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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0

끼이이ㅡㅡ익.그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잡았다.날카롭고 거친 타이어 마찰음이 논현동 사거리 뒷골목의 밤 공기를 찢었다.차량의 밝은 헤드라이트가 비추는 차가운 아스팔트 도로 위로.누군가 유령처럼 차량을 향해 돌진하듯 뛰어들었다.그리고 충돌 직전 무게를 이기지 못한 인형처럼, 도로 한가운데로 힘없이 쓰러져 버렸다.그는 급하게 차량에서 내려 쓰러진 여자를 확인했다.헝클어진 머리 그리고 엉망인 채로 정신을 잃은 여자.술에 취한 듯 보였다.그리고 에구치는 망설임 없이 여자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의사로서의 본능이 매섭게 고개를 들었다.그는 여자의 손목을 잡아채고 목덜미의 경동맥에 손가락을 대어 맥박부터 확인했다.‘……툭 …………툭’불안정하고 느려지는 맥박.그는 즉각적으로 응급상황임을 감지하고, 바로 차량으로 달려가 자신의 휴대폰을 꺼내 119를 눌렀다.“한남대 병원 심장외과 과장 에구치입니다. 여기 논현사거리인데 응급상황입니다. 오시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요?”“지금 강남대로에서 연쇄 추돌 사고가 나서 도로가 많이 막힙니다. 대략 20분 이상 걸릴 것 같은데…… 어쩌죠?”[안돼. 그 사이 심정지가 올 것 같은데…… 여기서 다리만 건너면 병원이니까.]“한남대교는 교통상황이 어떻습니까?”“잠시만요. 그쪽은 나쁘지 않습니다. 신호 2번이면 지나가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그럼 제가 환자 직접 응급실로 이송하죠. 응급실에 CPR 환자 이송 중이니, 미리 대기해 달라고 연락 좀 부탁드리겠습니다.”에구치는 급하게 쓰러진 여자를 안아 들었다.그 순간, 품에 안긴 여자의 몸에서 역한 밤꽃 냄새가 뿜어져 나와 그의 신경을 사정없이 건드렸다.[이 냄새는…… 그런데 술 냄새가 전혀 없어. 그럼 설마 성폭행?]의사로서 경험했던 수많은 범죄 피해자들의 신체적 특징.그의 싸늘한 촉이 경고등을 켰다.에구치는 그녀를 차량 뒷좌석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어두운 실내등 불빛 아래 여자의 행색을 재빠르게 훑었다.찢기고 지저분하게 구겨져 있는 고급스러운 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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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1

5일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지독한 두통과 함께 이성적인 감각이 채 돌아오기도 전 병실 문이 거칠게 열리며 형사들이 들이닥쳤다.채 마르지도 않은 핏기와 약물 기운이 도는 유진을 향해 질문을 사정없이 퍼부었다.“논현동 사거리 클럽에서 나온 시간은 토요일 저녁 7시. 근데 클럽으로 들어간 기록이 없어요. 주변 CCTV 전부 확인했습니다. 언제 클럽에 들어가셨던 거죠?”유진은 아무 기억도 없었다.“논현동이요? 그 근처에 간 적이 없는데.”“그럼 토요일에 어디에 계셨죠?”“토요일? 금요일 회사 회식이 있었는데 그때부터 기억이……”“금요일이요? 금요일 언제 말씀하시는 건가요?”유진은 바짝 마른 입술을 혀로 축이며 겨우 기억을 더듬었다.“종로에 오마카세 스시집을 전체 대관했고 8시쯤 식사가 끝났고 그리고 그때부터…… 기억이 없습니다.”형사들의 안색이 눈에 띄게 무겁게 가라앉았다.수사를 주도하던 여형사가 유진의 침대 머리맡으로 바짝 다가앉으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럼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야 합니다. 모발 검사 중이니 숨기셔도 소용없다는 건 변호사님이 더 잘 아실테고 혹시 항정신성의약품을 복용하신 적이 있으신가요?”“제가 마약 중독자인지 확인하고 싶은 건가요? 아니요. 담배도 한 적 없습니다. 전 술도 거의 마시지 못합니다. 회식 때 사케 한잔을 한 게 전부입니다. 하지만 제가 하루 가까이 기억을 잃은 것을 보면, 분명 제 몸에서 뭔가 검출 됐을 거고 도대체 뭐가 얼마나…… 나온 거죠?”“치사량이 넘는 다량의 약물이 검출됐습니다. 심정지 상태로 발견되지 않은 게 기적이라고 들었습니다. 다행히 발견 당시 구조자가 이 병원 의사여서 응급조치가 빨랐던 덕에 천만다행이었습니다.”“약물이요…….”유진은 가슴이 차갑게 식어내리는 것을 느꼈다.본능적으로 지금 온몸을 지배하는 기괴한 통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차렸다.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를 짓누르며 잔인한 질문을 던졌다.“그럼 제 몸에서…… 혹시 DNA가…… 발견됐나요?”그 질문이 떨어지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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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2

유진은 잠시 멍하니 정신을 놓았다.그리고 생각이 정리되자마자 침대에서 내려왔다.바닥을 딛은 발에 체중이 실리자마자 몸의 중심에서 느껴지는 거북하고 기분 나쁜 아픔들.유진은 순간 속이 메스꺼워 토할 것 같았다.그리고 급하게 욕실로 달려가 변기를 붙잡고 속을 게워냈다.한참을 변기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유진은 힘겹게 일어서 입고 있는 병원복을 천천히 벗고 자신의 알몸을 구석구석 확인했다.터지고 찢겨 나간 아랫입술.목덜미와 쇄골 주변에 짐승의 잇자국처럼 여전히 어지럽게 남아있는 시퍼런 키스 마크와 숨통을 끊어놓으려는 듯 단단하게 쥐고 흔든 무자비한 손자국들.몸 구석구석마다 잔인하게 새겨진 타인의 오염된 흔적들을 직시하자마자.유진은 다시 비울 것도 없는 텅 빈 속을 억지로 쥐어짜며 헛구역질을 했다.그리고 피부가 벌겋게 데일 듯 뜨거운 물을 틀어 수전 아래에 서서 제 살점이 뜯겨 나갈 것처럼 거친 타월로 온몸을 닦고 또 닦아냈다.낙인을 지워내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으나, 뜨거운 물줄기 속에서도 한기는 가시지 않았다.그리고 힘겹게 침대로 돌아와 휴대폰을 들었다.잠시 울리던 벨소리.그리고 간담이 서늘할 만큼 차가운 남자의 목소리가 휴대폰 너머로 들려왔다.“정신… 차린 건가?”순간 류가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첫 마디를 유진에게 건넸다.2년만에 인사가 이렇게 잔인하다니.유진은 범죄에 대한 증오보다 가슴 시린 서글픔에 숨이 막혔다.“설마 했는데, 내가 죽기를 바란 거라면…… 그냥 말만 했어도 들어줬을 거예요.”“그래서 안 죽었잖아.”“그럼 죽어 드리면 되나요?”“아니. 넌 못 죽어. 내가 그렇게 되게 안 둘 거니까. 아직은…… 내가 널 죽이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내게 치사량이 넘는 약물을 투약해 놓고, 날 남자들에게 유린 당하게 만들어 놓고…… 날 죽일 생각이 없다고요?”“맞아. 그 날은…… 그래. 잠깐은 네가 죽기를 바랬어. 그것도 가장 비참한 방법으로. 근데 내 생각이 바뀌었어. 그리고 네가 그곳에서 탈출하지 않았어도 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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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3

재벌 오너 납치 사건.이 잔인하고 자극적인 스캔들은 당장이라도 온갖 일간지와 뉴스 메인을 떠들썩하게 도배될 대형 사건이었다.그러나 기이할 정도로 언론은 고요했다.신문 기사 단 한 줄… 인터넷 찌라시 하나조차 실리지 않은 완벽한 침묵.에구치는 이 부자연스러운 암전 속에서 거대한 그림자를 직감했다.결국 참지 못한 그는 유진의 담당 형사를 병원 복도 외진 곳으로 불러내 사건의 경위를 날카롭게 캐물었다.깊은 한숨을 뱉어낸 형사가 주변 사방을 극도로 두려운 듯 두리번거리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아시다시피, 피해자가 보통 신분입니까?”“그래서 범죄 이유에 관해 조사된 것이 있습니까?”“저희는 지금 범죄 조직이 서유진 변호사님이 운영하는 대형 유통 및 호텔 사업망의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악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국내 루트 유통망을 뚫기 위해 서 변호사님을 납치해 협박 용도로 벌인 기획 범죄로 조사 중입니다.”“협박 용도요? 환자의 몸 상태가 어떤지 의사인 제가 더 잘 압니다. 그게 고작 가벼운 협박을 위한 수단입니까?”그의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에 서슬 퍼런 분노가 실렸다.형사는 곤혹스러운 듯 뒷목을 긁적였다.“그게…… 범죄가 일어난 직후, 이미 범죄조직들이 귀신같이 흔적을 은폐하고 전부 해외로 도주한 상태였습니다. 현장에 투입된 놈들 대부분이 불법 체류자나 외국 국적의 직원들만 남아 있어 신원 파악도 인적 사항 추적도 쉽지가 않아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누군가 위에서 아주 조직적으로 현장을 통째로 세탁해 버린 느낌입니다. 수사에 진척이 없어 저희도 미칠 노릇입니다.”형사의 무책임한 설명을 들으며 그는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치솟는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누군가 유진을 짓밟고 심지어 그 흔적까지 완벽하게 지워버렸다.유진이 마주한 세상이 이토록 추악하고 위험한 곳이었다니.그의 무력감과 분노가 심장을 사정없이 짓눌렀다.이렇게 마주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에구치는 매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의식이 없는 유진의 병실을 찾았다.하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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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4

클럽 VIP 룸의 묵직한 문이 열리며, 스산한 공기와 함께 의식을 잃은 여자가 야쿠자 조직원의 두꺼운 등에 업혀 들어왔다.검은 수트를 입은 거구의 사내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는 기계적인 몸짓으로 그녀를 마치 술집의 값비싼 안주거리를 대하듯 대리석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회장님, 지난 번 도와주신 것에 대한 선물입니다. 이미 아주 비싸고 좋은 약들로 한껏 취한 상태로 만들어 왔으니 아주 만족하실 겁니다. 좋은 시간 보내십시요.”사내의 비열하고 끈적한 웃음소리와 함께 문이 다시 무겁게 닫혔다.밀폐된 거대한 룸 안에는 숨소리조차 삼켜버릴 듯한 기괴한 정적이 찾아왔다.다량의 독한 약에 취해 이성과 의식이 혼미하게 흐려진 류의 시야 끝에 엉망으로 구겨지고 헝크러진 여자가 보였다.그는 들고 있던 잔에 남아 있던 싱글 몰트 위스키를 한번에 목구멍으로 때려넣었다.그리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언제나처럼.그의 시선 끝에 유진이 보였다.지난 2년간, 매일 밤 자신을 난도질하던 잔인한 환각.분명 눈 앞에 있는 여자는 클럽에서 일하는 업소녀일 것이다.어쩌면 유진과 조금은 닮은……뇌리 속에서 서유진이라는 세 글자를 떠올리자마자, 류의 가슴 안쪽 심장이 미치도록 아려왔다.순식간에 제어할 수 없는 폭발적인 분노와 증오가 차올라 그의 숨통을 답답하게 짓눌렀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죽을 것처럼 그리웠다.[널 샀던 걸 후회해. 죽이고 싶을 만큼 널 증오해. 널 내 머리 속에서 지우고 싶어 미치겠어. 그런데 그런 널 난 여전히 멍청하게 이렇게 또 그리워 하고 이렇게 매일 너의 환영을 봐. 다시 네가 날 잡아주기를 바라면서…… 널 매일 이렇게 기다리면서…… 완전 Fucked up!]미치도록 지우고 싶었던 유진의 환영이 눈앞에 나타나자, 류의 안에서 억눌려 있던 비틀린 증오와 처절한 그리움이 한꺼번에 폭발했다.그는 대리석 테이블 위에 놓여있는 환각 속 여인을 거칠게 끌어당겼다.그리고 거칠게 뒤로 돌려 눕히고, 구겨진 드레스 안쪽의 속읏을 거침없이 벗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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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5

류는 그대로 얼어붙었다.차디찬 대리석 테이블 위 들뜬 숨을 내쉬며 의식을 잃은 유진.“유진아……!!! 정신 차려…!”그는 정신없이 그녀를 부등켜 안고 그녀의 의식을 깨우려 얼굴을 감싸안았다.그때 유진의 가쁜 입술이 조그맣게 신음소리를 내밷었다.“요스케……”약물에 취해 흐느끼던 유진의 입술 사이로 흘러나온 그 이름.자신의 이름이자 유진의 또 다른 남자의 이름.그때 스친 기억의 한 조각.그녀의 휴대폰 발신인 ID. 요스케♡순간 유진을 정신없이 끌어안던 그의 팔에서 힘이 툭 빠져버렸다.룸 안을 지배하던 무거운 정적 속에서, 얼마간의 잔인한 침묵이 유령처럼 지나갔다.[요스케…! 넌 날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어. 그럼 그 이름은 도대체…… 누구야……!!!]가슴을 짓누르는 배신감과 통제할 수 없는 분노가 끝내 한계점을 넘어섰다.류는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고가의 위스키병을 벽을 향해 내던졌다.‘쨍그랑…!’날카로운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어 오르는 가운데, 류는 미친놈처럼 웃기 시작했다.허탈하고도 잔혹한 그의 웃음소리가 텅 빈 VIP 룸을 난도질했다.한참을 광기 어린 웃음을 쏟아내던 류가 이내 웃음기를 싹 지워냈다.소름 끼칠 정도로 서늘하고 차갑게 굳어버린 얼굴로, 그는 비틀거리는 걸음을 옮겨 방 밖으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그가 문을 열고 나오자, 대기하고 있던 야쿠자 조직의 보스가 비열한 미소를 띠며 대가리를 숙였다.“회장님 즐거우셨습니까. 그럼 여자분은…… 어떻게 할까요?”“너희 맘대로 해. 난 상관……없으니까.”“진짜 그래도 되겠습니까?”“상관없어. 죽이든 살리든.”지독한 질투가 그의 이성을 마비시켰다.그는 그렇게 자신의 손으로 유진을 그 지옥에 밀어 넣은 채 그녀를 버렸다.*잔뜩 취한 채, 넋이 나간 류는 비서의 등에 엎혀 자신의 레지던스에 돌아왔다.집에 들어서자마자 잠시 살짝 돌아온 의식에 괴로운 듯, 그는 다시 고함을 지르며 위스키와 약물을 입 안에 털어 넣었다.‘와장창! 콰직!’그는 이성을 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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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6

‘퍽! 퍼억!’둔탁한 마찰음과 함께 뼈가 으스러지는 비명이 어두운 암실을 피비린내로 채웠다.평소 무에타이로 단련된 류의 신체는 그 자체로 잔혹한 흉기였다.서슬 퍼렇게 날이 선 심해처럼 짙은 눈동자에는 그 어떤 인간의 자비도 남아있지 않았다.류는 서늘한 표정을 유지한 채 강철 너클을 낀 주먹으로 험상궂게 생긴 야쿠자 조직원 보스의 안면을 사정없이 가격했다.“감히 누굴 납치해? 그리고… 마약을 투약 시켜?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낮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밀폐된 공간을 난도질했다.류는 시뻘겋게 불로 달군 쇠파이프를 집어 들었다.사정없이 연기를 내뿜는 철퇴가 보스의 아랫도리를 그대로 지져버렸다.“아아아아악! 끄아악!”살이 타들어 가는 기괴한 악취와 비명이 가득했다.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파이프를 휘둘러 놈의 양쪽 발목을 처참하게 부러뜨렸다.그리고 테이블 위에 놓여 있던 유진의 몸에 꽂혔던 것과 같은 성분의 다량의 마약 주사기 뭉치를 손에 쥐었다.보스는 피와 배설물로 범벅이 된 채 바닥을 기며 애걸복걸했다.“알아서…… 처리하라고 하셔서…”“그래서 넌 오늘 여기서 죽는다.”“죄송합니다. 저희…… 살려 주세요. 회장님 살려 주세요. 잘못했습니다.”“너희가 여기서 살아 나갈 수 있는 방법은 없어. 그리고 만약 서유진이 잘못되면 너 뿐만 아니라 네 눈 앞에서 네 가족들 하나 하나 전부 찾아서 모조리 찢어 죽여 버릴 거야.”그는 야쿠자 보스 앞에 그의 가족들 연락처와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의 사진을 던졌다.그때 유진에게 전화가 들어왔다.그는 고문을 하던 손을 멈추고 덜덜 떨리는 피 묻은 손가락으로 통화버튼을 눌렀다.“내가 어디까지 망가져야 멈출 건가요? 내가…… 죽기를 바래요?”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유진의 목소리는 갈라지고 깨어져 있었지만 명백한 증오와 독기가 서려 있었다.[이 정도의 정신이면…… 다행이다.]순간 류는 심장이 칼로 도려내지는 듯한 극심한 통증을 느꼈다.지금 그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그녀의 안부만이 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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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7

지독한 연기처럼 뇌를 갉아먹는 환각의 후유증은 잔인했다.단 한 번의 강제 투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체 치사량을 넘겼던 악질적인 약물들은 이미 유진의 마른 뼈마디와 신경포를 장악해 중독 증세를 일으키고 있었다.간헐적으로 찾아오는 손끝의 떨림과 오한을 누르며 유진은 정신의학과 내에 마련된 마약 중독 전문 상담 진료실을 나섰다.차가운 병원 복도의 공기를 들이마시며 한숨을 내쉰 바로 그 순간 유진의 시선 끝에 극도로 어색하고 이질적인 실루엣 하나가 걸려들었다.하얀 의사 가운을 입고 복도 끝에 서서 자신을 묵묵히 바라보고 있는 남자.그와 시선이 정면으로 맞닿은 순간 유진의 심장이 요동쳤다.당황스러움과 함께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불쾌하고 끔찍한 소름이 돋아났다.그의 등장이 전혀 반갑지 않았다.아니 끔찍했다.에구치 요스케.7년 전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고도 잔혹했던 파편을 남기고 사라진 남자.그와 이렇게 쉽게 마주칠 리 없었다.유진은 그와의 거리가 좁혀지는 것조차 견딜 수 없어, 황급히 고개를 돌린 채 빠른 걸음으로 그의 옆을 지나쳐갔다.“보고…… 싶었어.”그 순간 남자의 낮은 목소리가 그녀를 붙잡았다.7년 만에 듣는, 꿈속에서조차 자신을 괴롭히던 목소리였다.아주 잠깐 유진의 미간에 정체 모를 어색함과 균열이 비쳤다 사라졌다.유진은 잠시 멈췄던 발길을 재촉하며 그에게서 재빨리 멀어졌다.도망치듯 속도를 높이는 유진의 뒷모습을 보던 에구치가, 결국 참지 못하고 성큼 걸어와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거칠게 붙잡아 세웠다.예상치 못한 그의 갑작스럽고 거친 행동에, 유진은 놀라 다시 그와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얼음처럼 얼어붙었다.좁은 병원 복도 한복판에서, 두 사람의 시선이 검날처럼 거칠게 부딪혔다.그리고 그녀를 내려다보는 에구치의 깊고 어두운 눈동자 속에는, 7년을 묵혀온 지독하고도 절실한 그리움과 가눌 수 없는 부채감의 죄책감이 해일처럼 일렁이고 있었다.“놔요.”유진은 자신을 단단히 붙잡은 그의 무례한 손을 사정없이 뿌리치고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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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8

유진은 침대 위에서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휴대폰을 쥔 채, 깊은 망설임의 수렁에 빠져들었다.‘나처럼 너도 지옥에서 살기를 바랄 뿐이야’사고 이후, 자신의 귓가를 떠나지 않는 류의 마지막 목소리.그리고 화면 위에는 류가 보낸, 출처를 알 수 없는 정체 모를 동영상 링크가 시린 블루라이트를 내뿜으며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이번에는 이 남자가 또 어떤 잔인한 방법으로 자신을 아프게 할지 무서웠다.[지옥……]유진은 뼈마디가 저려올 만큼 두려웠다.[내가…… 결국 당신을 지옥에 쳐박은 건가요?]그러나 그를 향한 증오보다 더 무서운 것은, 가슴 한구석에서부터 벼락처럼 걷잡을 수 없이 피어오르는 그를 향한 걱정과 지독한 그리움이었다.자신과의 마지막 순간처럼 그가 유진의 가쁜 숨통을 사정없이 조여왔다.[당신이 날 죽이고 싶을 만큼 증오하는 거 알아요. 내가 당신을 그렇게 만든 거니까.]유진은 화면을 바라보며 속으로 울음을 삼켰다.[근데 나도 당신을 증오하기를 바랬던 건가요? 그래야만 지옥 같은 우리가 끝날 거라고 생각한 거예요? 그렇다고 해도…… 이런 추악한 납치와 약물 범죄까지 벌일 사람은 아니라는 거, 나 누구보다 잘 아는데…]세상 모든 사람이 류를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혹한 냉혈한이라 손가락질해도 자신에게만큼은 절대 그런 짓을 저지를 사람이 아니었다.자신은 류가 가진 유일한 아킬레스건이자 순애였다.그래서 자신이 먼저 용서받지 못할 죄를 지어가며 그를 잔인하게 끊어냈다.[왜 이런 일까지… 아니야. 난 당신을 알아. 분명 지금 당신 제정신 아니야. 당신, 정말로 날 믿어요? 아니. 당신은 나 안 믿잖아. 내가 당신을 죽이고 싶다는 그 모진 말을 당신이 정말로 믿었다면. 당신은 이 끔찍한 동영상을 나한테 보내지 않았을 테니까.]유진은 이제 류가 쏟아내는 지독한 단어들의 해독 코드를 알았다.그래서 그의 가시돋히고 저주 섞인 말들이 더 이상 그녀를 찌르지 않았다.그러나 동영상 안에 담긴 진실.언제나 자신의 삶에 버팀목이자 구원이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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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ISODE 139

인적 드문 바닷가 전경의 작은 카페.사방을 에워싼 파도 소리만이 서늘한 정적을 채우는 가운데.유진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얼어붙은 시선으로 맞은편에 앉은 에구치 요스케를 가만히 응시했다.무려 7년 만에 제대로 마주 앉은 첫사랑의 남자.그는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위태로운 안색을 하고 있었다.그런 그의 모습을 보는 유진은 짜증만 났다.그리고 그녀의 핏기 없는 입술 사이로 서늘한 음성이 툭 흘러나왔다.“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는 지 모르겠지만…… 마음 털고 편해지고 싶은 거라면 하고 싶은 말 하세요.”자신을 향한 유진의 지독하리만치 서늘한 태도.에구치는 심장이 칼날에 짓겨 가루가 되는 것 같은 참혹한 통증을 느꼈다.“그 전에…… 내 과거를 내게 먼저 말하고 싶어. 네가 날 조금이라도 더 이해해 주기를 바라니까.”“알았어요. 뭐든…… 들을게요.”에구치는 타들어 가는 목소리로 마른침을 삼켰다.“널 만나기 전, 난 모든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어. 그리고 버려졌지. 그래서 다시는 남들에게 기대지 않겠다고 사랑하지 않겠다고 아니, 사랑을 믿지 않았어. 그 딴 건 없다고 그리고 쓸모가 없어지면 버려지는 게 사람 관계라고.”이미 알고 있는 그의 과거.그래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려는 그를 이해하려 애를 썼었다.그가 돌려주지 않는 사랑에 상처 받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었다.그저 곁에 있어 달라고 사정했는데.과거 에구치가 자신에게 주었던 상처를 상기하던 유진은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에구치를 향했던 그 절실했던 사랑이 너무도 잔인하게 익숙했다.“그런데 내가 너에게 아무 쓸모도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어. 네가 얼마나 힘든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걱정이 뭔지 난 아무 것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두려웠어. 너에게까지 버림 받게 된다면 난 끝이었으니까. 그 상처가 두려워서 내가 먼저 도망쳤어. 미안해.”처절할 정도로 솔직한 자백이었다.사내는 평생을 숨겨온 자신의 가장 나약하고 추악했던 열등감을 그녀에게 온전히 발가벗겨 내보였다.유진의 표정이 창백하게 변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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