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Chapter 121 - Chapter 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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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장

“지나치게 대놓고다?”준현은 오늘 아침 출근하기 전에 도현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삐뚤어진 미소를 지었다.“누군가 의심하기 시작하면 어쩌려고 그러냐니…”.그는 후회라고는 조금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로 나직하게 중얼거리며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두 팔을 가슴 앞에 포갰다.‘그들이 의심하든 말든 상관없어. 어차피 내 결혼 생활은 이미 망가졌으니까. 그리고 지아의 결혼 생활 역시 처음부터 제대로 된 적이 없었고.’그렇게 몇 초가 흘렀다.무슨 생각에서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준현은 책상 위에 놓인 아이패드를 집어 들어 CCTV 앱을 실행했고, 손을 빠르게 움직여 저택에 설치된 카메라에 접속했다.그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단 하나였다. 지아가 새 방으로 옮겼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러나 다음 순간, 준현의 숨이 턱 막혔다.화면에는 서영이 지아의 머리카락을 움켜쥔 채 거칠게 잡아당기는 모습이 선명하게 비치고 있었다. 지아의 몸은 휘청거리고 있었으며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두 손은 본능적으로 서영의 손을 떼어내려 애쓰고 있었다.“지아… 서영?”준현의 목소리가 낮게 흘러나왔다. 거의 으르렁거리는 것처럼 들릴 정도로 깊고 거칠었다.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이패드를 책상 위에 거칠게 내려놓은 뒤 곧바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고, 손가락으로 저택의 전화번호를 빠르게 눌렀다.그의 발걸음은 단호했고, 그렇게 사무실을 빠져나갔다.전화 연결음이 한 번, 두 번 울렸지만, 빌어먹게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젠장.”준현이 거칠게 이를 악물었다.“집에 있는 인간들은 다 어디 간 거야?”엘리베이터 문이 거의 닫히려는 순간, 두꺼운 서류철을 들고 있던 민재가 급하게 나타났다.“대표님, 회의가 10분 후에 시작됩니다.”민재가 조심스럽게 보고했다.“미뤄. 오후로.”준현은 차갑게 말을 끊으며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고, 망설임 없이 민재를 밖으로 밀어냈다.민재의 입이 떡 벌어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빠르게 닫히는 엘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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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장

명희는 깊게 미간을 찌푸린 채 큰며느리를 바라보았다. 한편 경희의 몸 뒤에 여전히 숨어 있던 지아는 서영이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을 듣자 긴장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그게 무슨 말이야?”명희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수현이의 아이가 아니라면 대체 누구의 아이란 거냐? 네가 어떻게 수현이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아?”“사모님!”경희는 지아를 바라보며 두 손을 들어 그녀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었다. 겉으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 역시 마음속으로 조금 전 서영이 한 말이 정말 사실인지 의문을 품고 있었다.서영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뱉었다.“네, 알아요. 그 아이가 서방님의 아이가 아니라는 걸.”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왜냐하면… 제가… 제가 직접 들었거든요. 바로 그 사람한테서…”“한서영.”무겁게 가라앉은 목소리가 문 쪽에서 들려왔다.그곳에는 준현이 서 있었다. 차가운 눈빛과 가쁜 숨을 내쉬는 모습에서 그의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났고, 무겁고도 단호한 발걸음은 곧장 아내를 향해 다가갔다.“지금 뭐 하는 거야! 어?”준현은 아내의 팔을 잡아당겼고, 서영은 그의 앞을 마주 보도록 몸이 돌아갔다.“제수씨가 임신한 걸 알면서도 감히 손을 대?”서영의 눈빛이 날카롭게 변했다. 또다시 남편이 자신의 앞에서 지아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왜 그러는 거예요, 여보? 왜 항상 동서만 감싸는 건데!”서영이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작은 턱이 단단하게 굳었고, 감정을 억누르느라 가슴이 빠르게 오르내렸다.“나는 당신 아내잖아요. 그런데 왜 당신은 한 번도 나를 감싸주지 않는 건데요?”서영은 자신의 몸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마치 자신이 아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준현은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의 목소리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차갑고 날카롭게 흘러나왔다.“뭘 감싸줘야 하는데?”그가 차갑게 덧붙였다.“네 잘못을?”“여보…”서영의 목소리가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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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장

“사모님, 누워서 좀 쉬세요.”경희는 서둘러 지아가 침대에 누울 수 있도록 부축했다.“많이 놀라셨겠어요.”중년 여인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맺혀 있었다.지아는 침대 머리맡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은 채, 아직도 가쁘게 이어지고 있는 호흡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썼다.경희는 화장대로 걸어가 빗을 집어 들고 다시 지아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길로 지아의 머리를 빗어 주며, 조금 전 있었던 소동 때문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차분하게 정돈해 주었다.방 안은 이제 조용했다. 그곳에는 두 사람만 남아 있었고, 준현과 서영, 그리고 명희는 지아가 편히 쉴 수 있도록 밖에서 일을 마무리하기로 했다.“머리 괜찮으세요?”경희가 조용히 물으며 재빠른 손가락으로 지아의 관자놀이를 부드럽게 마사지했다.“제가 좀 주물러 줄게요. 그래야 어지럽지 않을 거예요.”지아는 천천히 침을 삼켰다.“고마워요. 그런데 이모님은 괜찮아요? 머리채까지 잡혔으니 분명 아팠을 텐데.”지아가 경희의 머리 상태를 살펴보려고 손을 뻗었지만, 여인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붙잡아 막았다.“저는 괜찮아요, 사모님. 걱정하지 마세요.”경희가 안심시키듯 미소 지었다.“제가 나이는 좀 들었어도 아직 힘은 세요. 임신한 사모님과는 다르니까요.”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작은 미소를 지었고, 얼굴에는 어딘가 자랑스러워하는 기색까지 어려 있었다.“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저는 아까 정말 감탄했어요. 사모님이 큰 사모님을 그렇게까지 밀어서 뒤로 벌렁 넘어뜨릴 줄은 몰랐거든요.”지아는 고개를 숙였고, 입가에는 작은 미소가 피어올랐다.그녀는 자신의 배를 천천히 쓰다듬었다. 마치 그 안에 있는 작은 생명에게 고맙다는 듯한 손길이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작은 생명이 그녀에게 용기와 힘을 준 것만은 분명했다.철컥.그때 방문이 열리더니 은선이 생수 두 병을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저도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금 들었어요, 사모님.”은선은 조용히 말하며 가져온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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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장

‘알고 보니 이 집에서 교활한 사람이 나뿐만은 아니었네.’ 서영은 속으로 중얼거렸다.‘남편의 친자식이 아닌 아이를 가진 사람도 나만은 아니었고.’가슴속은 격렬하게 뒤흔들리고 있었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도 드러나지 않았다.‘동서의 임신이 막내 서방님 요구 때문에 이루어진 것이든 아니든, 결국 중요한 건 동서가 품고 있는 아이가 진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은 자식이 아니라는 거야. 그러니 그 임신을 지나치게 떠받들 필요도 없어.’서영은 잠시 눈을 감았다가 길게 숨을 내쉬며, 마치 뒤엉킨 감정을 다시 정리하려는 듯 천천히 마음을 가라앉혔다.“아까 아래층에 있는 지아의 방에서 소란이 좀 있었다.”명희가 지호의 질문에 대답하며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기색이 서려 있었다.“준현이가 지아에게 너무 신경 쓰는 걸 보고 서영이가 질투해서 말이지. 그러다 지아 배 속의 아이가 수현이 아이가 아니라고까지 몰아붙였고.”명희는 그 사실을 숨김없이 설명했다.지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서방님의… 아이가 아니라고요?”그녀가 말을 더듬으며 묻자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졌다.명희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그게 지금 내가 묻고 있는 거다. 사실 나도 그 문제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어. 하지만 서영이가 직접 그런 말을 했다는 건 뭔가 알고 있다는 뜻이잖아?”명희의 시선이 다시 서영에게 단단히 고정됐다.“이제 나한테 설명해.”서영은 무겁게 침을 삼켰다. 그리고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지호를 바라보았고, 지호는 본능적으로 자신의 배를 감싸고 있었다.지호의 얼굴에 드러난 두려움은 너무나도 선명했다. 하나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또 다른 비밀까지 함께 끌려 나와 수면 위로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서영은 천천히 손가락을 움켜쥐었다. 그러자 조금 전 준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녀의 큰 비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지금 여기에서 억지로 입을 열어 모든 것을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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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장

“수현아…” 지호가 나직하게 불렀다.“지호야, 어서! 빨리 병원으로 가. 아니면 지금 당장 네 산부인과 의사한테 연락해.”수현의 목소리에는 점점 더 짙은 불안감이 묻어났고, 거의 패닉에 빠진 듯한 기색까지 느껴졌다.“아니면 내가 직접 의사한테 연락할게. 집으로 가서 진찰해 달라고 할게.”그는 도현에게 집으로 돌아와 달라고 하는 것보다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는 듯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그때 갑자기 지호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수현의 다급함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웃음이었다.수현은 어리둥절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이런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와?”지호는 여전히 웃음을 참지 못한 채 키득거렸다.“나 안 먹었어, 수현아. 그냥 너한테 장난친 거야.”그녀의 목소리는 가볍고 거의 들뜬 듯 밝았다.“내가 덜 익은 파인애플을 먹었다고 하면 네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했을 뿐이야.”지호는 웃음을 멈추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나를 그렇게까지 걱정하는 줄 몰랐네. 그래서 네가 더 좋아졌어.”그러고는 한층 부드러워진 목소리로 덧붙였다.“진정해. 나 그 과일 안 먹었어.”전화기 너머에서 수현이 무겁게 한숨을 내쉬었다.“정말 너무하잖아.”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다시는 이런 식으로 장난치지 마. 방금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헤헤, 알았어.”지호는 여전히 키득거리며 수현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그런데 나 오늘 처음 알았네. 덜 익은 파인애플이 유산을 일으킬 수 있다면서. 정말 그래?”그녀는 진심으로 궁금한 듯 물었다.“그럼 오늘 네가 동서한테 그걸 줬다면, 왜 동서는 아직 멀쩡한 거야? 오히려 오늘 동서가 겪은 소란은 전혀 다른 일이었잖아.”수현은 잠시 침묵한 뒤 대답했다.“한 번 먹는 정도로는 보통 효과가 없어. 아마 자주 먹어야겠지.”“아…”지호는 태연하게 대답했다.“난 또 먹자마자 그날 바로 유산되는 줄 알았지.”그녀의 얼굴에 비뚤어진 미소가 번졌다.“그런데 수현아, 이거 너무 과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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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6장

“대표님, 풍경 정말 예쁘죠?”지아가 회사에 있는 준현의 집무실 창밖을 바라보며 나직하게 중얼거렸다.한낮의 햇빛 아래로 높은 건물들이 우아하게 솟아 있었고, 그 모습은 그녀가 좀처럼 느껴 보지 못했던 평온함을 위한 완벽한 배경처럼 보였다.하지만 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자신의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지아에게서 단 한순간도 눈을 떼지 않은 채 계속해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의 시선은 차분하고 깊었다. 마치 지아의 얼굴에 있는 모든 세세한 부분을 하나하나 기억 속에 새기려는 것처럼 그녀를 바라보던 준현의 입꼬리가 희미하게 올라갔다.아름답다.너무나 단순한 말이었지만, 그 어떤 표현보다 솔직한 말이었다.지아의 얼굴은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고, 코는 작으면서도 오뚝했으며, 얇은 입술에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은 그냥 지나쳐 버리기에는 너무나 아름다웠다.지아는 결국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여전히 자신을 그런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준현이 보였고, 그녀는 본능적으로 두 손을 들어 눈앞의 남자가 가진 넓고 단단한 가슴에 살며시 얹었다.“왜 그렇게 쳐다봐요?”지아가 작은 미소를 머금은 채 조용히 물었다.“네가 예쁘니까.”준현이 가볍게 대답했다. 평소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을 쉽게 하는 그가 아니었기에 더욱 뜻밖의 대답이었다.지아의 뺨에 곧바로 옅은 홍조가 번졌다. 그녀는 몸을 조금 뒤로 물린 다음 두 손을 들어 준현의 얼굴을 감싸 쥐었고, 엄지손가락으로 그의 뺨을 부드럽게 쓸어내렸다.“대표님도.”지아가 나직하게 대답했다.“잘생겼어요.”그 말은 진심이었다.잠시 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서로를 바라보았다. 얼굴과 얼굴 사이의 거리는 너무나 가까웠지만, 그 누구도 더 이상 먼저 다가가지는 못했다.지아는 다시 창문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나중에 아이를 낳으면…”그녀는 조용히 말하며 본능적으로 자신의 배를 쓸어내렸다.“우리 아이도 분명 잘생겼을 거예요. 아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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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장

“정말 감사해요, 선생님.”지호는 억지로 지은 환한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말했다. 그리고 옷매무새를 정돈한 뒤 진찰대에서 내려왔다.“별말씀을요. 그럼 잠시만 기다리세요. 초음파 사진 출력해 드릴게요.”산부인과 의사는 그렇게 말하며 진찰대에서 멀지 않은 자신의 책상 쪽으로 걸어갔다.“음… 선생님.”지호는 침대에서 내려와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비싼 가방을 집어 들었다.“출력하지 않으셔도 돼요. 초음파 사진은 별로 필요하지 않거든요. 중요한 건 이미 아기의 성별을 알았다는 거니까요.”의사는 잠시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기념으로라도 사진을 남겨두려는 환자들과 달리 초음파 사진 출력을 거부하는 환자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정말 괜찮으시겠어요? 사진을 지갑에 넣어 기념으로 보관하셔도 되고, 가족들에게 보여주셔도 될 텐데요.”의사는 지호가 나중에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다시 한번 확인했다.하지만 지호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 선생님. 가족들에게 깜짝 선물을 해주고 싶어서요. 사실 저도 궁금하긴 했는데, 결국 이렇게 몰래 초음파 검사까지 받았거든요.”“아…”의사는 작게 웃었다.“알겠어요.”지호도 작게 미소 지었다.“정말 감사해요, 선생님.”“별말씀을요.”……그날 저녁, 정확히 오후 7시가 되자 진씨 가족들은 모두 식탁에 모여 있었다. 그 누구도 빠짐없이 함께하는 저녁 식사였다.식탁 위에는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숟가락과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가 잔잔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가벼운 대화가 오갔으며, 이따금 웃음소리도 섞여 들렸다. 하지만 그 웃음은 그저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그중에서도 명희가 가장 들떠 보였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가정부들이 식탁을 정리하기 시작하자, 명희는 곧바로 며느리에게 시선을 돌렸다.그녀의 시선은 남편 도현의 왼쪽에 앉아 있는 지호에게 향했다.“지호야.”명희가 그녀를 불렀다.지호가 고개를 돌렸고, 다른 가족들도 함께 고개를 들었다.“이제 임신 16주 차지?”명희가 들뜬 목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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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8장

“선생님, 죄송한데…”불려 나온 산부인과 의사가 자신을 부른 간호사를 바라보았다.“무슨 일이죠?”“선생님을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이 계세요.”“누구요?”의사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며 물었다. 그때 진료실 문이 천천히 열리더니, 한 남자가 문간에 서 있는 모습이 드러났다.도현이었다.그는 깔끔한 흰색 의사 가운을 입고 있었고, 가슴 주머니에는 의사임을 나타내는 명찰이 단정하게 달려 있었다.산부인과 의사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무슨 일로 오셨나요, 선생님?”의사의 시선이 도현의 명찰을 잠시 스쳤다.“아… 진도현 선생님이시군요.”“진료 중에 방해가 되었다면 죄송합니다.”도현은 전문적인 어조로 말했다.“게다가 미리 약속도 잡지 않고 갑자기 찾아와서요.”의사가 작게 미소 지었다.“괜찮습니다, 선생님. 마침 지금은 시간이 비어 있거든요.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도현은 무언가 말을 고르기라도 하듯 작게 헛기침을 했다.“오늘 오후에 제 아내가 받은 초음파 사진 출력본을 부탁드리고 싶어서요. 혹시 문제가 될까요?”그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그리고 이 일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말하지 않을 겁니다.”산부인과 의사의 표정이 살짝 변했다. 그녀는 침을 한 번 삼킨 뒤 간호사를 바라보았다. 별다른 말이 오가지 않았지만, 간호사는 그 눈빛만으로도 무슨 뜻인지 알아차리고 곧바로 진료실을 나갔다.“김지호 씨 말씀인가요?”의사가 확인하듯 물었다.“선생님의 아내분이 맞으시고요?”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네.”의사는 잠시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윤리적으로 봤을 때 적절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건 압니다.”도현은 여전히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저는 사진만 필요합니다.”몇 초가 흐른 뒤, 산부인과 의사는 결국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진도현이라는 이름은 의료계에서도 낯설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 역시 이 남자가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이런 부탁을 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의사는 초음파 의료 장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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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장

다음 날 아침, 식탁에는 각자 자신의 일정을 준비하는 가족들이 모여 있었다. 누군가는 출근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또 누군가는 집에 남아 하루를 보낼 예정이었다.아침 식사 시간은 별다른 대화도 없이 조용히 흘러갔고, 명희조차 아무 말이 없었다. 중년의 여인은 자신이 한번 입을 열기 시작하면 아침 식사가 훨씬 길어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일부러 조용히 있었다.그러나 그 침묵도 결국 깨졌다.“어머니.”지호가 갑자기 입을 열자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지호는 무언가를 말하기 전에 먼저 침을 삼켰다. 무릎 위에서는 두 손가락을 서로 맞물린 채였다.“어제… 일 끝나고 산부인과에 잠깐 들렀어요.”“정말?”명희가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고, 감출 수 없는 기대감이 그대로 드러났다.“그래서, 결과는 어떻게 나왔니?”지호는 다시 한번 침을 삼켰다. 이번에는 훨씬 힘겹게 목을 넘겼고, 가슴속에 무언가를 억누르기라도 하듯 두 손을 꽉 움켜쥐었다.도현이 옆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의 눈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지호의 손에 닿았고, 곧 아내의 한 손이 옷 주머니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식탁 건너편에서는 수현이 놀란 표정으로 그 모든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지호가 초음파 검사를 받으러 갔다는 사실을 그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분명 전에 같이 가자고 했거나, 적어도 자신에게 알려 달라고 말해 두었는데도 지호는 아무 말없이 혼자 다녀온 모양이었다.서영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호기심이 떠올라 있었고, 지아 역시 허리를 곧게 세운 채 가슴을 두근거리며 기다렸다.그런 가운데 준현만은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마치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편안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그럼에도 준현의 시선이 잠시 수현에게 향했다. 두 사람의 눈이 짧게 마주쳤다.준현은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려 희미하게 비웃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다시 편안하게 몸을 기대었다.“여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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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장

“하랑아, 너도 알지?”준현이 낮지만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가잖아. 그 말은 이제 너도 다 큰 어린이라는 뜻이야. 게다가 너에게는 동생도 있잖아. 그러니까 너무 어리광 부리지 말고, 울보처럼 굴지도 마. 네가 언니라는 걸 보여줘.”그 말은 6살밖에 되지 않은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무겁고 가혹하게 떨어졌다. 하랑이 그의 친딸은 아니라고 해도, 그런 비난을 받아들이기에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였다.준현 곁에 서 있던 지아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 어린아이에게는 지나치게 거칠게 느껴지는 준현의 반응에 놀라 가슴이 턱 막히는 듯했다.그녀는 알지 못했다. 차가운 말투 뒤에는 준현의 가슴속에 조용히 쌓여 있는 실망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실망을 그는 그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다는 것을.하랑의 울음이 갑자기 멈췄다.하지만 작은 어깨는 여전히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마음이 진정되어서 울음을 그친 것이 아니었다. 자신이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에게서조차 아무런 편을 들어주지 않는 모습을 보고, 어쩔 수 없이 울음을 멈춘 것이었다.“하랑아…”지아가 앞으로 다가가 하랑을 준현에게서 조금 떨어뜨렸다. 그리고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눈물에 젖은 작은 뺨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무슨 일이야, 우리 아가? 왜 울어, 응?”지아가 무슨 일이 있었는지 확인하듯 다정하게 물었다. 그녀는 손을 들어 하랑의 머리 꼭대기도 사랑스럽게 쓰다듬었다.“누가 우리 하랑이를 슬프게 했어? 아니면 넘어졌어?”지아의 목소리는 한없이 부드러웠다.“숙모한테 말해 봐. 천천히 말해도 괜찮아.”하랑이 고개를 숙였다. 입술이 파르르 떨렸고, 두 손으로 지아의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마치 지아마저 자신을 두고 떠날까 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엄마…”하랑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엄마가 화냈어, 숙모.”지아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엄마가 왜 화냈어, 우리 아가? 숙모한테 말해 줄 수 있어?”하랑은 손등으로 코를 훔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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