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411 - Chapter 420

436 Chapters

411. 담 안의 손

묵아가 등롱을 들고 협도로 왔다.해가 담 너머로 넘어가는 교대 시각이었다. 낮을 지킨 초비가 내려와 물 표주박을 건네자 묵아가 받았다. 손끝에는 늘 그렇듯 붉은 실이 감겨 있었다."오늘도 그대로야. 셋이 물 긷고, 들어가고. 그게 다야.""휘장은 그대로고?""안 걷었어. 봉쇄한 날부터 한 번도.""알았어. 밤엔 내가 볼게."묵아는 말이 짧았고 초비는 더 짧았다. 둘이 나란히 서 있으면 담이 하나 더 선 것 같았다.담 서쪽 협도 쪽에서 기와가 낮게 울렸다. 사람이 밟는 소리였다."서쪽이야.""올라갈게."초비가 도로 지붕으로 올라갔고, 묵아는 등롱을 내려놓고 손끝의 실을 풀었다.*담 안에서 궁인 옷을 입은 사람이 넘어왔다.치맛자락을 허리에 묶고 기와에 매달렸다가 손을 놓아 협도 바닥에 떨어졌다. 무릎을 짚고 일어서기 전에 초비가 지붕에서 소리 없이 그 위에 내려섰다. 어깨를 누르고 두 손을 등 뒤로 돌렸다.묵아의 실이 그 손목으로 갔다. 던지고, 감고, 당겼다. 붉은 실이 두 손목을 세 번 돌았다. 손이 등 뒤에서 묶였다.궁인은 버둥거리지 않았다."왕부에 가는 길입니다. 왕비마마께 드릴 것이 있습니다."궁인이 협도 바닥에 얼굴을 댄 채 말했다. 잡힌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설련 아가씨가 보내셨습니다. 소매 안에 있습니다."초비가 소매를 뒤지자 접힌 종이가 나왔다. 제가 볼 것이 아니라서 펴지 않고 품에 넣었다.*독고진겸이 협도 어귀에 서 있었다.기와 소리를 듣고 제 자리에서 온 걸음이었다. 늙은 사내가 엎드린 궁인의 얼굴을 보았다. 셋 중 하나의 같은 얼굴이었다."설련이는 어찌 있소.""안에 계십니다."궁인은 얼굴을 들지 않고 그렇게만 답했다. 독고진겸은 더 묻지 않았다. 아무것도 보지 않은 얼굴 앞에서는 물을 말이 없었다."왕부로 데려가오. 나는 여기 있겠소."초비가 궁인을 일으켜 세웠다. 묵아가 실 끝을 제 손목에 감아 쥐었다. 끌지 않고 앞세워 걸었다. 독고진겸은 따라오지 않고 담 밖 제 자리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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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 급한 첫 획

"설련 언니 글씨를 흉내 낸 거예요."서윤이 새벽에 기윤이 데려온 걸음 그대로 마루에 앉아 말했다. 밤에 바느질을 하다 온 손끝에 실 자국이 있었다. 종이를 등잔 쪽으로 기울였다가, 다시 제 쪽으로 기울였다."모양은 맞아요. 마 자 꺾는 데도, 요 자 끝을 올리는 데도요. 언니 글씨를 오래 본 사람이에요. 그런데요, 언니.""그런데?""숨을 안 쉬었어요. 언니는 첫 획을 놓고 한 번 쉬잖아요. 그래서 첫 자가 굵고요. 이건 모양만 베끼고 숨은 못 베꼈어요. 남의 글씨를 베끼는 사람은 보통 첫 획에서 쉬어요. 모양을 보느라고요. 그런데 이 사람은 안 봤어요. 외워서 썼어요."서윤이 종이를 접지 않고 내려놓았다."언니 글씨를 안 보고도 쓸 만큼 오래 본 사람이에요."월령은 그 말을 받았다. 설련이 찻상 뒤에서 자란 그 방에서, 설련의 글씨를 열 해 넘게 본 사람은 하나뿐이었다. 숙비였다.*"저도 제 이름으로 남이 글을 쓴 적이 있어요."서윤이 어른스러운 말투로 덧붙였는데, 그 밑에서 목소리가 조금 낮아졌다."그때 그 글씨도 이랬어요. 제 것 같았어요. 저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저를 오래 본 사람이 썼으니까요. 언니, 이걸 받은 사람이 설련 언니 글씨를 믿고 가면, 그때 저처럼 돼요.""안다.""그런데 가실 거죠."월령이 답하지 않았다. 서윤이 그 얼굴을 보고 고개를 숙였다. 손끝의 실 자국을 제 치마에 문질렀다.*독고진겸이 밤새 담 밖에 섰다가 온 걸음으로 마루 아래 서 있었다.종이를 달라고 하지 않고 서윤의 말만 들었다. 듣고 나서 한참 뒤에 물었다."그 아이 첫 획이 느리오?"서윤이 그를 보았다."예. 붓을 놓고 한 번 쉬어요.""나는 그 아이 글씨를 모르오."늙은 사내가 담을 짚던 손을 소매에 넣고 있었다."셈방 글씨만 알지. 그 아이는 셈방에 앉지 않았으니. 여섯 살에 열쇠를 삼키려 했소, 셈방에 안 들어가려고.""다음에 보시면 아실 거예요. 첫 자가 다른 자보다 굵어요."독고진겸이 셈을 받아 적는 사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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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3. 병풍 앞

문지방을 넘자 향이 탄 냄새가 먼저 왔다.불이 난 지 열흘이 지났는데도 회랑에 남아 있는 냄새였다. 물지게를 오른쪽에 지던 궁인이 앞서 걸었고, 다른 하나가 회랑 끝에 서 있었다. 초비가 센 셋 가운데 하나는 지금 왕부 마당에 묶여 있으니, 담 안에 남은 손은 이 둘이었다.문이 등 뒤에서 닫혔다. 월령은 돌아보지 않았다."설련이는 안에 있느냐.""마마 곁에 계시옵니다. 이쪽으로 드시옵소서."궁인은 그 말만 하고 앞서 걸었다. 안에서 열면 열리는 문이라는 것을 믿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향방 앞을 지났다. 지붕 한 귀퉁이가 내려앉은 채였고, 문갑이 있던 자리에 재가 쓸리지 않고 남아 있었다.안쪽 방 문이 열려 있었다.*병풍이 있었다.그런데 그 앞에 사람이 앉아 있었다. 뒤가 아니라 앞이었다. 병풍을 등지고 앉은 무향의 소매와 정갈하게 여민 깃, 숙비였다.월령은 그 자리에 멎었다. 이 방에 들 때마다 병풍이 있었고 목소리는 그 뒤에서 왔다. 오늘은 목소리가 앞에서 왔다."왔군."숙비의 목이 쉬어 있었다. 연기를 마셨다는 말 하나는 서찰에서 참이었다."설련이 글씨로 불렀는데, 설련이 글씨가 아닌 줄 알고 왔겠지.""예, 마마.""그러고도 왔어.""예.""요 밑에는 아무것도 없네.""알아요. 그것도 알고 왔어요."월령은 숙비가 앉으라 하기 전에 앉았다. 이 방에서 처음 하는 일이었고, 숙비는 그것을 보고도 아무 말이 없었다.설련이 숙비 곁에 서 있었다.소매가 그을린 궁인 옷을 입고 있었다. 뺨의 검댕은 씻었고 머리는 도로 반듯했다. 월령을 보지 않고 고모의 어깨 너머 그림 없는 병풍을, 아무것도 보지 않는 눈으로 보고 있었다.*담 밖에서 초비가 해를 보았다.오시가 반쯤 갔다. 초비는 지붕 위에서 문을 보고, 해를 보고, 다시 문을 보았다. 기윤이 반대편 지붕에서 손가락 하나를 들어 반 시진이 남았다고 알렸다.병사장은 문 앞에서 제 발을 보고 있었다. 미시가 오면 누가 오는지 그 사람은 몰랐다. 독고진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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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4. 삭원

옛 삭원성 성터의 돌담은 반만 남아 있었다.남은 반 안에 심각의 북문군 이백이 갇혀 있었고, 무너진 반 쪽 비탈에 흑령이 엎드려 있었다. 밤인 데다 불을 피우지 않는 놈들이라 수를 셀 수 없었다.정무가 앞에 섰다."왕야, 비탈 아래로 돌아서 오릅니다. 놈들은 담만 보고 있습니다.""그렇게 해라. 소리 없이.""예. 왕야는 제 뒤에 서십시오."위지헌이 정무의 반 걸음 뒤에 섰다. 도성을 떠난 뒤로 처음이었다. 늘 제가 하던 말을 정무가 했으니, 강무진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북경군이 비탈 아래서 소리 없이 올라갔다. 눈이 발소리를 먹었다. 흑령이 알아챈 것은 등 뒤에서 칼이 왔을 때였다.*길지 않았다.정무의 칼이 먼저 갔고 위지헌의 칼이 그 옆으로 갔다. 검은 것들이 눈 위에서 일어나다가 도로 누웠다. 나머지는 산으로 뛰었다."왕야, 산으로 간 놈들은요.""두어라. 밤에 산을 쫓지 않는다."돌담 위에서 북문군이 소리를 질렀다. 반나절 숨을 죽이고 있던 사람들의 소리였다. 위지헌이 담을 넘었다.*심각은 담 밑 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다.앞으로 뻗은 왼쪽 다리 허벅지에 화살대가 꺾인 채 박혀 있었고, 그 아래 눈이 검었다."전하, 늦으셨습니다."심각이 급한 사람답게 급하게 말했다."늦지 않았소. 부장이 살아 있으니 늦은 것이 아니오."위지헌이 그 앞에 무릎을 꿇자 대창포 자락이 검은 눈에 닿았다. 화살은 뼈를 비켜 갔고 살은 비켜 가지 못했다."다리요. 다리만입니다. 다리는 둘이니까 하나쯤은 괜찮습니다.""입을 다무시오.""예, 전하."강무진이 윤백이 넉넉히 넣어 준 붕대를 꺼내고 화살대를 잡았다."부장, 이를 무십시오. 하나, 둘에 뽑습니다.""셋에 뽑는 게 아니오?""둘에 뽑습니다. 셋을 기다리면 힘이 들어가서요."화살이 뽑혔다. 심각은 소리 대신 급한 말을 냈다."누이한테는 말하지 마십시오. 아니, 하십시오. 어차피 어머니가 아실 테니까요. 어머니가 아시면 누이도 알고, 그러면 전하가 말 안 하신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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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종이

"안 마시나."숙비가 제 잔은 들었다. 쉰 목으로 한 모금 마시고, 뚜껑을 도로 덮는 손이 느렸다."목이 안 말라요, 마마.""꼭지가 오른쪽인데.""예.""오른쪽이면 마셔도 되는 잔이지. 설련이가 자네한테 그리 배웠고, 그대로 놓았네.""압니다. 그래도 오늘은 목이 안 말라요."월령은 잔에 손을 대지 않았다. 소매 안의 얇은 종이가 손목 안쪽에 닿아 있었다. 그것이 거기 있다는 것을 얼굴에 올리지 않는 것이 오늘 이 방에서 하는 일의 전부였다.설련은 병풍을 보는 눈으로 고모 곁에 서 있었다."자네 남편이 북에서 이기면 내 아들이 산다."숙비가 잔을 든 채 이어 갔다."자네 남편이 지면 둘 다 죽고. 그러니 나는 섭정왕이 이기길 빌어야 하는 사람일세. 우스운 셈이지.""셈이 아니에요, 마마. 그냥 그런 거예요. 두 사람이 같은 눈 위에 서 있으니까요."숙비가 웃다가 기침을 삼켰고, 삼킨 것이 목에서 소리를 냈다.*담 밖에서 병사장이 제 발을 보고 있었다.해가 미시 자리에 왔다. 기윤이 반대편 지붕에서 마지막 손가락을 접었다. 초비가 지붕 위에서 문을 보았다.길 끝에서 사람이 가마가 아니라 걸어서 왔다.늙은 상궁이 앞에 서고, 그 뒤에 예복을 갖춘 여인 하나가 신이 먼지로 하얗게 된 채 왔다.병사장이 그 얼굴을 알았다. 무릎이 먼저 꺾였다."황후마마."황후가 문 앞에 섰다. 병사장을 보지 않고, 안에서 열면 열리는 붉은 문을 보았다."섭정왕비를 내놓아라. 곤원전이 왔다."두드리지 않고 그 한마디만 문 안으로 보냈다.*방 안으로 궁인이 들어와 무릎을 꿇었다."마마, 곤원전 마마께서 문 앞에 와 계시옵니다."숙비가 소리 없이 잔을 놓았다."가마를 타고 왔더냐.""아니옵니다. 걸어오셨사옵니다.""황후가 내 문 앞까지 걸어왔어."숙비가 무엇인가를 다시 매기는 얼굴로 월령을 보았다. 그러고는 고개를 조금 기울였다."가게, 섭정왕비. 곤원전이 자네를 데리러 온 것이니. 안 마신 잔은 그대로 두고.""예, 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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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눈 속의 사당

"살구 마을이요."위명서가 그 말을 받았으나, 받아서 어디에 둘지 몰랐다. 국자를 든 손이 부풀어 있어서 그것을 내려놓지도 못했다."탄 마을이라고만 하셨습니다.""탄 마을이 살구 마을이다. 네 숙모가 여섯 살에 살던 데다. 나무가 스물은 있었다.""지금은요.""그루터기다. 네가 밤새 옆에 두고 눈을 퍼 나른 게 그거다."위지헌은 그 말만 하고 사당 쪽으로 걸었다. 위명서는 따라가지 않고 검은 얼굴로 자루 옆에 서 있었다. 숙모가 여섯 살에 살던 마을에서 제가 군량 절반을 태웠다는 것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몰랐다.*심각이 낮에 창 두 자루에 망토를 건 들것에 실려 내려왔다.북문군 넷이 들었다. 붕대로 굵어진 왼쪽 다리 위에 눈이 앉았는데, 손이 닿지 않아서 심각은 그것을 털지 못했다.탄 담 안에 들어서자 심각이 들것 위에서 고개를 들었다."전하, 여기가 어디입니까.""살구 마을이오."심각이 그 말을 듣고 한참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급한 사람이 급하지 않았다. 그러다 팔을 들어 곳간 뒤 낮은 돌담 쪽을 가리켰다."사당입니다. 저기요. 어머니가 저기서 빌었습니다. 아버지 살아 돌아오시라고요. 저는 여덟이었고 누이는 여섯이었습니다. 누이가 저 담 위에서 떨어져서 이마가 찢어졌습니다. 흉이 남았을 텐데, 보셨습니까.""못 봤소.""머리카락 밑입니다. 왼쪽이요."위지헌이 그 말을 받고, 받은 것을 얼굴에 올리지 않았다. 다만 옥대에 얹힌 손이 매듭 위에서 잠깐 멎었다."부장은 성터에 계시라고 했소.""다리가 다쳤지 귀가 다친 게 아닙니다. 본진이 탔다는데 성터에 누워 있으면 그게 부장입니까, 전하."강무진이 들것 옆에서 헛기침을 했고, 심각이 그 소리를 듣고 웃었다.*사당은 지붕이 없었다.돌담 셋에 문 자리 하나, 안에 마루가 있었던 자국 위로 눈이 앉아 있었다. 담이 낮아서 불이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위지헌이 그 안에 서고 정무가 뒤에 섰다. 위명서는 들어오지 않고 문 자리에 섰다."뭘 찾으십니까, 숙부.""명부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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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7. 소연화

들것 위에서 심각이 강무진을 불렀다."강 호위, 왜들 저기 서 있소. 종이 한 장 놓고.""모르겠습니다. 저는 못 봤습니다.""못 봤으면 가서 보시오. 나는 못 가니까.""저는 여기 있겠습니다. 부장 곁에 하나는 있어야지요.""그럼 저건 셋이 종이를 놓고 서 있는 게 아니라, 종이가 셋을 세워 놓은 거로군.""그렇게 보입니다."강무진은 붕대 감은 왼팔을 오른손으로 잡고 서 있었다. 사당 안의 셋은 움직이지 않았다.*값 칸에 글씨가 있었다.'심부름이 끝나면.'일곱 자였다. 앞면의 가는 글씨가 아니라 인장을 찍은 손의 굵은 셈방 글씨였다. 그 손이 제 딸의 이름 옆에 그 일곱 자를 적었다. 심부름이 끝나면 지운다는 뜻이었다.위명서가 허락 없이 위지헌의 손에서 종이를 들었다. 부푼 손으로 잡아서 종이가 구겨졌고, 국자는 눈 위에 떨어졌다."소연화."위명서가 읽었다."어머니 이름입니다. 입궁하실 때 쓰신 이름이요. 아바마마가 그리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뒤로는 아무도 부르지 않았고요.""안다.""외조부가 어머니 이름을 여기 적으셨습니다.""그렇다.""심부름이 끝나면."위명서가 그 일곱 자를 소리 내어 읽고, 다시는 읽지 않았다. 종이를 든 채 서 있는데 눈이 와서 종이 위에 앉았고, 위명서는 그것을 털지 않았다. 위지헌이 손을 뻗어 종이 위의 눈만 털었다."어머니는 심부름꾼이었습니까.""그 봄에 침방 옷을 입고 심부름을 온 것은 이미 숙비였다. 숙비가 아비의 심부름꾼이었다.""그리고 심부름이 끝나면 지워질 사람이었고요."위지헌이 답하지 않았다.*위명서가 오래 서 있었다.정무가 등을 안으로, 얼굴을 밖으로 두고 사당 문 자리에 섰다. 눈이 정무의 어깨에 앉았는데, 정무는 그것을 털지 않는 사람이었다.위지헌은 조카에게 종이를 달라고 하지 않았다. 대신 제 어깨의 눈을 왼쪽, 오른쪽 털고 대창포 자락을 털었다. 털 것이 없을 때까지 털었다. 터는 동안은 조카에게 아무 말도 안 해도 되었다.위명서가 그것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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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 도성의 봄

새벽 세숫물이 미지근했다.방어멈이 봄의 이마에 얹을 수건을 적시려고 그것을 부었다. 찬물이 필요한데, 부엌에서 길어 온 물이 밤새 방 안에 있어서 미지근해져 있었다."미지근해요. 우물에 갔다 올게요.""어멈, 내가 갈게.""아씨는 애 옆에 계세요. 이런 건 늙은 다리가 하는 거예요."방어멈이 혀를 차고 우물로 갔다.봄이 요 위에서 울지 않았다. 우는 것보다 그것이 나빴다. 눈을 반쯤 뜨고 천장을 보고 있었고, 뺨이 붉었고, 손을 대면 뜨거웠다. 어제 저녁부터였다.월령이 밤새 그 곁에 앉아 손을 아이 가슴에 얹고 숨을 세었다. 빠르다, 빠르다, 조금 느리다, 다시 빠르다.*곤원전에서 보낸 태의가 회색 옷에 목패를 달고 왔다.아이의 손목을 짚고, 눈꺼풀을 뒤집고, 입을 벌려 혀를 보았다."열병이옵니다. 아이들 것이요. 돌 전에 한 번씩 앓는 것이옵니다. 사흘 오르고 사흘 내립니다.""역병이 아니고요.""아니옵니다. 그 소문은 소인도 들었습니다만, 이건 아이들 열입니다."청아가 아침에 우물에서 그 소문을 듣고 왔다."마마님, 우물가에서 벌써 그래요. 왕부 아기씨가 열병이라고요. 어머, 누가 그렇게 빨리 퍼뜨렸을까요."지난여름 소문이 반나절 만에 되돌아왔다."약은 안 씁니다. 돌 전 아이 몸에는 약이 열보다 셉니다. 찬 수건을 갈아 주시고, 젖은 먹는 만큼만 먹이십시오. 그리고 기다리시옵니다.""기다리라고요.""예, 왕비마마. 사흘이옵니다.""사흘 뒤에도 안 내리면요.""그때는 소인을 다시 부르시옵니다."기다리라는 말을 월령은 열흘 사이에 두 번 들었다. 한 번은 설련의 종이에서, 한 번은 지금이었다.*방어멈이 두 번째 밤을 샜다.반 각에 한 번 찬 수건을 갈았다. 우물물을 새로 길어 대야를 마루에 두었고, 마루로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문틈으로 드는 찬 바람을 제 등으로 막았다."아씨, 주무세요. 애 열은 제가 봐요. 아씨가 옆에서 눈을 벌겋게 뜨고 계시면 애가 더 못 자요. 애도 압니다, 어미 얼굴을. 저는 얼굴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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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두 전장

"어떤 신호냐.""등롱이요. 기와 위에서요. 세 번 켰다 껐어요. 그러고 손이요. 손바닥을 위로 하고, 손가락 셋을요."초비가 제 손바닥을 위로 하고 손가락 셋을 들어 보였다."삼경이에요, 마마님. 오늘 밤이요. 묵아가 그렇게 읽었고, 저도 그렇게 읽었어요.""등롱을 든 게 설련이인 건 확실하냐.""손이 궁인 손이 아니에요. 물지게 지던 손이 아니에요. 삼경까지는 아직 있어요, 마마님."월령이 아이를 보았다. 열이 오르는 사흘의 마지막 밤이었다."청아야.""예, 마마님.""봄이는 네가 안아라. 어멈은 수건을 갈고. 나는 삼경에 담에 간다.""마마님, 아기씨가 이런데요.""안다. 그래서 너한테 맡긴다."청아가 더 말하지 않고 아이를 받아 안아 뜨거운 것을 제 가슴에 댔다. 방어멈이 수건을 짰다. 할 말이 없어서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삭원 고개는 성터 위에 있었다.산으로 빠진 흑령 본대 이백이 그 고개 하나에 앉아 있었다.위지헌이 말 위에 있었다. 왼 어깨의 붕대는 대창포 안에 감추어 밖으로 보이지 않았다."저 고개를 넘으면 흑령 땅이다. 놈들이 저기 앉아 있는 한 염로도 살구골도 남의 것이다. 좌익은 명서다. 열아홉하고 북문군 오십을 데리고 고개 왼쪽 비탈에 서라. 본대가 정면에서 밀면 놈들이 왼쪽으로 빠진다. 거기서 막아라.""막습니까, 칩니까."위명서가 종이를 품에 넣은 채 물었다."오늘은 막는다. 내일 친다.""예, 숙부.""명서야.""예.""막는 것이다. 비탈 밖으로 나가지 마라.""막기만 하겠습니다."위명서가 돌아서자 위지헌이 그 등을 보았다. 품 안의 종이를 달라고 하지 않은 지 이틀째였다."왕야, 삼전하 앞에는 아무도 안 세우십니까.""정무가 내 앞이니 명서 앞은 비었다. 그래서 막으라고만 했다."정무가 왼팔에 붕대를 감은 채 앞에 섰다. 붕대 감은 사람 셋이 한 줄에 서 있었다.*밤이 되기 전에 고개 위에서 화살이 내려왔다.아래의 수를 세어 보려는 시험이었다. 북경군이 방패를 올렸다.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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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 담을 넘다

명부가 안으로 떨어졌다.두꺼운 것이 회랑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그 위로 설련의 소리가 한 번 더 났는데, 이번에는 말이 아니었다.기윤이 담을 넘었다.월령이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이 곧 말이 됐다. 기윤이 담 밑에서 한 번 굴러 올라가 기와를 잡고 넘어서 소리 없이 없어졌다. 황명인 담이었다."왕비마마."독고진겸이 담을 등지고 무릎을 꿇고, 셈방에서 서른 해 굽힌 등을 굽혔다."밟으시오. 내 등이 담보다 낮으니 밟고 오르시오.""어른, 그 등은—""서른 해 굽힌 등이오. 하루 더 굽힌다고 안 부러지오."월령이 신을 신은 채 그 등을 밟았고, 독고진겸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마마님, 제 손이요. 잡으세요."기와 위에 올라가 있던 초비가 손을 내밀었고, 월령이 그 손을 잡고 담을 넘었다."묵아야, 너는 밖에 있어라. 실을 놓지 말고.""예, 마마님."독고진겸이 일어섰는데 등에 신 자국이 있었고, 털지 않았다.*회랑에 셋이 엉켜 있었다.설련과 궁인 하나와 명부였다. 설련이 명부를 끌어안고 엎드려 있었고, 물지게를 오른쪽에 지던 궁인이 그 위에서 설련의 팔을 벌리려 하고 있었다. 담 안에 남은 손 둘 가운데 하나였다."마마님, 설련 아가씨가 밑에 깔렸습니다. 명부를 안고요."기윤이 그 궁인의 어깨를 잡아 돌리자 궁인의 손에 짧은 것이 있었다. 기윤이 손목을 치자 끝을 갈아 세운 은비녀가 회랑 바닥에 떨어졌다."비녀 끝을 갈았습니다, 마마님. 찌르려던 겁니다."궁인은 소리도 내지 않고 버둥거리지도 않았다. 셋 다 마지막까지 같은 얼굴이었다.설련은 엎드린 채 명부를 놓지 않았다. 손톱이 부러진 손가락이 표지를 쥐고 있었다."설련아, 나다. 이제 놔도 된다."설련은 놓지 않았다. 아직 누가 왔는지 알아듣지 못하는 손이었다."손이 굳었습니다, 마마님. 억지로 벌리면 부러집니다.""벌리지 마세요. 기다려요."*숙비가 회랑 끝에 서 있었다.병풍 없이, 밤옷에 무향의 소매로 회랑에 서 있었다. 앉은 것만 봤지 서 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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