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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을 거슬러의 모든 챕터: 챕터 341 - 챕터 350

376 챕터

제341화

유정웅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유씨 노부인은 덧붙여 뭐라 하려다, 유지영이 손에 쥐고 만지작거리는 옥패를 힐끗 보고는 흠칫했다. 다름 아닌 유정랑의 옥패였다. 노부인은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황급히 삼키며 속으로 분통을 터뜨렸다.역시나 유씨 노부인의 가장 큰 약점은 유정랑이었다."됐다. 너희는 그만 돌아가거라."유정남은 유지영이 이미 얼굴을 비췄으니 이제 그만 돌아가 보라고 일렀다.유지영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유정남을 바라보았다."아버지....""나는 괜찮다."배현준은 유지영을 끌고 밖으로 향했다.마차에 오르자 배현준은 위로하듯 말했다."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말거라. 장인어른께서도 속으로 다 생각이 있으신 듯하니."유지영은 영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아버지가 하루라도 빨리 유씨 노부인의 본모습을 깨닫고 미련을 버리는 편이 낫다고 스스로를 달랬다."지영 누님!"돌연 마차 밖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휘장을 걷어 올리자, 음침한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쳤다.다름 아닌 유정랑이었다!유정랑은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나이는 어렸으나 두 눈에 서린 독기가 어찌나 살벌한지 보는 이의 머리칼이 쭈뼛 설 정도였다. 그는 유지영을 뚫어지라 노려보았다.사실 요 며칠 천부 서원에서의 생활은 그리 편치 않았다. 가는 곳마다 아버지는 악독하고 어머니는 우매하며, 누이는 행실이 천박하다는 조롱이 쏟아졌다.온갖 흉흉한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 서원의 학도들 모두가 그와 어울리기를 꺼렸다.어젯밤에는 급기야 아버지가 재물을 노리고 사람을 죽였다는 소식까지 들려왔다. 분을 참지 못하고 서원을 뛰쳐나온 그는 꼬박 밤을 새워 걸어 방금 전 셋째네 문앞에 당도했다.그러다 마침 밖으로 나오는 유지영과 마주친 것이다.유정랑은 다급히 그녀를 찾았다. 서원에 갓 입학했을 때만 해도 대우가 이렇지 않았는데 갑작스레 나락으로 떨어졌으니, 분명 누군가 뒤에서 수작을 부린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그 배후는 십중팔구 유지영일 것이다!"누님, 피를 나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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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유정랑은 그 기세에 눌려 옴짝달싹하지 못했다. 그는 여태껏 유지영을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유씨 집안에서 큰아버지네는 아들이 없었고, 자신은 온 집안의 적장자였기 때문이었다.철들 무렵부터 할머니는 장차 그가 유국공부를 물려받게 될 것이라 입버릇처럼 말했다.유씨 집안의 모든 자손 중에서도 그가 단연코 가장 많은 총애를 받았다. 어딜 가나 호의호식했고, 사람들은 모두 큰 공자라며 그를 떠받들었다.하지만 경성에 온 뒤로 모든 것이 변해버렸다.지난번 유선주가 저택을 팔고 도망쳤을 때, 그는 국공부로 찾아가 유지영에게 매달렸었다. 그때만 해도 그녀는 그저 조금 냉담해 보였을 뿐이다.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내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다.유정랑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따져 물었다."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린 것까지 전부 누님 짓입니까?"'아니, 그럴 리 없어. 유지영이 그렇게 똑똑할 리가 없잖아?'조문객이 끊임없이 오가는 셋째네 대문 앞에서 유정랑이 내뱉은 말은 사람들의 귀에 고스란히 들어갔다. 누군가 미간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국공 나으리께서 둘째 동생네 자식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이유가 있었군.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은 법이지. 둘째네가 지금의 처지가 된 건 자업자득이거늘, 어찌 감히 군주님을 모함한단 말인가!""둘째네는 본래 대가 끊긴 유국공의 재산을 꿀꺽 삼키고 국공부를 차지할 속셈이 아니었소? 그 검은 속내를 들켜 쫓겨나고는 이번엔 셋째네를 꼬드겨 피를 빨아먹더니, 적반하장도 유분수지."사방에서 쏟아지는 질타에 유정랑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년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군주님, 절대 마음 약해지시면 안 됩니다.""과거 송씨가 군주님을 어떻게 음해하려 했는지, 저희 모두 두 눈으로 똑똑히 보지 않았습니까.""열두 사람의 목숨이 달린 부광 비단 사건으로 군주님께 누명을 씌우려 했으니, 그게 어디 사람이 할 짓입니까!"둘째네의 만행은 그녀가 굳이 입을 열지 않아도 이미 온 경성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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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배현준은 유지영을 방비원으로 데려다주며 말했다."나는 아직 처리할 일이 좀 남아 있으니, 늦게 돌아올 것 같구나."감옥 안.어제 관아에 압송되어 처분을 기다리게 된 유정혁은 짚더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창밖만 뚫어지라 쳐다보고 있었다.귓가에 어떤 소란이 일어도 그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그때 등 뒤에서 철컹거리는 쇠사슬 소리가 나더니, 옥졸이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세자를 뵙습니다."유정혁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찾아온 이가 배준형임을 확인한 그는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황송한 기색으로 허둥지둥 바닥을 짚고 일어나 두 손을 모아 예를 올렸다."세자를 뵙습니다."배준형은 그 자리에 선 채 유정혁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의 눈 밑으로 찰나의 서늘한 살기가 스쳐 지나갔다.바깥 상황이 어찌 돌아가는지 유정혁은 전혀 알지 못했다.하지만 이 일이 필히 정왕부까지 화가 미쳤을 거라 짐작한 그는 이를 갈며 호소했다."유지란 그 천한 년이 갑자기 관아로 뛰쳐나가 고발을 하다니, 누군가 뒤에서 부추긴 것이 틀림없습니다. 세자, 부디 제 억울함을 풀어주십시오."현재로선 그의 말을 뒷받침해 줄 증인이 없었다.셋째네의 시종들은 물론이고 정씨와 유정웅까지 모두 그가 사주한 일이라며 입을 모으는 중이었다.경조 판사는 일단 그를 하옥시켜 처분을 기다리도록 했다.빛 한 점 들지 않는 감옥으로 다시 돌아온 유정혁은 밤새도록 사건의 전말을 곱씹었다."유지란을 부추겨 관아로 가게 한 것은 틀림없이 유지영의 소행입니다. 해독제가 두 알뿐이었던 것도 다분히 고의적인 수작이지요. 세자, 유지영을 하루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정왕부에도 평안한 날이 없을 것입니다.""성년례 이후로 그 계집은 마치 딴 사람이라도 된 양 도통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큰형님마저 그 애의 말에 홀려 분가까지 강행하게 만들었지요."유정혁은 지금 생각해도 분통이 터지는 듯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유지란이 관아에 억울함을 호소한 그 순간부터, 배준형 역시 배후에 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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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배현준은 유정혁이 혹여 안 믿을까 봐, 무심하게 옥패를 툭 던져주었다.유정혁은 황급히 옥패를 받아 들고 자세히 살폈다. 유정랑의 옥패가 틀림없었다.그가 다급하게 물었다."정랑이의 옥패가 어찌 경세자에게 있는 것입니까!"곁에 있던 배준형이 한 걸음 나서며 유정혁의 앞을 가로막았다.그는 시선을 치켜뜨고 배현준을 노려보았다."여긴 어쩐 일이냐?"배현준은 뒷짐을 진 채 홀로 철창가에 서 있었다.훤칠한 체구에 거만하고 여유로운 미소를 띤 그는 뼈 있는 농담을 던졌다."고귀하고 우아하신 정군자께서 어찌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는지 좀 배워볼까 해서 왔지."배준형의 안색이 미세하게 굳더니 눈동자에서 매서운 빛이 번뜩였다.하지만 배현준은 배준형을 전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오히려 얼굴에 더 짙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삐딱하게 기울이고는 유정혁을 바라보았다."저 자는 엽 가주 암살 사건에 휘말려 제 한 몸 건사하기도 벅찬 처지인데, 무슨 재주로 진술을 뒤집어준단 말인가. 경성에서 칭송받던 정왕 세자는 이제 없으니, 저 자에게 매달릴 바엔 차라리 내게 빌어보는 것이 어떤가?""배현준!"배준형은 입꼬리를 비틀어 조소를 흘렸다."내가 파혼하지 않았더라면 네게 지영이를 부인으로 맞이할 기회나 주어졌을 것 같으냐? 지영이의 마음속에 있는 사람은 바로 나다. 나와 지영이 사이에 있었던 일들은...."퍽!배현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는 배준형을 향해 거침없이 주먹을 날렸다.매섭게 날아드는 주먹에 안색이 급변한 배준형은 무의식적으로 반격에 나섰다.두 사람은 비좁은 감옥 안에서 격렬하게 주먹을 겨루었다.뒤편에 서 있던 배준형의 호위가 가세하려 하자, 장림이 한발 앞서 철창문을 막아서며 검을 빼 들었다."두 세자의 싸움에 네놈이 뭐라고 끼어든단 말이냐?"배준형은 그 소리를 듣고 호통쳤다."들어올 필요 없다!"그는 지난번 무과 장원 다툼에서 배현준에게 패배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치욕을 느끼고 있었다.오늘 그 한을 풀 수만 있다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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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끔찍한 고통에 유정혁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한 번 매서운 채찍이 날아들었고, 살갗이 터질 때마다 피가 튀었다. 그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지영이는 단 한 번도 정세자와 왕래한 적이 없습니다. 설령 있었다 해도, 아주 어릴 적 일입니다!"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현준은 배준형을 흘겨보며 코웃음을 쳤다."멍청한 자식!"철창문이 열리고, 배현준은 여유롭게 자리를 떠났다.또 다시 뼈저린 치욕을 당한 배준형은 분노에 차서 씩씩거렸다.유정혁은 포박이 풀린 채 감옥 안으로 내팽개쳐졌다. 단 두 번의 채찍질이었지만 그는 이미 기력을 다 소진한 상태였다.찢겨 나간 외상뿐만 아니라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마치 수만 마리의 벌레가 몸을 뜯어먹는 듯한 끔찍한 감각에, 유정혁은 앓는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배준형은 실망이 역력한 눈으로 유정혁을 쏘아보더니, 씩씩거리며 감옥을 빠져나갔다.감옥 밖.장림이 두 손을 모아 고했다."세자, 유정혁에게 이미 충독을 먹였습니다. 사흘에 한 번씩 해독제를 먹어야 하니, 만일 감옥을 벗어난다면 제 명에 살지 못할 것입니다!"애초에 배현준이 오늘 옥사를 찾은 진짜 목적이 바로 이것이었다. 배준형과 마주친 것은 그저 뜻밖의 수확일 뿐이었다."잘했다."배현준은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왕부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날이 어두워져 있었다. 배현준은 굳이 말을 꺼내지 않았고, 유지영 역시 그가 어디에 다녀왔는지 묻지 않았다.그렇게 며칠이 지났다.셋째네는 유정혁이 감옥에서 풀려나자마자 어느 도사에게서 한성초를 사들였다는 명백한 증거를 관아에 제출했다. 이로써 그의 죄증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유지란은 아버지를 잃은 슬픔을 견디지 못해 처소로 돌아가던 중 눈밭에 쓰러져, 그대로 동사하고 말았다.셋째네는 연이어 초상을 치르게 되었다.유지영은 그 소식을 전해 듣고도 전혀 놀란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유지란을 부추겨 관아에 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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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연말이 되자 며칠 연달아 함박눈이 쏟아졌다. 각 저택에서는 앞다투어 연회를 열었다.경왕비는 민경주와 배유리를 데리고 이른 아침부터 당씨 가문으로 향했다."유리 아가씨의 오늘 옷차림이 아무래도 좀… 지나치게 화려한 것 같습니다."다과를 들고 들어오던 홍주가 배유리의 머리를 장식한 눈부신 금은보화를 보고 혀를 내둘렀다.유지영은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셋째네와 사이가 어떻든 간에 유정명은 그녀의 삼촌이었다. 비록 상복을 입을 의무는 없으나, 장례가 채 끝나지도 않은 마당에 연회에 참석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났다.그래서 그녀는 당씨 가문의 초대를 완곡히 거절했다. 며칠간 짬을 내어 아버지에게 드릴 옷을 몇 벌 지어두었는데, 마침 오늘 시간이 나서 전해드릴 생각이었다.그녀는 마차를 대령해 국공부로 향했다.마침 휴일을 맞아 집에 있던 유정남은 딸이 손수 지은 옷을 보며 가슴이 뭉클해져 눈시울을 붉혔다."네 정성이 참으로 갸륵하구나."부녀는 마주앉아 담소를 나누었다.유지영은 아버지를 통해 그간의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었다.유정명이 세상을 떠난 뒤 유정혁이 이십 년 형을 선고받자, 유씨 노부인은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줄곧 병석에 앓아누워 계신다고 했다."정랑이가 천부 서원을 그만두고 집으로 스승을 모셔와 글을 배우고 있다더구나. 그 어린 것이 며칠 사이 집안을 제법 든든하게 받치고 있어."유정남이 말을 이었다.유정랑은 가산을 처분해 경성을 떠나는 대신, 조용히 동생 유원랑과 유씨 노부인을 보살피는 무거운 짐을 기꺼이 짊어졌다. 그는 국공부에 일절 도움을 청하지 않았다."아버지께서는 마음이 약해지신 겁니까?"유지영이 물었다.유정남은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있겠느냐. 내가 그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정을 준다면 그동안 네가 겪은 수모는 뭐가 되겠느냐. 게다가 그 아이도 다 컸으니 나를 향한 증오만 품고 있을 터인데, 마음이 흔들릴 이유가 없지."그 말을 들으니 유지영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아버지는 그녀의 생각보다 훨씬 냉철하게 상황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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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오늘 형님도 당씨 가문에 함께 가셨더라면, 유리 아가씨가 험한 꼴을 당하지 않았을지도 모르지요."민경주가 콧방귀를 뀌며 비아냥거렸다.유지영은 민경주를 흘겨보며 쏘아붙였다."유리 아가씨가 철부지 어린애도 아닌데, 일일이 사람을 붙여 감시해야 하는가? 게다가 오늘 아가씨와 동행한 사람은 동서인 줄로 아는데. 설마 동서가 아가씨를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다는 뜻인가?"제 잘못을 감추려 뻔뻔하게 남 탓을 하다니, 참으로 가소로운 수작이었다.민경주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당씨 가문과 친분이 두터우니, 아가씨를 데리고 가서 견문을 넓혀주겠다고 큰소리치지 않았는가? 그런데 대체 왜 유리 아가씨가 사고를 당한 거지?"유지영이 연달아 따져 묻자, 민경주는 홧김에 입을 놀린 것이 후회가 되었다. "저, 저는 그저....""집안 어른들도 다들 계신데 동서가 뭐라고 함부로 혀를 놀리는가? 당 부인에게 삿대질까지 해대다니, 참으로 교양 없군!"유지영이 매섭게 꾸짖자 민경주는 얼굴을 붉히며 반박했다."형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왜 저만 탓하는 겁니까?""그럼 어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보게. 당씨 가문의 둘째 공자가 다소 놀기 좋아하고 평판이 썩 좋지 않다 한들,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연못에 빠뜨렸다는 이야기는 들어본 적이 없어."그 말에 경왕비는 심기가 불편한 듯 잡고 있던 팔을 놓았다."지영아, 너는 어째서 남의 편을 드는 게냐?""어머니, 그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시비는 명백히 가려야 하는 법이지요. 다쳤다고 해서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닙니다. 당씨 가문 역시 경성에서 내로라하는 명문가입니다. 만약 정말로 당씨 가문의 잘못이라면, 그때 가서 책임을 물어도 늦지 않습니다."유지영은 단호하게 말한 뒤, 당 부인을 향해 누그러진 어조로 덧붙였다."당 부인께서 친히 경왕부까지 발걸음하셨으니, 그 성의는 충분히 알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시종을 시켜 차를 내오게 했다."당 부인, 우선 앉으시지요."민경주는 다시 트집을 잡으려 했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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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바닥에 산산조각 난 옥패 조각들을 보며, 유지영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듯 뒤로 물러섰다."어찌 이리 경솔하냐! 하마터면 세자비 마마와 부딪힐 뻔했잖느냐."운청이 낮게 꾸짖었다.어린 시녀는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더듬거렸다."소, 소인은....""됐다. 급한 일부터 해결하는 것이 먼저지."유지영은 손을 저어 시녀를 물렸다.이때 민경주가 달려와 허리를 굽히고 바닥에 흩어진 조각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녀의 두 눈에는 분노의 불길이 일렁이고 있었다."이 옥패는 증물인데, 어찌 이렇게 함부로 깨뜨릴 수 있습니까!"유지영은 담담하게 대꾸했다."이 두 옥패는 확실히 비슷하게 생겼어. 유리 아가씨가 착각한 것도 무리가 아니지. 둘 다 최상급 양지옥이 아닌가. 내 혼수 중에도 비슷한 것이 몇 점 있는데, 아마 같은 장인의 손을 거친 모양이야."민경주는 고개를 치켜들고 유지영을 쏘아보았다."혹시 그 위에 글자가 새겨진 것을 보셨습니까?""글자?"유지영은 의아한 듯 고개를 저었다."그저 스치듯 보았는데 깨져버렸지 뭔가. 게다가 옥패가 두 개였으니, 동서가 말하는 글자가 어느 옥패에 있었는지 나는 알 길이 없네."말을 마친 유지영은 경왕비를 바라보았다."왕비 마마, 유리 아가씨가 물건을 잘못 가져간 것도 사실이고, 당씨 가문의 둘째 공자가 아가씨를 연못에 빠뜨린 것도 사실입니다. 쌍방에 과실이 있으나 유리 아가씨는 아녀자의 몸이고, 이 추운 겨울에 물에 빠졌으니 몸조리에 신경을 써야겠지요. 왕비께서는 당씨 가문에서 어떻게 보상해야 이 일이 해결될 것 같습니까?"경왕비는 음침한 표정으로 시선은 바닥에 흩어진 옥패 조각들을 은근히 훑고 있었다.경왕비는 화가 치밀었다.그녀는 유지영이 고의로 옥패 두 개를 모두 깨뜨린 게 분명하다고 의심하고 있었다.한참을 고심하던 경왕비가 입을 열었다."네 생각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 것 같으냐?""어머님, 유리 아가씨의 일을 어떻게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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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사람들의 시선이 당 부인에게로 쏠렸다.당 부인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손에 쥔 손수건을 꽉 말아 쥐었다. 속으로는 당윤이 배유리와 혼인하는 것이 못내 내키지 않았지만, 면전에서 딱 잘라 거절하기도 난처하여 선뜻 입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우리 경왕부의 유일한 적녀는 용모로 보나 학식으로 보나 흠잡을 데가 없소. 경성에 올라오기 전에도 수많은 매파들이 혼사를 주선해 준다고 나섰고, 나 역시 금지옥엽으로 아끼는 아이요. 이런 불미스러운 일만 아니었다면 몇 년 더 곁에 두고 천천히 짝을 골랐을 텐데."임 태비는 꼿꼿하게 앉아 배유리를 한껏 치켜세우며 어쩔 수 없다는 듯 탄식했다. 하지만 이는 당 부인을 압박하기 위한 수작이었다.경왕부 적녀라는 신분 하나만으로도 당 부인을 곤혹스럽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아니나 다를까, 당 부인이 점차 버티기 버거운 듯 입을 열었다."이 일은....""유리 아가씨가 물에 빠졌을 때, 당 공자가 구해주었습니까?"유지영은 당 부인의 말을 자르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당 공자는 제법 도리를 아는 사람이군요. 제 손으로 아가씨를 빠뜨리고는 또 친히 구해주다니 말입니다. 소문처럼 막무가내는 아닌가 봅니다."그 말에 임 태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유지영을 노려보았다.당 부인은 찔리는 구석이 있는 듯 멋쩍게 대답했다."유리 아가씨를 구한 것은 윤이가 아닙니다.""당 공자가 아닙니까?"유지영은 짐짓 놀란 척하며 임 태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당 공자가 구한 것이 아니라면, 여인의 정조에 흠집이 났다는 말은 대체 어떻게 나온 것입니까?"임 태비는 순간 숨이 턱 막힌 듯 가슴을 거칠게 들썩였다.일행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밖에서 당윤이 도착했다는 소리가 들려왔다. 상의를 벗고 하얀 속적삼만 걸친 그는 손에 긴 채찍을 든 채 천천히 다가왔다.그의 뒤에 선 호위가 채찍을 넘겨받고는 곧장 당윤의 등에 매질을 시작했다.짝!매서운 마찰음이 울려 퍼졌다.당 부인은 차마 보지 못하고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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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민경주는 매섭게 눈을 부릅뜨고 유지영을 쏘아보며 따졌다."형님은 왜 자꾸 남의 편을 드는 겁니까?""동서나 나나 똑같은 여인인데, 명예가 얼마나 귀한지 모르는가? 게다가 왕부의 적녀야. 권세를 앞세워 억지로 혼인하자고 핍박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왕부의 여식이 그토록 천박하단 말인가?"유지영은 짐짓 목소리를 높였다. 이는 임 태비 들으라고 하는 소리이기도 했다.상대가 꺼리는데 비굴하게 강요하지 말라는 뜻이었다.임 태비뿐만 아니라, 경왕과 경왕비의 표정도 눈에 띄게 굳었다.민경주는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그 말을 들은 당 부인 역시 정신이 번쩍 든 듯, 모진 마음을 먹고 아들에게서 시선을 돌렸다.오십 대의 채찍질이 끝났다.당윤의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 보기에도 섬뜩할 지경이었다."이 못난 놈!"문밖에서 호통 소리가 들려오더니, 당 대인이 급히 달려왔다. 그는 다짜고짜 당윤을 향해 불호령을 내렸다."대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 게야! 내 어쩌다 너 같은 자식을 두었는지!"그의 뒤를 따라 들어온 배현준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말했다."오늘 나와 당 대인은 줄곧 궁에서 정무를 보았소. 당 대인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후 사정도 모르면서, 연유도 묻지 않고 왜 다짜고짜 당윤을 꾸짖기만 하시오?"배현준이 당 대인과 함께 들어서는 것을 보고 유지영은 그제야 왜 그가 사람을 보내 자신에게 언질을 주었는지 알아차렸다. 배현준은 궁에서 줄곧 당 대인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당 대인의 안색이 살짝 변하더니, 배현준을 눈치를 살피고는 말했다."이놈이 워낙 평소에도 망나니짓을 일삼으니, 이번 일도 필히 이놈 잘못일 겝니다."배현준은 코웃음을 치더니 두르고 있던 망토를 벗어 당윤에게 던져주었다."이미 일은 벌어졌고 오십 대의 채찍으로 사죄까지 했으니, 더 어쩌잔 말이오?"당윤이 망토를 받아 들며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세자."배현준이 대놓고 당윤을 두둔하자, 당 대인은 멋쩍은 듯 소매를 떨치며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이번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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