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층에서 25층, 익숙한 비서실을 지나 대표실로 향하는 길.“대표님, 참 가지가지 대단도 하시네요.”어느새 나는 차준호의 단단한 손에 이끌려 조용한 복도를 걷고 있었다. 게임 개발실이 위치한 층을 벗어나자 고요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명절 직후의 주말인 데다 다른 부서 직원들은 연차를 몰아 쓴 덕에 사옥 안은 적막했다.“지난주에 대표실을 좀 리모델링했거든.”비서실을 지나자, 허기찬 대신 서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요청하신 자료는 메신저로 정리해 두었습니다. 전 이만 퇴근하겠습니다.”“그래, 고생했어.”나를 대신해 정식 비서 자리에 들어온 모양이었다. 총무과에 있을 때보다는 훨씬 나은 대우를 해주겠지. 그래도 여자 비서가 아니라 다행스러워하는 나 자신에게 허무한 콧웃음이 흘러나왔다.차준호가 나를 이끌고 들어간 곳은 대표실 안쪽 프라이빗 공간이었다.예전에 무심코 본 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때와 확연히 달랐다.은은하게 깔린 간접 조명 아래, 세련된 소파와 미니바가 보였고, 그 옆으로 널찍한 킹사이즈 침대가 자리했다.원래 한남동 저택이나 호텔 스위트룸에 비하면 소박한 수준인 데다가 서재 같던 공간이 원룸처럼 꾸며져 있어 색다른 기류가 흘렀다.설마 나 때문에 호텔로 돌아가지 못하는 날이면 이곳에서 밤을 보내기 위해 이 판을 짜둔 걸까.황당함에 말을 잊은 나를 보며, 그가 입꼬리를 짓궂게 올려 세웠다.“차나 한잔할까. 내가 이제야 건강 좀 챙겨볼까 하고 술은 좀 줄였거든.”어느새 차준호는 미니바 앞에서 익숙하게 찻주전자를 꺼냈다. 나는 묘한 기분에 할 말을 잃은 채 털썩 소파에 몸을 묻었다.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