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지에서 지수를 마주한 이후, 수진의 행동은 한층 과감해졌다. 그녀는 마치 지수의 일과표를 훔쳐보기라도 한 듯, 지수가 산책을 나서는 시간에 맞춰 세 살 난 현지의 손을 잡고 나타났다.수진은 지수와 스쳐 지나갈 때마다 보란 듯이 발걸음을 늦췄다. 그러고는 아직 완연하지는 않지만, 옷감 위로 서서히 존재감을 드러내며 부풀어 오르기 시작한 아랫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15주. 생명의 태동을 준비하는 그 손길은 지수에게는 그 어떤 비수보다 날카로운 조롱이었다. 지수의 말투와 걸음걸이를 흉내 내며 우아한 척 현지를 챙기는 수진의 가증스러운 연기는 매일같이 지수의 안식처를 더럽혔다.지수는 그 천박한 도발에 반응하는 대신, 계획보다 빠르게 독립을 준비했다. ‘포스트 빌리지’는 지수에게 단순한 집이 아니었다. 도진과의 신혼을 시작했고, 자신의 커리어를 묻었으며, 끝내 아이를 지키지 못한 채 홀로 앓아야 했던 애증의 공간이었다. 언젠가 이곳을 수진에게 비워주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 시기가 예상보다 빠르다는 사실에 입안이 씁쓸해졌다.하지만 지수에게는 확인해야 할 마지막 퍼즐이 있었다. 도진이 내뱉은 ‘입양’이라는 단어가 시부모의 머리에서도 나온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지수는 평소와 다른 차림으로 외출 준비를 서둘렀다. 무채색 원피스 대신 연핑크색 스웨이드 투피스를 선택했고, 굵은 웨이브와 화사한 화장으로 얼굴을 채웠다. 칙칙했던 어제의 지수는 사라지고,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꽃봉오리 같은 화사함한 여자가 거울속에 있었다.주차장에 내려온 지수는 늘 타던 얌전한 아우디 A4의 키 대신, 얼마 전 자신의 이름으로 새로 뽑은 포르쉐 타이칸의 스마트 키를 쥐었다. 도진이 골라준 차가 아닌, 오로지 지수 자신의 안목으로 선택한 첫 번째 독립의 상징이었다. 매끄러운 화이트 보디의 차체가 지수의 화사한 옷차림과 어우러져 날카로운 세련미를 뿜
Last Updated : 2026-04-28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