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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Author: 레몬과 향수
끔찍한 고통에 유정혁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또 한 번 매서운 채찍이 날아들었고, 살갗이 터질 때마다 피가 튀었다.

그는 결국 견디지 못하고 다급히 입을 열었다.

"지영이는 단 한 번도 정세자와 왕래한 적이 없습니다. 설령 있었다 해도, 아주 어릴 적 일입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배현준은 배준형을 흘겨보며 코웃음을 쳤다.

"멍청한 자식!"

철창문이 열리고, 배현준은 여유롭게 자리를 떠났다.

또 다시 뼈저린 치욕을 당한 배준형은 분노에 차서 씩씩거렸다.

유정혁은 포박이 풀린 채 감옥 안으로 내팽개쳐졌다.

단 두 번의 채찍질이었지만 그는 이미 기력을 다 소진한 상태였다.

찢겨 나간 외상뿐만 아니라 뼛속까지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마치 수만 마리의 벌레가 몸을 뜯어먹는 듯한 끔찍한 감각에, 유정혁은 앓는 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

배준형은 실망이 역력한 눈으로 유정혁을 쏘아보더니, 씩씩거리며 감옥을 빠져나갔다.

감옥 밖.

장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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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836화

    성씨는 평소 연씨가 일 처리가 신중하고 빈틈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이토록 어리석은 생각을 품고 있을 줄은 몰랐다.성씨는 주변에 하인들이 있는 것을 의식해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두 아이가 혼인한 지 이제 겨우 일 년 남짓 지났는데, 형님께서는 왜 벌써부터 손자가 없을까 봐 조급해하십니까?"연씨가 망설이며 입을 열었다."하지만 태의가 말하기를……."성씨는 단호하게 연씨의 말을 끊었다."태의가 몸이 상했다고는 했으나 유영이도 몸조리를 하고 있습니다. 오 년이고 십 년이고 지난 뒤에도 후사가 없다면 그때 가서 유영이와 상의해 보십시오. 유영이의 성정이라면 그때는 막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지금 춘향이의 아이가 태어난다면 유영이와 장훈이 사이는 반드시 멀어질 겁니다!"성씨는 기장훈이 무슨 생각으로 그 짧은 시간 안에 다른 여자를 품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성씨는 연씨를 위해 진심으로 충고했다."유영이는 결코 나약한 아이가 아닙니다. 그저 이해득실을 따지고 있을 뿐입니다. 형님, 유영이가 유산했을 때 누구를 불러 사태를 수습했는지, 장공주 전하께서 우리 가문에 어떻게 해주셨는지 잊으셨습니까?"성씨의 잇따른 경고에 연씨는 얼굴이 점점 하얗게 질리며 말끝을 흐렸다."그 정도로 심각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연씨의 눈에는 그저 흔한 첩의 일로만 보였다.유영이 한낱 첩과 시시비비를 가릴 이유도 없고, 정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어미만 내보내면 될 일인데 성씨가 지나치게 호들갑을 떤다고 생각했다.연씨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성씨는 답답한 마음에 자리에 앉아 새로 내온 차를 연거푸 마시며 마음을 가라앉혔다."형님, 우리도 다 같은 여자인데 그 아이가 태어나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말 모르시겠습니까?"연씨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성씨는 직접적으로 말했다."유영이가 그 아이를 볼 때마다 장훈이의 배신을 떠올릴 텐데, 부부의 정이 아무리 깊어도 다 깎여 나가지 않겠습니까?"연씨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말문이 막혔다.성씨는

  • 피안을 거슬러   제835화

    기장훈은 어머니의 말에 담긴 속뜻을 알아차렸다.고요한 밤, 기장훈은 안채로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문을 지키던 시녀는 기장훈을 보고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나리, 군주님께서는 이미 잠자리에 드셨습니다."기장훈은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잠시 입술을 다물었다가 물었다."부인의 상태는 좀 어떠냐?"소리를 듣고 나온 영류가 기장훈에게 다가오자 어린 시녀는 서둘러 물러났다.영류는 예를 올린 뒤 싸늘한 목소리로 답했다."인사 올립니다, 나리. 군주님께서는 본래 몸이 약하신 데다 지난번 유산으로 깊은 병을 얻으셨습니다. 이번 몸살도 말로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밤마다 기침을 하시느라 잠을 이루지 못하십니다."영류의 냉담한 어조에 기장훈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부인이 아직 잠들지 않았셨다면 내가 들어가서 만나보겠다."영류는 길을 비키지 않고 단호하게 가로막았다."군주님께서는 이미 잠드셨습니다. 날이 밝거든 다시 오십시오."시녀들이 연달아 막아서는 바람에 기장훈은 더 이상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그는 안쪽을 한 번 바라본 뒤 한숨을 내쉬며 발길을 돌렸다.기장훈이 떠난 뒤 영류는 미간을 더욱 깊이 찌푸리며 중얼거렸다."정말로 그냥 가 버리시는군."영류가 방 안으로 돌아왔을 때 유영은 침상에 기대앉아 차분한 표정으로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유영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물었다."방금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영류는 있었던 일을 그대로 아뢰었다."군주님, 나리께서 오셨었습니다."유영은 시선조차 들지 않고 남의 일처럼 담담하게 대답만 흘렸다.그 태도에 영류는 차마 더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이튿날 아침 일찍, 유영은 마차를 준비시켜 친정인 장공주부로 나설 채비를 마쳤다.저택을 나서기 직전, 남색 장포 차림의 기장훈이 걸어오며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장공주부에 가려는 것이오? 몸은 좀 괜찮아졌소?"유영은 담담한 표정으로 답했다."어머니께서 제가 아픈 것을 아시고 몇 차례나 사람을 보내 재촉하셨습니다. 오늘

  • 피안을 거슬러   제834화

    한참 동안 침묵하던 기장훈은 연씨를 바라보며 물었다."어머니, 유영이를 찾아가 보셨습니까?"연씨는 사실대로 답했다."찾아가 보기는 했으나 춘향이와 아이 이야기는 꺼내지 않았다."유영이 아파서 누워 있는 마당에 괜히 자극했다가 일을 그르칠까 봐 기회를 엿보고 있던 참이었다.연씨는 이상한 낌새를 눈치채고 물었다."왜 그러느냐? 유영이가 네게 무슨 말을 하더냐?"기장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연씨는 덜컥 겁이 나 다급히 물었다."그, 그래서 유영이가 뭐라고 하더냐?"기장훈은 유영의 고요하던 눈빛을 떠올리며 답했다."그 아이가 제 아이가 맞느냐고 딱 한마디만 묻고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모든 것에 미련을 버린 사람처럼 담담하던 눈빛이었다.기장훈 스스로도 유영이 이 아이를 받아들일지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연씨가 의아해하며 다시 물었다."화를 내지도 않더냐?"기장훈은 짧게 답했다."전혀 내지 않았습니다."연씨는 미간을 찌푸렸다.보통 여인이라면 크게 소란을 피우지는 않더라도 속으로 토라지거나 부군에게 원망의 말이라도 할 법한데, 유영은 끝까지 흐트러짐 없이 차분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귀한 가문에서 자란 며느리의 속내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곁에 있던 손씨 어멈이 조심스럽게 끼어들었다."혹시 군주님께서도 그 아이를 남기고 싶어 하시는 것은 아닐까요?"기장훈은 눈빛이 흔들렸고, 연씨는 눈을 반짝이며 반색했다."그럴 수도 있겠구나! 유영이가 그 아이를 품어 주지 못할 것도 없지. 본래 사람을 포용하지 못하는 성정이었더라면 처음부터 네게 춘향이를 들여보내지도 않았을 것이다."춘향을 내보내자고 먼저 말을 꺼낸 것도 유영이 아니라 기장훈이었으니, 유영의 도량이 넓다는 증거라고 생각했다.연씨는 한결 마음이 놓인 듯 말을 이었다."일이 벌어진 지 벌써 며칠이 지났는데도 유영이가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정말로 그런 뜻이 있는지도 모르겠구나."연씨는 기장훈에게 신신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유영이가 아무리

  • 피안을 거슬러   제833화

    손씨 어멈은 고개를 끄덕였다.영류가 방으로 돌아왔을 때 유영은 이미 몸을 일으켜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유영은 돌아온 영류에게 담담하게 물었다."춘향이는 어찌하고 있느냐?"영류가 답했다."군주님, 춘향이는 당연히 군주님의 말씀을 따르고 있습니다. 감히 허튼짓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유영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내 말을 들을 생각이었더라면 회임한 지 두 달이 되도록 숨기다가 부군에게 먼저 알리지도 않았을 테지."그날 유영이 기장훈에게 그 일을 물었을 때, 기장훈은 조금도 놀라지 않았다.이미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는 뜻이었다.게다가 춘향은 장공주부에서 온갖 일을 겪으며 자란 영리한 시녀였다.본인이 회임했는지 아닌지를 몰랐을 리가 없었다.유영은 두 손에 힘을 주었다.처음 기장훈에게 첩을 들여보내 어른들의 성화를 잠재우자는 말이 나왔을 때, 스스로 가겠다고 자청한 것이 바로 춘향이었다.줄곧 곁에 두고 부리던 시녀가 딴마음을 품으리라고는 유영도 생각지 못했다.춘향은 주인인 유영을 대놓고 기만한 셈이었다.영류는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얼굴로 물었다."군주님 말씀은 춘향이가 그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는 뜻입니까?"유영은 부정하지 않았다.영류는 분을 참지 못하고 목소리를 높였다."이런 배은망덕한! 장공주부에서 키워 주지 않았더라면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를 텐데, 감히 군주님을 배신하다니요! 군주님께서 명만 내리시면 제가 당장 그 아이를 지워 버리겠습니다……."유영은 고개를 저으며 말을 끊었다."사람을 잘못 본 내 불찰이다. 군주의 신분으로 한낱 시녀를 짓밟는 것은 내 품격만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 아이를 남기고 싶어 하는 것은 춘향의 생각일 뿐, 내가 용납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다."유영은 춘향 따위를 상대로 직접 손을 쓸 생각이 없었다.오히려 시댁 사람들이 춘향의 뱃속 아이를 지키기 위해 어디까지 추태를 부리는지 똑똑히 지켜볼 생각이었다.유영은 이미 마음을 비운 듯 담담하게 말했다."춘향이 하나를 없앤들

  • 피안을 거슬러   제832화

    온통 춘향에게만 신경이 쏠린 연씨는 더 이상 본가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기정혁이 오늘도 본가에 남았다는 전갈을 받고도 알았다는 말만 남긴 채 처소로 돌아갔다.연씨는 밤새 뒤척이며 한숨도 자지 못했다.날이 밝자 서두르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오전까지 기다린 그녀는 하인들을 거느리고 유영의 처소로 향했다.손씨 어멈이 직접 문을 두드렸다.잠시 후 시녀가 문을 열어주었다.손씨 어멈 뒤에 서 있는 연씨를 본 영류는 흠칫 놀랐다.유영이 예상했던 대로 연씨가 직접 찾아온 것이다.손씨 어멈은 영류에게 각별히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부인께서 군주님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을 듣고 문병하러 오셨네."영류는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린 뒤 길을 비키며 말했다."군주님께서는 찬 바람을 쐬어 몸살이 나셨는데, 태의가 지어 준 탕약을 몇 첩 드시고 조금 나아지셨습니다. 부인, 안으로 드십시오."연씨는 고개를 끄덕이고 영류의 안내를 받아 안채로 들어섰다.방 안에 감도는 약 냄새에 연씨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병풍 뒤로 돌아가니 침상에 기운 없이 누워 있는 유영이 보였다.연씨는 안쓰러운 표정으로 다가가 물었다."유영아, 어쩌다 이렇게 병이 났느냐? 몸은 좀 어떠냐?"유영은 손수건으로 입가를 가리고 가볍게 기침하며 답했다."어머니, 가벼운 몸살이니 괜찮습니다. 여기까지는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곁에 있던 손씨 어멈이 대신 말을 받았다."부인께서 며칠 동안 군주님을 뵙지 못해 걱정이 되셔서 오셨습니다."연씨는 고개를 끄덕이며 유영의 맞은편에 앉았다.창백한 유영의 얼굴을 본 연씨는 한숨을 내쉬며 춘향의 이야기 대신 본가 소식을 꺼냈다."네 시아버지는 장천이를 해친 범인을 기어이 찾아내겠다며 시녀 몇 명을 잡아들여 심문하고 있단다. 네 셋째 삼촌의 병세도 위중하고, 노부인께서도 다시 자리에 누워 날마다 탕약을 드시고 계신다더구나."연씨의 목소리에는 본가에서 미리 분가하여 그 복잡한 일에 휘말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은근히 배어 있었다.유영은

  • 피안을 거슬러   제831화

    유영 군주는 그 말을 듣고 입꼬리를 올리며 한결 후련해진 표정으로 말했다."현왕비의 말씀이 꼭 제 마음 같습니다."유영은 이미 결심을 굳힌 듯했다.유지영은 벗을 아끼는 마음에 진심으로 말했다."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시면 언제든 사람을 보내 저를 찾으십시오."유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그렇게 하겠습니다."유지영을 배웅한 뒤, 유영은 의자에 앉아 손끝으로 탁자를 두드리며 생각에 잠겼다.잠시 후, 그녀는 곁에 있던 시녀에게 낮게 몇 마디를 지시했다.해 질 무렵, 춘향이 회임했다는 소식이 연씨의 귀에 들어갔다.연씨는 깜짝 놀라며 물었다."춘향이가 아이를 가졌다고?"손씨 어멈은 조심스럽게 목소리를 낮추어 아뢰었다."부인, 춘향은 장공주부에서 데려온 시녀이니 군주님께서도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그 말에 연씨의 마음에 피어오르던 기쁨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연씨는 아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서출이 장남인 것이 안타깝구나. 유영이는 지난번에 배를 찔려 태의가 말을 아끼기는 했으나, 내가 보기에는 앞으로 아이를 갖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장훈이의 대를 끊어지게 둘 수는 없지 않느냐."요 며칠 본가에 사건이 끊이지 않아 지쳐 있던 연씨에게 오늘 들려온 소식은 유일하게 반가운 일이었다.연씨는 나직이 혼잣말을 중얼거렸다."춘향이는 유영이가 직접 들여보낸 첩이다. 이미 아이가 생겼으니 낳게 한 뒤 유영이의 슬하에 두고 키우면 될 일이다. 훗날 유영이가 적자를 낳더라도 서출이 앞길을 막지는 못할 테고, 끝내 아이를 갖지 못한다면 이 아이가 유일한 희망이 될 테니 말이다."연씨는 어떻게든 그 아이를 남기고 싶었다.손씨 어멈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장공주 전하께서 가만 있지 않으실까 봐 걱정입니다."조령 장공주의 성정을 떠올린 연씨는 다시금 마음이 무거워졌다.유영이 유산한 지 두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첩이 회임을 했으니, 이 아이를 살릴지 말지는 장공주의 말 한마디에 달려 있었다.춘향의 가족들이 모두 장공주의

  • 피안을 거슬러   제2화

    종령각 이층 누각.유지영은 부스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유난히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회랑 아래에서는 하인들이 정원을 단장하며 내일 있을 성년례가 떠들썩할 거라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아픔이 몰려왔고, 곧바로 이 모든 게 꿈이 아님을 직감했다.그녀는 죽임을 당한 뒤 성년례 하루 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이때 밖에서 고씨 어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부인께서 대전으로 들라 하십니다. 경성에서 사람이 온 듯합니다.”전생의 배준형도 성년

  • 피안을 거슬러   제1화

    7월의 장안 거리는 굉장히 시끌벅적했다.마차 한 대가 성문 입구에서 멈추었다.털썩!유지영은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마대에 담겨 바닥에 내던져졌다. 온몸으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특히 하반신에서는 찢어질 듯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다.“읍….”지나가던 백성들이 소리를 듣고 마대를 풀어주었다.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사내의 옷가지를 걸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하얗고 가는 목덜미 아래에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이 사람은 정왕 세자비 아닌가?”누군가가 유지영을 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옷매무새가 이 모양인 것을 보아 불결

  • 피안을 거슬러   제10화

    동금은 원래 표사의 딸이었으나 부모를 잃은 뒤 전당포에 팔려간 데다가, 전생에서는 실족사로 죽기까지 했다.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생에 유지영을 배신하지는 않았다.매일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송씨에게서 문서를 기어코 받아낸 것을 보면 눈치도 빠르고 수완도 있는 듯했다.나머지는 아직 관찰 대상이었다.“오늘부터 종령각을 배신하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유지영은 근엄한 표정으로 엄명을 내렸다.나머지 사람들은 주향 일당이 내쳐지는 것을 보았기에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방으로

  • 피안을 거슬러   제9화

    “선주는 참 복도 많아요. 이 집안의 복덩이라니까요.”이내 셋째 부인이 아부를 떨기 시작하자, 송씨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지영아, 그동안 경왕 세자의 평판이 어떤지 너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혼인한 뒤에는 조용히 지낼 수 있도록 네가 잘 붙들어야 한다. 어차피 훗날 경왕부 작위를 잇게 되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을 테니, 제발 사고를 쳐서 우리 집안에 피해가 가는 일만은 없게 하거라.”유지영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당장 침소로 돌아가 한숨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다행히도 노부인이 이제 돌아가도 좋다는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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