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Chapter 41 - Chapter 50

108 Chapters

제41화

“대표님, 사모님께서 댁에 식사를 준비해 두셨습니다.”비서가 공손히 다가와 말을 꺼내기도 전에 강영우가 바로 끊었다.“집에 가기 전에 따로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강영우는 핸드폰을 꺼내 연락처에서 번호 하나를 찾아 전화를 걸었다.그때 시유는 막 마리와 함께 닭갈비를 맛있게 먹고 난 뒤였다.임신부터 출산까지 1년이 넘도록 자극적인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기에, 오랜만에 먹은 매콤한 맛이 놀랄 만큼 반가웠다.마리가 수유 중인 시유를 배려해 고춧가루를 아주 조금만 넣었다. 다 먹고 나자 시유는 빛나에게 괜히 고맙고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왜 못 참았어?’그렇게 후회하고 있던 때 핸드폰이 울렸다.화면에 뜬 이름은 ‘강영우’였다. 시유는 잠시 멍해졌다.‘강영우는 A국에서 비밀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지 않았나?’‘왜 갑자기 시유에게 전화하지?’시유는 의아해하며 전화받았다.“여보세요, 강영우 대표님?”맑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네, 접니다. 제수씨, 제가 막 H시에 왔습니다.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시유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본능적으로 경계심이 생겼다.“왜 저를 만나시려는 거죠?”영우의 목소리에서는 감정이 읽히지 않았다.[실시간 이슈와 관련해 제수씨와 이야기하고 싶은 게 있습니다.]시유는 눈을 가늘게 떴다. 영우가 새나의 억울함을 풀어주러 온 거라고 느껴졌다.‘고작 실시간 이슈 하나 때문에 그 중요한 비밀 프로젝트를 잠시 내려놓고 귀국하다니...’‘정말 소새나 말처럼 강영우는 아내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남자인 모양이네.’시유의 목소리가 저절로 차가워졌다.“소새나 씨 대신 저한테 따지러 오시는 거라면 만날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영우의 목소리는 여전히 듣기 좋았다.[그런 건 아닙니다. 만나서 이야기하지요. 30분 뒤, 해달 커피에서 기다리겠습니다.]시유가 대답하기도 전에 영우는 전화를 끊었고, 그녀가 당연히 나올 거라고 확신하는 말투였다.시유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마리와 눈을 마주쳤다.마리가 먼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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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30분 뒤.해달 커피 2층 VIP 룸에는 볶은 원두의 깊은 향이 은은하게 돌았다.시유가 문을 열자 창가의 1인용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가 한눈에 들어왔다.남자는 리넨 셔츠를 입고 있었다. 소매는 팔꿈치 아래까지 자연스럽게 걷어 올려져 있었고, 매끈한 손목에는 침향목 팔찌가 걸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단정하고 고풍스러운 느낌이 들었다.문 여는 소리를 듣고 남자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그때 시유는 봄날 녹아내리는 첫눈을 보는 듯했다. 남자의 눈은 유난히 맑고 온화했으며, 동시에 무시하기 어려운 귀티가 흘렀다.이목구비는 깊었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느낌은 아니었다. 오히려 부드러운 여백이 있었다. 휘어진 눈매와 곧은 콧대, 자연스럽게 올라간 입꼬리는 늘 봄바람을 머금은 듯했다.남자에게서는 재계 엘리트 특유의 공격적인 분위기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신 책장을 넘기는 듯한 차분함이 있었다.그 고귀함은 명품 옷에서 나오는 게 아니었다. 뼛속에서 우러나는 여유와 담담함이었다. 세상 어떤 것도 쉽게 눈에 담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모든 것을 부드럽게 대할 것 같은 사람.“오셨군요.”영우가 낮게 말했다. 목소리는 옥구슬이 서로 부딪치는 듯 맑고 부드러웠다.시유는 이유 없이 가슴이 한 번 떨렸다. 느슨했던 신경이 팽팽하게 당겨졌다.‘정말 현실에 이런 얼굴이 있구나.’‘소문난 미남이라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네.’시유는 속으로 감탄했다.“네, 강영우 대표님이시죠? 명성은 많이 들었습니다.”예의를 갖춰 시유가 손을 내밀었다.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젠틀하게 시유와 악수했다. 힘은 과하지 않았고, 손바닥은 따뜻했다. 이내 시유가 맞은편 소파에 앉도록 손짓했다.“어떤 커피 좋아하십니까? 카푸치노, 라테, 아메리카노?”“아메리카노로 주세요.”영우는 곧바로 직원을 불러 시유에게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여기에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디저트도 몇 가지 부탁했다.그 뒤 영우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여준과 새나의 실시간 이슈, 제수씨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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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시유는 영우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제 남편은 대표님의 부탁을 받았다고 했어요. 그게 사실인가요?”영우의 눈빛에 충격이 스쳤다. 잠시 말을 고른 뒤 대답했다.“여준이는 제 오랜 친구이고, 제 아내에게는 친오빠 같은 사람이기도 합니다. 제 아내를 다른 사람보다 여준이에게 맡기는 게 더 마음 놓였던 건 사실입니다.”영우의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 안에는 미안함도 조금 담겨 있었다.“하지만 제수씨 역시 임신 중이었고, 곁에서 돌봄이 필요한 때였다는 건 몰랐습니다. 여준이가 제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 무심한 부탁 때문에 제수씨가 임신 기간 내내 힘들었겠군요.”시유는 네 사람이 얽힌 이 판에서 맨 먼저 사과를 하는 사람이 영우일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영우 역시 억울하게 휘말린 사람인데도 말이다.시유는 놀랐다. 곧 씁쓸하게 웃었다.“대표님이 사과할 일은 아니에요. 사과해야 할 사람은 제 남편과 대표님 아내죠. 소새나 씨가 그렇게 대놓고 저를 자극하지 않았다면, 저는 그저 제 남편이 제 곁에 없었던 것을 서운해하는 데서 끝났을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문제의 성격이 달라졌어요.”영우는 조용히 듣기만 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시유는 잠시 기다렸지만 영우가 먼저 말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마음속 말을 그대로 꺼냈다.“제가 이런 방식으로 공개한 게 세 집안의 평판에 다 좋지 않다는 건 알아요. 대표님에게도 피해가 갈 수 있고요.”“어쩌면 대표님이 중요한 일을 내려놓고 급히 귀국한 이유도 그 때문이겠죠. 그래도... 죄송하지만 저는 이 억울함을 그냥 혼자 삼킬 수 없었습니다.”시유는 영우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말투는 솔직했다.“저는 남편과 이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앞으로도 제 남편과 대표님 아내를 향해 계속 문제를 제기할 겁니다. 제 남편이 한 많은 일이 제 마지막 선을 넘었고, 제 인내심도 끝났으니까요.”“이 일로 아무 잘못 없는 대표님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저는 멈추지 않을 거예요. 대표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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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시유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차갑게 웃었다.“그럼 오늘 저를 부른 목적은 뭔가요? 이해가 안 되네요.”영우가 말을 돌렸다. 온화한 눈빛 안에 복잡함이 섞였다.“저는 사람의 복잡한 마음을 지나치게 의심하며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눈먼 바보로 남고 싶지도 않습니다. 제수씨를 부른 건 저 역시 진실을 알고 싶어서입니다.”영우는 눈을 내리깔고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그해 저는 아내와 결혼했습니다. 아내는 제게 첫눈에 반했고, 오래전부터 저를 마음에 담아 왔으며, 평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먼저 말했습니다.”시유는 어렴풋이 무언가를 짚어냈다. 조심스럽게 물었다.“그게 두 분 결혼의 시작이었나요? 그런데 그 말이 거짓이고, 진짜 마음이 제 남편에게 있었다면 대표님도 상처받으시겠네요?”영우는 고개를 들어 시유를 조용히 바라보았다.“상처받지는 않습니다. 새나와 저는 애초에 집안 간 결혼으로 시작했으니까요. 다만 제 결혼에 속임수가 있는 건 허락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새나와 여준이 사이의 진실을 알아야 합니다. 저는 귀국하자마자 두 사람을 찾지 않고 먼저 제수씨부터 만났습니다.”영우의 말투가 조금 무거워졌다. 눈빛에는 진심이 담겼다.“예전에 일로 몇 번 짧게 대화한 적이 있었죠. 제수씨는 제게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설계에 관한 생각도 저와 비슷했습니다. 그런 여성이 아무 이유 없이 이렇게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물어뜯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시유의 심장이 이유 없이 빠르게 뛰었다. 영우의 말에서 느껴지는 믿음과 인정은 지난 몇 년 동안 여준에게서 한 번도 받아 보지 못한 것이었다.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스쳐 지나간 인연에 가까웠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믿어 주셔서 감사합니다.”시유의 목소리가 낮아졌다.“좋아요. 그 믿음 저버리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두 사람과 관련해 제가 확보하는 자료는 대표님께도 공유할게요.”영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시유에게 손을 내밀었다.“좋습니다. 보답으로 제수씨가 앞으로 건축 설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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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시유가 카페를 나섰을 때 밖에는 가느다란 비가 내리고 있었다.카페는 골목 안쪽 외진 곳에 있었다. 시유의 차는 길가에 세워져 있었고, 카페 입구에서 차까지는 조금 걸어야 했다.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시유는 가게 앞에서 잠시 기다렸다.비가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자, 시유는 입을 꾹 다물고 가방을 머리 위에 올렸다. 그대로 비를 뚫고 뛰어가려 했다.막 한 걸음 내디뎠을 때, 강한 힘이 시유의 팔을 붙잡았다.부드럽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에 닿았다.“제수씨는 이제 막 산후조리를 끝냈습니다. 비 맞으면 안 됩니다. 제가 모셔다드리죠.”시유가 놀라 고개를 돌리자 영우의 온화하고 깊은 시선이 들어왔다.다음에는 영우가 시유의 팔을 놓고, 다른 손으로 커다란 검은 우산을 펼쳤다. 우산 아래로 들어오라는 듯 살짝 손짓했다.시유는 어색하고 불편했다. 깊고 좁은 골목을 한 번 바라본 뒤 결국 우산 아래로 들어갔다.영우는 우산을 시유 쪽으로 조금 더 기울였다. 두 사람은 나란히 젖은 돌바닥을 밟으며 차들이 오가는 큰길 쪽으로 걸어갔다.“H시는 이 계절에 비가 자주 옵니다.”영우가 먼저 침묵을 깼다.“네, 그렇네요.”시유는 담담히 대답했다.“차를 직접 몰고 오셨습니까? 필요하시면...”영우가 다시 묻자 시유는 급히 말을 끊었다.“괜찮습니다. 제 차가 바로 길가에 있어요.”영우는 더 권하지 않았다.“알겠습니다.”곧 두 사람은 시유의 차 앞에 도착했다.시유가 차 문을 열자 영우는 신사답게 우산을 높이 들어 시유가 운전석에 앉을 때까지 비를 막아 주었다. 이어 담담히 손을 들어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인사했다.영우가 돌아서는 모습을 보며 시유는 영우의 다른 쪽 소매가 비에 젖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 하지만 시유의 옷에는 물방울 하나 묻지 않았다.참 세심하고 예의 바른 남자였다. 사람에게 자연스러운 호감을 주는 타입이었다.시유는 사이드미러로 영우의 곧은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 영우의 차가 시유 차 바로 뒤에 세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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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저기가 왜?”여준이 낮게 물었다.찬훈은 미간을 찌푸렸다.“저 단지 안에는 디자인 회사와 소형 회사가 많이 모여 있습니다. 좋지 않습니다.”“뭐가 좋지 않다는 거야?”“사모님께서 며칠 전에 사직서를 내셨잖습니까. 지금 여기에 오신 걸 보면 새 직장을 알아보거나, 직접 개인 회사를 열 생각일 수도 있습니다.”여준의 표정이 단숨에 가라앉았다.찬훈은 더 말하지 못했다. 차 안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여준은 담배 한 개비에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또 한 모금 피워 끝까지 태웠다. 떠날 생각도, 차에서 내릴 생각도 없어 보였다.찬훈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대표님, 들어가 보시겠습니까, 아니면 먼저 이동할까요?”여준이 짧게 말했다.“업계에 말해. 임시유는 내 사람이다. 어느 회사도 채용하지 못하게 해.”...시유는 5년 동안 외주 일을 해 왔지만, 오랫동안 함께 일한 ‘라움디자인’이 실제로 어떤 모습인지 이제야 알았다.라움디자인은 시유의 상상보다 훨씬 크고 세련됐다. 사무 환경도 훌륭했다. 독립된 커피 바와 직원 휴게실, 게임룸이 있었고, 곳곳에는 초록 식물이 둘러싸여 있었다. 넓고 분위기 좋은 루프탑 테라스까지 있었다.직원을 배려한 공간 구성은 시유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았다.시유가 ‘바람’이라는 닉네임을 말하자 곧 오래전부터 온라인으로 일을 주고받던 회사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상대의 닉네임은 ‘날개’였다. 정식으로 인사를 나눈 뒤에야 시유는 대표의 본명이 강이현이라는 걸 알았다. 키는 183센티미터쯤 되어 보였고, 이목구비가 단정한 훈훈한 남자였다.하루에 강씨 성을 가진 잘생긴 남자를 둘이나 만나다니, 묘한 우연이었다.루프탑 테라스의 좌석에 앉자마자 시유는 무심코 물었다.“성함이 ‘강’ 씨인데요. 혹시 H시 강씨 집안 분은 아니시죠?”강이현은 두어 초 멈췄다가 웃으며 부인했다.“저도 그랬으면 좋겠네요. 아쉽게도 그런 복은 없습니다.”아니라니 다행이었다. 시유의 긴장이 조금 풀렸다.시유는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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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저 사람... 어떻게 여길 알고 왔어?’시유는 놀랐지만 여준의 압박감 짙은 시선을 마주한 채 앞으로 걸어갔다.시유의 눈은 여준을 공기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무 일 없다는 듯 차 문을 잡아당기려 했다.따뜻하고 힘 있는 손바닥이 시유의 손등 위를 덮었다. 차 문을 열려던 손이 붙잡혔다. 이어 머리 위에서 낮고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떨어졌다.“나한테 설명할 말 없어?”시유가 고개를 들어 여준을 담담히 훑었다.“뭘 설명하라는 건데?”여준이 물었다.“왜 여기에 있었는지. 방금 웃으면서 당신을 내려다 준 남자가 누구인지.”시유는 차갑게 웃었다.“말할 이유 없어.”여준은 완전히 화가 났다.시유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여준은 가느다란 시유의 몸을 그대로 들어 어깨에 둘러멨다.“야!”“당신 뭐 하는 거야?”“놔! 이거 내려놓으라고!”상황을 깨달은 시유가 거칠게 소리쳤고, 두 손으로 여준의 넓고 단단한 등을 마구 두드렸다.여준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한 손으로 시유의 두 다리를 쇠집게처럼 단단히 붙잡았다. 시유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그녀는 여준의 차 뒷좌석에 던져지듯 내려졌다.여준은 시유의 손목을 으스러뜨릴 듯 힘주어 잡았다.“당신을 더는 이렇게 두고 볼 수 없어. 나랑 집으로 가.”시유의 이마에도 핏줄이 솟았다.“당신 미쳤어!”여준은 시유의 눈을 바라보았다. 표정에는 피로가 깊었다.“난 당신과 싸우고 싶지 않아.”시유는 거의 무너질 듯 소리쳤다. 목소리까지 쉬어 있었다.“부여준, 놔!”그러나 여준은 시유의 양손을 더 세게 붙잡았다.“못 놔. 우리 제대로 이야기해야지.”시유는 자신이 아무 잘못도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그랬던 아내가 이제 갑자기 철든 척하지 않겠다니, 여준은 익숙하지 않고 불편했다.“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내가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했어.”“남은 건 당신이 내 사직을 받아들이고, 이혼에 동의하는 것뿐이야.”여준의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었다.“이혼? 이유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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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여준의 숨은 뜨거웠고, 강압적으로 시유의 모든 감각을 파고들었다.시유는 질식할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모욕감에 찬 눈물이 눈가로 차올라 관자놀이를 타고 흘렀고, 머리카락을 적셨다.한참 뒤, 여준이 겨우 물러났다. 여준은 거칠게 쉰 목소리로 물었다.“이래도 나와 이혼하겠다는 거야?”시유는 고개를 돌리고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눈물은 소리 없이 흘렀지만, 목소리는 이상할 만큼 단단했다.“이혼할 거야. 반드시.”여준의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차가 지하 주차장으로 들어서자마자, 여준은 돌풍처럼 시유의 가느다란 몸을 끌어안았다. 다시 강압적인 태도로 시유를 어깨에 둘러메고 그대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시유가 아무리 몸부림쳐도 소용없었다. 결국 저항을 포기했다.여준은 시유를 2층 안방으로 데려가 두 사람의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는 시유가 출산 전에 바꿔 둔 그대로였다. 달빛 같은 흰색 실크는 구름처럼 부드러웠다.그러나 지금 그 부드러움은 틈 하나 없는 그물처럼 느껴졌다. 시유를 과거의 우리 안에 단단히 가두는 그물 같았다.시유가 침대에 눕자 임신 기간 내내 밤마다 여준을 기다리던 고통이 다시 밀려왔다.여준은 늘 바쁘다고 했다. 출산이 임박해서 시유가 건 마지막 전화조차 찬훈이 대신 받았을 정도였다.이 방에서 홀로 뒤척이며 잠들지 못했던 밤들, 여준은 한 번도 곁에 없었다.시유는 숨이 막혔다. 일어나려고 몸을 틀었지만 여준이 위에서 내리눌렀다. 양손을 붙잡는 힘은 뼈가 으스러질 만큼 강했다.“여보...”여준의 낮은 목소리에는 보기 드문 쉰 기운이 섞여 있었다. 입꼬리는 살짝 올라갔지만 웃음은 없었다.여준은 몸을 숙여 시유의 귓불을 가볍게 물었다. 친밀한 동작이었지만 시유의 몸은 차갑게 굳었다.“만지지 마. 나... 역겨워.”시유는 모욕감에 휩싸였다. 당장 여준 밑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있는 힘껏 밀어냈고, 손톱은 여준의 손등에 붉은 자국을 남겼다.여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 물러나기는커녕 시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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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내가 보상할게. 내일 그림빌 등기에 당신 이름을 올리겠어.”“새로 가족 카드를 만들었어. 앞으로 내 재산 전부 당신과 함께 쓸 거야. 원하는 만큼 다 써.”여준은 다정한 척 시유의 이마에 내려온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예전에도 말했잖아. 결혼했으면 이혼은 없어. 이 생에서 당신은 내 여자야. 당신은 분명 나를 많이 사랑했잖아, 맞지?”여준의 얼굴이 조금씩 시유에게 가까워졌다. 뜨거운 숨이 시유의 얼굴에 닿았다.“여보.”여준이 낮게 불렀다. 목소리는 깊고 탁했다.“우린... 이렇게 잘 맞잖아. 나와 이혼하면 당신도 아쉽지 않겠어?”여준의 손은 계속 움직였다.온몸이 저릿한 느낌이 시유의 청각과 감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잘생기고 단정한 여준의 얼굴을 아주 가까이 가져왔다. 깊고 검은 남자의 눈동자는 어둠 속에서 시유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 여준의 손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이미 시유를 자기 어항 안의 물고기로 여기는, 노련한 낚시꾼 같았다.시유의 속눈썹이 떨렸다. 입을 열어 저항하고 싶었지만, 원망스럽게도 시유의 몸은 여준에게 너무 오래 익숙해져 있으며,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 전부 들어줄게. 내게 이혼 이야기만 안 하면 돼.”시유에게는 말할 틈조차 없었다. 입술이 다시 여준에게 막혔다.숨이 뜨거워지고 입술의 온도가 높아졌다. 짙은 시더우드 향이 여준의 몸에서 퍼져 나와 빈틈없이 시유에게 옮겨왔다.시유의 모든 감각이 조여들었다. 무의식적으로 눈을 떴다.딸깍-여준이 불을 껐다.5년이라는 시간 동안 여준은 시유의 몸이 일으키는 미세한 반응까지 알고 있었다. 길고 깊은 키스로 시유 마음속에 쌓인 모든 감정을 틀어막으려 했다.시유는 손을 들어 여준의 뺨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여준은 고개를 돌려 피했다. 오히려 시유의 양손을 머리 위로 밀어 올려 제압했다. 애매하게 달뜬 말투에는 강압이 섞여 있었다.“나쁜 계집애. 또 말 안 들으면 더 심하게 벌 줄 거야.”다시 거친 키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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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여준은 시유의 눈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무리 봐도 믿고 싶지 않았다. 시유가 화가 나서 하는 말에 불과하다고 생각했다.“됐어. 이제 그만 화 풀어. 영우가 귀국했으니 앞으로는 내가 새나를 대신 돌볼 필요도 줄어들 거야. 당신과 보낼 시간은 충분히 만들 수 있어.”여준은 목소리를 다시 부드럽게 낮추며 시유를 달래려 했다.하지만 지금의 시유는 몇 마디 달랜다고 풀리던 예전의 시유가 아니었다.임신 기간 내내 여준이 다른 여자 곁에 있었다는 생각, 딸이 냉대와 무관심을 받았다는 생각, 여준이 중요한 때마다 시유와 딸을 버려두고 다른 모자에게는 온갖 놀라움과 선물을 세심하게 준비했다는 쓰린 기억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여준에 대한 시유의 마음은 완전히 식었다. 자기 남자가 매사 다른 여자를 우선순위에 두는 것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그리고 목숨을 걸고 낳은 딸이 여준에게 그렇게 하찮고 대수롭지 않은 존재였다는 사실은 더 견딜 수 없었다.딸은 시유의 마지막 선이었다. 빛나가 태어난 뒤 지금까지 겪은 온갖 불공평한 대우를 떠올릴수록 가슴속 증오는 멈추지 않았다.여준은 시유의 얼음처럼 차가운 표정을 바라보며 이해하지 못했다. 한때 좋았던 두 사람의 관계가 어떻게 이렇게 막다른 길까지 와 버렸는지 알 수 없었다.예전의 시유는 이렇지 않았다. 이렇게 오래 달래기 어려운 사람도 아니었다. 여준은 화가 났지만,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시유를 예전처럼 돌려놓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따르릉-날카로운 핸드폰 벨 소리가 방 안의 숨 막히는 공기를 갈랐다.화면이 밝아졌다. 발신자에는 두 글자가 떠 있었다. 새나였다.여준은 미간을 깊게 찌푸렸다. 귀찮다는 듯 전화를 끊었다.하지만 바로 다음 전화가 다시 걸려 왔다. 여준이 또 끊어도 상대는 곧바로 다시 걸었다.시유는 눈에 거슬리는 이름을 보며 입꼬리에 비웃음을 걸었다.“받아. 부부싸움 하다가 죽겠다, 바다에 뛰어들겠다 할지도 모르잖아. 안 받았다가 사람 죽으면 큰일이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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