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431 - Chapter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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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1화

허서령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녀는 도미란이 내민 노란 부적을 바라볼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도미란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지난번에는 내가 이런 걸 잘 몰라서 옥 파는 나쁜 상인한테 속았잖니. 방사선이 나오는 광물이 든 옥 장식을 줘 버렸지 뭐야. 이번에는 무서워서 옥은 아예 안 샀어. 스님이 직접 축복해 준 평안 부적뿐이야.”허서령이 받지 않자 지강산이 대신 받아 베개 밑에 넣고는 담담하게 말했다.“큰어머니,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도미란은 왼손으로 오른쪽 손목을 잡은 채 단정하고 우아하게 옆에 서 있었다. 자애로운 어른인 척 길게 한숨까지 쉬었다.“아이고, 서령이는 정말 왜 이렇게 고생이 많니. 얼마나 안됐어. 아버지는 감옥에 가고, 어머니는 돌아가시고, 시집도 마음대로 못 가고, 병도 아직 못 고쳤지. 어렵게 아이 하나 생겼더니 그 아이마저 잃고, 범인은 외국으로 도망가고...”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두가 날카로운 눈빛으로 도미란을 노려봤다. 지용식이 버럭 소리쳤다.“미란아!”허서령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얼굴은 핏기없이 창백했다.하선희도 화를 참지 못했다.“형님, 말 안 하면 병이라도 나세요?”도미란은 얼른 입을 가리고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잠시 뒤 천천히 손을 내리며 사과했다.“미안해, 동서. 오기 전에 당부했던 걸 내가 깜빡했네. 서령이 병문안 와서는 아이 얘기하지 말라고 했었지.”그녀는 자기 이마를 몇 번 두드렸다.“아이고, 이 머리 좀 봐. 나이 먹으니 자꾸 깜빡한다니까.”하지만 허서령은 도미란이 기대한 것처럼 무너지지 않고 갑자기 고개를 들고 그녀를 향해 담담하게 웃었다.“큰어머님, 걱정해 주셔서 감사해요. 몸 다 나으면 강산 씨랑 아이 다시 가지면 돼요. 제 걱정은 안 하셔도 되니까 차라리 아드님 부부한테 힘 좀 내라고 하세요. 빨리 아이를 가지셔야죠. 안 그러면 다음에 제가 낳는 아이가 또 집안의 첫 증손이 될 테니까요.”도미란의 얼굴이 순식간에 어두워진 채 억지로 뻣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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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허서령은 고개를 저었다.“못 받아요. 할아버지, 저랑 강산 씨는 아직 혼인신고도 안 했고 아이도 태어나지 않았어요. 이렇게 귀한 걸 받을 자격이 없어요.”지용식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나도 강산이 할머니랑 혼인신고 안 했어. 결혼식도 안 하고 닭 한 마리 잡아서 조상님께 절만 올렸지. 그래도 평생 부부로 살지 않았느냐?”허서령은 마음에 짐이 너무 크게 느껴졌다.말없이 있던 지강산이 팔찌 두 개를 집어 천천히 허서령의 손목에 채웠다. 그리고 지용식을 향해 예의 바르게 말했다.“감사합니다, 할아버지.”허서령은 손목을 들어 팔찌를 빼려고 했다.“강산 씨, 할아버지가 주신 선물이 너무 귀해요. 저는 못 받아요.”지강산이 단호하게 말했다.“할아버지께 감사하다고 해.”허서령은 잠깐 멍해졌다가 곧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감사합니다, 할아버지.”지용식은 흐뭇하게 웃었다.“부담 갖지 마. 할아버지 수장고에 이런 물건 많아. 전부 너희 주려고 남겨 둔 거다. 지금은 한두 점 먼저 갖고 있고, 나중에 할아버지가 더는 이런 물건 가지고 놀 힘도 없어지면 젊은 너희에게 다 나눠 줄 거야.”지강산은 담담하게 웃었다.지용식은 고개를 돌려 정윤슬을 바라보며 당부했다.“윤슬아, 너도 태일이 집으로 들어가 살아. 빨리 혼인신고부터 해.”갑자기 지목당한 정윤슬은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저는...”지용식은 하선희를 바라봤다.“너희는 윤슬이가 마음에 안 드는 거냐?”하선희는 억울하다는 표정이었다.“마음에 들죠. 마음에 무척 들어요. 큰아들은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는데 비혼주의라 얼마나 속을 썩이는지 몰라요. 윤슬이처럼 젊고 예쁜 아가씨가 우리 아들한테 시집와 주겠다고 하면 조상님이 도와주셨나 싶을 정도예요.”지용식은 다시 정윤슬에게 말했다.“예비 시어머니도 이렇게 환영한다잖니. 얼른 가서 절차 밟아.”정윤슬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할아버지, 지태일 씨는 저를 좋아하지도 않고 저랑 결혼할 생각도 없대요. 그분까지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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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허서령은 천천히 손을 거두고 고개를 숙여 손목의 값비싼 비취 팔찌를 자세히 바라봤다.얼음처럼 맑고 투명한 바탕에 연한 비취색과 우윳빛이 연기처럼 은은하게 번져 있었다. 풍성하고 둥근 형태에 선은 매끈했고, 차가운 촉감은 굳어 버린 달빛 같기도 하고 흐르는 푸른 산빛 같기도 했다.‘수집 가치가 억대일까, 십억대일까. 어쩌면 그보다 더 비쌀 수도 있겠네... 하지만 얼마짜리든 중요한 건 할아버지가 나를 인정하고 아껴 준다는 뜻이야. 당연히 기뻐해야 하는데 왜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걸까.’자신도 왜 이렇게 계속 마음에 걸리고 우울한지 알 수 없었다.자신을 아껴 주는 가족이 있고, 사랑해 주는 남자도 있었다.‘그런데 왜 아직도 슬픈 걸까?’허서령은 천천히 지강산을 바라보며 깊고 따뜻한 눈동자를 오래 응시했다.아마 병이 생각과 판단까지 흔들고, 감정도 망가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그래서 이렇게 계속 안정감이 들지 않는 걸지도 몰랐다.피로 이어진 관계조차 평생 유지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법적인 관계마저 없다면 어떻게 정말로 서로를 ‘가졌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지은영이 고기 죽을 내밀며 물었다.“새언니, 혼자 드실래요? 아니면 제가 먹여 드릴까요?”“내가 먹을게.”허서령은 팔찌를 다시 지강산의 손에 올려놓았다.“할아버지 선물은 받을게요. 강산 씨가 집에 가져가서 장 안에 잘 잠가 둬요. 절대 잃어버리면 안 돼요.”지강산이 팔찌를 받아 들었다.“알겠어.”허서령은 지은영에게 죽그릇을 받았다. 그릇을 받는 손은 여전히 조금 떨렸다. 심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보일 정도였다.지은영은 침대 위 간이 테이블을 세워 죽그릇을 올려 줬다. 허서령은 몸을 곧게 세우고 숟가락을 들었다.손끝이 미세하게 계속 떨렸지만, 그래도 끝까지 혼자 천천히 먹겠다고 했다.지강산과 지은영은 곁에서 아무 말 없이 함께 있어 줬다.허서령은 시어머니가 직접 끓여 준 살코기 죽을 한 숟갈 떠 입에 넣었다. 부드럽고 담백하면서도 고소해 입안에서 바로 녹았다. 거의 씹지 않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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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그녀는 얼른 휴지를 뽑아 허서령의 눈가를 닦아 줬다.“새언니, 조금만 더 버텨 줘요.”지은영이 아주 작게 중얼거렸다.“새언니까지 무너지면 우리 둘째 오빠도 같이 무너질 거예요.”...지강산은 집으로 돌아가 씻은 뒤 비취 팔찌를 금고 안에 넣었다. 오랜 병간호로 흐트러졌던 모습도 깨끗하게 정리하고 씻은 뒤 잠을 청했다.그날 저녁 잠에서 깬 지강산은 지은영에게 메시지를 보내 허서령 상태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허서령이 계속 자고 있다는 것이었다.그는 병원으로 가지 않고 경찰서로 향했다.금자 아주머니의 음식 투약 사건 수사 결과를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였다.경찰은 금자 아주머니가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고 했다. 죽어도 배후가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고 전부 자기 혼자 한 일이라고 주장했다.다만 해외에 있는 금자 아주머니의 아들이 최근 거액을 받은 정황이 있었다. 해외 현금 거래라 돈을 건넨 사람이 누구인지 추적하기가 매우 어려웠다.교통사고를 낸 화물차 운전자는 여전히 도주 중이었고 행방을 전혀 찾지 못했다.박규태는 세 가지 혐의로 기소됐다. 하지만 그 밖에 허서령에게 약을 먹였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고, 뒤에서 누군가 지시했다는 증거도 찾을 수 없었다.허서령을 해치려 했던 사람들은 하나씩 감옥에 들어갔지만, 정작 뒤에서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는 여전히 찾아내지 못했다.그래서 지강산은 먹지도 자지도 못할 만큼 마음이 편치 않았다.밤이 내려앉자 도시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환하게 빛났다.지강산은 차를 몰고 큰아버지 집으로 향했다. 호화로움이 느껴지는 저택에는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집 안으로 들어가자 마침 휴가를 내고 집에 있던 큰아버지 지준석과 마주쳤다.지준석은 그를 보자 반갑게 맞았다.“강산아, 웬일로 큰아버지 보러 왔어? 어서 와서 앉아.”“큰아버지.”지강산은 예의 바르게 고개를 숙인 뒤 거실로 들어가 소파에 앉아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물었다.“로운이 형은요?”“아직 안 왔다.”지준석은 탁자 위 다구를 만지며 느긋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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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지준석의 얼굴에 노기가 번졌다. 그는 손에 든 찻잔을 탁자에 ‘탁’ 내려놓았다.“그 여자 때문에 네가 변했구나. 옳고 그른 것도 구분 못 하고 진실과 허위도 못 가리는 사람이 됐어. 큰아버지가 사적인 권한까지 써서 허서령을 안 도와준다고 원망하는 거냐?”“이제 도와달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지강산은 오히려 담담하게 웃으며 차분히 말했다.“그냥 큰아버지가 허서령의 출신을 깔보고 심한 편견을 갖고 있고, 똑같은 일에도 사람에 따라 기준이 완전히 달라진다는 걸 알려 드리고 싶었어요.”숨기고 싶었던 차별과 편견을 정면으로 지적당하자 지준석의 얼굴은 먹구름처럼 어두워졌다. 그는 말없이 자기 차만 따르고 마셨다.분위기는 순식간에 얼음장처럼 식었다.잠시 침묵이 흐른 뒤 지준석은 어른의 입장에서 타이르듯 말했다.“강산아, 넌 아직 젊어서 눈앞의 감정만 볼 뿐 인생의 본질은 몰라. 아내를 잘 만나면 관운이 트이고 사업도 승승장구해. 밖에서는 체면이 서고 안에서는 복이 들어오지. 경험이 더 쌓이면 집안끼리 수준이 맞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될 거다.”지강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지준석은 계속 늘어놓았다.“네 사촌 형수만 봐도 명문가 출신이잖아. 어머니는 학자 집안이고 아버지는 높은 자리에 있어. 그런 환경에서 자라니 어릴 때부터 모든 면에서 훌륭하게 교육받았지. 우리 집안 자식에게는 그런 여자가 어울려. 네가 고른 그 여자는...”“하, 말하기도 어렵다. 예쁜 것과 남보다 조금 영리한 것 빼고는 내세울 게 뭐가 있어? 특히 친정 환경이 좋지 않아서 마음의 중심도 약해. 작은 충격 하나도 못 버티고 우울증까지 생겼잖아. 그렇게 약한 여자가 네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지강산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느긋한 목소리로 말했다.“큰아버지처럼 이론을 멋지게 말할 식견은 없어요. 로운이 형과 형수님은 집안이 잘 맞고, 저와 허서령은 서로 사랑해서 함께하는 사이죠. 그럼 시간과 결과로 보시죠. 어느 집이 갈수록 더 행복해지고, 누구 일이 더 잘 풀리는지.”지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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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지강산도 뒤따라 일어났다.지준석은 깊고 무거운 눈빛으로 두 사람이 마당을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얼굴빛이 어두워졌다....정원 밖에는 밤이 깊게 내려앉아 울창한 녹음을 뒤덮고 있었고, 굽은 오솔길을 따라 어두운 노란 조명이 이어졌다.지강산과 지로운은 나란히 정원 길을 걸었다.“무슨 얘기를 하려고?”“박규태, 금자 아주머니, 이은경. 이 세 사람 다 알지?”지로운은 차갑게 웃었다.“다 모르는 사람인데.”지강산은 걸음을 멈추더니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 하나를 보냈다.지로운의 메신저 알림음이 울렸다.지강산이 말했다.“영상 하나 봐.”지로운은 휴대전화를 꺼내 메시지로 온 영상을 열었다. CCTV 화면을 확인한 순간 얼굴이 새파랗게 굳었다.“형이 박규태를 지하주차장에서 만났잖아. 저 봉투 안에 뭐가 있었어? 돈? 서령이한테 약 먹이라고 돈이랑 약을 준 거야?”지로운은 영상을 끝까지 넘겨 봤다. 마지막에는 자신과 도은정이 차 안에서 성관계를 가진 장면까지 CCTV에 찍혀 있었다.얼굴은 더욱 험악하게 굳었다.“이런 애매한 영상 하나로 나한테 누명을 씌우겠다고?”지강산은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천천히 그의 앞으로 걸어갔다.“박규태, 금자 아주머니, 이은경. 서령이를 해치려 한 사람들과 이번 교통사고까지 형이랑 무관하지 않아.”지로운은 여전히 침착한 척했다. 눈빛은 서리처럼 차가웠다.“무슨 일이든 증거로 말해야지.”“증거?”지강산은 비꼬듯 차갑게 웃었다.“형은 도은정 몸이 탐났고 서로 거래를 했어. 그래서 이은경을 제산시로 데려와 서령이를 괴롭히고, 결국 여기서 떠나게 만들려고 했지.”“성화 그룹 공장 오염 사건으로 서령이가 형의 이익을 망가뜨리자 박규태에게 돈과 약을 줘서 복수하고 인생을 망치려고 했고.”“서령이가 임신한 걸 알고는 할아버지가 걸어 둔 큰 상 때문에 우리 쪽에서 첫 증손을 낳을까 겁이 났겠지. 처음에는 이은경을 시켜 스쿠터로 치게 했고, 그 계획이 실패하니까 이번에는 대형 화물차까지 동원해서 아이까지 한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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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지강산이 떠난 뒤에도 지로운은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다.항공우주연구원에서 일하는 사람 중 지강산 말고도 자신이 아는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전에 지강산 집에서 만난 적 있는 동료 백시욱이었다. 당시 카톡 친구도 추가해 두었다.지로운은 곧장 휴대전화를 꺼내 백시욱에게 메신저 통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백시욱은 꽤 놀란 듯 공손하게 인사했다.“지로운 씨, 안녕하세요. 무슨 일이세요?”지로운은 일부러 친근하게 말했다.“시욱아, 내가 몇 살 더 많으니까 그냥 로운이 형이라고 불러.”“네, 로운이 형.”“하나 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말씀하세요.”“우주에 있는 위성으로 지구상의 사람 한 명을 24시간 계속 감시할 수 있어?”백시욱은 의아한 듯 물었다.“누구를 감시하시려고요?”“아니, 아니. 그냥 기술적으로 가능한지 궁금해서 묻는 거야.”“기술적으로는 가능해요. 다만 법적으로 엄격하게 제한돼요. 고정밀 촬영이 가능한 위성이 필요하고 같은 지역을 매우 자주 재방문해야 하며, 여러 데이터를 겹쳐 분석해야 해서 비용도 엄청나게 들어요.”지로운은 떠보듯 물었다.“너라면 할 수 있어?”백시욱은 순박하게 웃었다.“저는 당연히 못 하죠. 일단 기술적인 장벽도 있고, 비용도 너무 많이 들고, 결정적으로 그런 권한이 없어요.”지로운은 가장 알고 싶은 질문을 자연스럽게 끌어냈다.“강산이는 할 수 있어?”백시욱은 솔직하게 대답했다.“강산이라면 아마 가능할 거예요.”지로운은 목소리에 불안이 묻어나며 믿기 어렵다는 듯 물었다.“걔도 너랑 직급이 같은데 그런 권한이 있다고?”“아니요. 아니요. 그런 권한이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특정인을 위성으로 감시하는 건 법에 저촉될 수 있어서 국가의 정식 승인 문서가 없는 이상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 없어요. 제가 강산이는 가능하다고 한 건, 그 정도 기술력이 있고 자기 돈으로 직접 위성을 개발해서 발사할 만한 자금도 있다는 뜻이에요. 그러면 기술적으로 특정인을 장기간 관측하는 시스템을 만들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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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지은영은 손을 뻗어 이마를 만졌다. 열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손끝으로 뺨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살며시 넘겨줬다.“그럼 배는 안 고파요? 아침 좀 먹을래요?”허서령은 다시 고개를 저었다.“둘째 오빠가 점심에 밥 가져온대요. 새언니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으로 직접 해 온대요.”지은영은 다정하게 웃으며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새언니, 빨리 좋아져요. 우리 둘째 오빠 너무 걱정시키지 말고.”하지만 허서령의 마음에는 아무 파문도 일지 않았다. 미안하지도, 가슴 아프지도 않았다. 완전히 무감각한 채 텅 빈 두 눈으로 지은영을 바라봤다. 표정은 모든 색을 잃은 듯 담담했고 말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지은영은 그녀의 병을 알고 있었고, 감정이 사라진 상태라는 것도 눈치챈 듯했다. 허서령이 원하든 말든 팔을 붙잡아 강제로 일으켰다.“가요. 씻고 나와요. 밖에 날씨도 정말 좋아요. 제가 산책도 시켜 줄게요. 바람 쐬면 기분도 좀 나아질 거예요.”허서령은 화를 내지도 않았고 적극적으로 따르지도 않았다. 영혼이 빠진 꼭두각시처럼 지은영이 당기는 대로 몸을 일으켜 다리를 침대 아래로 내렸다.지은영은 쪼그려 앉아 옆에 놓인 부드러운 천 신발을 집어 그녀의 발에 신겨 줬다.신발까지 다 신긴 뒤 팔을 부축해 일으켜 한 걸음씩 화장실로 데려갔다.환자복을 입고 있어 바지를 내리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지만, 허서령은 그 간단한 동작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지은영이 대신 바지를 내려 주고 변기에 앉혀 볼일을 보게 했다. 그리고 물티슈를 들고 옆에서 기다렸다.잠시 뒤 지은영은 물티슈를 내밀며 아주 인내심 있게 말했다.“새언니, 이걸로 닦고 옆 쓰레기통에 버리면 돼요.”허서령은 물티슈를 받아 들고 지은영을 한번 올려다봤다.지은영은 곧바로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눈가에는 촉촉한 물기가 맺혀 있었고 안쓰러움과 걱정이 감춰지지 않았다.‘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것 같은데 은영이는 왜 이런 눈빛으로 나를 보는 걸까?’허서령은 깨끗이 닦은 뒤 물티슈를 휴지통에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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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입원 동 밖 작은 정원에는 나무와 녹색 식물이 많았다. 푸른 잔디밭은 햇볕 아래 느긋하게 펼쳐져 있었다.따뜻한 노란 햇볕이 무성한 나뭇잎 사이로 비쳐 얼룩덜룩한 그림자를 만들었다. 허서령과 지은영은 긴 나무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공기에는 풀 냄새가 싱그럽게 섞여 있었다. 여름 아침 특유의 뜨거움과 서늘함을 함께 머금은 바람이 천천히 스쳐 지나갔다.하지만 허서령은 편안함을 느끼지 못했다. 투명한 관 속에 갇힌 것 같았다. 눈앞의 세상은 전부 보이는데 자신은 몸을 돌릴 공간조차 없는 좁은 세계에 갇혀 숨이 막혔다.처음 병이 생겼을 무렵에는 증상이 아직 심하지 않았다. 그때 어머니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은 이런 것들이었다.“네가 우울할 게 뭐가 있어? 그냥 좋게 생각하면 되지.”“뭐가 그렇게 슬퍼? 할 일이 없어서 그래. 빨리 일자리나 구해. 돈 벌기 바빠지면 슬플 시간도 없어.”“뭐가 힘들다는 거야? 나는 너보다 백 배 더 힘들어. 네가 유난 떠는 거고, 한가해서 그러는 거고, 괜히 일을 만드는 거야...”어쩌면 그게 세상이 우울증을 얼마나 이해하지 못하는지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 주는 말들이었다.허서령은 고개를 돌려 지은영을 바라봤다.시선을 느낀 지은영이 웃으며 물었다.“왜요, 새언니?”허서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 병을 직접 겪어 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마음을 함께 느끼고 이해할 수 있을까.‘지은영도 언젠가는 어머니처럼 생각하게 될까? 네가 너무 많이 생각해서 그렇다고, 너무 유난을 떨어서 그렇다고, 그냥 마음만 편히 먹으면 낫는다고...’이 병은 주변 사람까지 너무 지치게 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크고 계속 옆 사람에게 영향을 줬다.‘시간이 오래 지나면 모두 나에게 지쳐 버리지는 않을까... 싫어하고 귀찮아하다가 조금씩 멀어지는 건 아닐까...’“은영아, 나 진짜 괜찮아. 계속 병원에 같이 있을 필요 없어.”허서령은 지은영이 자신의 부정적인 기운에 계속 휩쓸리지 않게 보내고 싶었다.“제가 새언니를 따라다니며 돌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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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아이는 벤치 위의 낙엽을 집어 힘껏 던졌다.낙엽이 바닥에 떨어지자 아이는 까르르 웃었다.허서령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낙엽을 주워 왔다. 얼굴에는 점점 웃음이 늘었고 몸짓도 한결 자연스럽고 활발해졌다.심인혜와 지은영은 말없이 그 모습을 바라봤다. 허서령의 관심은 온통 아이에게 가 있었다.심인혜 입장에서는 허서령이 자신에게는 안부 한마디 묻지 않고 지금 어떻게 지내는지조차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반면 지은영은 알고 있었다. 허서령이 깨어난 지 이틀이 되도록 감정이 계속 마비된 상태였는데, 아이를 보고 나서야 처음으로 진심으로 웃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것을.허서령은 아이와 함께 낙엽을 가지고 놀았다.허서령은 낙엽을 아주 많이 주워 두 손 가득 모았다. 그러고는 아이의 머리 위로 흩뿌렸다. 아이는 고개를 들어 머리 위에서 잎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었고, 허서령을 따라 낙엽을 집어 던지기 시작했다.아이가 바닥에 앉자 허서령도 다리를 포개고 앉았다. 두 사람은 눈앞에 쌓인 낙엽을 가지고 한참을 놀았다.심인혜가 몸을 조금 기울여 가까이 다가왔다.“서령아, 백시욱이 이혼에 동의했어. 이혼 합의서도 다 썼고 아이는 내가 키우기로 했어.”허서령은 시선이 계속 아이에게만 머문 채 담담하게 대답했다.“축하해. 쓰레기 같은 남자랑 헤어졌으니까 앞으로는 점점 더 잘될 거야.”“너도 점점 더 좋아질 거야.”허서령은 그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심인혜는 허서령이 아이를 잃은 데다 지금 병까지 심해졌다는 걸 알고 있었다.“나는 울심시로 돌아가서 다시 일하려고 해. 아이는 부모님께 맡길 거고.”“응.”“앞으로는 제산시에 자주 와서 널 보기는 힘들 것 같아. 그래도 SNS 연락은 끊지 말자. 무슨 일 있으면 뭐든 나한테 얘기해도 돼.”“응.”허서령은 여전히 차분했다.“병원도 꼭 잘 다니고 약도 잘 먹어. 치료도 제대로 받아야 해. 너랑 지강산은 아직 젊고 앞으로 살아갈 날이 정말 길어. 결국 다 갖게 될 거야. 돈도, 일도, 행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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