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나를 죽인 황제에게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Chapter 381 - Chapter 390

436 Chapters

381. 낮은 사람들의 손

아란이 먼저 보았다.밤이 아니었다. 해가 지기 전, 심부름꾼 하나가 난향재 뒷문으로 들었다. 약방 심부름장을 들고. 유씨 마님이 시킨 약재를 가져왔다고.아란은 마당에서 당과를 세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들고, 물었다."아저씨. 아저씨는 왜 뒷문으로 와? 앞문 있는데."심부름꾼이 잠깐 멈췄다."…앞문이 그, 닫혀 있길래.""안 닫혔는데? 나 방금 거기로 나왔는데."*서윤이 그 심부름장을 받았다.열여덟의 손이 종이를 폈다. 유씨의 이름으로 된 약재 주문. 글씨가 유씨 것과 닮아 있었다."…이거, 큰어머니 글씨 아닌데요.""그럴 리가요. 마님이 손수—""첫 획이요. 첫 획이 급해요."서윤이 말했다. 어른스러운 말투였다. 그런데 그 말투 밑에서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큰어머니는 첫 획을 천천히 놓으시거든요. 이건 급한 사람이 남의 글씨 흉내 낸 거예요. 저도 예전에 이런 글씨… 써 본 적이 있어서, 그래서 알아요."서윤이 종이를 접지 않고 내려놓았다. 손끝에 실 자국이 있었다. 바느질을 하다 온 손이었다."서윤아."유씨가 마루에서 말했다."네가 그걸 알아본 게 흠이냐. 흠 아니다.""…압니다.""아는 얼굴이 아닌데, 지금."서윤이 고개를 숙였다. 어른스러운 말투가 거기서 잠깐 무너졌다."큰어머니. 저 이제 그 글씨 안 써요. 안 쓴단 말이에요.""안다. 알아."*심부름꾼이 뒷문으로 돌아서려 했다.문 앞에 기윤이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송란영이 그 발소리를 먼저 알아듣고, 부엌 문을 반쯤 열어 두었다. 도망갈 길이 하나 줄었다."아, 놓으쇼. 놓으라니까. 난 약재만 갖다준 거요, 약재만.""약재부터. 풀어 보시오."기윤이 말했다.심부름꾼이 보따리를 풀었다. 약재였다. 진짜였다. 다만 그 밑에, 작은 병이 하나 있었다.은매가 부엌에서 나와 그 병을 보았다. 뚜껑을 열지 않았다. 열지 않고도 알았다."저, 저거요. 우물에 든 거랑 냄새가 같아요. 똑같아요."*담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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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2. 눈속임

"눈속임이면, 그럼 뭐요. 진짜는."월령이 물었다.심부름꾼이 마당 흙을 보았다. 보면서, 말했다."우물은 그냥, 사람 눈을 우물로 돌리라고요. 그거 하나 하라고 돈 준 거고. 진짜는 서찰이오. 오늘 아침에 왕부로 갔소. 심가 둘째 댁 아가씨 이름 달아서."서윤의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제 이름이요? 제 이름으로요?""아가씨 글씨 흉내 낸 서찰에다, 아가씨가 짓는다는 배냇저고리를 싸서. 그 저고리에다가—"심부름꾼이 말을 멈췄다. 은매가 그 뒤를 대신 맡았다. 냄새로."…같은 거요. 병에 든 거하고 같은 거."은매가 거기서 말을 멈췄다. 얼굴에서 핏기가 빠졌다. 서윤보다 더 빨리."오, 오늘 아침에요. 소인이 심가로 나올 때, 청아 언니가 그 보따리를 풀고 있었어요. 아기씨한테 입힌다고. 소인이… 냄새가 이상하다고, 아기씨 살에 닿는 건데 마마님 오시거든 입히라고, 그러고 나왔는데. 그게 뭔지는 몰라서. 그냥 이상하다고만—"기윤이 그 자리에서 사라졌다.왕부까지 반 시진. 그림자가 그 반 시진을 뛰었다.남은 마당은 조용했다. 서윤이 그 조용함 한가운데 서 있었다. 열여덟의 어깨가 굳어 있었다. 예전에 한 번, 이렇게 서 본 적이 있는 어깨였다. 제 이름이 남의 손에 쓰인 날."…저 안 썼어요."서윤이 말했다. 어른스러운 말투로. 그 말투가 떨렸다."제가 안 썼어요. 저는 이제 그 글씨 안 쓴다고요. 저는, 저는—""안다."월령이 말했다."네가 안 쓴 거 안다. 그러니까 아니라고 하지 마라. 자꾸 아니라고 하면 그랬을 수도 있는 사람이 되는 거야, 남들 눈에."서윤이 입을 다물었다. 다문 입 안에서 이가 부딪쳤다.아란이 그 곁으로 왔다. 당과 하나를 서윤의 손에 쥐여 주었다."언니. 이거. 먹어.""…지금 당과가 문제니, 아란아.""먹으면 이 안 부딪쳐. 내가 해 봤어."서윤이 아란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당과를 입에 넣었다. 이가 부딪치지 않았다.*심도현이 마당으로 들었다.군량 호송에서 막 돌아온 얼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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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3. 금 간 그릇

작은집 부엌에 불이 먼저 들어왔다.한씨가 아궁이 앞에 앉아 있었다. 새벽이었다. 시비를 깨우지 않고, 제 손으로 불을 지폈다. 그 손이 서툴렀다. 오래 안 한 일이었다.심도현이 그 뒤에 섰다."…당신이 왜 거기.""차 끓이려고요.""시비가 할 것을.""제가 하고 싶어서요."한씨가 답했다. 돌아보지 않고. 심도현은 더 묻지 않았다. 아궁이 옆에 앉아, 장작을 하나 밀어 넣었다.*차는 식었다.끓여서 방에 들이고, 두 사람이 마주 앉고, 아무 말도 없는 사이에 식었다. 늘 그랬다. 이 부부의 차는 늘 식은 채로 상 위에 남았다. 심도현이 끝내 마시지 않아서.오늘도 식었다.심도현이 그 잔을 보았다. 오래 보았다. 그러고는 들었다.마셨다. 식은 차를, 끝까지.한씨의 손이 무릎 위에서 조금 움직였다. 남편의 옷깃으로 갈 손이었다. 가지 않았다."식었는데요, 그거.""아오.""다시 끓여 드릴까요?""…아니. 이게 좋소. 이대로."한씨가 남편을 보았다. 그러고는 제 잔을 들었다. 제 것도 식어 있었다. 마셨다."저, 서윤이가요.""음.""어젯밤에 제 방에 왔어요. 그 일 뒤로는 처음이에요.""뭐라 합디까.""아무 말도요. 문 앞에 서 있다가, 그냥 갔어요. 그게 다예요."심도현이 빈 잔을 내려놓았다."…나도 그 애 방 앞에 서 있다 왔소. 어젯밤에. 당신처럼.""들어가시지 그러셨어요.""당신이 안 들어간 까닭하고 같소."두 사람은 잠깐 서로를 보지 않았다. 식은 잔 둘이 상 위에 나란히 비어 있었다.*심가 마당에서는 잔당 처리가 끝나 가고 있었다.심부름꾼과 담 밖의 자, 둘 다 강무진이 국청으로 넘겼다. 궁에서 나온 돈, 이라는 진술만 남기고. 자녕궁이라는 이름은 이번에도 나오지 않았다."또 남의 손이에요. 또요."월령이 낮게 말했다."남의 손도, 손이 있어야 쓴다."위지헌이 답했다."오상궁 잡혔고, 상단 말랐고, 호위 잡혔다. 남은 건 값 안 드는 손뿐인데, 그것도 오늘 둘. 다음엔 셋 남고, 그다음엔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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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4. 발소리, 다시

왕부 우물가에 물동이가 둘 놓여 있었다.하나는 청아 것, 하나는 초비 것. 초비가 뒤채 담 너머에서 안채로 옮겨 온 첫날이었다. 묵아도 함께였다. 청아가 앓다 일어난 첫날이기도 했다. 방어멈이 두 아이를 마당에 세워 놓고 한참 훑어보다가, 결론을 내렸다."물 긷고, 장작 패고. 그거면 된다. 청아 몫까지 당분간 너희가 해.""예."초비가 답했다. 묵아는 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끝의 붉은 실을 만졌다. 방어멈이 그 손을 보았다."그 실은 뭐냐, 손에.""내 거.""그래, 네 거면 됐다. 됐어."방어멈은 더 묻지 않았다. 묵아가 그 안 묻는 것을 잠깐 보다가, 물동이를 들었다.강무진이 마당 끝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묵아가 물동이를 들고 지나가다, 그 앞에서 멈췄다."나리.""음.""여기서 살아?""산다.""밥은. 밥도 줘?""준다. 큰 그릇으로."묵아가 그 말을 잠깐 생각했다. 그러고는 물동이를 고쳐 들고 갔다. 강무진은 헛기침을 했다. 윤백이 어느새 옆에 서서, 그 헛기침을 못 들은 척했다."…너 지금 웃었냐.""안 웃었습니다.""웃었다. 봤다.""…반만요. 반만."*청아가 두레박을 올리는데, 발소리가 났다.사흘 누웠다 나온 얼굴이었다. 아직 창백했다. 눈가의 부기는 빠졌는데, 두레박 줄을 당기는 손에 힘이 덜 들어갔다. 줄이 한 번 미끄러졌다. 청아가 다시 잡았다.인기척 없는 발소리였다. 남들은 못 듣는. 청아만 듣는."기윤 님이죠."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기윤이 우물가 두 걸음 앞에서 멈췄다."…어떻게 아오.""발소리요.""발소리 안 내오, 나는.""그러니까요. 그 안 내는 발소리요. 어머, 그게 더 잘 들리는데."기윤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러고는 청아의 손에서 두레박 줄을 받았다. 받아서 올리고, 물동이를 들었다. 청아 것을.*"어머, 제가 들어요. 그거 제 건데.""누워 있으라 했을 텐데.""사흘 누웠으면 됐지요. 태의도 됐다 그랬어요.""얼굴이 그런데.""어머, 얼굴이 뭐요. 기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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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5. 왜 그 아이만

국청 옥에서 심부름꾼이 한 말은, 하나 더 있었다.강무진이 그것을 왕부로 가져왔다. 등불을 올린 뒤였다. 강무진은 문가에 서서, 직역해 들은 그대로 옮겼다."…돈 준 손이 이렇게 말했답니다. 다른 이름은 값이 없으면 두어라. 근데 그 아이 이름만은 값이 없어도 지워라. 그대로 옮긴 겁니다. 토씨까지."월령의 손이 봄의 저고리 위에서 멎었다."…그 아이라니. 어느.""예. 섭정왕가의 여아, 라고 했답니다."*"왜요."월령이 물었다. 강무진에게가 아니었다. 방 안에 그 물음을 놓았다."은매도 서윤이도 아란이도, 값 없으면 둔대요. 그런데 봄만 값이 없어도 지우래요. 왜 봄만이에요? 계승 때문이면요, 삼전하 세우는 데 봄이 걸린다면요, 그건 값이 드는 일이잖아요. 돈 마르면 미뤄야 하는 일이에요. 그런데 안 미뤄요. 왜 안 미뤄요.""…월령.""돈보다 급한 게 뭐예요, 숙비한테. 뭐가 있어요."위지헌이 등불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것이 답이었다.*강무진이 물러가려다, 문가에서 멈췄다."마마님. 그, 하나 더요. 이건 좀.""말해라.""그 손이 돈을 줄 때 이렇게도 말했답니다. 그 아이는 값이 아니라 빚이다, 하고.""…빚이요?""예. 저는 무슨 뜻인지 모릅니다. 그냥 들은 대로요."강무진이 물러갔다. 청아가 봄을 안고 옆방으로 갔다. 나가면서 위지헌을 한 번 보았다. 위지헌은 아무것도 보지 않고 있었다. 방 안에 두 사람만 남았다.빚. 월령은 그 말을 굴렸다. 값은 치르면 끝났다. 빚은 치러도 남았다. 숙비에게 봄이 값이 아니라 빚이라면, 그 빚은 봄이 태어나기 전에 진 빚이었다."부군. 빚이래요. 들으셨어요?""들었다.""누가 누구한테 진 빚이에요. 봄이 무슨 빚을."위지헌이 답하지 않았다.위지헌의 손이 무릎 위에 멎어 있었다. 어제도 멎었고, 오늘도 멎었다."…부군. 아세요?""….""봄만 왜인지요. 아시는 얼굴인데, 지금."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 그러고는 시선을 내렸다. 보지 않는 척 보는 시선이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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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 두 번째 봄

"그 봄부터요. 그 봄부터 말씀해 주세요."월령이 말했다."오래된 것 말고요. 부군이 늦은 봄부터."위지헌은 오래 답하지 않았다. 등불 심지가 한 번 튀었다. 그는 그것을 보았다. 그러고는, 말했다.*"북에 있었다.""알아요. 흑령이 국경 밟은 해였잖아요.""밟은 게 아니다. 밟게 한 거다. 내가 도성에 없어야 하는 봄이었으니까. 그때는 그것도 몰랐고."위지헌의 목소리가 낮았다. 낮고, 고르지 않았다. 고르지 않은 것을 감추려는 목소리였다."급보가 왔다. 황후가 별궁에 들었다고. 병이 돈다고. 그때 나는 국경에서 사흘 거리에 있었다. 이틀 만에 달렸는데… 반나절이 모자랐다. 반나절.""그래서 문 앞에요.""문 앞에."*월령은 그 문을 기억했다.안에서 본 문이었다. 닫히는 문. 닫힌 뒤로 열리지 않던 문. 그 문 밖에 누가 서 있었는지, 전생의 저는 몰랐다. 아무도 없는 줄 알았다."그 뒤로는요? 그 뒤에는 어떻게 하셨어요.""그 뒤는, 네가 아는 대로다.""저는 몰라요. 저는 문 안에 있었는데요."위지헌이 그녀를 보았다. 그 눈이 잠깐 흔들렸다. 무엇을 물으려는 눈이었다. 물으려다, 멈추는 눈.월령은 그 멈춤을 보았다. 그가 무엇을 못 묻는지,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먼저 말하지 않았다. 그가 못 묻는 것을, 저도 말하지 않는 것으로 두었다."…형장에 갔다."위지헌이 말했다. 물음 대신."늦게. 비가 왔고. 그리고."그가 거기서 멈췄다. 그러다 낮게 이었다."문 앞에 서고 사흘 뒤에 흑령이 다시 밟았다. 북으로 되돌아갔고, 형장 날짜는 북으로 가는 길에 들었다. 되돌아 달렸다. 그래서 두 번 늦었다. …네 기억엔 내 품이었고, 내 기억엔 이미 끝나 있었다. 그 어긋남은 아직 못 풀었다."월령은 그 어긋남을 알았다. 저도 풀지 못한 것이었다. 비, 누군가의 품, 그 품에서 한 말. 두 사람이 다르게 아는 것을, 두 사람 다 더 말하지 않았다."그날 밤에 자녕궁 담을 넘었다. 그냥, 넘었다."*"넘어서요?""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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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7. 어린 봄

새벽에, 위지헌이 궤 하나를 열었다.월령이 한 번도 열리는 것을 못 본 궤였다. 검은 옻칠에, 자물쇠도 없는. 그는 그 안에서 작은 종이 봉지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뭐예요, 그거.""열어 봐라."월령이 봉지를 폈다.마른 꽃잎이었다. 다섯 장. 색이 다 바래서 무슨 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향이 남아 있었다. 아주 옅게. 감송향 밑에서, 다른 향."…살구꽃이에요, 이거?""그래."*"열다섯이었다."위지헌이 말했다. 궤 앞에 앉은 채. 월령을 보지 않고, 꽃잎을 보며."늦둥이 황자를 궁이 어찌할 줄 몰라서, 형님이 나를 북문으로 보냈다. 심도윤 장군 진영에. 군막에서 밥 먹고, 말 배우고. 그 진영에서 첫 싸움을 치렀다. 이기고 돌아온 봄이었다. 그 진영 근처에 마을이 하나 있었다. 살구나무가 많은 데였다."월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도윤. 아버지. 북문. 어린 날의 저는 그 근처 어딘가에 있었다. 기억이 없는 나이로."봄이었다. 살구꽃 지는. 나는 나무 밑에 혼자 서 있었고, 소매에 꽃잎이 앉았다. 안 털었다. 털 까닭이… 없었으니까. 그때 아이 하나가 왔다."*"아이요? 무슨 아이요.""예닐곱 살. 뒤꿈치가 아직 가벼운. 나를 올려다보더니 내 소매 꽃잎을 떼어 줬다. 하나씩. 다섯 장."위지헌의 손이 꽃잎 위에서 멎었다."떼어서, 내 손에 쥐여 줬다. 그러고는 그랬다. 아저씨는 외로운 사람이구나. 그렇게."월령의 손끝이 접혔다. 접힌 채로 풀리지 않았다."열다섯한테요? 아저씨라고요?""그래서 내가 그랬다. 아저씨 아니다. 그러니까 그 아이가 웃었다. 웃고는 그냥 갔다. 제 어머니가 부르는 쪽으로.""제 어머니가요. 그 어머니가 누구였는데요.""…장모님이었다. 지금의."*월령은 꽃잎을 오래 보았다.기억이 없었다. 예닐곱 살의 봄. 살구나무. 소매에 앉은 꽃잎. 외로운 사람.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그런데 손이 알았다. 꽃잎을 떼는 손이, 어디에선가 한 번 이 일을 한 것 같았다."부군은 그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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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8. 그때도 있었다

유씨는 바느질을 하고 있었다.심도윤의 갑옷 안소매였다. 해진 데를 꿰매는 손이 빨랐다. 딸이 방에 들어와 앉을 때까지, 그 손이 멎지 않았다."어머니.""말해라. 듣고 있다.""북문 진영 근처에요, 살구나무 마을이 있었어요?"바늘이 멎었다.*"…누가 그러더냐. 그런 말을.""부군이요."유씨가 바늘을 실패에 꽂았다. 그러고는 딸을 보았다. 직설로 보는 눈이었다."있었다. 네가 예닐곱 살 때. 네 아버지가 북문 지키던 해에 내가 너를 데리고 진영 근처 마을에 있었어. 살구나무가 많았지, 거기. 너는 그 밑에서 뒤뚱거리고 놀고.""그 마을에, 열다섯 살 황자가 있었어요? 그때."유씨가 잠깐 말이 없었다."…있었다. 늦둥이 황자를 네 아버지가 맡아 키웠으니까. 말이 없는 아이였어. 밥도 혼자 먹고. 네가 그 아이한테 자꾸 가더라. 왜 가느냐 물으면, 저 아저씨 혼자라서, 그러고."월령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심도윤이 문을 열고 들었다.손가락 둘이 모자란 손으로 문지방을 짚었다. 아내와 딸이 마주 앉은 것을 보고, 문가에 앉았다."…살구나무냐.""예, 아버지.""그 아이가 네 지아비다."심도윤이 짧게 말했다. 그러고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은, 그 모자란 손이 무릎 위에서 한 번 쥐어졌다."아버지는 아셨어요? 그 아이가 그 아이라는 거.""알았다.""언제부터요.""북경군 받던 날. 열여덟에. 내 앞에 와서 절을 하는데, 소매에 꽃잎도 없는데 꽃잎 떼는 손을 하더라. 버릇처럼."심도윤이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그때 알았다. 뭘 쥐고 사는지."유씨가 남편을 흘겨보았다."당신은 그걸 알면서 나한테 한마디를 안 했소? 여태?""…안 물었지, 당신이.""이 집 남자들은 다 그 말을 하네. 안 물었지, 안 물었지."유씨가 혀를 찼다. 월령은 그 말에 잠깐, 아주 잠깐 웃었다. 웃고 나서 도로 굳었다.*"어머니. 그 봄에, 궁녀가 있었어요? 마을에."유씨의 손이 실패 위에서 멎었다."침방 궁녀 옷을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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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9. 미끼

곤원전 뒤채는 옥보다 밝았다.명부지기는 창가에 앉아 있었다. 늙은 손이 무릎 위에 포개져 있었다. 옷자락을 쥐지 않았다. 쥘 까닭이 없어진 손이었다. 손자를 끝내 못 찾았다는 기별이 어제 이 방에 닿았다. 절에서 하루 만에 도로 데려간 뒤로, 아무도 그 아이를 보지 못했다고."오실 줄 알았지요. 마마님이 오늘쯤.""왜요.""살구나무 이야기를 들으셨을 테니까요. 심 부인이 입을 열면요, 그다음은 이 늙은이지요. 순서가 그렇습니다."월령이 앉았다. 접지 않은 종이 한 장을 사이에 두고. 마른 명부의 사본이었다.*"첫 장이 있다면서요. 명부의.""있습니다. 있고말고요.""어디에요."명부지기가 웃었다. 늙은 웃음이었다."그걸 말씀드리면 저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마마님. 저는 답을 하나씩 팔았습니다. 손자 하나에 답 하나. 늙은이 셈이 그랬어요. 느려도 그랬어요.""팔았다고요. 지난 말로.""어제 기별이 왔지요. 절에서 하루 만에 도로 데려갔다고. 그 뒤는 아무도 모른다고. 찾는 사람들이 산 너머까지 갔다는데, 없었답니다."명부지기가 무릎 위의 손을 내려다보았다."옥에서 '위에서'라는 말 하나 드린 건, 그때는 아직 팔 게 있는 줄 알아서였고요. 그 말 하나로 마마님이 옥까지 오셨고, 옥에서 그 향을 맡으셨지요. 아닙니까?"월령은 그 말을 받았다. 맞는 말이었다."그런데 이제 팔 것이 없어져서요. 없어지니까 입이 열립니다, 마마님. 늙은이 셈이 그렇습니다.""그럼 이번 답 값은요. 뭘 받으시려고요.""…제 목숨이지요. 그것밖에 남은 게 없어서."*"명부지기는요, 대를 잇습니다."명부지기가 낮게 말했다."앞의 손이 제게 넘겼고, 저는 다음 손에 넘겨야 하지요. 그런데 이제 넘길 손이 없습니다. 오상궁이 잡혔으니까요. 그 아이가 제 다음이었거든요.""그래서요.""그래서 제가 마지막입니다. 제가 죽으면 명부는 끊깁니다. 그러니 마마님이 저를 안 죽이셔야, 명부 끊기는 날까지 제가 답을 팔지요. 하나씩. 천천히."월령은 그 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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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0. 마지막 패

"어머니께서 부르셨다 들었습니다."위명서가 병풍 앞에 섰다. 앉지 않았다."북영에서 여기까지가 한 시진이다. 오래 걸렸구나.""말이 느렸습니다.""네 말은 느린 말이 아니지."숙비가 병풍을 접었다. 제 손으로. 궁인을 부르지 않고. 궁인이 이제 몇 남지 않았다는 것을, 위명서는 그 손에서 읽었다.*"앉아라.""서 있겠습니다.""북영에서 그리 배웠느냐.""…예."숙비가 옅게 웃었다. 야윈 얼굴에, 그 웃음이 오래 안 갔다."명서야. 네 창고에서 나간 궤 셋을 네 아비가 봉하였다. 젖줄이 끊긴 것이다. 오라비는 넘어갔고, 오상궁은 잡혔고, 노가는 무너졌다. 이 어미에게 무엇이 남았는지 아느냐.""…모릅니다.""너다."*숙비가 아들의 손을 잡았다.야윈 손이었다. 그런데 쥐는 힘이 야위지 않았다."네 이름으로 치른 값이 있다. 그 값을 네가 거두어라.""…값이라 하시면, 무슨.""섭정왕가의 여아다. 그 아이가 자라면 네 자리는 없다. 위지헌의 피와 심가의 군심을 한 몸에 가진 아이니라. 네 아비가 그 아이를 안는 날, 너는 삼황자로 늙는다."위명서의 입이 열리지 않았다."어미가 못 하는 것을 아들이 하여라. 네 이름으로 치른 값이니 네 것이다. 네가 그 아이를 궁으로 데려오너라. 어린 사촌 누이를 아끼는 오라비로. 그다음은 내가 한다."*위명서의 손이, 어머니의 손 안에서 움직이지 않았다.어릴 적부터, 이 손 안에 무엇이든 놓았다. 붓도, 매화 가지도, 처음 쓴 글씨도. 놓으면 어머니가 웃었다."…어머니.""말하여라.""그 아이를 데려오면, 어머니는 그다음에 무엇을 하십니까."숙비가 답하지 않았다. 답하지 않는 것으로 답했다. 위명서는 그 답을 창고에서 이미 보았다. 붉은 표. 값 대신."효도에도 값이 있느냐."숙비가 낮게 말했다."네 아비가 너를 북영에 보낸 것은 너를 어미에게서 떼려는 것이다. 위지헌 곁에 두는 것은 그 여인을 네게 보여 못 갖게 하려는 것이고. 모두가 셈이다. 너를 위한 셈은 이 방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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