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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hat ng Kabanata ng 로맨스를 새로고침.: Kabanata 71 - Kabanata 80

105 Kabanata

71화. 잔인한 크리스마스 (2)

어린 현준은 엄마와 해오던 시간 때우기용 놀이가 있었다. “만약에 말야-”언제나 그 시작은 현준의 엉뚱한 상상으로부터 시작됐다. “엄마, 엄마! 만약에 말야, 엄마가 학교에서 몰래 방귀를 뀌었는데, 바지에 빵꾸가 났어. 크크크 아니아니, 그때 엄마 뒤에 있던 나무에 방귀 때문에 불이 났어. 크크큭, 어떻게 할 거야?”“음… 난감하네. 그럼 엄마는 재빨리 물을 마신 담에, 푸~~~ 하고 뿜을 거야. 이렇게! 푸~~~~!”“아잇! 나한테 푸~ 하면 어떡해! 깔깔깔”그 놀이는 항상 엄마의 고정 질문으로 끝이 났다.“현준아, 나중에 커서 어떤 여자친구와 사귈 거야? 만약에 말야, 엄마랑 네 여친이 동시에 물에 빠진다면, 누굴 먼저 구할 거야?” 나이에 따라 그의 대답은 조금씩 달랐다. 초등학교 땐, “여친? 우웩~~ 토나와!” 중학교 땐, “귀찮게 그딴 걸 왜 만들어- 말할 것도 없어, 엄마를 구할 거야.” 고등학교 땐,“엄마 같은 여자 만나고 싶어. 여친 생겨도 당연히 엄마부터.” 그때마다 엄마의 대답은 늘 한결같았다.“하하하 정말? 우와- 말만으로도 너무 행복하다. 우리 아들 무지 효자네. 그치만, 무조건 여친부터! 알겠지? 여친이 먼저다!”씨발.불현듯 현준의 머릿속에 엄마와 해오던 ‘만약에 말야-’ 놀이가 스치듯 떠올랐다. 질끈 감은 두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터져 나왔다. 그의 우선순위는 늘 엄마였다. 언제나 호언장담해 왔거늘, 현실은 끔찍했다. 여자친구와 침대에서 뜨겁게 뒹구느라 그 말을 지키지 못했다. 사실은 이수와의 하룻밤이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을 만큼 달았다. 그 단 하루 차이로 삶의 전과 후가 달라 보였다. 이수에게 뭐든 다 갖다 바칠 수 있을 정도였다. 심지어 그것이 제 남은 생일지라도. 아마 시간을 되돌린다 해도 똑같이 이수를 선택했겠지. 또 이수를 뜨겁게 갈망했을 거야. 이런 내가 역겹다, 정말. “난, 너무 좋았어. 이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진심이 깃든 고백은 도리어 무거운 죄책감이 되어 마음을 잔인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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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화. 현준의 부재

어제 이수가 분명 현준과 저녁 데이트가 있다고 들었는데 이수를 보니 연락도 없이 약속이 취소된 모양이었다. 식당에서 봤을 때 얼굴도 좋아 보였는데 왜 말도 없이 데이트가 취소됐을까. 어제 마지막으로 본 이수의 얼굴은 많이 실망한 표정이었다. 이수가 처음으로 사귄 남자친구라 그런지 마음이 깊은 것 같았는데 부디 별일 아니길 바랐다. 사람이 연애하다 보면 이런 꼴 저런 꼴 다 겪게 되는 거 알지.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니까 오히려 덕이 될 때가 있다. 하지만, 그 일이 딸에게는 비켜 갔으면 하는 게 으레 부모의 마음인 거다. 쿨한 재희도 딸, 이수의 상심 앞에선 별 수 없는 엄마였다. 난방을 켜두어도 창틀 사이로 스미는 한기는 이제 익숙하다. 평소보다 일찍 눈이 떠진 재희는 플리스 조끼를 걸치고 주방으로 향했다. 밤새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던 시린 공기가 따뜻한 이불 속에서 나온 재희의 몸을 에워쌌다. 하얀 김이 입에서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딸깍, 지이이잉- 캡슐 머신으로 커피를 한 잔 내렸다. 부드러운 거품이 두껍게 층을 이뤘다. 몸의 온기가 식기 전에 한 모금 마시자 움추려든 몸이 조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식탁 위에 놓인 책을 펼쳤다. 문화 칼럼니스트인 재희가 요새 몰두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관련 소재로 곧 칼럼을 쓸 예정이었던 터라 한동안 식사도 거를 정도로 몰입해있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오롯이 집중할 수 있는 시간임에도 같은 페이지만 맴돌 뿐이었다.결국 책을 덮고 쓰고 있던 안경 역시 벗어 버렸다. 팔꿈치를 식탁에 올린 채, 손가락으로 얇은 눈꺼풀을 지그시 눌렀다. 시간을 보니 아침 6시가 지나 있었다. 이수 자고 있겠지…재희도 잠시 식탁에 엎드려 눈을 감았다. 잠시 깬 상열이 화장실을 다녀오는 길에 재희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어 깨웠다."재희야, 왜 여기서 자고 있어. 들어가서 자. 여기서 자면 감기 걸려. 하아암~"상열은 따뜻한 손으로 재희의 등을 쓰다듬고선 졸린 눈으로 허공에 하품을 늘어지게 했다. 상열이 방으로 들어가자 재희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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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화. 남현준 개새끼

아침 면회 시간이 되자, 소라가 은호와 자신의 부모님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다. 고등학생이었던 은호는 밤새 엄마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과 싸우기엔 아직 어렸다. 현준을 혼자 두고 가는 것도 편치 않았지만 그의 고집을 꺾을 수 없어 소라는 어젯밤 은호만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었다. 큰어머니가 긴 복도를 단숨에 달려와 현준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큰어머니의 굵은 얼굴 주름 위로 굽이굽이 눈물길이 생겨났다.밝고 환했던 조카의 얼굴이 그 사이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해버렸다. 맥없는 눈동자엔 처절한 비통이 서려있었다. 까칠해진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큰어머니가 현준의 손등을 툭툭 따뜻하게 토닥였다."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다... 으으흑.""네 엄마는 강한 분이시니까, 곧 깨어나실 거다." 무거운 걸음으로 다가온 큰아버지가 현준의 등을 쓸어줬다. 큰아버지, 큰어머니 말을 믿고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먼지보다 작은 존재가 이렇게 당신의 작은 자비를 바라고 있다고 신에게 보여줘야 할 것 같았다. 아이에게서 두 부모를 떼어가는 것이 신의 권리가 맞냐고 울부짖고 싶지만, 원망과 분노를 표출하기엔 현준이 너무 간절했다. 밤새도록 있지도 않은 종교의 모든 신에게 절절하게 빌었다. 눈을 감고 있는 순간에도 머릿속은 온통 신의 은총을 바랐다.때로 신의 인간사 개입이 너무 잔인하다고 여기질 땐 숨이 거칠어지고 얼굴 근육이 제멋대로 울긋불긋 일그러졌다. 이내 행여라도 자신의 이런 절규가 신에게 배은망덕해 보일까 봐, 그 길로 엄마의 숨을 앗아간다 할까 봐 손으로 구겨지는 표정을 가리고 흐느껴 울 뿐이었다. "이상희 보호자님, 면회하러 들어가실게요."간호사의 호명에 현준이 간호사 뒤를 따라 들어갔다. "먼저 손 소독하시고 위생 가운과 마스크 착용하신 다음에 이상희 환자 침상으로 이동하실 거예요." 준비를 마친 현준은 간호사의 안내에 따라 엄마의 침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질수록 현준의 몸에 뛰는 모든 맥박이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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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화. 나중에 몇 배로 더 사랑해 줄게

이수로부터 부재중 전화 3통과 메시지 3통이 도착해 있었다.[ 내 여자 홍❤️/ 현준아. 집에서 잘 쉬고 있었어? 나 이제 부모님이랑 헤어지고 집에 잠시 들려고. 옷 갈아입고 나갈게. 6시쯤 볼까? 어디서 볼지 연락 줘. ] - 3:05pm [ 내 여자 홍❤️/ 현준아… 무슨 일 있어? 이거 보면 늦게라도 연락 줘. ] -10:08pm [ 내 여자 홍❤️/ 걱정돼… 별일 없는 거지…? 상황이 어려우면 간단히라도 꼭 연락 줘. 기다릴게. ] -04:47am 화가 났을 법도 한데 이수의 문자는 온통 현준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서둘러 시계를 보니 이제 막 오전 10시 30분을 넘기고 있었다. 남현준, 미친 새끼… ***이수는 재희를 향해 희미하게 웃고는 집을 나섰다. 바깥공기가 어찌나 차가운지 숨이 나오는 모든 구멍에서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바람에 오들오들 떨고 있는 앙상한 나뭇가지가 애처로워 보였다. 마치 자신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러웠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오늘도 어김없이 현준의 플리를 들으며 모스 문으로 향했다.처음 맛본 쾌감의 단 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쾌감을 선물해 준 상대가 현준이라는 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행복했다. 가만히 현준을 떠올리기만 해도 심장이 헐떡이고 몸이 젖어들었다. 그래서일까, 뜨거운 밤 이후로 그와 연락이 닿지 않는 고작 이틀이 유난히 길게 느껴졌다. 지독하게 쓰라렸다. 그래, 지금은 분명 말하기 힘든 일이 생긴 거겠지. 그렇게 생각하자. 아니라면, 이 모든 건 말이 안 돼.걱정이 불안으로, 상처로, 끝내 체념으로 변한 이수는 가까스로 희망 회로를 돌리며 그와 이어 가느다란 홍실을 꽉 붙들어 맸다. 어느새 도착한 모스 문, 역시 그는 그곳에 없었다. 허탈한 마음 끝에 상념들이 자꾸 자신을 구렁텅이로 빠트리는 것 같았다. 이수의 의지와 상관없이 자존감이 한없이 밑바닥에서 나뒹굴었다. 코끝이 붉게 물든 이수는 모스 문 문을 열었다. 밤새 서린 추위가 콧속으로 매섭게 치고 들어왔다. 이수는 바로 조명과 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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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화. 미안해

"네?!! 어떡해…""다행히 은호가 그때 함께 있어서 바로 조치를 할 수 있었던 게 천운이었어. 고비는 일단 넘겼는데,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어."이수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는 것 같았다. 시리도록 아픈 가슴에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차올랐다. 차라리 현준의 마음이 변해 연락이 없었다고 생각하는 게 지금으로선 나을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어떡해... 어떡해..."이수는 혼이 나간 사람처럼 넋을 놓은 채 괴로운 듯 입술을 잘근거렸다."현준이는 지금 많이 힘들어하고 있어. 엄마가 쓰러질 때 너와 함께 있었단 사실이 스스로를 더 괴롭히는 것 같더라. 지금 이 말은 현준이가 너와 보낸 시간을 후회한다는 뜻이 아니야. 홀어머니라 그런지 작은엄마를 애틋해했거든. 지키지 못했다는 게 죄책감으로 짓누르나 봐."뜨거운 눈물이 이수의 뺨을 타고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마음이 이렇게나 아릴 수가 있을까. 소라가 일어나 냅킨 몇 장을 가져다 이수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미 어제부터 울었던 건지 눈가와 코끝이 발갛게 쓸려 있는 이수가 안쓰러웠다. "그러니까 현준이 연락이 잘 안되더라도 이수가 좀 봐줘. 걔 지금 많이 무서울 거야. 이런 부탁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이수만 괜찮다면 현준이에게 힘이 되어 줬음 좋겠어."이수는 세차게 끄덕였다. 냅킨으로 눈물을 닦아내고 숨을 고르며 감정을 진정시켰다.누구보다 힘들 현준 앞에서 소라는 슬픔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애를 쓰는 이수를 보니 소라의 코끝이 붉게 번졌다. 가까스로 참아왔던 눈물이 차올랐다. 작은엄마와 나이 차가 많지 않아 평소 데이트도 즐기며 가깝게 지냈기에 이번 일은 소라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친언니와도 같았다. 깊은 관계였던 터라 평소 머리가 차가웠던 소라도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소라는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말을 이었다. 소라의 말끝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아무튼 그렇게 됐어. 사실 여기 오기 전에 현준이가 네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더라. 소식 들으면 너도 마음 아플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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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화. 비극 (1)

전화를 받는 내내 현준의 표정이 심각했다. 왠지 예감이 좋지 않다. "아... 사장님이랑 같이 왔는데… 자리 피해주셨나 봐. 내가 전화해 볼게."이수가 급하게 소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이수야.""사장님! 어디세요? 지금 보호자 대기실로 빨리, 빨리 와주세요! 병원에서 연락이 왔는데 당장 오셔야 할 것 같아요!"현준은 짙은 불안에 휩싸인 손을 가만히 두지 못했다.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가, 손바닥을 맞대어 비볐다가, 머리를 짚었다가, 바지를 쓸어내리며 안절부절못했다. 복도를 서성이며 소라가 오기만을 초조하게 기다릴 뿐이었다. 이수는 그에게서 극도의 불안감과 긴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저 멀리서 숨을 헐떡이며 뛰어오는 소라가 소리쳤다."현준아! 어떻게 된 거야?""나도 모르겠어... 무슨 협의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의사선생님이 당장 오래… 누나, 나… 무서워…""일단 빨리 가보자."두 사람은 이수를 챙길 겨를도 없이 곧장 중환자실 간호사실로 서둘러 향했다. 멀어지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보며 이수는 울컥하는 감정을 꾹 눌렀다. 여기서 울면 안 될 것 같았다. 정말 일어나면 안 될 일이 현실이 되어버릴 것 같아 차마 울지 못했다. 자신이 낄 자리가 아니라는 생각에 이수는 조용히 병원을 나섰다.제발 좋은 소식이기를, 그래서 다시 현준이 웃을 수 있기를.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마주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랐다.면담실을 나온 현준과 소라는 거친 아스팔트 바닥에 딱딱한 구둣발로 마음이 처참히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피가 사방으로 터지는 듯 이루 말할 수 없이 아프고 참담했다. 상희는 담도암 4기로 주변 장기까지 전이되어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였다. 뇌경색의 원인 또한 담도암의 특성상 생성된 혈전 때문이었다. 항암 치료조차 의미가 없었고, 심정지 같은 위급 상황 발생 시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과연 ‘침묵의 살인자’다운 잔인한 행보였다.소라는 간신히 버티는 현준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래도 13년을 더 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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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화. 비극 (2)

벌써 셋째 날이 되었다. 면도를 하지 않아 수염이 거뭇거뭇 자랐다. 큰어머니도, 소라도 현준에게 집에 돌아가 잠시 눈 붙이고 오라고, 씻고 오라고 누차 말했지만 그는 병원을 지켰다. 보호자 대기실 구석에서 쪽잠을 자고 화장실에서 세수랑 양치를 해결했다. 혼자 있을 때면 밥도 잘 챙겨 먹지 않았다. 하나 남은 부모마저 잃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죄책감으로 뒤덮인 마음을, 그 깊은 슬픔을 어느 누가 온전히 헤아릴 수 있을까. 생기를 잃은 그는 세상을 차단한 완전한 감정적 고립 상태였다. 지잉- 지이잉- 웅그려 앉아 있던 현준은 아침 일찍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이상희 환자 보호자님, 환자분 의식이 돌아오셨어요. 지금 병원에 계신가요?""깨어나셨다구요?! 네, 네! 저 보호자 대기실에 있습니다.""지금 바로 짧게 면회 가능하십니다. 오세요."현준은 허겁지겁 달려갔다. "의식이 돌아오셨다 하더라도 환자분 상태가 불안정하니 너무 감정적으로 자극하시면 안 되고, 최대한 편안하게 정서적 지지를 해주셔야 합니다. 안타깝지만 마지막 인사가 될 수도 있습니다."‘마지막 인사’란 말에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현준은 입구에서부터 굵은 눈물을 줄줄 흘리며 부서지는 심장을 부여잡고 상희에게로 갔다. 천장을 보며 눈만 끔뻑이던 상희가 인기척이 들리자 소리 나는 곳으로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의 첫아이, 아들 현준이었다. 아기 때 뭣 모르고 부리던 떼 말고는 큰 말썽 없이 알아서 잘 커 주었던 아들. 저라고 사춘기가 왜 없었겠어. 하나뿐인 부모마저 떠날까 봐 초조함에 엄마 속을 늘 맞춰주었던 걸 이 엄마가 모를까. 사랑을 받기에도 모자란데 오히려 나에게 사랑을 준, 나에겐 과분한 아들.상희는 현준의 얼굴을 만지려 온 힘을 모아 손을 뻗었다. 기운이 없어 이내 손이 떨어지려고 할 때 현준이 상희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에 갖다 대었다. 현준의 가슴팍이 가쁘게 오르내리고 어깨가 들썩였다. 참으려 애썼지만 터져 나오는 울음을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상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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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화. 비극 (3)

당장 옷을 갈아입고 간다는 이수를 재희가 말렸다. "이수야, 네가 지금 가 봤자 오히려 짐만 될 뿐이야. 너는 빈소를 방문한 조문객이야. 그럼 그쪽에서 너를 챙겨 줘야 하는데 지금 거긴 장례 상담과 절차 밟느라 정신이 없어. 그 와중에 너를 챙겨야 하는 부담도 얹어 주는 거야. 일단 눈 좀 붙이고 내일 아침에 가. 엄마가 데려다줄게."이수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을 했다. 양치를 하다 말고, 세수를 하다 말고 울컥 올라오는 슬픔에 주저앉았다. 세면대를 부여잡고 슬픔을 토해냈다. 도대체 물로 세수를 하는 건지 눈물로 하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한참을 화장실에서 시간을 보낸 뒤 방으로 돌아가 보니 재희가 있었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책을 읽던 재희는 이수가 들어오자 책을 덮고 쓰고 있던 안경도 벗어 협탁에 두었다."오늘은 왠지 이수가 엄마를 필요로 할 것 같아서. 잠들 때까지만 옆에 있어 줄게."재희는 이불을 젖히며 손으로 침대를 툭툭 쳤다. 눈이 퉁퉁 부은 이수는 재희의 허리를 감싸고 누워 훌쩍대기 시작했다. 토닥이는 재희의 손 아래로 이수의 경련이 잦아들었다. 내내 우느라 진을 뺐는지 이수는 예상보다 일찍 잠에 들었다. 웅크리고 잠든 이수가 못내 처연해 보였다. 이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재희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재희는 맥이 풀린 듯 거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왠지 잠에 쉬이 들기 어려울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숨을 푹 내쉬며 소파에 깊이 기댔다. 그 엄마는 어쩌다 갑자기 그렇게 허망하게 갔을꼬. 뭐가 그리 급하다고, 스무 살짜리 혼자 살아가려면 아직 어린 나이인데. 미안해요, 댁 사정도 잘 모르면서 아픈 말 해서. 신이 야속할 뿐입니다. 잘 가시길 바라요.어젯밤 근심 속에 늦게 잠든 탓에 재희는 평소보다 늦게 눈이 떠졌다. 세면을 마치고 이수의 방문을 조용히 열어봤다. 방문이 열리는 소리에 깬 이수가 놀라며 서둘러 채비하기 시작했다."엄마 먼저 나가서 히터 틀고 있을게. 준비하면 나와."차 안을 가득 메운 차가운 공기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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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화. 가자, 바래다 줄게

"가자. 집까지 바래다 줄게." 준호의 등 뒤로 한낮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졌다. 강한 역광에 가려 그의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이틀 전에는 밤새도록 눈이 내리더니, 무심한 하늘은 오늘따라 유난히도 맑았다. 맑아 줄 거라면, 이왕이면 끝까지 맑아 주기를. 어머니 가시는 길 춥지 않게, 따사롭게. 현준이가 그 햇살에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게. 눈이 부셔 눈매를 찌푸리며 준호의 손을 바라보았다. 제 손가락 두 마디는 더 길어 보이는 듯한 커다란 손에는 굳은살이 여기저기 박여 있었다. 거친 삶을 그대로 녹아 낸 손이었다. "별 다른 뜻은 없어. 너에게도 위로가 필요해 보여서. 지금 일어날 때만, 넘어지지 않게 붙잡아." 이수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고는 준호의 손을 잡았다. 며칠째 현준 생각에 밥이 입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아침까지만 해도 약간의 어지러움 외에는 모든 게 괜찮았다. 하지만 조문을 마친 뒤 서서히 무너져 내린 감정의 장벽이 극심한 무력감이 되어 파도처럼 밀려왔다. 손을 잡고 일어났음에도 순간 기립성 빈혈이라도 온 건지 눈앞이 캄캄해져 이내 휘청거렸다. 힘없는 종이 인형처럼 쓰러지는 이수의 팔을 준호가 잡아 올렸다. "조심해!" "아… 고마워. 이번만… 도움 좀 받을게." 마지막에 준호와 어떤 얼굴을 하고 헤어졌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모든 뇌 회로가 가동을 멈춘 듯, 떠올리려 노력조차 하지 않았다. 그날이 어찌 되었던 간에, 이수는 지금 도움이 필요했다. 아침에 현장에 잠깐 들렀다 온 준호는 중섭에게 차를 빌려 왔었다. 문을 열어 이수를 동승석에 태웠다. 이수가 차 안으로 들어갈 때 그녀의 머리가 부딪칠세라 손바닥으로 차창 끝을 감싸 막아 주었다. 준호는 겉보기에 차갑고 날카로웠지만, 그의 경계 안으로 들어갈수록 한겨울의 손난로처럼 다정한 면모가 있었다. 예의가 바르고 약속에는 철저했지만, 그 내면에는 인정이 많았다. “가는 동안 눈 좀 붙여. 도착하면 깨워 줄게. 힘들어 보여.” 이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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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화. 1월 1일

잠시 뒤 이수가 천천히 눈을 떴다. 눈앞에 자신을 향해 얼굴을 돌린 준호가 핸들에 기대어 잠들어 있었다. 시간을 확인해 보니 못해도 삼십 분은 잠들었던 것 같다. 이수는 멍하니 무표정한 얼굴로 준호의 옆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깨워야 하나,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야 하나, 아니면 그냥 쪽지를 남기고 집에 들어갈까. 이수는 지갑 한구석에 반으로 접혀 있던 영수증을 꺼내 뒷면에 쪽지를 남겼다.오늘 정말 고마웠어. 피곤한 것 같아서 깨우지 않을게. 커피 내려줄게, 모스 문으로 한 번 와.010-XXXX-XXXX -이수- 타-악.차 문이 닫히는 묵직한 소리에 잠귀 예민한 준호가 눈을 떴다. 방금 들렸던 문소리, 이수가 내렸나 보다. 문이 닫히면서 일었던 미약한 바람에 이수가 남긴 쪽지가 눈앞에서 펄럭였다. 준호는 쪽지를 낚아채듯 들고 서둘러 차 문을 열어 밖으로 나갔다. "이수야!""아... 미안. 나 때문에 깼구나.""...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하나도.""그래."당연한 걸 괜히 물었다."저기… 쪽지 남기긴 했는데, 언제 시간 될 때 모스 문에 와. 커피 내려 줄게. 맛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면.""알겠어. 연락할게."이수는 힘없이 끄덕인 후 돌아서 만나 슈퍼 골목으로 들어갔다. 이수가 남긴 쪽지를 내려다보며 만지작거리자 준호의 입꼬리가 휘어지고 평소 감춰졌던 보조개가 한쪽에 움푹 패었다. 미친놈, 이 상황에도 웃음이 나오냐?준호는 이내 표정을 숨겼다. 준호는 차에 탄 뒤에도 이수가 적어 준 쪽지를 몇 번이고 다시 읽었다. 이수의 번호를 저장하고 곧장 문자를 보냈다. [ 010-XXXX-XXXX / 나, 구준호. ]준호의 문자는 그의 성격처럼 간결했다. 이수는 문자를 확인하고 휴대폰을 뒤집어 두었다. 번호를 따로 저장하지는 않았다. 한 번의 보답을 치르고 나면 다시 보지 않을 사이였으니까.엄마가 차려 준 저녁을 마다하고 이수는 씻자마자 침대로 파고들었다. 남아 있는 기운이 정말 하나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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