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한 흑철 성문이 열리고 드러난 곳.지옥이 아니었다.루미엘이 태어났던, 그리고 내가 처형당했던….산청과 광장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공간이었다.광장은 내가 마지막 숨을 거두던 날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바람은 없었지만, 처형장에 매달린 깃발은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고,돌바닥에는 오래전 말라붙었어야 할 피가 아직도 검붉게 스며 있었다.발끝이 떨렸다.죽음 직전의 공포와 절망까지 그대로 되살려내는 기억의 감옥.숨이 막혀 왔다.하지만.나는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예전의 나라면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그러나 지금의 나는 두 번의 삶을 지나 이곳까지 왔다.중앙 옥좌에는 흑마왕이 앉아 있었다.역시….저자가 모든 원흉이었구나.흑마왕이 입을 열자, 소름 끼치는 익숙함.수많은 원혼과 흑마력이 뒤섞인 불협화음이었다.“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왕궁에서 도망친 비천한 시녀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저주받은 신의 핏줄이.”목소리와 함께 공간 전체가 진동했다.검은 안개가 사방으로 퍼지더니,수백, 수천 개 기억들이 허공에 떠올랐다.흑마록에 기록된 과거의 잔영들이 공간을 가득 메웠다.왕비 비올렛이 흑마왕과 결탁.루미엘을 수장시키고 모르가나가 강력한 악의 형상을 소환하는 장면이 담겨 있었다.그것만이 아니었다.왕궁에서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시녀들.흑마법의 제물로 바쳐졌던 아이들.탐욕 때문에 서로를 죽이던 귀족들.절망 끝에 스스로 악을 택했던 수많은 인간들….모든 죄가 검은 연기처럼 흑마왕 몸속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다 문득 깨달은 한가지.저 괴물은 태어난 게 아니다.인간들 죄악이 쌓이고 또 쌓여 거대 악을 만든 것이다.“마리안, 네가 단두대에서 죽던 그날, 네 아들의 신성을 두려워한 왕비가 나를 불러들였다. 나는 그녀의 탐욕이 빚어낸 그림자였다.”“탈리온, 왜 네 책임을 회피하려 드느냐? 네가 바로 악의 원흉인 걸 안다.”피식 웃는 흑마왕.그 웃음엔 조롱보다 깊은 허무가 담겨 있었다.“탈리온? 난 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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