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착한 아내는 오늘부터 그만둡니다: Chapter 61 - Chapter 70

108 Chapters

제61화

대표 사모님이라는 말이 시유를 완전히 격분시켰다.“부여준, 놔!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보고 싶지 않으면!”여준은 시유를 내려다보며 두 팔로 단단히 감쌌다.“요즘 충분히 독하게 굴었잖아. 얌전히 있어. 내 골칫덩이야.”낮고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가에 파고들자, 시유의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시유는 위험하게 눈을 가늘게 떴다.“나는 당신한테 기회를 줬어. 당신이 붙잡지 않았을 뿐이야.”여준은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뭐?”시유는 발꿈치로 여준의 발등을 힘껏 밟았다. 하이힐 굽이 박히는 듯한 통증에 여준은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쾅!곧이어 시유는 여준이 큰돈을 들여 사무실에 들여놓은 옥 해태상을 그대로 밀어 버렸다. 묵직한 장식품이 바닥에 떨어지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여준이 늘 소중히 여기던 풍수 장식품은 바닥에 세게 부딪혔고, 몸통에는 금이 갔다.“임시유!”여준은 눈을 부릅떴다. 분노가 치솟았다.시유는 차가운 표정으로 여준이 반응하기도 전에 벽에 붙은 업무표를 거칠게 떼어 냈다. 종이를 갈기갈기 찢어 몇 번이고 짓밟았다.여준의 낯빛이 푸르게 질렸다.그 업무표는 설계본부 업무를 관리하기 위해 여준이 전문가에게 의뢰해 만든 진행 관리표였다.업무표에는 설계본부 직원 각각의 업무 단계, 업무 내용, 근무 배치가 지나치게 세밀하게 표시돼 있었다. 점심시간 30분을 제외하면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초 단위로 맞출 정도였다.여준에게 그것은 업무 효율을 높이고 일정 진행을 원활히 하기 위한 도구였다.하지만 그 업무표는 설계본부 모든 사람, 특히 시유에게 과도하게 강제하는 고문 도구나 마찬가지였다. 지난 5년 동안 시유는 사랑한다는 이유로 끝까지 참아 냈다.시유와 그 아래 세 사람은 그 표 때문에 부강그룹 전 직원 중에서도 고행승처럼 일해야 했다.이제 시유가 줄곧 없애고 싶었던 그 업무표와, 여준이 시유를 통제하던 모든 방식이 한꺼번에 휴지조각이 되었다.“미쳤어?”여준은 소리쳤다. 발등의 통증도 잊은 채 성큼 다가가 시유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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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화

시유는 예전에는 단 한마디도 원망하지 않았다. 그래서 여준은 자신이 시유를 얼마나 혹독하게 대했는지 한 번도 느끼지 못했다.이제야 여준은 알았다. 시유가 그토록 많은 고통을 조용히 견뎌 왔다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시간 동안 여준은 아무것도 알아차리지 못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당신은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본 적이 없나 보네.”시유는 피가 흐르는 여준의 팔을 내려다보다 낮게 웃었다.“어쩌면 당신 눈에 나는 부르면 언제든 달려오는 직원, 당신의 통제욕과 욕망을 채우는 부속품, 자식을 낳아주는 도구에 지나지 않았겠지. 한 번도 피와 살이 있고, 아프고 지치는 아내로 본 적은 없었을 테니까!”시유는 커터칼을 높이 들어 여준의 눈을 겨눴다. 눈빛의 서늘함은 날 선 화살처럼 여준을 향했다.“당신 팔에서 피 조금 나고 다친 게 뭐가 대수야! 내가 아이를 낳을 때 출혈이 2,000밀리리터였고, 저혈량성 쇼크가 왔고, 의사가 자궁 적출까지 고민할 만큼 위험했다는 걸 알기나 해?”“뭐?”여준은 완전히 혼란에 빠졌다. 목소리까지 떨렸다.“나는... 몰랐어. 당신... 그때 왜 나한테 말하지 않았어?”사람들 사이에 있던 유란은 그 말을 듣고 눈빛이 어두워졌다. 무의식적으로 시유를 바라보았다.시유가 아이를 낳을 때 유란은 해외로 출장을 가 있었다. 공교롭게도 여준의 어머니를 제외한 가족들은 아무도 그 자리에도 없었다.시유가 말한 이 일은 유란도, 부씨 집안의 다른 식구들도 알지 못했다.시유가 낳은 아이는 부씨 집안의 아이이자 유란의 친조카였다. 유란의 가슴이 세게 저렸다. 채찍이 양심을 후려친 듯 아팠다.시유는 여준을 차갑게 보았다.“당신 어머니가 그때 병원에 있었어. 당신 어머니가 뭐라고 했는지 알아?”여준은 멍해졌다. ‘어머니도 병원에 있었다고?’‘시유가 그토록 위험한 상황이었는데...’‘왜 어머니는 지금까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까?’여준은 온몸이 마비되는 듯했다.“뭐라고 했는데?”시유가 말했다.“의사가 산모를 살릴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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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화

시유가 딸을 낳았다는 사실은 부씨 일가에게 조금도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없는 일처럼 지나쳐도 상관없는 일, 굳이 마음 쓸 필요조차 없는 일처럼 취급됐다.부씨 일가 누구도 시유의 생사를 무겁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죽을 고비를 넘겼다는 사실마저 별일 아닌 것처럼 여겼다.시유는 눈을 감았다. 딸이 태어난 지 꼭 한 달 되던 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가슴을 움켜쥔 채 울면서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떠오르자 속이 갈기갈기 찢기는 것 같았다.유란의 눈시울도 붉어졌다. 사람들 앞에서 감정을 드러낸 적 없던 유란은 손을 뻗어 시유를 안으려 했다.시유는 감정이 격해져 유란의 호의를 거칠게 밀어냈다.“됐어요. 이제 와서 미안한 척하지 마세요!”“지금 와서 저를 안아 주면 뭐가 달라져요? 그때는 어디 있었는데요!”“제 딸은 어디서 갑자기 생겨난 아이가 아니에요. 제가 열 달을 품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겨우 낳은 아이예요! 그런데 그동안 부씨 집안 사람 누구 하나 저한테 안부라도 물은 적 있었나요?”“임신 때야 그렇다 쳐요. 아이를 낳는 일은 병원 산부인과에 있는 모든 산모 가족이 기다리고, 산모의 안위를 걱정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당신들은요? 처음부터 끝까지 저와 제 딸을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았잖아요!”“일단 진정해. 말로 하자...”유란도 눈물을 흘리며 시유를 안정시키려 했다. 자기 사무실 안으로 데려가 따로 이야기하고 싶었다.직원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이런 집안 내부의 참담한 사정을 낱낱이 꺼내는 건 시유에게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부씨 일가에게는 더 말할 것도 없이, 얼굴을 들 수 없을 만큼 치욕적인 일이었다.현장에는 이미 구경꾼들이 빽빽하게 몰려 있었다. 모든 직원이 지켜보고 있었고, 같은 층 소속이 아닌 사람들까지 올라와 있었다.사람들은 겹겹이 둘러싸여 발 디딜 틈이 없었다.현장의 기혼, 미혼 여성 직원들은 모두 시유의 처지에 공감하며 눈물바다가 되었다. 사무실 전체가 눈물로 젖은 듯했다.시유는 유란이 뻗은 손을 향해 칼을 겨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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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4화

여준의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이마와 등에는 식은땀이 가득했다.그리고 넋을 잃은 나무토막처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유란은 텅 빈 엘리베이터 입구를 한참 바라보다, 아직도 기웃거리는 직원들을 차갑게 훑었다. 단 한 번의 눈빛만으로 남은 시선들을 모두 뒤로 물러나게 했다.유란은 돌아서서 여준의 넥타이를 잡아챘다. 힘들이지 않고 혼이 빠진 남자를 유리 조각이 흩어진 사무실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여준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생기를 잃은 살덩어리 같았다.유란은 위에서 여준을 내려다보며 입가에 비웃음을 걸었다.“왜? 이 정도도 못 견디겠어?”유란의 목소리는 얼음 부스러기처럼 차가웠다. 누나로서의 다정함은 온데간데없이 조롱을 숨기지 않았다.여준은 책상 위 물컵을 집어 들었다. 손이 떨려 물이 손등에 쏟아졌지만 알아차리지 못했다. 차가운 물을 한 모금 마신 뒤에야 정신을 조금 차렸다.여준은 유란을 올려다보았다. 눈에는 혼란과 억울함이 가득했다.“누나, 내가 정말 그렇게 심했어?”유란이 답하기도 전에 여준은 본능적으로 자신을 변호했다.“시유와 결혼할 때 결혼식은 안 했지만 숨긴 적은 없어. 회사 사람들도 모두 시유가 내 아내인 걸 알아.”“애초에 내가 시유와 맺어진 것도 우리 같이 출장을 갔을 때 술을 마신 일이 계기였어. 다른 남자 같았으면 하룻밤 일로 책임지지 않았겠지만, 나는 책임졌어.”“내가 시유에게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야. 명절마다 꽃도 보냈어. 시유가 아이 낳을 때 옆에 있진 못했지만, 산후조리원과 시터 비용은 전부 내가 냈어.”“또...”여준은 지난 세월의 세부를 필사적으로 떠올렸다.“시유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와 누나들이 처음부터 심하게 반대했지만 나는 시유를 위해 다 견뎠어.”여준은 말할수록 억울함이 차올랐다. 목소리도 높아졌다.“난 자신이 쓰레기 같은 남자라고 생각한 적 없어. 나는 늘 깨끗하게 살았어. 어떤 접대 자리에서도, 아무리 예쁜 여자를 만나도 한 번도 엉뚱한 짓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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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5화

여준의 속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납득할 수 없었다.“시유가 상처받았다면 지금부터라도 내가 만회하면 돼. 그런데 누나는 뭐야? 방금 왜 시유 편을 든 건데? 퇴사까지 특별 승인해 주고? 이 중요한 시기에 일을 더 키운 거잖아. 누나는 내 친누나야. 왜 남의 편을 들어!”“일을 키웠다고?”유란이 어이없다는 듯 여준을 바라봤다.“부여준, 너 지금 제정신이야?”유란은 고개를 들었다. 날카로운 눈빛이 곧장 여준의 가슴을 찔렀다.“내가 퇴사를 승인한 건... 시유가 잠시 쉬고 마음을 가라앉히게 하려는 거야. 저 상태로 계속 감정이 격해지면 오늘은 칼을 들었고, 내일은 무슨 일을 벌일지 누가 알아!”유란은 잠시 멈췄다. 아직 얼굴도 보지 못한 조카를 생각하자 죄책감이 들었다.“우리 집안이 시유의 출산 과정에 형편없이 대처한 건 사실이야. 특히 엄마가 분만실 밖에서 한 말, 그게 대체 뭐니!”“시유는 아마 시댁 모든 사람을 미워하고 있을 거야. 내가 조금이라도 지지해 준 건 지금 상황을 완화해 보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으면 지금 시유 상태로 너와 제대로 대화가 될 것 같아? 방금 네 심장에 칼을 꽂지 않은 것만으로도 시유는 충분히 참은 거야!”여준은 벼락을 맞은 듯 낯선 누나를 멍하게 바라보았다. 목이 조여 말이 나오지 않았다.유란은 일어나 옷깃을 정리하고, 고개를 돌려 여준에게 턱짓했다.“뭘 멍하니 있어? 얼른 가자.”여준은 놀랐다.“어디를?”유란은 기가 막히다는 듯 말했다.“하나만 묻자. 이 결혼, 아직 지키고 싶어?”여준은 망설임 없이 답했다.“당연하지.”유란은 여준의 팔을 잡아끌었다.“그럼 할 수 있는 것부터 찾아서 보상해야지.”여준은 막막했다.“예를 들면?”유란은 어이가 없어 눈을 굴리고 미간을 눌렀다.“너 진짜 답답하다. 어떻게 여자 마음을 그렇게 몰라? 시유가 괜히 저렇게까지 했겠어?”유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여준의 전화가 울렸다. 진명화였다.여준이 전화받자마자, 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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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6화

시유는 부강그룹에서 퇴사하는 데 성공했고, 모든 설계안과 업무 성과도 되찾았다.시유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일단 처음 작은 한 걸음은 성공이었다.다음은 딸의 출생신고, 그다음은 이혼이었다.딸의 출생신고를 생각하자 시유는 천산캐슬 지하주차장에 차를 세운 뒤 한동안 차 안에 앉아 있었다.마침내 용기를 낸 시유는 임애교에게 먼저 메시지를 보냈다.[엄마, 언제 돌아와?]시유는 차 안에서 한참 기다렸다. 하지만 임애교의 답장은 오지 않았다.시유는 마음이 쓸쓸해졌다. 지난 5년 동안 여준 때문에 모녀는 툭하면 날카롭게 부딪혔고, 얼음처럼 굳어 버린 일이 떠오르자 무겁게 한숨이 나왔다.괜히 결혼해서 거의 모든 사람과 등질 뻔했다.결국 그 결혼은 시유에게 어떤 좋은 결과도 남기지 않았다.시유는 더 생각하고 싶지 않아 고개를 가로저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갔다.손을 빠르게 소독하고 홈웨어로 갈아입은 뒤, 시유는 곧장 장순영에게서 딸을 받아 안았다.빛나는 막 잠에서 깨어 분유를 먹는 중이었다. 작은 얼굴이 핑크빛으로 올라와 있었고, 젖병을 안고 있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시유는 손으로 곱게 빚은 듯한 빛나의 작은 얼굴을 볼수록 마음이 기뻤다. 도무지 내려놓을 수 없었다.그때 마리가 사진을 보내왔다. 사진 속에는 명품 유아용품이 복도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마리는 메시지를 덧붙였다.[네 큰시누이가 방금 다녀 갔어. 빛나한테 줄 거라면서 뭘 가져왔는데, 내가 마침 딱 마주쳤잖아. 부씨 집안이 웬일이래? 그래도 그 집안에도 사람 같은 사람이 하나는 있네.]시유는 유란의 차갑고 도도한 얼굴을 떠올렸다. 뜻밖이었지만, 그 호의를 받아들일 생각은 없었다.시유는 바로 마리에게 전화를 걸었다.“마리야, 부탁 하나만. 그 물건들 전부 포장해서 사람 시켜 부강그룹으로 돌려보내 줘. 부유란에게.”마리가 말했다.[왜 돌려보내? 준다는데 받으면 되지. 어차피 아기한테 다 필요한 물건이잖아. 내가 방금 봤는데 다 좋은 거야. 유모차 하나만 해도 수백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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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화

진명화가 허둥지둥 막아섰다.“여준아, 왜 새나한테 화를 내니? 새나가 지금 얼마나 속상한데. 남편이 그 잡소문들을 믿고 이번에 돌아와서는 새나에게 차갑게 대하고 있어. 새나가 이틀이나 입원했는데도 남편이 얼굴 한 번 안 비쳤다니까.”“네 아내가 한 짓을 좀 봐. 임시유가 의심만 키우고 사람들을 부추기지 않았으면 새나와 남편 사이가 이렇게 됐겠니?”“새나는 지금 죽고 싶을 만큼 괴로워해. 리오도 아직 그렇게 어린데, 새나가 잘못되면 아이는 어떡하니? 여준아, 빨리 새나를 설득해. 새나는 네 말 제일 잘 듣잖아. 빨리!”진명화의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고, 온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여준은 진명화를 차갑게 흘겨보았다. 머릿속에는 시유가 말했던, 진명화가 분만실 밖에서 내뱉었다는 말들이 떠올랐다.여준은 참지 못하고 비꼬듯 말했다.“새나가 죽겠다고 하니까 리오는 걱정하시네요. 그런데 왜 친손녀는 한 번도 떠올리지 않으셨습니까?”진명화는 말문이 막혔다.이런 급한 상황에 사람을 구할 생각은 안 하고 왜 이 이야기를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진명화는 필사적으로 여준에게 눈짓했다.“너... 너 지금 이런 불편한 얘기를 왜 꺼내! 빨리 새나부터 잘 달래서 내려오게 해. 빨리!”여준은 눈꺼풀을 조금 들어 진명화를 차갑게 보았다.“그러니까 제 친딸은 어머니 눈에 불편한 일입니까?”“어머니가 정말 할머니 맞습니까?”진명화는 화가 막혔다.“여준아, 너...”“새나가 뛰어내리겠다면 새나를 책임질 사람은 제가 아니라 남편입니다. 제게 전화할 게 아니라 새나 남편에게 전화하셨어야죠.”“어머니, 제가 한마디하겠습니다. 정신 좀 차리세요. 어떤 할머니가 자기 친손녀는 두고 남의 집 손자만 매일 안고 싶어 합니까? 남의 아이만 챙기고요!”여준의 말에는 차가움과 분노가 섞여 있었다. 이제야 여준은 시유의 마음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자기 어머니는 정말 분별력이 없었고, 너무 어리석었다.시유가 그렇게 상처받는 데 어머니의 역할이 작지 않았다.진명화는 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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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화

여준은 지친 듯 미간을 문질렀다. 앞으로 다가가려던 때, 새나가 갑자기 손을 놓고 몸을 바깥쪽으로 더 옮겼다.여준은 심장이 내려앉는 것 같았다. 다급히 걸음을 멈추고 한없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알았어. 약속할게. 빨리 내려와. 너무 위험하잖아!”여준은 재빨리 앞으로 크게 한 걸음 나아가 새나의 손을 잡았다. 다른 손으로는 새나의 허리를 빠르게 감쌌다.새나는 그 기세를 타 여준의 품으로 쓰러졌다.여준에게 안겨 창문에서 내려오는 새나의 눈에 이겼다는 승리감이 빠르게 스쳤다.여준은 새나를 소파까지 안아 옮겼다. 옆에 있던 담요를 잡아 코끝이 붉고 온몸을 떠는 새나에게 둘러 주었다.진명화는 곧장 따뜻한 물을 따라왔다.“새나야, 빨리, 따뜻한 물 좀 마셔. 몸 녹여야지. 앞으로는 절대 이런 어리석은 짓 하면 안 된다.”“네 부모가 신경을 못 쓰고, 시부모와 남편이 차갑게 굴어도 이모와 네 오빠가 있잖니? 리오도 봐. 얼마나 예쁘고 포동포동한데. 너는 이런 아이를 두고 갈 수 있겠어?”새나는 물컵을 받아 얌전히 몇 모금 마셨다. 고개를 들자 눈가는 이미 붉어졌다.“이모, 저에게는 이모랑 오빠가 너무 소중하고, 리오도 두고 갈 수 없어요. 하지만... 마음이 너무 힘들어요.”“언니가 직접 해명하지 않으면, 저와 오빠 사이에 아무 일도 없다고 말하지 않으면 나... 강물에 뛰어들어도 오해를 씻을 수 없어요!”새나는 여준의 팔을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언니랑 얘기해 줘. 지금 위기를 풀 가장 좋은 방법은 언니가 직접 밖에 말하는 거야. 나와 오빠는 순수하게 사이좋은 남매일 뿐이고, 다른 관계는 없다고.”“이렇게 계속되면 영우와 강씨 집안이 저를 어떻게 대할지 몰라요. 나... 그냥 죽는 게 낫겠어요!”말하던 새나는 다시 충동적으로 벌떡 일어나 창문 쪽으로 뛰려 했다.진명화는 혼이 빠질 만큼 놀라 새나를 세게 끌어안았다. 여준에게 애원하듯 말했다.“여준아, 새나 말이 맞아!”“빨리, 임시유에게 성명이라도 내게 하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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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화

진명화가 나가자마자 새나가 바로 앓는 소리를 냈다.“오빠,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이 답답해. 숨이 잘 안 쉬어져...”여준은 가까이 다가가 새나 앞에 쪼그려 앉았다. 눈에는 걱정이 묻어 있었다.“또 예전 증상이 나타났어? 약은? 가져왔어?”새나는 멀지 않은 곳에 놓인 에르메스 백을 가리켰다.“가져왔어. 가방 안에 있어.”여준은 곧장 가방을 열었다. 익숙하게 약통을 꺼내고 알약 한 개를 빼 새나 앞에 가져갔다.새나는 받지 않고 애교를 부렸다.“오빠가 물이랑 먹여 줘.”여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새나, 말했잖아. 우리는 너무 가깝게 지내면 안 돼.”새나는 가슴을 누르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오빠, 정말 가슴이 너무 답답해. 나... 나...”여준은 어쩔 수 없이 약을 새나의 입에 넣어 주었다. 이어 따뜻한 물을 가져와 입술 가까이에 대 주었다.새나는 얌전히 약을 삼켰다. 눈을 감고 소파 옆자리를 톡톡 두드렸다.“오빠, 머리도 너무 아파. 지난번 바닷가에서 바다에 던져진 뒤로 계속 머리가 아파. 산후조리원에 있을 때처럼 관자놀이 좀 눌러 주면 안 돼?”여준은 가슴이 막혔다.“바다에 던져졌다고? 언제?”새나가 말했다.“오빠가 그날 나를 혼자 두고 간 뒤야. 검은 옷을 입은 남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나를 바닷물 속에 계속 처박았어. 바닷물을 몇 모금이나 삼켰는지 몰라. 몸 낮추고 살라고 경고까지 했고.”여준은 충격을 받았다.“뭐?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어?”새나는 어두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의심이 많다고 하지 마. 그런데 나는 정말 언니가 사람을 시킨 것 같아. 나는 성격이 조용해서 H시에 적도 없어. 요즘 나를 공격한 사람은 언니뿐이잖아...”시유 이야기가 나오자 여준은 본능적으로 부정했다.“시유가 그럴 리 없어. 그런 사람은 아니야.”“오빠!”새나의 감정이 다시 격해졌다.“내가 이런 일로 거짓말할 이유가 없어. 못 믿겠으면 영우한테 물어봐. 그날 영우가 나를 찾으러 왔을 때, 나는 온몸이 젖은 채 해변에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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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화

“여보!”새나는 번쩍 눈을 떴다. 들어온 사람이 영우라는 것을 확인하자 거의 튀어 오르듯 일어나 무의식적으로 소리쳤다.“영우야!”여준도 멈칫한 뒤 따라 불렀고, 본능적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영우는 문가에 서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차갑고 압도적인 시선이 두 사람 사이를 훑었다.이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맑고 차가웠다.“죽겠다고 했다더니. 또 동정심 유발이야?”새나는 온몸을 떨었다. 곧장 일어나서 영우에게 달려갔다. 영우를 바라보는 눈빛은 꼬리를 흔들며 애원하는 강아지 같았다.“여보, 나... 조금 전엔 정말 살고 싶지 않았어. 당신한테 메시지를 많이 보냈는데 답도 없었잖아.”“오빠가 와서 나를 설득했어. 오빠 아니었으면 나 정말... 정말 뛰어내리려고 했어.”새나는 애처롭게 영우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영우는 정면만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을 유지했다.믿지 않을까 두려워 새나는 가방에서 진단서를 꺼내 영우에게 내밀었다.“의사가 중증 우울증이라고 했어. 삶을 포기하려는 경향이 있대. 감정이 올라오면 나도 나를 통제하지 못해.”영우는 진단서를 받아 내려다보았다. 눈에는 얕은 경멸이 비쳤다.“요즘 병원은 우울증 소견서도 이렇게 쉽게 써 주나? 그럼 누구나 다 우울증이겠네.”새나는 억울하게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목소리는 울먹였다.“나 거짓말 안 해. 정말이야... 왜 당신은 늘 나를 믿지 않아? 꼭 내가 죽어야 믿을 거야?”영우는 아픈 미간을 문질렀다.귀국한 뒤로 이미 여러 날 밤을 거의 자지 못했다.영우에게는 시간과 체력이 한정되어 있었다. 한쪽에서는 무겁고 압박이 큰 일을 처리해야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집안일까지 시간을 들여 정리해야 했다.영우의 목소리에는 피로가 배어 있었다.“나와 5년을 살면서 넌 거의 매달 단식했고, 1년에 세 번 이상 자살 소동을 벌였어. 손목 긋기, 투신, 수면제 복용... 할 수 있는 방식은 거의 다 썼지.”“나는 내 선을 계속 낮췄어. 최근 A국에서 벌인 일도 그래. 자살로 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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