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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사랑의 궁극적인 목적: Chapter 251 - Chapter 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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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2화

은하는 결국 시말서를 작성하며 오후 반차를 함께 제출했다.회사 문을 나서자마자 곧장 지하철을 타고 민희의 주점으로 향했다. 하루 종일 가슴속에 억눌러둔 감정이 한 발자국 걸을 때마다 숨이 턱 막히게 차올랐다. [책임감 따윈 없는 분과 나눌 이야기는 없습니다.]사실, 회사만 아니었다면 뺨이라도 한대 쳐 주고 싶었다. 아니, 그저 엉엉 소리 내서 울고 싶었다. 가게 문을 열자 민희는 혼자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어? 은하야! 오늘은 좀 일찍 왔네?”하지만 곧 은하의 얼굴을 보고는 모든 행동이 뚝 멈췄다. 눈가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고, 입술은 굳게 닫혀 있었다.“야… 너 무슨 일 있었어?”은하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바로 앞에 있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나 소주 한 병만 줘.”민희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소주 한 병을 꺼내와 테이블 위에 놓아주었다.“뭔데 그래, 또 팀장한테 깨졌어?”은하는 잔을 채우자마자 한 번에 쭉 들이켰다.“나 오늘… 백이현 만났다?”믿을 수 없는 말에 민희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미친, 백이현? 어디서?”“우리 회사에 왔더라고. 그것도 투자자랍시고.” “뭐? 회사에? 직접?”“응.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그거 진짜 상상 이상의 또라이네. 말도 없이 떠날 땐 언제고. 와~ 양심은 어디다가 팔아먹었대?”민희는 어이없는 상황에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고, 은하는 빈 잔을 채우고 또 다시 들이켰다.울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고개를 숙이는 순간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근데 웃긴 건, 보자마자 심장이 멈추는 것 같더라. 그렇게 오랜 시간 아파했는데… 여전히 난… 하나도 달라진 게 없어.”민희는 말없이 은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5년동안 은하가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어떻게 버텨왔는지 곁에서 지켜보는 내내 얼마나 괴로웠는데.그래서 더더욱이 백이현을 용서할 수 없었다.***은하의 회사를 나온 이현은 태하가 근무중인 파출소를 찾았다.그에게 태하는 여전히 친구였고, 가장 보고 싶은 사람 중 한 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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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3화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하가 은하의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그만 좀 마셔라. 좀.”은하는 잔을 든 채 태하를 노려봤다.“이거 놔아! 나 오늘 술 마시려고 반차까지 썼는데에!”그러다 술기운에 억눌린 감정이 표면 위로 튀어 올랐다.목소리는 떨렸고,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이 고일 것처럼 번들거렸다.“나… 나 진짜… 그 자식 얼굴 보고 나니까 미치겠단 말이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못 하겠다고.”“5년이야. 5년. 그 긴 시간 동안 연락도 없다가, 이제서야 지 멋대로 나타난 거라고.”“알아. 다 아는데… 진짜… 너무 너무 미운데…”은하는 말끝을 흐리며 결국 입을 틀어막았다. 울음이 쏟아지는 걸 막으려는 듯, 손등으로 입을 누르며 고개를 돌렸다. 태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무슨 말을 해도 지금 은하의 마음을 온전히 위로할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희미한 조명 아래, 은하의 그림자가 테이블 위로 흐릿하게 드리워졌다.“가자. 데려다 줄 게. 너 취했다.”“아냐… 나… 혼자 갈 수 있어.”“오늘은 안 돼.”자리에서 일어난 태하가 은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그는 비틀거리는 은하를 자연스럽게 붙잡아주며 자세를 낮췄다.“업혀.”은하가 태하의 등에 천천히 몸을 기대며 중얼거렸다.“나… 나 엄청 무겁다아… 정태하…”“뭐래. 몸은 가벼운데, 마음이 무겁겠지.”태하는 익숙하게 은하를 등에 업고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겼다.은하의 이마가 어깨에 닿자 한줄기 눈물이 그의 어깨로 떨어져 내렸다. ***은하의 집 앞.태하는 은하를 업은 채 익숙한 듯 비밀번호를 누르고 현관으로 들어섰다.침실 불을 켜자 은은한 노란 빛이 방 안에 감돌았고, 잠이 든 은하를 조심스럽게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주었다.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현의 턱이 단단히 다물렸다.아무 말도 하지 못 했지만 눈빛 만큼은 뜨겁게 일렁였다.후회와 질투, 혼란, 그리고 어쩌면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소유욕까지 담겨 있었다.“그래, 너라도 강은하 옆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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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4화

이천 외곽에 위치한 한성레더 가죽 공장.공장 진입로에 이제 막 도착한 한 대의 승용차 안, 운전석에 앉은 은하는 주차를 마치고 깊은 숨을 내쉬었다.아침부터 아랫배에 느껴지던 묵직한 통증. 배를 잔잔히 조여오던 그 느낌이 자꾸만 강해지고 있었다. 이마에 맺힌 땀이 흐르자, 은하는 핸드백에서 진통제 하나를 꺼내 물 없이 삼켰다.그리곤 손등으로 식은땀을 훔치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중요한 미팅이야. 조금만… 조금만 버티면 돼…”문을 열고 내려서는 샘플들이 놓인 작업장을 향해 천천히 걸었다.입구 앞에 서자, 공장 관계자가 미소를 지으며 은하를 반겼다. “은하 씨! 또 뵙네요. 안 그래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네, 안녕하세요. 샘플부터 바로 확인해도 될까요?”“그럼요.”안으로 들어서자 따뜻한 가죽 냄새와 함께 기계가 돌아가는 묵직한 소음이 바닥을 진동 시켰다. 은하는 익숙한 듯 서류 가방을 내려놓고, 가죽 샘플이 펼쳐진 테이블 앞으로 향했다.“이번 시즌은 클래식한 라인을 유지하면서도 질감에 포인트를 줄 생각이에요. 이쪽이 지난번 라인보다 자연광 반사가 부드러워서 괜찮아 보이네요.”“아, 그럼 이쪽으로 샘플 두 개 더 제작 요청 넣을까요?”“네, 이 결로 하나, 저쪽… 톤 다운 버전으로 하나씩 부탁 드릴게요.”공장 관계자들과 나누는 말은 명확했고, 샘플을 살펴보는 눈빛은 집중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러던 중, 관계자 한 명이 은하의 이마에서 흐르는 식은땀을 보곤 걱정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은하 씨, 근데 어디 아파요?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요.”“아, 괜찮아요. 어제 술을 좀 마셔서요.”“아이고, 여기까지 운전 하고 오시느라고 힘드셨겠어요.”은하는 겨우 겨우 숨을 고르고 사무실 안쪽 회의 테이블에 앉았다.준비해온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펼치며면서도 무의식적으로 입술을 깨물었다.아랫배에 느껴지는 통증은 여전했지만, 참을 수 있는 정도라고 스스로를 세뇌시켰다.“지난 분기부터 준비한 라인업이고요. 다음 시즌 컨셉은 ‘디스트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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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5화

엔진음이 낮게 울리며 차가 출발했다. 몰려드는 복통에 이를 악물던 은하는 화를 낼 기력조차 없다는 듯, 창문에 고개를 기댄 채 눈을 감았다.“강은하.”“….”대답은 없었다.하지만 이현은 안도했다. 이렇게라도 은하가 잠시 쉬길 바랬다.그렇게 아무 말도 없는 정적 속에서 두 사람이 탄 차는 병원으로 향했다. 잠시 후 도착한 병원 응급실 앞.이현은 브레이크를 밟자마자 문을 열고, 조수석 쪽으로 다가갔다. 문을 여는 순간 은하의 고개가 그대로 떨궈졌다. 은하는 잠이 든 게 아니라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린 거였다.“…!”“강은하!”힘을 잃은 몸은 고스란히 이현 쪽으로 기울어졌고, 이현의 머릿속은 말그대로 하얗게 물이 들었다. “씨발… 대체 얼마나 아픈 거야.”그대로 은하를 안아 들고 응급실로 안으로 뛰어들었다.이 와중에도 팔 안에 담기는 무게에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했다. 전보다 야위어 보이긴 했지만, 이 정도로 가벼울 줄은 정말 몰랐다.간호사들이 달려와 응급실 커튼을 급하게 거두었고, 이현은 그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며 목소리마저 덜덜 떨었다.“아무래도 심한 복통이 있는 것 같아요.”진찰과 검사가 한동안 진행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 한 명이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왔다.“강은하 환자 분 보호자세요?”“…네.”“이쪽에 서명 좀 부탁 드립니다. 급성 충수염입니다. 바로 수술해야 합니다. 더 늦어지면 위험해요.”뭐? 맹장이 터졌다고?그 상태로 이천까지 운전을 하고 와 미팅까지 했다는 사실이 기가 막히면서도, 어이가 없었다.그는 떨리는 손으로 보호자란에 천천히 이름을 적었다.“바로 수술하면 괜찮은 거죠?”“네. 더 늦기 전에 오셔서 다행입니다.”이현은 그대로 수술실 앞에 주저앉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고, 한참을 아무 말 없이 숨만 골랐다.그리고,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태하에게 전화를 걸었다.시큰둥한 목소리가 곧장 들려왔다. “뭐냐 또?”“강은하, 방금… 수술 들어갔어.”수화기 너머, 숨소리가 단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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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6화

퇴근을 한 태하가 정신없이 병원으로 들어서던 중, 회복실 앞 의자에 앉아 있는 낯익은 실루엣과 마주쳤다.백이현. 그와 잠시 눈길이 잠시 마주쳤지만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마치 투명 인간을 대하듯 외면하고 걸음을 옮기던 찰나, “정태하.”이현의 목소리에 걸음이 뚝 멈췄다.이현은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한 발, 그리고 또 한 발. 그와의 거리를 좁히며 다가왔다.“얘기 좀 하자.”태하의 눈동자에는 싸늘함만이 깃들어 있었다.“그럴 자격 없을 텐데.”“잠깐이면 돼. 들어만 줘라. 부탁한다.”결국 휴게실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은 두 사람.한참의 침묵 후, 이현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왔다.“제복 잘 어울린다. 진짜 경찰이 되긴 됐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할 말이나 해.”이현은 이제서야 태하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다.“그때, 한성그룹이 무기 밀매로 연루돼 있었어. 이혼으로 갈등이 커지면서 그 사실이 외부로 새어 나가기 시작했고.”“….”“선택지가 없었어. 가족을 지켜야 했으니까.”태하는 뒤늦게 알게 된 이유에 오히려 더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큰 일이었다면, 정말로 떠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면 더더욱 믿고 말해줄 순 없었던 걸까?“적어도 나한테는 말해줄 수 있었잖아.”“어떻게 그래. 경찰이 꿈인 놈한테, 그 더러운 일을 어떻게 말해.”태하의 입이 다물렸다. 그럼 지금은? 경찰이 된 자신 앞에서 대체 뭘 믿고 그런 위험한 일을 술술 털어놓는 건지.이현의 말이 이어졌다.“악을 쓰면서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놨어. 한국으로 돌아오려고.”“너만 악쓴거 아니야. 은하는? 너 그렇게 비겁하게 떠나고, 내내 어떤 상태였는지 알기나 해?”“…”“됐다. 근데 백이현, 우주 형님은 아마 용서 못하실 거다. 그렇게만 알아둬.”이현은 고개를 숙인 채 한숨만을 내쉬었고, 태하는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이제 좀, 이제야 좀 회사 다니면서 정신 차리고 살아내려는 순간이었어. 진짜로 괜찮아지나 싶었던 그 순간에… 왜… 하필 이렇게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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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7화

어색하고 무거운 정적만이 흐르던 순간, 병실 문이 열리더니 산뜻한 느낌의 간호사가 차트를 들고 들어왔다.“강은하 환자 님~!”상황과 어울리지 않는 밝고도 해맑은 목소리에 은하와 이현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간호사는 환하게 웃으며, 오직 매뉴얼에만 익숙한 말투로 링거줄을 체크했다.“일단 복도부터 천천히 걸으셔야 해요! 그리고 지금부터 제일 중요한 건 방귀에요! 방귀부터 뀌셔야 식사가 가능하십니다.”은하는 몰려드는 민망함에 이현을 똑바로 바라보지도 못한 채, 입술만을 달싹였다.“나가. 진짜 나가….”이번만큼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미안해. 나갈게.”이현이 병실을 나서고, 체크를 마친 간호사는 눈치 없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어머, 다들 방귀 앞에선 평등한데 말이죠!”은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이런 민망한 상황이 벌어질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왜 하필… 왜 지금…”은하는 링거대를 붙잡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복부가 당기듯이 아팠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누워 있는 게 더 수치스러웠다.복도를 걷기 시작하는 힘겨운 발걸음이 이어졌고, 이현은 그런 은하를 멀리서 지켜보다 마치 그림자처럼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잠시 후, 은하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고개는 돌리지 않았지만, 그 커다란 몸이 자신을 따라다닌다는 사실을 어떻게 모를 수 있을까. “왜 자꾸 따라와? 가라니까?”“너 방귀 뀌면 갈게. 나 진짜, 그래야 안심될 것 같아서.”갑자기 튀어나온 방귀라는 단어에 은하의 어깨가 흠칫했다.“미쳤나 봐…”속으로만 삼켜야 할 말이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이현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그 자리에 서 있었고, 은하는 다시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속으로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남이사 맹장 수술을 하든, 방귀를 뀌든 자기가 무슨 상관인지. 병원까지 데리고 온 건 알겠다만 왜 하루 종일 병원에만 있는 건지.그렇게 한가한가? 투자회사 대표는 개풀. 백이현이 그럼 그렇지. 복도를 한참 걷던 중,뽀옹─아주 작지도,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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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8화

며칠 후, 퇴원을 한 은하가 회사에 복귀했다.평소처럼 커피잔을 한 손으로 감싼 채, 느릿하게 모니터를 킨 순간 팀장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강 사원, 괜찮아? 얼굴은 아직 좀 창백하네.”“이제 괜찮습니다.”팀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베인 쪽에서 강 사원 디자인 시안이랑 컨셉 정리본을 요청했어.”젠장할, 또 베인 파트너스다. “네? 제 시안을요?”“오늘 중으로 정리해서 보내자. 좀 급해. 이번 투자는 너한테 달려있어.”“그,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백이현 대표가 네 시안을 특히 긍정적으로 봤더라고.”백이현, 그는 이제 회사에서까지 은하의 일상을 흔들어 놓고 있었다. 때려치우고 싶다는 충동이 목 끝까지 올라왔지만, 역시나 자존심이 발목을 붙잡았다.거기다 이미 백이현 때문에 시말서까지 쓴 상태였으니까.“정리해서 오늘 안으로 보내겠습니다.”“부탁해. 너무 무리하진 말고.”은하는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며 천천히 마우스를 움직였다.신경은 쓰였지만 손끝이 다시 되살아났다.파일을 열고, 색상 팔레트를 조정하고, 라인의 디테일을 정리해 나갔다.지금 은하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였다. 일로 감정을 덮는 것.***밤 10시. 사무실엔 대부분의 불이 꺼져 있었고, 디자인 팀 조명만이 희미하게 켜져 있었다. 은하는 책상 위에 놓인 커피 한 잔을 시간으로 식혀가며 여전히 모니터 앞에 앉아 있었다.자리를 비운 동안 밀린 일은 가득했고, 거기에 백이현에게 보낼 시안까지. 솔직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눈은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집중력은 한계를 넘긴 상태.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긴 숨을 내쉬는 그 순간, 타닥, 타닥.뒤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등골이 서늘하게 굳었다.이 늦은 시간에 올 사람은 없었다. 팀장도, 디자이너들도 모두 퇴근한 지 한참이었고 불이 켜진 자리라고는 자신의 자리 뿐이었다.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입구 쪽에 서 있는 백이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하."은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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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9화

며칠 뒤, 베인 파트너스로부터 정식 투자 확정 메일이 도착했다.“됐대! 우리 회사 투자 확정이래!”“와, 대박! 이거 진짜 큰 건인데!”사무실은 연달아 터지는 환호성으로 시끄러웠다. 디자이너 몇몇은 자리에서 일어나 하이파이브를 나눴고, 팀장도 감격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다들 고생했다! 강 사원, 특히 네 시안 기획서가 큰 일을 했어.”“…감사합니다.”주변은 환하게 들떠 있었지만 은하의 얼굴엔 흔한 미소 하나 없었다. 축하와 웃음으로 가득한 공간, 은하의 마음속엔 여전히 회복되지 않은 감정의 조각만이 남아 있었다.***그날 저녁, 민희는 은하의 말을 전해 듣고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진짜야? 투자 확정이라고? 백이현네 회사?”“응….”“와. 걔 지금… 일부러 그러는 거 맞지?”두 사람의 대화에 말없이 소주잔만 만지작거리던 태하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나… 너희한테 할 말 있어.”은하와 민희가 동시에 태하를 바라보았다.태하는 깊게 숨을 들이쉰 뒤, 낮고 무거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백이현이 5년 전에 왜 떠났는지. 너희들도 알아야 할 것 같아서.”잔을 들던 은하의 손이 미세하게 멈췄고, 민희는 긴장은 하면서도 오히려 목소리를 높였다.“뭐…? 이유? 이제 와서? 됐다 그래!”“당시 회사가 위험한 일이랑 좀 얽혀있었나 봐. 그게 부모님 이혼 문제로 터질 뻔 했고, 가족들까지 위험해지니까. 백이현은 그걸 막으러 프라하로 간 거야.”“뭐야? 넌 언제부터 알고 있었어?”“나도 이번에 은하 입원했을 때 알았어. 내 꿈이 경찰이라 나한테도 말 못했다더라.”은하는 아무 말이 없었다. 잔을 든 손끝이 조금씩 흔들리고 있었다. “이번엔 아버지도, 한성그룹도 다 끊고 돌아온 거야.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냐는 말도 맞지만, 그냥. 다 알면서도 욕만 먹게 둘 수는 없으니까.”“됐어… 상관없어.”은하의 대답에 태하는 한숨을 내쉬었다.그리고 오랫동안 건네지 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은하야. 나 너 많이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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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0화

이현의 눈이 순식간에 커졌다. 들어가서 얘기를 하자는 말은 용서도, 기회도 아닐 수 있다는 걸 잘 알았다. 하지만 굳게 닫힌 문이 열리는 소리는 때때로 작고도 조용한 법. 왠지 모를 기대감이 피어올랐다.은하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현관문을 열자, 이현이 그 뒤를 따라 조심스레 들어섰다. 거실엔 고요가 내려앉았다. 소파 위, 은하는 무릎 위로 얹은 손을 꼭 말아쥔 채, 눈만 아래로 내리 깔았다. 그렇게 침묵이 이어지던 순간, 마침내 은하가 입을 열었다.“태하한테 다 들었어. 너… 떠났던 이유.”목소리는 작고 고요했지만, 그 속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한 상처들이 선명하게 배어 있었다.이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언젠가는 자신의 입으로 털어놓고 싶었다. 진심으로 사과하고 빌고 싶었다. 결국 또 늦어버린 걸까 라는 생각이 들던 순간, 은하의 목소리가 다시 흘러들었다.“난 아무것도 모르고 도대체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나, 어디서부터 어긋난 걸까. 수천 번, 아니 수만 번을 생각했어.”“미안해.”“기다려 달라는 말 정도는 하고 다녀와도 됐잖아.”“그냥… 겁이 났어.”“뭐…?”“떠나기 전에 찾아가려고 했어. 근데, 네 얼굴을 보는 순간 가족이고 뭐고 다 내팽개칠 것 같더라.”“….”“근데, 그러면 안 되는 일이었어. 가벼운 문제가 아니었어.”말없이 흐르는 고요 속에서 은하는 그저 이현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미련했지. 어리기도 했고. 그래도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나, 진짜 최선을 다했어.”오랜 시간 동안 그를 미워했던 이유는 그가 떠난 이유를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아팠던 시간만큼, 백이현 역시도 아팠을까. 정말 내 생각을 하긴 했던 걸까.“솔직히 털어놓고 기다려 달라고 했으면, 나는 기다렸을 거야. 분명히.”“알아. 지금도 그 순간을 매일 매일 후회 해. 미안해. 미안해 강은하.”이현이 은하의 손목을 살짝 붙잡았다. “약속할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믿어주라. 다신 놓지 않을게. 무슨 일이 있어도.”한참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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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1화

창 밖에 푸르스름한 빛이 비추는 새벽 녘, 이현은 완전히 지쳐버린 은하의 등을 어루만졌다.마치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평화로움을 찾아가듯이.“우리 내일 퇴근하고, 우주형님 뵈러 갈까?”“…우리 오빠?”“응. 나 형님 너무 보고 싶었는데, 저번에 제대로 인사를 못 드려서.”“너 괜찮겠어?”“방탄복 하나 챙겨야 하나.”은하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그의 심장이 느릿하게 뛰고 있었다. 평온한 리듬이었다.“고마워. 백이현.”“뭐가?”“더 늦기 전에 다시 와줘서.”이현은 그런 은하의 등을 한 번 더 어루만졌다. 손끝이 닿는 곳마다 따뜻한 기류가 흐르는 듯했다. 그동안 서로를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었는지 마음이,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그가 은하의 이마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너는 나한테 늘 돌아올 곳이야. 앞으로도 그건 마찬가지고.”은하는 대답 대신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모든 불안과 상처가 그 한마디에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의 체온에 기대어, 아주 오랜만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다음날 저녁, 해가 기울고 퇴근을 하는 은하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건물 앞 인도,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이현의 실루엣이 또렷하게 보였다. '뭐야, 백이현.'이현은 입술을 씰룩거리며 은하에게 다가가 꽃다발을 건넸다. 보랏빛 라벤더와 흰 장미가 어울어진 꽃다발이었다.“퇴근 축하해!”은하는 꽃을 받아 들고, 라벤더 향기를 살짝 들이켰다. “라벤더잖아.”“우리 둘의 시그니처 꽃이잖아.”“누가 그래? 5년동안 내가 제일 싫어했던 꽃인데.”“야!”“뭐.”깨갱.이럴때는 한 발자국 물러나는 게 베스트다.“우주 형님한테는… 말씀 드렸어?”“응. 집에 가기 전에 잠깐 어디 좀 들리자.”“어디?”“우리 별이 옷 사주고 싶어서.”이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이? 아무리 생각해도 우주형님이 개를 키우실 인물은 아닌 것 같고.“뭐? 별이? 별이가 누군데? 설마 우주 형님이랑 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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