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351 - Chapter 360

436 Chapters

351. 병풍 뒤

"…무섭다면서, 눈은 왜 이렇게 말짱하냐."위지헌이 낮게 물었다."무서운 거랑, 못 하는 거랑은 다르니까요."월령이 옅게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은, 오래가지 않았다.*잡은 것은 명부지기와 노예원뿐이었다.정작 그 명부를 부린 손은, 병풍 뒤에 앉아 병을 칭했다. 늙은 상궁이 제멋대로 한 일이라고, 숙비는 반 발 물러나 있었다. 그 반 발을, 황자의 생모라는 자리가 지켜 주었다.명부지기를 아무리 신문해도, 나오는 답은 '위에서 시킨 일'까지였다. 그 위가 숙비라는 것을 다들 알면서도, 아무도 손대지 못했다. 후궁의, 그것도 황자를 낳은 어미의 처소였으니까.두 생에 걸쳐 이 집안을 지운 손이, 병 하나로 온 조정의 손이 닿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프다는 말 한마디가, 세상 어떤 담보다 두꺼웠다."…숙비를, 어떻게 끌어내죠."월령이 낮게 말했다."후궁의 처소를 또 뒤질 명분은 없어요. 숙비가 시켰다는 증거가 없으면, 도리어 우리가 후궁을 모함한 죄를 써요."위지헌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칼로 벨 수 있는 적이 아니었다. 병풍 뒤에 앉아, 남의 손만 내미는 적이었다.위지헌이 여태 벤 적은, 다 칼이나 군령으로 앞에 선 적이었다. 그러나 이 적은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얼굴 없는 적을 어떻게 베느냐가, 두 사람 앞에 놓인 물음이었다.월령은 그 물음에, 다른 길로 답하려 했다."…전생에도 그랬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저는 끝까지, 저를 죽인 손이 누구 손인지 몰랐어요. 위명서가 명을 내렸지만, 그 뒤에 누가 있었는지는. 이번 생엔, 그 뒤를 봐요."*그때, 설련이 들었다."마마님. 그 명부는, 이름만 적힌 게 아니에요."월령이 고개를 들었다."…무슨 말이냐.""이름마다, 값이 매겨져요."설련이 낮게 말했다."사람 하나를 지우는 데 드는 값. 향이며, 사람이며, 입막음이며. 그 값이 어디서 나와 어디로 흘렀는지가, 다 독고가 상단 셈방 장부에 잡혀요."*월령의 손끝이, 멎었다.명부는 이름을 적고, 상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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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2. 셈방을 쥔 손

"…그게, 누구냐."월령이 낮게 물었다.설련은, 오래 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겨우 낮게 말했다."…독고진겸. 제, 아비예요."방 안이 조용해졌다.*설련의 손끝이, 잘게 떨렸다."숙비마마의 이복 오라비예요. 독고가 상단의 셈방을, 그 사람이 쥐고 있어요. 명부에 오른 이름마다 값을 매기고, 그 값을 상단 돈으로 치르는 손. 그게, 제 아비 손이에요."월령은, 그 떠는 손을 오래 보았다.제 아비를 가리키는 손이었다. 자녕궁의 그늘에서 걸어 나온 아이가, 이번에는 그 그늘의 셈방을 쥔 제 아비를 가리키고 있었다.설련은 그 그늘에서 나올 때, 뒤를 한 번도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그 뒤를 돌아, 제 아비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것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 월령은 묻지 않았다.어린 설련을 그 셈방에 들여 셈을 가르치려 한 것도, 그 아비였다. 설련은 그 방이 무서워, 숙비의 찻잔 받침 뒤로 숨곤 했다. 이제 그 아비를, 제 손으로 가리키고 있었다."…괜찮겠느냐.""안 괜찮아요."설련이 낮게 답했다."그런데 그 셈방을 안 잡으면, 봄 아기씨 이름도 언젠가 그 장부에 값이 매겨져요. 저는, 그건 더 못 봐요."*월령은, 그 말에 오래 침묵했다.봄의 이름에 값이 매겨지는 것. 숙비가 두 생에 걸쳐 노린 것이, 바로 그 한 줄이었다. 명부의 이름과 상단의 값이 맞는 장부 한 장이면, 병풍 뒤의 숙비를 끌어낼 수 있었다.장부 한 장이면 됐다. 이름과 값이 한 줄로 맞는 그 한 장이, 병풍 뒤의 숙비를 병풍 밖으로 끌어냈다. 벨 수 없던 적을 셈으로 베는 길이, 이제 막 열린 참이었다."…그 셈방이, 어디 있지.""도성 밖, 청릉 상단의 뒷방이에요. 다만—"*그 걸음을 놓기도 전에, 월령은 궁을 한 번 더 다녀와야 했다.황후에게 그간의 실을 아뢰고 나오는 회랑이었다. 봄볕이 기둥 사이로 길게 누웠고, 그 빛 한복판을 한 사람이 막아섰다.월령은, 그 그림자를 먼저 보았다. 길게 누운 봄볕 위로, 한 사람의 그림자가 가로놓였다. 예를 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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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3. 삼전하

"…삼전하께서, 자녕궁을 걱정하시나 봅니다."월령이 나긋하게 받았다. 긍정도 부정도 아닌 말이었다.위명서의 웃음이, 잠깐 굳었다.월령은 물러서지 않았다. 삼전하의 앞이라고 고개를 숙이지도, 그렇다고 맞서 세우지도 않았다. 나긋한 결로, 다만 한 뼘도 내주지 않았다.위명서는 그 한 뼘을 오래 밀어 보았다. 예법으로도, 미소로도. 그러나 월령은 나긋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밀리지 않는 부드러움이, 도리어 위명서를 서늘하게 했다.*"걱정이라."위명서가 낮게 말했다."내 어머니의 처소를, 섭정왕가가 밤낮으로 살핀다 들었소. 병중이신 분을. …그게 걱정할 일이 아니면, 무엇이오."월령은, 그 눈을 마주 보았다.다정한 얼굴이었다. 예법에 흠 하나 없는 얼굴. 그런데 그 얼굴 아래로, 다른 것이 지나갔다. 월령을 보는 눈이, 어머니를 말하는 눈보다 오래 머물렀다.전생의 월령은, 이 눈빛의 뜻을 너무 늦게 알았다. 폐후의 명을 내리던 그 손이, 실은 저를 미워한 손이 아니라 갖지 못해 뒤틀린 손이었다는 것을. 이번 생에는, 그 뒤틀림을 먼저 읽었다.뒤틀린 마음은, 미움보다 다루기 어려웠다. 미워하는 손은 멀리 밀어내면 됐지만, 갖고 싶어 하는 손은 밀어낼수록 더 다가왔다. 월령은 그 결을, 두 생 만에 알아보았다.*전생에, 이 얼굴이 월령을 형장으로 보냈다.숙비에게 휘둘려, 제 손으로 폐후의 명을 내린 얼굴. 그러나 이번 생의 위명서는, 아직 그 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저 자신도, 제 어머니가 안쪽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 다 알지는 못하는 얼굴이었다.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것인지, 정말 모르는 것인지. 그 경계에서 위명서는 오래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경계가, 이 사내의 유일한 틈이었다.어머니가 무슨 일을 하는지 아들이 온전히 알게 되는 날. 그날이 오면 위명서는 어머니의 편에 설 수도, 등질 수도 있었다. 그 갈림이, 이 사내의 틈이자 판이었다.월령은, 그 판을 눈에 담아 두었다."…삼전하는."월령이 낮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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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 먼저 닿는 손

위명서가 그 말을 흘린 순간, 월령은 알았다.위명서가 안다는 것은, 곧 숙비도 안다는 뜻이었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이르지 않을 리 없었다.월령은 걸음을 서둘렀다. 위명서의 입에서 숙비의 귀까지는, 반나절이면 닿았다. 그 반나절 안에 셈방에 먼저 닿아야, 장부가 재가 되기 전에 한 장이라도 건졌다.월령은 이번에도, 숙비의 손이 어느 쪽으로 움직일지를 먼저 읽었다. 숙비라면 사람보다 장부부터 지운다. 이름과 값을 이은 그 한 줄이, 숙비에게는 제 목보다 위험했으니까.*궁을 나서기 무섭게, 월령은 위지헌에게 그 걸음을 옮겼다."숙비가 알기 전에, 독고진겸을 먼저 잡아야 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그 셈방 장부가, 명부와 숙비를 잇는 유일한 물증이에요. 숙비가 먼저 손을 쓰면, 그 장부부터 지울 거예요. 제 오라비까지 잘라서라도."위지헌의 눈이, 서늘하게 굳었다."…강무진."한마디에, 거구의 사내가 그림자에서 나왔다."청릉 상단 뒷방이다. 기윤을 데리고, 지금."*그러나 숙비의 손이, 반나절 빨랐다.강무진과 기윤이 청릉 상단에 닿았을 때, 뒷방에서는 이미 다른 걸음이 오가고 있었다. 급히 짐을 싣는 손,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손. 무언가를 서둘러 없애는 손이었다.숙비의 손이, 제 아들의 입보다도 빨랐다. 아니, 아들이 어미에게 이르기도 전에—어미가 먼저 손을 쓴 것이었다. 숙비는 제 아들의 걸음까지 셈에 넣어, 반나절을 앞서 있었다.위명서가 월령 앞에 나선 그 순간, 숙비는 이미 청릉 상단으로 사람을 보낸 뒤였다. 아들의 입을 통해 새는 소식까지, 그 어미는 셈에 넣어 두고 있었다.기윤이, 지붕을 타 넘어 그 뒷방 창을 먼저 짚었다.*월령과 위지헌이 그 뒷방에 닿은 것은, 해가 기운 뒤였다.문을 열자, 종이 타는 냄새가 확 끼쳤다.장부가, 아궁이 속에서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두꺼운 셈방 장부 여러 권이, 불길에 귀퉁이부터 말려 들어갔다. 값과 이름을 이은 그 줄들이, 한 장씩 재로 바스러졌다.몇 해 치 셈이, 반나절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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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5. 반쯤 탄 장부

"…설련이가, 보냈나."독고진겸이 다시 물었다.월령은, 그 물음에 곧장 답하지 않았다. 대신, 아궁이 속에서 말려 드는 장부를 보았다."…그걸 태우면, 숙비가 당신을 살려 줄 것 같아요?"독고진겸의 손이, 잠깐 멎었다.월령은, 그 멎은 손을 놓치지 않았다. 태우라는 명을 받은 사람이 태우는 손을 멈칫하는 데에는, 까닭이 있었다. 이 사내도, 제가 무엇을 태우는지 알고 있었다.사람의 목숨에 값을 매겨 온 손이었다. 그 값이 어디로 흘러 누구의 목을 조였는지, 이 사내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 손이 지금, 그 셈을 스스로 태우고 있었다.무엇이 그 손을 태우게 했는지, 월령은 알 것도 같았다.*"…숙비마마의 명이오."독고진겸이 낮게 말했다."장부를 지우고, 나도 도성을 뜨라는. 병중이신 분이, 그 와중에도 그것부터 챙기셨지.""…장부만 지우라 했어요? 당신은요."월령이 낮게 물었다.독고진겸은, 답하지 못했다. 그 침묵이 답이었다. 장부가 재가 되고 나면, 그 장부를 쥐던 손도 함께 재가 될 것이었다. 숙비는 제 오라비의 목숨까지, 셈에 넣어 두었다.피를 나눈 오라비도, 숙비에게는 지울 수 있는 한 줄이었다. 하물며 남의 집 아이 하나쯤은. 독고진겸은 그 셈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다. 제가 그 셈을 매겨 온 손이었으니까.*"당신 딸은, 그 그늘에서 제 발로 걸어 나왔어요."월령이 낮게 말했다."설련이가 당신을 가리켰어요. 아비를 파는 게 아니라, 아비도 그 명부에서 빼내려고. 당신이 태우는 그 장부가, 언젠가 당신 딸 이름도 적을 거라서요."독고진겸의 눈이, 불빛 속에서 흔들렸다.오래 셈만 매기던 손이었다. 사람의 목숨에 값을 붙이면서도 제 손끝은 떨지 않던 손. 그 손이, 제 딸의 이름 앞에서 처음으로 흔들렸다.설련. 괄시받던 첩실 소생, 셈방 뒤로 숨던 어린 딸. 그 이름 하나가, 값을 매기던 손을 처음으로 멈춰 세웠다.*그가, 손에 든 마지막 장부를 오래 내려다보았다.그러고는 그 한 권을, 아궁이에 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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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6. 그을린 한 장

"…이 값은, 아직 안 치러졌군."위지헌이 월령의 어깨 너머로 그 줄을 읽었다.값 자리에 먹이 마르지 않은 채, 숫자 대신 획 하나가 그어져 있었다. 매기다 만 셈이었다."치러지기 전에 태우라 하셨소."독고진겸이 낮게 말했다."그 줄이 마르기 전에, 내가 먼저 도성을 뜨라고.""…누가 치르지.""돈이야 상단이 치르지. 그런데 그 돈이 나가라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은 따로 있소. 나도 그 얼굴은 병풍 너머로만 봤고."*기윤이 창턱에서 소리 없이 내려섰다."밖에 발소리 둘. 상단 사람은 아닙니다."위지헌이 고개를 까딱였다. 그것으로 기윤은 다시 그림자가 됐다.월령은 장부를 소매 안에 넣지 않았다. 접지도 않았다. 펴진 채로 품 안에 붙여 들고, 아궁이의 남은 불을 한 번 더 보았다."…이 사람은요.""데려간다."위지헌이 독고진겸을 보지 않고 말했다."살려 두면 값이 되고, 죽으면 숙비의 값이 된다. 강무진.""예.""뒷덜미 말고 허리띠."강무진이 낮게 헛기침을 하고 독고진겸의 허리띠를 잡았다.독고진겸은 끌려가며 한 번 돌아보았다. 월령이 아니라, 아궁이를 보았다. 다 타 버린 장부들의 재를."…그 재 속에, 내 이름도 있소.""압니다."월령이 답했다."그래서 데려가는 거예요. 재가 되기 전에."*돌아오는 길, 마차 안은 어두웠다.월령은 펴진 장부를 무릎 위에 놓고, 그 위에 두 손을 얹었다. 위지헌이 그 손을 보았다."…손이 차다.""불 앞에 오래 있었는데도요."그가 제 손으로 그녀의 손을 덮었다. 장부째로. 그 손이 무거워서, 월령은 잠깐 눈을 감았다."…이 한 장으로, 될까요.""안 된다."위지헌이 바로 답했다. 월령이 눈을 떴다."이 한 장으로는 안 돼. 그런데 이 한 장이 없으면, 아무것도 안 된다."*왕부에 닿은 것은 새벽이었다.방어멈이 대문 안에서 팔짱을 낀 채 서 있었다. 밤새 잠을 안 잔 얼굴이었다."애 젖 먹일 시각에 어미가 들어오는 집이 어디 있답니까.""어멈.""죽 데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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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7. 말을 바꾼 입

"…뭐라고 바꿨지.""제가 혼자 한 일이라고요. 위에서 시킨 게 아니라, 늙은 것이 제멋대로 사람을 지웠다고. 어젯밤까지 '위에서'라던 입이."강무진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밤사이 옥에 누가 들었느냐.""옥리 말로는, 아무도.""옥리 말 말고.""…그건 제가 물어 온 게 아니라서."강무진이 솔직하게 답했다. 위지헌은 그 솔직함에 고개만 까딱이고 일어섰다.*옥은 눅눅했다.명부지기는 어제와 같은 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손이 달랐다. 어제는 무릎 위에 포개 두었던 손이, 오늘은 옷자락을 쥐고 있었다."…혼자 했다고."월령이 물었다."예. 제가 혼자 했습니다. 마마님이 누굴 잡으려 하시는지 알지만, 그 위에는 아무도 없어요.""어제는 있다 하셨는데요.""늙은 것이 헛소리를 했지요."명부지기는 월령을 보지 않고 답했다. 옷자락을 쥔 손가락이 하얬다.월령은 그 손가락을 보았다. 그러고는 물음을 바꿨다."…손자가, 몇 살이에요."명부지기의 손이 멎었다.*"…그런 건 왜 물으십니까.""어제는 없던 겁이, 오늘 있으니까요."월령이 낮게 말했다."누가 밤에 와서, 손자 이름을 대고 갔군요."명부지기는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으로 답했다.월령은 더 묻지 않았다. 대신 옥리를 불렀다."어젯밤 이 옥에 든 사람, 옥리 말고 또 누가 있지요.""…없습니다.""그럼 옥리 당신이 들었네요."옥리의 얼굴이 굳었다."저, 저는 옥을 지킨 것뿐입니다.""지켰으면, 문을 연 손도 봤겠네요."옥리가 침을 삼켰다. 명부지기가 그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두 사람의 눈이 잠깐 마주쳤다가, 옥리가 먼저 눈을 내렸다."…상궁 하나가, 왔습니다. 잠깐 얼굴만 보고 간다고.""어느 처소.""…그건 말 안 했습니다.""말 안 해도, 향은 남지요."월령이 옥 안의 공기를 한 번 맡았다. 눅눅한 냄새 아래, 옅게 다른 것이 있었다. 자녕궁의 그 향이었다.*옥을 나오며, 위지헌이 낮게 말했다."뒤집힌 것을, 도로 뒤집을 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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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8. 자녕궁의 손

강 건너 마을은 개 짖는 소리로 밤을 알렸다.기윤은 지붕 위에 엎드려 있었다. 아래 초가에서 여인이 물을 길어 들이고, 그 뒤를 대여섯 살 사내아이가 따랐다. 아이가 넘어졌다. 여인이 돌아서서 아이를 일으키다가, 사립문 밖의 그림자를 보고 굳었다.그림자는 기윤이 아니었다.먹빛 소매의 여인이었다. 향을 짓는 손이 사립문을 밀었다. 여인이 아이를 제 뒤로 숨겼다. 문이 열렸다. 닫혔다. 기윤은 지붕에서 그 문을 밤새 보았다.새벽에 문이 다시 열렸을 때, 아이는 없었다.*"오상궁이에요. 자녕궁 향방을 맡은."설련이 그 이름을 댄 것은, 기윤이 강을 건너기 전이었다."향을 짓는 손이, 옥에는 왜 드나들지.""향을 짓는 손이라서요. 숙비마마는 손에 아무것도 안 쥐어요. 쥐는 건 늘 오상궁이었어요. 명부도, 향도, 저도."설련이 마지막 말을 조금 늦게 붙였다. 위지헌은 그 늦음을 흘려듣지 않았으나, 묻지도 않았다."기윤."그림자가 답했다."오상궁의 하루를 가져와라. 어디서 자고, 누구 집 문을 두드리는지."*기윤이 돌아온 것은 이틀 뒤 저녁이었다.옷자락에 흙이 묻어 있었다. 강 건너 흙이었다."도성 밖 강촌입니다. 명부지기의 며느리와 손자가 거기 삽니다. 오상궁이 그 집 문을 두드렸고, 새벽에 손자가 사라졌습니다.""…사라져.""자녕궁 소속 절에 맡겼습니다. 공부시켜 준다는 명목으로."월령의 소매 안 손끝이 접혔다."명부지기가 옷자락을 쥔 까닭이, 그거였군요.""손자를 찾아옵니까."강무진이 물었다."찾아오면 자녕궁이 안다. 알면 다른 이름을 잡는다."위지헌이 말했다."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지켜라. 절 담 밖에 사람을 둬. 아이가 절 안에서 한 발도 안 나오게.""…어느 정도로 안 나오게 합니까.""제가 절 밖으로 나오고 싶어질 때까지."강무진이 그 말을 곱씹더니, 알겠다는 얼굴로 나갔다.*그날 밤, 월령은 늦도록 장부를 펴 놓고 있었다.문상궁의 봉함 기록이 그 곁에 있었다. 오래전 봉해진 이름. 그 봉함을 청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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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9. 어전의 한 장

촛불이 제풀에 꺼진 뒤에도, 두 사람 다 잠들지 않았다.월령은 등을 보인 채였다. 그 등 뒤에서 그의 숨소리가 고르지 않았다. 고르지 않은 것을 감추려는 숨이었다."…옥리를 잡은 건 너다."한참 만에, 그가 말했다."절의 시주 명단도. 나는 문만 열어 뒀다. 그 문으로 뭘 들고 들어갈지는, 네가 정했고.""문을 열어 뒀다는 걸, 저한테는 안 알려 주셨어요.""알렸으면 네가 사흘을 그 문만 봤을 거다."월령은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았다. 맞아서 더 서운했다.그가 다시 오래 말이 없었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다음엔, 문을 열기 전에 말하마.""열기 전에요.""열기 전에."월령은 돌아눕지 않았다. 대신 뒤로 손을 뻗어, 그의 손을 찾았다. 그가 그 손을 잡았다.*새벽에 청아가 세숫물을 들고 왔다.문틈으로 대야만 들이밀다가, 방 안 탁자 위에 흩어진 종이를 보았다. 그러고는 얼른 눈을 내렸다. 귀 끝이 붉었다."…마마님. 장부가, 바닥에.""주워 다오. 접지 말고.""예."청아가 종이를 한 장씩 주웠다. 그러다 한 장이 침상 발치까지 밀려가 있는 것을 보고, 그 자리에서 한참 망설였다. 그 사이 위지헌이 먼저 그것을 집어 청아에게 건넸다. 청아는 받지 못하고 굳어 있다가, 방어멈이 부엌에서 부르는 소리에 살았다는 얼굴로 뛰어나갔다."…저 아이는, 아직도 나를 무서워하는군.""부군을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부군 앞의 저를 못 보는 거예요."*진시, 편전.경화제는 옥필을 손가락 사이에서 굴리고 있었다. 위지헌이 장부 한 장과 절의 시주 명단을 탁자에 놓자, 옥필이 멎었다."…이 한 장으로, 짐더러 뭘 하라는 거냐.""보시라는 겁니다.""봤다."경화제가 장부의 마지막 줄을 오래 보았다. 옥필이 다시 굴렀다. 이번엔 느렸다."그 아이 이름이, 이 값 자리에 있구나.""예.""…네 딸이, 짐의 조카다.""예."경화제가 고개를 들었다. 웃지 않는 얼굴이었다. 그 얼굴을, 위지헌은 형에게서 몇 번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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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0. 가지를 친다

"…제 곁에요.""네 곁이 제일 춥지 않으냐. 어미 처소보다."경화제가 웃었다. 위지헌은 웃지 않았다."그 아이가 제 곁에 서면, 월령을 봅니다.""그래서 네 곁이다."경화제가 옥필로 탁자를 톡, 쳤다."보라지. 보고도 못 갖는 걸 배우는 게, 황제가 되는 첫 공부다."*왕부로 돌아온 위지헌은, 그 말을 월령에게 옮기지 않았다. 문을 열기 전에 말하마, 하고 약조한 것이 어젯밤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에 말했다."…형님이, 명서를 내 곁에 두라 하신다."월령의 손이 봄의 배냇저고리 위에서 멎었다."…언제부터요.""가지를 다 친 뒤에.""그럼 가지부터 쳐요."월령이 저고리를 개키며 말했다. 손이 조금 빨랐다.*첫 가지는 옥리였다.강무진이 옥리를 잡아 왔을 때, 윤백은 이미 옥리의 집에서 나온 자녕궁 물표를 목갑에 담아 두고 있었다."…언제 다녀왔느냐.""기윤이 말했습니다."윤백이 답했다. 강무진이 그를 흘겨보았다."나는 사람을 잡고, 너는 물건만 잡고.""물건이 말을 더 잘합니다."윤백의 말에 강무진이 헛기침을 했다. 그러고는 옥리의 허리띠를 놓아 주었다.*둘째 가지는 절이었다.시주 명단의 자녕궁 물표가, 절의 주지를 어전으로 끌어냈다. 주지는 오상궁의 이름을 댔다. 오상궁은 그날로 자녕궁 밖으로 불려 나와, 종친부 앞마당에 세워졌다.오상궁은 끝까지 숙비의 이름을 대지 않았다. 다만 향을 짓던 손으로 제 옷자락을 쥔 채, 설련을 보았다.설련은 그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고 싶은 얼굴로, 피하지 않았다."…아가씨가, 많이 컸구나."오상궁이 낮게 말했다.설련은 답하지 않았다. 돌아서서, 월령의 반 걸음 뒤에 섰다.*셋째 가지는 명부지기였다."황후마마 처소로 옮깁니다."월령이 황후에게 아뢰었다."옥에는 자녕궁 손이 닿아요. 곤원전에는 못 닿아요."황후 하문정은 오래 답하지 않았다. 그러다 낮게 말했다."…그 늙은 것이, 내 아이의 이름도 적었느냐."월령은 답하지 못했다. 황후는 그 못 함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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