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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作者: 진이이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쳤다.

공기가 잠시 멎은 듯했다.

하설은 헛기침했다. 입가의 미소를 거두기도, 계속 짓기도 애매해져 입술 주변 근육까지 굳어 버렸다.

“회장님, 어젯밤은... 감사했습니다.”

우건은 짙은 철회색 정장을 입고 있었다. 몸에 맞게 떨어지는 재단이 깔끔하고 품격 있었다.

그는 몸을 비스듬히 돌린 채 하설을 바라보았다.

“별말씀을요. 어젯밤엔 영숙 어르신께 폐를 끼칠까 봐, 허락도 받지 않고 심하설 씨를 데려왔습니다.”

하설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습니다. 덕분에 살았습니다. 별일 없으시면 저는 이만 내려가 보겠습니다.”

하설은 손가락으로 아래층을 가리켰다.

우건이 눈썹을 살짝 올렸다.

“네.”

거실을 지나가던 때, 하율이 놀란 얼굴로 달려왔다.

“엄마, 엄마가 왜 삼촌 집에 있어?”

하설은 몸을 낮춰 하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엄마가 삼촌한테 볼일이 있어서 아침 일찍 왔어.”

하율은 고개를 갸웃했다.

‘오늘 내가 깨어난 뒤로 삼촌은 계속 거실에 앉아 있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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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100화

    문이 열렸다.하설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키 크고 건장한 남자가 한 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하설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돈 있어요. 드릴게요. 지금 바로 돈 찾아 드릴 수 있어요.”키 큰 남자는 차갑게 웃었다.“우리가 바보로 보이나? 돈 찾으러 보냈다가 경찰에 신고하라고?”하설은 남자를 바라보며 어떻게든 설득하려 했다.“절대 신고하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요. 돈 드릴 테니까 보내 주세요. 이 일은 없었던 일로 하겠습니다.”키 큰 남자는 허리에 손을 얹었다.평소라면 감히 가까이할 수 없었을 사람이 자신 앞에서 간절히 애원하고 있었다. 그 사실에 남자의 입꼬리가 점점 더 비틀렸다. 눈빛은 불쾌하고 위험했다.역겨운 웃음이었다.남자가 손을 들어 하설의 얼굴을 쓸었다.“돈은 별로 관심 없어. 오늘 밤은 네가 필요해.”하설의 피가 차갑게 식었다.남자의 손끝 아래 하설의 피부가 닿았다. 그는 그 감촉에 집착하듯 손을 떼지 않았다.“여기까지 데려왔는데 그냥 보내면 아깝잖아?”하설은 고개를 돌려 피하려 했다. 피할 수 없었다.남자의 손은 거칠었고, 남자의 몸에서 나는 싸구려 담배 냄새에 구역질이 났다.“피부 좋네.”“고운 천 같아.”“돈 많은 집 사모님은 확실히 다르긴 다르구나.”“침대 위에서도 다른 여자들이랑 다를지 궁금한데.”남자는 말을 하며 낮게 웃었다. 시선은 계속해서 하설을 불쾌하게 훑었다.하설은 그를 똑바로 노려보았다.남자의 손가락이 입가를 스칠 때.하설은 갑자기 입을 벌려 그의 검지 관절을 물었다. 세게, 있는 힘껏 물었다. 입안에 피비린내가 퍼졌다.키 큰 남자는 통증에 분노해 손을 들어 하설의 뺨을 때렸다.찰싹!하설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고, 입가에 피가 맺혔다.작은 남자가 느릿하게 안으로 들어왔다.“정신 차렸네. 풀어줘. 묶어 놓으면 재미없잖아.”하설을 묶고 있던 케이블타이와 밧줄이 빠르게 잘려 나갔다.하설은 거칠고 차가운 시멘트 바닥 위로 눌렸다.남자는 하설의 외투를 잡아당겼다.안쪽 니트까지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99화

    구급차 사이렌이 저녁 어둠을 찢으며 병원으로 달렸다.차 안의 소독약 냄새 사이로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짙고 쉽게 사라지지 않는 냄새였다.채아는 들것 위에 누워 있었다. 얼굴은 창백했다.긴 머리는 목 옆에 엉겨 붙었고, 이마에는 아직 닦이지 않은 핏방울이 맺혀 있었다.문교의 숨을 멎게 한 건 채아의 몸 아래로 번져 나간 붉은 피였다.피는 두꺼운 겨울옷을 적시고, 새하얀 코트까지 천천히 물들였다.문교는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임신했다는 좋은 소식조차 듣지 못한 채, 바로 이 불길한 일을 마주한 것이다.아이는 아마 지키기 어려울 것이다.문교는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채아가 천천히 눈을 떴다. 떨리는 손을 뻗었다.문교는 곧장 그 손을 잡았다.채아는 문교의 손가락을 꼭 움켜쥐었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는 조각조각 끊겼다.“괜찮을까? 우리 아이 괜찮을까? 제발요, 선생님. 제 아이 꼭 살려주세요...”말할수록 채아는 더 불안해했다. 숨이 가빠졌고, 심한 통증 때문에 몸이 조금씩 떨렸다.의사는 수액관을 조정하며 최대한 차분하게 달랬다.“환자분,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흥분할수록 태아에게 좋지 않습니다.”그러고는 옆의 문교를 보며 당부했다.“보호자분이 잘 달래 주세요. 지금은 감정이 더 흔들리면 안 됩니다.”문교는 채아의 손을 잡고 있었다. 목소리는 어둡게 가라앉아 있었다.“나 여기 있어. 무서워하지 마. 내가 곁에 있어. 너도 아이도 괜찮을 거야.”채아는 다시 천천히 의식을 잃었다.문교는 곧장 의사를 보았다.“왜 이러는 겁니까?”의사는 채아의 동공을 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출혈이 많아서 그렇습니다. 수액에 지혈제는 넣었습니다. 병원에 도착해야 정확한 처치가 가능합니다.”문교의 목이 굳게 움직였다.그제야 물었다.“아이... 지킬 수 있습니까?”의사는 한숨을 쉬었다.코트에 번진 출혈량을 한 번 보고 말했다.“최선을 다하겠습니다.”문교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그때 문득, 오늘 밤 자신이 준비한 일이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98화

    ‘돈을 노린 납치인가?’하설은 어금니를 물었다.‘차라리 배문교를 직접 노리는 편이 돈은 더 빠르지 않나?’키 큰 남자가 주머니에서 하설의 핸드폰을 꺼냈다.“비밀번호.”하설은 대답하지 않았다.남자는 곧 주머니에서 접이식 칼을 꺼냈다.손가락으로 버튼을 누르자 날카로운 칼날이 번뜩이며 하설의 얼굴 가까이 닿았다.“비밀번호 묻잖아.”하설은 본능적으로 목을 뒤로 젖혔다.칼끝에서 전해지는 차가운 감촉을 피했다.“123698.”키 큰 남자는 핸드폰 잠금을 풀었다.연락처를 한참 뒤져 문교를 찾아냈다.전화를 걸기 전, 그는 하설 앞에 쭈그려 앉았다. 시선이 불쾌했다.“사모님은 배 대표를 잘 알겠지. 우리가 배 대표한테 얼마를 부르면 좋을까?”하설은 잠시 침묵했다.“마음대로요.”하설은 생각했다.문교에게는 자신을 집으로 데려갈 기회가 필요할 것이다.지금 상황은 문교 앞에 저절로 놓인 기회나 다름없었다.돈이 조금 들더라도.문교는 기꺼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다.그래서 이번만큼은 하설도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느 정도 확신이 있었다.키 큰 남자가 웃으며 전화를 걸었다.차가운 통화 연결음이 울렸다.자동으로 끊길 때까지.문교는 전화받지 않았다.작은 남자가 참지 못하고 다가와 핸드폰을 빼앗았다. 다시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았다.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았다.키 큰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두 사람은 앞뒤로 창고 문 쪽으로 걸어갔다.쾅!문이 닫혔다.키 작은 남자는 담뱃갑을 꺼내 키 큰 남자에게 담배 하나를 건넸다.두 사람이 연기를 뿜는 사이.키 큰 남자는 거칠게 침을 뱉었다.“배문교 그 자식 뭐 하자는 거야? 우리 갖고 노나? 우리더러 연기 좀 해 달라며. 그런데 지금 사람은 어디 있어?”키 작은 남자는 자기 핸드폰으로 다시 문교에게 전화를 걸었다.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키 큰 남자는 주먹으로 문짝을 쳤다.“빌어먹을. 감히 날 속여?”오늘 오전.두 사람은 문교의 전화를 받았다. 문교는 두 사람에게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97화

    문화관광과에서 연락이 왔다. 빛담불꽃기획이 설맞이 불꽃축제 사업자로 최종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설맞이 전야제까지는 이제 20일밖에 남지 않았다.하설은 열흘 안에 불꽃 제작과 연출안을 모두 완성해야 했다. 남은 기간은 문화관광과와 방송국이 최종 동선과 송출 일정을 조율하는 데 쓰일 예정이었다.하설은 곧바로 차윤에게 전화를 걸었다.캔디 콘셉트 불꽃 작업은 잠시 미루고, 모든 인력을 설맞이 불꽃축제 준비에 집중해 달라고 지시했다....하설은 문교가 당장이라도 자신을 데려가려고 움직일 줄 알았다.그 디지털 배리어프리 생태계 구축 사업 입찰도 코앞에 닥쳤으니까.하지만 예상과 달랐다.문교가 마지막으로 찾아온 뒤 벌써 사흘이 지났지만,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하설은 그가 또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지 알 수 없었다.그래도 조용해서 좋았다.찾아오지 않는 편이 훨씬 나았다.이대로 무사히 지나가기만 하면 120억 원을 받는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다만 하설이 아는 문교라면... 이제 곧 움직일 때가 되었다.그 사흘 동안 하설도 계속 밤낮없이 일하며 불꽃 연출안을 다듬었다.언제든 방송국과 연출팀 회의에 갈 준비를 해야 했다.예지와 함께 현장 답사도 다녀야 했다.풍향을 재고, 시야 확보 상태를 보고, 주변 건물 높이를 확인하고, 관람객 대피 동선까지 점검해야 했다.낮에는 야외에서 찬바람을 맞았다.밤에는 사무실에서 새벽까지 제안서를 썼다.힘들었다.하지만 만족감과 성취감이 마음 속에 차올랐다.방송국 설맞이 특집 프로그램 연출 담당자는 엔딩 크레딧에 빛담불꽃기획 이름을 넣겠다고 했다.늦은 밤, 하설은 드디어 사무실 의자에서 일어났다. 파일을 저장하고 컴퓨터를 껐다. 집에 돌아가 잠을 자려 했다.낮에 정비소에서 전화가 왔다. 하설의 차는 이미 수리가 끝났고, 내일 찾으러 오면 된다고 했다.그래서 오늘 밤도 택시를 타야 했다.하설은 앱으로 택시를 불렀다. 길목에 서서 기다렸다.잠시 뒤.검은색 폭스바겐 한 대가 맞은편 길에서 꺾어 들어왔다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96화

    하설은 웃으며 손을 저었다.“괜찮습니다. 택시가 곧 와요. 감사합니다, 회장님. 먼저 가세요.”날이 추웠다. 말할 때마다 숨이 곧바로 흰 김으로 맺혀 눈앞에 번졌다. 하설의 섬세한 눈매가 잠시 흐려졌다.윤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말했다.“그럼 저희 먼저 가겠습니다. 조심히 가십시오.”하설은 맑은 목소리로 말했다.“회장님, 안녕히 가세요. 송 비서님도 조심히 가세요.”뒤에 택시가 곧 도착했다.길은 막힘없이 이어져 빛담불꽃기획에 도착했다.차에서 내리자마자, 사무실 앞에 낡은 소형 화물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적재함에는 종이상자 십여 개가 가지런히 쌓여 있었다.“대표님!”“공장장님!” 하설은 빠르게 다가갔다. “다 됐어요?”차윤은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설을 데리고 검수를 하러 갔다.“보세요. 원료는 제가 허가받은 거래처를 통해 직접 확보했고, 직원들이 작업하는 내내 옆에서 확인했습니다.”“밤새워 겨우 맞춰 놨어요. 오늘 새벽 3시쯤에는 외곽 시험장에서 안전 테스트까지 마쳤습니다. 사진도 여기 있습니다.”차윤은 핸드폰을 하설에게 내밀었다.화면 속에는 돌잔치용 캔디 콘셉트 불꽃이 밤하늘에서 터지고 있었다.분홍빛 불꽃 점들이 마지막에는 작은 사탕 모양으로 모였다가, 천천히 흩어졌다.사랑스럽고도 로맨틱한 연출이었다.하설은 차윤을 바라보았다.차윤의 눈 밑에는 짙은 다크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그래도 차윤은 힘든 티 하나 내지 않고, 하설을 향해 씩 웃어 보였다.하설은 핸드폰을 꺼냈다.“잔금 보내드릴게요.”그런데 차윤이 잠시 망설였다.하설은 그를 바라보았다.차윤이 더듬거리며 말했다.“저...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이 캔디 콘셉트 불꽃 연출, 제가 독점 사용권을 사려면 얼마면 될까요?”하설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차윤이 급히 덧붙였다.“금액은 대표님 정하세요. 저는 맞출게요.”하설은 옅게 웃었다.“올라가서 이야기하시죠.”...사무실.예지는 차 두 잔을 내오고 조용히 나갔다.차윤은 어색하게 헛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95화

    하설은 말문이 막혔다.하율은 깊게 한숨을 쉬었다.“나는 엄마를 사랑해. 그런데 증조할머니도 사랑하고, 이제는 삼촌도 조금 사랑해. 어떡해? 나 바람피웠어. 나쁜 아이가 돼버렸어.”하설의 가슴이 세게 저릿했다. 마음 깊은 곳에 시큰함이 차올랐다.슬퍼서가 아니었다. 하율의 천진함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하설은 아이를 안고 작은방으로 가며 다정하게 말했다.“아가, 그건 다른 거야. 엄마는 하율이를 사랑하고, 증조할머니도 사랑해. 그건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가족에게 주는 사랑은 여러 사람에게 줄 수 있어.”“하지만 연인에게 주는 사랑은 한 사람에게만 주는 거야. 문교 아저씨는 그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줬기 때문에 바람피웠다고 하는 거야.”하율은 알 듯 말 듯한 얼굴이었다.하설의 볼에 작은 얼굴을 비볐다.“엄마, 나는 영원히 영원히 엄마만 사랑할 거야.”하설은 아이를 침대에 눕혔다.“엄마도 하율이를 사랑해.”어린아이를 달래고 나니.이제 하설은 할머니를 달랠 차례였다.하설은 방문을 가볍게 두드렸다.안은 조용했다.하설은 조심스럽게 문을 밀고 들어갔다.“주영숙 여사님, 아직 화나셨어요?”이번에는 정말 많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주영숙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하설은 침대 옆으로 가서 스탠드를 켰다.어두운 불빛이 주영숙의 얼굴을 비췄다.하설의 마음이 편치 않았다.“할머니, 화내지 마세요. 제가 할머니 걱정해서 그러시는 거 알아요.”주영숙은 몸을 돌려 벌떡 앉았다. 하설을 바라보며 거친 숨을 쉬었다.“유준이 때문이냐? 문교가 네 동생으로 협박했어?”하설이 미처 입을 열기도 전에.주영숙은 자신의 허벅지를 치며 큰 목소리로 말했다.“똑똑히 들어라. 네 동생이 살든 죽든 그건 그 아이의 운명이다. 네 인생을 바쳐서 유준이가 평생 침대에 누워 있게 만드는 거라면, 차라리 내가 내 손으로 유준이 산소줄을 뽑겠다!”하설은 손을 들어 눈가를 가렸다. 눈물이 손바닥을 적셨다.주영숙도 두 줄기 눈물을 흘렸다.“나한테는 너와 유준이밖에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4화

    경매장 입구.정갈한 제복을 입은 직원이 손을 내밀었다.“초대장과 VIP 카드를 보여 주세요.”하설은 담담하게 말했다.“심하설입니다. 배문교 대표의 아내예요.”직원은 미간을 찌푸렸다. 하설의 얼굴에서 치맛자락까지 훑었다.“배 대표님과 사모님께서는 3분 전에 등록을 마치고 입장하셨습니다.”하설의 눈썹이 꿈틀거렸다.“배 대표에게 전화해 보세요.”직원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가면서, 하설을 보는 눈빛에는 조롱의 기색이 담겼다.“배 대표님이 사모님과 같이 계시는데, 제가 괜히 불편하게 해 드릴 수는 없죠.”사적으로는 남편이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3화

    하설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돌아섰다.발끝에 힘이 풀리면서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몸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열기가 솟아올랐다.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밀려 나오는 듯한 열기와 갈증, 공허감이 함께 몰려왔다.하설은 곧바로 남희가 건넸던 스파클링 와인을 떠올렸다.술에 약이 들어 있었던 모양이다.‘아마도... 할머니가 시킨 일이겠지.’깊이 숨을 들이마신 하설은 룸으로 돌아가려던 생각이 싹 사라졌다.룸으로 돌아간다는 건 바로 문교와 마주해야 한다는 뜻이었다.하설은 문교가 더럽기 짝이 없게 느껴졌다. 곧장 돌아서서 비틀거리며 클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2화

    소리 없이 쌓인 눈은 세상 모든 것을 묻어 버릴 듯했다.차 안에서는 휘성의 당부만 들렸다.“결혼 후 가정의 재정권은 계속 배문교 대표에게 있었죠? 먼저 배 대표의 재산 상태를 파악하는 게 좋겠습니다.”하설은 이해하지 못한 듯 고개를 기울였다.휘성이 말했다.“전에 한 IT 기업 대표가 연봉 만 원으로 일했던 일이 떠올랐습니다. 물론 배 대표가 그럴 사람은 아닐 겁니다. 결혼했을 때부터 사모님을 노렸을 리는 없겠죠.”하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확인해 볼게요. 우선 은행에 들러 주세요.”하설이 은행에서 집으로 돌아왔을

  • 한 번에 복수하면 재미없잖아   제1화

    “결혼한 지 2년 동안, 오빠랑 나 666번 잤어.”“오빠, 하설 언니가 알까?”달뜬 목소리가 사무실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심하설은 온몸의 피가 식으면서 그대로 굳어버렸다.그녀는 들뜬 마음으로 배문교의 사무실을 찾았다 드디어 자신의 귀가 들린다고, 남편에게 제일 먼저 알려 주고 싶었다.하지만 하설이 듣게 된 것은 남편의 외도였다.상대는 낯선 여자가 아니었다.남편의 명목상의 여동생.하설의 남동생을 식물인간으로 만든 원흉이었던 윤채아였다.하설은 눈을 내리깔았다.‘들을 수 있다는 게 이렇게 아픈 거였구나.’안쪽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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