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은빛 눈의 아이를 낳았다: Chapter 81 - Chapter 90

107 Chapters

81화. 추격자들의 그림자

은빛 기적이 소문으로 번지자,마법 군단과 결탁한 추격자들이 기어코 근처까지 도달했다.그들은 우리를 불온한 마력을 지닌 도망자로 규정했다.“마리안, 루미엘! 내 뒤로 숨어요.”카일이 서슬 퍼런 검을 뽑아 들었다.8년의 세월 동안 그의 검술은 더욱 간결하고 치명적으로 변해 있었다.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루미엘과 내가 도망칠 시간을 벌 심산이었다.기사단원 수십 명이 포위했고, 그들 검 끝에는 살기가 서려 있었다.카일의 거친 손등 위에 손을 살며시 얹은 루미엘.“사부님, 검을 거두어 주세요. 저분들은 싸우러 온 게 아니라, 마음이 지쳐서 온 거예요.”“루미엘!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저들은 너를 잡아 죽이려는 자들이야.”옷자락을 붙잡았지만 부드럽게 내 손을 푼 아들.포위망 한가운데로 걸어 나가는 15세 소년의 등 뒤로 밤하늘 달빛과 은빛 광채가 신비롭게 너울거렸다.“당신들 심장 소리가 들려요. 명령에 복종하지만, 속으로는 집에 두고 온 가족 걱정과 내일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군요.”은빛 눈동자가 추격대장 눈을 정면으로 응시했다.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추악한 살기를 본 대장.순간 손목에 힘이 풀려 검을 떨어뜨렸다.루미엘은 바닥에 주저앉아, 마을 사람들과 나누다 남은 작은 빵 주머니를 열었다.가장 앞줄에 선 병사에게 빵 한 조각을 내미는 아들의 손길.“저를 잡아가기 전에 먼저 이것부터 드세요. 당신들 영혼이 너무 메말라 있어서 제 마음이 아픕니다.”아이가 내뿜는 은빛 신성을 닮은 비둘기가 하늘 끝에서 내려왔다.팔을 들어 올릴 수도, 소리를 지를 수도 없는 병사들.따뜻하고 고결한 은빛 파동 안에서 죄책감과 마주할 뿐이었다.분노하며 소리치는 추격대장.“마법이다. 환각이야. 당장 저 괴물을 베어라.”하지만 누구도 움직이지 못한 채 얼어붙어 있었다.루미엘 은빛 눈동자가 반짝일 때마다.병사들 눈가에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이 고였다.평생 누군가를 죽이고 짓밟으며 살아온 그들이 처음으로 느껴본 용서의 무게였다.광경을 뒤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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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화. 회칠한 무덤과 진실

사제들이 경비병을 부르려 하자, 카일이 소리 없이 그들 사이를 가로막았다.특유의 위압감으로 사제들을 압도하는 카일.그들 속으로 걸어 나갔다.“루미엘님의 말이 곧 신의 뜻이다. 감히 그를 더러운 손으로 만지려 하지 마라. 만약 이 빛을 가리려 한다면, 내 검이 너희들의 위선을 먼저 벨 것이다.”하늘을 향해 치켜든 카일의 검.위로부터 내려온 하늘빛으로 인해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진리를 선포하는 동안.현실의 어둠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카일.듬직한 등 뒤에서 루미엘의 차가워진 손을 감싸 쥐었다.결국 성안의 가난한 자들이 루미엘 은빛 아래로 모여들기 시작했다.아들은 그들에게 금화를 주는 대신.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마음의 빛을 나누어 주었다.하지만 그날 밤.사제들은 은밀히 왕국 중앙군에 서신을 보냈다.은빛 눈의 선동가가 성전을 모독하고 민심을 어지럽히고 있다는.모함이 담긴 서신이었다.성의 지하 감옥보다 더 어두운 음모가 우리를 향해 좁혀오고 있었다.창밖의 달빛을 보며 심란한 표정의 루미엘.“어머니, 이제 곧 저 달빛조차 가려질 긴 밤이 올 거예요. 하지만 기억하세요. 은빛은 어둠 속에서 가장 밝게 빛난다는 것을요.”사제장과 성주가 보낸 무장 병사들이 우리가 머물던 민가 주위를 포위했다.그들은 루미엘을 성전을 모독하고 민심을 선동한 반역자로 공표하며 죄의 굴레를 씌었다.“마녀의 아들이여! 네가 가진 사악한 힘으로 백성을 현혹한 죄를 묻겠다. 당장 나와 무릎을 꿇어라.”성주의 외침에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려 뒤로 물러섰다.하지만 루미엘은 평온했다.초연한 태도로 낡은 문을 열고 나가는 아들.은빛 눈동자는 자신을 향한 날카로운 창들을 슬픈 듯 응시했다.카일은 대검을 뽑아 들고 루미엘 앞을 가로막았다.“루미엘님, 내 뒤로 피하십시오. 마리안, 뒷길로 피하세요. 이 가식덩어리들을 모두 베어버리고 따라가겠습니다.”살기가 가득한 카일의 눈.루미엘을 위해서라면 이 성 전체를 피로 물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사부님, 검을 거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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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3화. 광야의 은하수 아래서

성의 추격을 피해 도착한 광야의 깊은 동굴 안.카일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위에 몸을 기댔다.어깨를 관통했던 화살 자국에서 붉은 피가 배어 나와 그의 낡은 가죽 갑옷을 적셨다.약초를 짓이겨 그의 상처에 얹으며 그를 바라봤다.“카일, 정신 차려요. 왜 그런 무모한 짓을…. 당신까지 잘못되면 우리는….”눈물 섞인 목소리에 카일은 창백한 얼굴로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다.“마리안, 제 몸의 상처는 며칠 아물겠지만…. 루미엘님의 마음이 다치는 것은 견딜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을 비출 유일한 빛이니까요. 그 빛과 당신을 지키는 것이 제 인생의 가장 고결한 임무입니다.”동굴 입구에서 바라보는 밤하늘.속절없이 아름다운 저 빛들.미안함과 슬픔을 억누르며 루미엘은 조용히 카일 곁으로 다가왔다.“저 때문에 사부님이 피를 흘렸어요. 제가 세상에 오지 않았다면 두 분은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 텐데….”“잊으셨습니까? 루미엘님이 세상에 오지 않으셨다면 저는 지금, 천계에 있을 겁니다.”루미엘이 카일의 피 묻은 어깨를 잡자, 손끝에서 달빛보다 부드러운 신성이 흘러나와 상처를 감쌌다.마치 아이의 흐느낌처럼 애절하게 흔들리는 빛으로….카일의 상처가 사라지며 깨끗한 살이 돋아올랐다.점점 강해지고 선명해지는 아들의 신성 앞에 다시 한번 절망하고 있었다.“어머니, 왜 사람들은 칼을 휘두를까요? 왜 제가 본 그들 영혼은 그토록 아름다우면서도 그토록 추악할까요?”“루미엘, 그건 그들이 어둠에 너무 익숙해져서 빛이 눈 부시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네가 보여준 그 은빛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 그들 마음속에 작은 씨앗으로 남아서 언젠가는 꽃을 피울 거야. 그것이 네가 가진 사랑의 힘이란다. 신의 아들만이 품을 수 있는 위대한 사랑 말이야.”동굴 밖으로 쏟아지는 은하수를 응시하는 아들.어깨에 놓인 세상 짐이 은빛 오라가 되어 그의 등 뒤에 날개 형상을 만들었다.“이제 알 것 같아요. 저는 도망치기 위해 이 땅에 온 게 아니에요. 저 어두운 성보다 더 깊은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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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화. 독보다 깊은 사랑

계곡에 새벽이 찾아오기 전.절벽 위 검은 사제들이 움직였다.그들은 자신들의 통제를 벗어난 이 은빛 기적을 신성 모독이라 규정했다.그들이 우물에 부어 넣은 것은 마력을 주입해 마시는 자의 생명력을 갉아먹는 저주였다.“이것으로 신화도 끝이다. 기적이 비극으로 변할 때, 백성들은 다시 우리 발아래 엎드리게 될 것이다.”아침이 밝았다.일찍 우물물을 마신 아이들과 병자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계곡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루미엘, 물이…. 물이 오염됐어.”쓰러진 아이를 안아 들었다.절벽 위를 살피는 카일.그는 본능적으로 인간의 악의에서 비롯된 일임을 직감했다.카일의 눈에 분노가 차올랐다.쓰러진 사람들을 살피는 루미엘.깊은 슬픔이 젖어 들어 있었다.우물가로 다가가 오염된 물에 손을 깊숙이 담갔다.“루미엘, 안 돼! 그건 저주가 서린 독이야.”만류에도 루미엘은 멈추지 않았다.팔을 타고 검은 독기가 은빛 신성과 충돌하며 내는 소리.루미엘 안색이 순식간에 변하며 고통으로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루미엘은 독을 밀어내는 대신, 자기 몸을 통로 삼아 그 독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우물의 검은 빛이 몸으로 스며들수록, 마을 사람들 얼굴에는 생기가 돌아왔다.대신 짊어짐이었다.그 광경을 보는 어미의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아들의 은빛 피부 위로 검은 혈관이 솟아오르는 것을 보며, 훗날 아이가 짊어져야 할 왕좌의 무게를 보았다.“신이시여! 제 아들을, 아니 당신의 아들을 보소서. 왜 이 어린 영혼이 세상의 악을 감당해야 합니까?”괴물과 싸울 순 있지만, 루미엘이 스스로 선택한 막을 수 없는 희생은.아들이 쓰러지지 않도록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곧 우물물은 그 어느 때보다 맑은 빛을 띠며 솟구쳤다.독기에 쓰러졌던 자들이 모두 일어나 루미엘을 향해 무릎을 꿇으며 경배했다.온몸에 상처를 입은 채 비틀거리며 내 품에 쓰러지는 아들.자신을 걱정하는 내 손을 잡으며 웃고 있었다.절벽 위에서 지켜보던 검은 사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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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화. 고통의 잔해 속 피어나는 빛

그는 허리춤에 찬 거대한 철검을 매만졌다.그의 검은 마력을 베어내는 검이었다.루미엘의 신성조차 무력화할 수 있는 치명적인 무기였다.동굴 밖에서 경계를 서던 카일.대기의 흐름이 변했음을 직감했다.바람에 실려 오는 것은 차가운 강철의 향기.동굴 안으로 들어가 조용히 짐을 챙기는 나를 바라보았다.“마리안, 오고 있습니다. 생각보다 빠르군요.”아무 말 없이 카일의 눈을 응시했다.그 눈빛에는 아이를 지켜달라는 간절함과 당신도 무사해야 한다는 애틋함이 교차하고 있었다.카일은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나를 감싸 안았다.“내 검이 부러지는 날이 오더라도, 루미엘과 당신만큼은 지키겠습니다.”카일은 구석에 두었던 낡은 대검을 들었다.8년 전.벼렸던 검.그 검이 그를 찾아 이곳까지 왔다.빛나지 않았지만, 수만 번의 수련으로 다져진 묵직한 위엄이 서려 있었다.계곡 입구.루카스 기사단이 주민들을 포위했다.병자들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엎드렸고 루카스는 차가운 눈으로 사자후를 토했다.“미혹된 자들이여! 마녀의 자식에게 영혼을 판 죄를 묻겠다. 그 괴물은 어디 있느냐?”군중 사이를 가르고 한 소년이 걸어 나왔다.화려한 갑옷도, 날카로운 무기도 없는 루미엘이.낡은 베옷을 입은 채.나와 카일이 아들 주위에 버티고 서 있었다.“루카스, 여전히 비겁하게 약자들 앞에서만 큰소리를 치는구나.”카일 목소리가 계곡에 울려 퍼졌다.“카일 총사령관, 결국 이곳에 숨어 있었나? 네가 지키고 있는 저 아이가 왕국의 재앙이라는 소문이 자자하다. 내 검으로 저 아이의 심장을 꿰뚫어 그 은빛이 가짜임을 증명하겠다.”루카스가 철검을 뽑아 들고 돌진하려던 찰나.루미엘이 카일 앞을 막아섰다.은빛 눈동자가 루카스 눈과 마주쳤다.“당신의 검은 너무 무겁군요. 그 검에 담긴 것은 충성심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비겁한 공포뿐이에요.”루카스 앞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환영.자신이 베어 넘겼던 무고한 자들의 얼굴이 루미엘 은빛 눈동자 속에 비치고 있었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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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화. 약속의 땅

계곡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향하는 뒤편으로 붉은빛을 띤 달이 떠올랐다.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본 카일.광야의 짐승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었다.“마리안, 루미엘님과 암석 지대 뒤로 피하세요. 왕국 마법사들이 금기를 건드린 모양입니다.”그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지평선 너머에서 검은 안개가 뱀처럼 기어 오더니 이내 형언할 수 없는 괴성을 내질렀다.고대 전쟁 당시 왕국이 봉인했던 그림자였다.생명력과 절망을 먹고 자라는 괴물.오직 파괴만을 위해 소환된 존재였다.“감히…. 누가 신의 아들의 앞길을 막느냐?”카일이 대검을 휘두르며 마수에게 달려들었다.그러나 상대는 죽는 생명체가 아니었다.흑마법으로 이루어진 마수의 발톱이 카일 대검을 비껴가며 그의 가슴을 공격했다.“커 헉…!”카일이 무릎을 꿇었다.마수의 손톱에 묻은 마력이 카일의 생명을 갉아먹기 시작했다.카일에게 달려가려 했으나, 마수가 나의 접근을 차단했다.“카일 사부님, 어머니!”눈앞에서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위기에 처하자, 내면에 잠자고 있던 본질적 신성이 세차게 요동치기 시작했다.루미엘이 마수를 향해 걸어갔다.걸음이 닿는 곳마다 검게 타버렸던 풀들이 은빛으로 되살아났다.마수는 본능적으로 루미엘이 내뿜는 빛에 거부감을 느끼며 거칠게 날뛰었다.“너는 미움과 절망의 찌꺼기일 뿐이야. 네가 있어야 할 곳은 이곳이 아니야.”루미엘이 두 손을 높이 들자, 밤하늘 은하수가 머리 위로 쏟아지는 듯한 환각이 일어났다.은빛 신성이 폭포처럼 쏟아져 마수를 가두었다.고통스러운 듯 몸부림치는 마수.루미엘의 빛은 그것을 파괴하려 하지 않았다.대신 그 어두운 형체 속에 갇혀 비명을 지르는 슬픈 영혼들을 어루만졌다.손바닥에 새겨진 은빛 문양이 강렬하게 점멸했다.“돌아가세요. 이제 더 이상 누군가의 도구가 되어 괴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눈부신 은빛 섬광이 광야를 메웠다.소리 없이 분해된 마수의 형체.수만 개 나비가 되어 하늘로 흩어졌다.왕국의 마법사들이 수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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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화. 은빛 날개의 선포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세상의 눈물을 닦을 준비가 되었느냐?”모두의 영혼에 울리는 거대한 진동.신의 목소리였다.루미엘의 등 뒤로 날개가 거대하게 펼쳐졌다.깃털로 이루어진 날개가 아닌.셀 수 없이 많은 은빛 입자가 응집된 천계의 빛이었다.루미엘 얼굴 위로 초월적 신성이 가득 내렸다.손바닥에 새겨졌던 은빛 문양은 이제 전신으로 번져나가 찬란한 빛의 갑주가 되었다.산 아래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며 카일과 함께 무릎을 꿇었다.인간계 권력을 넘어선 진정한 통치자의 위엄이었다.하염없이 쏟아지는 눈물.아들이 겪어야 할 고난이 가슴 아팠지만, 평화가 온 세상을 뒤덮을 것임을 확신했다.빛기둥이 서서히 잦아들고 루미엘이 다시 두 발로 땅을 딛었다.더 이상 추격을 피해 도망치던 소년이 아니었다.“이제 왕국으로 가겠습니다. 저를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용서를, 저를 기다리는 자들에게는 소망을 전할 거예요.”같은 시각.왕국의 수도 지하 깊은 곳.루미엘의 각성을 감지한 흑마법사들과 탐욕스러운 왕은 공포에 서려 있었다.“그 아이가 진정한 신성을 깨웠다. 전 군을 소집하라! 성벽을 높이고, 금지된 마법을 모두 해방하라! 그 빛이 이 성문에 닿기 전에 반드시 꺼뜨려야 한다.”카일 대검에 손을 얹은 루미엘.검에 영원히 시들지 않는 은빛 축복을 내렸다.이제 우리의 걸음은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한 위대한 행진으로 탈바꿈되어 있었다.성산을 내려온 루미엘의 발걸음.더 이상 도망자의 그것이 아니었다.몸에서는 숨길 수 없는 눈부신 은빛이 흘러나와, 주변의 어둠을 밀어냈다.예전 같으면 추격자를 피해 숲길과 뒷길을 찾았겠지만.이제 당당히 태양 아래를 걸었다.“루미엘, 이제 우리가 가는 곳마다 소문이 앞서 나갈 거다. 감당할 수 있겠느냐?”루미엘은 대답 대신 길가에 주저앉은 한 노인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손이 닿자, 노인의 굽은 등이 펴지고 눈에 생기가 돌았다.“숨기지 않겠어요. 빛은 감추려 할수록 더 선명해질 뿐이니까요. 저들이 보고 싶어 하는 진짜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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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화. 철의 눈물

툰 요새를 통과한 루미엘 일행 앞을 가로막은 자.왕국의 마지막 자존심이라 불리는 침묵의 마법기사단이었다.인간 감정이 삭제되고 오직 왕의 명령과 마력의 효율만을 따르도록 개조된 인형들이었다.수백 명의 기사단이 뿜어내는 서늘한 기운에 뒤따르던 백성들은 겁에 질려 뒷걸음질 쳤다.루미엘 한 걸음 앞에서 검을 고쳐 잡은 카일.그의 시선은 기사단의 선두에 선 자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루미엘님, 여기서부터는 이전의 병사들과 다를 것입니다. 저들은 마음이 비어 있어 빛이 스며들 틈조차 허용하지 않을 테니까요.”카일 목소리에는 루미엘을 향한 깊은 예우가 서려 있었다.그는 15년 전 갓난아기였던 루미엘을 품에 안았을 때부터.자신의 주군이자 지켜야 할 유일한 가치임을 알고 있었다.아니….천계부터 이어진 루미엘을 지키는 자로 인간계에 파견된 천사장.각성한 그가 신의 아들을 수호하려 앞으로 다가갔다.기사단이 기계적인 움직임으로 돌진해 오자, 카일이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루미엘의 축복을 받은 대검이 휘둘러지자,기사들의 마력 방패가 유리 조각처럼 부서져 내렸다.“루미엘님, 뒤로 물러나 계십시오. 저들의 차가운 강철이 당신의 옷깃 하나라도 스치는 것을 용납할 수 없습니다.”폭풍처럼 공격을 몰아치는 카일.그의 검술은 기사단 갑옷 마디마디를 정확히 타격해 그들 움직임을 봉쇄했다.마력의 흐름을 끊어 놓는 정교함이었다.천계의 검술 앞에 마력은 무력화되고 있었다.카일이 길을 트는 동안.루미엘은 나의 손을 잡고 조용히 걸었다.은빛 눈동자는 감정이 거세된 채 인형처럼 휘둘러지는 기사들을 가엽게 바라보고 있었다.“카일 사부님, 잠시만 멈추세요. 저들도 누군가의 아들이고, 누군가의 친구잖아요.”루미엘의 요청에 카일은 즉시 검을 멈췄다.“이미 영혼이 마력에 침식되어 소통할 수 없을 것입니다.”루미엘이 기사들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갔다.그들이 일제히 검을 치켜들었지만, 루미엘이 가볍게 발을 그루자 지면에서부터 은빛 진동이 파도처럼 퍼져나갔다.기사들 머릿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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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화. 황금 옥좌의 몰락

알현실의 황금 문이 천천히 열렸다.어두컴컴한 실내.루미엘 은빛으로 인해 정오의 태양보다 더욱 눈부시게 변했다.왕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비명을 질렀다.“멈춰라! 그 천한 발로 어디를 밟으려 하느냐?”대검을 바닥에 꽂은 카일.묵직한 진동이 알현실 전체를 울렸다.“무례하다, 찬탈자여. 옥좌에 앉아 빛을 가려온 대가를 치를 시간이다. 널 향한 마지막 기회다. 무릎 꿇고 네 죄를 직시하라.”루미엘의 호령.심판관의 무게를 지니고 있었다.권위에 압도된 왕은 옥좌 뒤로 몸을 숨겼다.왕좌 계단 바로 밑까지 다가간 루미엘.은빛 눈동자.왕을 공포에 몰아넣기에 충분했다.“황금 옷을 입고도 왜 떨고 있느냐. 많은 병사는 어디 가고 너 홀로 이곳에 있느냐.”“닥쳐라! 너는 마녀의 자식일 뿐이다. 네가 가진 그 빛은 속임수다.”루미엘은 슬픈 미소를 지었다.왕이 입고 있던 화려한 비단옷과 보석들이 하나둘씩 빛을 잃고 길가에 뒹구는 돌과 낡은 천으로 변해갔다.그토록 집착하던 권력의 상징들.루미엘의 신성 앞에 보잘것없는 모습으로 돌아갔다.“네가 지키려던 것이 이처럼 차가운 돌무더기였느냐.”루미엘 손바닥에 새겨진 문양이 눈부시게 박동했다.그 빛이 왕의 가슴을 꿰뚫자, 왕은 비로소 자신이 지은 죄악을 보기 시작했다.굶주려 죽어간 아이들.억울하게 처형된 충신들.그리고 자기 탐욕 때문에 불타버린 마을들.왕은 구토하며 바닥에 쓰러졌다.검을 뽑은 카일이 왕의 목을 겨눴다.“사부님, 검을 거두세요. 죽음은 너무 쉬운 도피처입니다.”“하오나 이 자의 죄는 대지를 적시고도 남습니다.”왕의 머리 위에 손을 얹은 루미엘.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갔고, 그의 눈에 눈물이 흘러내렸다.끝도 없이….루미엘은 그를 죽이는 대신.그가 지은 모든 죄를 평생토록 생생하게 기억하고 속죄하는 기억의 낙인을 찍었다.“자금, 이 시각. 왕의 지위를 박탈한다. 성 밖으로 나가 짓밟았던 사람들의 발을 닦아라. 그들의 용서를 받는 날, 영혼에 깃든 어둠도 걷힐 것이다.”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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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화. 왕좌 없는 왕국

“보세요. 당신들이 던진 것은 돌이 아니라, 당신들 형제와 이웃이 살아야 조각들입니다.”루미엘 목소리가 온 광장에 울려 퍼졌다.공중에서 멈췄던 돌덩이들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닿는 곳마다 병사들 마음속 자리 잡았던 살의와 탐욕이 사라졌다.그때.공작이 고용한 암살자들이 튀어나와 루미엘 심장을 향해 날아들었다.무방비 상태인 루미엘.하지만.그들이 루미엘에게 닿기 전.그림자가 솟구쳐 세 명의 최정예 암살자를 무력화했다.“루미엘님께 손을 대는 자, 영혼조차 남지 않으리라.”카일은 대검을 높이 들고 선언했다.“이곳은 루미엘님의 성역이다. 감히 세속의 날로 신성을 더럽히려는 자가 있다면, 내가 대륙의 끝까지 쫓아 멸하겠다.”병사들은 카일 기백 앞에 무기를 버리고 엎드렸다.나는.성벽 아래 부상한 병사들과 굶주린 시민들 사이로 들어갔다.왕궁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누어 주었고, 아들이 정화한 물로 사람들의 상처를 닦아주었다.“루미엘은 백성을 억압하려 온 왕이 아닙니다. 함께 신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온 것입니다.”날 통해 보여준 신의 따뜻한 손길은 루미엘 기적만큼이나 강력했다.공포에 떨던 백성들은 하나둘씩 횃불을 끄고 무릎을 꿇었다.전장(戰場)이었던 광장.순식간에 통곡과 참회의 현장으로 변했다.사람들은 깨달았다.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강력한 통치자가 아닌.고통에서 일으켜 줄 마음 따듯한 왕이었음을.햇빛 찬란한 다음 날.루미엘은 왕관을 거부했다.왕궁의 높은 담장을 허물고 누구나 들어와 쉴 수 있는 치유의 정원을 만들 것을 선포했다.“오늘부터 이곳에는 왕이 없습니다. 오직 서로를 돌보는 이웃들만이 있을 뿐입니다. 왕궁을 신의 정원이라 부를 것입니다.”루미엘의 선언과 함께 왕국의 국호는 사라졌다.혈연과 권력이 아닌….은빛 신성 중심으로 모인 새로운 공동체가 형성됐다.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루미엘은 한 나라의 왕이 아닌 대륙의 등불 같은 존대가 되었음을….“루미엘님, 이제 대륙의 모든 절망도 이곳을 향해 몰려올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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