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동쪽에 핀 연꽃 : 서녀무사전: Chapter 41 - Chapter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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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화. 고립

베어든 목을 들고 겸이 걸음을 옮기자, 한 병사가 그 목을 건네받아 적진 앞에 걸어 두었다. 북방의 거센 바람에 적장의 머리가 흔들거렸다. 포로들 사이에서 웃음과 울음이 섞인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 ​ 연화는 칠복어미를 부축해 칠복의 집으로 걸어갔다. 성황당 앞에서 칠복이와 그의 누이가 손을 잡고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발견하자마자 뛰어가 부둥켜안았다. 기쁨과 슬픔을 나누며 울부짖는 그들을 보자, 연화의 눈에도 울컥-눈물이 차올랐다. 그들을 한참을 지켜본 후에야 연화는 걸음을 돌렸다. ​ “저기요!” 연화가 고개를 돌리자, 칠복의 누이가 연화를 향해 헐레벌떡 뛰어왔다. “그냥 가시면 어째요? 감사 인사도 못 드렸는데.” “감사인사 할 것 없다. 난 내 일을 했을 뿐이야.” “말하지 않았습니다.” “뭘?” “나리…? 언니…? 가 여인이라는 거요.” 연화가 그 말에 픽- 웃었다. “잘못 보았다. 나는 사내가 맞아.” “예?”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모습에 연화가 킥킥 웃었다. “아니, 사실 여인이 맞지.” “예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는 그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났다. 조금만 더 놀려도 될까? “실은, 둘 다야.” 연화의 장난기 어린 모습에 그녀도 따라 웃었다.​ “농이시지요? 뭐든 상관없습니다. 저희에게는 그저 은인이고, 영웅이시니까요.” “그간. 고초가 많았다. 내가… 아니, 우리 군이 꼭 예전으로 돌려놓을게. 약속해.” “예. 약속은 꼭 지키시는 분이잖아요. 그리고, 이거…” 그녀는 연화의 손에 무언가 꼬옥 쥐어주고는 꾸벅- 인사를 하고는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갔다.​ 멀어져 가면서도 손을 흔드는 그녀를 향해 연화도 손을 흔들었다. 시선을 내리자, 연화의 손에 꽃비녀가 쥐어져 있었다. 제게 귀한 것을 주었겠지. 연화는 그 꽃 비녀를 보고 옅은 웃음을 지었다. ​ 연화가 겸의 막사 앞에 섰다. 이 막만 거치면 그가 있는 곳이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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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악몽

그 비통한 얼굴이 훅- 연화 얼굴 가까이 까지 다가왔다. 연화는 그 얼굴을 피해 필사적으로 도망다. ​ 시선을 돌리자, 이번에는 배에 칼이 꽂힌 적군이 연화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그를 피해 도망가는 연화의 앞에 아비를 잃고 흐느끼는 아이와 여인이 있다. 쿵- 하늘에서 고통에 일그러진 머리 하나가 그들 앞에 떨어졌다. 여인과 아이는 그 머리를 끌어안고 오열했고, 분노했다. 공포와 죄책감에 연화는 그 자리에서 뒷걸음질 쳤다. ​ 그들을 피해 도망간 곳은 더 지옥이었다. 두 다리를 잃고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두 팔로 연화를 향해 기어 오는 자가, 다시 뒤를 도니 온몸에 자상을 입고 목이 꺾인 자가 허우적거리며 연화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 머리가 어지럽고 눈앞이 흐리고 속이 메슥거려 도망가는 것조차 힘에 부쳤다. 아비규환 속 피로 물든 그들의 모습은, 이제는 적인지 아군인지 구분조차 되지 않았다. ​그 참혹함과 비통함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땅에 엎드렸다. 머리를 감싸 안고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 “그만! 제발 그만!” 공포에 떨며 온몸으로 흐느꼈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아! 연아! 괜찮으냐?’ 익숙하고 따뜻한 목소리에 천천히 눈을 뜨니, 그녀의 눈앞에 겸이 걱정 어린 눈빛으로 그녀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악몽이라도 꾼 것이냐?” 흐느적거리며 겨우 자리에서 일어난 연화는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깨웠다.” 연화는 겸을 보자 안도감이 들었다. 그녀는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를 안고 무서웠노라고, 두려웠노라고 투정 부리고 싶었다. 이제 그만하고 싶다고, 사람이 죽는 모습은 더는 보고 싶지 않다고 매달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누구에게도 절대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된다. 특히, 자신의 주군 앞에서는 더욱이. ​ “아닙니다, 저하. 그저 잠자리가 편치 않아 그랬나 봅니다. 소인이 전하의 잠을 깨운 것입니까?” “아니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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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너 아니면 안돼.

겸이 군사를 이끌고 온 지 벌써 반년이 지나고 있었다.그간 반 정도의 영토를 수복하였으나 그 이상의 진전은 없었다.군사들은 점점 지쳐가고, 조정에서는 관심이 멀어지고 있었다.​“어제 명나라에 다녀온 병사의 얘기에 따르면 곧 적은 명과 큰 전투를 앞두고 있다 합니다.”“그럼 조선에 주둔 중인 상당수의 병력이 명과의 전쟁에 투입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까?”연화의 물었다.“그렇다네. 저하, 그 시기에 맞춰 저희 군도 저들을 쳐야 합니다.”김종원 장군의 말에 겸은 고개를 끄덕였다.“좋소. 적의 동태를 살피고 군사가 빠져나가는 걸 확인한 후, 바로 그들의 본거지를 쓸어버립시다.”​며칠 뒤, 적들의 동태를 살피러 나갔 병사가 돌아왔다.그들의 생각보다 많은 수의 병력이 빠진 것은 아니었지, 이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결전의 날을 앞두고 겸은 병사들을 독려했고, 병사들은 마음을 다잡았다.준비를 마치고, 겸의 군대는 적진을 향해 거침없이 돌진했다.큰 전투인 만큼 위험성이 컸다.세자를 선봉에 세우는 것에 많은 반대가 있었으나 겸은 뜻을 굽히지 않았다.“큰 전투일수록 앞장서야 한다. 내가 선봉에 서서 싸워야 병사들의 사기도 오를 것이다. 우리의 결과에 패배란 없다.”​적들을 향해 앞으로 빠르게 치고 나가는 겸의 뒤를 연화가 바짝 따랐다.그날의 전투는 양쪽 모두에게 사활을 건 전투였다.적들은 겸을 꺾어 사기를 떨어뜨리기 위해 집중적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하지만 겸은 그들에게 쉽게 당하지 않았다.겸은 차례차례 적들을 베어나갔고 그의 곁에는 충실한 호위무가사 있었다.떨어져 나가는 적들을 보고 겸은 차츰 승리를 예감했다.그때 뒤에서 “윽” 하며 낯익은 목소리가 겸의 귀에 꽂혔다.뒤를 돌자, 연화가 말에서 떨어져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연아!”겸의 뒤를 공격하려던 적을 발견하고 연화가 뛰어들다가 등을 베인 것이다.바닥에 쓰러진 연화를 본 순간, 겸은 사방에 적들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말에서 뛰어내렸다.겸이 쓰러진 연화를 안아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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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나를 받아줘.

쿵- 하며 내려앉은 심장은, 감당이 안될 만큼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너무나도 듣고 싶었지만, 감당할 자신이 없던 그 말.마음을 나누었다 생각은 했다.하지만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은, 그 마음을 외면해야만 했었고,겸 또한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다 믿었었다.예상할 수 없었던 그 말을 그의 입에서 직접 들 줄이야.‘저하께서.. 나를 좋아하신다…’울컥울컥 올라온 심연의 감정들은 어느 순간 환희로 바뀌었다.너무나도 듣고 싶었던 그 말...연화는 더 이상 그를 향한 감정들을 외면하지 못하고, 그의 목을 끌어안았다.감히 표현할 수 조차 없는 그를 향한 마음... 연정...안된다는 것은 알지만, 마음은 멈추지 말고 그에게 가라고 외치고 있었다.​겸의 호위를 맡은 후부터 늘 그의 등을 쫓아왔다.그에 대한 마음은 동경에서, 연민, 그리고 사랑으로 점차 자리 잡아왔다.그러나 그런 겸의 고백에도 연화는 쉽사리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너무 높은 곳이라 그저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그런 그가 지금 그녀의 품 안에 있다.받아들이고 나니,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한참을 서로의 품에 안겨 감정을 정리하다, 겸이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연화야.. 피가..”놓고 싶지 않았지만 연화의 등에서는 피가 계속 흐르고 있었다.그 피는 겸의 손을 타고 팔까지 흐르고 있었다.“저하께서 치료해 주세요.”연화는 그를 등지고 돌아앉았다.잠시 잊고 있던 통증이 밀려오자,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잠깐 기다리고 있거라. 치료할 것을 준비해 오마.”겸은 서둘러 막사 밖으로 나갔다.​겸은 영도에게 연화를 직접 치료할 것이라며 도구들을 준비해 달라 일렀다.영도는 재빨리 의원에게서 연고와 붕대, 진통제등을 받아 겸에게 건넸다.그리고 아무도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게 막사 앞을 지켰다.영도는 당장이라도 뛰쳐 들어가 괜찮냐고, 아프지는 않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이 자리에서 그녀를 지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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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나를 받아줘 2

그녀의 고통에 찬 음성에, 겸은 그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그리고 천천히 그리고 부드럽게 그녀의 몸 안 드나들었다.점점 피가 몰리는 통증에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그녀 안으로 자신을 강하게 몰아붙였다.그러자 고통과 환희 그 어딘가의 경계에 있던 그녀는, 어느 순간 온몸이 부서져 사라지는 듯 한 절정으로 몸을 떨었다.뜨겁고 질척한 몸이 뒤 엉키며 서로를 극한까지 몰아붙였다.마침내, 그는 마지막 남은 욕망을 강렬하게 그녀의 안에 남기고, 그녀의 몸 위로 미끄러지듯 쓰러졌다.연화는 숨을 헐떡이는 겸을 잠시 바라보고는 하늘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가쁜 숨에 가슴이 오르락내리락거렸다.이곳은 어디인가?현실이 아닌 다른 세계인가, 아니면 꿈속인가, 머리가 아득해졌다.​늘 긴장과 걱정, 고뇌, 고통이 가득한 이 전장 속에서 그들이 지금 느꼈던 환희는 분명 이세상것이 아니었다.순간,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왔다.​어쩌자고 이런 일을 벌였을까…몸이 너무 뜨거워 생각이 앞으로의 일까지 닿지 않았다.그저 지금 이 순간만은 오롯이 그의 품 안에 있고만 싶었다.연화는 다시 그의 품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한동안 두 사람은 서로를 품에 안고 체온을 공유했다.겸은 이 전장 속, 자신의 가장 깊은 번뇌에서 빠져나왔다.그러자 서서히 눈이 감기며, 아무 꿈조차 꾸지 않은 채 숙면에 빠져들었다.​연화는 자신의 품에서 밭은 숨을 내쉬고, 고이 잠든 그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이렇게 가까이, 오랫동안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이 행복했다.연화는 원 없이, 마음껏 그의 얼굴을 보고, 또 보고, 어루만졌다.얼마나 지났을 까? 연화는 자리에서 일어나 겸이 춥지 않게 이불을 덮어주었다.녹초가 된 몸을 일으켜,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몸을 누였다.한참을 뒤척이며, 잠들기 위해 애를 썼지만, 잠자리에 쉽게 들지 못하였다.많은 생각들이 그녀의 머리를 뒤 엉클어 놓았고, 그와 나눈 행위와 대화들의 잔상이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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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전우이자 연인 3

영도는 막사에 가까이 다가가 귀를 가져다 댔다.간헐적으로 들려오는 연화의 얕은 신음소리에 영도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그리고 그들이 사랑을 나누고 있음을 직감했다.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었지만 정신 차려야 했다.누군가 섣불리 이 막사를 들추기라도 한다면, 이 일을 알게 되는 사람이 생긴다면,그 뒤에는 감당하지 못할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영도는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그리고 지금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생각했다.자신이 아끼는 두 사람을 위해 이 자리에 단단히 서있겠노라 다짐했다.영도에게 그 밤은 유난히 길고 차가웠다.​​그리고 새벽녘이 지날 즈음 막사의 뒷문이 열리고 연화가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이 보였다.영도는 떠오르는 태양 속으로 사라져 가는 연화를 그저 지켜만 보았다.​ 격렬한 전투를 치른 병사들도 오랜만에 조금은 여유로운 하루를 시작했다.그들의 경쾌한 발소리와 웃음소리, 수다소리가 주둔지를 가득 채웠다.그 기분 좋은 소란스러움에 겸이 눈을 떴을 때,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빛이 그를 반겼다.잠과 휴식이 부족했을 세자를 그 누구도 깨우지 않았다.겸은 개운한 기지개를 켜고 연화를 살피기 위해 천막을 들췄다.'아픈 사람을 두고 너무 푹 자버렸군...'하지만 그곳에 연화는 없었다.그녀는 어디로 사라졌을까? 불안이 엄습했다.겸은 서둘러 막사 밖으로 뛰쳐나왔다병사들이 일제히 겸에게 예를 갖춰 인사했지만, 겸은 그들의 인사를 받으면서도 눈으로는 연화를 찾았다.​멀리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연화가 말을 타고 그에게 달려오고 있었다.마주한 얼굴에서 미소가 피어올랐다.말에서 내린 연화가 겸에게 인사를 했다.“몸도 성치 않은데 아침부터 어디를 다녀온 것이냐?”“바람도 쐴 겸 주변을 좀 둘러보고 왔습니다.”“몸은 괜찮은 것이냐?”“예, 많이 좋아진 듯합니다.”“붕대를 다시 감아야겠다. 일단 안으로 들어가자”연화는 겸을 따라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일어나 보니 네가 없어서 얼마나 놀랐는지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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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인과

모두의 놀란 시선이 연화에게 향했다..놀란 것도 잠시 이 기쁜 소식에 겸이 흥분하며 말했다.“어서 들라하라.”연화는 밖에 대기 중이던 수령을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저하, 신 조주운이라 하옵니다.”“그래. 오느라 고생 많았네. 그대가 군량미를 지원해 줄 수 있다고?”“예, 저하.”“이렇게 어려울 때에 어찌 그런 결단을 내렸는가?”“저희 고을은 몇 달 전, 오랑캐의 급습을 받고 온 마을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죽고, 남은 이들끼리 개성까지 피난을 갔습니다.""고생이 많았겠구나. 그런 상황에 군량미를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예. 저하. 몇 해 전 개성이 극심한 가뭄으로 심각한 기근에 시달린 적이 있습니다.”“그래. 기억이 난다.”“그때 저희 고을은 풍년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창고를 풀어 작물들을 개성으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개성에서 그것에 대한 보답이라며 넉넉한 양의 곡식과 작물을 지원해 주었습니다.”“하지만 너희 고을도 아직 채 복구되지 않았을 텐데, 우리에게 나누어줄 식량이 있겠느냐?”“저하, 저하께서는 소인들이 나고 자란 삶의 터전을 되찾아주셨습니다. 저희들 먹을 것을 줄이고서라도 당연히 지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행인 것은, 오랑캐 놈들이 밭을 망가뜨려 놓지는 않았습니다.""그래. 저들도 식량이 필요했을 테니 말이다.""예. 그리고 저하께서 수확 시기 전에 땅을 되찾아 주셨지요. 이제 곧 수확 철이 다가오니, 바삐 움직이면 감자 또한 차고 넘칠 것입니다. 전쟁 중에도 땅은 풍년이 들었사옵니다.”겸은 수령의 손을 꼭 잡았다.역시, 죽으란 법은 없구나.“고맙구나, 정말 고마워.”“당치 않으십니다. 삶을 되찾아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갚기엔 아직도 한참 부족합니다. 그리고 저하.”“더 말해보거라.”“저희 고을뿐 아니라 다른 고을에서도 군수품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식량뿐 아니라 보낼 수 있는 모든 자원을 이곳으로 보내겠다 하였습니다.”"참말이냐?""예. 하물며 어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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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인과 2

“세자가 요란스럽게 도성으로 입성하는 것보다야, 이 편이 세자의 공을 덜 드러나게 하는 방법입니다.전하, 그러니 심려 마시고 상황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중전은! 아직도 모르겠소? 우리가 숨기고 축소시킨다고 그것이 뜻대로 된 적이 있소?사람들의 입을 어찌 막는단 말인가?우리가 막고자 하는 말은 더 빨리 퍼진다는 걸 아직도 모른단 말이오?중전의 말대로 하면 다 일이 그르치지 않소?”중전의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이 늙어빠진 노인네가 감히 자신에게 언성을 높이다니! 중전은 참지 않았다.“전하! 소첩을 지금 원망하시는 겁니까?소첩은 전하와 왕자를 위해 최선의 선택을 알려드린 것입니다. 선택은 전하께서 하신 겁니다!"“그러니! 그러니 말이지! 내가 눈이 멀어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중전에게 끌려다녔으니…맞소… 내 누굴 탓한단 말인가.됐으니 모두 나가보시오. 머리가 아프니 혼자 있고 싶소.상선, 어의를 들라하게.”왕은 물 한잔을 벌컥 들이켜더니, 자리에 돌아누웠다.중전과 영의정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왕의 침전을 빠져나와야 했다.​“아버님! 전하께서 변하셨습니다. 모조리 제 탓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중전마마, 고정하십시오. 전하께서 지금은 흥분하시어 저리 나오셔도, 결국 마마의 뜻을 따라주실 겁니다.”“저에 대한 원망이 늘어놓으시니 그러지요. 이러다 저와 왕자가 총애라도 잃게 되면…”“마마, 그런 걱정은 안 하셔도 됩니다. 막상 세자께서 돌아오시면 현실을 깨달으시겠지요. 저하가 백성에게 칭송받을수록 전하께서는 세자 저하를 더욱 멀리하실 겁니다.”중전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세자. 돌아오기만 하세요. 그래야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릴 것이 아닙니까?’중전은 대전을 뒤로하고 중궁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겸이 이끄는 주둔지는 여느 때보다 활기가 넘쳤다.병사들의 사기는 높아져 있었고 민간의 지원이 넘쳐났다.여기저기서 세자를 칭송하는 소리는 북방에서 한양으로 한양에서 전국각지로 퍼져갔다.겸은 이런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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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인과 3

밤이 되어서야 막사로 돌아온 겸은 연화를 살피기 위해 천막을 들추었다.아직도 식은땀을 흘리며, 입에서는 얕은 신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너무 걱정스러운 마음에 연화를 깨우려 뻗은 손을 못내 거두었다.연화의 말이 사실이라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그저 빨리 낫길 바라는 마음밖에는...​다음날이 밝았다.겸이 일어났을 때 연화는 자리에 없었다.놀란 겸이 일어나 막사를 나서려던 그때, 연화가 밖에서 소셋물을 들고 들어왔다.“저하, 밤사이 강녕하셨습니까?”“내가 물어볼 말을 네가 하고 있구나. 몸은 좀 괜찮은 것이냐?”“아주 좋습니다. 심려 끼쳐드려 송구합니다.소셋물을 가져왔습니다. 좀 씻으시겠습니까?”겸은 연화를 찬찬히 살펴보았다.확실히 어제보다는 혈색이 좋아 보였다.“내가 그간 너를 잘 살피지 못하였구나. 너만의 고충이 있었을 것인데...”“저하! 어서 준비하고 나가시지요. 기다리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연화가 눈을 맞추지 못하고, 말을 돌리자 겸은 더는 묻지 않았다.​​​결전을 앞두고 주요 장군들이 한 자리에 모였다.그 자리에는 근처 고을의 백성 대표들도 함께였다.“마지막 전투는 우리가 이곳에 처음 왔을 때처럼 기습 공격을 할 것이다.명과의 전쟁으로 정신없는 지금이 적기라 생각한다.”“그들도 그것에 대비하듯 최근 수비를 강화한 것 같아 보입니다. 경계가 심해지고 있습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군에 들이닥치지 않는 것은, 저들이 전투 불가 상황이라는 더욱 강력한 방증이 아니오?”“그렇습니다. 공격할 상황이 되지 못하니 일단 수비에 전력을 쏟는 것이 분명합니다.”“이번에는 지형을 이용할 생각이오. 산세가 험한 고원지대로 적들을 유인한 후 퇴로를 열어 국경 밖까지 쫓아낼 것이오.”“저하, 신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그동안 회의에서는 별 발언을 하지 않던 연화가 입을 열었다.“홍연 장군, 말해 보시오.”“저하, 이번이 마지막 전투일지 모릅니다.오랑캐들에게 베푸는 자비를 거두시고, 모두 섬멸을 목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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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결전의 날 1

​그리고 한참을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김종원 장군께서는 내가 아바마마께 불경을 저지르는 말과 행동을 할 것이라 생각하는 건 아니시겠지요?”“소신은 그런 뜻이 아니오라…”“저를 어린 시절부터 봐오신 저의 스승님이 아니십니까? 저와 제 사람들을 믿어 주십시오. 조선과 저를 다 지키고 싶어 하는 충직한 이들이 아닙니까?”“저하, 이곳은 듣고 보는 이가 많은 곳입니다. 작은 말도 왜곡되고 부풀려질 수 있는 것이 사람의 말이 아닙니까?저하를 두고 생길 논란이 두려울 뿐입니다.”연화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그들 앞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신 홍연, 김종원 장군과 세자 저하께 무례를 저질렀습니다.앞으로 더욱 언사에 신중을 기하겠습니다.”“네가 나를 생각하는 뜻은 알겠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거라.”​연화를 바라보는 부드러운 눈빛에, 김종원 장군은 헛기침을 하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상황이 대충 정리된 듯하자 겸은 다시 회의의 길을 잡았다.“우리는 오랑캐의 근거지에 불을 질러 그들을 고원지대로 몰 것이오.""그들이 두 번이나 같은 일에 당할까요?"영도가 반문했다."그래서 주둔지에 직접 불을 지르는 것이 아닌 주위를 에워싸도록 불을 지를 것이다.저들이 도망을 치면 고원 지대에 매복한 우리 군이 그들을 공격할 것이다.그리고 그들을 두만강까지 몰아야 할 것이다.그들은 뒤로는 불길이, 앞에는 두만강이, 옆으로는 우리 군에 가로막혀 그 어디로도 도망갈 수 없을 것!두만강으로 도망가면 대부분은 물속에서 얼음과 같이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그리고 항복해 오는 자만이 목숨을 건져 조선의 포로로 이송될 것이다.”겸이 말을 끝마치자 고을 수령인 조주운이 입을 열었다.“세자 저하, 그 지역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나무꾼과 심마니들을 섭외해 놓았습니다.”“적들의 경계가 심할 텐데 불을 놓는 것이 가능하겠는가?”“그럼요, 저하. 그들은 나무 하나하나의 위치와 고을 개구멍까지 다 아는걸요. 그리고 그들의 집과 땅을 찾아주신다는데 최선을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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