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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671 - チャプター 680

684 チャプター

제671화

정윤슬이 망설이던 그때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정윤슬은 문 쪽을 돌아봤다.순간 바닥에 누워 있던 지태일이 번개처럼 일어났다. 이불과 얇은 요를 침대 밑으로 쑤셔 넣더니 이불을 들치고 정윤슬의 옆으로 뛰어들었다.정윤슬은 깜짝 놀라 몸을 움츠리고 옆에 누운 남자를 바라봤다.지태일은 머리맡 조명을 켜고는 이불로 하반신을 덮고 침대 머리에 기대어 살짝 숨을 고른 뒤 대답했다.“들어오세요.”방문이 열렸다.정윤슬은 황급히 일어나 지태일과 나란히 앉았다. 지용식이 국 탕 그릇을 들고 조심조심 들어와 인자한 표정을 지으며 나직하게 말했다.“태일아, 윤슬아, 늦게 방해해서 미안하구나. 할아버지가 탕을 끓였는데 너무 많이 만들어서 남겼지 뭐냐. 버리긴 아까워서 태일이한테 한 그릇 가져왔다.”지태일은 눈살을 찌푸렸다.“할아버지, 저 양치했어요. 안 마실래요.”“그냥 한 그릇인데, 마시고 입안 헹궈도 괜찮아. 얼른 마셔.”지용식은 직접 침대 옆으로 가져와 내밀었다.지태일은 어쩔 수 없이 그릇을 받았다. 거무스름한 국물을 보고 물었다.“무슨 탕인데요?”“그냥 몸에 좋은 약선탕이야. 평소 내가 몸보신하려고 마시는 건데 오늘은 너무 많이 끓였어. 버리자니 아깝잖아.”“큰아버지나 아버지 갖다 드리세요.”지태일은 할아버지 말을 믿지 않았다.지용식의 표정이 확 굳었다.“잔말 말고 어서 마셔.”평소 효심이 깊은 지태일은 결국 한숨을 쉬고 그릇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정윤슬은 긴장한 눈빛으로 그 모습을 지켜봤다.지태일의 목울대가 여러 번 움직였다. 몇 모금 만에 국을 다 마시고 빈 그릇을 건넸다.그제야 지용식의 얼굴에 환한 웃음이 번졌다.“잘했다. 다 마셨구나. 그럼 푹 쉬어라. 잘 자.”정윤슬도 공손히 인사했다.“안녕히 주무세요. 할아버지.”문 앞까지 간 지용식이 몸을 돌렸다.“윤슬아, 이리 와서 문 잠그렴.”정윤슬은 무슨 뜻인지 몰랐지만 얌전히 침대에서 내려와 할아버지를 따라갔다. 그가 문을 닫고 나가자 잠금장치를 걸었다.뒤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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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2화

정윤슬은 옆에 놓인 작은 주전자에서 찬물을 따라 컵을 들고 지태일 옆에 쪼그려 앉았다.“찬물 좀 드셔 보세요. 나아지실지도 몰라요.”지태일은 물을 받아 단숨에 마셨다.그는 이불을 내려놓고 뜨거운 숨을 내쉬며 정윤슬을 돌아봤다. 몸이 여전히 후끈거렸다.정윤슬은 긴 검은 머리를 풀어 내리고 얇고 산뜻한 잠옷을 입고 있었다. 크고 맑은 눈에 보드라운 분홍빛 뺨까지, 청순하고 사랑스러웠다.지태일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입안이 바짝 말라온 그는 컵을 돌려주며 말했다.“고마워. 이제 괜찮아.”정윤슬은 컵을 침대 옆 탁자에 놓고 다시 누워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지태일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그리고 일어나 욕실로 들어갔다.잠시 뒤 욕실에서 샤워기 물소리가 들렸다.정윤슬은 이제야 무슨 일인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그래서 불안한 마음으로 옆으로 누워 이불을 끌어안았다.머릿속이 복잡했다.할아버지의 의도는 너무도 분명했다.정윤슬도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다. 지용식은 2억이이 넘는 돈을 들여 정윤슬의 할아버지를 치료해 줬고, 그 대가로 정윤슬을 맏손자 며느리로 맞았다.‘그런데 아무 감정도 없다는 이유로 두 할아버지를 속이고 지태일과 가짜 결혼 생활을 하면서, 남편에게는 아무것도 해 주지 않는 게 과연 옳은 일일까?’생각해 보니 너무 양심 없는 짓 같았다.‘차라리 태일 오빠와 잠자리를 갖고 아이까지 낳아 주는 편이 더 제대로 은혜를 갚는 길 아닐까? 하지만 태일 오빠는 나를 좋아하지 않고 진짜 부부가 되길 바라지도 않아.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까?’고민으로 잠이 오지 않았던 정윤슬은 무릎을 끌어안고 턱을 얹은 채 생각에 잠겼다.잠시 뒤 욕실 문이 열리고, 지태일이 잠옷 바지만 입은 채 나왔다. 머리는 아직 조금 젖어 있었다. 찬물 샤워를 한 탓에 몸에서 냉기가 도는 듯했다. 그는 마른 수건으로 머리를 닦으며 정윤슬을 바라봤다.“내가 깨웠어?”정윤슬은 고개를 들었다.넓은 어깨와 좁은 허리, 다부진 근육에는 오랫동안 운동해 온 흔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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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3화

할아버지 댁에서 돌아온 뒤 정윤슬은 지태일과의 사이에 설명하기 어려운 어색함이 생겼다고 느꼈다.지태일은 전보다 더 말이 없어졌다.그는 일하느라 몹시 바빴다.정윤슬은 집에서 공부하고 집안일을 하며, 틈이 나면 꽃을 키우거나 드라마와 숏폼을 봤다. 제법 알차게 하루하루를 보냈다.지태일은 가끔 일찍 퇴근해 정윤슬과 저녁을 먹었다.정윤슬이 책을 읽든 휴대폰을 보든 지태일은 늘 거실에 함께 앉아 있다가 정윤슬이 방으로 들어갈 때까지 곁을 지켰다.그래도 두 사람은 대화를 거의 나누지 않았다.때로는 듬직한 오빠 같고 때로는 세심하게 챙기는 아버지 같았다. 정윤슬은 그와 있으면 마음이 놓였다.어느 날, 지태일은 강령원에서 배 한 상자와 배즙을 가져왔다.“서령이가 너 먹으라고 보냈어.”정윤슬은 그 배를 한참 동안 먹었다.배를 깎을 때 지태일이 집에 있으면 정윤슬은 꼭 반으로 나눠 줬다.지태일은 반쪽으로 잘린 배를 잠시 바라보다 말했다.“난 안 먹어. 너 먹어.”정윤슬은 지태일도 배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런데 왜인지 정윤슬이 깎아 주는 배는 매번 마다했다.주말 아침, 지태일은 일찍 일어나 정윤슬과 아침을 먹었다. 식사 후에도 출근하지 않았다.정윤슬이 가방을 메고 차 키를 들고 거실을 지나는데 지태일이 소파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태일 오빠, 오늘 출근 안 하세요?”지태일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올려다봤다.“오늘 쉬어. 어디 가?”‘쉰다고?’결혼한 뒤로 지태일이 쉬는 건 처음 봤다. 정말 드문 일이었다.“마트 가서 생필품이랑 먹을 것 좀 사려고요.”“같이 가자.”지태일은 일어나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정윤슬이 의아하게 물었다.“오빠도 살 게 있으세요?”“응.”지태일이 고개를 끄덕였다.정윤슬은 더 묻지 않고 그와 함께 차를 타고 마트로 갔다.대형마트에 들어서자 지태일은 카트를 밀며 정윤슬의 뒤를 따랐다.정윤슬이 오른쪽으로 가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가면 왼쪽으로 따라왔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그는 진열대를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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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4화

정윤슬은 얼른 차에 타서 문을 잠그고 유리창 너머로 그를 바라봤다.지태일이 향하는 곳에서는 남자 한 명이 주차장 구석 기둥에 기대 다른 남자와 수상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지태일이 가까워지자 남자는 그를 알아본 듯 손에 든 물건을 내던지고 황급히 달아났다.지태일은 날렵하게 달려가 발길질 한 번으로 남자를 쓰러뜨렸다.다른 남자도 놀라서 반대쪽으로 달아났다. 정윤슬이 있는 출구 쪽이었다.지태일은 휴대폰을 꺼내 있는 힘껏 던졌다. 휴대폰이 다른 남자의 뒤통수를 정확히 가격했다. 남자는 비틀거리며 머리를 감쌌다.지태일은 빠르게 쫓아가 몇 번 발로 차고 쇠 주먹 같은 주먹으로 배를 쳐 무릎을 꿇렸다.그사이 처음 쓰러졌던 남자가 일어나 도망치려 했다.서로 반대쪽으로 도망치는 범인 두 명을 혼자 잡기는 어려웠다.바로 그때 정윤슬이 차에서 내려 달려왔다.눈앞을 스쳐 가는 정윤슬의 모습에 지태일은 깜짝 놀라며, 붙잡은 범인을 바닥에 눌러 제압한 채 황급히 외쳤다.“윤슬아, 돌아가!”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윤슬이 달아나는 남자 뒤에서 뛰어올라 날아 차기를 했다. 남자는 그대로 엎어졌다.정윤슬은 달려가 남자의 손목을 비틀어 등 뒤로 제압하고 무릎으로 등을 눌렀다.“아악!”남자가 고통에 비명을 질렀다.정윤슬은 움직임이 날쌨다. 힘이 세 보이지는 않아도 탄탄한 기술이 있었다.지태일은 넋이 나갔다.정윤슬이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무술을 배우고 태권도도 몇 년 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었다.하지만 작고 여린 모습만 봤기에 실제로 이렇게 잘 싸울 줄은 몰랐다.지태일은 범인을 붙잡고 일어나 멀쩡한 휴대폰을 주워 동료들에게 지원을 요청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지원 인력이 도착했다.그들은 범인 두 명을 데리고 경찰서로 돌아갔다.지태일은 바빠서 자취를 감췄다. 정윤슬이 긴 의자에 앉아 있자 여경 한 명이 따뜻한 물 한 잔을 건네며 상냥하게 웃었다.“물 드세요.”“감사합니다.”정윤슬은 따뜻한 물컵을 받았다.물을 마시며 둘러보니 경찰서 안의 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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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5화

정윤슬은 오랫동안 얌전히 기다렸다.아침부터 정오까지 앉아 있다 엉덩이가 아프면 일어나 걷고, 배가 고프면 물을 두 잔 마시며 버텼다.지태일이 나온 시간은 오후 한 시였다.정윤슬을 보는 순간 그는 집에 먼저 보내야 한다는 걸 깜빡한 사실을 깨달았다. 경찰서에서 몇 시간이나 무작정 기다리게 한 것이다.죄책감이 밀려오는 걸 느끼며 지태일은 성큼 다가갔다.“윤슬아.”“태일 오빠.”정윤슬이 반갑게 웃었다. 드디어 집에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뻤다.“미안해.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네.”정윤슬은 맑은 눈으로 태연하게 웃었다.“괜찮아요. 어차피 바쁜 일도 없었어요.”“내가 데려다줄게.”“일은 다 끝나셨어요?”“응, 끝났어.”“네.”정윤슬은 그를 따라 경찰서를 나섰다.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정윤슬이 궁금해 물었다.“태일 오빠, 그 두 사람은 누구예요?”“한 명은 마약 판매책, 다른 한 명은 투약자야. 지하 주차장에서 몰래 거래하고 있었어. 그 판매책은 내가 오랫동안 찾던 놈이거든.”“그랬군요.”지태일은 앞만 보고 운전하며 진지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다음부터 그러지 마. 위험한 일이 생기면 숨거나 도망쳐. 스스로 지킬 능력이 있어도 일부러 위험 속으로 뛰어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정윤슬은 목소리에 불쾌감이 섞여 있다는 걸 느꼈다.칭찬해 줄 줄 알았는데 도리어 혼이 났다.“네.”정윤슬은 몰래 한숨을 쉬고 차창 밖을 바라봤다. 마음이 무거웠다.집에 돌아와서 지태일은 장을 본 식자재를 냉장고에 넣었고, 정윤슬은 생필품을 방으로 가져갔다.봉투 안에 지태일의 속옷과 양말까지 들어 있다는 걸 깜빡했다.그때 지태일이 방문을 두드렸다.“들어오세요.”정윤슬은 치약과 휴지를 정리하고 욕실에서 나오던 참이었다.지태일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내 속옷도 그 봉투에 있어.”그는 침대 옆에 놓인 봉투를 가리켰다.정윤슬은 그제야 생각났다.“이따 제가 세탁기에 넣고 빨아 드릴게요.”“그래.”지태일은 다가오다가 멈췄다. 굳이 가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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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6화

하루 세 끼를 먹으며 두 사람은 평범하고 조용한 일상을 보냈다.겉보기에는 평화로웠지만 정윤슬의 마음 한편에는 늘 불안이 남아 있었다.할아버지는 수술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의사는 오 년 이상 생존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정윤슬도 한시름 놓았다.할아버지는 퇴원 후 요양원으로 옮겨졌다.서령 언니도 퇴원했다. 우울증은 나았지만 정윤슬을 잊어버렸다.지태일은 직장일 뿐 아니라 허서령의 아버지 사건을 뒤집을 증거까지 찾아다니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퇴근 시간은 갈수록 늦어졌고, 며칠씩 얼굴을 못 보고 메신저로만 연락할 때도 있었다.[오늘 바빠. 못 들어가.][임무 나감.][늦게 들어가.]메시지는 늘 짧고 간결했다. 말수를 아끼는 그답게 군더더기가 없었다.정윤슬도 차츰 익숙해졌다.결혼하고 처음 몇 달 동안 지태일은 가족 결제 한도를 열어 줬지만 정윤슬은 매달 40만 원도 채 쓰지 않았다.그러자 나중에는 결제 한도를 없애고 계좌로 직접 돈을 보내 주기 시작했다. 어떤 달에는 400만 원, 또 어떤 달에는 600만 원이었다.집에 없어도 돈만큼은 빠짐없이 보내 주는 남편, 이런 결혼을 바라는 여자가 얼마나 많을까?시댁 식구들과 갈등할 일도 없고 키울 아이도 없으며 남편 뒷바라지할 필요도 없다. 매달 수백만 원이 꼬박꼬박 들어왔다.나중에 서령 언니가 정윤슬과 지은영을 찾아와 강산 오빠에게 로맨틱하게 청혼할 계획을 의논했다. 정윤슬은 지은영과 이틀 동안 준비했다.허서령의 청혼 파티에서 사랑하는 두 사람이 드디어 맺어지는 모습을 보며 정윤슬도 몰래 눈물을 훔쳤다.반년 뒤, 허서령은 귀여운 딸을 낳았다. 이름은 예안이였다. 온 가족이 기쁨에 휩싸였다.정윤슬도 서령 언니와 강산 오빠의 행복이 기뻤다.하지만 기쁜 시간은 오래가지 못했다.석박사 통합과정 진학을 준비하던 어느 날, 할아버지가 다시 입원했다.반년 동안 나은 듯했던 병이 재발했고 암세포가 전이된 것이다.할아버지는 고령이라 치료를 견디지 못했고 두 달도 지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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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7화

지태일은 단 한 번도 선을 넘지 않았다. 여전히 서로 존중하며 절제와 예의를 지켰다.그런 생활이 의외로 편안했다. 정윤슬도 조금씩 할아버지를 잃은 슬픔에서 벗어났다.주말이었다.정윤슬은 지도교수와 선배들을 만나 앞으로 몇 년 동안 진행할 연구 주제와 학업 방향을 논의했다.저녁에는 선배가 차로 집 앞까지 데려다줬다.정윤슬은 대문 앞에서 내려 차에 탄 선배에게 공손히 작별 인사를 했다.“정윤슬.”강도진이 불러 세우더니 운전석 문을 열고 나와 정윤슬의 곁으로 왔다.“선배, 무슨 일 있으세요?”강도진이 궁금한 듯 물었다.“왜 기숙사에 안 들어가? 우리 수업도 빡빡하고 연구할 것도 많잖아. 학교에 사는 게 훨씬 편할 텐데.”정윤슬은 담담히 웃었다.“사실 여기서 학교까지 그렇게 멀지 않아요.”강도진은 정윤슬 뒤에 있는 옛 저택을 올려다봤다. 제산시에서 이런 집에 살 정도면 어마어마한 부자였다.그는 주머니에서 유리병 하나를 꺼내 건넸다.“정윤슬, 이거 받아.”“뭔데요?”정윤슬은 호기심 어린 얼굴로 병을 받아 자세히 살폈다.“꽃송이 버섯이야.”정윤슬은 깜짝 놀랐다. 의생명공학을 공부하는 학생에게 이런 균주는 거부하기 어려운 선물이었다.꽃송이 버섯은 ‘꿈의 버섯’이라 불리기도 했다. 배양지 위에 하얀 수국이 피어난 듯한 모양이었고 은빛 산호 같기도 했다. 신비롭게 아름다웠다.“감사해요, 선배.”정윤슬이 활짝 웃었다.“다음 달에 보자.”강도진은 손을 흔들고 차에 올랐다.“네.”정윤슬도 손을 흔들었다. 웃음이 더욱 부드러워졌다.“다음 달에 봬요.”강도진의 차가 떠나는 걸 보고 정윤슬은 투명한 유리병을 내려다봤다. 안에 담긴 균주를 자세히 살폈다.그때 갑자기 자동차 경적이 울렸다.빵!정윤슬은 깜짝 놀라 유리병을 떨어뜨릴 뻔했다. 황급히 품에 끌어안고 고개를 들었다. 지태일의 차가 대문 앞에서 진입하려 하고 있었다.정윤슬은 얼른 옆으로 비켜 길을 터 줬다.지태일의 차가 앞으로 움직였다.대문이 열리자 지태일은 차를 몰고 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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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8화

“네 마음대로 해.”지태일은 무덤덤하게 대답하고 시선을 거뒀다. 꺼진 휴대폰 화면을 내려다보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정윤슬의 마음이 가라앉았다. 원래 집에서 통학하려던 결심이 ‘네 마음대로 해’라는 말 한마디에 흔들렸다.너무 성의 없는 대답이었다. 붙잡을 생각은 조금도 없어 보였다. 자신이 있든 없든 상관없다는 뜻 같았다.‘차라리 내가 없으면 더 편하려나?’결혼한 지 반년이 지났지만 지태일의 태도는 변함없었다. 여동생을 돌보듯 아끼고 배려하면서도 늘 자제했고, 존중하면서도 거리를 뒀다.“그럼 기숙사에 들어갈게요.”정윤슬은 고개를 숙였다. 손에 든 유리병을 바라보는 눈에 쓸쓸함이 묻어났다. 마음이 답답했다.지태일은 휴대폰을 쥔 손끝에 힘을 줬다. 마디가 하얗게 질리고 눈빛이 어두워졌다. 한참 뒤에야 물었다.“다음 달 며칠?”“25일이요.”“준비할 건 없어?”“없어요. 학교에 다 있어요.”“학교가 집에서 얼마나 먼데?”“제산 대학교요. 지하철로 세 정거장이에요.”“세 정거장? 십오 분이면 가는데, 왜...”지태일은 말을 끝맺지 못했다.‘집에서 안 다니려고?’라는 말이 목에 걸려 나오지 않았다.정윤슬은 한참 기다려도 뒷말이 없자 궁금해 물었다.“‘왜’ 뭐요?”“아니야.”지태일이 일어났다.“저녁 해 줄게.”정윤슬은 서둘러 쫓아가 그의 단단한 팔을 잡았다.“태일 오빠, 제가 할게요.”“그럼 난 고기 썰고 채소 씻을게.”정윤슬이 흐뭇하게 웃으며 끄덕였다.“네.”그녀는 유리병을 탁자에 놓고 가방을 소파에 내려놓았다.지태일은 탁자 위의 균주를 바라봤다. 눈빛이 더욱 어두워졌다.정윤슬도 그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가 평소처럼 함께 요리하고 밥을 먹었다. 하지만 오늘 지태일은 유난히 말이 없었다.정윤슬은 요리하고 지태일은 설거지했다.언제부터인지 자연스러운 습관이 되어 있었다.저녁을 먹은 뒤 정윤슬은 가방을 들고 방에 돌아가 씻었다.잠들려던 순간 거실에 꽃송이 버섯을 놓고 온 게 생각났다.잠옷 차림으로 거실에 나와 둘러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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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9화

지태일이 차갑게 물었다.“선물이 그렇게 부족해? 누가 뭘 주든 다 받을 거야?”정윤슬은 말문이 막혔다.“그건...”“그럼 받은 만큼 답례해야 할 텐데, 그 남자한테는 뭘 줄 생각이야?”“저는...”지태일의 목소리에 불쾌감이 더해졌다.“그 남자는 네가 유부녀인 줄 몰라?”“네?”정윤슬은 그대로 얼어붙었다.생각해 보니 자신조차 결혼한 여자라는 사실을 잊을 때가 많았다.지금의 생활은 독신일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저 남자 룸메이트 하나가 생겼을 뿐이었다.하지만 결혼한 사람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남자에게 선물을 받는 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지씨 집안 남자들은 유난히 원칙을 중시했다. 지태일도 예외가 아니었다.‘사랑 없는 결혼이라도 혼인 관계인 아내가 선을 넘는 행동은 용납하지 않을 생각일까?’정윤슬은 잠시 생각하다 유리병을 안고 또박또박 말했다.“태일 오빠,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제 물건을 마음대로 버리시면 안 되죠. 그건 저를 존중하지 않는 행동이에요.”“미안해.”지태일은 망설임 없이 즉시 사과했다.뜻밖의 사과에 정윤슬은 잠시 멍해졌다.그런데 정신을 차릴 틈도 없이 지태일은 진지하고 단호하게 덧붙였다.“그건 버리든지 돌려줘. 그리고 네가 남편 있는 여자라는 것도 알려 주고.”정윤슬의 가슴에 묘한 떨림이 일며, 심장 박동이 흐트러졌다.남자의 선물을 받았다는 이유로 이렇게 화를 내다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태일 오빠, 혹시 질투하세요?”정윤슬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심장이 두근거려, 기대에 찬 눈빛으로 그를 바라봤다.지태일은 피식 웃고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려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하! 농담해? 내가 왜 질투를 해?”정윤슬의 들뜬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 착각한 모양이었다.“알겠어요. 꽃송이 버섯은 선배에게 돌려드릴게요.”지태일은 차분하고 진지하게 말했다.“앞으로 선물 받고 싶은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다른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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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0화

비 오는 날의 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우산으로도 빗물을 다 막을 수 없었다. 정윤슬은 역에 도착할 때까지 셔츠와 바지가 젖었고, 지하철 안에는 냉방이 강하게 틀어져 있었다.지하철을 두 번이나 타고 왕복하는 동안 정윤슬은 몸이 차갑게 식어 감기에 걸렸다.집에 돌아와 젖은 옷을 벗고 따뜻한 물로 샤워했다. 그 뒤 기운 없이 침대에 누워 쉬었다.공부할 기운도 없었다.비몽사몽 잠든 사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깊은 잠에서 깨어 보니 방 안은 온통 어두워져 있었다.정윤슬은 이불을 걷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몸이 몹시 춥고 머리가 무거웠다. 다리에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정신이 몽롱한 채 머리맡 불을 켜고 문으로 걸어갔다.문을 열었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지태일인 줄 알았다. 문짝에 손을 짚고 반쯤 감긴 눈으로 중얼거렸다.“태일 오빠, 선물은 선배한테 돌려드렸어요. 저녁은 안 먹을래요. 오빠는 배달시켜 드세요.”“오늘 왜 이렇게 일찍 자?”지태일의 가벼운 목소리에 걱정이 묻어났다.“너무 졸려요. 낮부터 계속 잤어요.”“그럼 점심도 안 먹었어?”“네.”“오늘 비 엄청 왔는데 밖에도 나갔어?”“네.”정윤슬은 눈을 감고 문에 기대 다시 졸았다.“몸이 안 좋은 거 아니야?”“그냥 그래요.”정윤슬은 몸과 머리가 무겁고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지태일이 한 걸음 다가와 이마에 손을 얹었다.차가운 손바닥이 이마에 닿자 정윤슬은 조금 정신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접촉에 긴장됐다.지태일은 몇 초간 이마를 짚어 보다가 얼른 손을 거두고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가자. 병원 가야겠어.”“괜찮아요. 좀 쉬면 나아요. 병원 안 가도 돼요.”지태일은 엄하게 말했다.“열이 너무 높아. 사십도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정윤슬이 피식 웃었다.“태일 오빠, 농담도 잘하시네요.”지태일은 표정을 굳히고 정윤슬을 지나 방으로 들어가 옷장에서 외투 하나를 서둘러 꺼냈다.정윤슬은 의아해서 돌아봤다.바로 그 순간 지태일이 외투를 어깨에 걸쳐 주더니 허리를 숙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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