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은빛 눈의 아이를 낳았다: Chapter 41 - Chapter 50

107 Chapters

41화. 가장 찬란한 진군의 소리

성문 근처 사악한 기운이 들끓고 있었다.이때부터 내 기도는 간절함이 되어 지팡이에 고스란히 전달됐다.우리가 돌아올 것을 알고 있던 비올렛.예언된 반신반인 루미엘의 존재를 지우기 위해 왕궁 전체를 거대한 덫으로 만들어 놓았다.“카일, 정면 돌파는 무모해요. 밤이 될 때까지 기다립시다. 안에서 문을 열어줄 겁니다.”지난 생, 함께 눈물을 닦았던 옛 동료들.그리고 비올렛의 횡포에 아들을 잃고 숨죽여 온 궁정 내부의 저항 세력들.그들과의 연락망을 떠올리던 순간.내 품 안의 붉은 돌이 뜨겁게 반응하며 누군가를 보여주었다.저항 세력들과 왕비 사이를 오가며 바삐 움직이는 소금쟁이.모르가나를 빼돌려 사라졌던 그는 우리를 배신한 게 아니었다.엘레나 대사제가 승천하던 날.탈리온의 검은 피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그를 용서했다,인간계를 떠나는 사제의 소원 하나를 들어주는 신의 약속.그 마지막 소원을, 자신을 위해 사용했던 대사제에 대한 고마움으로….그는 우리의 비밀 밀정이 되기로 맹세했던 것이었다.그래도….카일과 나까지 속였던 비열함은 소금쟁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천사장인 카일은 이를 짐작하고 소금쟁이를 추적하지 않았다.감동한 소금쟁이가 자처한 밀정 노릇 덕분에 내부 조력자들과의 연락망은 이미 은밀하게 가동되고 있었다.“카일, 3진 전사들을 소규모로 쪼개서 분산 이동시키세요. 우리 2진 상단은 서쪽 성문을 공략합니다. 그곳엔 비올렛 횡포에 불만을 품은 나의 옛 동료들이 지키고 있을 거예요.”카일은 내 명령에 한 치의 의심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상단의 나머지 인원들에게도 은밀히 일러뒀다.흑마법이 우릴 발견하지 못하도록 보호막을 둘렀으나, 루미엘과 나의 존재로 인해 모두가 위험해질까 염려되었기 때문이었다.“이곳부턴 루미엘과 저는 비밀통로로 이동하겠습니다.”“괜찮으시겠습니까?”“그럼요. 나는….”“네. 알고 있지요. 당신은 신의 사제이고 루미엘님은 신의 아들이시니까요.”“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옅은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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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화. 흑마(黑魔) 탈리온의 분노

축축하고 비린내가 진동하는 지하 수로를 빠져나오자, 익숙하면서도 지독한 왕궁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화려한 향료와 값비싼 술 냄새.바닥에 깔린 썩어가는 권력의 악취였다.“이곳이군요. 어머니가 고통받으셨던 곳이.”루시앙이 주변을 둘러보며 나직히 말했다.아이가 신성을 억누르고 있음에도 딛는 걸음마다 지하 곰팡이가 정화되며 사라졌다.“마리안 사제님, 이쪽입니다.”비밀 문이 열리며 한 여인이 나타났다.낡은 시녀 복을 입었지만, 눈매만큼은 날카로운 나의 옛 동료, 로사였다.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떨리는 손으로 내 얼굴을 어루만졌다.“정말…. 정말 살아있었군요. 탈출하셨단 소식 듣고 매일 밤 기도드렸는데…. 이런 기적이….”“로사,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지금은 시간이 없어요. 비올렛의 움직임은 어때요?”나의 냉정한 물음에 로사는 정신을 차린 듯 우리를 지하 창고 안쪽.비밀 회합 장소로 안내했다.그곳엔 비올렛 폭정에 가문이 멸문당하거나, 부당하게 권력을 빼앗긴 귀족들과 하급 관리들이 모여 있었다.그들 중 가장 적극적인 사람들은 루미엘과 같은 해 태어난 아들을 잃은 자들이었다.“예언의 그분입니까?”모여 있던 이들이 루미엘 은빛 눈동자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그들 시선을 피하지 않고 고결한 위엄으로 마주한 루미엘.뒤늦게 도착한 카일이 루미엘 뒤로 검을 쥐고 서자, 묘한 긴장감이 감돌았다.“그렇습니다. 이분은 앙리 왕의 혈통이자, 반신반인(半神半人)이신 루미엘님입니다.”나는 지팡이를 내리치며 선언했다.“우리는 단순히 복수를 하러 온 것이 아닙니다. 흑마법으로 오염된 이 왕궁을 정화하고, 정당한 주인을 왕좌에 앉히기 위해 돌아왔습니다. 여러분, 나를 돕겠습니까?”사람들은 서로 눈치를 보다가 하나둘씩 무릎을 꿇기 시작했다.피와 권력이 얽힌 복종의 표시였다.***왕궁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비올렛 침소.자기애가 충만한 그녀는 거울 앞에 앉아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거울에 비친 그녀 피부 위로 뱀처럼 꿈틀대는 검은 혈관.흑마법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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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화. 다가오는 어둠

“아…. 아닙니다.”비올렛과 모르가나.숨조차 쉬지 못할 공포가 밀려왔다.그제야 탈리온.손끝에서 일렁이던 검은 불꽃을 거두었다.“그들은 이미 내 곁까지 다가왔다.”“왕궁 근처에 있다는 보고는 받았습니다.”탈리온의 검은 눈동자가 차갑게 빛났다.“한심한 것들. 이미 왕궁 안에 들어왔느니라.”두 사람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당장 마리안과 루미엘을 내 앞으로 끌고 와라.”“네…? 아, 알겠습니다.”신전 안은 긴장감으로 가득했다.비올렛과 모르가나는 서로를 마주한 채 책임을 떠넘겼다.“모르가나. 신의 피를 지닌 그 아이 심장을 당장 가져와.”잠시 침묵하던 모르가나가 어렵게 입을 열었다.“비올렛…. 사실 그날 이후, 흑마법의 힘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싸늘하게 굳어진 비올렛.“뭐라고?”그녀 목소리가 차갑게 떨렸다.“그 얘길 왜 이제 하는 거야?”“미안합니다. 당신이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서 말하지 못했습니다.”“아악!”비올렛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검을 뽑아 들었다.번뜩이는 칼날이 모르가나 목을 겨눴다.“무능한 것들! 내가 대체 어디까지 너희를 참아야 하느냐!”“죄송합니다.”“죄…. 죄송합니다.”그때.탈리온의 묵직한 음성이 모르가나에게 향했다.“모르가나. 가까이 오거라.”머뭇거리던 모르가나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 나왔다.탈리온의 거대한 손이 그의 머리 위에 얹어졌다.콰아아아!흑마력이 폭풍처럼 소용돌이쳤다.“아악!”격렬하게 요동치는 모르가나.핏줄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고 검은 기운이 피부를 뒤덮었다.비올렛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 쳤다.이내 모르가나는 힘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완전히 의식을 잃은 그를 본 비올렛.출구를 향해 질주했다.“비올렛.”“네…? 네!”이름이 불리자, 그녀는 탈리온 앞으로 천천히 기어갔다.공포로 인해 흔들리는 그녀.그때였다.바닥에 쓰러져 있던 모르가나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고개를 든 순간.그의 눈동자가 완전히 붉은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음산한 기운.인간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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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화. 악의 화신

과거 절대복종하던 남자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비올렛, 이제 명령하는 건 나다.”“아…. 알았어…!”비올렛이 다급히 고개를 끄덕였다.그제야 손을 거두는 모르가나.비올렛은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주저앉았다.모르가나는 그녀를 내려다볼 뿐.그 눈빛에는 더 이상 충성도, 복종도 남아 있지 않았다.오직 절대적인 우월감만이 서려 있었다.***지하 밀실.나는 저항 세력들과 함께 지도를 펼쳐 마지막 점검을 하고 있었다.“사흘 뒤 왕 탄신 연회가 열립니다.”지도를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그날 비올렛은 대중 앞에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며 앙리 왕의 죽음을 공식 발표할 계획이에요. 사실상 찬탈을 선언하는 날이죠.”“이미 자신이 왕이라고 선포하지 않았습니까?”“선포는 했지만 인정받지 못했어요. 왕족과 귀족 대부분이 아직 그녀를 왕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까요.”“맞습니다.”귀족 대표 중 한 사람이 이를 악물었다.“그 이후 비올렛의 광기가 더욱 심해졌습니다.”긴장감이 감도는 회의장 분위기.나는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그날 흑마법 제단의 실체를 모두에게 공개할 거예요.”시선이 로사에게 향했다.“로사. 연회장의 술과 음식에 성수를 섞을 수 있겠어요?”“가능합니다.”“환각과 흑마법에 가려진 귀족들의 눈을 뜨게 해야 해요.”로사는 한쪽 무릎을 꿇었다.“목숨을 걸고 수행하겠습니다, 마리안 님.”회의가 끝나고 모두 돌아간 후.카일은 지친 내 뺨을 조심스럽게 감쌌다.“무서우십니까?”“아니요. 전혀 무섭지 않아요. 지난 생에는 나 혼자였지만.”그의 손을 꼭 잡았다.“지금은 당신이 있고, 루미엘도 있으니까요.”카일은 아무 말 하지 않았다.대신 나를 품 안으로 깊게 끌어안았다.잠시 후.붉은 돌이 희미하게 빛을 내기 시작했다.“어머니.”루미엘 목소리가 들려왔다.“그림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비올렛 아니…. 저자는 모르가나? 저들 분위기가 이상한데요?”“루미엘 자세히 말해 주겠니?”“모르가나에게서 탈리온의 기운이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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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화. 왕좌의 주인

지하 복도 어둠을 뚫고 다가온 것은 흑마법 괴물들.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었으나 뼈마디가 기괴하게 흐물거리고 있었다.번개처럼 검을 뽑아 휘두른 카일.검기가 어둠을 가를 때마다 괴물들의 비명이 벽면을 타고 흘러내렸다.“어머니, 여기는 우리에게 맡기고 가십시오.”루미엘이 내 앞을 막아서며 손을 뻗었다.아이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신성이 복도 전체를 환하게 비추자, 흑마법사들은 햇빛 아래 눈처럼 녹아내렸다.성스러움에 압도된 카일.잠시 검을 멈추고 경이로운 눈으로 루미엘을 바라보았다.“카일, 나는 지금 왕의 처소로 가야 해요. 더 늦으면 왕의 숨이 끊어질지도 몰라요.”“제가 함께 가겠습니다.”“아니에요.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에요. 당신은 여기 계세요.”“정말 괜찮겠습니까?”“네. 왕과 끝낼 이야기도 있고요.”걱정 어린 눈으로 내 걸음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카일.힘겹게 미소 지으며 그를 안심시켰다.로사가 건네준 열쇠 꾸러미를 챙겨 들고 왕의 처소와 연결된 비밀 계단으로 향했다.끓어오르는 증오로 심장이 터질 듯 뛰었다.처소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앙리 침소.죽음이 임박한 자의 어두운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화려한 침대 위.한때 왕국을 호령하던 앙리가 해골처럼 앙상하게 마른 채 누워 있었다.가슴 위에는 비올렛이 심어둔 검은 보석이 박혀 그의 생명력을 조금씩 빨아들이고 있었다.내가 다가서자, 왕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누구냐. 비올렛이 보낸…. 자객이냐?”나는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달빛이 내 얼굴을 비추자, 왕의 눈동자가 경련하듯 떨렸다.“나를…. 기억하시나요?”왕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신음했다.“마리안…? 내 사랑 마리안이 정말 맞느냐?”잠시 정적이 흘렀다.“혹시 내 아들은 어찌 됐느냐?”“살아 있습니다. 왕좌를 차지하기 위해 함께 왔습니다.”어떤 말도 하지 못하는 앙리.“당신 꼴이 이게 뭡니까? 왕국은 흑마법에 물들었고, 왕비는 당신을 제물로 바치려 하고 있습니다.”지팡이를 휘둘러 왕의 가슴 위 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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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빛과 어둠

마리안이 카일의 품에 안긴 그 시각.앙리 왕의 침소.검은 안개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오한이 감도는 마력.살아 있는 사람조차 얼어붙게 만드는 기운이 느껴졌다.앙리는 침대에 몸을 기댄 채 문 쪽을 바라보고 있었다.모습을 드러낸 한 사내.모르가나였다.“직접 나타났구나.”붉은 눈동자가 음산하게 빛났다.“폐하께서 쓸데없는 결심을 하셨다는 말을 들었습니다.”“쓸데없는 결심?”“왕위를 넘기신다면서요.”침묵이 흘렀다.“그 아이에게….”앙리는 쓴웃음을 지었다.“내 아들이다.”순간.모르가나 얼굴이 일그러졌다.“그 아이는 태어나선 안 됐습니다.”“그건 네놈이 정할 일이 아니다.”“그 아이가 살아 있는 한 탈리온의 뜻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검은 마력이 모르가나 손끝에서 피어올랐다.꿈틀.꿈틀.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는 저주.앙리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자신의 운명을 아는 듯 눈을 감았다.“결국 네가 나까지 죽이는구나.”“걱정하지 마십시오. 고통은 없을 겁니다.”검은 마력이 앙리를 향해 뻗어 나가려던 순간.푸른빛이 강렬하개 쏟아졌다서서히 지워지는 검은 안개.모르가나가 고개를 돌렸다.무너진 벽 너머.누군가 걸어오고 있었다.루미엘이었다.탈리온이 그토록 제거하려는 존재.반신반인.신의 아들의 시선이 모르가나를 향했다.“흉측한 몰골이 되었군요.”모르가나 눈썹이 꿈틀거렸다.“뭐라고?”“탈리온의 힘을 받아들이더니 결국 인간도, 흑마법사도 아닌 괴물이 되어버렸습니다.”순간.모르가나 얼굴이 사납게 일그러졌다.“닥쳐라!”분노와 함께 넘실대는 흑마법.천장과 벽면을 타고 검은 균열이 번져나갔다.탈리온의 저주가 응축된 힘.하지만 루미엘은 움직이지 않았다.푸른 신성이 조용히 퍼져나갔다.그것뿐이었다.흑마력이 푸른빛에 닿는 순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당황하는 모르가나.믿을 수 없었다.탈리온의 힘.누구도 깨뜨릴 수 없는 성역이라 생각한 그의 믿음이 흔들렸다.인간이 감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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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운명의 날

저주에 짓눌려 있던 왕의 침소.그 어둠을 뚫고 앙리가 밖으로 나왔다.루미엘이 뿜어낸 신성이 온몸을 휘감자, 뼛속까지 파고들었던 저주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오랜 시간.흑마법이 옭아매었던 죽음의 사슬.구속이 사라진 지금.앙리에게 한꺼번에 쏟아진 옛 기억들.루미엘의 신성이 그를 흑마법에 지배당했던 나약한 인간에서, 건져 주었다.울컥 치밀어 오르는 분노와 회한이 스쳐 갔다.순간, 순간.온전한 정신이 돌아올 때면 그리워하던 마리안과 자기 아들이 눈앞에 있는 지금.그는 두려운 것이 없었다.유린당했던 국왕의 위엄을 되찾은 그가 루미엘을 향해 나직이 속삭였다.그 눈빛엔 아비의 자애로움이 묻어 있었다.“가자.”짧지만 묵직한 한마디.루미엘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곁을 따랐다.은빛 눈동자가 차갑게 빛나고 있었다.***운명의 날.새벽빛이 지하 회의실 작은 창에 가득했다.저항 세력들이 차례로 자리에 앉았다.저마다 희망 가득한 얼굴로 서로를 격려했다.그때.회의실 문을 열고 누군가 걸어들어왔다.국왕 앙리였다.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선 무리.이들 누구도 15년간 그를 본 적이 없었다.마리안이 사라지며 흑마법에 더욱 강하게 짓눌렸던 앙리.무기력으로 밖을 출입하지 못했다.모르가나가 앙리의 모습으로 왕국 모든 일에 관여했지만.앙리의 소심한 성격과 다른 모르가나.사람들은 둔갑술이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폐하!”몇몇은 눈앞의 앙리를 보며 눈물을 닦는 이도 있었다.모두 국왕에 대한 예를 갖춰 한 쪽 무릎을 꿇었다.“여러분, 앉으세요.”한동안 말없이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춘 앙리.집권 초기 왕권을 함께 세우려 했던 이들을 보자, 더욱 굳건해졌다.“여러분, 그동안 내 무력함을 용서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는 이제 흑마법의 사슬에서 온전히 깨어났습니다. 모두 여기 있는 내 아들 루미엘 덕분입니다.”박수가 터져 나왔다.“국왕 폐하! 만세! 만세!”손으로 그들의 연호를 자제시킨 앙리.“왕국을 바로 세우려 했던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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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화. 왕비의 몰락

바로 그 순간이었다.쾅!연회장의 거대한 문이 부서질 듯 굉음을 내며 활짝 열렸다.술에 취한 귀족과 왕족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뒤를 돌아보았다.단상 위에서 승리를 확신하던 비올렛.들고 있던 칙서가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그곳에 서 있는 사람은….앙리였다.“폐…. 폐하…?”비올렛 입에서 허망한 신음이 흘러나왔다.앙리는 당당한 걸음걸이로 연회장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걸어 들어왔다.모르가나 역시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분명 저주가 온몸을 잠식해 썩어 들어가던 몸이었다.“숨만 붙어 있던 인간이 제 발로 걸어오다니….”앙리 바로 옆.은빛으로 공간을 비추고 있는 루미엘.몸 주위로 푸른 빛의 신성이 피어오르며 연회장 사악한 기운을 정화하고 있었다.단상 위로 성큼성큼 올라간 앙리.비올렛 발치에 떨어진 위조 칙서를 거칠게 집어 들었다.담담히 칙서를 읽어 내려가는 그.“짐이 승하한 후 모든 왕권을 비올렛에게 양위한다…?”앙리의 손에서 찢겨 나간 칙서.허공으로 던져진 조각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짐은 가증스러운 대역죄인에게 이런 칙서를 써준 적도 양위 의사를 밝힌 적도 없다.”벼락같은 호통에 연회장 전체가 술렁거렸다.비올렛은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질 쳤다.“폐하! 오해입니다. 저는 단지 당신의 왕국을 위해….”“닥쳐라, 이 사악한 계집!”분노가 담긴 앙리 목소리가 연회장 넘어 광장까지 쩌렁거렸다.왕의 눈과 귀를 가리고 독으로 병들게 한 죄.탐욕을 위해 예언을 조작하고 수많은 아이를 학살한 죄.신성한 왕궁에 흑마법을 끌어들여 왕국을 오염시킨 죄.앙리가 비올렛의 죄를 하나씩 읊었다.“짐은 네가 저지른 추악한 죄를 똑똑히 알고 있다.”상황이 파국으로 치닫자, 모르가나가 앞으로 나섰다.그때.연회장에 천천히 걸어 들어갔다.내 모습이 드러나자, 연회장과 광장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마, 마리안…?”나를 기억하는 이들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왕의 아이를 낳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시녀 출신인 내가….이제 루미엘의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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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화. 열린 진실의 문

“이것이 폐하의 옥새입니다. 그동안 폐하로 둔갑해 왕국을 폐허와 혼란으로 몰아넣은 자는 모르가나 저 자입니다. ”“짐이 흑마법 독에 중독되어 정신을 잃어가던 중에도, 오직 이 순간만을 기다리며 마리안에게 진실을 맡겼다. 왕국의 유일한 적통 승계자는 오직 루미엘 뿐이다.”“폐, 폐하…! 어찌 저에게 이러십니까! 제가 이 왕국을 위해 얼마나….”“네가 한 짓은 왕국을 위한 것이 아니라, 네 탐욕을 위해 나와 내 아들을 죽이려 한 것이다.”앙리의 포효에 연회장 전체가 조용해졌다.상황이 불리함을 직감한 모르가나.붉은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앙리의 저주를 풀어낸 루미엘의 신성은 흑마법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여기서 정면으로 부딪치는 것은 자멸이다.’혼자 살 길을 모색한 모르가나.비올렛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은 채, 바닥을 향해 흑마력을 폭발시켰다.도주를 택한 것이다.쾅!연회장 바닥이 솟으며 순식간에 사방이 검은 안개로 뒤덮였다.“도망치게 두지 않는다.”루미엘의 단호한 목소리.손끝에서 시작된 푸른 신성이 파도가 되어 뻗어 나갔다.연회장을 집어삼킬 듯 넘실거리던 검은 안개가 푸른 신성에 닿자, 증발해 버렸고 솟아오른 바닥도 제자리를 찾았다.찰나도 버티지 못한 흑마법의 실체였다.도주하려던 모르가나는 신성에 정면으로 노출되자, 비명을 지르며 연회장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흉측하고 노쇠한 모습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마, 마법이…. 내 술력이…!”모르가나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루미엘을 바라보았다.루미엘은 흔들림 없는 은빛 눈동자로 바라보고 있었다.“근위대, 무엇을 하고 있느냐?”앙리 왕의 엄명이 떨어지자, 비올렛과 모르가나를 포위하는 근위대.“이거 놓아라! 감히 내 몸에 손을 대다니! 내가 이 나라의 왕비다.”비올렛이 처절하게 발악했지만.그녀를 바닥에 무릎 꿇렸다.화려했던 왕관이 굴러떨어져 볼품없이 나뒹굴었다.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한 순간이었다.술력인 빠져나간 모르가나도 인간의 포송줄에 묶여 버렸다.힘을 쓰지 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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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화.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래! 모두 죽여버려!”비올렛 외침이 연회장을 흔들었다.마지막까지 무너지기를 거부하는 집념의 잔향처럼.대답 없는 모르가나.시선은 오직 루미엘을 향해 있었다.시간이 둘 사이에 붙들린 것처럼.미동도 없었다.모두 숨죽이며 지켜봤다.얼어붙은 모르가나.수천 년 전 그날이 스쳐 갔다.똑같은 빛에 의해 추방당하던 그때.온몸에서 빠져나가는 힘.끝없이 차오르던 어둠이 밀물처럼 빠져나갔다.그는 보았다.루미엘 안에 잠든 존재를.오래전 가장 두려워하던 빛.신께 충성하던 탈리온이 처음 느꼈던 소외감도 저 빛으로부터였다.신의 오른쪽에 섰던 탈리온.천계 대천사였던 그가 반란을 결심했던 순간에도 은빛을 봤었다.스멀스멀 그때의 감정이 뚫고 나왔다.깊은 어둠 속 어딘가 잠들어 있던 저주가 천천히 눈을 떴다.콰콰쾅!대지를 뒤흔드는 굉음.탈리온 신전에서 시작된 불길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밤하늘을 가르는 세 번째 검은 불기둥.재앙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선전포고처럼.백성들은 공포에 질린 채 사방으로 흩어졌다.“으악. 당장 죽이라니까. 뭘 하는 거야?”의식을 잃고 바닥으로 쓰러진 비올렛.끝없는 집착과 광기에 육체가 무너졌다.모르가나 얼굴 위로 검은 실핏줄이 떠올랐다.뱀이 기어가듯 피부 위를 타고 번져 나간 문양.몸 밖으로 악이 쏟아져 나와 붉은 눈동자를 더욱 짙게 물들였다.“오랜만이구나.”여러 겹으로 메아리치는 음성.모르가나의 것이 아니었다.연회장 안이 술렁였다.탈리온.흑마(黑魔)가 모습을 드러냈다.루미엘이 앞으로 다가섰다.“탈리온, 이제 그만 신께 돌아와라.”불사를 듯 이글거리는 탈리온의 눈빛.루미엘을 향한 증오가 들끓고 있었다.“멈춰라. 악은 이제 용서치 않는다.”루미엘 손끝에서 순백의 신성이 흘러나왔다.검은 기운이 긴 겨울 끝.얼음이 녹아내리듯 형체를 잃어갔다.아무런 저항 없이 탈리온은 루미엘만 바라보았다.아주 오래전 잃어버린 기억을 되살리며 다른 복수를 꿈꾸는 그.“오늘은 네 승리다. 하지만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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