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이 담장을 넘어오기 시작한 11월의 주말.셰어하우스 마당에는 평소와 전혀 다른 의미의 ‘거대한 전투’를 준비하는 장비들이 속속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마당 한가운데 쌓인 배추 100포기와 무, 그리고 커다란 고무 대야 세 개.의경이 머리에 두건을 둘러매며 장군처럼 마당 한가운데 섰다.“자, 다들 집중하세요! 오늘은 올해 셰어하우스의 식탁을 책임질 가장 중요한 날, 바로 ‘김장하는 날’입니다! 한 포기도 허투루 다뤄선 안 돼요!”네 아빠와 여름이, 그리고 마당을 뛰어다니던 두부까지 일제히 침을 꼴깍 삼켰다.“배추 100포기라…” 강태가 비닐 앞치마를 목에 걸며 터질 듯한 팔근육을 불끈해 보였다. “의경 씨, 치대고 섞는 힘쓰는 일은 다 저한테 맡기십시오. 절구질부터 배추 나르기까지 전담하겠습니다.”“강태 씨, 힘만 세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양념 비율과 치대는 속도가 균일해야 배추가 짓무르지 않는다니까요.”의경이 웃으며 빨간 고무장갑을 나눠주었다.한편, 테크니컬한 작업(?)을 선호하는 이수와 유준은 김장 과정에 자신들만의 전문성을 접목하기 시작했다.이수는 레이저 온도계와 저울을 꺼내 들었다. “절임 배추의 염도 측정 완료. 3.5% 염수에서 정확히 12시간 절여졌으니 최상의 상태야. 양념 속을 넣을 때는 배추 잎 한 장당 정확히 45g씩 도포해야 균일한 발효가 일어나지.”유준은 스마트폰 태블릿에 ‘김장 발효 예측 프로그램’을 켜두고 있었다. “김치냉장고 내부 온도를 스마트 홈 시스템에 연동해 뒀어. 초기 숙성 온도는 1.5도로 설정하고, 3일 뒤에 0도로 자동 전환되게 프로그래밍했으니까 김치 아삭함이 1년 내내 유지될 거야.”태준은 젠틀하게 명품 트레이닝복 위에 빨간 비닐 앞치마를 두르고, 배추 속으로 들어갈 갓과 파, 무채를 썰기 시작했다. 법정에서 판결문을 작성하던 정교한 손놀림으로 칼질을 하자, 착- 착- 착- 착- 하는 경쾌한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오, 태준 형님 칼질 소리가 예술인데?” 강태가 탄성을 질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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