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일 외침에도 불구하고, 공포에 질린 병사들은 도망치고 있었다.균열이 생긴 전장.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둑과 같았다.왕국군의 패색이 짙어 있을 때.절망이 전장을 집어삼키기 직전.지원군인 우리가 도착했다.피로 얼룩진 갑옷을 입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카일.처절하게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는 그가 보였다.“...카일!”전장의 소음 속으로 그의 이름을 흘려보냈다.카일이 기적처럼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아주 먼 거리였으나 오직 서로만이 선명하게 보였다.그의 흔들리는 눈동자에 내 모습이 담겼다.나는 말없이 지팡이를 들어 올렸다.가슴에 새긴 맹세.반드시 이 전쟁을 끝내겠다는 약속.그리고 반드시 함께 살아남겠다는 서약이었다.카일 입가에 안도와 확신이 담긴 미소가 스쳤다.순간.무너져 가던 왕국군 진영에서 천둥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마리안 님이다.”“왕국의 어머니께서 지원군과 함께 오셨다.”왕의 어머니이자 신의 사제인 나를 본 전사들.눈빛에 일제히 푸른 생기가 돋으며 밀려오던 공포가 씻겨나갔다.작열하는 붉은 신물을 지팡이 끝에 얹어 높이 들어 올렸다.“루미엘 왕국 전사들이여!”우렁찬 외침이 전장에 울려 퍼지자, 모든 시선이 내게 쏠렸다.“승리는 우리 것이다. 지체치 말고 공격하라!”“와아아아!”“마리안을 위하여!”“루미엘 왕국을 위하여!”왕국군 전체가 하나의 거대 검이 된 순간이었다.“반격하라!”지팡이를 바닥에 세차게 내리치자, 굉음과 함께 폭발적인 힘이 터져 나왔다.“전군, 돌격!”정렬을 맞춘 수만의 병력이 일제히 앞으로 나가자, 대지가 요동쳤다.그때.어둠을 등지고 선 두 사람,.모르가나와 비올렛이었다.“직접 기어 나왔구나, 천한 계집.”비올렛이 냉소를 흘렸다.“마리안, 생각보다 빨리 전투태세를 갖추었구나. 제법인데.”엘레나 대사제가 남기고 간 지팡이를 다시 한번 높이 들어 올렸다.“비올렛, 신의 진노를 받아라.”“하하하! 가소로운 것.”대지를 향해 두 손을 뻗은 비올렛.평원 곳곳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