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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 흔적

병원 건물을 나왔을 때 하늘은 조금 더 어두워져 있었다. 구름이 낮게 깔리면서 빛이 흐려졌고, 건물 유리창에 비친 거리 풍경도 오전보다 차분해 보였다. 병원 앞 인도에는 보호자 몇 명이 서서 통화를 하고 있었고, 구급차 한 대가 조용히 출입구 옆에 대기하고 있었다.이수는 잠시 발걸음을 늦췄다.몇 년 전에도 같은 자리를 지나왔을 것이다. 그때는 병원에서 나오는 길이 마치 어딘가에서 밀려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조금 달랐다. 상황을 다시 확인하고 나오는 사람의 걸음이었다.하빈이 옆에서 말했다.“생각보다 남아 있는 게 많네.”그는 방금 확인했던 행정 기록을 떠올리고 있었다. 산소호흡기 제거 시각, 담당 의료진 이름, 보호자 서명.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병원 시스템 안에는 여전히 그날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이수는 고개를 끄덕였다.“기억보다 기록이 정확하네.”그녀의 말은 단순한 감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민준이 던져 온 이야기들은 대부분 기억과 감정에 기대어 있었다. 그러나 병원 기록은 그와는 다른 종류의 자료였다. 감정이 아니라 시간과 절차로 남은 기록이었다.잠시 후 하빈이 물었다.“경찰 얘기 들었지.”이수는 짧게 대답했다.“응.”직원이 했던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고 있었다. 그날 병원 복도에서 누군가 사진을 찍었고, 경찰이 한 번 병원에 들렀다는 이야기. 지금까지 민준이 들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사진과 연결될 수 있는 단서였다.하빈이 말을 이었다.“그 사진… 민준이 찍은 걸까.”이수는 잠시 생각했다.“가능성은 있지.”그리고 덧붙였다.“근데 확실한 건 아니야.”그녀는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병원 건물을 돌아봤다. 높은 외벽과 층마다 반복되는 창문들이 차갑게 서 있었다.“민준이 직접 찍었을 수도 있고.”이수가 말했다.“아니면 누군가에게 부탁했을 수도 있어.”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그 사람 성격이면 그럴 수도 있지.”민준은 언제나 직접 손을 더럽히는 쪽보다는 상황을 만들어 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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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7. 유일한 증거가 아닐 수도 있다

카페 창가 자리에서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병원 건물이 유리창 너머로 그대로 보였고, 그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잔잔한 그림처럼 흘러갔다. 누군가는 서류 봉투를 들고 있었고, 누군가는 휴대폰을 귀에 댄 채 빠르게 걸어갔다. 그 풍경은 평범했지만, 이수에게는 조금 다르게 보였다. 몇 년 전의 어느 오후도 아마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하빈은 노트북을 다시 열었다.조금 전 확인했던 신고 기록을 다시 화면에 띄웠다. 단 한 줄로 남아 있는 기록이었지만, 그 한 줄이 의미하는 범위는 생각보다 넓었다.“신고자가 누구인지는 안 나오네.”그가 말했다.이수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병원 내부 신고면… 직원일 수도 있고.”“환자 보호자일 수도 있지.”하빈이 말을 이어받았다.잠시 생각하다가 덧붙였다.“혹은 복도에 있던 누군가.”이수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기록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져 있었다. 지금까지 민준이 꺼내 들 가능성이 있는 사진은 단순히 누군가 우연히 찍은 장면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신고 기록이 있다는 사실은 그 상황이 더 많은 사람들의 시야에 들어왔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사진이 하나만 있는 건 아닐 수도 있겠네.”그녀가 조용히 말했다.하빈이 고개를 들었다.“같은 생각 했어.”그는 화면을 넘기며 말했다.“그날 복도에 사람이 있었으면… 휴대폰 카메라도 있었을 거야.”이수는 잠시 창밖을 바라봤다.“그럼 민준이 들고 있는 게…”말을 끝까지 이어가지 않았다.하빈이 대신 말했다.“유일한 증거가 아닐 수도 있어.”잠깐 정적이 흘렀다.그 말은 지금까지의 흐름을 조금 바꾸는 생각이었다. 민준이 사진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곧 사건의 진실을 결정하는 카드가 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사진이 여러 장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같은 장면이라도 보는 위치와 순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이수는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그럼 우리가 확인해야 할 게 하나 더 생겼네.”하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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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8. 선을 넘는 순간

저녁 무렵, 미용실 안은 평소보다 조용했다.창밖의 빛이 서서히 낮아지면서 거울 위로 길게 번졌고, 실내의 공기도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하루 동안 이어졌던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긴 뒤 찾아오는 정적이었다.이수는 마지막으로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쓸어 담았다.가위를 정리하고 수건을 접어 선반 위에 올려두는 동작이 익숙하게 이어졌다. 몇 년 동안 반복해 온 하루의 마무리였다. 평소 같으면 이 시간이 되면 몸이 자연스럽게 긴장을 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몸은 평소와 같은 움직임을 하고 있었지만, 생각은 아직 멈추지 않은 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하빈은 창가 근처 의자에 앉아 있었다.노트북 화면은 이미 꺼져 있었지만 그는 여전히 화면을 바라보는 자세로 앉아 있었다. 머릿속에서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계속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이수도 알고 있었다.“경찰 쪽은?”이수가 물었다.하빈은 잠시 고개를 들었다.“아까 연락 왔어.”그는 말을 천천히 이어 갔다.“출동 기록은 남아 있대.”이수의 손이 멈췄다.“정식 사건으로 접수된 건 아니지만… 병원 내부 신고가 들어와서 순찰차가 한 번 들렀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더라.”이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병원 직원이 했던 말과 연결되는 이야기였다. 그날의 상황이 병실 안에서만 끝난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었다.하빈이 말을 덧붙였다.“복도에서 누가 사진 찍었다는 얘기도 들었다고 하더라.”이수의 시선이 하빈에게 향했다.“누군지 알아?”하빈은 고개를 저었다.“거기까지는 기록이 없대.”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근데 하나 이상한 게 있어.”“뭔데.”“사진 얘기가… 경찰이 아니라 병원 쪽에서 먼저 나온 것 같아.”이수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병원?”“응.”하빈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누군가 병원 안에서 먼저 문제를 제기했을 가능성이 있어.”이수의 머릿속에서 몇 가지 장면이 동시에 떠올랐다. 병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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