인이시네요. 제가 실언을 했어요.”온세아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진하성은 안용민과 인사를 나눈 뒤 온세아와 함께 호텔을 나섰다.그들 앞에 고급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온세아는 당연히 진하성의 차일 거라 생각했다.하지만 무심코 차 안을 들여다본 순간 놀랍게도 권태혁이 타고 있었다.‘권태혁의 차였어?’온세아가 속으로 기함했다.‘여긴 왜 왔지?’“타.”권태혁이 불쑥 입을 열자 온세아가 흠칫 놀랐다.그녀에게 하는 말인지, 진하성에게 하는 말인지 확신할 수 없어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온세아가 한참 동안 반응이 없어 권태혁이 다시 입을 열려던 찰나 진하성이 능청스럽게 웃어 보였다.“태혁아, 너 오늘따라 날 엄청 챙긴다? 나 술 많이 마셔서 운전 못 할까 봐 데리러 온 거야?”온세아와 권태혁은 동시에 말문이 막혀버렸다.두 사람이 말을 꺼내기 전에 진하성이 차 문을 열어젖히며 온세아와 함께 차에 올라탔다.그의 행동을 온세아는 물론 권태혁도 예상치 못했다.“출발해.”진하성이 온세아와 권태혁의 사이에 앉아 다리를 꼰 채 운전기사에게 지시했다.운전기사가 백미러로 권태혁의 눈치를 살폈다. 권태혁이 반대하지 않자 그제야 액셀을 밟고 차를 출발시켰다.차 안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팽팽해졌다.온세아와 권태혁이 뒷좌석의 양 끝에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가는 내내 입을 꾹 다물었고 시선조차 마주치지 않았다.반면 그들 사이에 낀 진하성은 기분이 꽤 좋은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렸다.“태혁아, 설마 우연은 아니지? 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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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8화

진하성이 쉴 새 없이 말을 이어가던 그때 운전기사가 브레이크를 밟았다.“진 대표님, 도착했습니다.”진하성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기색이 역력해졌다.‘벌써 도착했다고? 접대하던 호텔에서 별장까지 가려면 아직 한참을 더 가야 하는데.’의아해하며 창밖을 내다보고서야 진호 그룹인 걸 알아챘다.“나 오늘 밤은 집에서 잘 건데. 회사에서 안 자.”그 말인즉슨 기사더러 그의 별장까지 데려다 달라는 뜻이었다.기사가 다시 한번 권태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권태혁이 딱 두 글자를 내뱉었다.“내려.”말투에 거역할 수 없는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야, 너 진짜 이러기야?”진하성이 불만을 터뜨리려던 찰나 권태혁이 한층 더 무거워진 목소리로 말했다.“두 번 말하게 하지 마.”진하성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결국 어쩔 수 없이 차 문을 열고 내렸다.“독한 놈, 나중에...”으름장이 채 끝나기도 전에 권태혁이 기사에게 출발을 지시했다.진하성은 말문이 막혀버렸다.권태혁이 이럴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어릴 적부터 함께 자란 친구인데 진짜 온세아 때문에 그와 등을 돌리려는 것일까?‘온세아한테 진심이구나, 너.’...진하성이 차에서 내린 후 뒷좌석에 온세아와 권태혁 단둘만 남았다.두 사람은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차 안에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차에 타서부터 온세아는 줄곧 창밖만 보며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지금도 여전했다.“아까 많이 마셨어?”권태혁이 먼저 정적을 깨고 물었다.온세아가 권태혁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심드렁하게 고개를 저었다.“별로 안 마셨어요.”접대 자리라 술이 빠질 수는 없었지만 대부분 진하성이 알아서 막아주었다. 대표이자 전 형부로서 꽤 의리 있는 행동이었다.진하성의 곁에 있으면 온세아는 딱히 손해 볼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별로 안 마셨다면서 왜 계속 머리를 주물러?”권태혁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조금 전부터 계속 온세아의 사소한 행동 하나하나를 눈에 담고 있었다.그 말에 온세아가 멈칫했다. 그가 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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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69화

온세아를 내려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반항이 먹히지 않는다는 걸 깨달은 온세아는 더는 권태혁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하지만 권태혁이 꿋꿋하게 자기 할 말을 이어갔다.“요즘 진호 그룹에서 일하는 건 어때? 내가 도와줄 일은 없고?”“없어요.”“주말에 시간 있어? 나랑 데이트할래?”“시간 없어요.”“내가 메시지 보냈는데 왜 답장 안 했어?”“그냥요.”“...”온세아는 권태혁이 이렇게까지 수다스러운 인간인 줄은 꿈에도 몰랐다. 쉴 새 없이 재잘거리자 온세아는 정말이지 짜증이 치밀어 올랐다.건성으로 대답하다가 나중에는 그 영혼 없는 대답조차 하기 싫어졌다.“그만요! 제발 그만 좀 떠들면 안 돼요?”온세아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짚었다.‘예전에는 엄청 차갑고 과묵하지 않았었나? 언제부터 이렇게 수다쟁이가 된 거지?’권태혁이 오직 좋아하는 사람 앞에서만 말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온세아가 알 턱이 없었다.“너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그가 뚫어지게 쳐다보며 묻자 온세아가 귀찮은 얼굴로 대꾸했다.“뭔데요?”이 질문만 끝나면 제발 권태혁이 입 좀 다물어주길 바랐다. 그래야 온세아도 좀 조용히 쉴 수 있을 테니까.“너 나 좋아해?”그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온세아가 흠칫 놀랐다.이런 상황에서 권태혁이 이런 질문을 던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안 좋아해요.”온세아가 퉁명스럽게 내뱉었다.권태혁의 눈빛이 찰나의 순간 어둡게 가라앉았다. 그녀가 대답했을 때 권태혁의 마음이 얼마나 갈기갈기 찢어졌는지 하늘만 알 것이다.“왜 안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 사랑하는 거야?”권태혁이 장난기가 섞인 말투로 말하면서 여전히 다정한 눈길로 온세아를 바라보았다.온세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저런 말을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입 밖으로 꺼낼 수 있지?’“아까 진 대표님한테 나르시시즘이 지나치다고 하시더니 제가 보기엔 태혁 씨도 도긴개긴이네요.”분명 안 좋아한다고 못을 박았는데 거기서 어떻게 사랑한다는 기적의 논리로 도약할 수가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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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70화

그 후로 권태혁은 시간만 나면 퇴근하는 온세아를 데리러 회사 앞으로 왔다.처음에는 온세아도 단호하게 거절했지만 권태혁이 끈질기게 버텼다.결국 나중에는 온세아도 거절하기 귀찮아져 아예 포기해 버렸다. 그냥 공짜 전속 기사가 한 명 생겼다고 치기로 했다.‘데리러 오고 싶다면 오라지, 뭐.’어차피 구형민과의 이혼 사실도 만천하에 공개된 터라 누가 대시한다고 해서 뒤에서 손가락질받을 일도 없었다.다만 천하의 권태혁이 그녀에게 대시하는 날이 올 줄은 꿈에도 몰랐다.그날도 어김없이 온세아를 데리러 왔다. 그녀가 군말 없이 자연스럽게 권태혁의 차에 올라탔다.“저녁에 뭐 먹고 싶어?”권태혁의 질문에 온세아가 놀란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평소에는 온세아를 집에만 데려다주었는데 오늘은 같이 저녁을 먹자고 제안했다.‘설마 지난번에 갔던 그 외진 레스토랑으로 또 가려는 건 아니겠지?’물론 그곳의 식재료가 특별하고 맛도 기가 막혔다는 사실은 온세아도 인정했다. 하지만 너무 멀어서 다시는 가고 싶지 않았다.“아무것도...”온세아가 거절하려던 그때 권태혁이 재빨리 말을 가로챘다.“지난번 거기 아니야.”‘그 집이 아니라고?’“그럼 어딘데요?”그녀가 멈칫했다가 무의식적으로 되물었다. 그러자 권태혁이 입꼬리를 씩 올렸다.“가 보면 알아.”괜히 물어본 것 같아 후회가 밀려왔다. 한 번 내뱉은 말을 이제 와서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결국 순순히 권태혁을 따라 새로 오픈했다는 습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그곳은 그림 같은 풍경과 아름다운 분위기를 자랑하는 곳이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맑고 상쾌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온세아는 저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가자.”권태혁이 자연스럽게 온세아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맞잡은 두 손을 내려다보던 온세아가 본능적으로 손을 빼내려 하자 그가 되레 힘을 꽉 주어 손을 더욱 세게 잡았다.그렇게 실랑이를 벌이며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섰다.그런데 그곳에서 온세아가 세상에서 제일 마주치기 싫은 사람과 맞닥뜨리고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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