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수는 복귀작 ‘이별’의 제작 공정을 확인하기 위해 단지 내 공방으로 향했다. 사건은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찰나, 눈 깜빡임 사이에 벌어졌다. 시야 오른쪽 끝에서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온 것은 순식간이었다.끼이익—!비명 같은 브레이크 소리가 정적을 찢었다. 차체가 거칠게 요동치며 멈춰 섰다. 지수는 심장이 내려앉는 충격 속에서도 떨리는 손으로 문을 열고 내렸다. 아스팔트 위에는 한 여자아이가 엎드린 채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얘야, 괜찮니? 아줌마가 한번 봐도 될까?”지수의 다정하고 차분한 목소리에 아이는 응석이라도 부리듯 더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그 울음소리가 신호탄이라도 된 듯, 멀리서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들려왔다.“현지야!”달려와 아이를 낚아채듯 안는 수진의 얼굴. 수진은 지수를 확인하자마자 비명을 삼키며 아이를 부서져라 끌어안았다. 마치 거대한 괴물 앞의 먹잇감이라도 된 듯한, 처절하고도 완벽한 공포의 형상이었다.“당신, 내 아이 죽이려고 작정했어? 단지 내에서 이렇게 과속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지수는 대꾸하지 않았다. 수진은 상대가 지수임을 확인하고 잠시 주춤하는 듯했으나, 이내 구경꾼들이 몰려들자 눈빛을 싹 바꾸고 처절한 연기를 시작했다.“어머, 애 엄마 우는 것 좀 봐. 세상에, 애를 치고도 저렇게 뻣뻣하게 서 있는 거야?”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차가워. 미안하다는 소리 한마디를 안 하네. 독하다, 독해.”수진은 승기를 잡았다는 듯 떨리는 손으로 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수는 그 소란 속에서도 한마디 변명조차 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차로 돌아가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뒤, 수진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병원 응급실 복도. 도진은 멀리서 보이는 지수를 보고 멈칫했다. 화사한 핑크색 원피스에 진주 목걸이를 한 지수는, 사고 가해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우아했다.
Last Updated : 2026-04-30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