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Chapter 91 - Chapter 100

127 Chapters

제91화: 네 아빠의 첫 학부모 면담 (상)

‘프로젝트 미러’라는 거대한 거울이 깨지고 세 달이 흘렀다.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음모론도, 그림자 요원들의 총성도 사라진 자리에는 마침내 참된 평화가 찾아왔다. 하지만 셰어하우스 아빠들에게는 백무현과의 사투보다 훨씬 더 가슴 졸이고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새로운 미션’이 기다리고 있었다.바로 여덟 살이 된 여름이의 ‘초등학교 입학 후 첫 학부모 면담’이었다.“형님, 이거 슈트 옷깃이 약간 비뚤어진 것 같은데요.”이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태준의 넥타이를 매만졌다. 이수는 마치 비밀 공작에 임하는 특수요원처럼 각 잡힌 네이비색 슈트를 차려입고 있었다. 옆에서는 강태가 굵은 목에 맨 답답한 넥타이를 연신 잡아당기며 거울 앞에서 쩔쩔매고 있었다.“아니 무슨 초등학교 면담 가는데 사설 보안업체 총출동하는 것처럼 입냐?” 유준이 트레이닝복 상의에 차분한 셔츠를 레이어드하며 혀를 찼다. “학부모 면담의 핵심은 ‘자연스러움’과 ‘지적인 부모의 이미지’라고. 나처럼 IT 기업 CEO 느낌 살려서 가야 선생님이 신뢰를 갖지.”“뭔 소리야, 자고로 아동 교육의 기본은 예의와 중압감이다.” 강태가 어깨를 펴며 단단한 흉근을 과시했다. “선생님이 우리 여름이 조금이라도 홀대하지 못하게 딱 잡고 와야지.”“강태 씨, 제발 그 무시무시한 표정 좀 풀어요. 조폭 두목이 딸내미 학교 쳐들어가는 줄 알겠어요.” 의경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갓 구운 인절미 토스트를 식탁에 놓으며 말했다. “선생님한테 기선 제압하러 가는 게 아니라, 여름이가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지 들으러 가는 거라고요.”여름이는 분홍색 책가방을 멘 채 거실 한가운데에서 어른들의 유난스러운 모습을 보며 까르르 웃어댔다.“아빠들, 오늘 선생님이 나 학교에서 그림 잘 그렸다고 칭찬해 준댔어! 너무 긴장하지 마!”오후 2시, 하늘초등학교 1학년 3반 교실 앞.복도에는 은은한 파스텔톤 작품들과 아이들의 유치한 글짓기 종이들이 붙어 있었다. 하지만 그 화사한 복도 한가운데, 180cm가 넘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 넷이
Read more

제92화: 네 아빠의 첫 학부모 면담 (하), 그리고 뜻밖의 기선 제압

교실 안의 공기가 '프로젝트 미러'의 최후 결전 당시보다 더 팽팽하게 조여들었다.네 아빠의 이마에서 흘러내린 땀방울이 어린이용 책상 위로 툭 떨어졌다. 담임인 박은지 선생님은 부드럽지만 뼈 있는 눈빛으로 네 남자를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아… 선생님, 그게 말입니다."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전직 검사 출신의 이태준이었다. 그는 법정에서 중형을 선고할 때보다 더 신중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해명을 시작했다."여름이가… 동화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상상력이 아주 풍부한 편입니다. '쇠파이프'나 '문 부수기' 같은 건… 요즘 아이들 보는 메타버스 게임이나 전래동화에 나오는 비유적인 표현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허허.""맞습니다, 선생님!" 유준이 얼른 거들었다. "컴퓨터로 남의 비밀을 터는 게 아니라, 제가 코딩 교육용 블록 게임에서 비밀 상자 열기 이벤트를 보여줬더니 아이가 귀엽게 과장을 한 겁니다!""문 부수는 것도… 제가 옛날에 시골집 창고 문 고장이 나서 망치로 고친 적이 있는데, 그게 아이 눈에는 인상 깊었나 봅니다!" 이수까지 가세해 당황한 기색을 감추며 핑계를 대기 시작했다.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강태가 특유의 억울한 표정으로 굵은 목소리를 냈다."선생님, 저 진짜 쇠파이프 안 휘두릅니다. 요즘은 애들 안전 교육용 스펀지 봉으로 체육 가르칩니다. 진짜입니다."네 거구의 사내들이 아이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변명을 늘어놓는 모습에, 박 선생님은 참았던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후후,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아빠들이 여름이를 얼마나 사랑하고 지켜주고 싶어 하는지, 글에서도 그리고 지금 모습에서도 다 느껴져서 드린 말씀이에요. 다만 학교에서는 조금 더 평화로운 표현을 쓰도록 함께 지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예! 명심하겠습니다!" 네 아빠가 일제히 차렷 자세로 고개를 숙였다.식은땀 나는 면담을 마치고 교실을 나서는 길, 아빠들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진짜 사건은 운동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야! 너 아빠가 네 명이나 된다며? 이상해!
Read more

제93화: 문을 두드리는 불청객, 그리고 작고 귀여운 의뢰

학교 면담 사건이 지나고, 셰어하우스에는 비로소 차분한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다.태준은 거실에 정갈하게 차려진 사무용 책상에서 주민들을 위한 소소한 무료 법률 상담 서류를 훑어보고 있었고, 강태는 마당에서 여름이와 스펀지 검으로 검도 놀이를 해주고 있었다. 이수는 고장 난 셰어하우스의 세탁기를 뚝딱뚝딱 수리 중이었고, 유준은 동네 상인들을 위한 악성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을 개발해 무료로 배포하고 있었다.그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평화롭고 따뜻한 풍경이었다.똑똑똑-그때, 셰어하우스의 정겨운 나무 대문을 조심스럽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대문 너머에는 알록달록한 노란색 가방을 멘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사내아이가 서 있었다. 아이는 커다란 눈망울을 굴리며 셰어하우스의 문패를 빤히 바라보더니, 품속에서 꼬깃꼬깃해진 100원짜리 동전 세 개와 알사탕 두 개를 꺼내 손에 꼭 쥐었다.강태가 마당 문을 열며 거구로 내려다보자, 아이는 살짝 흠칫했으나 이내 용기를 내어 가슴을 팍 폈다."여, 여기가… 뭐든지 해결해 주는 셰어하우스 아빠들 집 맞아요?"마당에서 놀던 여름이가 반갑게 달려나왔다. "어? 너 옆 동네 사는 민우잖아!"아이는 여름이를 보자 안도했는지 숨을 훅 내쉬며 태준과 아빠들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300원과 사탕을 거실 상 위에 당당하게 올려놓았다."이게 제 전 재산인데요… 의뢰하러 왔어요. 저희 할머니가 제일 아끼는 '누룽지'를 찾아주세요!""누룽지?"네 아빠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태준이 안경을 고쳐 쓰며 차분하게 물었다. "민우야, 누룽지가 뭐야? 먹는 누룽지는 아닐 테고… 혹시 고양이니?""네! 노란색 털에 꼬리가 고부라진 길고양이인데요, 매일 저녁 우리 할머니 집 마당에 와서 밥을 먹던 아이예요. 그런데 사흘 전부터 갑자기 안 나타나요! 할머니가 슬퍼서 저녁도 안 드세요…."민우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다. 과거 거대한 재벌가, 국가 비밀 공작원들과 목숨을 걸고 싸웠던 베테랑들이었지만, 일곱 살 아이의
Read more

제94화: 아빠는 피곤해 (상)

누룽지 구출 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난 뒤, 셰어하우스에는 잠시 평온함이 감돌았다. 하지만 네 아빠에게 주어진 ‘진짜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바로 여덟 살 여름이의 왕성한 체력과 무한한 호기심을 감당하는 일이었다.“아빠! 오늘은 마당에서 캠핑하자!”주말 아침, 여름이의 한마디에 셰어하우스 전체가 비상에 걸렸다.“캠핑? 좋은 생각이다!”강태가 상의를 훌렁 벗어 던지며 의욕을 불태웠다. 백무현과의 전투에서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했던 흉통을 자랑하며, 강태는 마당 한구석에 있던 거대한 야전용 텐트 장비를 짊어지고 나왔다.“이 정도 텐트는 혼자서 5분 만에 설치할 수 있지!”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특수부대 시절 익혔던 야전 텐트와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감성 아웃도어 텐트는 구조부터 완전히 달랐다.“어… 이 뼈대가 왜 이쪽으로 안 들어가지? 이수가 만든 도면이랑 다른데?” 강태가 낑낑대며 텐트 폴대와 씨름하기 시작했다.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수가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강태 형, 그건 응력 분산 구조가 아니라 가벼운 팝업형 폴대잖아. 그렇게 힘으로 꺾으면…!”콰직-!강태의 무지막지한 악력에 텐트 폴대가 보기 좋게 반으로 접혀버렸다.“아… 하하, 여름아! 아빠가 텐트에 창문을 하나 더 만들어줬네?” 강태가 땀을 뻘뻘 흘리며 핑계를 대자, 옆에서 보던 유준이 노트북을 덮으며 폭소를 터뜨렸다.“강태 형, 백무현 벙커 뚫을 때보다 텐트 치는 게 더 어렵지?”한편, 교실 면담 이후 ‘지적인 부모’의 이미지에 집착하기 시작한 태준은 거실에서 여름이와 함께 초등학교 1학년 필독 도서를 읽고 있었다.“여름아, 이 동화책에서 토끼가 왜 거북이한테 졌을까?” 태준이 서정적인 목소리로 물었다.여름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답했다. “토끼가 자만해서 자버렸으니까요!”“맞아. 하지만 법학적으로 접근해 보면, 거북이는 토끼가 수면 상태에 빠졌음을 인지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 확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독주했어. 이건 신의성실의 원칙에…”“큰아빠, 무슨 소리인
Read more

제95화: 아빠는 피곤해 (하) — 셰어하우스 댄스 잔혹사

“자, 박자 놓치지 마시고! 하나, 둘, 셋, 넷! 골반 더 틀어주시고요!”셰어하우스 거실 한가운데, 요즘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대유행 중인 아이돌 댄스곡의 경쾌한 비트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텔레비전 화면 속 안무 영상을 모니터링하며 거실을 진두지휘하는 총감독은 여덟 살 신여름. 그리고 그 앞에 일렬로 맞춰 선 네 명의 사내들은, 이마에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손발을 버둥거리고 있었다.“어억…! 잠깐, 유준아! 네 팔이 왜 내 눈앞으로 넘어오냐? 동선 맞춰라!”강태가 긴 팔을 휘젓다 유준의 어깨를 툭 쳤다.“강태 형, 지금 박자 무시하고 혼자 급하게 나간 건 형이거든요?! 2박자 쉬고 들어오라고 몇 번을 말해요!”유준이 억울하다는 듯 소리쳤다. 유준은 손가락 마디마디로 키보드를 튕기던 정교한 센스는 어디 가고, 하체와 상체가 따로 노는 완벽한 ‘목각인형’ 댄스를 선보이고 있었다.한편, 옆에서는 이수가 무시무시한 집중력으로 안무를 분석하고 있었다.“형님들, 이건 감으로 출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각도가 핵심이에요.”이수는 주머니에서 가늠자 측정용 레이저를 꺼내 거실 바닥에 좌표를 쏘았다. “손끝 높이는 지면에서 정확히 135도, 오른발 각도는 45도로 벌려야 다음 하이라이트 동선이랑 겹치지 않습니다.”“이수야… 춤을 수학 공식으로 추는 사람이 어디 있냐…”태준이 허리를 짚으며 털썩 바닥에 앉아버렸다. 젠틀한 명품 슈트 대신 편안한 트레이닝복 차림을 한 태준은, 이미 30분째 계속된 유산소 운동에 영혼이 탈탈 털린 표정이었다. 전직 검사로서 법정에 섰을 때도 이렇게 진이 빠진 적은 없었다.“큰아빠! 포기하면 안 돼요! 윤서네 아빠는 마술 보여준단 말이에요!”여름이가 손뼉을 짝짝 치며 태준을 일으켜 세웠다.“알았다, 알았어… 우리 여름이가 원하면 해야지.” 태준이 안경을 고쳐 쓰며 입술을 깨물었다. “얘들아, 다시 자세 잡아라. 국가 공작망도 뚫었던 우리다. 초등학교 장기자랑 따위에 무너질 수 없다.”훈련 이틀째 밤, 셰어하우스의 밤은 쉽게
Read more

제96화: 조명이 꺼져도, 우리의 무대는 끝나지 않는다

하늘초등학교 강당을 채운 학부모와 아이들의 시선이 무대 중앙으로 쏠렸다.핀조명이 켜지고 center에 선 여름이가 귀엽게 손을 들어 올리자, 경쾌한 아이돌 안무 곡의 도입부가 강당 스피커를 통해 웅장하게 터져 나왔다.쿵- 쿵- 쿵-!“가자!”강태의 단단한 구령과 함께 네 아빠가 일제히 움직였다. 며칠 밤낮을 피파스를 붙여가며 맹훈련했던 결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유준의 정교한 동선 체크 덕분에 네 거구의 사내들은 단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일사불란하게 대형을 바꿨다. 강태의 파워풀한 팝핀, 태준의 각 잡힌 절제미, 이수의 날카로운 각도, 그리고 유준의 상큼한(?) 표정 연기가 여름이의 깜찍한 율동과 어우러져 강당 안은 순식간에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와! 저 집 아빠들 진짜 칼군무인데?!” “어머 어머, 키 큰 아빠 골반 튕기는 것 좀 봐!”학부모석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고, 여름이의 얼굴에도 뿌듯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무대의 열기가 하이라이트 클라이맥스로 치닫던 바로 그 순간—지지직-! 콰쾅-!갑자기 강당 천장의 음향 앰프에서 날카로운 스파크 소리가 나더니, 음악이 뚝 끊겨버렸다. 동시에 무대를 비추던 주요 조명까지 일제히 암전 되었다.“어… 어라?” “음향 사고인가 봐!”갑작스러운 정적과 어둠에 강당 안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무대 한가운데 서 있던 여름이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떨렸다. 어렵게 준비한 무대가 이대로 망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여름이의 손 끝이 경련하기 시작했다.그 순간—착-!유준이 무대 구석의 비상 발전기 쪽을 향해 순식간에 눈빛을 번뜩였다. 주머니 속 스마트폰을 꺼낸 유준은 무선 블루투스 신호를 잡아 학교 강당 제어 시스템에 순식간에 접근했다.‘비상 스피커 라인 우회, 출력을 조명 라인 전력으로 긴급 바이패스!’유준이 손가락을 몇 번 튕기자, 완전히 꺼졌던 비상 조명이 무대 위 네 아빠와 여름이를 잔잔하게 비추기 시작했다.하지만 여전히 음악용 메인 음향은 되살아나지 않았다. 이때, 전직 최정예 사설 행동대원
Read more

제97화: 시골 집으로 떠난 여름휴가 (상) — 푸른 들녘과 네 아빠의 피서법

초등학교 입학 후 맞이한 여름이의 첫 여름방학.서울의 셰어하우스를 가득 채우던 폭염을 피해, 식구들은 의경의 고향인 강원도 산골 마을 ‘청송리’로 피서를 떠나기로 했다.유준이 미리 수소문해 렌트한 대형 RV 차량의 트렁크에는 여름이의 튜브와 곤충 채집통, 의경이 준비한 바비큐 재료, 그리고 강태가 “혹시 모른다”며 챙긴 각종 야전 캠핑 장비와 정글도가 가득 실려 있었다.“강태 씨, 우리 피서 가는 거지 공작대 침투하는 거 아니거든요? 정글도는 왜 챙겨요!” 의경이 어이없다는 듯 웃자, 강태가 쓱 머쓱하게 턱을 긁었다.“아니, 시골 산길에는 잡목이 많아서 길 터야 될 수도 있고…”“아빠! 출발하자!”뒷좌석에서 분홍색 모자를 쓴 여름이가 신나게 튜브를 흔들었다. 차가 시원하게 고속도로를 달리자, 창밖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녹음과 청량한 시골 바람이 들어왔다.3시간을 달려 도착한 의경의 고향 집은 기와지붕이 고즈넉하게 얹어진 커다란 시골 한옥이었다. 넓은 잔디 마당 앞으로는 맑은 개울물이 흐르고, 뒤편으로는 푸른 대나무 숲과 옥수수밭이 펼쳐져 있었다.“와아! 외할머니 집 진짜 넓다!”여름이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강아지처럼 마당을 뛰어다녔다.하지만 평화로운 시골 풍경도 잠시, 도시 생활에 익숙해진(혹은 침투와 보안에 익숙한) 네 아빠의 ‘시골 적응기’는 시작부터 남달랐다.가장 먼저 비상이 걸린 것은 IT 천재 유준이었다.“잠깐만요… 이 집, Wi-Fi 신호가 안 잡히는데요? 5G도 안 터지고 LTE가 한 칸입니다!”유준이 스마트폰을 하늘 높이 들어 올리며 절망적인 표정을 지었다. “이건 정보 격차가 아니라 문명과의 단절이에요! 내가 지금 당장 사설 위성 안테나를 옥상에 올려야…”“유준아, 좀 쉬어라.” 태준이 마루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여기까지 와서 모니터만 볼 작정이냐? 시골에 왔으면 풀냄새도 맡고 햇살도 좀 쬐는 거지.”태준은 시골 신사 느낌을 내겠다며 린넨 셔츠에 챙 넓은 파나마 하트를 눌러쓰고 시원한 오미자차를 마시고
Read more

제98화: 시골 집으로 떠난 여름휴가 (하) — 원두막의 수박과 뜻밖의 밤 손님

원두막 평상 위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우물물에 담가두었던 커다란 꿀수박이 배를 갈라진 채 새붉은 속살을 내밀고 있었다.“어이구, 서울에서 온 여름이 아빠들이구만!”청송리 마을 이장님이 투박한 손으로 커다랗게 썰은 수박 한 조각을 태준에게 건넸다. 태준은 파나마 하트를 살짝 올려 쓰며 젠틀하게 고개를 숙였다.“감사합니다, 이장님. 공기도 좋고 인심도 좋아서 제대로 쉬어갑니다.”“쉬어가긴 뭘! 젊은 양반들이 덩치도 좋은데 저녁에 우리 마을 옥수수 서리… 아니, 옥수수 수확 작업 좀 도와주면 딱 좋겠네만! 하하하!”이장님의 농담에 강태가 수박을 한 입 크게 베어 물며 씩 웃었다. “옥수수 수확이요? 박스 쌓기부터 운반까지 전문입니다. 맡겨만 주십시오!”여름이는 입가에 수박 씨를 묻힌 채, 마당 한구석에서 꼬리를 흔드는 시골 잡종 개 ‘누렁이’와 노느라 정신이 없었다. 씨를 발라내며 여름이 입에 쏙쏙 넣어주는 의경의 얼굴에도 오랜만의 고향 풍경에 따뜻한 미소가 머물렀다.유준도 처음엔 Wi-Fi가 안 터진다며 투덜거렸지만, 차가운 수박 화채를 삼키며 원두막 기둥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모니터의 파란 빛 대신 눈앞에 펼쳐진 푸른 산맥과 들판의 풍경이 지친 눈과 머리를 시원하게 식혀주고 있었다.뉘엿뉘엿 해가 지고 산골의 밤이 찾아왔다.마당 한가운데 모기향을 피워놓고, 강태가 낮에 패놓은 장작으로 가마솥 불을 지폈다. 의경이 정성껏 끓여낸 한방 닭백숙 냄새가 온 마당에 구수하게 진동했다.“와, 진짜 대박이다…” 이수가 푹 고아진 닭다리를 찢어 여름이 접시에 놓아주며 탄성을 질렀다. “서울 유명 한백숙 집에서도 이런 맛은 못 내는데.”“시골 가마솥 불맛이 진국이지.” 태준이 이장님이 주고 간 약주를 한 잔 기울였다.그때였다.대나무 숲과 연결된 뒷마당 옥수수밭 쪽에서 바스락- 바스락- 하는 수상한 소리가 들려왔다.네 아빠의 젓가락이 동시에 공중에서 멈췄다.전직 검사, 사설 행동대원, 보안 전문가, 해커로서의 야생적 직감이 순식간에 발동했다. 강태의 눈
Read more

제99화: 셰어하우스의 새 식구, 그리고 범상치 않은 멍뭉이

시골 피서의 마지막 날 아침.짐을 싸서 차에 올리던 강태의 발치로 작은 털 뭉치 하나가 쪼르르 달려와 신발끈을 핥기 시작했다. 옥수수밭에서 흑돼지 해프닝이 벌어졌던 그날 밤, 밭구석에 버려져 힘없이 낑낑대던 작은 시골 유기견이었다.갈색 털에 새하얀 장갑을 낀 듯한 앞발, 그리고 무엇인가를 갈망하는 초롱초롱한 눈망울.여름이는 차에 타다 말고 강아지를 끌어안으며 눈물을 글썽였다.“아빠… 얘 여기 혼자 두면 불쌍해서 어떡해? 우리 집으로 같이 가면 안 돼?”강태와 태준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음지에서 살아오며 누군가를 책임지는 일에 익숙지 않았던 네 남자였지만, 이미 여름이라는 따뜻한 존재를 통해 ‘가족’의 의미를 깨달은 이들이었다.“이름은 뭐로 할까, 여름아?” 태준이 미소를 지으며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그렇게 셰어하우스에는 다섯 번째 아빠(?) 대신, 아주 특별한 막내 식구 ‘두부’가 들어오게 되었다.하지만 평화롭던 셰어하우스에 ‘개육아’라는 새로운 임무가 떨어지자, 전직 요원들의 일상은 또다시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대혼란에 빠졌다.가장 먼저 비상이 걸린 것은 이수의 ‘홈 보안 시스템’이었다.삐- 삐- 삐-! 경보! 외부 침입 발생!새벽 3시, 셰어하우스 전체에 찢어지는 듯한 비상경보음이 울려 퍼졌다. 잠에서 깨어난 네 아빠가 권총을 쥐듯 스펀지 봉과 효도손을 들고 거실로 들이닥쳤다.“무슨 일이야, 이수야!” 태준이 안경도 못 쓴 채 소리쳤다.센서 감지 모니터 앞에 서 있던 이수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거실 구석을 가리켰다. 거기에는 두부가 이수가 벽면에 설치해 둔 최첨단 레이저 방범 센서 선을 이빨로 야무지게 물어뜯고 있었다.“어… 내 레이저 보안선이 뚫렸어. 그것도 생후 5개월짜리 시골 잡종견한테.” 이수가 현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하하하! 이수 아빠 방어선이 두부한테 뚫렸네!” 마당에서 나온 여름이가 배를 잡고 웃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두부의 ‘범상치 않은 능력’은 날이 갈수록 빛을 발했다.IT 천재 유준이 거실에서
Read more

제100화: 셰어하우스 멍뭉이 대작전 — 제1회 주민 친목 반려견 운동회

마을 입구 공원에 알록달록한 가랜드와 현수막이 걸렸다.[제1회 청송·하늘동 주민 친목 반려견 운동회]시골 피서에서 인연을 맺어 셰어하우스의 정식 막내가 된 ‘두부’. 입단 한 달 만에 두부는 셰어하우스 식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으며 토실토실하고 윤기 나는 시골 특유의 명품 잡종견으로 폭풍 성장해 있었다.그리고 오늘, 여덟 살 여름이의 손에 들린 커다란 안내장 하나가 셰어하우스 아빠들의 승부욕에 불을 지폈다.“아빠! 오늘 우승하면 두부 1년 치 고급 수제 간식 세트랑 수제 방석 준대! 우리 두부 1등 만들자!”여름이의 눈빛이 초롱초롱 빛나자, 네 아빠의 눈빛도 순식간에 작전 통제실 모드로 전환되었다.“수제 간식 1년 치라…” 강태가 두부의 튼튼한 다리를 주무르며 마사지를 해주었다. “두부야, 오늘 네 근육의 잠재력을 100% 끌어올려 주마. 삼촌만 믿어라.”“잠깐, 강태 형. 무작정 달린다고 우승하는 게 아니야.” 유준이 스마트폰 패드를 튕기며 반려견 운동회 경기 종목을 분석했다. “1종목: 어질리티(장애물 달리기), 2종목: 기다려(참을성 대결), 3종목: 아빠와 함께 2인 3각 달리기. 지형 분석이랑 코스별 최단 동선 계산은 내가 다 끝냈어.”이수도 품속에서 레이저 포인터와 소형 스톱워치를 꺼내 들었다. “어질리티 터널 구간은 두부의 신장과 체중을 고려했을 때 입사각 30도로 진입하는 게 최적이야. 내가 지점마다 레이저로 길을 유도할게.”태준이 젠틀하게 안경을 고쳐 쓰며 명품 운동복 소매를 걷어붙였다. “나는 심사위원단의 성향을 파악하고 감점 요인을 사전에 차단하도록 하지.”옆에서 샌드위치를 싸던 의경이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아이고… 동네 친목 운동회에 국가 비밀 공작대 수준으로 대비를 하시네요!”오후 2시, 공원 잔디밭.동네의 귀여운 푸들, 포메라니안, 골든 리트리버들이 저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주인들과 함께 나와 있었다. 그 사이에서 셰어하우스 팀은 단연 눈길을 끌었다.네이비색 커스텀 트레이닝복을 맞춰 입은 거구의
Read more
PREV
1
...
891011121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