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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가장 잔인한 축복: Chapter 241 - Chapter 250

255 Chapters

241화 불길 속의 유령

어두컴컴한 디스팩트 편집국 취재실.성창규는 담배 연기를 깊게 집어삼켰다가 뱉어냈다. 화이트보드 중앙, 강도진의 사진 옆에 붙은 메모지 위로 붉은 줄이 굳게 그어져 있었다.‘문성태 증언: 수진이 출산한 산부인과 병원에서 강도진이 아이를 직접 데리고 나감.’문성태의 입을 통해 강도진이 병원에서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는 사실까지는 확인했었다. 하지만 그 뒤 입양기관이든, 아동 보호 시설이든 어디를 뒤져도 그 아이의 이름이나 기록은 단 하나도 찾을 수 없었다. 마치 세상에서 존재 자체가 없었던 것처럼 완벽하게 비어 있는 기록.‘강도진이 국가 전산망을 주무르는 신이라도 된다는 뜻인가? 아니면 문성태가 거짓말을 한 걸까?’“……잠깐만.”성창규의 손에 들려 있던 붉은 펜이 공중에서 멈췄다. 머릿속을 답답하게 짓누르던 이질감의 정체가 순식간에 선명해졌다.“기록을 지운 게 아니라…… 처음부터 출생신고조차 안 된 애였던 거야.”성창규의 눈빛이 광기로 매섭게 빛났다. 강도진과 한수진 사이에서 태어난 치부. 세상에 알려지면 안 될 그 아이를, 강도진은 병원에서 데리고 나오자마자 유령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출생신고도 안 된 아이였으니 공식 입양기관이나 시설 서류에 남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문성태 말이 맞았어. 강도진이 병원에서 데려간 게 맞아.”그렇다면 답은 다시 문성태였다. 문성태가 CB 그룹에서 쫓겨난 이후, 아이를 낳고 강도진에게 버려지다시피 한 한수진과 문성태는 좋든 싫든 서로 가장 가까운 처지였다. 억울함과 원망에 휩싸인 한수진이 문성태에게 분통을 터뜨리며 아이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강도진이 그 유령 같은 아이를 어디로 빼돌렸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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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2화 만들어진 부성

이현의 지시를 받은 익명의 계정들과 외부 마케팅 라인들이 맘카페, 대형 커뮤니티, 언론사 제보란에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자극적인 주장이 아니었다. ‘산부인과 당시 한수진의 정황’, ‘한수진이 도망치기 전 주변에 남겼던 아이 관련 언급’, ‘CB 그룹 내부에서 아이 흔적을 본 적이 없다는 제보’ 등 ‘충분히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는 논조의 정황 증거와 칼럼 형태의 글들이 은밀하게 퍼져나갔다.‘설마 기자가 아무 근거도 없이 이런 기사를 냈겠어?’‘한수진 행적 생각하면 진짜 아이를 어디 빼돌렸을 수도 있는 거 아닌가?’이현이 뿌려놓은 떡밥들은 의구심이라는 독버섯을 키워냈다. 순식간에 여론은 ‘기자의 소설’에서 ‘진짜일지도 모른다’는 기괴한 확신으로 급곡선을 그리며 비틀리기 시작했다.여론이 걷잡을 수 없는 의구심으로 타오르고 메이저 언론에서조차 ‘CB 그룹 대표의 친자 관련 논란, 사실 여부 충격’이라는 타이틀로 다루기 시작하자, CB 그룹의 브랜드 이미지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상황이 이쯤 되자, 집무실에서 여론 추이를 지시하던 강도진의 얼굴은 흙빛으로 질려갔다.“기자회견 준비해. 당장!”더 이상의 이미지 추락과 주가 폭락을 막기 위해, 도진은 여론을 한 번에 뒤집을 승부수로 급하게 긴급 기자회견을 강행하기로 결단했다. 자신이 직접 아이의 아비로서 ‘비공개 양육’이라는 눈물겨운 부성을 연기한다면, 이 모든 의혹을 성창규의 악의적인 마녀사냥으로 되받아쳐 반전시킬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몇 시간 뒤, CB 그룹 본사 1층 브리핑룸.수백 개에 달하는 플래시 세례가 거친 썰물처럼 카메라 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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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3화 무너진 성벽

강남경찰서 유치장 접견실.화장기 없는 찌든 얼굴, 산발이 된 머리와 구겨진 옷차림의 한수진이 차가운 철창 너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상류층의 호사를 누리던 사모님이었던 그녀는, 이제 사방이 막힌 유치장 안에서 벌벌 떨고 있는 범죄자에 불과했다.끼익—접견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수진은 도진이나 변호사일 것이라 생각하며 다급히 고개를 들었으나, 눈앞에 선 인물을 확인하자마자 숨을 턱 막았다.고급스러운 맞춤 수트를 입고 서늘한 품격을 풍기는 남자, 박진우였다.“……박, 박진우?”수진의 눈동자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진우는 차가운 눈빛으로 유치장의 수진을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분노도, 흥분도 없었다. 그저 길가에 버려진 더러운 오물을 바라보는 듯한 깊은 냉소만이 감돌고 있었다.진우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골몰히 생각하던 중이었어. 강도진 곁에서 네가 얻은 게 대체 뭐였을까 하고.”“……뭐?”진우는 천천히 의자에 앉으며 수진의 일그러진 얼굴을 똑바로 직시했다.“강도진을 위해 날 배신하고, 지수를 짓밟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더니…… 결국 도착한 곳이 겨우 이 차디찬 유치장 바닥인가?”수진은 진우의 차가운 시선에 수치심이 솟구쳤는지, 핏발 선 눈으로 소리를 질렀다.“착각하지 마! 도진 씨는 날 버리지 않았어! 도진 씨는 날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있다고!”수진이 억울함과 오기에 차서 유리창을 쾅쾅 두드렸지만, 진우의 입꼬리는 비릿하게 말려 올라갈 뿐이었다.“모든 걸 해준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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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4화 거래

평창동 본가의 육중한 철문이 닫힌 뒤, 밤바람은 뼈를 파고들 정도로 차가웠다.아스팔트 바닥에 나뒹굴었던 도진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다시 철문 앞으로 다가갔다. 무릎을 꿇었다. 냉기가 바지를 뚫고 살을 파고들었지만 차가움을 느낄 새도 없었다. 이 문이 열리지 않는다면 자신에게 남은 미래는 아무것도 없었다."아버지…… 제발 한 번만 만나주십시오. 아버지……!"피투성이가 된 손가락으로 차가운 대문을 두드리며 도진은 밤새도록 그 자리를 지켰다. 새벽이 지나고 푸르스름한 여명이 내릴 때까지, 도진은 얼어붙은 석상처럼 무릎을 꿇은 채 평창동 본가 앞을 지켰다.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끼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혀 있던 대문이 천천히 열렸다.마치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겠다는 듯 틈이 벌어지자, 도진은 핏기 없는 입술을 매만지며 겨우 몸을 일으켜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러나 문턱을 넘어서는 순간, 밤새 축적된 피로와 극한의 공포가 한꺼번에 몰려들며 도진의 시야가 아득해졌다. 그대로 바닥으로 고꾸라진 도진의 의식이 아득한 어둠 속으로 꺼져 들어갔다.도진이 다시 눈을 뜬 것은 깊은 밤이 되어서였다.머리가 쪼개질 듯한 통증 속에서 눈을 맞춘 도진이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서재 상석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강수한 회장의 차가운 눈빛이었다.서늘하고 오만한 눈빛. 하지만 도진은 그 얼음 같은 눈동자 너머에서 미약하게 일렁이는 부성(父性)의 잔재를 본능적으로 포착해냈다. 완벽히 버리지 못했기에 안으로 거두어들였고, 밤새 문앞에 내버려 두면서도 끝내 치워버리지 않은 것이었다.그것이 자신이 잡아야 할 마지막 동아줄이었다.도진은 기어가듯 강수한의 발치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아버지…… 잘못했습니다. 제발 이번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네, 아버지. 이사회가 CB 그룹을 삼키게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피가 흘러내릴 듯 입술을 잘게 깨물며 읍소하자, 강수한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말려 올라갔다."내가 왜 그래야 하지?""……아버지가 기틀을 마련하고 제가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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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5화 판을 삼키는 법

이사회장의 육중한 대리석 문 앞.강도진은 문고리를 잡기 전 잠시 숨을 고르며 자신의 착장을 재차 점검했다. 깊은 무게감과 묵직한 신뢰감을 주는 클래식한 브라운 3피스 트위드 수트, 감각적인 붉은 체크 셔츠 위에 단정하게 매어 넣은 타이트한 넥타이, 그리고 행거치프 주머니에 정갈하게 찔러 넣은 와인빛 포켓치프까지. 오늘만큼은 단 한 치의 흐트러짐도 허용할 수 없었다.소매 끝을 살짝 올리자, 로즈골드 스트랩에 짙은 푸른빛 다이얼이 영롱하게 빛나는 시계가 모습을 드러냈다. 과거 이지수가 선물했던 파텍필립 컴플리케이션.시계의 메탈 스트랩을 한 번 묵직하게 정돈한 도진은 마침내 문을 열고 이사회장 안으로 발을 내딛었다.그러나 문을 넘어서자마자, 도진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넓디넓은 대형 이사회장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원래 배치된 주주석과 이사석으로는 턱없이 모자란 듯, 안내 직원들이 식은땀을 흘리며 벽면을 따라 바쁘게 여분의 의자까지 나르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대주주와 일부 이사들만 참석하던 평소의 정숙한 이사회와는 차원이 다른 압도적인 열기이자, 살벌한 밀도였다.‘……오늘 하루가 참 길겠군.’도진은 직감적으로 등 줄기에 돋아나는 서늘함을 느꼈다.도진이 모습을 드러내자, 도깨비 시장처럼 시끄럽게 울려 퍼지던 실내의 소음이 어제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차갑게 꺼져 내렸다. 수십 개, 수백 개의 날카로운 눈빛이 일제히 도진에게 꽂혔다. 그 눈빛들은 단순한 관심이 아니었다. 그를 단상 위에 올리고 메스로 구석구석 해부하려는 듯한 칼날 같은 시선이었다.도진은 그 서늘한 해부의 시선들을 담담히 견뎌내며, 턱을 고고하게 든 채 이사회장의 가장 앞자리, 자신의 대표이사 석으로 당당하게 걸어갔다.강수한 회장의 위임장과 문중 지분, 최 이사와 윤 이사의 우호 표까지 더해 확정 지은 51%의 절대 지분. 자신이 쥐고 있는 이 과반수라는 철옹성을 상기하며, 도진은 서재 상석에 앉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의자에 몸을 기댔다."제1안건, 강도진 대표이사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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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화 동상이몽

다음 날 아침, 증권 시장이 열리자마자 모니터 속 주가 창은 온통 핏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전날 이사회장에서 강도진의 구구절절한 궤변과 바닥을 친 도덕성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소액주주들과 기관 투자자들이 절망에 빠진 채 물량을 사정없이 던져대기 시작한 것이다. 해임안 부결 소식은 호재가 아니라 '경영진 리스크의 고착화'라는 최악의 악재로 작용했다. 매도 잔량 숫자가 억 단위로 찍히며 CB의 주가는 바닥을 뚫고 지하실로 차갑게 굴러떨어졌다.붉은색 하락 화살표가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주가 창을 노려보던 강도진은 입술을 바짝 깨물었다.전날 이사회장에 들어섰을 때 빼곡하게 자리를 채우고 있던 수많은 소액주주들의 살벌한 눈빛을 기억하고 있었다. 장이 열리면 주가가 폭락하고 투매 물량이 물밀듯 쏟아질 것이라는 건 도진 역시 충분히 예측한 바였다.‘다 쓸어 담아야 한다. 헐값으로 나뒹굴 때 내가 모조리 사들여서 지분율을 더 단단하게 고혀 놓아야 해……!’도진은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고 자금 담당 이사를 대표이사실로 긴급히 불러들였다.“지금 시장에 나오는 CB 매물들, 모조리 매수 주문 넣어. 단 한 주도 남김없이 싹 쓸어 담아라!”그러나 지시를 내리는 도진의 고성과 달리, 자금 담당 이사의 얼굴은 흙빛으로 질려 있었다. 이사는 식은땀을 닦아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대표님……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 유동성이 턱없이 부족합니다.”“뭐? 현금이 부족하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내 개인 계좌 잔고는 다 어디 가고!”“얼마 전 강수한 회장님께 넘기신 위로금 전액과 A국 대형 로펌 자문단 계약금으로 대표님의 개인 사재 대부분이 단단히 묶여버린 상태입니다. 회사 자금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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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화 깔끔한 손절

A국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부 법정.차가운 쥐색 수의를 입은 한수진이 피고인석을 향해 걸어 들어왔다. 법정에 들어서자마자 수진은 불안한 듯 초조하게 방청석 주위를 둘러보며 강도진의 모습을 찾았다. 그러나 어디를 둘러보아도 그토록 갈망하던 도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얼룩지고 푸석해진 머리타래 사이로 드러난 수진의 얼굴은 불과 며칠 사이에 십 년은 늙어버린 듯 앙상하게 마르고 피기가 없었다. 화려했던 과거의 자취는 온데간데없고, 절망과 원망에 휩싸인 죄수의 형상만 남아 있었다.검사의 구형이 끝나고, 피고인 측 변호인의 최후 변론 차례가 되었다. 강도진이 붙여준 대형 로펌의 호화 변호사는 단정한 수트 차림으로 단상 앞에 서서, 아주 정중하고도 매끄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존경하는 재판장님. 피고인 한수진은 자신의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습니다. 다만, 본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살피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변호사는 서류를 넘어다보며 판사를 향해 담담하고 차가운 법률적 언어들을 내뱉기 시작했다.“피고인은 과거 브랜드 기획자로서의 입지가 흔들리자, 개인적인 공명심과 성과에 대한 과도한 욕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본 범행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활용된 피해 기업의 고객 정보 유출 및 사업 기획 건은, 오롯이 피고인 한수진 단독의 판단과 독단적인 주도로 감행된 개인의 범행입니다.”피고인석에 앉아 있던 수진의 눈동자가 커졌다. 변호사의 입에서 나온 말은 자신을 구하기 위한 변명이 아니었다.“당시 CB의 강도진 대표를 비롯한 경영진은 피고인의 이러한 독단적 행위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으며, 피고인의 개인적 과욕으로 인해 CB 역시 심대한 브랜드 이미지 실추와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은 명백한 피해자입니다. 즉, 피고인은 회사의 정당한 지휘 체계를 벗어나 단독으로 시장 질서를 교란한 것에 불과합니다.&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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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8화 또 하나의 기회

한수진의 실형 구속과 아이의 해외 입양 건으로 사건은 일단락되었지만, 그 여파로 깎여 나간 CB의 브랜드 이미지와 추락한 주가는 쉽게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대표직을 겨우 보전한 강도진에게는 지금 당장 분위기를 단숨에 반전시킬 수 있는 강력한 한 방, 이른바 '게임 체인저'가 절실했다.그러던 도진의 귀에 패션·주얼리 업계를 들썩이게 만들 거대한 소식 하나가 들려왔다.세계적인 팝스타이자 할리우드의 톱스타인 '클로이 벤넷(Chloe Bennett)'의 세기적인 결혼식 소식이었다. 전 세계 매체와 팬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그녀의 공식 SNS 계정에 업계의 패러다임을 뒤흔드는 짧은 공고문 하나가 올라온 것이다.@Chloe_Bennett_Official“기존 명품 브랜드들의 틀에 박힌 협찬이나 이미 완성된 기성복 드레스는 사양합니다. 제 인생의 가장 특별한 날, 화려함 뒤에 숨겨진 '가장 나다운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해 줄 드레스, 주얼리, 그리고 슈즈 디렉팅을 찾습니다. 브랜드의 이름값이나 규모는 상관없습니다. 나를 진짜 나답게 만들어 줄 제안이라면 누구에게나 문은 열려 있습니다.”전 세계의 그 어떤 디자이너나 브랜드라도 자유롭게 제안서를 보낼 수 있는 파격적인 프라이빗 오픈 공고였다.'클로이 벤넷이라니……!'도진의 눈빛이 매섭게 빛났다. 전 세계의 조명을 받는 톱스타의 웨딩 프로젝트를 CB가 전담하게 된다면? 그간의 스캔들과 도덕성 리스크 따위는 단숨에 씻겨 내려가고, 글로벌 시장에서 CB의 위상을 재립할 수 있는 최고의 도약대가 될 터였다.도진은 즉시 각 분야 실력자들로 구성된 '클로이 벤넷 전담 TF팀'을 출범시켰다. 드레스 파트는 총괄 디자이너 찰스가, 주얼리는 주얼리 1팀이, 슈즈 파트는 한유현이 담당하는 구도였다.첫 회의실에 모인 팀원들을 둘러본 도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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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9화 겉도는 톱니바퀴

클로이 벤넷의 프로젝트 발표 이후, CB의 프라이빗 회의실은 연일 밤늦게까지 불이 꺼지지 않았다. 강도진은 팀원들의 자율성과 피드백을 존중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작 실무진 사이에서는 미묘한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문제는 찰스가 제출한 드레스 메인 스케치와 한유현이 올린 슈즈 디자인의 조화에서 터졌다. 찰스의 드레스는 화려함과 장식성이 강했던 반면, 유현이 설계한 슈즈는 클로이의 걸음걸이와 실루엣을 고려한 정갈하고 모던한 라인이었다. 둘을 함께 놓으니 미묘한 어색함과 위화감이 감돌았다.스케치를 번갈아 살펴보던 도진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유현 씨. 찰스 총괄은 CB에서 수년간 드레스를 책임져 온 베테랑입니다. 슈즈 라인이 드레스의 화려함을 잡아주지 못하고 다소 따로 노는 느낌이군요. 아직 경험이 부족한 유현 씨가 찰스 총괄의 드레스 콘셉트에 맞춰 슈즈 디자인을 재조정해 보세요.”도진의 말은 부드러웠으나, 그 안에는 여전히 경력과 위계를 우선시하는 은근한 압박이 깔려 있었다. 유현은 입술을 짓씹으며 고개를 숙였다.“……알겠습니다. 다시 수정해 보겠습니다.”회의가 끝난 후 서류를 챙겨 나온 유현은 아무도 없는 휴게실에서 홀로 서류 봉투를 펼쳤다. 찰스의 드레스 디자인에 자신의 슈즈를 맞추는 게 아니라, 오히려 찰스의 드레스 라인을 다듬어 슈즈와 완벽한 일체감을 이루도록 만들고 싶었다.유현은 회의 때 공유 자료로 받았던 찰스의 드레스 스케치 출력물을 꺼냈다. 그리고 그 위에 붉은 펜으로 찰스의 고집스러운 장식을 깎아내고, 슈즈의 힐 곡선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도록 드레스의 트레인과 자수 위치를 재설계해 나갔다. 홧김에 시작한 작업이었지만, 유현의 감각이 더해지자 스케치는 기적처럼 살아났다.하지만 '내가 감히 총괄 디자이너의 옷을 지적하다니'라는 생각에 한숨을 내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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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화 닮은 꼴의 그림자

품평회 기획 회의실을 나선 한유현은 가슴을 짓눌러오는 답답함에 숨조차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 차가운 복도 공기를 허겁지겁 마셔보았지만, 서러움으로 타들어 가는 목구멍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억울함에 입술을 세게 깨물던 유현은 결국 결심한 듯 발걸음을 돌려 강도진의 대표실 앞으로 향했다.똑, 똑.자신을 바닥에서 발탁해 주고 가능성을 알아보아 준 사람. CB의 수장이자 존경하는 스승인 강도진 대표만큼은 자신의 진심을 믿어줄 거라는, 마지막 희망 하나 때문이었다."들어오세요."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무심한 목소리에 유현은 침을 꿀꺽 삼키고 문을 열었다. 그러나 대표실로 들어서자마자 도진의 눈빛에 스치는 깊은 피로감을 유현은 놓치지 못했다.'또 저 어리광을 받아줘야 하나…….'도진은 속으로 짙은 한숨을 내쉬며 들고 있던 찻잔을 받침대에 내려놓았다. 유현은 떨리는 손을 꽉 쥐며 벅차오르는 목소리로 사정을 설명하기 시작했다.“대표님, 정말입니다. 오늘 찰스 총괄님이 내놓으신 수정안은…… 제가 붉은 펜으로 드레스 실루엣 라인과 자수 위치를 직접 고쳐 그린 제 디자인입니다. 절대로, 절대로 거짓말이 아닙니다!”유현의 눈가에 간발의 차로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그녀의 호소를 듣는 도진의 반응은 얼음처럼 차가웠다.“유현 씨.”도진이 의자에 깊숙이 몸을 기대며 유현을 똑바로 바라보았다.“나도 유현 씨의 감각을 높게 평가합니다. 하지만 실증적인 물증이나 증거가 없는 이상, 앞으로 수년간 CB를 이끌어 갈 총괄 디자이너 대신 유현 씨의 편을 들어줄 수는 없습니다.”“대표님……!”“그리고 유현 씨. 지난번에도 중요한 초기 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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