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Chapter 81 - Chapter 90

127 Chapters

제81화 : 비 온 뒤에 피어나는 꽃, 그리고 셰어하우스의 봄

대한민국의 아침은 이전과는 완전히 달랐다. TV 뉴스에서는 연일 ‘셰어하우스 식구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거대 재벌과 부패한 권력에 맞서 진실을 밝혀낸 ‘의인’이자 ‘내부고발자’로 불렸다. 검찰은 재빠르게 태준과 식구들의 혐의를 모두 벗겨주었고, 국민들은 그들이 겪었던 지난날의 고초에 공감하며 뜨거운 응원을 보내왔다.하지만 세상의 찬사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평범한 일상’이었다. 그토록 갈망했던, 문을 열면 가족이 있고, 저녁이면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먹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일상 말이다.정해창 회장의 저택에서 돌아온 여름이는 처음엔 어색한 듯 아빠들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셰어하우스의 낡은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여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강태의 품으로 달려들었다. 강태는 아이를 으스러질 듯 껴안으며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미안하다, 여름아. 이제 다시는 너를 혼자 두지 않을게. 우리가 지켜줄게.”아빠들은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셰어하우스를 직접 고치기 시작했다. 유준과 이수는 무너진 거실 벽을 튼튼하게 다시 세웠고, 태준은 집 안 구석구석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정성스럽게 집을 꾸몄다. 의경은 여름이가 그토록 좋아하던 알록달록한 그림들을 다시 벽에 붙였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도망치고 싸우며 서로의 그림자처럼 지냈던 그들이, 이제는 햇볕이 잘 드는 거실에 모여 앉아 서로의 상처를 보듬었다.“우리가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생각했어.” 태준이 창밖으로 쏟아지는 봄 햇살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 “범죄자였고, 변호사였고, 사기꾼이었던 우리가 모여서 아이를 키우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싶었지. 하지만 돌아보면, 우리가 여름이를 키운 게 아니라 여름이가 우리를 사람으로 키운 것 같아.”의경이 태준의 손을 맞잡았다. “우린 서로에게 없는 조각을 채워주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래서 완벽한 가족인 거예요.”재판은 싱겁게 끝났다. 최도환과 정해창은 죗값을 치르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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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화: 일상이 된 전쟁, 그리고 그림자 속의 방문객

재판이 끝나고, 세상은 셰어하우스 식구들을 ‘영웅’이라 칭송했다. 도망자 신세에서 국민적 관심사가 된 그들의 삶은 180도 바뀌어 있었다. 셰어하우스 앞에는 매일같이 취재진과 팬들이 몰려들었고, 우체통은 전국 각지에서 보내온 격려 편지와 선물로 넘쳐났다. 폐허를 복구하고 이제야 좀 편안하게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기대는, 정반대의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었다.“아빠, 오늘도 학교 앞에 기자들이 있었어. 나보고 사진 한 번만 찍자고 하는데… 무서웠어.”저녁 식사 시간, 여름이가 밥그릇을 만지작거리며 입을 뗐다. 여름이의 말에 네 아빠들의 표정이 동시에 굳어졌다. 강태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이럴 줄 알았어. 우리가 세상에 얼굴을 드러낸 게 화근이었어. 여름이 학교 생활까지 방해받을 줄이야.”“이제 좀 조용히 살고 싶었는데, 이게 무슨 영웅 대접인지… 차라리 쫓길 때가 마음은 편했지.” 유준이 혀를 찼다. 그는 이제 기업의 보안 시스템을 구축해 달라는 수많은 의뢰인 때문에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잡고 살아야 했다. 이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의 기술력이 세상에 알려지자, 출처를 알 수 없는 기관들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라는 이름의 압박이 들어오고 있었다.평온했던 셰어하우스는 이제 ‘일상이 된 전쟁터’가 되어 있었다. 밖에서는 대중의 관심이, 안에서는 각자의 커리어를 향한 사회의 요구가 그들을 조여오고 있었다. 변호사 사무실을 낸 태준은 더했다. 그를 찾아오는 사람들은 JS그룹 사건 같은 거창한 정의를 바라는 게 아니라, 저마다의 사사로운 욕망과 억울함을 들고 찾아왔다.그러던 어느 날, 태준의 사무실에 아주 낯선 손님이 찾아왔다. 화려한 옷차림도, 기자들의 카메라를 든 것도 아닌, 낡은 코트를 입은 중년의 여인이었다. 그녀는 태준의 책상 앞에 조용히 앉아, 떨리는 손으로 사진 한 장을 꺼내 놓았다.“이태준 변호사님, 당신들이 5년 전 셰어하우스에 모이기 전…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하나 알고 싶습니다.”태준은 낯선 여인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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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3화: 지워지지 않는 낙인, 그리고 5년 전의 그림자

셰어하우스 거실의 공기는 평소와 달리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식탁 위에는 방금 배달된 듯한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저녁 식사가 차려져 있었지만, 아무도 수저를 들지 못했다. 태준이 사무실에서 가져온 서류 봉투가 식탁 중앙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이게… 대체 뭐야?” 강태가 굵은 손가락으로 서류 뭉치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의 미간에는 깊은 주름이 패어 있었다.태준은 말없이 봉투를 열었다. 그 안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5년 전, 그들이 셰어하우스라는 이름으로 처음 만나기 직전의 사진들과 기록들이었다. 단순히 각자의 과거 범죄 기록이 아니었다. 놀라운 점은, 그들의 각기 다른 삶의 궤적이 5년 전 어느 날, 같은 장소에서 교차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2021년 7월 14일, 서울 북부 물류 창고 화재 사건.” 태준이 떨리는 목소리로 기록을 읊었다. “강태 형은 그날 그 근처에서 불법 사채 추심을 하고 있었고, 유준이는 그 창고의 보안 서버를 해킹하고 있었어. 이수, 너는 그 창고에 잠입해 있었고, 나는… 당시 그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로서 현장에 있었지.”식탁은 순식간에 술렁였다. 그들은 5년 전, 서로를 전혀 모르는 타인으로 살았다고 믿었다. 그저 우연히 만나 셰어하우스를 꾸리고 가족이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기록들은 달랐다.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그들을 그 화재 현장으로 불러들였고, 마치 바둑돌을 놓듯 그들의 운명을 셰어하우스라는 울타리 안으로 밀어 넣었다는 증거들이었다.“누군가 우리를 조종한 거야?” 유준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우리가 최도환과 싸운 것도, 여름이를 만나게 된 것도, 심지어 우리가 서로를 의지하게 된 이 과정 자체가… 거대한 실험의 일부였다는 거야?”의경은 조용히 여름이의 방 문을 닫고 나와 식탁으로 다가왔다. 그녀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단호했다. “실험이라니요. 우리는 우리 의지로 서로를 선택했어요. 누군가 판을 짰다고 해도, 그 판 위에서 우리가 보여준 건 사랑과 진심이었잖아요.”의경의 말에 태준은 고개를 끄덕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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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4화: 거울 속의 관찰자, 그리고 프로젝트 '미러(Mirror)'

남산의 안개는 끈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N타워 근처의 버려진 지하 벙커 입구는 잡초로 뒤덮여 있어 일반인이라면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이었다. 태준은 미리 챙겨온 마스터키와 유준이 복제한 보안 코드를 이용해 묵직한 강철문을 열어젖혔다. 끼이익- 하는 소름 끼치는 금속음이 정적을 깨고 지하로 굴러떨어졌다.“여기가 그 좌표의 끝인가….”안으로 들어선 그들의 눈앞에 펼쳐진 것은 폐허가 아닌, 최첨단 장비들이 즐비한 지하 기지였다. 5년 전, 그들이 셰어하우스를 꾸리기 전부터 누군가 이곳에서 그들을 관찰하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강태가 벽에 붙은 거대한 화이트보드를 훑어보다가 숨을 들이켰다. “이거… 우리 사진들이잖아. 그것도 5년 전, 우리가 이 집을 계약하기 훨씬 전의 모습들이야.”거기에는 태준이 검사직을 그만두기 직전의 모습, 강태가 사채 현장을 정리하던 뒷모습, 유준이 서버를 뚫고 있던 순간, 그리고 이수가 화재 현장을 빠져나오는 찰나가 찍혀 있었다. 그들은 우연히 만난 게 아니었다. 누군가 치밀하게 그들의 삶을 추적하고, 그들의 성격과 기술, 심지어 약점까지 분석해서 ‘셰어하우스’라는 하나의 실험체로 묶어놓은 것이었다.유준은 중앙 서버에 자신의 노트북을 연결하려 손을 뻗었다. “형, 여기 파일들이 있어. 프로젝트명… ‘미러(Mirror)’. 이 실험의 목적은… 우리 같은 부류들이 사회의 부조리와 싸울 때,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확인하는 거였어.”“우리가 실험쥐였다고?” 이수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재벌가와 싸우고 권력과 투쟁하던 그 모든 게, 누군가의 데이터 수집용 쇼였다는 거야?”그때, 서버실의 조명이 붉게 점멸하기 시작했다. ‘경고: 비인가 접속 시도’라는 문구가 모니터 위로 떠올랐다. 유준의 표정이 급격히 굳어졌다.“이거 함정이야! 내가 접속하자마자 우리 위치가 실시간으로 전송되고 있어. 이 기지 전체가 자폭 모드로 돌아가고 있다고!”태준은 즉시 결단을 내렸다. “자료는 다 복사했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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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5화: 거울 너머의 설계자, 그리고 침묵의 사냥

남산 산자락을 휘감은 차가운 장대비는 그들의 피와 땀을 씻어내리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인적 없는 폐건물 지하, 어두컴컴한 공터에 웅크린 셰어하우스 식구들의 숨소리가 거칠게 울려 퍼졌다.의경은 구급상자를 열어 태준의 총상 부위를 알코올 소독약으로 닦아냈다. 지직거리며 살이 타들어 가는 통증에도 태준은 이를 악물고 신음 한 번 내뱉지 않았다."조금만 참아요. 쓸린 상처라 총알이 박히진 않았지만, 인대가 손상됐을 수도 있어요." 의경의 손길은 정교했지만, 눈동자는 불안함으로 흔들리고 있었다."난 괜찮아. 그보다 다른 사람들은?" 태준이 물었다."강태 형님 손너클이 좀 깨졌고, 이수는 환기구에 긁힌 거 말고는 다들 무사해요. 여름이도 유준이가 꼭 품고 뛰어내려서 놀라기만 했지 상처는 없어요."이전의 최도환과의 싸움과 이번은 차원이 달랐다. 최도환이 자신의 욕망과 법망을 이용해 요란하게 사이렌을 울리며 쫓아오는 '사냥꾼'이었다면, 방금 남산 벙커에서 만난 놈들은 아무런 소리도, 명분도 없이 목숨을 끊어놓으려는 '유령'들이었다. 언론 보도조차 없었다. 그들이 테러리스트로 다시 수배되었다는 뉴스조차 뜨지 않는다는 것은, 적들이 이 사안을 완벽하게 '음지'에서 처리하려 한다는 뜻이었다."형, 이거 봐." 유준이 타버린 노트북에서 기적적으로 추출해 낸 하드디스크 조각을 보조 모니터에 연결하며 말했다.화면에는 깨진 텍스트 파일들이 수없이 떠올랐다. 유준이 복구 알고리즘을 가동하자, 복잡한 코드 사이로 하나의 커다란 보고서 양식이 모습을 드러냈다.[프로젝트 미러(Project Mirror) : 통제 가능 비공식 사법 기구의 유용성 검증]총괄 책임자: 백무현 (전 국가안보실 제2차장 / 현 아시아 안보연구소 이사장)피험체 A (이태준): 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절감한 전직 검사. 정의감과 냉철한 분석력 검증 완료.피험체 B (최강태): 압도적 무력 및 주도성. 하층민 범죄 조직 통제력 검증 완료.피험체 C (나유준): 사이버망 장악 능력 및 정보 교란 성능 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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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6화: 균열의 연극, 그리고 거울 뒤의 포식자

서울 외곽의 폐공장. 먼지 쌓인 공터 위에 설치된 고성능 도청 및 감시 장비 수신기 너머로 거친 고함 소리가 찢어지듯 흘러나왔다.“이태준! 내가 말했지! 처음부터 그놈들 장단에 놀아난 거라고! 너 때문에 내 인생도, 내 식구들도 다 죽게 생겼어!”강태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스피커를 뚫고 진동했다. 이어 철제 의자가 바닥에 내던져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이수의 가빠진 숨소리가 들렸다.“강태 형, 그만해요! 태준 형도 몰랐던 일이잖아요!”“몰랐다고 하면 다야? 법 따지고 정의 찾다가 우리가 이 꼴이 된 거 아니야! 난 더 이상 이딴 짓 안 해. 내 방식대로 살 거야. 여름이랑 의경 씨는 내가 데리고 떠난다!”“너 미쳤어? 지금 나가면 바로 놈들 표적이 되는 거야!” 태준의 서늘하고 차가운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내 말 들어, 최강태!”“꺼져! 다시는 내 눈앞에 띄지 마!”거친 육탄전 소리와 함께 통신 신호가 일시적으로 지직거리며 끊겼다.같은 시각, 광화문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고급 빌딩 최상층. ‘아시아 안보연구소’ 이사장실의 거대한 모니터 벽면 앞에는 백무현이 서 있었다. 비단 가운을 걸친 그는 가볍게 찻잔을 홀짝이며 화면 위에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심리 상태 파악 그래프를 관찰했다.[피험체 A(이태준) vs 피험체 B(최강태) – 신뢰 지수: 12% 이하로 급락][피험체 집단 내 극한의 공포 및 갈등 지수: 최고 수치 달성]백무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결국 인간이란 정서적 한계 앞에 무너지는 법이지.” 백무현이 뒤에 서 있는 검은 슈트 차림의 남성, 현장 실무 팀장인 ‘일등 요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5년 동안이나 셰어하우스라는 조잡한 울타리에 매여 있었으니, 균열이 가면 한순간에 깨지는 건 당연하다. 정해창이나 최도환 같은 멍청이들은 돈과 권력으로 저들을 누르려다 당했지만, 진짜 통제란 저들의 약점을 쥐고 내부에서부터 썩게 만드는 거야.”“이사장님, 피험체 B(최강태)가 피험체 E(여름)와 F(윤의경)를 데리고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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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7화: 거울의 파편, 그리고 침묵을 깨는 스위치

파주의 폐농가에 차가운 침묵이 감돌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며 포위망에 갇힌 8명의 그림자 요원들은 넋을 잃은 표정이었다. 평생을 국가의 가장 은밀한 어둠 속에서 완벽한 사냥꾼으로 훈련받아온 그들이, 정체불명의 ‘실험체들’에게 손도 써보지 못하고 제압당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강태가 묵직한 발걸음으로 요원 팀장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무지막지한 악력이 팀장의 멱살을 잡아채 일으켜 세웠다.“너희가 믿는 그 백무현이라는 영감탱이, 지금쯤 이사장실에서 핏기를 잃고 덜덜 떨고 있을 거다.” 강태의 목소리가 짓눌리듯 둔탁하게 울렸다. “어디냐? 백무현이 숨어있는 진짜 본거지.”팀장은 입술을 사물어물하며 핏값을 토해냈지만, 눈빛만큼은 독기를 품고 있었다. “입을 열 것 같나… 우리는 소속도, 이름도 없는 유령이다.”“유령이라….” 태준이 천천히 걸어와 팀장의 무전기와 군용 암호화 데이터 패드를 집어 들었다. 태준의 눈빛은 무서울 정도로 냉정했다. “유령도 지켜야 할 가족이나, 비밀 계좌나, 자신을 증명할 데이터는 있는 법이지. 유준아.”뒤에 서 있던 유준이 손가락을 몇 번 튕기자, 팀장의 스마트폰과 특수 장비의 보안이 순식간에 해제되며 스크린 위로 스위스 은행의 비공식 계좌와 요원들의 신원 데이터베이스가 실시간으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너희를 움직이는 건 거창한 애국심이 아니야.” 유준이 차갑게 웃었다. “백무현이 해외 유령 계좌로 다달이 쏴주는 거액의 차명 자금이지. 이 계좌들, 지금 전부 금융감독원과 국제사법경찰에 ‘테러 자금 세탁 건’으로 자동 제보되도록 설정해 뒀어. 10초 뒤면 엔터 키 하나로 너희는 영원히 돈 한 푼 못 건지는 국제 수배자가 된다.”팀장의 눈동자가 격렬하게 흔들렸다. 목숨보다 소중히 여겼던 퇴직금과 신원이 공중분해 될 위기에 처하자, 단단했던 충성심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말해.” 태준이 팀장의 눈을 직시했다. “백무현의 진짜 핵심 서버와 통제실이 어디 있는지.”팀장은 침을 힘겹게 삼키며 결국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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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화: 거울의 사냥개, 그리고 핏빛 가림막

폭탄이 터진 것은 언론사뿐만이 아니었다. 전국의 뉴스 채널과 인터넷 커뮤니티는 방금 유준이 터뜨린 ‘프로젝트 미러’ 파일로 인해 고요한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현직 정·재계 실세들의 이름과 그들이 '국가 안보'라는 명목하에 저지른 온갖 공작, 도청, 그리고 인간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실험 기록이 가감 없이 노출되었다.청와대 지하 영빈관 밑, 깊숙한 어둠 속에 자리한 ‘국가 비상 안보 3벙커’.백무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메인 통제실의 모니터 수십 개에는 시위대로 몰려드는 시민들의 모습과, 그 그늘 아래에서 황급히 사퇴서를 제출하며 꼬리를 잘라내려는 고위 관료들의 연락이 쇄도하고 있었다.“이사장님! 검찰 특수부에서 긴급 수사팀을 꾸렸다는 소식입니다! 사방에서 비상 라인이 전부 끊기고 있습니다!”“입 다물어!” 백무현이 고성을 질렀다. 그의 항상 신사적이던 얼굴은 온데간데없이 눈알이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내게는 아직 국가 안보 최고 등급 통제권이 있어! 그리고… 그놈들의 진짜 '약점'도 내 손안에 있다.”백무현은 떨리는 손으로 벙커 전용 비상 통신기를 들었다.“사냥개 팀, 들리나? 지금 당장 B-7 구역 Safehouse로 이동해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윤의경과 그 어린 계집애를 확보해. 산 채로 가져오는 게 베스트지만, 안 되면 시체라도 끌고 와서 내 눈앞에 앉혀 놔라.”같은 시각, 서울 외곽의 조용한 과수원 단지 안에 숨겨진 작은 황토집.의경은 잠든 여름이의 머리를 쓸어 넘기며 창밖을 지켜보고 있었다. 빗소리 사이로 가늘게 울리는 전파 음. 의경의 품속에 있던 이수의 특수 무전기에서 유준의급박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의경 누님! 지금 당장 여름이 들쳐업고 피하십시오! 백무현의 잔당들이 누님이 계신 안전가옥 좌표를 파악했습니다! 놈들의 비상 사냥개 팀이 그쪽으로 가고 있어요!]의경은 지체 없이 침대에서 여름이를 안아 들었다. 아이는 졸린 눈을 비비며 물었다. “엄마… 아빠들은?”“아빠들이 아주 큰 나쁜 놈들을 혼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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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9화: 사선(死線)을 넘어서, 그리고 벙커의 심장

청와대 지하 영빈관 밑, 사방이 두꺼운 특수 강철로 둘러싸인 ‘국가 비상 안보 3벙커’.유준이 미리 해킹해 둔 환기구 점검 시스템 덕분에 태준, 강태, 이수는 좁고 어두운 금속 통로를 기어 내부로 침투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백무현도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3벙커 중앙 통제실에서 모니터로 기습을 확인한 백무현의 얼굴은 광기로 가득 차 있었다.“쥐새끼들이 감히 온몸에 오물을 묻히고 어디까지 들어올 작정인가!”백무현이 메인 콘솔의 붉은 레버를 당겼다.치이익-!벙커 통로 전체에 경고음과 함께 유독성 신경 가스가 안개처럼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동시에 폐쇄회로(CC)TV에 연동된 자동 전투 포탑 두 대가 천장에서 내려와 통로의 유일한 출구를 향해 벌컨포를 겨누었다.“크헉…! 가스다!”강태가 옷가지로 코와 입을 막았지만, 가스가 눈과 피부를 찔러오며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설상가상으로 출구 모퉁이를 돌자마자 두두두두-! 하는 폭음과 함께 자동 포탑의 총탄 세례가 벽면을 사정없이 뚫어버렸다. 스파크가 사방으로 튀며 콘크리트 파편이 그들의 뺨을 스쳤다.“가스 마스크도 없는데 이대로 30초만 더 노출되면 장기 손상이 옵니다! 돌파는 불가능해요!” 이수가 매캐한 연기 속에서 소리쳤다.“아니, 돌파한다.”태준의 눈빛은 비장했다. 태준은 옆에 있던 고압 전력 배선반의 커버를 뜯어냈다. “이수야, 저 포탑의 제어 장치가 전력선이랑 연결되어 있지?”“네! 하지만 전력을 역류시키려면 직접 배선을 건드려야 해요. 전압이 너무 높아서 감전되면 죽습니다!”“죽는 건 저 늙은이가 짜놓은 거울 속에서 숨 막혀 죽는 거지, 지금은 아니야!”이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태가 자신의 두꺼운 가죽 재킷을 벗어 이수의 손에 감싸쥐어 주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한 힘으로 부서진 철제 문짝을 떼어내 전방의 방패로 삼았다.“이수야! 내가 3초 벌어줄 테니까 가서 선 끊어라!”“강태 형!”“가라면 가!”쿠웅-!강태가 철제 문짝을 앞세우고 총탄이 쏟아지는 포탑을 향해 전력 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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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0화: 깨어진 거울, 그리고 진짜 우리의 삶

은빛 권총의 총구가 태준의 이마 바로 앞에서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백무현의 눈동자는 핏발이 선 채 붕괴 직전의 광기로 일렁였다.“착각하지 마라, 이태준.” 백무현이 가쁜 숨을 내쉬며 이빨을 드러냈다. “내가 무너지면 이 나라의 사법도, 안보도, 시스템도 전부 마비된다! 너희 같은 오물들을 모아 국가의 이면을 청소하게 만든 건 내가 한 일 중 가장 위대한 공작이었어! 내가 곧 국가이자 법이다!”태준은 이마에 닿은 서늘한 감촉에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백무현의 가련한 눈빛을 똑바로 직시하며 낮고 단호하게 말했다.“너는 국가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 뒤에 숨은 추악한 관찰자일 뿐이야.”“뭐라…?”“너는 우리를 실험체라 불렀지. 하지만 우리는 서로를 위해 피를 흘렸고, 아이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통제된 건 우리의 과거였을지 몰라도, 우리가 선택한 가족은 단 한 번도 네 계산대로 움직인 적이 없다.”백무현의 손가락이 방아쇠에 힘을 주려던 그 찰나—콰창-!이수가 던진 단검이 정확히 백무현의 손목을 스쳤다. 백무현이 비명을 지르며 권총을 놓쳤고,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강태의 묵직한 주먹이 백무현의 턱관절을 그대로 후려쳤다.쿠웅-!평생을 비단옷만 입고 타인의 삶을 조종하던 거물 백무현이, 제 손으로 만든 벙커의 차가운 바닥 위로 오물처럼 쓰러졌다. 입에서 피를 토해내며 경련하는 그를 내려다보며 태준은 백무현이 쥐고 있던 비상 데이터 서버의 리셋 스위치를 집어 들었다.“이 스위치를 누르면… ‘프로젝트 미러’의 모든 서버가 영구 파기된다.” 태준이 백무현을 바라보았다. “너 같은 놈들이 다시는 누군가의 인생을 장기판의 말로 쓰지 못하게.”“안 돼…! 내 평생의 연구가… 내 제국이…!” 백무현이 피 칠갑이 된 손으로 태준의 구두를 잡으려 발악했지만, 태준은 망설임 없이 스위치를 짓눌렀다.지징-! 폭-통제실을 가득 채우던 모니터들이 일제히 칠흑 같은 어둠 속으로 꺼져 들어갔다. 대한민국을 음지에서 조종하던 가장 거대하고 추악한 거울이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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