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의 모든 챕터: 챕터 361 - 챕터 370

500 챕터

제361화

깜깜한 방 안, 허서령은 희미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이불을 걷고 떨리는 손으로 휴대전화를 더듬어 가져와 눈물 젖은 눈으로 시간을 확인했다.벌써 밤 열 시였다.노크 소리가 멎더니 문밖에서 지강산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서령아, 문 열어.”허서령은 온몸을 심하게 떨고 있었다. 위장이 경련하며 끔찍하게 아팠고, 온몸은 차갑게 식고 저렸다. 울음도 멈추지 않았다.이런 초라한 모습을 지강산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던 그녀는 떨리는 손끝으로 메신저에 짧게 적었다.[저 잘 거예요.]메시지를 보내자 문밖의 소리는 곧바로 사라졌다.허서령은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아픈 머리를 감싼 채 침대 머리맡으로 더 웅크렸다. 이를 악물고 오직 의지로 이 순간의 신체화 증상을 견뎌 보려 했지만 억누를수록 숨은 더 막혔다.그녀는 자기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이유 없이 밀려오는 이 슬픔도 미웠다. 지강산을 포기할 수는 없는데, 고통은 당장이라도 죽고 싶을 만큼 심했다...자신이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심장이 비정상적으로 뛰며 정말 죽을 것 같은 공포가 밀려왔다.철컥.갑자기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방문이 순식간에 열렸다.칠흑 같은 방 안으로 문밖의 옅은 주황빛이 흘러들었다. 지강산은 목발을 짚은 채 빛을 등지고 서 있었다. 크고 단단한 체구는 거대한 소나무처럼 보였다. 그는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허서령에게 성큼성큼 다가왔다.허서령의 눈물은 더는 통제되지 않아 끊어진 구슬처럼 한 방울씩 흘러내렸고 몸은 더 심하게 떨렸다. 흐느낌도 멈출 수 없어 이불을 움켜쥐고 울음을 삼켰다.침대 가까이 온 지강산은 목발을 내던지고 한쪽 무릎을 침대에 올린 뒤 이불 속에서 그녀를 끌어냈다.힘이 실린 큰 손이 허서령의 두 팔을 꽉 붙잡고 축 늘어진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머리는 힘없이 뒤로 젖혀졌다. 영혼 없는 인형처럼, 눈물로 흐려진 시야 너머 어둠 속 남자의 윤곽을 바라봤다.그의 깊은 눈은 보이지 않고, 고통과 분노가 뒤섞인 쉰 목소리만 들렸다.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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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지금 어디가 제일 힘든지 말해 봐. 마음이 아파? 몸이 아파? 어디가 아픈데?”지강산이 아주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허서령은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였다.“모르겠어요... 신체화가 오면 온몸 여기저기가 다 아파요. 마음이 제일 아파요...”“왜 마음이 아파?”“강산 씨가 절 버렸잖아요...”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다시 그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울었다.지강산의 눈도 다시 붉어지며 눈물에 시야가 흐려졌다. 화가 나 가슴까지 아팠다. 그는 그녀의 귓가에 억울하다는 듯 낮게 말했다.“내가 널 버려? 이 양심 없는 여자야,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강산 씨는 이제 저를 안 믿잖아요. 설명도 안 들었고요. 저 소준혁이랑 진짜 아무 사이도 아니란 말이에요.”“미안해.”그제야 지강산은 그녀가 무슨 오해를 했는지 알아채고 서둘러 사과했다.“서령아, 난 그게 화난 게 아니야. 소준혁이 널 좋아하는 건 알아. 그래도 그 정도면 기본적인 선은 지키는 인간이야. 너한테 함부로 무슨 짓을 할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 내가 화난 건 네가 아픈 걸 또 숨겼다는 거야. 오는 내내 ‘심맥어조증’이 뭔지 설명 한마디도 안 했잖아. 네가 말 안 하니까 나도 더는 묻지 않은 거고.”“집에 와서는 네 병이 뭔지 알아보느라 바빴어. 내가 잠깐 말 안 걸었다고, 그사이에 내가 널 버렸다고 생각한 거야?”허서령은 조금씩 진정됐다. 하지만 몸은 여전히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지강산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내가 잠깐 무심하게 굴었다고 너는 견딜 수가 없었잖아. 그럼 생각해 봐. 지난 보름 동안 넌 너무 바빠서 그림자도 안 보였어. 난 네가 보름 내내 날 내버려 둬서 힘들었는데, 나는 누구한테 화를 내야 해?”“저한테 화낼 거예요?”“이젠 못 하겠어.”지강산은 고개를 숙여 그녀의 정수리에 입을 맞췄다. 뺨을 부드러운 머리카락에 대고 옅은 향을 맡으며 두 팔을 더 단단히 조여, 작고 힘없는 몸을 통째로 품 안에 깊숙이 끌어안았다.너무 꽉 안은 탓인지 그의 따뜻한 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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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허서령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도 치료는 계속 받고 싶어?”“네.”“내 방으로 와서 같이 지내. 내가 지켜볼게. 네 곁에 있을게.”“제가 신체화 증상 오면 강산 씨도 너무 힘들 거예요. 전 그러기 싫어요...”지강산이 곧바로 말을 끊었다.“그래. 나도 힘들겠지. 하지만 난 너랑 함께하기로 선택했어. 그럼 이런 것까지 내가 같이 감당해야 하는 거 아니야?”“저도 사실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약도 계속 먹고 있고요.”지강산은 그녀를 더 꽉 끌어안고 턱을 머리 위에 얹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방금 잠깐 냉정하게 굴었을 뿐인데도 넌 바로 온갖 생각을 하다가 우울한 감정에 휩쓸렸어. 아직 좋아진 게 아니야. 앞으로 조금이라도 더 큰 충격을 받으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도 있어.”허서령은 또다시 눈물이 나, 울먹이며 말했다.“저도 이러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에요. 다른 사람들이 알면 유난 떤다고 할까 봐 무서워요.”“아니야. 넌 그냥 아픈 거야.”지강산은 급히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입술을 맞추고 부드럽게 달랬다.“쓸데없는 생각 하지 마. 내가 있잖아. 계속, 아주 오래 네 곁에 있을게. 우리 같이 치료하자. 분명 좋아질 거야.”“네.”“방 불 켜도 돼? 네 얼굴 보고 싶어.”“싫어요. 지금 너무 못생겼어요.”지강산은 그녀의 뺨에 붙은 머리카락을 살며시 걷어 주었다.“그럼 내가 문 닫고 올게. 오늘 밤은 여기서 같이 잘 거야.”허서령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천천히 침대에서 내려왔다.“제가 갈게요. 강산 씨 다리 불편하잖아요.”힘이 빠진 두 다리는 제대로 버티지도 못해 걸음이 휘청거렸다. 허서령은 문을 닫고 다시 침대로 돌아와 그의 품 안에 누웠다.지강산은 팔에 힘을 주어 그녀를 끌어안고 귓가에 얼굴을 비비듯 가까이 대며 낮게 속삭였다.“강산 씨 저녁도 안 먹었잖아요. 배 안 고파요?”“안 고파.”“소준혁네 주치의가 너 영양실조에 몸도 많이 허약하다고 했다며. 자꾸 이렇게 말라 가면 내가 너무 무능한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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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새벽빛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며 희미하게 방 안을 밝혔다.에어컨 온도는 아주 쾌적했다. 허서령은 다정하고 달콤한 꿈에서 천천히 깨어 눈을 떴다.눈앞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조각가가 정성껏 빚어 놓은 듯 깊고 또렷한 남자의 이목구비였다.지강산은 그녀와 마주 본 채 옆으로 누워 있었다. 숨결은 가볍고 일정했고, 잠든 얼굴은 고요하고 다정했다.허서령의 마음에는 수많은 감정이 파도처럼 일렁였다. 그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사랑에는 방황과 불안도 섞여 있었다. 언젠가 먼 훗날 지강산이 지금의 선택을 후회할까 봐 두려웠다.그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삶을 선택하고, 완벽하지 않은 그녀와 평생을 함께하기로 했다.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허서령은 자기 자신조차 그렇게까지 사랑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지강산이 앞으로도 계속 자신을 이토록 사랑할 거라고 확신할 자신이 없었다.미래를 생각하기만 하면 마음이 짙은 안개에 덮인 것처럼 우중충해지고, 축축한 안개비까지 내리는 듯했다.허서령은 저도 모르게 손을 들어 그의 짙고 잘생긴 눈썹을 살며시 만졌다. 손끝이 눈썹 산을 지나 끝으로 내려가자 따뜻한 피부의 온기가 전해졌다.손끝은 계속 아래로 미끄러져 매끈한 뺨을 스쳤다. 아직 올라오지 않은 수염 자국이 조금 거칠게 느껴졌고, 마지막에는 부드러운 입술 위에 살며시 멈췄다.콧대는 높고 반듯했고 입술은 얇으면서도 부드러웠다. 옅은 분홍빛의 입술은 보기만 해도 입 맞추고 싶을 만큼 달콤해 보였다.흔히 입술이 얇은 남자는 정이 없고 냉정하다고들 하던데, 역시 관상은 믿을 게 못 됐다.그 순간, 지강산이 손을 들어 이리저리 만지작거리던 그녀의 손가락을 붙잡아 자신의 입술 위에 꾹 눌렀다.허서령은 움찔하며 굳었다.그가 천천히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깊고 새까만 눈동자에는 아직 잠기운이 어린 희미한 빛이 맴돌며 그녀와 시선을 마주쳤다.허서령의 심장이 한 박자 놓쳤다. 괜히 들킨 것 같아 뜨끔하기도 했고, 조금 어색하기도 했다.지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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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다 강산 씨 말 들을게요.”허서령은 그의 품에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 마음이 한없이 편안했다.“앞으로 어떤 문제나 좌절을 만나든, 나쁜 감정이 생기든 전부 나한테 말해 줘. 우리 같이 마주하자.”“네.”“서령아. 대학 때 너는 자신감 넘치고 밝고 잘 웃었어. 난 네가 진짜 네 모습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어.”“그럴게요.”“오늘은 무슨 일정 있어?”“오전에는 백시욱 씨랑 심인혜 이혼 사건 조정이 있고, 오후에는 성화 그룹 환경오염 사건 재판이 있어요.”“내가 도울 일 있어?”“오늘 하루 아기 봐 줄 보모 좀 불러 줘요. 저랑 인혜는 법원에 가서 백시욱 씨를 만나야 해요.”“알았어.”지강산은 그녀의 머리카락에 입을 맞추고 계속 품에 안은 채 일어나기 싫어 느긋하게 눈을 감고 조금 더 잠을 청했다....본격적인 재판에 들어가기 전 조정 절차는 빠질 수 없는 단계였다.법원 조정실.허서령은 심인혜와 함께 왔고, 백시욱은 먼저 도착해 있었다.보름 만에 본 백시욱은 살이 눈에 띄게 빠져 있었고 몹시 초췌해 보였다.심인혜가 그를 바라보는 안쓰러운 눈빛만 봐도 아직 백시욱을 많이 사랑하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두 사람이 여기까지 온 게 참 안타까웠다.조정실에는 조정위원 한 명도 함께 있었다.백시욱과 심인혜는 마주 보고 앉았고, 허서령은 심인혜 곁에 앉아 조용히 그녀를 지켜 주었다.조정위원은 두 사람의 상황과 원하는 바를 차근차근 묻고 현재 상태를 파악했다.백시욱은 미안함과 진심을 담아 말했다.“저는 이혼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와 아이를 정말 사랑합니다. 아내와 아이에게 미안할 일을 한 적도 없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벌고 가족을 부양해 왔습니다. 제 아내는 직장이 없으므로 저를 떠나면 아이와 함께 많이 힘들 겁니다. 저는 가정이 깨지는 것도, 아이가 한부모 가정에서 자라는 것도 원하지 않습니다.”심인혜의 요구는 단순했다.“이미 관계는 깨졌어요. 이혼할 거고 아이도 제가 키우겠습니다.”조정위원은 아이를 생각해서 이혼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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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허서령은 그녀가 얼마나 힘든지 알아채고 떨리는 주먹 위에 손을 살며시 얹었다.“스피커로 틀어요.”백시욱은 미간을 찌푸리며 허서령을 한 번 노려봤다. 그런 후 이를 악문 채 한숨을 내쉬고 음성 메시지를 스피커로 재생했다.윤가온의 부드럽고 애교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시욱아, 어젯밤 집까지 데려다줘서 고마워. 나 대신 술도 받아 주고, 그 늙은 변태들이 이상한 마음 못 먹게 막아 준 것도 고맙고. 나한테 이렇게 잘해 주는데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오늘 저녁 우리 집에 와. 내가 고향 음식 푸짐하게 차려서 대접할게.”음성 메시지를 다 들은 백시욱은 침묵했다.심인혜는 고개를 숙인 채 씁쓸하게 웃었다. 눈물이 눈가에 가득 맺혔고, 화가 나 몸까지 미세하게 떨렸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조정위원마저 듣고 미간을 찌푸렸고 조정실 전체가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한참 뒤 백시욱이 입을 열었다.“어젯밤엔 그냥 거래처 모임에 같이 간 것뿐이야. 여자 혼자 남자 고객들을 상대하는 게 위험해 보였어. 술에 취해서 대리운전 불러 집에 데려다줬고, 걱정돼서 같이 따라간 거야. 집에 무사히 들어가는 것까지 보고 바로 나왔어. 우리 사이에는 정말 아무 일도 없어. 떳떳해.”심인혜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을 머금은 채 그를 바라봤다.그 눈빛에 백시욱은 당황한 듯 서둘러 휴대전화를 들어 윤가온에게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고마워할 필요 없어. 별일 아니었으니까. 앞으로는 우리 연락하지 말자. 서로 삭제하자.”그리고 심인혜가 보는 앞에서 윤가온을 삭제하고 차단했다.메신저를 지운 뒤 전화번호부에서도 삭제하고 모든 연락 수단을 정리했다. 그러고는 휴대전화를 심인혜에게 내밀었다.“이제 됐어?”‘이제 됐어?’그 네 글자가 칼날처럼 심인혜의 심장에 깊숙이 박혔다.심인혜는 허서령을 바라봤다. 허서령은 어떤 의견도 대신 내줄 수 없었다.“네가 결정해.”심인혜는 어린 아들을 떠올리고 결국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기회를 주기로 했다. “좋아. 이혼은 안 할게.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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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지강산이 바닥을 짚고 일어나려 하자 허서령이 빠르게 다가가 그의 팔과 허리를 부축했다. 지강산은 한 손을 그녀의 어깨에 얹었다.“조정 끝났어?”“네.”허서령은 그를 부축해 휠체어에 앉혔다.“고생했어요. 강산 씨.”“하나도 안 힘들었어.”지강산은 아기를 바라보는 눈에 진심 어린 애정을 담았다.“아기가 정말 귀여워.”허서령은 아기를 돌아봤다. 그런데 아기는 심인혜의 품에 안겨 있었다.백시욱은 그렇게 오랫동안 아들을 못 봤는데도 가장 먼저 아이부터 안아 들지 않았다.그는 심인혜의 앞에 서서 허리를 숙이고 아기의 작은 손을 잡은 채 부드럽게 달랬다. “우리 아기, 아빠 보니까 좋아? 아빠랑 집에 갈까?”아기는 무서운 낯선 사람이라도 본 듯 몸을 돌려 심인혜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작은 팔로 엄마의 목을 감쌌다.그 모습을 본 허서령은 갑자기 마음 한쪽이 시큰해졌다.‘인혜의 선택은 과연 옳은 걸까, 틀린 걸까?’지강산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결과는?”“이혼 안 하기로 했어요.”허서령도 작게 대답했다.지강산의 시선이 백시욱에게 향했다. 그는 계속 아기 주위를 빙빙 돌며 놀아 주고 있었다. 아기도 점점 마음을 열었는지 심인혜의 품에서 몸을 이리저리 돌리며 숨바꼭질하듯 그와 장난쳤다.지강산이 말했다.“백시욱, 아기 잘 컸더라. 9킬로 반 정도 나가.”백시욱은 흐뭇하게 웃었다.“우리 통통이가 벌써 그렇게 무거워졌어? 역시 모유가 좋긴 좋네.”지강산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인혜야, 내가 들어가서 짐 정리해 줄게.”“고마워.”심인혜는 인사를 하고 아이를 안은 채 거실 의자에 앉았다.백시욱도 따라 앉아 지강산에게 몸은 얼마나 회복됐는지 물었다. 지강산은 건성으로 한두 마디씩 대답했다.잠시 뒤 허서령이 여행 가방을 끌고 나오자 백시욱이 바로 다가가 손에서 가방을 넘겨받았다.“제가 들게요.”심인혜도 아들을 안고 일어나 허서령과 지강산에게 다시 고개를 숙였다.“그동안 받아 줘서 정말 고마워요.”허서령이 말했다.“그렇게까지 말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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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오후에도 재판 있어?”지강산은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안고 다른 손으로 휠체어를 조작해 식당으로 향했다.허서령은 그의 품에 기대어 말했다.“네. 성화 그룹 화학 공장 환경오염 사건이 있어요. 공개 생중계 재판이라 지금 좀 부담돼요.”“전에 실명 제보 때문에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고 여론이 크게 붙어서, 관심 가지는 사람이 많으니까 공개 생중계까지 하는 거야?”“네.”지강산은 그녀의 말랑한 볼을 살짝 꼬집었다.“우리 서령이 이번에 전국적으로 이름 날리겠네.”허서령은 그의 손을 밀어내고 아픈 볼을 문질렀다.“꼭 이기는 건 아니에요. 제가 지면 사람들이 성화 그룹에서 돈을 받아먹고 매수됐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난 법을 믿고, 너도 믿어. 넌 분명 이길 거야.”허서령은 그의 허벅지에서 내려와 식탁 의자에 앉았다.“이기면 태일 오빠한테 밥 사야 해요. 태일 오빠 아니었으면 화학 공장이 폐수 몰래 버린 증거 다시 확보하지도 못했어요.”“어느 플랫폼에서 중계해? 나 집에서 볼래.”허서령은 바로 휴대전화를 꺼내 공식 플랫폼을 열어 보여 줬다.“여기에요. 세 시부터 시작해요.”“네가 일하는 모습은 한 번도 제대로 본 적 없으니까 꼭 볼게.”지강산의 눈빛은 뜨거웠고 미소는 다정했다.허서령도 마음이 놓인 듯 미소 지었다.그때 아주머니가 점심을 가져와 식탁 위에 차렸다.두 사람은 점심을 먹으면서 오후 재판 이야기를 나눴다.허서령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집을 나서 일을 보러 갔다.지강산은 집으로 인테리어 기사들을 불러 방 구조를 다시 손봤다. 아주머니에게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를 바꾸게 했고, 커튼 색까지 허서령이 좋아하는 색으로 교체했다.인테리어 기사들이 돌아가자 백화점 매장 직원들이 고가의 제품들을 직접 들고 와 화장 공간을 가득 채웠다.방 정리를 마친 그는 집에서 요가 강사 몇 명을 직접 면접한 뒤, 성격이 차분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여성 강사 한 명을 최종적으로 선택했다.오후 세 시, 지강산은 정확히 TV를 켜고 법원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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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지로운이 차갑게 웃으며 지강산을 봤다.“말이 꽤 거슬리네.”지강산의 시선은 깊고 차가웠다. 그는 한 글자씩 또렷하게 말했다.“성화 그룹 법인 대표는 형의 여자고, 돈은 형 주머니로 들어갔지만 형 손에는 흙 한 점 안 묻었지. 일 터지면 그 여자를 앞세워 전부 뒤집어쓰게 하면 되고.”“방금 정치판 돌아가는 건 모른다며? 끼어들지도 않는다며?”지로운의 얼굴이 얼음처럼 굳었다.“맞아. 끼어들진 않아. 하지만 이 일이 내 여자와 관련됐으니 가만히 보고만 있진 않을 거야.”지강산은 태연하게 휠체어를 돌려 차 수납장 아래로 가 서랍을 열었다. 그러고는 서류 한 묶음을 꺼내 탁자 위에 던졌다.“한번 봐.”지로운은 서류를 들어 넘겨 봤다. 읽을수록 표정이 어두워지더니 결국 거칠게 덮고 이를 악문 채 지강산을 노려봤다.“형은 나한테 내 여자를 좀 말려 달라고, 여기서 손 떼게 해 달라고 하려고 온 거겠지. 하지만 나는 오히려 형한테 말하고 싶어. 당분간 조심해. 난 준비도 없이 싸움에 뛰어들지 않아.”“내가 널 너무 우습게 봤구나, 강산아.”지로운은 화가 난 채 서류를 탁자 위로 내던지고 음습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 몸을 돌려 떠났다.지강산은 멀어지는 뒷모습을 향해 차갑게 경고했다.“허서령 건드리지 마. 형이라도 서령이한테 손대면 나도 가만 안 둬.”지로운의 걸음이 순간 멈췄다. 그는 그대로 굳어버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몇 초 뒤 지로운은 몸을 돌려 지강산과 마주 봤다. 입가에는 웃음이 걸렸지만 눈빛은 축축하고 음침했다.“난 여자가 차고 넘쳐. 하나쯤 없어져도 별일 아니지. 그런데 넌 허서령 하나뿐이잖아. 과연 누가 잃는 걸 더 무서워할까?”지강산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졌다.“동생아, 하나뿐이면 너무 적어. 잘 지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큰일이잖아.”지로운은 억지웃음을 몇 번 흘리고 성큼성큼 자리를 떠났다.지강산은 휠체어 손잡이를 잡은 손에 손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줬다.해 질 무렵, 지강산은 거실의 소파에 앉아 허서령이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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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달래려고 하는 말 아니에요. 일은 줄이고 집에서 강산 씨랑 보내는 시간을 늘릴 거예요. 저도 병 제대로 낫고 싶어요.”“그렇게 생각해 주면 제일 좋지.”허서령은 나무에 매달린 나무늘보처럼 그에게 꼭 달라붙어 뺨을 어깨에 기댄 채 눈을 감고 쉬었다.지금 이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고 느꼈다.원래 조금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이 가장 편하고 가장 가볍게 사는 법이었다.지강산의 미래나 결혼, 앞날을 대신 걱정하지 않고 지씨 집안 어른들의 마음도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금 이 순간을 잘 살고, 하루하루를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여기며 마음 가는 대로 그를 사랑하고 곁에 있기 시작하자 모든 것이 이렇게 편해졌다. 삶은 이렇게나 달콤했다.‘이기적으로 사는 것도 정말 좋네.’지강산의 큰 손은 그녀의 허리와 등을 천천히 쓸다가 더 아래로 내려가 한 손에 잡힐 만큼 가느다란 허리선을 감쌌다. 그는 안타깝다는 듯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가늘다.”허서령은 그 말이 칭찬이 아니라 걱정과 애틋함이라는 걸 알아들었다.“나중에 제가 살찌면 싫어할 거예요?”“살이 찌든 빠지든 다 좋아. 난 네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만 하면 돼.”역시 지강산은 말도 참 달콤하게 한다고 생각하며, 허서령은 참지 못하고 고개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가볍게 닿았다 떨어지는 입맞춤에 지강산은 그만 웃어버렸다.“너 진짜 성의 없다. 나한테 키스할 때마다 1초밖에 안 해.”“1초도 키스는 키스예요.”허서령은 수줍게 화제를 돌렸다.“저 배고파요. 저녁 먹으러 가요.”“조금 있다 먹자.”지강산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고 고개를 숙여 깊고 얕게 입을 맞췄다. 아무리 해도 부족한 사람처럼 오래도록 키스했다.그녀의 입술은 그의 마음을 달래는 가장 달콤한 사탕이었고, 그녀의 몸은 그가 쌓인 감정을 풀어낼 수 있는 유일한 곳이었다. 아무리 만져도 부족했고 아무리 함께 있어도 부족했다.그녀의 표정 하나, 움직임 하나까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같았다. 장엄한 바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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