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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7화

Author: 레몬과 향수
당응혜는 난처한 기색을 띠며 시녀를 향해 호통을 쳤다.

"네가 잘못 본 것 아니냐? 그럴 리가 없다. 명색이 왕부의 유일한 적녀란 말이다!"

시녀는 억지로 고개를 조아리며 대답했다.

"아가씨, 틀림없는 쉰 상자였습니다."

쉰 상자의 혼수라니, 왕부 적녀의 신분에 걸맞지 않게 참으로 볼품없는 수준이었다.

"틀림없이 따로 챙겨둔 게 있을 것이다! 장원이나 상점의 땅문서, 은표 같은 걸 어찌 다 함에 담겠느냐."

당응혜가 서둘러 수습하려 들었다.

그때 누군가가 넌지시 일깨웠다.

"경왕부에는 경성에 남은 점포가 없을 텐데요. 십수 년 전 경왕께서 일가를 이끌고 봉지로 내려가실 때, 경왕부 저택 하나만 남기고 명의로 된 재산은 모조리 처분하지 않으셨습니까. 지금 있는 재산은 모두 세자께서 새로 마련하신 거고요."

그 말에 당씨 가문 사람들의 안색은 한층 더 험악해졌다.

"설마 영지에 있는 점포나 장원을 혼수로 내준 건 아니겠지요?"

누군가 분위기를 무마하려 애썼다.

당씨 가문이 분통을 터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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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피안을 거슬러   제488화

    방비원.유지영은 한 손을 탁자에 얹고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초조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연신 문밖을 힐끗거렸다."세자비 마마, 운민이 알아보러 갔으니 곧 소식이 올 겁니다."동금이 찻잔을 올리며 말했다.오후에 안창준이 명언을 끌고 가자마자 운민을 뒤따라 보냈다.벌써 두 시진이 지났다.마침내 이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유지영은 벌떡 일어나 다급히 돌아오는 운민을 바라보았다.방에 들어선 운민이 예를 갖추려 하자, 유지영이 손을 내저었다."인사는 됐다. 상황은?""마마, 저는 신형사에 가지 못했습니다."운민이 미간을 찌푸렸다."문을 나서자마자 미행이 붙었습니다. 상대도 무공을 익힌 자라 떼어내는 데 애를 먹었습니다. 자칫 꼬리를 밟힐까 염려되어 날이 어두워지기를 기다렸다가 움직여야 했습니다."유지영의 미간이 좁혀졌다.누가 운민의 뒤를 밟았단 말인가?운민이 말을 이었다."마마, 배이수가 태후 마마께 졸라 좌시승 자리를 꿰차고 신형사로 가 이번 사건을 심문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북명연이 사람을 보내 신형사 입구를 지키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유지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내 표정이 풀어졌다.이 중요한 시국에 좌시승 자리를 탐내다니, 배이수도 참으로 어리석기 짝이 없었다!*밤이 깊어서야 배현준이 돌아왔다.예상대로 그는 그녀가 기다리던 소식을 들고 왔다.배현준은 그녀를 이끌어 침상에 앉혔다."형님 몸에 충독이 심어져 있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마다 발작을 일으키는데, 한번 발작하면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하는구나. 게다가 형님의 소꿉친구가 북명연의 손에 인질로 잡혀 있다.""소꿉친구요?"유지영은 이를 뿌드득 갈았다. 북명연에 대한 혐오감이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 그녀는 깊게 숨을 들이마시며 물었다."그자가 북명연의 곁에 있습니까?"배현준은 고개를 저었다."이미 북신으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게 했다."오늘 들은 소식은 그녀에게 결코 좋은 징조가 아니었다.이번 기회에 오라버니를 빼내려 했건만, 몸에는 충독

  • 피안을 거슬러   제487화

    소 상궁은 한숨을 내쉬었다."북신 육공주의 속셈이 불순하여 장군가의 적녀들 사이를 여러 번 이간질했는데도, 군주께선 남의 말만 믿고 휘둘리셨으니 태후 마마께서 크게 실망하신 겁니다."실망하셨다는 말 한마디에 이연령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태후 마마께선 군주를 친자식처럼 애지중지 가르치셨습니다. 경세자비가 아무리 옛 벗의 딸이라 한들 감히 군주와 견주겠습니까? 그런데도 군주께선 질투심에 눈이 멀어 남에게 이용당하셨습니다. 대국을 보는 눈이 이리도 없으시니, 태후 마마께서 그토록 노하신 겁니다."소 상궁이 고개를 저었다.이연령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군주께서 요 며칠 벌인 일들을 태후 마마께선 전부 알고 계셨습니다. 오늘 일에 대해서도 그저 명문가 적녀로서의 품위를 잃었다며 혀를 차셨지요."비수 같은 말들이 가슴을 후벼파자 이연령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수치스러웠다.문밖의 이연령은 꼿꼿하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방 안의 서 태후는 진절머리가 난다는 표정이었다. 뼛속까지 실망한 게 분명했다."두 시진을 채우게 한 뒤 편전으로 돌려보내라.""예!"궁인이 명을 받들었다.두 시진을 채우기도 전에 이연령은 혼절했다. 궁인들이 그녀를 편전으로 옮기자, 소 상궁은 분부대로 태의를 부르고 사람을 시켜 보양탕을 달여 보냈다.자리로 돌아온 소 상궁은 조심스레 서 태후의 안색을 살폈다."태후 마마, 군주께서 단단히 놀라신 듯합니다.""놀라?"서 태후가 코웃음을 쳤다."얼마나 담력이 큰 아이인데. 어설픈 엄살에 속지 말거라."소 상궁은 속으로 의아했지만, 태후의 눈썰미가 워낙 매서우니 이연령의 얕은수를 진작에 꿰뚫어 본 것이라 여겼다.그녀는 허리를 굽혀 서 태후 앞으로 다가가 목소리를 낮췄다."누구나 세자비 마마처럼 영특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속내를 내비치지 않으면서도 배포와 지략을 갖췄고, 수완까지 뛰어나 남이 흠잡을 틈을 주지 않으시니까요."유지영의 이야기가 나오자 서 태후의 안색이 누그러지며 눈가에 흐뭇

  • 피안을 거슬러   제486화

    하지만 안창준은 보란 듯이 명언의 입을 틀어막고 포박하고 끌고 나갔다. 그와 함께 운청도 데려갔다."어제 이 시녀 역시 현장에 있었던 증인 중 한 명이니, 세자비 마마께서도 소관이 심문할 수 있도록 윤허하여 주십시오."안창준이 말했다.유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대인께서 공무를 집행하시는 일이니, 당연히 협조해야지요."그러자 운청이 망설임 없이 영옥을 가리켰다."안 대인, 어제 저 시녀도 현장에 있었습니다!"지목당한 영옥의 얼굴이 순식간에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다급하게 이연령을 쳐다보았다. 신형사로 끌려갔다가는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이연령은 아랫입술을 꾹 깨문 채 영옥을 바라보았다.그제야 진퇴양난이라는 말이 뼈저리게 와닿았다. 유지영을 밀쳤다고 인정하면 온갖 손가락질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부인하면 영옥이 끌려가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터였다.그녀가 망설이는 사이, 유지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연령 군주께선 어제 이씨 가문의 명운을 걸고 저를 밀지 않았다고 맹세하셨지요. 어쩌면 이 일은 정말 오해이고 배후에 다른 이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군주께서 떳떳하시다면 안 대인께 낱낱이 심문해 보라 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유지영의 말 한마디가 이연령이 영옥을 감싸려던 입을 틀어막았다.어제 결백을 증명하겠다며 제 집안까지 들먹인 이연령이 정작 죄가 없다면서 어째서 안창준의 조사를 막는단 말인가?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이연령은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영옥아, 따라가거라. 안 대인께서 함부로 형벌을 남용하지 않으실 테니 그저 묻는 말에만 답하면 될 것이다."영옥은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억지로 발걸음을 뗐다.일이 이 지경까지 오자 이연령은 뼛속 깊이 후회했다.북명연은 유지영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참으로 독하구나. 피도 눈물도 없어."유지영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북명연을 바라보았다."무슨 뜻이십니까, 공주?"북명연은 입을 굳게 다문 채 성을 내며 자리를 박차고 나갔다.얼마

  • 피안을 거슬러   제485화

    이연령은 입술을 꾹 다문 채 침묵했다.그때 밖에서 요란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짙은 푸른색 장포를 입고 머리를 단정히 틀어 올린 익숙한 인영이 의기양양하게 걸어 들어왔다.우뚝 선 자태에 제법 위풍당당한 기세가 흘렀다.안창준이었다!안창준의 뒤로는 수십 명의 금군이 따르고 있었다. 그가 안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예를 갖췄다."세자비 마마, 연령 군주, 그리고 육공주 전하를 뵙습니다.""네놈이 어찌 여기 있는 것이야?"북명연이 미간을 찌푸리며 성을 냈다.안창준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헛기침을 한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소관은 비록 재주가 없으나, 오늘 아침 폐하의 명을 받아 대리시 우시승에 임명되었습니다. 어젯밤 영보궁 밖에서 세자비 마마께서 해를 입을 뻔한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 명하셨기에, 마마께 자초지종을 여쭈러 왔습니다."그 말에 이연령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운민이 나간 지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네가 어찌 황궁에서 여기까지 온단 말이냐?""소관이 임명장을 받을 때, 마침 경 세자께서 폐하께 세자비 마마의 억울함을 풀어달라 청하셨습니다.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 하시니, 폐하께서 이 일을 제게 일임하신 거지요."안창준이 답했다.이연령은 하마터면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을 뻔했다. 즉, 오늘 그녀가 이곳에 오지 않았더라도 배현준은 어젯밤 일을 그냥 덮어둘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그녀는 무척 기이한 표정으로 유지영을 바라보았다.배현준은 어찌 저 계집을 이토록 애지중지하는 걸까?'아니, 그럴 리 없어.'분명 무언가 단단히 잘못된 것이다.유지영은 북명연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고 재빨리 명언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안 대인, 저 자가 시비흑백을 뒤집으며 제가 연령 군주를 모함했다 억지를 부렸습니다. 육공주 역시 제게 모욕적인 언사를 서슴지 않았으니, 부디 대인께서 억울함을 풀어 주시지요."때맞춰 운청이 나서서 자초지종을 빠르게 설명했다.안창준의 맑은 눈동자가 즉시 북명연을 향했다."공주께서 호위의 말이 한 치의

  • 피안을 거슬러   제484화

    북명연의 저 안하무인인 태도를 보니, 유지영은 기가 막혔다. 하지만 지금은 이를 악물고 분노를 삼켜야만 했다.이연령은 그 와중에도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해댔다."지영아, 홀몸도 아닌데 진정하거라. 일전에 내가 제를 올리고 황도로 돌아오던 길에 실수로 부딪혀 그대의 심기를 거스른 적 있었지. 그러니 속으로 나를 원망하시는 것도 무리는 아니야."그녀는 짐짓 대인배라도 된 양 손을 내저으며 괘념치 않겠다는 태도를 취했다."아이가 무슨 죄가 있겠어. 어찌 죄 없는 아이까지 들먹이며 내게 누명을 씌우려 하였느냐. 부디 다음번엔 이러지 말길 바랄게."목소리는 크지 않았지만, 방 안에 있는 모든 이가 똑똑히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북명연이 비웃음을 흘렸다."연령 군주는 참으로 관대하기도 하지. 양심을 속이고 악행을 저지르는 어떤 사람과는 아주 딴판이야."단어 하나하나가 도발이었고, 쏘아보는 눈빛엔 노골적인 경멸이 가득했다.마치 유지영이 뒤에서 추악한 짓이라도 저지른 듯한 취급이었다.북명연은 명언을 향해 묻는 것도 잊지 않았다."명언, 네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지?"명언은 굳은 얼굴로 시선을 내리깔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그렇습니다.""보아라, 내 호위가 바로 증인 아니냐."북명연은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리며 혀를 쯧쯧 찼다.유지영은 한 손으로 허리를 짚은 채 북명연을 흘겨보았다. 창백한 얼굴에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녀는 운민을 향해 입을 열었다."육공주께서 저리 원하시니 관아에 고발하거라."운민은 대답과 함께 유지영을 부축하던 손을 놓고 밖으로 향했다.이연령의 안색이 미세하게 굳었다."지영아, 정녕 끝까지 우길 작정이니?""그저 사실을 말한 것뿐인데 뭘 그리 발끈하는가?"북명연은 계속해서 빈정거렸다.하지만 운민은 멈출 기미가 없었다. 운민이 모퉁이를 돌자, 이연령은 미간을 찌푸린 채 유지영을 바라보았다. 도무지 그녀의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유지영은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의자에 앉았다. 몹시 평온한

  • 피안을 거슬러   제483화

    배현준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신중해서 그럴 것이다. 현재 형님은 육공주의 호위일 뿐이니,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본분이겠지. 지금은 우리와 가까이에 계시니 차차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유지영은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는 듯하여 더는 묻지 않았다.하지만 근심이 가득해 밤새 뒤척였다.다음 날 눈을 떴을 때 배현준은 이미 군영으로 가고 없었다. 아침 식사를 하고 있는데 밖에서 이연령이 경왕부로 사죄하러 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어제 연령 군주는 태후 마마께 크게 꾸지람을 듣고 밤새 궁중 법도를 필사했다고 합니다."운청이 말했다.비밀이랄 것도 없는 일이라 조금만 수소문해 보면 알 수 있었다.유지영이 망설이고 있을 때 운민이 재빠르게 다가왔다. 그녀의 손에는 어제 북명연이 보낸 법랑 팔찌가 들려 있었다."이 팔찌에 구성초가 섞여 있습니다. 극히 차가운 성질을 지닌 낙태약입니다. 살짝만 닿아도 유산을 할 수 있고, 심하면 산모와 태아 모두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그 말에 유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북명연!유지영은 일찍부터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지만, 상대가 이토록 대담하게 팔찌에 대놓고 독을 쓸 줄은 몰랐다.그녀는 책상에 반쯤 팔을 걸친 채 가볍게 탁자를 두드렸다. 속에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첫 만남에서 이토록 잔인한 짓을 하다니.생각에 잠겨 있을 때 시녀가 다시 와서 보고했다."세자비 마마, 북신 육공주께서 오셨습니다.""감히 제 발로 찾아오다니!"운민이 주먹을 꽉 쥐며 이를 갈았다.유지영은 두 사람이 어떻게 공교롭게 같이 왔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둘 다 불순한 의도를 품었다는 점이었다. 그녀는 운청에게 손짓하여 낮은 목소리로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운청은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그 후 유지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운민의 손을 잡고 대청으로 향했다. 아니나 다를까 초췌한 얼굴의 이연령과 북명연 두 사람이 보였다.북명연 옆에는 명언이 서 있었다. 그는 허

  • 피안을 거슬러   제2화

    종령각 이층 누각.유지영은 부스스 눈을 뜨고 사방을 둘러보았는데, 이곳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까지 유난히도 익숙하게 느껴졌다. 회랑 아래에서는 하인들이 정원을 단장하며 내일 있을 성년례가 떠들썩할 거라며 수근거리고 있었다. 그녀는 손톱으로 손바닥을 꾹 눌렀다. 아픔이 몰려왔고, 곧바로 이 모든 게 꿈이 아님을 직감했다.그녀는 죽임을 당한 뒤 성년례 하루 전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이때 밖에서 고씨 어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아가씨, 부인께서 대전으로 들라 하십니다. 경성에서 사람이 온 듯합니다.”전생의 배준형도 성년

  • 피안을 거슬러   제1화

    7월의 장안 거리는 굉장히 시끌벅적했다.마차 한 대가 성문 입구에서 멈추었다.털썩!유지영은 온몸이 꽁꽁 묶인 채 마대에 담겨 바닥에 내던져졌다. 온몸으로 극심한 통증이 몰려왔다.특히 하반신에서는 찢어질 듯한 고통이 계속되고 있었다.“읍….”지나가던 백성들이 소리를 듣고 마대를 풀어주었다.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사내의 옷가지를 걸친 여인의 모습이 드러났다.하얗고 가는 목덜미 아래에는 붉은 자국이 가득했다.“이 사람은 정왕 세자비 아닌가?”누군가가 유지영을 알아보고 비명을 질렀다.“옷매무새가 이 모양인 것을 보아 불결

  • 피안을 거슬러   제10화

    동금은 원래 표사의 딸이었으나 부모를 잃은 뒤 전당포에 팔려간 데다가, 전생에서는 실족사로 죽기까지 했다.충성을 맹세한 사람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생에 유지영을 배신하지는 않았다.매일 고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 접촉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 송씨에게서 문서를 기어코 받아낸 것을 보면 눈치도 빠르고 수완도 있는 듯했다.나머지는 아직 관찰 대상이었다.“오늘부터 종령각을 배신하는 자는 엄벌에 처할 것이다.”유지영은 근엄한 표정으로 엄명을 내렸다.나머지 사람들은 주향 일당이 내쳐지는 것을 보았기에 황급히 고개를 조아렸다.방으로

  • 피안을 거슬러   제9화

    “선주는 참 복도 많아요. 이 집안의 복덩이라니까요.”이내 셋째 부인이 아부를 떨기 시작하자, 송씨가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지영아, 그동안 경왕 세자의 평판이 어떤지 너도 익히 들어 알고 있을 것이다. 혼인한 뒤에는 조용히 지낼 수 있도록 네가 잘 붙들어야 한다. 어차피 훗날 경왕부 작위를 잇게 되면 먹고사는 걱정은 없을 테니, 제발 사고를 쳐서 우리 집안에 피해가 가는 일만은 없게 하거라.”유지영은 조용히 고개만 끄덕였다. 당장 침소로 돌아가 한숨 자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다행히도 노부인이 이제 돌아가도 좋다는 뜻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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