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네 남자와 어쩌다 여름이: Chapter 71 - Chapter 80

167 Chapters

제71화: 칼날 위에서의 춤, 그리고 판도라의 장부

서울가정법원 앞.아스팔트 위로 쏟아지는 6월의 햇살은 잔인할 정도로 밝았다. 셰어하우스의 네 남자는 법원 입구에서 잠시 멈춰 섰다. 각자의 눈빛엔 비장함이 서려 있었다."태준이 형, 법정은 형한테 맡길게."강태가 태준의 어깨를 툭 쳤다. 평소의 장난기 어린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우린 최도환이 숨겨놓은 '보험'을 찾으러 간다. 유준아, 이수야. 오늘 밤 안으로 끝낸다."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난 어떻게든 판결을 미룰 거야. 법정 안에서 무슨 수를 써서든, 최도환이 법 뒤에 숨지 못하게 만들 테니까."네 남자는 순식간에 흩어졌다. 그것은 마치 5년 전,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전설적인 팀이 다시 가동되는 것과 같았다.서울가정법원, 302호 법정.법정 안은 차가운 공기가 감돌았다. 정해창 회장의 위압적인 존재감과, 그 뒤를 든든하게 받치고 있는 JS그룹 법무팀의 비웃음이 태준을 압박했다. 판사는 처음부터 중립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최도환의 입김이 닿아 있음이 명백했다."피고인 측 변호인, 더 이상 지연 전술은 허용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당장 심리를 종결하겠습니다."판사의 말에 최도환이 방청석 구석에서 태준을 보며 조용히 웃었다. '게임은 끝났다'는 신호였다. 의경은 여름이를 꽉 안은 채, 창백한 얼굴로 태준을 바라보았다.태준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준비해온 서류 뭉치를 덮어버리고, 법정 전체가 들릴 만큼 차분하고도 서늘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재판장님. 심리를 종결하기 전에, 한 가지 사실을 밝혀야겠습니다. 이 사건의 배후인 최도환 전 차장검사와 정해창 회장 사이에 오고 간 자금 흐름. 그리고 그 자금이 이 법원의 증축 공사 시공사인 '해성건설'로 흘러 들어갔다는 사실 말입니다."순간, 법정 안이 술렁거렸다. 판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태준은 멈추지 않았다."재판장님의 사위가 바로 그 해성건설의 이사더군요. 이 재판, 회피 신청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이, 이태준 변호사! 근거 없는 발언으로 법정을 모독하
Read more

제72화: 판도라의 상자, 그리고 아이의 눈물

"유준아! 안 열려?"강태가 쇠파이프를 휘둘러 들이닥치는 사내들의 앞길을 막아섰다. 셰어하우스의 '큰형'다운 압도적인 무력이었지만, 적들의 숫자가 너무 많았다."조금만! 데이터 양이 너무 방대해. 이 인간, 최도환… 정말 미친놈이네. 비자금뿐만 아니라 정 회장의 뒷덜미를 잡을 기밀까지 다 여기 있어!"유준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에서 미친 듯이 춤을 췄다. 데이터 전송률 80%… 90%….그때, 강태가 적의 일격을 맞고 한쪽 무릎을 꿇었다."형!""상관없어! 전송만 완료해! 태준이 형한테 쏴버리라고!"유준이 엔터 키를 누르는 순간, 서버실의 조명이 모두 꺼졌다. 동시에 태준의 법정 태블릿으로 알림음이 울렸다. 전송 완료.서울가정법원, 302호 법정.판사가 망치를 들고 마지막 판결을 선언하려는 그 찰나였다. 태준은 자신의 태블릿을 높이 치켜들며 소리쳤다."잠시만요! 재판장님, 지금 제게 도착한 파일을 확인하시죠. 정해창 회장과 최도환 전 차장검사가 지난 10년간 이 법원의 판사들에게 전달한 '특별 수당' 리스트와, 그 자금이 거쳐 간 페이퍼 컴퍼니의 계좌 내역입니다!"순간, 법정은 죽은 듯 고요해졌다. 최도환의 얼굴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그는 급히 변호인석으로 달려가 서류를 확인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태준은 멈추지 않았다."이 리스트에는 지금 재판을 진행 중인 재판장님의 이름도 있습니다. 이래도 심리를 강행하시겠습니까?"판사의 손이 파들파들 떨렸다. 그는 정해창 회장을 보았고, 회장은 이미 뒷짐을 지고 분노를 삭이고 있었다. 판사는 결국 망치를 내려놓으며 나지막이 읊조렸다."…재판을 무기한 연기합니다."법정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최도환은 분을 이기지 못해 태준의 멱살을 잡으려 달려들었다. 하지만 태준은 피하지 않고 그의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당신은 오늘, 감옥으로 가는 티켓을 끊은 거야."그날 밤, 아지트.강태와 유준이 땀 범벅이 된 채 돌아왔다. 그들의 손에는 USB 하나와
Read more

제73화: 텅 빈 둥지, 그리고 어미 늑대의 결단

여름이가 떠난 연희동 셰어하우스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작은 운동화가 놓여 있던 현관, 여름이가 끄적여 놓은 낙서가 가득한 거실 벽, 그리고 밤마다 아이의 숨소리가 들리던 방까지. 모든 것이 그대로인데, 아이의 웃음소리만 사라지자 세상의 모든 색채가 바랜 듯했다.강태는 거실 바닥에 앉아 여름이가 두고 간 작은 인형을 멍하니 쥐고 있었고, 유준은 해성그룹 본부장실에서 결재 서류 대신 여름이의 사진만 응시하고 있었다."우리가… 아이를 지키겠다고 하면서, 정작 아이의 세상마저 지켜주지 못했어."이태준이 서재에서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앞에는 문제의 '판도라의 장부'가 놓여 있었다."이 장부를 세상에 공개하는 순간 여름이는 '아빠를 죽인 살인마의 손녀'라는 낙인이 찍혀. 하지만 공개하지 않으면, 살인마인 정 회장의 품에서 인질로 살아가야 해. 우린 지금 최악과 최악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야."침묵이 흐르던 그때, 거실 문이 거칠게 열렸다.윤의경이었다.그녀의 눈은 울음으로 퉁퉁 부어 있었지만, 그 안에는 며칠 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차가운 맹수의 눈빛이 깃들어 있었다."다들 뭐 해요?"의경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여름이가 JS 본가로 들어갔다고, 여기서 다 같이 죽은 사람처럼 넋 놓고 있을 거예요?"강태가 고개를 들었다. "의경 씨….""여름이는 우리를 지키려고 떠난 거예요. 자기가 희생하면 우리 아빠들이 무사할 거라고 믿으니까. 그 아이가 자기 몸을 던져서 지킨 우리를, 당신들이 지금 이렇게 무기력하게 무너져서 모욕하고 있는 거라고요!"의경은 테이블 위에 놓인 장부를 낚아채 가방에 넣었다."변호사님. 정 회장은 지금 여름이를 '후계자'로 앉히려 할 거예요. 아이를 인질로 삼아 우리를 굴복시키고, 동시에 우리를 제거할 명분을 쌓고 있겠죠. 하지만 그들은 결정적인 걸 잊고 있어요.""그게 뭡니까?" 태준이 물었다."여름이는 JS그룹의 핏줄이지만, 동시에 내 딸이에요. 그 아이는 5년 동안 우리랑 살면서, 재벌가의
Read more

제74화: 잿더미 위의 탈출, 그리고 꺾이지 않는 방패

집무실 안은 폭풍 전야의 적막이 흘렀다. 정해창 회장의 시선은 태준이 던져놓은 장부와, 창밖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사이를 위태롭게 오갔다.최도환의 목소리가 저택 복도를 울렸다."정 회장님! 저택 안의 불법 침입자들을 즉시 체포하겠습니다. 문을 여십시오!"정 회장은 주먹을 꽉 쥐었다.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는 치욕스러운 기록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과, 오늘 이 자리에서 권력을 잃는 것. 어느 쪽을 택하든 JS그룹의 몰락은 피할 수 없었다."…나갈 길은 있다."정 회장은 지팡이로 벽면의 대리석 장식을 툭툭 두드렸다. 웅장한 벽이 소리 없이 열리며, 어두운 통로가 나타났다. 저택의 지하와 연결된 비밀 대피로였다."이 길은 지하 주차장 끝, 정 회장 전용 차량이 대기 중인 벙커로 이어진다. 최도환은 정문과 후문을 다 막았지만, 벙커의 출구는 오직 나만이 아는 경로지."태준이 의경과 여름이를 재촉했다."유준아, 이수야. 벙커 차량 해킹해. 강태 형, 형은 뒤에서 최도환의 부대 시선을 끌어줘야 해.""뭐? 나보고 혼자 저놈들을 다 막으라고?" 강태가 씩 웃으며 소매를 걷어붙였다."좋아. 5년 전 '마장동의 사자' 시절로 돌아가면 되지."강태는 집무실을 나서며, 복도를 가득 메운 무장 병력을 향해 거칠게 포효했다."어이, 거기 똥개들! 여기 셰어하우스 아빠가 직접 나왔다. 덤벼!"강태가 몸을 날리자 복도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었다. 그 틈을 타 태준, 유준, 의경, 여름이는 비밀 통로로 질주했다.저택 지하 벙커.유준이 벙커의 보안 시스템을 순식간에 무력화하고, 검은색 방탄 SUV의 시동을 걸었다."형, 탔어! 출발해!"차는 굉음을 내며 지하 벙커의 셔터를 들이받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지상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최도환이 지휘하는 특수부대는 강태를 쫓느라 저택 안쪽으로 몰려 있었고, 벙커 출구는 의외로 텅 비어 있었다.하지만 그들의 앞을 막아선 것은 바리케이드였다. 최도환이 차의 경로를 예측하고 배치해둔 국정원 요원들이 총기를 겨누고 있
Read more

제75화: 고립된 산장, 그리고 다시 불타오르는 분노

강원도 깊은 산속, 버려진 폐가.창밖으로 몰아치는 겨울바람은 도망자들의 처지처럼 차갑고 척박했다. 스마트폰도, 신용카드도 없는 삶. 그들은 대한민국에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 숨죽이고 있었다.여름이는 낡은 담요를 덮고 잠들어 있었다. 의경은 그 옆을 지키며, 밖에서 찬 공기를 들이마시고 돌아오는 네 아빠들의 발소리에 귀를 기울였다."최도환 이 새끼…."이수가 낡은 라디오를 만지작거리며 욕설을 내뱉었다. 라디오 뉴스에서는 연일 '셰어하우스 식구들의 끔찍한 범죄 행각'이 대서특필되고 있었다."도환이가 내 지인들까지 다 뒤지고 있어. 내가 과거에 운영했던 보안 업체 동료들, 우리 가족들까지 전부 경찰서로 끌려가서 취조받고 있다고!"태준은 묵묵히 지도를 살피고 있었다."놈은 우리가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다는 걸 알아. 그래서 우리를 밖으로 끌어내려고 가장 약한 고리를 건드리는 거야."그때, 태준의 노트북(외부와 완벽히 차단된 로컬 서버)에 익명의 메시지가 하나 떴다.[의경의 보육원 동생들, 지금 모두 내 관할 하에 있다. 오늘 밤 12시까지 자수하지 않으면, 보육원에 불을 지르겠다.]서늘한 공포가 거실을 덮쳤다.그것은 단순히 협박이 아니었다. 보육원은 의경이 여름이를 키우며 가장 의지했던 곳이자, 그녀의 아픈 과거가 깃든 유일한 안식처였다."…이 악마 같은 놈."의경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그녀는 가방을 챙기려 일어섰지만, 태준이 단호하게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의경 씨, 가면 죽어. 이건 100% 함정이야. 우리가 가는 길목마다 매복하고 있을 거야.""그럼 어떡해요! 내 동생들이 죽게 생겼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어요!"태준은 굳게 다물었던 입술을 뗐다."가야지. 하지만 그냥 자수하러 가는 게 아니야. 놈이 우리를 쥐 사냥하듯 몰아넣는다면, 우리는 쥐가 아니라 늑대가 되어서 그 굴을 덮쳐야 해."밤 11시, 보육원 앞마당.안개 낀 보육원 주변에는 최도환이 심어놓은 사복 경찰들과 용병들이 빽빽하게 깔려 있었다. 최도환은 보육
Read more

제76화: 성채로 들어가는 트로이의 목마

뉴스 화면 속에서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셰어하우스 일당, 국가 주요 시설 테러 모의 및 불법 정보 유출 혐의로 전국 지명수배. 시민들은 이들을 목격할 경우 즉시 신고해주시기 바랍니다."대한민국 전체가 셰어하우스 식구들을 '흉악한 테러리스트'로 낙인찍고 있었다. 거리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떨었고, 그들의 이름은 공공의 적이 되었다."테러리스트라… 우리가 아이를 지키려고 한 게 테러라면, 도대체 저놈들이 말하는 정의는 뭘까."나유준이 쓴웃음을 지으며 노트북 화면을 닫았다.이태준은 차갑게 식은 커피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상관없어. 최도환이 우리를 어둠 속으로 밀어 넣었으니, 이제 우리는 어둠 속에서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그들의 빛을 꺼버리면 돼."그들의 목표는 단 하나, JS그룹 본사 60층 대회의실에서 열릴 예정인 '글로벌 비전 전략 회의'였다. 그곳에는 정해창 회장과 최도환, 그리고 JS그룹의 모든 이사회가 모일 예정이었다."그곳은 철통 보안이야. 무장 병력만 수백 명에, 국정원 요원들까지 깔려 있어. 정면 돌파는 불가능해." 이수가 걱정스럽게 말했다.태준은 지도를 펼쳤다."정면 돌파는 안 하지. 우리는 '손님'으로 들어갈 거야. 그것도, 그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감사관'의 자격으로."다음 날, JS그룹 본사 로비.JS그룹의 로비는 긴장감으로 가득했다. 입구마다 검은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출입증을 확인하고 있었고, 건물 전체가 요새처럼 변해 있었다.그때, 로비 입구에 깔끔한 정장 차림을 한 네 명의 남자가 나타났다. 그들은 국세청과 검찰청 합동 조사팀의 배지를 가슴에 달고 있었다."오늘 오전, 회장님 지시로 내려온 특별 조사팀입니다. 협조 바랍니다."유준이 미리 해킹해둔 국세청 시스템으로 생성한 완벽한 위조 신분증과 명령서였다. 경호원들은 머뭇거렸지만, 명령서에 찍힌 JS그룹 내부 직인과 정 회장의 전자 결재가 확인되자 어쩔 수 없이 길을 터주었다."이쪽입니다."강태는 거구의 체격에 검은 선글라스를 끼고
Read more

제77화: 무너지는 제국, 그리고 타오르는 불꽃

"폭파 장치다! 멈춰!"최도환이 리모컨을 꺼내 들자 회의실 안에 있던 임원들이 비명을 지르며 엎드렸다. 최도환의 눈은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다."다 같이 죽자! JS그룹이 망하면 나도 없다. 너희들 모두 오늘 여기서 제삿날을 맞이하는 거야!""미친 새끼…!"강태가 최도환의 손목을 낚아채려 달려들었지만, 최도환은 이미 엄지손가락을 버튼에 올리고 있었다.그 찰나, 이수가 회의실 메인 컨트롤러에 연결된 자신의 노트북을 두드렸다.띠링-"회로 차단했습니다. 외부 기폭 신호는 이미 제가 가로챘어요."이수의 말에 최도환이 당황하며 버튼을 연신 눌렀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순간, 회의실 문이 박살 나며 무장한 특수 기동대가 들이닥쳤다. 하지만 그들은 최도환을 구하러 온 것이 아니었다. 태준이 미리 매수해 둔, 진실을 파헤치는 '내부 감찰반'과 언론사 기자들이었다."최도환 전 차장검사, 뇌물 수수 및 살인 교사 방조 혐의로 체포한다!"회의실은 순식간에 법 집행관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최도환은 허탈하게 바닥에 주저앉았고, 정해창 회장은 늙은 사자처럼 힘없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수십 년간 쌓아 올린 JS그룹의 제국이, 한 줄기 진실의 빛 아래서 모래성처럼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자, 이제 나갈 시간이야."태준이 멍하니 앉아 있는 정 회장을 향해 차갑게 말했다."회장님. 아이는 물건이 아닙니다. 이 기록들을 세상에 공개한 건 우리지만, 당신의 제국을 무너뜨린 건 당신의 탐욕입니다."아빠들은 의경을 가운데 두고 회의실을 빠져나왔다. 로비에는 이미 수많은 경찰과 기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얼굴이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의경 씨, 괜찮겠어? 여기서 나가면 우린 이제 숨을 곳이 없어."유준이 물었지만, 의경은 미소 지었다."여름이를 뺏기지 않았잖아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그들은 당당하게 로비를 걸어 나갔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그들은 누구도 대답하지 않았다.
Read more

제78화: 갈림길, 그리고 멈추지 않는 엔진

지하 4층 주차장의 공기는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와 거친 숨소리로 가득 찼다. 최도환이 보낸 사병들은 마치 짐승처럼 셰어하우스 식구들을 에워싸고 좁혀 들어왔다. 강태는 자신의 몸을 방패 삼아 의경과 여름이를 뒤로 감추고, 쇠파이프를 휘둘러 덤벼드는 적들을 하나씩 쓰러뜨렸다. 그의 손등은 이미 피로 얼룩져 있었고, 이마에서는 흐르는 땀이 눈을 따갑게 찔렀지만, 그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이태준! 유준아! 여기서 시간 끌지 마! 너희들은 머리를 써야지, 여기서 육탄전 할 놈들이 아니야!” 강태가 핏대를 세우며 외쳤다. 그 말대로였다. 유준과 이수는 태준이 미리 매설해 둔 무선 교란 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해 벽면으로 파고들고 있었다. 하지만 적들의 화력이 너무 강했다. 그때, 저 멀리서 엘리베이터가 ‘딩’ 소리와 함께 열리며 예상치 못한 이들이 쏟아져 나왔다.지상에서 터진 폭로를 보고 달려온 방송사 취재 차량의 기자들과, 최도환의 명령을 받지 않는 일선 경찰들이었다. 그들이 로비를 뚫고 지하 주차장까지 내려온 것이다.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이며 주차장을 하얗게 물들였다. 최도환의 사병들은 언론의 카메라와 경찰의 공권력이 들이닥치자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생중계되고 있는 카메라 앞에서 민간인을 향해 총을 쏘거나 린치를 가하는 것은, 최도환의 권력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자살 행위였기 때문이다.“저기 있다! 셰어하우스 일행이다!” 기자들이 소리쳤다. 순식간에 주차장은 취재진과 경찰, 그리고 최도환의 사병들로 뒤엉킨 아수라장이 되었다.“지금이다! 나가자!” 태준이 의경의 손을 낚아채며 소리쳤다. 강태와 유준은 적들의 시선이 언론으로 쏠린 틈을 타, 주차장 구석에 미리 숨겨두었던 차량으로 몸을 날렸다. 시동이 걸리는 굉음과 함께 차는 주차장을 가로질러 출구로 질주했다. 최도환이 “잡아! 당장 쫓아!”라고 절규했지만, 이미 그들은 취재진의 카메라 포위망을 뚫고 서울 도심의 교통 체증 속으로 사라진 뒤였다.차가 도심을 벗어나 한적한 국도로 들어섰을 때, 비로소 정
Read more

제79화: 유령의 속삭임, 그리고 썩어가는 제국

사고 현장에서 발견된 것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타버린 검은색 SUV뿐이었다. 뉴스에서는 셰어하우스 일당이 절벽 아래로 추락해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대한민국은 들썩였지만, 그건 셰어하우스 식구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다. 이제 그들을 쫓는 경찰의 사이렌 소리도, 불심검문을 하는 사복 요원들의 시선도 사라졌다. 그들은 비로소 '유령'이 되었다.경기도 외곽의 버려진 종묘 배양장. 셰어하우스 식구들은 이곳을 새로운 거점으로 삼았다. 외부와 완벽하게 차단된 폐쇄적인 공간이었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돌았다. 의경은 여름이를 위해 좁은 창고를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았고, 강태는 매일 아침 인근 숲에서 식재료를 구했다. 유준과 이수는 배양장의 낡은 컴퓨터들을 뜯어고쳐, 전 세계 어디와도 연결되는 비밀망을 구축했다.“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죽었다고 생각해요. 덕분에 최도환은 이제 우리를 찾으려 애쓰지 않겠죠.” 유준이 모니터 화면을 가득 채운 복잡한 데이터 그래프를 보며 덤덤하게 말했다. “지금부터는 우리가 사냥하는 차례야. 놈이 쌓아 올린 비자금의 혈관들을 하나씩 잘라버릴 겁니다.”본격적인 ‘유령 작전’이 시작되었다. 강태와 이수가 최도환의 비자금을 관리하는 페이퍼 컴퍼니들의 실제 주소를 찾아내면, 태준이 검찰 내부망을 해킹해 그들의 불법 거래 정황을 익명으로 공익 제보했다. 수많은 뇌물 장부가 국세청과 검찰 고위직의 이메일로 쏟아져 들어갔다. 최도환의 하수인들이 관리하던 부동산과 주식 계좌는 유준의 손끝에서 순식간에 동결되었고, 그들은 돈줄이 막혀 서서히 굶주리기 시작했다.최도환의 제국은 겉으로는 건재해 보였지만, 내부에서는 썩은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했다. 최도환은 분노와 공포에 휩싸였다. 그는 자신의 세력이 하나둘씩 무너지는 것을 보며, 이것이 단순한 내부 고발이 아님을 직감했다.“죽은 놈들이… 죽은 놈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어!”최도환은 자신의 집무실을 닥치는 대로 부수며 포효했다. 그는 셰어하우스 일당이 살아있다
Read more

제80화: 무너진 성벽, 그리고 귀환한 주인들

연희동 셰어하우스는 텅 비어 있었다. 한때 여름이의 웃음소리와 네 아빠들의 소란스러운 아침 식사로 가득 찼던 거실은, 이제 곰팡이 핀 벽지와 뜯겨나간 바닥재만이 흉물스럽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빗줄기가 쏟아지는 밤, 정해창 회장과 최도환은 검은 우산을 쓰고 낡은 대문을 넘었다. 정 회장은 떨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짚었고, 최도환은 연신 주변을 경계하며 권총을 만지작거렸다."여기에 도대체 뭘 숨겨놨다는 겁니까?" 정 회장이 쏘아붙였다."놈들이 죽었다는 게 거짓말이라면,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이곳에 흔적이 있을 겁니다. 제가 놈들을 불러냈으니까요." 최도환이 비릿하게 웃었다.그 순간, 낡은 거실의 조명이 ‘지직’ 소리를 내며 일제히 켜졌다. 수년간 꺼져 있던 형광등이 기이한 불빛을 내뿜었다. 놀란 두 사람이 뒤를 돌아보자, 현관문 앞에 네 남자가 서 있었다. 죽은 줄 알았던 이태준, 나유준, 최강태, 그리고 이수. 그리고 그들 뒤로 의경이 차분한 눈빛으로 이들을 응시하고 있었다.최도환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뒷걸음질 쳤다. "귀… 귀신인가?""귀신은 너희들이지. 권력에 눈이 멀어 사람을 짐승처럼 도륙하고, 제 자식까지 죽인 악귀들." 태준의 목소리는 빗소리보다 낮고 차갑게 울렸다."이태준! 어떻게 살아있어!" 최도환이 권총을 꺼내 들려 했지만, 강태가 눈보다 빠른 속도로 달려들어 그의 손목을 꺾어버렸다. 총은 바닥으로 떨어져 나뒹굴었다. 정 회장은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유준이 현관을 봉쇄하고 셰어하우스의 보안 시스템을 재가동한 뒤였다."여긴 우리 집이야, 최도환." 태준이 천천히 다가가 최도환의 멱살을 잡았다. "우리가 가장 힘들 때 서로를 보듬고, 여름이를 지키며 진짜 가족이 된 곳이지. 그런데 너희가 감히 이곳을 더럽혀?""너희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세상은 너희를 범죄자로 기억할 거야! 우리는 법의 보호를 받는다고!" 정 회장이 씩씩거렸지만, 목소리는 공포로 떨리고 있었다.이수가 노트북을 열어 거실 벽면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켰다. 그곳에
Read more
PREV
1
...
678910
...
17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