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5년 만의 재회, 그의 폭주: Chapter 661 - Chapter 670

684 Chapters

제661화

정윤슬이 요리하는 사이 지태일은 방에서 씻고 며칠 동안 자란 수염도 말끔히 깎았다.회색 티셔츠와 검은 긴바지 차림으로 나온 지태일은 짧은 머리카락에 물기가 조금 남아 있었다. 거칠고 야성적인 분위기에 깊고 선 굵은 이목구비가 어우러졌다. 막 씻고 나온 터라 한결 산뜻해 보였다.그는 식탁에 앉아 정윤슬과 마주 보고 밥을 먹었다.두 사람의 저녁상에는 반찬 두 가지와 국 하나가 놓였다.토마토 달걀볶음, 양배추 볶음, 돼지고기를 넣은 된장국이었다.지태일에게는 지나치게 담백한 식단이었지만 가끔은 이렇게 가볍게 먹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정윤슬의 요리 실력은 예상보다 훨씬 뛰어났다.지태일이 식사하며 물었다.“요리 잘하네. 자주 해?”“네. 여섯 살 때부터 밥이랑 반찬 만드는 걸 배웠어요.”지태일의 젓가락이 멈췄다.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들었다.“여섯 살?”“제가 여섯 살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두 분 다 절 데려가기 싫어해서 할아버지한테 맡기셨죠.”정윤슬은 덤덤하게, 심지어 웃으면서 말했지만 시선은 밥그릇에 머물렀다. 젓가락을 천천히 움직이며 이야기를 이었다.“할아버지는 공사장에서 일하셔서 제 밥을 챙길 시간이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직접 배웠죠. 가스레인지가 높아서 의자를 밟고 올라가 채소를 씻고 볶았어요.”지태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부모님은 널 돌보지 않으셨다고?”“네.”“생활비는?”“두 분이 각각 20만 원씩 보내 주셨고 학비도 반반 부담하셨어요. 열여덟 살이 되고 나서는 끊겼지만요.”“자주 보러 오셨어?”“아니요.”“대학 등록금은 누가 내?”“아르바이트하고 장학금도 받아요. 아껴 쓰면 충분해요.”지태일은 한숨을 내쉬고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등받이에 기대어 눈살을 찌푸린 채 윤슬을 바라봤다. 더는 아무것도 물을 수 없었다.그제야 이해가 됐다. 맑고 예쁜 어린 여자가 아무 감정도 없는 열 살 연상의 남자와 결혼하라는 할아버지의 뜻을 왜 따랐는지.정윤슬에게는 선택할 여유조차 없었다.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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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2화

정윤슬은 감탄하면서도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가족이 뒤에서 밀어준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구나...’자신은 도움은커녕 부모님이 만나러 온 횟수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그런데 지태일의 아내로 얼마나 오래 지낼 수 있을까?’정윤슬은 담담하게 웃고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숙였다.“저까지 먹여 살려 주셔서 감사해요, 태일 오빠.”그 순간 윤슬은 혼자 힘으로 서지 못해 남자에게 의지해야만 하는 덩굴식물 같았다.그런 자신이 한심했지만 지금은 방법이 없었다.‘먹여 살린다고?’지태일은 그 표현이 마음에 들었다.“지내는 데 불편한 건 없어?”정윤슬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괜찮아요.”“우리 집안에 대해 한 가지 말해 줄게. 매달 이틀 정도는 할아버지 댁에 가서 지내야 해. 거기선 방을 따로 쓸 수 없으니까 마음의 준비를 해 둬.”정윤슬은 움찔하며 긴장했다.“왜 따로 자면 안 되는데요?”“우린 부부니까.”정윤슬은 깊이 숨을 내쉬었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졌다.지태일은 웃으며 정윤슬의 접시에 반찬을 덜어 줬다.“일단 밥부터 먹자. 닥치면 다 해결될 거야. 너무 걱정하지 마.”두 사람은 조용히 식사를 계속했다.잠시 뒤 정윤슬이 다시 물었다.“태일 오빠, 서령 언니 상태는 좀 어떠세요?”“별로 좋지 않아.”“언니 아버지 사건은 재심 가능성이 있을까요?”“있을 거야. 나도 계속 조사하고 있어.”“도망친 운전자는 잡혔어요?”“아직.”“그럼 그냥 그렇게 끝나는 거예요?”“그럴 리가. 내 동생도 계속 찾고 있어. 아내가 그렇게 다치고 아이까지 잃었는데 가만히 있겠어?”정윤슬은 마음이 뭉클해졌다.“강산 오빠는 제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좋은 남자예요. 절대 서령 언니를 실망하게 하지 않을 거예요.”그렇게 말하고 윤슬은 젓가락을 들었다.지태일이 미소 지었다.“윤슬아, 남편 앞에서 다른 남자를 ‘최고’라고 칭찬하면 남편 체면이 안 서잖아?”‘남편’이라는 말에 윤슬의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농담인 줄 알면서도 긴장해서 사과했다.“죄송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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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3화

지태일은 다음 날 정오가 되어서야 일어났다.커튼 사이로 한낮의 햇살이 들어와 방 안을 환하게 밝혔다.지태일은 씻고 나와 옷장 문을 열었다. 은은하고 산뜻한 꽃향기가 코끝에 닿았다.잠시 멈칫한 그는 옷장을 들여다봤다. 옷들이 종류와 색깔에 따라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 자신의 옷장이 이렇게 깔끔하고 보기 좋을 수 있다는 사실도, 좋은 향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옷걸이 봉에 뜨개 무늬가 들어간 작은 향낭이 걸려 있었다. 지태일은 그것을 내려 향기를 맡았다.진한 꽃향기가 코끝으로 스며들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평소 이런 것에는 문외한이었다. 동생에게서 늘 좋은 향이 나길래 향수를 뿌리는 줄 알았는데 동생은 극구 부인했었다.그런데 옷장에 이런 귀엽고 향기로운 물건 하나만 걸어 두어도 옷에 향이 배는 것이었다.지태일은 향낭을 다시 걸고 흰색 편한 상의와 검은 바지를 꺼내 입었다.갈아입은 잠옷을 들고 방을 나섰다.초가을의 따스한 햇볕 아래 작은 정원에 늘씬한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정윤슬은 귀여운 꽃무늬 모자와 밝은색 자외선 차단 재킷을 입고 쪼그려 앉아 낮은 울타리를 꽂고 있었다.잡초가 무성하던 땅은 어느새 말끔히 정리돼 있었다. 그곳에는 아직 작고 기운 없어 보이는 묘목 몇 그루가 심겨 있었다.지태일은 서둘러 세탁실에 옷을 넣고 정원으로 나왔다.“뭐 해?”정윤슬은 소리를 듣고 벌떡 일어섰다. 괜히 가슴이 철렁했다.햇빛을 받은 지태일의 건장하고 곧은 체격은 유난히 멋있어 보였다. 느긋하게 다가오는 모습만으로도 위압감이 있어 저절로 긴장됐다.“태일 오빠, 일어나셨어요?”정윤슬은 조심스레 설명했다.“그... 정원에 있던 잡초를 다 뽑고 키우기 쉬운 금목서 비슷한 작은 꽃나무를 심었어요. 주변에는 꽃씨도 뿌렸고요. 지금은 작은 울타리를 둘러서 정원을 좀 예쁘게 꾸미는 중이에요.”지태일은 옆에 쌓인 울타리를 보고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내가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우린 법적으로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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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4화

지태일은 그 모습을 흘끗 봤다. 정윤슬은 잔뜩 당황한 얼굴로 문밖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다.정윤슬이 철문을 열고 나가자 친아버지 정태호와 이복 여동생 정하람이 서 있었다.정하람은 두 살 어린 여동생이었다. 아버지가 혼인 중 외도를 저질러 낳은 혼외자식이었다.정하람은 수십만 원짜리 명품 옷과 신발을 착용하고, 수백만짜리 가방을 들었다. 손에는 최신형 아이폰을 쥐고 화장까지 곱게 했다. 부잣집 아가씨 같은 차림이었다.아버지는 작은 금형 공장을 운영했다. 예전에는 윤슬의 양육비마저 매달 늦게 보냈고 학비를 조금 더 달라고 하면 공장 사정이 어렵다며 단 한 푼도 더 주지 않았다.“아빠.”정윤슬이 무덤덤하게 인사했다.“어쩐 일이세요?”살이 찐 정태호는 넓적한 얼굴을 딱딱하게 굳혔다. 눈빛은 싸늘했다.“날 아버지로 생각하긴 하냐? 결혼 같은 중대한 일을 의논도 안 해? 넌 겨우 스물두 살이야. 내가 널 그렇게 예쁘게 낳아 줬는데 열 살이나 많은 서른두 살 먹은 남자한테 시집가라고 했냐? 잘 알지도 못하는 남자랑 덜컥 결혼하면서 예물금도 안 받다니, 머리에 뭐가 들었어?”정윤슬은 마음이 무거워 주먹을 꽉 쥐었다.“저도 방법이 없었어요. 할아버지 치료비도 필요하고 대학원 공부도 계속해야 하니까요. 아빠는 돈을 안 내주시잖아요. 그러니 기댈 사람을 찾을 수밖에요.”정태호는 허리에 손을 얹고 버럭 화를 냈다.“네 할아버지는 곧 일흔이야. 살 만큼 사신 분한테 치료비를 그렇게 쏟아부어 봐야 돈 낭비라고!”그는 정윤슬을 손가락질했다.“그리고 여자애가 공부는 그렇게 해서 뭐 해? 대학까지 다녔으면 됐지.”정윤슬이 코웃음을 쳤다.“이미 결혼했어요. 잔소리하러 오셨으면 그만 돌아가세요.”정하람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불만을 드러냈다.“언니, 아빠한테 어떻게 그렇게 말해? 다 언니 잘되라고 하시는 말씀인데.”정윤슬이 차갑게 웃었다.“날 위한다면 대학 등록금 대 주고 대학원도 갈 수 있게 지원해 주시는 게 맞지 않아?”“언니, 아빠도 학비 대 주기 싫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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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5화

손바닥이 날아드는 순간 정윤슬은 피할 틈도 없이 본능적으로 눈을 감았다.그런데 뺨은 아프지 않았다. 대신 아버지의 끔찍한 비명이 들렸다.“아악! 아파! 놔! 당장 놓으라고!”정윤슬은 번쩍 눈을 떴다.얼굴 옆으로 뻗어 나온 강한 팔 하나가 보였다. 쇠집게 같은 손이 정태호의 두툼한 주먹을 움켜쥐고 있었다. 힘을 주자 손등의 핏줄이 도드라졌다.정태호는 통증에 손을 떨며 비명을 지르며, 당황하고 겁먹은 채 놓아 달라고 애원했다.정윤슬이 팔을 따라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그 끝에는 차갑게 굳은 지태일의 얼굴이 보였다. 곧고 건장한 체격에서 강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얼음장 같은 눈빛을 한 그는 별다른 힘도 쓰지 않는 듯했지만 정태호는 고통에 몸부림쳤다.지태일은 손을 놓기는커녕 더 세게 움켜쥐었다.“아파! 아악! 정윤슬, 이 사람더러 놓으라고 해!”정태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정하람도 당황해 아버지와 지태일을 번갈아 봤다.“누구세요? 우리 아빠 좀 놓으세요!”지태일이 엄숙하게 답했다.“정윤슬 남편입니다.”정윤슬은 심장이 쿵 내려앉은 듯했다. 온몸이 굳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정하람은 화가 나 지태일의 팔을 잡아당겼다.“우리 아빠는 그쪽 장인이에요. 전 처제고요. 그런데도 안 놓으실 거예요?”“장인과 처제라고?”지태일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곧 차갑고 위엄 있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윤슬이한테 사과하세요.”“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사과해요?”“잘못했든 말든 상관없어요. 손이 더 아프기 싫으면 사과해요.”지태일은 조금도 물러서지 않았다.정태호는 고통에 몸을 기울인 채 이를 드러내고 말했다.“미안하다.”“계속해요.”“미안해! 미안하다고!”“부족해요. 더 해요.”“미안하다. 윤슬아, 아빠가 잘못했다. 너한테 손찌검하려고 해서 미안해. 제발 이 사람 좀 멈추게 해 줘.”정윤슬은 긴장한 채 침을 삼키며 옆의 지태일을 바라봤다.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지태일은 정하람에게 시선을 돌렸다.“그쪽도 사과해요.”정하람이 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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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6화

젊고 잘생긴 데다 키가 크고 몸도 다부졌다. 차갑고 위엄 있는 분위기와 날카로운 눈빛에 절로 주눅이 들었다. 성격마저 막무가내로 강압적이고 무서울 지경이었다.정하람이 달려가 정태호를 부축했다. 목소리가 떨렸다.“아빠, 괜찮아요?”정태호는 떨리는 손을 감싼 채 지태일을 노려보며 분노를 억누르고 고개를 끄덕였다.정하람은 다시 지태일을 향했다.“우리 아빠가 장인이신데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지태일이 냉소했다.“윤슬이는 제 아내인데 당신들은 어떻게 제 아내한테 이럴 수 있죠?”정윤슬은 가슴이 세차게 뛰며 귀까지 달아올랐다. 감동한 눈에 물기가 어렸다.정하람은 말문이 막혔다.정태호가 한 걸음 다가와 한마디씩 힘주어 말했다.“내 딸 내가 때리는 건 당연한 일이야. 장인한테 손대면 천벌 받아.”“아내가 괴롭힘당하는 걸 보고도 가만히 있으면 그게 천벌 받을 짓 아닙니까?”지태일은 느긋하게 웃었다.“장인어른, 안에 들어가서 좀 쉬다 가시겠습니까? 제대로 대접해 드릴 텐데요.”정태호는 화가 나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됐네! 난 자네를 큰사위로 인정 못 해!”“인정 안 하셔도 됩니다.”지태일은 태연하게 웃었다.“제가 결혼한 건 장인어른이 아니고, 함께 살 사람도 장인어른이 아니니까요. 예의 지켜서 손님으로 오시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하지만 윤슬이를 괴롭히러 오시면 저도 가만있지 않겠습니다.”정태호는 분노로 얼굴이 시퍼렇게 질린 채 주먹을 쥐고 돌아섰다.정하람은 떠나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지태일을 번갈아 보더니 의미심장하게 입을 열었다.“형부, 아직 모르시죠? 우리 언니는 돈 벌려고 몸을 팔다가 경찰에 잡힌 적도 있어요.”정윤슬은 수치심과 분노에 몸을 떨며 주먹을 꽉 쥐었다.“정하람! 헛소리로 사람 모함하지 마!”정하람은 못 들은 척 웃으며 말을 이었다.“못 믿으시겠으면 2년 전 추석 때 카이 호텔 성매매 단속 기사 찾아보세요. 우리 언니도 그때 잡혀갔으니까요.”“너...”정윤슬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분노와 모욕감에 온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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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7화

지태일은 돌아서서 정윤슬의 앞에 서서 고개를 숙여 얼굴을 살폈다.정윤슬은 눈물을 참으며 억지웃음을 짓고는 고개를 들어 그와 눈을 맞췄다.“고마워요, 태일 오빠.”애써 강한 척하는 게 보였지만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몰랐던 지태일은 조용히 물었다.“아버지랑 동생이 찾아온 이유가 널 혼내려는 것뿐이었어?”정윤슬은 잠시 생각했다.“아마 결혼 예물금을 받으러 오셨을 거예요.”“예물금?”지태일이 잠시 멈췄다가 물었다.“네가 원하면 줄게. 하지만 그 사람들한테는 안 줘.”“필요 없어요.”정윤슬이 곧장 거절했다.“우린 진짜 부부도 아니고 언젠가 이혼할 거잖아요. 할아버지랑 부모님들이 주신 선물도 오빠 방 서랍에 넣어 뒀어요. 오빠 물건은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을 거예요.”지태일은 눈빛이 가라앉은 채 말없이 바라봤다.정윤슬은 씁쓸하게 입술을 깨물었다. 맑은 눈에는 눈물이 고였지만 감사하는 마음도 가득했다.“지씨 집안에서 지금까지 도와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할아버지 병원비도 나중에 공부 마치고 돈 벌면 꼭 갚을게요.”“안 갚아도 돼.”지태일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우리 집은 네 할아버지 병원비 정도로 어려워질 집안이 아니야.”“그래도 갚을 거예요.”정윤슬은 고개를 숙인 채 굳게 말하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지태일은 여윈 뒷모습을 보며 마음이 답답해졌다. 잠시 뒤 그도 따라 들어갔다.정원의 울타리를 다 설치하고 점심을 먹은 뒤 지태일은 출근했다.경찰서에 도착하자 동료 정찬이 보고서를 들고 다가왔다.“팀장님, 보고서 나왔습니다. 그 자식이 정말 물건을 하수구에 흘려보냈어요. 일대 배수로가 전부 오염됐습니다.”지태일은 굳은 얼굴로 보고서를 받아 들었다. 읽을수록 눈빛이 날카로워졌다.정찬이 어깨 가까이 얼굴을 들이대고 냄새를 맡더니 코를 찡그렸다.“팀장님, 오늘 웬일로 멋 부리셨어요? 향수까지 뿌리시고.”“안 뿌렸어.”지태일은 보고서를 덮으며 돌아봤다.“향이 많이 나?”정찬은 그의 가슴 쪽에서 다시 냄새를 맡았다.“진하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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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8화

“방금 팀장님 웃는 거 봤어?”정찬이 웃었다.“젊고 예쁜 아내를 얻었는데 안 웃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언제 기회 봐서 팀장님 집에 밥 먹으러 가자. 형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직접 보게.”“찬성!”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소곤소곤 계획을 세웠다....저녁 무렵, 정윤슬은 식사를 차려 놓고 한참 지태일을 기다렸지만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그의 몫을 따로 남겨 놓고 혼자 밥을 먹었다.식사 후에는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읽고 필기했다. 탁자에는 참고서가 놓여 있었다.공부에 집중한 나머지 문 열리는 소리도 듣지 못했다.지태일은 집에 들어와 문을 닫고 차 키를 내려놓았다. 거실 바닥에 발을 디디려는 순간 얼른 발을 걷고 현관으로 돌아가 신발을 갈아 신었다.슬리퍼를 신고 걸으니 발소리가 더욱 작아졌다.정윤슬은 문제에 몰두해 지태일이 옆에 앉는 것도 몰랐다.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어 탁자 위 참고서를 집으려 몸을 숙였다.그때 책에 걸린 휴대폰이 탁자 끝으로 밀려 바닥을 향해 떨어졌다.정윤슬은 뒤늦게 알아차리고 황급히 손을 뻗었다.바로 그 순간 커다란 손이 나타나 떨어지는 휴대폰을 정확하게 받아 냈다.정윤슬은 고개를 들고 깜짝 놀랐다.언제 왔는지 지태일이 쿠션 두 개 정도 떨어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순식간에 휴대폰을 받아 낸 그는 그것을 탁자에 내려놓았다.“태일 오빠, 언제 오셨어요?”정윤슬은 그를 볼 때마다 왠지 긴장됐다.“방금.”정윤슬이 주방을 가리켰다.“저녁 해 놨어요. 주방에 따뜻하게 데워 뒀으니 얼른 드세요.”“내 저녁도 만들었어?”지태일은 따뜻한 눈빛으로 되물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네. 늦게 오셔서 전 먼저 먹었어요.”“고마워, 윤슬아.”지태일은 혼자 이 집에 살기 시작한 뒤 갓 만든 따뜻한 음식을 거의 먹어 본 적이 없었다.늘 냉동해 둔 음식이거나 배달 음식이었다.너무 바쁠 때는 제대로 된 식사도 거르고 찐빵이나 밀가루빵 하나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그런데 이제 늦게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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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9화

식사 후에는 방에 돌아가 씻고 잠깐 휴대폰을 보다가 일찍 잘 생각이었다.그런데 거실을 지나며 소파에서 책을 보는 정윤슬을 발견했다. 탁자에는 자료가 잔뜩 펼쳐져 있었다.지태일은 저도 모르게 소파로 다가가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꺼냈다.정윤슬은 그가 있는 줄도 모르고 연구에 집중했다.지태일도 자리를 뜰 생각이 없었다. 뉴스를 보다가 사건 보고서를 읽었다.시간이 흘렀다. 거실에는 책장 넘기는 소리와 정윤슬이 가끔 필기하는 소리만 들렸다.두 사람은 각자 할 일에 집중했다.한참 뒤 어깨가 뻐근하고 눈이 피곤해진 정윤슬이 고개를 들었다. 지태일이 소파 반대편에서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그는 무심코 주먹으로 입을 가리고 작게 하품했다.“태일 오빠, 늦었는데 안 주무세요?”정윤슬은 책을 덮고 나직이 물었다.“아직 안 졸려.”“전 좀 졸려요.”정윤슬은 손에 든 자료와 탁자 위 책을 가지런히 쌓아 품에 안았다.“그럼 먼저 들어갈게요.”“그래, 들어가.”지태일은 태연히 답했다.정윤슬은 공손히 고개를 끄덕이고 방으로 향했다.정윤슬이 떠난 뒤 지태일은 휴대폰을 내려놓고 고개를 뒤로 젖힌 채 피곤한 눈을 감았다.그때 발소리가 들렸다. 그는 번쩍 몸을 세우고 소리 나는 쪽을 봤다.정윤슬이 급히 돌아와 쑥스러운 듯 말했다.“휴대폰을 소파에 두고 갔어요.”지태일은 소파에 놓인 휴대폰을 바라봤다.정윤슬은 다가와 휴대폰을 집어 들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안녕히 주무세요, 태일 오빠.”지태일이 입꼬리를 올렸다.“잘 자.”...정윤슬에게 결혼 생활은 이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지태일은 정말 바빴고 둘이 만나는 시간도 많지 않았다.그는 말이 적고 요구도 없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그녀에게 시키지 않았다. 집에 돌아와서도 먼저 말을 걸지 않고 옆에 조용히 앉아 휴대폰을 보거나 자기 일을 할 뿐이었다.특별한 일이 없으면 전화나 메시지도 주고받지 않았다. 서로 예의를 지키며 한집에 사는 낯선 사람들 같았다.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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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0화

지태일이 들어가 할아버지와 부모님께 인사하자 정윤슬도 따라 인사했다.이어 지태일이 자연스럽게 정윤슬을 소개했다.“인사드릴게요. 정윤슬, 제 아내입니다.”소개를 마친 지태일은 정윤슬에게 말했다.“큰아버지 가족은 이미 알지? 저쪽이 큰고모와 큰 고모부, 이쪽은 작은고모와 작은 고모부야. 그리고 큰 사촌 형, 둘째 사촌 형, 사촌 동생.”정윤슬은 긴장한 채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큰고모가 정윤슬을 위아래로 훑었다.“태일아, 이 애가 네 할아버지가 정해 준 신붓감이니? 열 살이나 어리다더니 참 젊고 예쁘네.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지태일이 담담히 되물었다.“큰고모, 말씀을 참 쉽게 하시네요. 죄송하지만 저는 배운 게 짧아서 그렇게 센 말씀은 감당이 안 되네요.”그는 윤슬의 손목을 잡고 몸을 돌렸다.“윤슬아, 내 방에 가서 짐부터 내려놓자.”큰고모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었다. 화가 난 눈으로 두 사람의 뒷모습을 노려봤다.지은영이 싱글벙글 웃었다.“큰고모, 큰오빠는 둘째 오빠처럼 부드럽고 예의 바른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한테 시비를 걸어도 큰오빠한테는 걸지 마세요. 화나면 온 가족이 무서워하거든요.”큰고모는 어색하게 웃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사람들은 다른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방에 들어온 뒤에도 정윤슬의 신경은 여전히 자신의 손목을 잡은 지태일의 커다란 손에 쏠려 있었다. 따뜻하면서도 약간 거친 손바닥에서 힘이 느껴졌다.피부를 타고 전류가 흐르는 듯한 감각에 심장이 긴장으로 뛰었다.방은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지만 침대가 하나뿐이었다.회색 침구는 단조롭고 무미건조해서 딱 남자다운 취향이었다.지태일은 정윤슬의 손목을 놓고 가방을 내려 줬다.“오늘 밤은 네가 여기서 자.”“그럼 오빠는요?”정윤슬은 주위를 둘러보며 긴장한 목소리로 물었다.지태일이 바닥을 가리켰다.“난 바닥에서 잘게.”정윤슬은 나무 바닥을 보고 걱정스러워졌다.“딱딱하고 차가울 텐데요.”“괜찮아.”지태일은 가방을 침대 발치에 놓았다.“훈련할 때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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