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날 저녁, 설화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샤워를 마친 설화는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감싸 쥔 채 냉장고 문을 열었다. 차가운 생수를 들이키는 동안에도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물기가 서늘하게 식어 갔다. 밤은 깊었고, 오래된 빌라 안은 지나치게 고요했다.딩동. 딩동.정적을 깨고 현관 초인종이 두 번 울렸다. 설화는 마시던 물병을 내려놓고 그대로 멈춰 섰다. 잠시 망설임 끝에 문을 살짝 열어 밖을 확인한 뒤, 천천히 잠금장치를 풀었다.문 앞에는 한두 번 본 적 있는 미래드림 직원이 서 있었다. 단정한 차림으로, 손에는 지퍼를 끝까지 잠근 검은색 보스턴백이 들려 있었다. 설화는 그걸 보는 순간, 말보다 먼저 무게부터 느꼈다.“대표님께서 전해드리라고 하셨습니다.”남자는 짧게 말하고 주소가 적힌 메모지 한 장을 내밀었다. 설화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방을 건네받았다. 손끝에 걸리는 묵직함에, 더 묻지 않아도 될 것만 같았다.문이 닫힌 뒤에도 설화는 한동안 현관에 서 있었다. 보스턴백을 발치에 놓여 있었고, 메모지에는 삼청동 주소 하나가 반듯하게 적혀 있었다.어제는 말없이 와주더니, 오늘은 또 이런 식으로 나오네.설화는 낮게 헛웃음을 흘리고는, 가방을 한 번 내려다봤다. 손끝에 남은 묵직함이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았다.밤은 그렇게 지나갔다.현관에 남은 정적도, 마음 한구석에 걸린 찜찜함도 완전히 가시지 않은 채.다음 날 아침, 설화는 옷장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삼청동이라는 단어 하나가 이상하게 사람을 조심스럽게 만들었다. 티셔츠를 꺼냈다가 넣고, 청바지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거울 앞에서 옷을 대어 보던 설화가 결국 작게 웃었다.“이젠 옷까지 신경 써야 하고.”혼잣말은 방 안에 낮게 떨어졌다. 옷장 안쪽에서 대학 시절에 입던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꺼냈다. 옷을 털자, 묵은 냄새와 먼지가 희미하게 일었다. 설화는 손바닥으로 천을 눌러 주름을 폈다.택시에 오른 뒤에는 창밖만 봤다. 메모지에 적힌 주소는 삼청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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