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161 - Chapter 170

212 Chapters

제161화

그 순간 허서령의 눈가가 뜨거워지며 감동과 괴로움이 동시에 밀려왔다.괴로운 이유는 지금의 그녀가 지강산에게 확신을 줄 수 없기 때문이었다.오랫동안 생각한 끝에 허서령이 입을 열었다.“강산 씨가 남을 필요 없어요. 사실 제산시가 울심시보다 발전이 더 좋아요. 가능하다면 저도 제산시에 가고 싶어요.”지강산은 천천히 손을 뻗어 와 그녀의 차가운 작은 손을 꼭 잡았다.부드럽고 가느다란 손이 그의 한 손에 가득 들어왔고, 손바닥 안에서 어루만지기 딱 좋았다.그 순간 허서령은 지강산의 따뜻한 손바닥이 자신의 손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전류가 사지를 타고 흐르는 것 같았고, 심장까지 함께 떨렸다.그의 목소리는 낮고 쉰 듯했으며 흥분이 희미하게 묻어났다.“나랑 제산시에 돌아가겠다는 거야?”“네.”허서령은 고개를 끄덕였다.지강산은 살짝 고개를 들고 몸을 기울여 그녀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낮게 속삭였다.“서령아, 이번에는 더는 날 속이지 마.”“안 그래요.”허서령은 눈물을 머금은 채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사랑해, 허서령.”지강산은 다시 그녀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허서령은 수줍어 눈을 내리깔고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 위에는 아직 그의 숨결이 남아 있었다.그녀의 마음은 꿀을 부은 것처럼 달콤해졌다. 끈적이는 듯 작은 목소리에 수줍음이 묻었다.“저도 사랑해요.”지강산은 그녀의 뺨을 감싸고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잘 자.”허서령은 대답하지 않고 얌전히 눈을 감았다. 입가에는 억누르기 힘든 미소가 번져 있었다.말을 마친 지강산은 다시 누워 손을 뻗어 불을 껐다.두 사람이 서서히 잠에 빠져들 무렵, 어렴풋이 소리가 들려왔다.허서령이 먼저 눈을 뜨고 칠흑 같은 텐트 안에서 귀를 기울였다.“무슨 소리지?”지강산도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몸을 일으켜 말없이 옆 텐트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했다.그 소리는 점점 커지고, 점점 또렷해지고, 점점 격해졌다.두 사람은 순식간에 민망해졌다.“여긴 야외인데, 진짜 미쳤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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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2화

허서령은 일부러 내키지 않는 척했다.“그만큼 너를 빨리 보고 싶은 거야.”지강산은 괴로운 듯 탄식했다.“분명 네가 있는 도시 안에 있는데도, 네가 도망갈까 봐 무서워.”“제가 어디로 도망가겠어요?”허서령은 그의 팔을 끌어안고 좀 더 다가가 몸을 녹이며 팔에 기대어 걸었다.“서령아.”“네.”“이번엔 진심이야?”허서령은 씁쓸하게 입술을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강산이 너무 불안해 보였다. 잃을까 봐 늘 조마조마한 사람 같았다.그날 밤, 두 사람은 해변에서 한 시간쯤 걸었다. 텐트로 돌아왔을 때 옆 텐트는 조용했다.너무 늦고 피곤해 두 사람도 금세 잠이 들었다.다음 날, 네 사람은 함께 바닷가에서 일출을 보고 사진도 찍었다.지강산이 주방을 맡아 모두 따끈한 달걀 국수를 먹었다.그들은 캠핑장을 깨끗이 정리하고 쓰레기를 주워 차에 실은 뒤 도시로 돌아갔다.시내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정오였다.지강산은 허서령을 데리고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허서령이 가장 먼저 하고 싶었던 일은 방에 들어가 샤워하는 것이었다.울심시 사람으로서, 1년 365일 동안 적어도 400번은 씻어야 했다.겨울에는 하루 한 번, 여름에는 하루 두 번 씻는 경우도 많았다.캠핑장에서 씻지 못하고 잔 탓에 온몸이 찝찝했다.지강산은 그녀가 허둥지둥하는 모습을 보고 궁금해 물었다.“왜 그래?”허서령은 외투를 벗고 방문을 밀며 그에게 대답했다.“샤워하러 갈 거예요.”지강산은 잠시 멍해졌다.“그럼... 나도 씻어야 하나?”“강산 씨도 가서 씻어요.”허서령은 그 말을 남기고 바로 방문을 닫았다.그녀에게 하루 샤워를 거르는 건 몸이 개운하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지강산에게는 전혀 다른 의미로 들렸다.관계 전에 씻는 건 서로의 건강을 책임지는 일이자 존중이었다.지강산은 차 키를 내려놓고 의미심장하게 웃더니 옷을 벗으며 방으로 걸어갔다.한 시간 뒤, 허서령은 머리카락을 말리고, 헐렁하고 포근한 잠옷을 입은 채 방에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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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3화

커튼 틈 사이로 따뜻한 햇볕 한 줄기가 몰래 스며들어 어둑한 방 안을 희미하게 장식했다.부드러운 이불 아래는 땀이 배어날 만큼 뜨거웠다. 불이 붙은 듯 열기가 달아올라 사람의 정신을 몽롱하게 흔들었다.희고 가느다란 손목은 그에게 눌려 베개 위에 놓인 채 이불 밖으로 드러나 있었지만 춥지 않았다.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덜미에 닿았다. 낮고 거친 목소리는 사포에 문질린 듯 쉰 채, 거의 소리도 없이 거친 숨과 섞여 몇 번이고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서령아...”살결이 맞닿아 얽히는 감각은 사람을 감각의 심연으로 밀어 넣는 듯했고, 따뜻한 물결 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기도 했다.모든 모공이 서로의 숨을 들이마셨고, 모든 손길이 소리 없는 달콤한 속삭임을 읽어 내는 듯했다.그 친밀한 얽힘은 경계를 흐리게 하고 시간을 멈추게 했다. 마치 두 영혼이 가장 원초적인 접촉을 통해, 고요 속에서 아무도 모르는 대화를 완성하는 것처럼...서쪽으로 기울던 빛이 조용히 사라지고 어느새 밤이 내려앉았다.방 안에는 따뜻한 색의 조명이 켜져 있었다.허서령은 기운이 다 빠진 채 엎드려 있었다. 이불은 그녀의 분홍빛 어깨 아래까지 덮여 있었고, 부드러운 검은 머리카락은 베개 위에 흩어져 있었다. 아름다운 옆모습은 붉고 수줍었다. 그녀는 눈을 감은 채 졸음에 잠겨 있었다.몽롱한 와중에 귓가로 듣기 좋은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서령아, 일어나서 저녁 먹자.”그녀는 그 목소리를 따라 두 손으로 남자의 허벅지를 감고 얼굴을 그 위에 기댄 채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안 배고파요. 먹기 싫어요.”지강산은 그녀 뺨에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다정하게 넘겨주고 머리를 쓰다듬었다.“왜 이렇게 지쳐 보여?”허서령은 억울했다.‘왜 강산 씨는 할수록 더 멀쩡해지고, 나는 거의 탈진할 지경인 걸까?’“낮부터 밤까지 했는데, 안 지칠 수가 있어요?”“움직인 건 네가 아니잖아.”그녀는 힘도 제대로 들어가지 않아 말랑한 주먹으로 그의 허벅지를 툭툭 쳤다.지강산은 솜방망이 같은 주먹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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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4화

설날의 도시는 시골과 달랐다. 이곳에서는 일하던 사람들이 모두 떠나 버려 도시 전체가 유난히 조용하고 쓸쓸해 보였다. 상점 앞에 붙은 장식 조명 정도만 조금 명절 분위기를 냈다.물론 북적이는 거리도 있었다. 꽃시장을 둘러보거나, 공원에서 등불 축제를 보거나, 대형 쇼핑몰의 판촉 공연을 보거나, 광장에서 카운트다운을 하는 곳들...하지만 그런 곳들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지강산이 없으니 그녀는 조금도 흥미가 없었다.예년과 달리, 올해 설날에는 그녀가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어머니는 늘 그랬듯 푸짐한 상을 차렸다. 예전엔 닭을 잡을 때마다 닭 다리 두 개가 접시에 올라오면, 그녀가 집어 가지 않는 한 남동생은 꼭 하나를 먹고 이어 다른 하나까지 먹었다. 습관처럼 닭 다리 두 개를 전부 먹어 치웠지만 어머니는 한 번도 뭐라 하지 않았다.올해는 확실히 달랐다. 허태윤이 닭 다리를 집으려 하자, 오정화의 젓가락이 그의 젓가락을 딱 치고 지나갔다. 그는 곧바로 손을 거두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넌 살 좀 빼야 해. 무슨 닭 다리야.”오정화는 꾸짖고, 닭 다리 하나는 임신한 한아름에게, 다른 하나는 그녀에게 집어 주었다.허태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허서령 역시 뜻밖의 대접에 조금 놀랐다.저녁을 먹고 어머니가 준 새해 선물까지 받은 뒤, 그녀는 집을 나섰다.칼바람이 매서웠다. 희미한 밤빛이 내려앉은 거리를 걸으며, 그녀는 두 손을 외투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들어 별 하늘을 바라보았다. 지강산은 또 소리 없이 그녀의 머릿속에 들어와 모든 생각을 조금씩 점령했다.많은 가정이 아이들을 데리고 시골에 가서 설을 보내거나 여행을 떠났다. 아파트 단지는 죽은 도시처럼 조용했다.차가운 바람이 쌩쌩 불어 그녀의 얼굴을 아프게 스쳤다.지하철 안으로 들어가자 승객은 드물었다. 사람들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휴대폰을 보고 있었고, 피곤한 얼굴에는 설날의 기쁨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주머니에서 벨 소리가 울렸다.허서령은 휴대폰을 꺼냈다. 지강산이 보낸 메시지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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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5화

안에는 흰 종이 한 장도 들어 있었다. 그 위에는 펜으로 적은 힘 있고 유려한 글씨가 있었다.[허서령, 집과 보험, 투자, 금괴 열 개, 그리고 은행카드는 모두 내가 주는 새해 선물이야. 결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무상 증여이니 계약서에 서명해 줘. 은행카드 비밀번호는 너의 생일이고, 안에는 2억이 들어 있어. 증여인: 지강산.]변호사인 그녀는 그 흰 종이 위의 ‘결혼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무상 증여’라는 문구와 지강산의 서명, 지장을 본 순간 감동으로 눈물이 차올랐다.그녀는 지강산의 사랑이 얼마나 순수하고, 얼마나 미칠 만큼 진실한지 알 수 있었다.가슴 한쪽이 은근히 아팠다. 감동적이면서도 비참했다.자신이 자신을 돈만 밝히는 여자로 만들었다. 5년 전 돈 때문에 그와 헤어진 ‘나쁜 여자’가 바로 자신이었다.그녀가 그렇게 ‘나쁜 여자’였음에도 지강산은 여전히 그녀를 사랑했고, 심지어 그녀에게 충분한 안정감까지 주었다.결혼도 하기 전에 차와 집, 금, 투자, 보험, 돈까지 무상으로 주려 했다.눈물이 점점 차올라 세뱃돈 봉투 위로 떨어졌다. 봉투 위에 작고 어두운 물 자국이 번졌다.그녀는 서명하지 않고 물건들을 다시 봉투에 넣고 서랍 안에 돌려놓았다.그리고 몸을 돌려 침대에 엎드려 지강산의 베개를 끌어안은 채 품에 꼭 안고 고개를 묻어 냄새를 맡았다. 그 위에는 아직 지강산의 머리카락에서 나는 은은한 향이 남아 있었다.그리움이 소리를 낼 수 없는 게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귀가 먹먹할 만큼 요란했을 테니까...시간은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기어갔다. 일분일초가 그리움의 고통 속에서 기다림으로 흘렀다.그녀는 하루하루 날짜를 세며 지강산이 울심시로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문자와 영상통화로 그를 향한 그리움을 달랬다.지강산이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 깊은 밤, 원래 잠이 얕은 허서령은 어렴풋이 거실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 것을 들었다.놀라 깨어나 불안하게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 그녀는 문틈 밖으로 새어 들어오는 불빛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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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6화

지강산은 방문을 밀고 들어가 따뜻한 빛의 은은한 조명을 켰다. 그러고는 캐리어를 구석에 놓고, 반대로 손을 뻗어 문을 닫았다.그는 두 손으로 허서령의 허리를 안았다. 그녀를 살 속에 녹여 넣고 싶은 것처럼 세게 끌어안은 채, 눈을 감고 어깨에 얼굴을 묻어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그의 목소리는 점점 더 낮고 쉬어 갔다.“오늘 밤은 내 방에서 자면 안 돼?”허서령은 그의 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지강산이 침대에 앉자 허서령은 자연스럽게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았다. 그를 꼭 끌어안고 놓아주고 싶지 않았다.지강산이 그녀의 허리를 밀었지만, 그녀는 더 세게 끌어안았다.지강산은 다정하게 웃었다.“서령아, 손 풀어.”그녀가 중얼거렸다.“싫어요.”지강산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웃음은 꿀을 머금은 듯했고, 목소리마저 달콤하게 끈적였다.“그렇게 세게 안고 있으면 내가 어떻게 뽀뽀해?”허서령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풀고 그의 어깨에서 얼굴을 떼었다.지강산은 손을 뻗어 그녀의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을 감쌌다. 뜨거운 눈빛이 맑고 생동감 있는 눈, 단정한 눈썹, 오뚝한 코를 차례로 훑다가 마지막으로 분홍빛 입술에 머물렀다.두 사람의 뜨거운 숨결이 뒤섞였다.허서령은 그가 입 맞추기를 기다렸지만, 그는 계속 깊게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다. 기다리지 못한 그녀가 그의 목을 감고 먼저 입을 맞췄다.지강산은 그녀의 허리를 잡고 그 키스를 깊게 하다가, 그녀를 안은 채 뒤로 쓰러져 큰 침대 위로 눕혔다.모든 그리움은 욕망이 되어 잠들지 않는 밤에 미친 듯이 얽혀들었다.정월 초사흘 밤은 유난히 매혹적이었다.나중에 지강산이 그녀에게 물었다.“왜 내가 준 세뱃돈 안 받았어?”그녀가 말했다.“강산 씨가 정월 초사흘에 돌아와 제 곁에 있어 준 게 제게는 가장 귀한 세뱃돈이에요.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지강산은 불쾌해했다.“네가 그러면, 너는 진심으로 나와 함께하려는 게 아닌 것처럼 느껴져.”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괜한 생각 하지 말아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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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7화

“서령아.”그때 그녀의 옆에서 묵직하고 낮은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허서령은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오십 대의 중년 남자가 있었다. 짧은 머리에는 희끗희끗한 흰머리가 섞여 있었고, 안경을 쓴 그는 침착하고 강직하며 위엄이 느껴졌다.허서령은 단번에 그를 알아보았다. 그는 지강산의 큰아버지, 지준석이었다.최고검찰원의 고위 간부였다.그해 아버지에게 일이 생겼을 때, 그녀가 제일 먼저 찾아간 사람이 바로 지준석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증거가 확실했고, 지준석도 도와줄 수 없었다. 심지어 지준석은 아내를 보내 그녀에게 아버지가 감옥에 간 일을 지강산에게 말하지 말라고 설득하게 했다.허서령은 급히 눈가의 눈물을 닦고 마음을 가라앉힌 뒤 그의 앞으로 걸어가 예의 바르게 인사했다.“큰아버님, 오랜만입니다.”지준석은 온화하게 대답했다.“오랜만이구나.”“죄송해요. 저도 여기서 소란 피우고 싶진 않았어요. 정말 그저...”지준석이 말을 끊었다.“괜찮다. 이해한다.”“검찰총장님을 만날 수 있게 도와주실 수 있나요? 제 아버지는 억울하게 당하신 거예요. 증거도 이미 가지고 있는데 재심 심사가 계속 통과되지 않아요. 직접 만나서 대체 왜 그런지 묻고 싶어요.”“그 사람은 내 제자야.”허서령은 희망을 보았다. 눈물 어린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억울하게 말했다.“큰아버님, 저희 아버지는 정말 억울하세요. 만나게 도와주실 수 없을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지강산에게는 알리지 않을 거예요. 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지도 않을 거예요. 제 능력으로 아버지의 누명을 벗길 수 있어요.”지준석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카톡을 열었다.“친구 추가하자.”허서령은 허둥지둥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냈다. 숨이 흐트러지는 것을 느끼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카톡을 열어 즉시 QR코드를 스캔했다.친구 추가가 완료되자 그녀는 기대에 찬 눈으로 지준석을 바라보았다.지준석은 허서령과 눈을 마주쳤다. 가볍게 한숨을 쉬는 그의 눈빛에는 안타까움이 스쳤다.변호사를 좋아하지도 않았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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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8화

허서령은 지준석이 준 주소를 따라 도심의 오래된 주택가로 갔다. 세월의 흔적이 뚜렷한 낡은 주택이었다.붉은 기와와 흰 벽은 한눈에 호화롭지는 않았지만, 세월이 쌓인 묵직한 품격이 느껴졌다.초인종을 누르자 예순쯤 되어 보이는 아주머니가 기품 있는 대문을 열었다. 그녀가 누군지 아는 듯 예의 있게 인사했다.“허서령 씨, 안녕하세요. 들어오세요.”“안녕하세요.”허서령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아주머니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마당에는 화초와 녹음 외에도 여러 가지 채소를 심어 전원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거실 벽에는 수묵 글씨가 걸려 있었다.허서령은 자단목 소파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차와 다과를 내온 뒤 물러갔다.저녁 무렵의 석양이 창살을 타고 들어와 구석의 푸른 몬스테라 화분 위에 내려앉았다.그 한 시간은 허서령에게 1년처럼 길었다.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그녀는 즉시 정신을 차리고 긴장한 채 일어나, 침착하게 걸어 들어오는 지준석을 바라보았다.“큰아버님.”허서령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였다.지준석은 손을 눌러 그녀에게 앉으라는 뜻을 보였다.“미안하다. 오래 기다리게 했구나.”허서령은 서서 움직이지 않은 채 겸손하게 말했다.“괜찮습니다.”지준석이 그녀의 맞은편에 앉자, 허서령도 예의를 갖춰 따라 앉았다.지준석은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서령아, 빙빙 돌려 말하지 않겠다. 네 아버지 사건은 뒤집을 수 없다.”그 말은 가시 달린 채찍처럼 그녀의 심장을 세차게 후려쳤다. 피가 맺힌 상처가 남은 듯 너무 아파 감각이 무뎌졌고, 온몸의 피가 얼어붙은 것처럼 차가워졌다. 손끝은 억누를 수 없이 떨렸다.지준석이 이어 말했다.“네가 새로 제출한 증거는 당시 세 명의 증인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충분히 증명한다. 겉으로는 재심할 수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소용없다.”허서령은 긴장한 채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런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왜요?”“우리는 그 세 증인을 찾아갔고, 그들이 당시 거짓말을 했다는 것도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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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9화

거실에는 CCTV가 없어 허태하가 사람을 때리는 현장은 찍히지 않았다. 그러나 방 안의 영상은 진짜였고, 네 증인의 반응도 진짜였다. 사람을 때리는 소리와 허태하가 달아난 시간까지 거의 빈틈없이 모두 맞아떨어졌다.허서령은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꼈다. 심장에서 음산한 한기가 솟구쳐 나왔고 손가락은 심하게 떨렸다. 사지와 뼈마디마다 수천 개의 바늘이 박히는 듯 온몸을 찔러 뼛속까지 아팠고, 숨쉬기조차 어려웠다.손이 너무 떨려 재빨리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눈물로 젖은 눈을 감고 허리를 굽혀 떨리는 손바닥 속에 얼굴을 묻었다.하늘 땅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5년 동안 붙잡아 온 믿음이 순식간에 무너졌다.하늘이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녀 세계의 유일한 빛이 꺼졌을 뿐이었다.지준석이 걸어와, 거대한 산에 짓눌린 듯 무거워진 소녀의 어깨와 미세하게 떨리는 몸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가냘픈 몸으로도 언제나 침착하게 마주했으며, 사람의 마음을 아프게 할 만큼 강인했다.지준석은 휴대폰을 되찾아 맞은편에 앉으며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진병철은 이 업계에서 20년 넘게 일했다. 그 사람의 아내도 예전에는 함께 일했지만, 나중에 임신하고 결혼했다. 결혼 뒤에도 몰래 계속 그 일을 했지. 그 세 증인은 바로 그 사람들의 단골이었다.”“5년 전 법정에서 네 사람이 고스톱을 하고 있었다고 말한 것은 매춘과 집단 음란죄의 처벌을 피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삽으로 머리를 내리치는 세 번의 소리부터 네 아버지가 집 안에서 달아나는 시간까지는 40초 간격이다. 방 안의 네 사람은 영상으로 보아 처음부터 끝까지 방을 떠난 적이 없었다. 경찰이 현장에 도착할 때까지 그들은 옷을 단정히 입고 방에서 나왔을 뿐이다.”“서령아, 나도 네 아버지가 결백하길 바란다. 하지만 지강산과의 관계 때문에 네 아버지가 ‘결백한 사람’이 될 수는 없다. 이해하겠니?”허서령은 깊게 숨을 들이쉬고 두 손을 내렸다. 붉게 젖은 눈은 축축했지만, 그녀는 평온한 척 지준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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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0화

허서령은 일어나 가방을 들고 살짝 허리를 숙인 후 아무렇지 않은 척 몸을 돌려 떠났다.석양 아래, 그녀는 북적이는 거리를 걸었다.세상의 색이 순식간에 어두워진 듯했다. 죽음처럼 고요한 회백색의 세계였다. 모든 소리가 뽑혀 나가 심장 박동조차 들리지 않았다.서늘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영혼까지 스며드는 차가움이 느껴졌다. 안에서부터 뻗어 나오는 한기는 얼음 조각처럼 내장을 하나하나 긁어냈다.죽고 싶을 만큼 아팠다.그녀는 자신이 어떻게 집으로 돌아왔는지 알 수 없었다. 의식은 흐릿했고, 껍데기만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밤은 이미 깊었다.허서령이 현관문을 여는 순간, 숨이 멎었다. 따뜻한 흰 조명이 집 전체를 밝히고 있었고, 음식 냄새가 코끝으로 밀려오며 집 안의 난방과 함께 그녀를 감쌌다. 모든 것이 너무도 아름다웠다.그때 주방에서 지강산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서령아, 너야?”“저예요.”그녀는 급히 대답하고 가방을 내려놓은 뒤 슬리퍼로 갈아 신고 안으로 들어갔다.“오늘 어디 놀러 갔어? 왜 이렇게 늦게 와?”그의 말투는 조금 아버지처럼 다정한 걱정이 담겨 있었다.허서령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검은색 터틀넥을 입고 앞치마를 두른 채, 넓고 곧은 등을 보이며 조리대 앞에서 음식을 나누어 담고 있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바쁘게 일하느라 그녀를 돌아볼 시간조차 없어 보였다.그녀는 평온한 척 그에게 다가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을 그의 등에 붙인 뒤, 두 팔로 허리를 감아 꼭 끌어안았다.지강산이 멈칫하더니 고개를 숙여 자신을 단단히 감은 손을 내려다보았다.“왜 그래?”허서령은 눈을 감았다.“안고 싶어서요.”“이렇게 안고 있으면 나 일 못 해.”“이렇게 늦었는데 왜 아직 밥을 해요?”지강산이 가볍게 웃었다.“일주일 발사 기간 나는 집에 없을 거야. 널 돌볼 시간이 없으니까, 또 배달 음식이랑 간식 먹고 제때 밥 안 먹을까 봐 일주일치 만들어 두려고. 냉동실에 넣어 두면 첨가물이나 방부제 없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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