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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Chapter 281 - Chapter 290

309 Chapters

제282화

주위에서는 탄식과 짜증이 섞인 소리가 시작됐다.“아이씨… 짜증 나네 진짜.”“방금 막 파밍 끝났는데…”가희 역시 짜증을 참지 못했다. 게임도, 정전도, 습한 공기도 모두 짜증으로 밀려왔다.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를 세게 밀어 넣고 비상구 불빛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며 주인을 향해 다가갔다.“아니, 시대가 어느 시대인데 비가 온다고 정전이 돼요?”“아, 네… 그러게요. 죄송합니다. 갑자기 전기 쪽이 확 나가버려서요. 저희도 복구 요청 넣어 놓은 상태고…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가희는 말없이 사장을 노려보았다. 기다려 달라는 말은 늘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장 해결하지도 못하면서 ‘조금만’이라는 말만 쉽게 붙이는 것도.그때였다.“그냥 나가면 되지, 굳이 사장님한테 따져야 돼?”낮지만 날카로운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공성찬이 서 있었다. 편의점 앞에서 실실거리며 웃던 그놈 말이다.흠칫 놀라긴 했지만 그대로 날카롭게 날을 세웠다.“그쪽이 무슨 상관인데요?”“그냥 보기 거슬려서.”처음 만났던 편의점 앞에선 활짝 웃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오늘은 마치 다른 사람처럼 표정이 싸늘했다. 가희는 거슬린다는 사람 앞에 서있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그대로 등을 돌려 문을 열고 나왔다. 문제는 정신이 없어서 우산을 챙겨오지 못했다는 것.다시 들어가서 우산함을 뒤적거리기엔 자존심이 상했고 그래서 그냥 입구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비는 퍼붓고 있었지만 고작 5분이면 자취방까지 갈 수 있는 거리.그냥 뛰어가기로 마음을 먹었을 때, 등 뒤에서 다시 공성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우산 없어?”“보기 거슬린다면서요? 신경 끄시고 갈길 가세요.”“어디까지 가는데? 같이 쓰고 가. 우산 꽤 크니까.”“됐다고요.”가희는 결국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비를 뚫고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몇 발자국 뛰지도 못하고 미끄러운 바닥으로 인해 그대로 고꾸라져 버렸다. “꺄악!”넘어지는 순간 슬리퍼가 그대로 날아가 보도블록 위에 떨어졌고, 살짝 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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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자취방 앞에 도착하자, 성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일반적인 원룸을 자취방으로 쓰는 대학생들과 달리, 눈앞에 펼쳐진 아파트는 꽤나 고급 아파트였다.“와… 아파트가 자취방이라니, 자취방이 아니라 완전 자취 집이네.”“뭐, 제 능력은 아니지만요.”그 말과 함께 가희가 우산에서 빠져나왔다.“데려다주셔서 감사합니다.”“감사하면 내일 밥 사라.”“…네?”성찬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핸드폰을 내밀며 웃었다. 눈 모양이 반달 모양으로 접혔고, 가까이서 그 눈을 본 순간 가희는 심장이 쿵 하고 뛰어버렸다.한참을 망설였지만, 신세를 진건 분명했기에 결국 핸드폰을 받아들어 번호를 입력했다.“네. 감사 인사는 해야죠.”“연락할게. 얼른 들어가. 감기 걸리겠다.”그는 또 한 번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그대로 돌아섰다. 그날 저녁, 별생각 없이 다리 위에 찜질팩을 올려두고 영화를 보던 중 핸드폰이 진동하며 메시지가 도착했다. [다리는 좀 어때? 나 공성찬.]이름을 보는 순간 그 반달 모양의 눈 웃음이 곧장 떠올랐다. 한번 보면 잊지 못할 미소인 건 분명했다.뭐라고 답장을 해야 할까.잠시 망설이긴 했지만 너무 성의 없어 보이지 않을 만큼, 너무 친한 척하는 것 같지 않을 만큼 딱 다섯 글자만 보냈다.[네, 괜찮아요.][다행이네. 내일 1시 어때? 데리러 갈게.][네.]***다음날, 오늘도 비는 추적추적 내렸지만 두 사람은 우산을 나란히 쓰고 한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가희가 메뉴판을 내밀며 물었다.“뭐 드실래요?”“해장국.”“어제 술 먹었어요?”“아니, 어제 너 넘어지는 거 보고 속이 뒤집어진 것 같아서.”“….”그렇게 조금은 어색한 분위기 속, 두 사람의 대화가 이어졌다.“혼자 있어도 안 심심해?”“네. 별로요.”“오늘은 마음이 덜 닫혀있는 것 같은데. 기분탓인가?”“그런가요? 열면 뭐가 튀어 나올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그렇게 말하니까 더 열어보고 싶은데?”“지금 작업 거시는 거예요?”“응. 편의점 앞에서도,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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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단비는 정말로 한 시간 안에 도착했고, 두 사람은 거실에 나란히 앉아 치킨 박스를 열고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단비가 가희의 표정을 조심스레 살피며 물었다.“무슨 일 있어? 할 말 있다며.”“그게…”“뭔데 그래? 무슨 일 있어?”“나… 남자 친구 생겼어.”이제야 단비의 표정이 밝아졌다. 무슨 안 좋은 일이 생겼을까 걱정하긴 했는데, 오히려 좋은 소식이잖아?“뭐? 대박! 언제? 누구? 우리 학교야?”“응, ROTC 3학년 공성찬 선배.”그 순간, 단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눈에 띄게 사라졌다.“…공, 공성찬 선배?”“응, 알아?”단비는 잠깐 멈칫하더니, 이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맥주 캔을 집어 들었다.“그 선배 완전 엄친아로 유명하잖아. 잘생기고,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그래? 그건 미처 몰랐네.”“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더니, 와~ 백가희 능력 있네.”단비의 말은 친구 사이에 충분히 오고 갈 수 있는 장난처럼 들렸지만, 그 안에 담긴 온도는 조금 따가웠다. “그렇게까지 말할 일은 아닌 것 같은데.”“농담이야, 괜히 발끈 하긴.”단비는 웃고 있었고, 가희는 웃지 않았다. 그리고 그 웃음의 간격 사이로 작은 틈이 생겼다. 하지만 분위기는 생각보다 금세 풀렸다. “그래서? 어떤데? 당연히 연애 초반이라 불타겠지?”“아직은 잘 모르겠어. 뭔가… 나만 끙끙거리는 것 같기도 하고.”“헐~ 설마 어장관리 아니냐? 이미 잡은 물고기라는 거지.”“그러게, 인기 많은 선배라고 하니까 괜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괜히 끙끙 앓지 말고, 혼자 앞서가지 마.”“응, 앞으로는 그래야 할까 봐.”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마음은 어느새 한참을 달려가 있었다.단비가 돌아간 뒤, 가희는 또다시 혼자 남았다. 치킨은 반도 못 먹었고 차가웠던 맥주캔은 따뜻하게 식어 있었다.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켜보니, 성찬에게선 메시지 한 통 와있지 않았다. 그대로 담요를 머리끝까지 올린 채 억지로 잠을 청했다. ***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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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방학이 끝나고 학기가 시작된 어느 날.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보니 자취방에는 아버지, 백 회장이 예고 없이 찾아와 있었다. 다행히 성찬은 집에 없었지만 미처 치우지 못한 옷가지들과 신발, 칫솔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방학 때도 본가 한번을 안 오더니, 대체 뭘 하고 지내는 거야?”“왜 연락도 없이 오고 그래.”“20살이라고 다 어른인 줄 알아? 카드는 그렇게 펑펑 써대면서?”“아까워? 그래서 지원이라도 끊고 싶어서 찾아 온 거야?”“삐딱하기는. 집에 남자 함부로 들이고 하지 말아라. 그렇게 막 살라고 얻어준 집 아니니까.”아무래도 아버지는 모든 걸 알고 있는 모양새였다. 하긴, 화장실만 가도 흔적들이 넘쳐나니까.“막 산다고? 누구 기준으로?”“네 오빠도 정신 못 차리고 집안을 위해 애쓰고 있는데, 딸이라고 봐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야.”“그래서 오빠도 불쌍해. 아빠 때문에.”백 회장의 표정이 단숨에 일그러졌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희가 뱉어낸 말은 너무 정확하고 아픈 말이었다. 가희는 멈추지 않았다.“누구를 위해서 산다는 말, 다 거짓말이잖아. 아빠도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늘 회사랑 체면이 우선이니까.”백 회장은 더 이상 어떤 말도, 반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현관문을 닫고 모습을 감췄다. 현관문이 쿵- 닫히는 소리보다 더 크게 남은 한 문장.“그렇게 막 살라고 얻어준 집 아니니까.”텅 빈 자취방을 바라보았다. 누구도 없고 누구도 기다려 주지 않는 공간에서는, 늘 혼자만 진심인 것 같은 사랑이 조금씩 메말라 가고 있었다.하지만 그 메말라 가는 마음을 알면서도 애써 부정하고 싶었다. 그래서 성찬에게는 더 이상 서운함을 토로하지 않았다. 괜히 사이가 멀어질까 봐, 다툼이 될까 봐. 그리고 다툼 때마다 다치는 건 자신이었으니까. 이제는 연락이 오면 오는 대로, 오지 않으면 안 오는 대로.누구도 닦달은 커녕 서운함조차 토로하지 않는 사이가 되어버린 연인. 그럴수록 성찬이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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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눈이 팅팅 부은 채로 울기만 하던 가희는 문득 오빠, 백이현이 떠올랐다.세상에 믿을 사람이라곤 멀리 있는 오빠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대로 핸드폰을 들어 이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백가희.”익숙한 목소리를 듣는 순간 눈물이 차올랐고, 이현은 가희의 떨리는 숨소리를 듣자마자 숨을 삼켰다. “…오빠.”“너 우냐? 무슨 일 있어?”“한국 언제 와…?”“왜 그러는데. 왜 우는데.”“그냥… 학교도 힘들고… 다 힘들어.”“당장은 못 가지. 근데 백가희.”“응.”“다 때려치우고 도망가고 싶으면 차라리 나한테 말해. 그 정도는 해줄 수 있으니까.”“오빠는 안 힘들어? 오빠도 거기, 억지로 간 거잖아.”이현은 잠시 말이 없었고, 그 침묵에 가희는 가슴이 더 저려왔다. 이렇게 꺼내면 안 되는 말이었을까. 혹시 상처를 건드린 걸까. 하지만 수화기 너머로 이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응, 억지로 온 거 맞아. 근데 억지로 시작된 자리에서도 나름 버티게 되는 이유가 생기긴 하더라.”“이유?”“보고 싶은 사람들 만나러 가려면, 하루도 허투루 못 보내지. 너도 그렇고.”눈물은 또 흘렀지만, 이번엔 조금 덜 아팠다.세상에 단 한 명, 마음을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게 바로 오빠였다.왜 이런 사실을 어릴 땐 몰랐던 걸까. 왜 그렇게 떽떽거리기 바빴던 걸까.“몰라, 아무튼 빨리 와.”“그래, 울지 말고. 씩씩하게.”그날 이후, 단비와 성찬은 더는 숨기지 않고 보란 듯이 연애를 시작했다.함께 찍은 사진들은 SNS에 매일같이 업로드됐고, 대놓고 손을 붙잡고 캠퍼스를 누비곤 했다. 수업 때마다 단비를 마주할 땐 복장이 터질 것 같았지만 참고 또 참았다. 그저 혼자만의 시간이 또다시 시작돼 버린 느낌이었다.가희는 그렇게 점점 더 조용한 사람으로 변해갔다. ***겨울 방학이 막 시작됐을 무렵, 홀로 일본 여행을 떠나기 위해 짐을 싸던 어느 날.자취방 초인종 소리가 울렸다.“누구세요?”“나, 공성찬.”순간 멈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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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가희는 결국 휴학을 결심했다. 처음부터 애정 없던 학교와 학과였다. 유치원 선생님이 될 것도 아니었고, 적당히 성적에 맞춰 들어왔던 곳에 더이상 머무를 이유를 느끼지 못했다.어쩌면 목적 없이 살던 순간부터 어긋난 궤도 위에 있었던 거겠지.그날 밤, 휴학을 결심하고 이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나… 학교 휴학할까 해.”“힘들면 그렇게 해.”생각보다 덤덤한 대답에 오히려 놀란 쪽은 가희였다.“뭐야?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안 말려?”“애초부터 유아교육과가 말이 되냐? 차라리 내가 무용학과 졸업하는 게 훨씬 더 빠르겠다.”“…죽을래?”“휴학하고 뭐 할 건데.”“나… 프라하 놀러 가면 안 돼?”“여긴 안 돼, 위험해.”“치, 됐어. 그냥 여행이나 다닐까 봐.”“그래, 아빠 카드 펑펑 써. 대신 그 시간 안에서 뭐든 찾길 바란다.” 이제라도 스스로를 위한 시간을 제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망이 아닌 휴식, 절망이 아닌 발견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휴학 후, 가희는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다.‘아빠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이런 자유를 누리진 못했겠지.’전과는 다르게 생각이 많아지며, 자연스레 감사라는 감정마저 자리잡았다.그리고, 여행 사진들을 찍어 게시물을 올리기 시작했다. 개인 계정이 아닌 @B_travel이라는 아이디로 새로운 계정을 팠다. 시작은 단순히 취미용이었다.하지만 특이한 구도와 몽환적인 느낌, 하루하루를 닮은 짧은 문장에 점차 팔로워 수가 늘어났고, 어느새 사람들은 가희를 ‘비블’이라고 부르며 칭송했다.다른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는 것, 비블은 너무나도 자유로웠다. 자유로운 연애도 하긴 했지만 딱히 만남이 깊게, 오래도록 지속되진 않았다. 이제는 사랑조차 자유로운 감정이 되어버린 걸까. 그러던 어느 날, 비블로 살아간 지 일 년이 지났을 무렵. 한 팔로워가 댓글을 남겼다.- @jungth_12 : 비블님, 비블님 사진을 보면 늘 마음이 평온해요. 오늘도 멋진 사진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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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얼마 지나지 않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착하자마자 호텔방을 잡고 봄 내음을 맡으며 사진기를 들고 걷던 중, 가희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지하철역 앞, 한 남자가 다급히 걷다 어르신 한 명과 부딪힌 것.어르신은 중심을 잡지 못한 채 넘어지고 말았고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어르신을 지나쳤다.“저 자식 뭐야? 사과도 안 하고 저렇게 간다고?”주변에서는 지나가던 행인들이 어르신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곧장 그 남자를 불러 세웠다. “저기요!”“뭐? 나?”“반말하지 마시고요, 그쪽 때문에 어르신께서 넘어지셨잖아요. 사과는 하고 가셔야죠!”그 순간이었다. 남자의 눈빛이 일그러지더니, 대뜸 가희의 멱살을 움켜쥐었다.“오지랖 부리다 큰코 다치는 거야. 알아?”퉤에!입에서 튄 가래침이 가희의 신발 옆으로 뚝 떨어졌다. 비릿하고 더러운 냄새가 섞인 숨결이 코끝을 찔렀다.하지만 가희는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부릅뜬 채, 손목을 거칠게 털어냈다.“성격 한번 더럽네, 이거 놓으세요!”그 모습을 지켜보던 행인들이 다급히 신고를 했고, 결국 남성과 함께 경찰서로 향했다.‘와… 오자마자 재수 한 번 더럽게 없네.’***경찰서에 도착해서도 가희의 분노는 멈추지 않았다.반성 따윈 없는 가해자의 표정을 보니 괜히 더 혈압이 오르는 느낌이었다. “어디 싸가지 없이 어르신한테!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그러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듯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믿기지 않는 얼굴이 눈앞에 있었다. “태하 오빠?”맞다. 태하는 경찰이었고, 하필 자신이 온 파출소가 하필이면 태하 오빠가 근무하는 곳이였다니.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태하는 곧장 가희를 향해 다가왔다.“백가희, 네가 왜 여기 있어? 미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아니, 그보다 이게 다 무슨 일이야?”그렇게 모든 상황을 설명하고 조사를 받았다. 씩씩거리며 모든 일들을 털어놓자 이제야 좀 마음이 진정되는 것 같았다.‘아 맞다, 태하오빠!’그대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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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이현과 은하의 결혼식 날.결혼식이 끝나자마자 가희와 태하는 함께 한강으로 향했다. 태하는 라면을 호호 불며 먹는 가희를 멍하니 바라보았다.“배 안 불러? 식장에서도 엄청나게 먹던데.”“라면은 그냥 디저트로 먹는 거지. 그리고 스테이크 엄청 느끼했단 말이야.”“그게 다 어디로 들어가는지 의문이다.”“근데 오빠.”“응?”“결혼식 보니까 어때? 은하 언니 오빠 첫사랑이잖아.”아무렇지 않은 질문에 잠시의 정적이 흘렀지만, 그 정적은 생각보다 오래 가지 않았다. “은하는 이제 친구지.”“그게 가능해?”“응, 가능해.”“그럼 오빠 마음은 지금, 아주 확실하게 비어 있다는 소리네?”“또 무슨 말을 하려고 이래.”가희가 기다렸다는 듯이 눈을 반짝였다.“오빠가 먼저 연락했잖아!”태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내가 언제?”“내 사진을 보면, 늘 마음이 평온하다며.”“그게 무슨 소리야…?”“사실 이거 비밀인데… 내가 바로 비블이지롱!”태하는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가희는 핸드폰을 들어 자신의 SNS 계정을 보여주었다. “이거 봐, 맞지? 비블!”“그 비블이… 진짜 너였어?”태하는 입을 다물지 못한 채 한참 동안 가희를 바라봤다.비블은 진심으로 응원하고 좋아하는 계정이다.특이하지만 따뜻한 사진들도 마음에 들었고, 짧은 한 줄의 문장들로 그간 지친 마음을 위로받곤 했었다. 하지만 그게 정말 백가희였다니. 그 모든 위로를 백가희가 해줬던 거라니. “정말 내 사진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졌어?”“응, 그런 소질이 있는 줄은 몰랐네. 진짜 신기하다.”“나 사실… 그날 오빠가 남긴 댓글 보고 연락하고 싶었어.”“하지 그랬어.”“그냥… 그때는 뭔가 자신이 없었달까? 우리 오빠 마음이랑 좀 비슷했던 것 같아.”“백이현, 백가희. 너네 둘은 예전부터 진짜 놀랄 일 투성이 남매다.”그 말에 가희가 웃음을 터뜨렸다.“인정. 정상적인 남매는 아니지.”“뭔가 되게 고맙다, 네가 비블이라서.”생각지도 못한 말에 가희의 심장은 이미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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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0화

밤공기는 차분했고, 가로등 불빛 아래에 서 있던 가희가 태하의 차를 보자마자 손을 흔들며 다가왔다. 가희는 웃었지만, 태하는 차에서 내리면서도 웃지 않았다. “무슨 중대한 진술이라도 받으러 온 거야?”“백가희.”“뭐야… 혹시 나… 뭐 잘못했어?”“응.”순식간에 긴장감이 몰려온 가희가 마른침을 삼켰다.방금 전까진 엄청나게 설렜는데, 진짜로 무슨 잘못을 한 건가 싶어서.“뭔데 그래? 일단 미안해. 그러니까 표정 좀 풀어.”“바보같이… 나를 왜 아직도 좋아해.”“….”가희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설마 또 거절인가? 너무 자주 귀찮게 했나? 오늘 음식을 너무 많이 먹었나?별의 별 생각이 머릿속을 헤집었다.눈물이 찔끔 맺힐 듯 말 듯 입술을 꾹 다물고 있는 그 모습이 태하의 눈에는 너무나 작고도 애처로워 보였다. 팔을 벌려, 가희를 품안에 꼭 안아주었다. “그동안 많이 힘들었지.”“오, 오빠…”“늦었지만, 우리 이제라도 제대로 시작해 보자.”결국 참아왔던 눈물이 안도의 숨과 함께 터져버렸다.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전과는 달라졌다고 느끼긴 했지만, 오빠의 입에서 이런 고백이 나올 줄은 정말 몰랐다.“흐흑… 나 울어엉… 오빠아아앙…”태하는 어깨를 들썩이며 엉엉 우는 가희를 더 단단히 품 안으로 감쌌다.밤공기 속, 고백 위로 떨어지는 눈물에 마치 아팠던 시간들이 전부 다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언제까지 울 거야? 대답은 안 할 거야?”가희가 눈물 콧물 범벅으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흐아앙… 오빠앙… 오늘 집에 못 가.”“뭐?”“오빠가 책임져. 오빠가 나 울렸잖아.”“이게 진짜, 발랑 까져가지고.”“나도 이제 어른이라고!”***조명이 은은하게 켜진 침실 안.고요한 공기 속에서 서로를 막 갈구하기 시작하던 그때, 가희가 태하의 옆구리에 난 흉터를 보고는 모든 행동을 멈췄다.“이게 뭐야?”“아, 그거… 전에 범인 잡다가.”“개새끼! 죽여버릴 거야! 누구야!”이럴까 봐 말을 못 한 건데, 동료들한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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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1화

우주는 그렇게 꿈에 그리던 세진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입학식 날 학교 정문 앞에서 부모님, 은하와 함께 찍은 사진은 늘 지갑에 소중하게 담겨 있었다.처음 기숙사에 들어가던 날, 9살의 은하는 참 많이도 울었다. 새하얀 티셔츠에 곰돌이 가방을 멘 채 입술을 삐죽이며 매달렸다. 이미 코끝까지 빨개져 있었다.“오빠 꼭 가야 돼? 그럼 나는? 나느은!”“은하야, 오빠는 학교가 멀어서 기숙사에서 지내야 해. 자주 올 테니까 울지 마. 응?”“택시! 매일 택시 타면 되잖아! 흐아앙!”우주는 그 천진난만한 말에 웃음이 나올 뻔했지만, 지금 이 순간에 웃어버리는 건 너무 못할 짓 같았다. 대신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고 은하와 눈을 맞췄다.“엄마 아빠 말씀 잘 듣고, 숙제도 잘 하고, 편식하지 말고 잘 있을 수 있지?”“아니! 못해앵!”“거짓말쟁이. 어제도 혼자 잘 잤잖아.”“어제눈 오빠가 있었짜나아!”그 작고 서러운 목소리로 떼를 쓰는 통에, 결국 부모님이 은하를 말릴 수밖에 없었다.“은하가 자꾸 이러면 오빠는 멋진 의사 선생님 못 되는데?”“우리 우주가 은하 때문에 슬프겠네.”엄마 아빠의 그 한마디에 은하는 움찔했다. 눈물범벅인 얼굴, 그 작고 동그란 눈망울엔 진심이 가득했다.“오빠 정말 의사 될 거야? 엄마랑 아빠처럼?”“그럼, 멋진 의사가 돼야지! 그래야 우리 은하 아야 하면 고쳐주지.”그 말에 은하는 꺼억,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고 우주는 은하를 품 안에 꼬옥 안아주었다.아직 가슴팍까지 닿지도 못하는 작은 머리를 쓰다듬는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오빠 다녀올게. 전화도 자주 할게.”“진짜지?”“그럼, 진짜지.”은하의 눈망울은 여전히 그렁그렁했지만, 더는 떼를 쓰지도, 울지도 않았다. “엄마, 아빠. 연락 자주 드릴게요. 저 가요.”어머니는 우주를 꼭 안아주었고, 아버지는 덤덤하게 어깨를 토닥여주었다.“우리 아들, 장하네. 힘들어도 잘 이겨낼 수 있지?”“그럼요.”“아빠는 늘 아들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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