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인천국제공항 활주로.그는 워싱턴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자신의 무거운 몸을 실었다.요란한 굉음과 함께 비행기가 이륙하자마자.에구치의 온몸에 시뻘건 열꽃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지독한 오한과 통증 속에서, 가혹했던 기억이 검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검은 세단의 헤드라이트가 그의 발걸음 앞을 가로 막았다.차의 뒷좌석의 창문으로 유진의 아버지, KL그룹의 수장인 서 회장이 모습을 들어냈다.“자네, 우리 유진이 그만 놔주게.”일식집 룸에서 마주 앉은 서 회장은 지독하게 오만한 얼굴로 에구치를 내려다봤다.찻잔이 부딪히는 달칵 소리가 얼음처럼 차가웠다.“……죄송합니다, 아버님.”“자네의 욕심 하나에, 유진의 생모가 남긴 유산인 KL 그룹이 좌초되기 일보 직전이야. 자네 때문에 유진에게 배신당한 렉스 그룹의 류 회장이 가만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나?”“지금이라도 안 늦었어. 유진이가 돌아와 무릎 꿇고 빌기만 하면 용서해 주실 거네.”에구치는 미동조차 없이 단단하게 입술을 다물었다.“유진이 먼저 제 손을 놓기 전까지는. 전 절대로 유진과 헤어질 수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서회장은 이내 비열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자네, 유진이 엄마가 왜 죽었는지 아나?”“……네?”“그 로즈마리 화단… 그게 유진에게 무슨 의미인지 아냔 말일세.”에구치는 아무 말 없이 주먹을 쥔 채 입술만 굳게 다물었다.“그 화단은 유진 엄마의 죄책감이었지. 사랑했던 남자를 배신하고 가문을 위해 나를 선택했던 그 죄책감에 매일 밤 잠들지 못하고 지독한 우울증에 빠졌었지. 그래서 유진과 내가 매일같이 정성을 다해 가꾸었지. 조금이라도 그녀가 편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럼에도 스스로 생을 끊어버렸네.”에구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우리 유진이도 엄마처럼 비참하게 죽게 만들 작정인가?”하지만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그를 보며, 서 회장은 마지막 쇄기를 박았다.“하나만 묻겠네. 혹시 우리 유진이가 자네에게 단 한 번이라도 힘들다고 투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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