بيت / 로맨스 / 돌이킬수 없는 / Chapter 61 -الفصل 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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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화

하지만 도진의 비틀린 입술 사이로 새어 나오는 숨결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유라를 얼음같은 계곡물 속에서 가지고 놀았던 대가가 어떤 것인지, 고스란히 돌려주기 위한 잔인한 서막이었다.도진의 파격적인 도발에 유태희는 순간 망설였다. 아무리 그에게 잘 보이고 싶어도, 어제 이유라를 기절케 했던 그 소름 끼치도록 차가운 계곡물 속에 제 발로 들어갈 자신은 없었기 때문이다.태희는 붉어진 얼굴을 감추며 도진에게 슬그머니 한 걸음 더 다가갔다. 그리고 주변 스태프들의 눈을 피해 그의 탄탄한 가슴팍에 손을 얹으며 요염하게 귓속말을 속삭였다.“젖은 몸이라면…… 오늘 촬영 끝나고 내 방으로 와. 얼마든지 보여줄 테니까.”대놓고 던지는 노골적인 제안이었다. 평소의 포식자 도진이라면 가소롭다는 듯 쳐내고도 남았을 유혹이었지만, 오늘 그의 목적은 유태희의 파멸이었다. 도진은 한쪽 입꼬리를 차갑게 올리며 픽 웃었다. 그리고 태희의 허리춤을 바짝 당겨 안을 듯 위협적으로 밀어붙이며 나직하게 받아쳤다.“난 지금 보고 싶은데? 싫다면 어쩔 수 없지. 네 프로 정신이 겨우 그 정도라면 나도 흥미 떨어지네.”태희를 내려다보는 도진의 눈빛이 순식간에 차갑게 식어내렸다. 그 단호하고 무심한 태도에 애가 탄 것은 도진을 완전히 제 남자로 만들었다고 착각한 유태희 쪽이었다. 그의 흥미를 잃고 싶지 않다는 조바심과 독점욕이 태희의 이성을 마비시켰다.결국 태희는 도진에게 잘 보이기 위해 홱 돌아서더니, 확성기를 들고 있던 메인 감독에게 달려갔다.“감독님! 생각해보니까 지금 이 신 세팅, 분무기만 뿌리니까 너무 가짜 같고 어색해요. 리얼리티를 위해서 제가 직접 물에 들어갔다 나올게요!”순간 촬영장의 모든 스태프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평소 손끝에 물 한 방울 묻히는 것도 싫어해 온갖 갑질과 유세를 떨던 탑배우 유태희가 제 발로 얼음물에 들어가겠다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내 분위기를 파악한 메인 감독이 감탄 섞인 박수를 치기 시작했고, 촬영장 여기저기서 환호와 박수가 쏟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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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화

비틀린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잔인하게 비웃은 도진은, 미련 없이 돌아섰다. 유태희가 어제 유라를 향해 비웃었던 그 오만함을 그대로 돌려주는 완벽한 연출이었다.남겨진 유태희는 밀려드는 수치심과 배신감에 입술을 짓씹었다. 타월을 움켜쥔 하얗게 질린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도진이 자신에게 완전히 반해서 그런 요구를 한 게 아니라, 어제 이유라의 일에 대한 지독한 복수이자 장난질이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기 때문이다."김도진…… 네가 감히 나를 가지고 놀아?“머리끝까지 치밀어 수치심에 유태희의 온몸이 분노로 떨렸지만, 이미 주도권은 도진에게 가 있었다.그렇게 얼어붙은 촬영장이 대강 마무리되고, 도진은 스태프들의 인사조차 받지 않은 채 거칠게 제 전용 차량에 올라탔다. 차 문이 닫히자마자 도진은 운전석을 향해 서슬 퍼런 명령을 뱉었다."바로 대한 병원으로 출발해.""네? 숙소에 안 들리시고요? 아직 짐도 다 기획사 방에 그대로 있는데요?"수행 직원이 백미러로 도진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묻자, 도진은 창밖으로 시선을 던지며 낮게 읊조렸다."짐은 알아서 챙겨오라고 해.“단 1분 1초도 이 끔찍한 지방 촬영장에 발이 묶여있고 싶지 않았다. 머릿속에는 유라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을 이도현의 가증스러운 얼굴, 그리고 그 새끼의 병실에 누워있을 이유라의 잔상이 가득했다. 가속페달을 밟은 차가 서울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도로를 미끄러져 가기 시작했다.서울로 향하는 고속도로 위, 차창 밖으로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가로등 불빛들이 도진의 가라앉은 옆얼굴을 간헐적으로 비추었다. 도진은 피로와 분노로 붉게 충혈된 눈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운전석 너머로 낮게 명령했다."전화 연결해."잠시 후, 병원에 김매니저의 다급한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어디야?”단조롭지만 묵직한 중압감이 실린 도진의 음성에 매니저가 기가 죽어 속삭였다.“지금 VIP 병실 앞입니다, 그…… 담당 의사가 어제 저녁에 병실 들어갔다가 오늘 아침에 나온 것 외에는, 지금까지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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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유라는 그동안 밀린 잠을 한꺼번에 몰아서 자려는 듯, 깊고 무거운 무의식의 늪에 빠져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그런 유라의 곁을 지키는 것은 온전히 도현의 몫이었다. 그는 회진 시간이나 밀린 수술이 끝날 때마다 틈만 나면 이곳으로 달려와 유라의 상태를 살폈다.하루의 모든 일과가 끝난 늦은 밤, 마침내 퇴근복으로 갈아입은 도현이 다시 유라의 병실을 찾았다. 하얀 가운을 벗어던지고 편안한 니트 차림이었지만, 유라를 바라보는 그의 눈빛만큼은 낮보다 더 깊고 진해져 있었다.도현은 익숙하게 침대 곁으로 다가가 차가운 은빛 청진기를 유라의 환자복 깃 사이, 가녀린 가슴 언저리에 조심스럽게 가져다 대며 진찰을 시작했다. 규칙적으로 뛰는 심장박동 소리가 청진기를 타고 도현의 귀에 닿던 그 순간."……음."유라의 짙은 속눈썹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리더니, 굳게 닫혀 있던 눈꺼풀이 살며시 열렸다. 흐릿한 초점 사이로 병실의 은은한 조명과 제 가슴팍에 청진기를 댄 채 굳어있는 남자의 실루엣이 비쳤다.놀란 도현이 서둘러 청진기를 거두며 유라와 눈을 맞췄다. 늘 이성적이던 그의 목소리에 날것의 다급함이 섞여 들었다."유라야, 정신이 좀 들어? 나 알아보겠어?“유라는 멍하니 눈을 깜빡이며 낯선 천장과 화려한 병실 내부를 살폈다. 이내 눈앞에 있는 도현을 알아보고 반사적으로 상체를 일으키려 버둥거렸다. 하지만 사지가 천근만근 무거워 손가락 하나 제대로 까딱할 수 없었다. 다시 침대로 툭 떨어지는 유라를 도현이 커다란 손으로 부드럽게 감싸 안아 만류했다."아직 일어나지 마. 몸 상태 아직 정상으로 안 돌아왔어. 가만히 누워있어.“간신히 받아낸 유라의 호흡을 느끼며 도현은 억눌렀던 질문들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대체 어쩌다가 저체온증이 올 정도로 차가운 물 속에 있었던 건지, 김도진 그 새끼가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건지 이도현은 궁금한 게 너무나 많았다. 하지만 이제 막 깨어난 유라를 다그치고 싶지 않아, 그는 핏발 선 눈을 깜빡이며 간신히 말을 아꼈다."우선 누워서 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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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화

도현이 유라의 상태를 다시 한번 확인 한 후 콜을 받고 병실을 나섰다.문이 닫히는 무거운 소리와 함께 다시 방 안에는 지독한 고요가 찾아왔다.침대에 덩그러니 남겨진 유라는 멍하니 천장의 미등을 바라보았다. 머릿속을 비워내려 눈을 감았지만, 어둠 속에서 왜인지 모르게 김도진의 잔상이 유령처럼 피어올랐다.그토록 끔찍하게 자신을 유린하고,영혼까지 짓밟았던 잔인한 인간. 자신을 그저 쓰다 버릴 장난감처럼 취급하던 그 차가운 남자가 이 타이밍에 왜 생각나는지 유라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증오하고 원망해야 마땅한데도, 가슴 밑바닥에서 고개를 드는 이 기이한 감정은 유라를 비참하게 만들었다.”정말 나는 ...그 사람에게..장난감 그 이상도 ..아니었던 걸까?..“사경을 헤매다 겨우 눈을 떴을 때, 이 넓고 화려한 VIP 병실 안에서 자신을 기다려준 사람은 오직 이도현, 그 한 사람뿐이었다. 도현이 잠시 자리를 비운 방 안에는 서글픈 기계음만이 공허하게 울리고 있었다.도현 외에는 그 누구도 자신을 간절하게 찾지 않았다는, 세상에 철저히 혼자 남겨졌다는 비참한 생각이 들자 가슴 한쪽 구석이 칼로 베인 듯 아려왔다. 내가 사라져도 눈물 한 방울 흘려줄 사람이 없구나, 자신의 존재가 먼지보다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독한 허무함이 밀려와 참으려 할수록 유라의 눈시울이 뜨겁게 붉어졌다.이도현이 자신 외의 그 어떤 누구도, 이 병실 근처에 발을 들이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했다는 사실을 유라는 꿈에도 알지 못했다. 그저 병원 문밖의 세상이 평온하게 흘러가고 있을 거라 믿은 유라는, 김도진에게아무런 가치도 없는, 언제든 쉽게 대체 가능한 소모품에 불과했다는 잔인한 확신에 가슴이 난도질당했다. 죽음의 문턱까지 다녀왔음에도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 도진의 무심함이, 얼음물보다 더 시리게 유라의 가녀린 심장을 얼려버렸다.한편, VIP 병동 복도 구석에서 숨죽인 채 대기하던 매니저는 이도현이 풍기는 묘한 기류에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다.기회를 노리던 매니저는 도현이 잠시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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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화

'결국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야.‘지독한 허무함과 슬픔 끝에 유라는 마침내 무거운 결정을 내렸다. 더 이상 김도진의 기획사에서, 유태희 같은 인간들의 조롱을 받으며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차라리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일을 그만두는 게 맞았다.당장 계약을 파기했을 때 날아올 막대한 위약금을 감당할 돈은 한 푼도 없었지만, 도망치듯 이 바닥을 떠나 악착같이 밤낮으로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매달 돈을 갚아 나가겠다고 유라는 눈을 감으며 다짐했다.유라의 완강한 태도에 결국 도현도 한 걸음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도현은 몇차례나 유라를 설득해 보았지만, 제 처지를 비참해하며 병실을 나가겠다는 유라의 의지는 꺾이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하지만 무엇보다 도현의 철벽 같은 고집을 꺾은 것은, 김도진의 보조 매니저 일을 완전히 그만두겠다는 유라의 뜻밖의 고백이었다."오빠, 저 퇴원하면 일 그만두려구요...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보고 싶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유라를 붙잡고 있던 도현의 손길에 미미하게 힘이 풀렸다.도현의 머릿속은 빠르게 굴러갔다. 유라가 그 김도진과의 관계만 끝낸다면 그녀가 기댈 곳은 정말로 자신 하나뿐이 될 터였다. 김도진이라는 거대한 포식자의 손아귀에서 유라를 완벽하게 격리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기회였다."……그래. 네 생각이 그렇다면 더는 말리지 않을게.“도현은 오히려 안도감이 섞인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순순히 퇴원 수속을 허락했다. 유라가 회사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불안감에 유라를 굳이 이 병실에 가두어둘 필요가 없었다.유라는 그날 오후, 마침내 무거운 병실을 벗어나 퇴원 수속을 밟았다.일주일 만에 환자복을 벗고 도현이 정성스럽게 준비해 둔 단정한 옷으로 갈아입은 유라는 병원 1층 로비의 한적한 벤치에 앉아 있었다.도현이 의사 가운을 벗으며 유라에게 이야기 했다."잠깐만 기다려, 유라야. 옷 갈아입고 나와서 집까지 데려다줄게“유라를 향해 다정하게 웃어 보이던 도현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였다.적막한 병원 로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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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화

김 매니저는 이제야 이 지긋지긋한 병원 간첩 생활이 끝났다는 생각에 유라를 다급하게 재촉했다."유라 씨, 일단 집으로 갈 거지? 나랑 우선 같이 가자. 도진 씨가 지금 유라 씨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거야. 아휴, 나도 이제 병원 생활 끝이네!"매니저가 개운하다는 듯 활짝 웃어 보였다. 도현이 곧 옷을 갈아입고 내려올 시간이었지만, 김 매니저의 집요한 재촉과 '김도진'이라는 이름이 주는 거대한 중압감을 이겨낼 재간이 유라에게는 없었다. 도현과 매니저가 병원 로비에서 마주치기라도 한다면 더 큰 사달이 날 것이 분명했다.결국 유라는 원무 데스크로 다가가 간호사에게 급하게 적은 쪽지 한 장을 가쁜 숨과 함께 전달했다.『오빠, 미안해요. 회사에서 갑자기 급하게 연락이 와서 먼저 가봐야 할 것 같아요. 몸은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연락드릴게요. 고마웠어요.』김 매니저의 뒤를 따라 병원 유리문 밖으로 나서는 유라의 발걸음은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무거웠다. 도진의 전용 차량 뒷좌석에 올라타 창밖을 바라보는 유라의 머릿속은 복잡하게 얽혀 들어갔다.막대한 위약금을 악착같이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매달 나누어 갚겠다는 이야기를 그 오만하고 차가운 김도진에게 어떻게 꺼내야 할지, 유라는 떨리는 손가락을 꽉 맞잡으며 머릿속으로 말을 정리하고 또 정리했다.차 안에서 불안감에 휩싸인 채 김도진에게 할 이야기를 몇 번이고 되새기는 동안, 차는 어느새 거대하고 삭막한 김도진의 펜트하우스 앞에 멈춰 섰다.묵직한 현관문 앞에서 유라는 한참을 망설였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지만, 유라는 주먹을 꽉 쥐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그래, 어차피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야. 빨리 할 말만 하고 가자.’ 유라는 떨리는 손으로 심호흡을 크게 한 후, 마침내 초인종을 눌렀다.‘띵동-’초인종이 울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딸깍하고 들렸다. 유라는 다시 한번 심호흡을 하며 차가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신발을 벗고 거실로 채 들어서기도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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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화

그만두겠다는 유라의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도진의 잘생긴 미간이 순식간에 험악하게 찡그려졌다. 거실의 공기가 급속도로 얼어붙었지만, 고개를 숙이고 있던 유라는 그 변화를 보지 못한 채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계약 파기에 따른 보복이 두려워 목소리가 잘게 떨렸다."위약금은…… 어떻게든 갚을게요. 대신 시간을 조금만 주시면, 제가 매달 일정 금액씩 아르바이트를 해서라도…… 나눠 내도 될까요? 부탁드릴게요…….“유라가 잔뜩 주눅이 든 난감한 말투로 고개를 숙인 채 도진에게 애원하듯 이야기하고 있었다. 제 발로 이 바닥을 떠나 완벽하게 도망치겠다는 처절한 다짐이었다.그러나 그 이야기를 듣는 도진의 가슴 밑바닥에서는 알 수 없는 화가 무섭게 치밀어 올랐다. 고작 일주일 동안 이도현의 품에 숨어있다가 나와서 한다는 소리가, 자신을 영영 떠나겠다는 선언이라니. 지독한 독점욕과 제어할 수 없는 분노가 도진의 이성을 통째로 불태워버렸다.도진은 기가 막힌다는 듯, 갑자기 입꼬리 한쪽을 비틀어 올리며 이유라를 내려다보았다. 잔인하리만큼 서늘한 비웃음이었다.“그만둔다고?”도진이 비웃듯 웃으며 낮게 읊조렸다. 뱀의 혀처럼 위험하고 묵직한 목소리가 유라의 귓가를 잔인하게 파고들었다.“난 너의 사정 같은 건 봐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이유라?”소파 등받이에 깊숙이 몸을 묻고 있던 도진이 천천히 상체를 기울였다. 일주일 내내 빡빡한 밤샘 촬영과 쇄도하는 광고 미팅, 그리고 이도현과의 숨 막히는 신경전으로 잠 한 숨 자지 못한 그의 얼굴에는 짙은 피로와 함께 날카로운 섹시함이 묻어났다. 대충 풀어헤친 셔츠 깃 사이로 거친 호흡이 가라앉았고, 유라를 향한 시선은 화면 속 대중을 홀리던 것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강렬했다.“내가 얘기했지. 난 가지고 싶은 건 어떻게 해서든 가져. 그게 물건이든, 사람이든.”도진이 피식 웃으며 고개를 살짝 꺾었다.그는 굳어버린 유라의 얼굴 가까이 제 잘생긴 얼굴을 사정없이 들이밀었다. 도진에게서 풍겨오는 짙은 스모키 향과 서늘한 스킨 향이 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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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화

낮게 긁히는 목소리가 유라의 귓가를 잔인하게 파고들었다. 턱을 쥔 그의 손가락에 서서히 힘이 들어가며 유라의 시선을 강제로 고정시켰다.“흥미가 생기기 시작했거든, 네가.”대중의 사랑을 갈구하던 화려한 톱배우의 얼굴은 온데간데없고, 오직 제 손에 쥔 장난감을 절대 빼앗기지 않겠다는 집요한 집착만이 도진의 얼굴에 가득했다. 도진은 바르르 떨리는 유라의 뺨을 거칠게 쓸어내리며, 거부할 수 없는 잔혹한 명령을 속삭였다.“넌 그냥 내가 하라는 대로 하기만 하면 돼. 그만둔다는 생각은 안하는게 좋을거야.”유라를 옭아매던 뜨거운 숨결이 거두어지는 것과 동시에, 도진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피로가 가득 묻어나는 걸음걸이였지만, 등을 돌린 그 뒷모습마저도 지독하게 오만하고 화려했다.도진이 제 방으로 들어가 쾅, 하고 문을 닫고 나서야 거실에는 무거운 정적이 찾아왔다.유라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몰아쉬며 덜덜 떨리는 손으로 소파 가죽을 움켜쥐었다.하지만 비참함에 젖어 있을 시간조차 도진은 허락하지 않았다.유라는 더 이상 저항할 힘도, 도망칠 방법도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다. 당장 도진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없다는 차가운 현실과, 기댈 곳 하나 없는 고아라는 자신의 처지가 겹쳐 오면서 밀려오는 무력감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다.결국 유라는 온몸의 힘을 뺀 채 포기한 듯 도진이 가리켰던 복도 끝 방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어쩔 수 없이 도진의 잔인한 제안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자신이 너무나 비참했다.방문을 열고 들어가자, 거실만큼이나 넓지만 삭막하고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방이 유라를 맞이했다.유라는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일주일 전 얼음장 같은 계곡물에 처박혔던 그날처럼, 가슴속이 다시 차갑게 얼어붙는 것만 같았다.'그래...이유라... 여기서 1년만 버티면 돼.....‘유라는 바르르 떨리는 주먹을 꽉 맞잡으며 눈물을 삼켰다굳게 닫힌 방문 너머 자신의 침실로 들어온 도진의 심기는 지독하게 뒤틀려 있었다.원래 유라에게 그렇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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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화

“의사 선생님은 환자 치료하셨으면 이제 신경 끄세요. 나한테 감히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시고.”도진은 침대로 걸어가 외투를 툭 던져두며,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간만에 만난 이유라랑, 좀 더 ‘가까운 시간’ 좀 보낼 예정이니까 전화는 이제 못 받을거야.”말이 끝나기 무섭게 도진은 거칠게 통화 종료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일말의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 휴대폰 전원까지 완전히 꺼버렸다.검게 죽어버린 화면을 내려다보는 도진의 눈빛에는 지독한 승리감과 함께, 여전히 풀리지 않는 유라를 향한 위험한 집착이 뒤섞여 요동치고 있었다.도현과의 불쾌한 통화를 마친 도진은 신경질적으로 방문을 거칠게 열고 거실로 나왔다.숨이 막힐 듯 고요한 거실을 둘러보던 도진의 시선이 이내 복도 끝 유라의 방으로 향했다. 유라가 있는 방앞에 선 도진은 노크도 없이 유라의 방문을 벌컥 열어젖혔다.방 안에는 유라가 딱딱한 침대 모서리에 기대 가녀린 몸을 웅크린 채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원래도 마르고 야윈 체구였는데, 일주일 사이에 핏기가 완전히 가신 얼굴과 몸은 전보다 훨씬 더 가냘프고 안쓰러워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순간 도진의 가슴 한구석이 찌릿하게 아려왔지만, 그 감정을 알아채기도 전에 도진의 인기척에 놀란 유라가 황급히 몸을 일으켰다. 주인을 마주한 죄인처럼 잔뜩 주눅이 든 채였다.“시, 시키실 거라도…… 있으신가요...?”“나와. 밥 먹게.”도진은 퉁명스럽게 내뱉고는 먼저 주방으로 향했다. 유라가 퇴원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미리 고급 한정식과 기력 회복에 좋은 음식들을 잔뜩 주문해 두었었다. 도진은 냉장고에서 꺼낸 고급 요리들을 커다란 아일랜드 테이블 위에 툭툭 올려두며 턱 끝으로 의자를 가리켰다.“먹어.”유라는 숨 막히는 이 공간에서 도진과 마주 앉아 음식을 삼킬 수 있을 리 만무했다.“저는…… 별로 생각이 없어서…….”불편하고 무서운 상황을 피하고자 유라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려 하자, 도진의 미간이 좁혀지며 낮고 강압적인 목소리가 튀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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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화

침대에 기대어 누워있던 유라는 당황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문앞에 팔짱을 끼고 서 있던 도진은 순간 숨을 들이켰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얇은 실크 잠옷 사이로, 유라의 가녀리면서도 매혹적인 몸매가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눈이 멀 것 같은 자극에 도진은 순간 흠칫 놀랐지만, 언제나처럼 입 밖으로는 차가운 독설이 먼저 나갔다.“그럼…… 잠은 어디서…….”당황한 유라가 갈 곳 잃은 시선으로 말끝을 흐렸다. 도진은 여전히 오만한 태도로 턱 끝을 까딱이며 명령했다.“나와.”불안감에 심장이 쿵쾅거렸지만 유라는 어쩔 수 없이 도진의 부름에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도진의 뒤를 따라 도달한 곳은 거대하고 묵직한 공기가 감도는 도진의 침실이었다.도진은 깊고 짙은 눈빛으로 침대를 가리키며 유라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들이려 했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유라가 뒷걸음질을 치자, 도진은 거칠게 다가와 유라의 손목을 단단히 붙잡아 옭아맸다. 그리고 귓가에 낮게 속삭였다.“왜 이래? 우리 처음도 아니잖아.”그 잔인한 상기에 유라의 커다란 눈망울에 금세 눈물이 떨어질 듯 차올랐다. 자신을 그저 욕구 충족에만 필요할 때 쓰고 버리는 장난감처럼 대하는 김도진. 유태희에게 그렇게나 다정하고 감미로운 미소를 지어주던 모습이 겹쳐지면서, 유라의 가슴 속에서 왜인지 모를 서글픔과 비참함이 차올랐다.더 미련한 것은, 그 지옥 같던 병실에 홀로 누워있을 때조차 왜 김도진의 서늘한 향기가 생각이 났는지, 제 마음조차 알 수 없어 복잡함이 한데 섞여들었다.유라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모습을 본 도진은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으며 멈칫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유라를 놔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유라가 병원에 이도현과 함께 있는 일주일 동안, 도진은 눈만 감으면 유라의 잔상이 어른거려 단 한숨도 자지 못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한시라도 유라에게서 떨어지기 싫은, 지독한 집착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었다.“뭐해, 들어가.”도진이 굳어있는 유라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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