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강산이 의아하게 물었다.“저보고 그 부모처럼 대하라는 말씀인가요?”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어느 정도는요. 계속 일방적으로 희생하지 마세요. 아무 대가 없이 무조건 사랑만 주는 것도 오히려 불안하게 만들 수 있거든요. ‘나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았으니 언젠가 버림받을 거야’라고 느낄 수 있거든요.”“반대로 사모님에게 무언가를 요구해 보세요. 무엇이든 좋아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이고, 실제로 무언가를 해 주고 있으며, 대체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게 해야 해요.”“저는 계속 사랑을 달라고 요구하고 있어요. 그 정도면 충분히 분명하지 않나요?”의사는 고개를 저었다.“서령 씨도 부모님을 사랑했어요. 하지만 그 부모님에게는 그런 보이지 않는 사랑이 중요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은 딸이 말 잘 듣고, 효도하고, 철들고, 문제를 만들지 않기를 요구했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집안일도 하고, 돈도 벌어 집에 보태고, 동생까지 도와야 했어요.”“서령 씨에게는 그런 식의 ‘요구받는 것’이 사랑의 형태로 각인돼 있어요. 오랜 정신적 학대를 당한 사람이 오히려 가해자에게 애착을 갖는 것과 비슷해요. 물질이나 생활, 일, 혹은 다른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무언가를 요구해 보세요. 그래야 자신이 빈 껍데기 같은 장식품이 아니라 실제로 가치 있는 존재라는 느낌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어요.”하지만 지강산에게는 필요한 것이 이미 다 있기에 굳이 허서령에게 무엇을 요구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완전히 난감한 문제가 됐다.“다른 방법은 없을까요?”지강산이 다시 물었다.“있기는 해요. 어린 시절을 잊고, 과거의 좋지 않았던 일들을 모두 잊은 채 완전히 새로운 자신으로 살아가는 거죠.”지강산은 씁쓸하게 웃었다. 눈가에는 물기가 번졌다. 벽에 몸을 기대고 주먹을 꽉 쥔 탓에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굳었지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의사도 어쩔 수 없다는 듯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원래는 아이를 계기로 많이 좋아지고 있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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