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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을 거슬러의 모든 챕터: 챕터 361 - 챕터 370

376 챕터

제361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머리를 쥐어짜 보았지만 운연이 누구인지 도통 떠오르지 않았다.당학은 미간을 찌푸린 채 허리를 굽혀 향낭을 주워 들더니, 묻은 먼지를 털어내고는 조심스럽게 품에 넣었다.그 유난스러운 모습에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욱 부풀어 올랐다."이 운연이라는 소저는 어느 집 따님이오?""아주 보물단지처럼 애지중지하는군.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몇 년인데, 마음에 품은 정인이 생겨도 말 한마디 없다니. 너무 야박하지 않소."사람들은 번갈아가며 당학에게 캐물었지만, 당학은 끝내 아무 대답도 들을 수 없었다.그가 그럴수록 사람들의 호기심은 더 커져갔다.하지만 당학은 굳게 입을 다문 채, 당황한 표정으로 사람들에게 변명하듯 둘러댔다."집안에 일이 좀 있어서, 난 이만 가보겠네."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그가 발길을 돌리자마자, 무리 중 한 사람이 이마를 탁 쳤다."운연… 어쩐지 귀에 익다 했더니, 곽씨 가문의 적녀가 아니오?"그 말에 사람들도 잇따라 무릎을 쳤다."알고 보니 당 공자가 마음에 품은 이가 곽씨 가문의 적녀였구려.""제법 잘 어울리는 한 쌍이오. 허나 안타깝게도 당 공자의 신분이 조금 처지긴 하지. 아무리 총애를 받는다고 한들 결국엔 서출 아니겠소."다음 날 아침, 추적추적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배현준은 이른 아침부터 조회에 참석하러 입궁했고, 유지영은 여느 때처럼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은 뒤 아침상을 받았다.식사를 마친 뒤, 운청이 바깥의 소식을 전했다."셋째 나으리와 지란 아가씨는 무사히 장례를 치렀고, 셋째 공자 역시 천부 서원에서 퇴학을 당했다고 합니다. 깨어나신 유씨 노부인께서는 둘째 나으리네 처소에 머물고 계신데, 유정랑이 하루가 멀다 하고 그 곁을 지키며 수발을 들고 있다 하네요."유지영은 그 말을 듣고 담담한 미소를 지었다.유씨 노부인에게 효도를 다하며 존재감을 줄이면서 평판을 조금이나마 만회하려는 속셈일 것이다.유정랑 역시 장차 과거를 치러야 하니, 분명 재기할 기회를 엿보고 있을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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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임 태비의 말에 배유리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그 말씀은, 형님이 고의로 옥패를 깼다는 뜻입니까?"임 태비는 당장이라도 길길이 날뛸 것 같은 배유리를 보고 황급히 말을 돌렸다."그저 내 짐작일 뿐이다. 당씨 가문과의 혼사가 그리 쉽게 성사될 리 없으니, 너는 우선 마음부터 가라앉히거라."말을 마친 그녀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경왕비를 힐끗 쳐다보았다.조금 전 배유리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경왕비는 그 속뜻을 단박에 알아들었다."할머니, 예전에는 당윤 공자가 집안에서 홀대를 받는다며 탐탁지 않다 하셨지만, 이제는 의용후가 되어 폐하의 총애를 받는 데다 태후 마마의 생명의 은인이기까지 한데…."배유리는 이 혼사를 포기할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녀는 다급히 임 태비의 곁에 달라붙어 애교를 부렸다.임 태비는 배유리의 손등을 토닥였다."유리야, 이 할미가 널 돕기 싫어서 이러는 게 아니다. 의용후의 혼사는 이제 내 선에서 어찌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태후께서 친히 혼처를 정해주신다 하셨으니, 네 형님이 한 말도 영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만약 당윤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있었다면, 그날 진작에 혼사가 정해졌을 것이다.누가 보아도 당윤은 이 혼인을 원치 않았다.이런 시국에 누가 감히 나서서 당윤에게 배유리와 혼인하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우선 상황을 더 지켜보자꾸나. 기회가 온다면 이 할미는 반드시 네 편에 설 테니."임 태비는 부드럽게 손녀를 달랬다.배유리가 입술을 삐죽였다."형님이 말 한마디만 거들어 주면 될 일을, 기어코 제 뜻을 들어주지 않으려 하잖아요. 그저 태후 마마께서 뒤를 봐주신다고 아무도 안중에 없는 거지요.""유리야!"임 태비는 돌연 배유리의 손목을 꽉 움켜쥐며 매서운 얼굴로 경고했다."네가 정녕 이 혼사를 성사시키고 싶다면 지영이의 심기를 건드려선 안 된다. 그저 살살 비위를 맞추어 주거라. 그 아이는 좋게 말하면 통할지 몰라도 강압적으로 뭘 강요하면 절대 꺾이지 않는 성정이다. 굽히고 들어가서 네게 해가 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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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담혜정, 그것은 유지영 양모의 이름이었다."다 지나간 일이지요."서 태후는 유지영의 손을 더욱 꽉 쥐었다. 그녀의 눈빛에는 숨기지 못한 애정이 듬뿍 담겨 있었다."생사의 문턱을 한 번 넘나들고 나니, 이 이리 허전할 수가 없습니다. 매일 자녕궁을 지키고 앉아 있자니 늘 사람의 온기가 그립지요.""어마마마께서 젊고 생기 있는 아이들을 원하신다면, 짐이 대신들의 가문에서 참한 낭자들을 몇 골라 입궁시키겠습니다. 여러 왕부에도 어린 군주와 공자들이 있지 않습니까."서 태후는 고개를 저었다."하나같이 나만 보면 고양이 앞의 쥐처럼 벌벌 떨며 숨기 바쁘거나, 그게 아니면 입에 발린 소리로 아부나 떨며 내게서 뭐라도 하나 더 얻어갈 궁리만 하니, 보고 있으면 도리어 심란해집니다."그 말에 황제는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이어서 서 태후는 당윤의 안부를 물었다."당 공자의 부상은 좀 어떻습니까? 아직 한창때인 아이가 병이라도 달고 살게 될까 걱정입니다.""어마마마께서는 심려치 마십시오. 짐이 태의원에 각별히 일러두었습니다."가벼운 담소를 나누던 서 태후는 바로 본론을 꺼냈다. 당윤의 짝을 찾아주고 싶다는 내용이었다."궁에 사람 발길이 끊긴 지도 꽤 되었지요. 마침 어화원에 꽃이 만발하였으니, 꽃맞이를 핑계로 연회를 열어 경성에 아직 혼처가 정해지지 않은 규수들을 입궁시킬까 합니다."유지영은 깜짝 놀라 눈꺼풀을 흠칫 떨었다.서 태후가 이리 단도직입적으로 나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곁눈질로 황제의 안색을 살폈다.황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며 한술 더 떠서 제안했다."며칠 후에 하느니 당장 내일로 하시지요. 어마마마께서 당윤의 혼사를 하명하시려면, 마땅히 당 부인도 궁으로 불러 당 공자가 마음에 둔 여인이 있는지, 혹은 어떤 낭자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물어보심이 좋겠습니다.""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황상!"서 태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황제는 곧바로 상 내관을 시켜 연회 초청장을 준비하고 연회장을 배치하라 지시했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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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경왕부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 무렵이었다.각 저택으로 태후의 초대장이 전달되었고, 그중에는 곽운연도 포함되어 있었다. 운청이 보고했다."조령 장공주부의 유영 현주도 초대받았다고 합니다. 태후 마마께서 의용후에게 혼사를 하명하시겠다 공표하니, 중매쟁이들이 당씨 가문의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고 있답니다."유지영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운청을 바라보았다.운청은 그 뜻을 단박에 알아차리고 입을 열었다."마마의 분부대로 곽 낭자를 찾아가 손수건을 달라고 청했습니다. 마마께서 필요하시다 하니 곽 낭자는 두말않고 선뜻 손수건 세 장을 내어주시더군요. 그러고는 그동안 자신이 직접 수놓았던 손수건과 향낭을 모조리 찾아내 불태워 버렸습니다.""마마의 지시대로 그 손수건은 춘향에게 건넸습니다. 지금쯤 당씨 가문 대문 앞에서 당 공자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 있을 것입니다.""춘향은 지금 자신이 그 운연이라며, 당 공자에게 첫정을 주었다고 떼를 쓰고 있습니다. 마침 거리에 오가는 사람이 많아 구경꾼도 제법 모였습니다."운청이 은밀히 덧붙였다."춘향에게는 이미 가짜 회임약을 먹여두었습니다."그 말에 유지영은 풋 하고 실소를 터뜨렸다. 당학이 뻔뻔하게 곽운연의 명성을 흠집 내려 했으니, 그녀 역시 그가 한 그대로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내일 연회만 무사히 넘기면 태후가 혼사를 하명할 터였다."계속 지켜보다가 새로운 소식이 있으면 즉시 보고하거라."운청은 고개를 끄덕였다.같은 시각, 당씨 가문 대문 앞.춘향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애처롭게 호소하고 있었다. 그녀는 한 손으로 허리를 감싸고, 다른 한 손으로는 손수건을 쥔 채 연신 눈물을 훔쳤다."공자님, 운연은 정말 갈 곳이 없습니다. 부디 저를 거두어 주십시오.""제 배 속에 공자님의 핏줄이 자란 지 벌써 다섯 달이나 되었습니다."길을 오가던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는 춘향을 보며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당 공자가 겉으로는 번듯하고 예의 바른 척하더니, 알고 보니 아주 몹쓸 바람둥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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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당 부인이 돌아왔다는 소식 대신, 춘향이 독을 먹고 자결했다는 비보가 먼저 들려왔다."죽었다고?"당학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안색이 흙빛으로 변한 그는 서둘러 밖으로 향했다.마당에는 춘향이 쓰러져 있었다. 치맛자락 아래로는 피가 쉴 새 없이 흘러 나왔고, 입에서도 검붉은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는 눈도 감지 못한 채 원통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죽어 있었다."공자님, 저희는 그저 가벼운 문초만 했을 뿐인데, 저 계집이 돌연 입에 머금고 있던 독을 깨물고 자결해 버렸습니다."시종이 사시나무 떨듯 떨며 아뢰었다.당학의 시선이 춘향의 주검에 싸늘하게 꽂혔다. 어째서 사전에 저 계집의 몸을 샅샅이 뒤져보지 않았단 말인가. 뼈아픈 실수였다."제기랄!"당학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꼼짝없이 누명을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변명할 길조차 완전히 막혀버렸다.그때 회랑의 나무 바닥 위로 바퀴가 굴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잠시 후, 당윤이 바퀴 달린 의자에 앉아 이쪽으로 다가왔다. 그는 비릿한 미소를 띤 채 당학을 쏘아보았다."형님도 참으로 독하고 매정하십니다. 한때나마 형님을 모셨던 사람이거늘, 어찌 그리 매몰차게 독살할 수 있단 말입니까?""이 짐승만도 못한 놈! 그 입 다물지 못할까! 네놈이 뒤에서 농간을 부려 네 형을 함정에 빠뜨린 것이 아니냐!"당 대인이 버럭 고함을 지르며 달려왔다. 그의 눈에는 당윤을 향한 일말의 애정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당윤이 중상을 입어 파리한 안색을 하고 있는데도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당윤은 콧방귀를 뀌었다."아버지, 제가 대체 무슨 이유로 형님을 모함한단 말입니까?"당학이 나서서 호통치려는 당 대인을 만류하며 말했다."아버지, 집안의 치부를 밖으로 드러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일은 우리끼리 은밀히 해결하는 것이 낫습니다. 더구나 아우는 이제 어엿한 후작입니다. 함부로 홀대해서는 안 됩니다."당윤의 처지가 예전과 다르니 함부로 심기를 건드려서는 안 된다는 당부였다.말을 마친 당학은 당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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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나는 머지않아 이 저택을 나가 따로 살림을 차릴 터이니, 이 집안의 모든 일은 나와 무관하지요. 그러니 굳이 내 앞에서 얕은 수를 부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말을 마친 당윤은 시종에게 손을 저어 의자를 밀라 지시했다.그 뒷모습을 보며 당학은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말했다."아우 네 말이 맞다. 운연 낭자가 하혈을 하고 죽었으니, 마땅히 후하게 장례를 치러주어야지."말을 마친 그는 호위무사들에게 춘향의 시신을 내보내라 지시했다."학아, 정신 차리거라! 저 계집은 보는 눈이 그토록 많은 데서 이 집으로 들어왔다. 헌데 그리 허망하게 죽어 나간다면, 네가 어떤 오명을 뒤집어쓸지 몰라서 그러느냐?"당 대인은 속이 타들어가 미칠 지경이었다."너는 과거도 치러야 하고, 아직 혼처도 정해지지 않았다!"당학은 흥분한 당 대인을 가로막았다. 억울해도 별다른 수가 없었다.춘향의 시신은 초저녁에 밖으로 들려 나갔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은밀히 춘향을 빼돌렸고, 결국 무덤에는 빈 관만이 묻혔다.한편, 마차 한 대가 경성 밖을 향해 질주하더니 어둠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다음 날.궁에서 꽃맞이 연회가 열렸다.그와 동시에 저잣거리에는 어젯밤 당 공자의 정인이 당씨 저택에서 죽어 나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사람들은 당학이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자라며 수군거렸다.이른 아침, 조령 장공주가 돌연 당씨 저택에 들이닥쳤다. 그녀는 잔뜩 독이 오른 얼굴로 대청 상석에 앉아 다짜고짜 류씨와 당학부터 불렀다.두 사람은 황급히 대청으로 왔다.조령 장공주는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호통쳤다."대체 이게 다 무슨 상황이냐? 잘나가다가 어찌 이런 더러운 시비에 휘말려! 내가 이미 곽씨 가문의 어르신들께 언질까지 해두었거늘. 당학, 네놈 때문에 내 체면이 엉망이 되었단 말이다!"류씨가 다급히 해명하려 했으나, 당학이 그녀를 가로막았다.그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장공주 전하, 부디 저를 벌하여 주십시오. 모든 것은 제 불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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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궁중 연회장.눈앞에 펼쳐진 매화림은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들어 있었고, 맑은 향기가 코끝을 감쌌다. 주변 정자에서는 악사들이 가야금을 뜯고 있었고, 사람들은 눈을 밟으며 매화를 감상하거나 회랑 아래 서서 한가로이 담소를 나누었다.그중에서도 단연 인기 있는 이는 당 부인이었다. 그녀가 연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들었다."당 부인, 둘째 공자의 부상은 좀 어떻습니까?""큰 지장은 없는 겝니까?""우리 집에 귀한 약재가 제법 있으니, 부족한 것이 있거든 언제든 말씀하세요."부인들은 앞다투어 한마디씩 거들며 각별한 호의를 보였다. 당 부인은 쏟아지는 환대에 어쩔 줄 몰라 했다."당 부인도 이제야 고생 끝에 복을 누리게 되셨군요. 그 오랜 세월 서자와 첩실에게 짓눌려 지내시더니, 이제 그 누가 감히 당윤 공자가 당학 공자만 못하다 말하겠습니까?""그러니까 말입니다!"부인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춘향의 죽음으로 이어졌다."당학 공자는 겉으로는 점잖고 문턱 높은 선비인 척하더니 속은 어찌나 잔인하고 매정하던지. 저택에 발을 들이자마자 사람을 때려죽이지 않았습니까. 불쌍하기도 하지, 배 속에 아이까지 품고 있었다던데.""나무아미타불, 참으로 끔찍하군요.""서출 장남 따위가 점잖으면 얼마나 점잖겠어요?"이 자리에 모인 이들은 대부분 정실 부인이었다. 그들이 집안에서 가장 경멸하는 존재가 바로 첩실과 서출들이었다.당 부인은 그저 미소만 지을 뿐, 당학에 대한 험담은 한 글자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그때, 어린 내관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장공주 전하 드십니다!"사람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조령 장공주는 유영 현주를 대동하고 안으로 입장했다. 열다섯 살이 된 유영 현주는 어머니의 미모를 빼닮아 청초하고 아름다웠으며, 온몸에서 귀티가 흘렀다."장공주 전하께 문안 올립니다."사람들이 무릎을 굽혀 예를 갖추었다.조령 장공주는 곧장 당 부인 앞까지 다가와 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속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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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조령 장공주가 섣불리 나서서 태후의 심기를 거스른다면, 자칫 태후가 유영 현주를 화친 명목으로 타국에 시집보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머릿속으로 빠르게 득실을 헤아린 조령 장공주는 은근슬쩍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고는 되레 당 부인의 너그러움을 칭찬하고 나섰다."집안의 안주인이 이토록 어질고 너그러우니, 저리 출중한 장남을 길러냈겠지. 당학은 문에 능하고 당윤은 무에 능하니, 참으로 복받은 집안 아닌가."눈치 빠른 이들은 장공주가 돌연 입장을 바꿨다는 사실을 단박에 알아챘다. 조금 전까지의 그 살벌했던 태도와는 확연히 달랐다.한창 담소가 이어지던 중, 소 상궁이 다가와 조령 장공주와 유영 현주를 안으로 청했다. 조령 장공주는 살짝 긴장한 얼굴로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 부인 역시 그들과 함께 안으로 불려 들어갔다.대전 안.서 태후는 기분이 퍽 좋아 보였다. 세 사람이 들어서는 것을 본 그녀는 쥐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만면에 온화한 미소를 띠었다."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지. 우리 유영이가 벌써 이리 컸구나. 네가 어릴 적 내 다리를 붙잡고 훌쩍거리며 울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서 태후는 조령 장공주를 향해 다정하게 덧붙였다."역시 장공주가 복받았구나."하지만 조령 장공주는 편하게 미소 지을 수 없었다."태후 마마, 과찬이십니다."가벼운 덕담이 오간 후, 서 태후가 슬쩍 본론을 꺼냈다."궁이 이토록 북적거린 지도 참으로 오래되었지. 풋풋하고 어여쁜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지는구나."태후의 시선이 돌연 당 부인에게로 향했다."윤이의 부상은 좀 어떤가?"친근한 호칭에서 당윤을 향한 태후의 각별한 총애가 고스란히 묻어났다.당 부인은 황송한 얼굴로 조심스레 아뢰었다."태후 마마의 염려 덕분에 이제 의자에 앉을 수 있을 만큼 호전되었습니다. 하루가 다르게 기력을 회복하고 있습니다."서 태후는 미소 띤 얼굴로 다시 물었다."윤이도 이제 혼인을 치를 나이가 되었지. 내 일찍이 그 아이의 혼처를 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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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연회가 채 시작되기도 전에 건양제를 모시는 내관이 다가와 아뢰었다."태후 마마, 곽씨 가문 어르신들께서도 이 혼사를 흔쾌히 승낙하셨다고 합니다. 흠천감에서 길일을 택하였는데, 오는 5월 초여드레가 혼례를 올리기에 가장 좋다고 합니다."서 태후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당 부인을 돌아보았다."앞으로 반년이나 남았으니, 그때쯤이면 윤이도 몸을 다 추스르겠지."당 부인은 여전히 황송한 기색으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흠천감에서 정한 날이니, 5월 초여드레로 정하는 게 좋겠군. 그날 내 친히 가서 축배를 들겠네!"서 태후의 얼굴에 환한 웃음꽃이 피었다."태후 마마께서 친히 행차해 주신다면 당씨 가문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것입니다."이로써 두 사람의 혼사가 확정되었다.서 태후는 곁에 있던 유영 현주에게 시선을 돌리며 손짓했다.유영 현주가 사뿐히 다가와 미소 지었다."태후 마마.""오늘은 수수하게 꾸몄구나."서 태후는 유영 현주의 손을 다정하게 맞잡더니, 자신의 손목에서 최상급 양지백옥 팔찌를 빼서 유영의 가늘고 하얀 손목에 끼워주었다.유영 현주는 무릎을 굽혀 감사를 표했다.서 태후는 몇 마디 더 다정하게 묻고 나서야 손을 놓아주었다. 장공주의 곁으로 돌아온 유영 현주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입궁하기 전, 조령 장공주는 행실을 조심하고 절대 성질을 부려서는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었다.유영 현주는 그 당부를 머릿속에 단단히 새겨두고 있었다.담소가 오가던 중, 소 상궁이 나서서 매화림에서 부인과 규수들이 태후를 기다리고 있다고 아뢰었다.그제야 서 태후는 기분 좋게 자리에서 일어섰다."궁이 이토록 붐빈 적이 참으로 오랜만이군. 다들 격식 차릴 것 없이 나가서 즐기자꾸나."일행은 서 태후를 따라 매화림으로 향했다.매화림 곳곳에는 시구 맞추기나 수수께끼 등 여흥거리가 마련되어 있었다.서 태후가 나타나자 사람들은 앞다투어 다가와 예를 갖추었다. 서 태후는 가볍게 손을 내저었다."오늘은 다들 예의 차리지 말고 마음껏 즐기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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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상념에 잠겨 있을 때, 무리 속에서 축하 인사가 들려왔다."당 부인, 축하합니다.""당 부인 참으로 복이 많으시군요."경왕비는 미간을 찌푸린 채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다. 연신 축하하는 소리가 들리자 그녀는 곧바로 시녀를 시켜 알아보게 했다. 잠시 후 시녀가 돌아와 고했다."태후 마마께서 당윤 공자와 곽씨 가문 적녀에게 혼사를 하명하셨답니다. 오는 5월 초여드레가 혼례일이라 합니다.""뭐라?"배유리가 앙칼지게 언성을 높였다.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한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 서 있는 곽운연을 독기 어린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녀가 막 발걸음을 옮기려는 찰나, 경왕비가 낚아채듯 앞을 가로막았다."이곳은 궁중 연회장이다. 대체 무슨 짓을 벌이려는 게냐!"배유리는 분통이 터져 이를 꽉 깨물었다."어머니, 곽운연 저 요망한 계집이 당윤 공자를 홀렸습니다. 그 옥패의 주인이 바로 저년입니다. 제가 직접 공자의 방에서 찾아냈단 말입니다!"언성이 제법 컸던 탓에 즉시 사람들의 이목이 쏠렸다.부인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배유리를 쳐다보았다.당 부인 역시 마찬가지였다.경왕비는 덜컥 겁이 났다. 그녀는 당황하여 배유리의 팔을 꼬집어 입을 다물게 하려 했으나, 이미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배유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서 태후의 앞까지 달려가 털썩 무릎을 꿇었다."태후 마마, 저는 이 혼사를 반대합니다. 곽운연은 품행이 단정치 못하여 의용후의 부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부디 명을 거두어 주십시오."배유리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채 호소했다.연회장을 채우던 웃음소리와 축하 인사가 일순간 뚝 끊겼다.곽운연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배유리를 바라보다가, 불안한 기색으로 서 태후를 살폈다.서 태후는 배유리를 차갑게 내려다보며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너는 누구냐?"경왕비는 황급히 나서서 예를 갖추었다."태후 마마, 제 여식 배유리입니다. 경왕부의 넷째 딸이지요."설명을 듣고도 서 태후는 대수롭지 않은 듯 차가운 코웃음을 쳤다."그래, 네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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