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221 - チャプター 230

358 チャプター

221. 첫 서신

위지헌이 북문을 나선 지 열이레째, 첫 서신이 심가에 닿았다.북경군의 파발이 진흙 묻은 봉투를 청아에게 건넸다. 겉에는 심월령의 이름 석 자만 있었다. 보낸 이의 이름도, 직인도 없었다. 검은 밀랍 위에 흰 바둑돌 하나가 눌린 자국만 남아 있었다.월령은 그 자국을 손끝으로 짚었다.떠나며 그녀가 쥐여 준 흰 돌이었다. 그가 그것을 봉랍 대신 쓰고 있었다.봉투 안의 종이는 짧았다.'삭원 초입에 닿았다. 눈이 이르다. 네 아버지는 무탈하다.''군량은 회암의 일로 얇으나, 겨울은 넘길 만하다.''봄을 세고 있느냐.'세 줄이 전부였다.월령은 그 세 줄을 오래 보았다.그의 글씨는 곧고 컸다. 붓을 급히 놀린 자리마다 획이 굵었다. 전장에서 쓰는 글씨라, 정갈함보다 빠름이 먼저였다. 그런데 마지막 줄만은 앞의 두 줄보다 획이 느렸다.봄을 세고 있느냐.그 한 줄을 쓰는 동안, 그의 손이 잠시 느려졌던 모양이었다.청아가 곁에서 봉투를 들여다보았다."아가씨, 이름도 없이 바둑돌 자국만 있어요. 누가 보냈는지 모르는 사람은 못 열겠는데요.""그러라고 이렇게 보내신 거야."월령이 낮게 말했다.이름을 적으면 남이 읽고, 바둑돌 자국은 그녀만 읽는다. 세 줄짜리 짧은 글에도, 그는 받을 사람만 열 수 있게 봉하는 사람이었다.월령은 봉투를 소매 깊이 넣었다.*월령은 답서를 그날 밤에 적었다.먹을 갈면서, 무엇을 쓸지 오래 골랐다. 그리움을 그대로 적으면 서신이 무거워지고, 무거운 서신은 전장의 사람을 흔든다. 아버지가 늘 그랬다. 전장으로 보내는 글은 가벼워야 한다고. 무게는 돌아온 뒤에 함께 지면 된다고.그래서 월령은 가벼운 것부터 적었다.'아란이 당과를 세 개 감춰 두었습니다. 왕야 몫이라 합니다.''염로 값이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겨울 김치를 담글 수 있게 되었습니다.''봄은 세고 있습니다.'마지막 줄에서, 그녀의 붓도 잠시 느려졌다.'다만 세는 사람이 늦지 않기를, 매일 함께 셉니다.'월령은 그 줄을 지울까 하다가 두었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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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빈자리를 도는 손

섭정왕이 도성을 비우자, 그가 앉던 자리를 도는 손들이 늘었다.순검권은 한 달 뒤 돌아올 예정이었으나, 그 한 달이 길었다. 도성의 치안을 잠시 형부와 병부가 나누어 맡았고, 그 틈에 옛 문서들이 다시 움직였다.가장 먼저 움직인 것은 삼황자부였다.위명서는 조정에서 조용히 목소리를 냈다. 섭정왕이 어보 없이 군을 냈던 흠을, 이번에는 황태자 책봉의 명분으로 꺼냈다."군권이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무는 것은, 나라의 안위에 이롭지 않습니다."그가 어전에서 그렇게 말했다."섭정왕께서 북을 지키시는 동안, 조정은 다음 대의 자리를 미리 살펴 두어야 합니다. 태자를 세워, 군권과 정권을 나누어 두는 것이 옳습니다."말은 옳았다. 옳아서 반박하기 어려웠다.경화제는 그 말을 듣고도 책봉을 명하지 않았다. 다만 병풍 뒤에서, 결재를 미룬 칸 하나를 또 비워 두었다.*심가에서 그 소식을 들은 유씨가, 딸을 불렀다."삼황자가 책봉을 꺼냈다 하는구나.""압니다."월령은 놀라지 않았다."왕야께서 북에 계신 지금이, 저쪽에는 가장 좋은 때입니다. 군권을 쥔 사람이 자리를 비웠으니, 그 자리를 흠으로 만들기 딱 좋지요.""어찌하면 좋겠느냐."월령은 소매 안의 서신을 만졌다. 위지헌의 답서였다."왕야께서는 이미 아셨을 겁니다. 떠나기 전에, 강무진을 도성에 남기셨으니까요."그녀는 서신을 폈다. 두 번째로 온 답서였다. 겨울 안부 아래에, 짧은 한 줄이 더 있었다.'도성에서 무엇이 움직이거든, 막지 말고 세어라.''세어 둔 것은, 봄에 내가 거둔다.'월령은 그 줄을 오래 보았다.막지 말고 세어라. 그가 떠나며 남긴 수였다. 지금 저쪽이 움직이는 것을 심가가 나서서 막으면, 순검권도 없는 섭정왕의 약혼자가 조정 일에 손댄다는 새 흠이 된다. 막지 않고 세어 두었다가, 그가 돌아온 봄에 한꺼번에 펴는 편이 나았다."어머니. 저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습니다."월령이 말했다.유씨가 눈을 가늘게 했다."아무것도?""보고, 적고, 두겠습니다. 저쪽이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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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3. 봄의 부름 앞에

겨울이 깊어지는 사이, 황후전에서 부름이 왔다.봄을 기다리던 부름이, 눈이 채 녹기 전에 앞당겨졌다. 삼황자가 책봉을 꺼낸 지금이, 정비가 될 사람의 부덕을 살피기에 좋은 때라 여긴 손이 있었다.부름의 첩지에는 황후 하문정의 이름이 있었다.그러나 그 첩지를 자녕궁에서 먼저 손봤다는 것을, 월령은 알았다.내명부의 문은 섭정왕의 칼도 열지 못했다. 위지헌은 북에 있었고, 강무진은 그림자였다. 그 문 안으로는, 월령이 혼자 걸어 들어가야 했다.*심가를 나서기 전, 유씨가 딸의 옷깃을 여며 주었다."떨리느냐.""조금."월령의 대답은 계례 아침과 같았다."그날처럼, 오늘도 잘 다녀오겠습니다."유씨는 딸의 올린 머리 위 백옥 비녀를 한 번 바로 세웠다. 그 곁에는 위지헌이 준 살구나무 비녀가 함께 꽂혀 있었다."저쪽은 네가 정비 자리를 탐내는 얼굴로 오기를 바랄 것이다.""압니다.""그러니 그 얼굴을 가지고 가지 마라.""예. 재려는 자리에는, 잴 것을 두고 가겠습니다."*황후전은 자녕궁보다 검소했다.향을 짙게 피우지 않았고, 창을 가리지 않았다. 황후 하문정은 빛을 등지고 앉지 않았다. 겨울 햇빛이 그녀의 눈 밑 그늘과 입가의 주름을 그대로 지나갔다. 그녀는 그것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었다.월령이 예를 갖췄다.황후의 곁에는 화안공주가 있었고, 조금 뒤에는 자녕궁에서 온 설련이 서 있었다. 겁 많은 눈으로, 월령의 손끝을 보고 있었다."심월령이라 하였느냐.""예, 마마.""정비가 될 사람의 부덕을 살피라는 청이 여럿에게서 왔다. 그래서 불렀다."황후의 목소리는 낮았다."묻겠다. 너는 섭정왕의 정비가 되고 싶으냐."방 안의 공기가 조용해졌다.설련의 손끝이 굳었다. 화안공주의 부챗살이 아주 조금 기울었다. 이 물음에 '되고 싶다'고 답하면, 자리를 탐낸 여자가 된다. '되고 싶지 않다'고 답하면, 어전의 봉서를 거스른 여자가 된다. 어느 쪽이든 흠이 되도록 놓인 물음이었다.월령은 고개를 숙였다."소녀는 자리가 되고 싶은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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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설련의 새

황후전에서 돌아온 밤, 설련은 잠들지 못했다.자녕궁 제 방의 향안 위에는, 아직 돌려보내지 못한 낡은 명패가 있었다. 죽은 군졸의 것이었고, 뒤에 작은 새가 새겨져 있었다.가족을 찾아 돌려보내라는 황후의 명이 있었으나, 그 패는 어쩐 일인지 자녕궁 한쪽에 남았다. 누군가 일부러 그 손을 늦춘 것이었다.설련은 그 새를 손끝으로 만졌다.'형이 밤길에 무섭지 말라고요.'임학의 동생이 새겼다는 그 새를, 설련은 낮에 심가의 딸에게서 전해 들었다. 죽은 사람의 이름을 손수 챙기던 그 얼굴이, 오늘 황후전에서 자리가 아니라 사람을 잰다던 그 목소리가, 밤이 되어도 지워지지 않았다.설련은 오래 살면서, 자리를 재는 사람들만 보았다.고모는 자리를 쥐려 했고, 자리를 잃을까 두려워했다. 설련 자신도, 고모의 손 곁이라는 자리를 잃을까 늘 겁냈다. 그 자리 밖으로 나가면 살 수 없다고 배웠다.그런데 오늘 본 사람은, 자리를 재지 않았다.*이튿날 아침, 설련은 고모에게 갔다."고모님.""봄의 부름은 어찌 되었느냐."숙비가 물었다. 설련이 관찰자로 그 자리에 있었으니, 심월령이 어떤 얼굴로 섰는지 듣고자 함이었다.설련은 잠시 말을 골랐다."심 소저는… 떨었습니다."거짓이 아니었다. 손끝이 떨렸다. 설련은 그것을 보았다."자리를 탐내는 얼굴이었느냐."설련의 입술이 열렸다가, 잠시 멎었다.여기서 '그렇다'고 하면, 고모는 그 얼굴을 흠으로 쓸 것이었다. 설련은 겁이 많았고, 겁 많은 사람은 거짓말을 잘 못 했다. 그러나 오늘은, 거짓과 참 사이에서 한 번 망설였다."잘 모르겠습니다."설련이 말했다."떨기는 했으나, 무엇을 탐내는 떨림인지는… 소녀가 읽지 못했습니다."숙비의 눈이 조카를 보았다."네가 사람을 못 읽는다는 말이냐.""소녀는 겁이 많아, 겁먹은 사람만 잘 봅니다. 그 사람은 겁을 먹었으나, 겁먹은 채로도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런 떨림은… 처음 보았습니다."숙비는 오래 조카를 보았다.그 말에는 거짓이 없었다. 다만 그 말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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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5. 삭원의 겨울

북의 겨울은 도성보다 먼저, 그리고 더 깊게 왔다.삭원 관문 너머, 흑령의 부족들이 눈을 등지고 내려왔다. 눈보라를 방패로 삼는 싸움이었다. 봉수대가 셋 더 탔고, 국경의 작은 진 하나가 하룻밤 새 비었다.위지헌은 진북대장군 심도윤의 막사에서, 낡은 지도를 폈다.심도윤은 손가락 둘을 잃은 손으로 지도의 한 골짜기를 짚었다."흑령은 눈을 압니다. 우리가 눈을 두려워하는 만큼, 저들은 눈을 씁니다. 정면으로는 못 막습니다.""군량은.""두 달치입니다. 회암의 일로 축이 났습니다."위지헌은 지도를 오래 보았다.정면으로 막을 수 없고, 군량은 두 달. 봄까지는 넉 달이 남았다. 이 셈으로는, 봄 안에 돌아간다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그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었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했다.그러나 이번에는, 지키기 어려운 약속을 하나 두고 왔다.*막사 밖에서 파발이 왔다.도성에서 온 서신이었다. 겉봉에 백옥 비녀의 실 한 오라기가 눌려 있었다.위지헌은 그 봉투를 아무도 없는 곳에서 열었다.'아란이 당과를 세 개 감춰 두었습니다. 왕야 몫이라 합니다.'가벼운 줄들이었다. 그는 그 가벼움이 무엇인지 알았다. 전장으로 보내는 글은 가벼워야 한다. 진북대장군의 딸이라, 그 규칙을 알고 있었다.그러나 마지막 줄에서, 그의 눈이 멎었다.'세는 사람이 늦지 않기를, 매일 함께 셉니다.'위지헌은 그 줄을 오래 보았다.늦지 않기를. 그녀가 늦음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그는 아직 다 몰랐다. 다만 그 한 줄에 실린 것이, 앞의 가벼운 줄들과 무게가 다르다는 것만은 느꼈다.그는 지도를 다시 보았다.봄까지 넉 달, 군량 두 달. 정면으로는 못 막는 싸움.셈이 맞지 않았다.셈이 맞지 않을 때, 그는 늘 판을 바꿨다. 시간을 못 늘리면, 싸움의 방식을 바꿨다."장군."위지헌이 심도윤을 보았다."흑령이 눈을 쓴다면, 우리는 눈이 녹는 자리를 씁니다. 정면으로 넉 달을 끌지 않고, 눈이 처음 녹는 골짜기 하나에서 한 번에 끝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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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6. 남문의 삯바느질집

설련의 가마가 남문 안쪽 좁은 골목에 멎었다.삯바느질집 문 앞에는, 겨울에도 흰 등이 걸려 있었다. 죽은 지 오래인 사람의 집이라, 등불의 흰빛이 낡아 누레져 있었다.설련은 가마에서 내렸다.연분홍 저고리 위에 두꺼운 겉옷을 둘렀으나, 궁에서 온 사람의 차림은 감춰지지 않았다. 골목 사람들이 그 옷을 보고 걸음을 늦췄다.설련은 그 시선이 무서웠다. 겁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그 겁을 안고도, 문을 두드렸다.늙은 여인이 문을 열었다.궁에서 온 사람을 보자, 여인의 손이 어린 사내아이를 제 뒤로 끌었다. 지난가을, 심가의 딸이 왔을 때와 같은 몸짓이었다."자녕궁에서 왔습니다."설련이 말했다.여인의 얼굴이 굳었다.자녕궁. 군량을 옮기라 명한 패가 나온 곳. 죽은 임학의 이름이 그 그늘 어딘가에 얽혀 있던 곳. 여인의 손이 아이를 더 깊이 뒤로 밀었다.설련은 그 두려움을 보았다.제가 늘 느끼던 두려움과 같은 것이었다. 큰 손 앞에서 작은 사람이 느끼는 겁. 그 겁을 아는 사람이라, 설련은 목소리를 낮췄다."해치러 온 것이 아닙니다."그녀가 품에서 낡은 명패를 꺼냈다.뒤에 작은 새가 새겨진 나무패였다."이것을…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임학이라는 분의 것입니다. 가족을 찾아 돌려보내라는 명이 있었는데, 늦었습니다. 소녀가 직접 가져왔습니다."어린 사내아이가 그 새를 보았다.제가 형의 밤길 밝히라고 새긴 새였다. 아이가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형 거예요."아이가 말했다."제가 새겼어요."설련은 무릎을 낮췄다. 정비가 될 사람도, 자녕궁의 조카도 아닌, 그저 명패를 전하러 온 사람의 자세였다."잘 새겼구나."설련의 목소리가 떨렸다."새가… 참 곱다."아이가 그 명패를 두 손으로 받았다. 받으면서, 낯선 사람의 떨리는 목소리를 한 번 올려다보았다."궁에서 온 사람은, 다 무서운 줄 알았어요."아이가 작게 말했다.설련의 손이 멎었다."…무섭지 않니.""누나는 안 무서워요. 형 새를 곱다고 해 줬으니까."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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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7. 두꺼워진 장부

겨울이 가장 깊었을 때, 월령의 작은 장부는 손가락 두 마디만큼 두꺼워졌다.그 안에는 판단이 없었다. 이름과 시각과 걸음만 있었다.삼황자부의 사람이 병부의 누구를 언제 만났는지. 자녕궁의 물표가 어느 상단을 지났는지. 심가 담장 밖을 지나던 낯선 미투리가 며칠에 몇 번 왔는지.월령은 그것을 매일 한 줄씩 옮겨 적었다.강무진이 그림자에서 보아 온 것도, 청아가 저잣거리에서 들어 온 것도, 은매가 약값을 받으러 다니며 스친 것도, 모두 그 장부로 모였다.혼자 다 보는 눈이 아니었다. 여러 손이 각자 본 것을 한 장부에 모으니, 흩어져 있으면 보이지 않던 선이 조금씩 드러났다.*어느 밤, 월령은 장부를 덮으려다 한 이름 앞에서 멈췄다.연.형부의 장부에서 나왔다는 그 글자가, 저잣거리의 소문 한 줄에서도 나왔다. 도성의 어느 향 파는 가게 주인이, 자녕궁에 향을 대는 사람이 '연씨'라 불린다고 흘렸다.월령은 그 이름을 따로 적지 않았다.적으면, 쫓고 싶어진다. 쫓으면, 순검권도 없는 섭정왕의 약혼자가 후궁전 뒤를 뒤진다는 흠이 된다. 위지헌이 남긴 말이 떠올랐다.'막지 말고 세어라.'월령은 그 이름을 세기만 했다. 장부의 여백에, 작은 점 하나만 찍어 두었다.연이라는 이름이 도성 어디에 몇 번 스쳤는지, 점의 수만 늘려 갔다.봄이 오면, 그 점들을 위지헌에게 건넬 것이었다. 이름을 쫓는 것은 그의 손이 할 일이었다. 그녀의 손은, 세어 두기만 하면 됐다.*유씨가 그 장부를 한 번 보았다."이걸 다 어찌하려고.""봄에 왕야께 드리려 합니다."월령이 말했다."겨울 내내 저쪽이 자리를 흠으로 만드는 동안, 저는 그 손들이 지난 자리를 적어 두었습니다. 왕야께서 돌아오시면, 이 장부 한 권이 그분의 겨울을 대신 지킨 셈이 됩니다."유씨의 눈매가 부드러워졌다."네 아비도 그랬다. 전장에 나간 사이, 집을 지키는 것은 칼이 아니라 장부라고. 누가 무엇을 가져갔는지 적어 둔 사람이, 돌아온 사람보다 강하다고.""아버지의 말씀이 옳았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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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8. 살구골

봄이 오기 전, 삭원의 눈이 처음 얇아지는 곳은 살구골이었다.위지헌은 그 골짜기를 넉 달 내내 기다렸다. 정면으로 흑령을 막지 않고, 눈이 처음 녹는 이 자리로 저들을 몰아 왔다. 얼어붙은 국경을 따라 조금씩 물러서는 척하며, 저들의 발을 이 골짜기로 향하게 했다.흑령은 눈을 방패로 삼는 부족이었다.그러나 살구골의 눈은, 도성보다도 북쪽인데도 가장 먼저 녹았다. 골짜기 바닥으로 물이 흘렀고, 방패로 삼던 눈이 발밑에서 사라졌다.눈을 잃은 흑령은, 처음으로 맨땅에서 싸워야 했다.*싸움은 이른 새벽에 시작되었다.심도윤의 북문군이 골짜기 입구를 막았고, 위지헌의 북경군이 능선 위에서 내려왔다. 눈이 녹아 질척한 바닥에서, 흑령의 말이 발을 헛디뎠다.위지헌은 앞에서 칼을 들었다.전장에서 그는 늘 앞에 섰다. 뒤에서 명만 내리는 사람이 아니었다. 검은 갑주 위로 흑령의 화살이 스쳤고, 그의 칼이 그 화살을 쏜 손을 베었다.싸움은 반나절 만에 갈렸다.눈이 없는 흑령은 얇았다. 넉 달을 끈 싸움이, 눈이 처음 녹은 하루에 끝났다.*싸움이 끝난 골짜기에, 살구나무 한 그루가 있었다.아직 꽃은 피지 않았다. 다만 가지 끝에, 붉은 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봄이 곧 온다는 표였다.위지헌은 피 묻은 칼을 닦으며, 그 봉오리를 보았다.도성에 두고 온 비녀와 같은 나무였다. 봄에 먼저 피는 나무. 그가 그 봄 안에 있겠다 했다.싸움을 이 골짜기에서 끝낸 것은, 셈이 맞아서였다. 눈이 처음 녹는 곳이라 흑령의 방패가 사라지는 자리. 전장의 셈으로는 그랬다.그러나 그 셈의 끝에, 이 나무가 있었다.위지헌은 그 봉오리 하나를 꺾지 않았다. 대신 가지 끝의 봉오리가 가장 굵은 자리를 손끝으로 한 번 짚었다.봄이 이 가지 끝에서 시작되고 있었다.*심도윤이 곁으로 왔다.손가락 둘을 잃은 손으로, 그는 사위가 될 사람의 어깨를 한 번 두드렸다."넉 달 걸릴 싸움을 하루에 끝냈습니다. 이제 도성으로 돌아가실 수 있겠군요.""장군은.""저는 북에 남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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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 봄에 간다

승전보가 도성에 닿은 날, 조정의 공기가 하루 만에 바뀌었다.섭정왕이 넉 달 걸릴 흑령의 겨울을 하루 싸움으로 끝냈다. 군량 두 달로, 봄이 오기 전에. 그 소식 앞에서, 겨우내 책봉을 꺼내던 목소리들이 낮아졌다.군권이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무는 것이 위험하다던 말은, 그 한 사람이 없으면 흑령을 못 막는다는 사실 앞에서 힘을 잃었다.위명서는 그 승전보를 조용히 들었다.그가 겨우내 쌓은 명분이, 하루 만에 눈처럼 녹았다.*경화제는 승전보를 읽고, 오래 비워 두었던 결재 칸에 처음으로 붓을 댔다.책봉을 명하는 붓이 아니었다. 책봉을 미룬다는 붓도 아니었다. 다만 섭정왕의 순검권을, 예정보다 앞당겨 돌려준다는 짧은 결재였다.병풍 뒤에서, 그는 낮게 한마디를 남겼다."봄에 오는 사람에게는, 봄에 설 자리가 있어야지."곁의 고 내관은 그 말을 적지 않았다. 적을 말이 아니라, 흘릴 말이었다.*심가에는 짧은 서신이 먼저 닿았다.월령은 겉봉의 밀랍을 보았다.흰 바둑돌 자국 곁에, 살구 봉오리 하나가 함께 눌려 있었다. 봄에 먼저 피는 나무. 그가 북의 어느 골짜기에서 그 봉오리를 눌러 보냈다.월령은 봉투를 열었다.'봄에 간다.'세 글자였다.그 세 글자를 보는 동안, 월령의 손이 떨렸다. 겨우내 두꺼워진 장부를 쥐던 손이, 세 글자 앞에서 처음으로 떨렸다.늦지 않았다.전생에는, 그가 이미 다 잃은 뒤에야 왔다. 이번에는, 봄이 오기 전에 온다 했다. 봄에 먼저 피는 나무의 봉오리를 눌러, 봄에 간다고 했다.월령은 그 서신을 가슴에 댔다.청아가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아가씨! 왕야께서 이기셨대요! 봄이 오기 전에 돌아오신대요!""알아."월령의 목소리가 젖었다."방금, 그분이 직접 알려 주셨어."*그날 저녁, 월령은 살구나무 아래에 섰다.심가 마당의 살구나무에도, 가지 끝에 붉은 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북의 골짜기와 도성의 마당에서, 같은 나무가 같은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월령은 소매 안의 검은 바둑돌을 꺼냈다.떠나며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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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두 돌이 만나는 날

살구꽃이 반쯤 피었을 때, 북문으로 회군의 먼지가 들어왔다.도성 사람들이 길가에 나와 개선하는 군을 보았다. 검은 갑주의 섭정왕이 앞에 섰고, 그 뒤로 북경군이 대오를 이루었다. 넉 달을 끌 흑령의 겨울을 하루에 끝낸 군이었다.위지헌은 조정에 승전을 아뢰고, 병부에 군을 넘겼다.절차를 마치는 데 반나절이 걸렸다. 그 반나절 동안, 그의 눈은 한 번도 궁성 쪽으로 가지 않았다. 절차 앞에서는 절차만 보는 사람이었다.절차가 다 끝난 저녁에야, 그는 말머리를 심가 쪽으로 돌렸다.*심가의 살구나무 아래에, 월령이 서 있었다.파발이 회군을 알린 뒤로, 그녀는 매일 그 나무 아래에 나왔다. 꽃이 하루에 한 뼘씩 피었고, 오늘 아침 반쯤 열렸다.대문 밖에서 말발굽 소리가 멎었다.월령은 돌아보지 않았다. 돌아보면 다리가 먼저 무너질 것 같았다. 그래서 손안의 검은 바둑돌만 세게 쥐었다.발소리가 마당으로 들어왔다.전장의 흙이 밴 걸음이었다. 느리지 않았다. 그러나 살구나무 앞에서, 그 걸음이 한 뼘을 남기고 멎었다.늘 그가 남기던 거리였다."봄을 세었느냐."낮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월령의 어깨가 떨렸다."세었습니다.""늦지 않았느냐.""…늦지 않으셨습니다."그 말끝에서, 월령은 끝내 돌아섰다.검은 갑주는 벗었으나, 그 안의 옷에는 아직 북의 흙과 마른 피가 배어 있었다. 눈 밑에는 넉 달의 그늘이 짙었고, 손등에는 겨울에 덴 화상 자국 위로 새 흉이 하나 더 얹혀 있었다.그런데 그 얼굴이, 월령을 보는 순간 넉 달의 그늘을 한 번에 벗었다."흰 돌을 가져왔다."위지헌이 손을 폈다.그의 손바닥에, 떠날 때 그녀가 쥐여 준 흰 바둑돌이 있었다. 넉 달을 품속에 지녀, 돌의 흰빛이 손때로 부드러워져 있었다.월령이 손을 폈다.그녀의 손바닥에는, 겨우내 지킨 검은 돌이 있었다.두 사람이 손을 마주 댔다.흰 돌과 검은 돌이, 넉 달 만에 한 손바닥 위에서 만났다. 두 돌이 작게 부딪치는 소리가, 살구나무 아래에서 유난히 맑게 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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