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아주버니, 그 품에 중독되다: Chapter 171 - Chapter 180

257 Chapters

171장

도현은 반듯하게 서 있었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과 날카롭고 차가운 시선이 유난히 강한 인상을 주었고, 그의 시선은 지호를 똑바로 향했다가 이내 천천히 아래로 내려가 이제 막 조금씩 둥글게 드러나기 시작한 그녀의 배에 머물렀다.도현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피어올랐다.“마침 내가 딱 맞는 타이밍에 온 모양이네.”그가 나직하게 말했지만, 그 목소리는 지호의 가슴이 순간 조여 올 만큼 분명하게 들렸다.그 순간 수현은 본능적으로 지호가 끼고 있던 자신의 팔을 빼냈고, 뒤늦게 그 사실을 알아차린 지호는 흠칫 놀랐다.도현의 시선이 수현에게로 옮겨갔다.“무슨 일인데?”도현이 짧게 물었다.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 안에는 분명한 압박감이 담겨 있었다.“보아하니 내가 동생에게 신세를 지게 된 모양이군.”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도현이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보호하듯 지호의 팔을 잡아 자신의 오른쪽에 서도록 이끌었다.“무슨 일이야?”아내에게로 시선을 돌린 순간 도현의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고, 그의 두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둘이 어디 갔다 오는 거야?”지호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나… 산부인과에 다녀왔어요, 여보.”그녀가 나직하게 대답했다.“아까 집에서 문제가 조금 있었거든요. 배가 경련처럼 아팠어요. 마침 서방님이 점심 먹으러 집에 왔길래 병원까지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어요.”도현의 시선이 곧바로 가늘어졌다. 그의 손이 본능적으로 뻗어 나가 지호의 배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어떻게 아팠는데? 심각한 건 아니지?”차분한 목소리 아래로 걱정이 스며들었다.“의사는 뭐라고 하던데?”“별일 아니래요, 여보.”지호가 서둘러 설명했다.“임신 중에는 가벼운 복통이나 경련이 있을 수도 있대요. 심한 통증만 아니면 괜찮다고. 나도 그렇고 우리 아기도 아무 문제 없어요.”수현은 그 모든 모습을 아무 말없이 지켜보았다.가슴 한구석에 작은 안도감이 피어올랐다. 지호가 자신의 감정을 능숙하게 감추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그녀가 말한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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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장

저 멀리 에펠탑이 우뚝 솟아 있었다. 해 질 무렵이 찾아오자 우아한 자태가 은은하게 빛을 머금으며 더욱 아름다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며칠째 지아는 호텔 방 발코니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을 뿐, 정작 파리라는 도시를 제대로 돌아다녀 보지도 못하고 있었다.준현이 너무 바빴기 때문이었다.그는 아침 일찍 호텔을 나섰다가 밤이 깊어질 무렵에야 돌아왔고, 지아에게 파리를 함께 돌아다니며 구경시켜 주겠다는 약속은 끝없이 이어지는 회의와 업무에 밀려 계속 미뤄지고 있었다.“혼자서라도 돌아다니고 싶은데, 길을 잃을까 봐 무서워.”지아가 멀리 보이는 에펠탑의 실루엣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나직하게 중얼거렸다.그녀는 고개를 숙여 임신 5개월에 접어들면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한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고, 손바닥으로 배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사흘 전에 검진을 받았어야 했는데…”지아가 다시 작게 속삭였다.“그런데 지금 여기 와 있으니까 어디에서 검진을 받아야 할지도 모르겠어. 나 프랑스어도 못 하잖아.”저녁 바람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늘하면서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바람이었다. 지아는 잠시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아주버님한테 같이 가자고 하면 되긴 하는데…”다시 눈을 뜬 지아가 조용히 말했다.“그러면 아주버님이 분명 이상하게 생각할 거야. 그리고 아직은 아주버님이 이 일에 대해 알아서는 안 돼.”그녀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결국 밖에 나가는 것도 밥 먹으러 갈 때뿐이네. 그것도 호텔 근처에서만.”지아가 몸을 돌려 방 안으로 들어가려던 순간, 객실 문이 열렸다.그곳에 준현이 서 있었다.평소처럼 지친 기색이 역력한 얼굴도 아니었고, 이전 며칠처럼 밤 9시가 되어서야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오늘은 아직 저녁이 되기도 전인데 그가 벌써 돌아와 있었다.“아주버님?”지아의 얼굴에 저절로 환한 미소가 번졌다.준현 역시 희미하게 미소를 지은 뒤 발코니 쪽으로 다가왔다.“아까부터 뭘 그렇게 보고 있었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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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3장

르 를레 드 렁트르코트, 파리.그날 밤, 준현과 지아는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 중 하나에서 저녁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는 이곳의 대표 메뉴인 스테이크 프리트가 아직 따뜻한 김을 피워 올린 채 먹음직스럽게 차려져 있었다.사람들로 북적이는 레스토랑 안에서 준현은 지아의 바로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고, 그의 한쪽 팔은 주변의 시선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지아의 허리를 감싸고 있었다.준현은 스테이크를 먹기 좋게 작고 가지런한 크기로 잘라낸 뒤, 지아의 입에 직접 넣어 주었다.“자.”준현이 포크를 들어 올리며 부드럽게 말했다.“입 벌려 봐.”지아는 아직 앞서 받아먹은 한입을 씹고 있었다. 그녀가 그것을 삼킨 뒤 얌전히 입을 벌리자, 준현은 기다렸다는 듯 다음 한입을 먹여 주었다.쪽.그 순간 지아의 오른쪽 뺨에 가볍게 입맞춤이 내려앉았다.“아주버님…”지아가 살짝 입술을 내밀며 투덜거렸다. 애교가 섞인 목소리였지만 어딘가 긴장한 기색도 묻어 있었다.“뭐 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보잖아요. 제가 먹을 때마다 계속 뽀뽀하면 어떡해요.”준현은 거의 만족한 사람처럼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한 입 먹여주는 것은.”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사랑의 뽀뽀 한 번과 마찬가지지.”지아의 얼굴이 뜨거워지며 양쪽 광대에 희미한 홍조가 번졌다.“그런 말로 꼬시지 마세요.”“왜?”준현이 한쪽 눈썹을 치켜올리더니, 이번에는 지아의 뺨에 조금 더 오래 입을 맞췄다.“내가 한 입 먹여줄 때마다 뽀뽀 한 번씩 해야 한다고 말한 적은 없는데? 원하면 언제든 해줄 수 있어.”지아는 주변을 힐끗 둘러보았다. 레스토랑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지만, 정작 그들에게 특별히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히 마음이 불편하고 가슴이 답답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잊었어?”준현은 지아가 바라보는 방향을 알아차리고는 차분하게 말했다.“여긴 파리야. 아무도 신경 안 써. 우리가 키스를 한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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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장

“여기서 뭐 하는 거야?”준현이 턱을 굳게 다문 채 물었다. 그의 날카로운 눈빛에는 형식적인 인사 따위를 주고받을 여지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서영은 마치 오래전부터 이 순간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 길게 숨을 내쉬었다.“안에서 이야기해요, 여보.”서영은 태연한 척 말했지만, 그녀의 눈빛은 미세하게 번뜩이고 있었다.“다른 객실 사람들이 보면 좀 그렇잖아요.”그녀가 객실 안으로 들어가려 발을 내딛는 순간, 준현이 본능적으로 앞을 막아섰다. 커다란 그의 몸이 단호한 장벽처럼 문을 가로막았다.“호텔 레스토랑에서 기다려.”준현이 차갑게 말했다.“씻고 내려갈게.”서영이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객실 문은 이미 눈앞에서 굳게 닫혀 버렸다.그녀는 짜증스럽게 콧방귀를 뀌었다. 그리고 눈을 한 바퀴 굴린 뒤 몸을 돌려 호텔 복도를 걸어갔다. 속에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면서도 걸음만큼은 끝까지 흐트러뜨리지 않았다.그녀가 향한 곳은 아래층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이었다.객실 안에서 준현은 무겁게 숨을 내쉬었다. 뒤돌아선 그의 눈에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는 지아가 들어왔다. 두꺼운 이불에 몸을 덮은 채, 맑은 눈동자에는 온통 의문이 가득했다.준현은 그녀에게 다가가 허리를 숙인 뒤 지아의 이마에 부드럽게 입을 맞췄다. 방금 전 분노한 얼굴로 문을 닫고 나왔던 사람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다정한 입맞춤이었다.“무슨 일이에요?”지아가 조용히 물었다.“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이 조금 생겼어.”준현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목소리에는 애써 감정을 누른 기색이 묻어 있었다.“이 방은 수리가 필요해. 더블 스위트가 있는 층으로 객실을 옮겨 달라고 할게.”그는 지아의 머리카락을 짧게 쓰다듬었다.“아침은 나중에 객실로 가져다 달라고 할 테니까, 나 기다리지 마. 나 잠깐 내려갔다 올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야.”지아는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지만, 그녀는 결국 그 의문을 삼키기로 했다.“알겠어요.”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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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장

그날 오후, 지아는 호텔 발코니에서 임산부용 우유 한 잔을 마시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는 음료였으며, 어디를 가든 늘 챙겨 다니는 한국에서 가져온 작은 기념품 같은 것이기도 했다.지아는 준현이 특별히 예약해 준 더블 스위트룸에서 직접 우유를 타서 발코니로 가지고 나왔다.그리고 혼자 발코니 의자에 앉아 눈앞에 우아하게 솟아 있는 에펠탑을 바라보고 있었다.어느새 저녁노을이 파리를 부드러운 황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하면서 주변의 분위기마저 고요하고 평온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그때 뒤쪽에서 들려오는 발소리에 지아가 살짝 움찔하며 고개를 돌렸다.준현이 다가오고 있었다. 두 손을 바지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걸음은 느긋했지만, 지아를 향한 그의 눈빛에는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리움이 가득 담겨 있었다.“오래 기다렸어?”준현이 의자를 끌어당겨 지아의 옆에 앉으며 물었다.지아가 희미하게 웃었다.“아침부터 지금까지 계산해 보세요. 아주버님 생각에는 긴 거예요, 아니면 짧은 거예요?”“엄청 길지.”준현은 망설임 하나 없이 대답했다.“너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야. 나도 그랬으니까.”그의 손이 뻗어 나와 지아의 팔을 감싸더니 천천히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뭐 하려고요?”지아가 조금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살짝 찌푸렸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여기 앉아.”준현이 자신의 허벅지를 가볍게 두드렸다.지아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반쯤 체념한 마음과 반쯤 부끄러운 마음이 뒤섞였지만, 결국 그의 말을 따랐다. 그녀는 준현의 무릎 위에 앉아 그의 넓은 가슴에 등을 편안하게 기대었다.따뜻하고, 안전했다.두 사람의 눈앞에서는 저녁노을이 점점 더 깊어지고 있었고, 파리의 하늘은 아름다운 보랏빛을 머금은 주황색으로 물들어 갔다. 마치 오직 두 사람을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아름답고 평온한 풍경이었다.“우유는 다 마셨어?”준현이 작은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잔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 그러면서 어느새 조금씩 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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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장

“오빠…”지아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시선에는 두려움이 고스란히 드러난 채 수현을 똑바로 향하고 있었다.준현은 지아를 잠시 바라보았다. 그녀가 괜찮은지 확인하기에 충분할 만큼 시선을 머문 뒤, 수현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지금 뭐 하는 거야?”그가 낮고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지아와 이혼하고 싶습니다, 형님.”수현이 차분하게 대답했다. 지나칠 만큼 차분한 목소리였다.“이혼?”준현이 낮게 되뇌었다.그것은 이미 예상하고 있던 일이었다. 아니, 애초에 그가 세워 둔 큰 계획대로라면 이혼은 분명 일어나야 했다. 다만 지금은 아니었다. 적어도 자신이 서영에게서 완전히 벗어나기 전까지는.“내 서재로 가자.”준현이 단호하게 명령했다.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몸을 돌려 먼저 자신의 서재를 향해 걸어갔다.지아는 여전히 처음 서 있던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몸은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숨을 쉬는 것조차 무겁게 느껴졌다.수현은 그런 지아를 그대로 지나쳐 준현의 뒤를 따랐다. 손에는 여전히 갈색 서류철을 꽉 움켜쥔 채였다.서재의 문이 닫히는 순간, 방 안의 분위기가 급격하게 변했다. 차갑고 숨 막히는 공기가 온몸을 짓누르는 것 같이 느껴졌고, 수현은 본능적으로 숨을 죽였다. 심장 역시 평소보다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준현은 책상 앞에 서서 수현에게 등을 보이고 있었다. 두 팔은 가슴 앞에서 단단히 교차되어 있었다. 몇 초가 흐른 뒤에야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제수씨는 임신했다.”마침내 준현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그 안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서려 있었다.“너도 알고 있잖아.”“네.”수현이 짧게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알고 있습니다, 형님.”“그런데.”준현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왜 이혼을 하려는 거지?”“충분한 이유가 있으니까요.”수현이 대답했다.“뭔데?”준현의 목소리가 더욱 낮아졌다.“말해.”수현은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천천히 내쉬었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피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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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7장

그 방 안에서 지아는 점점 숨이 막혀오는 것을 느꼈다. 가슴이 불규칙하게 오르내렸고, 마치 공기마저 폐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거부하는 것처럼 호흡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았다.논리적으로만 생각한다면 지아는 혼자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준현이 있었다. 정말로 수현과 이혼하게 되더라도 할아버지의 병원비는 계속 마련할 수 있었고,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 역시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아갈 수 있었다.하지만 문제는 돈이 아니었다.지아는 자신의 아이가 아버지라는 존재 하나 없이 오직 어머니만 있는 상태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을 상상하는 것조차 견딜 수 없었다. 수현은 아이의 친아버지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법적으로는 자신의 남편이었고, 서류상으로는 남편의 이름이 분명하게 남아 있는 사람이었다.만약 정말로 수현과 이혼하게 된다면 지아는 이 집을 떠나야 했다. 모든 것과 떨어져 자신만의 작은 가정을 꾸려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준현은 가끔씩 찾아오는 것에 그칠 텐데, 그때 그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가 되는 걸까?친아버지일까, 아니면 그저 큰아버지일까?그 질문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하게 지아의 가슴을 내리쳤다. 지아는 그런 가능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아이가 혼란 속에서 자라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고, 아이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거짓말 위에 또 다른 거짓말이 쌓이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지도 않았다.“제발… 나랑 이혼하지 마, 오빠.”지아가 가늘게 속삭였다.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고, 눈가에는 금세 눈물이 맺혔다.그녀의 시선은 몇 번이고 문으로 향했다. 수현이 와서 모든 것을 바꿔주기를, 정말 간절하게 바라고 또 바랐다.철컥.문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에 지아는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수현이 단호한 걸음으로 방 안에 들어오는 순간, 그녀의 심장은 거칠게 뛰었다. 차갑게 굳은 얼굴에는 위엄이 고스란히 서려 있었고, 동정을 기대할 수 있는 틈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오빠.”지아가 한 걸음 다가서며 애원하듯 말했다.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갈라질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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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장

“뭐 먹고 싶어?”다른 가족들과 함께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온 뒤, 문이 닫히자마자 도현이 물었다.“내가 시킬게.”지호는 힘겹게 침을 삼켰다.“아무거나요, 여보.”그녀가 나직하게 대답했다.“집밥만 아니면 돼요.”도현은 아내의 얼굴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듯 몇 초 동안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짧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곧바로 배달 앱을 열었다.그의 손가락은 빠르게 움직였다. 메뉴를 추가하고 주문 내용을 하나하나 확인한 뒤, 주문 버튼까지 눌렀다. 너무나 태연해 보였다. 지나칠 정도로 침착하고 통제된 모습이었다.그동안 지호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머릿속은 온통 의문으로 가득했다.도현이 평범한 남편처럼 행동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몇 번인가 자신에게 관심을 보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자신을 끌어안았다.입맞춤도 했다.그리고 그것이 지호를 불안하게 만들었다.“됐어.”마침내 도현이 입을 열었다. 휴대전화를 바지 주머니에 넣은 그는 지호에게 다가와 바로 옆 침대 가장자리에 걸터앉았다.“이제 음식이 배달되기만 기다리면 돼.”“오늘은 병원 안 가요?”지호가 물었다. 이미 답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저 말을 이어가기 위해 꺼낸 질문이었다.“안 가.”도현이 짧게 대답했다.“오늘 오후에나 갈 거야. 왜?”“아무것도 아니에요.”지호가 재빨리 대답하며 억지로 작은 미소를 지었다.“그냥 물어본 거예요.”도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평범한 대화라고 하기에는 지나치게 오랫동안 지호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러더니 의미심장한 옅은 미소가 그의 얼굴에 번졌다.알고 있었다.지호가 자신을 이상하게 여기고 있다는 것을.“오늘은.”잠시 후 도현이 낮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옆에 있어줄게.”지호가 그를 돌아보았다.“그리고 오늘부터는.”도현은 그녀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말을 이었다.“네가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때마다 내가 같이 갈 거야.”그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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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9장

“이 모든 걸 어디서 구한 겁니까?”준현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물었다. 그의 시선이 단숨에 시윤의 얼굴을 꿰뚫었다.“장인어른에 관한 이 증거들, 정말 전부 정확한 겁니까? 아니면 지금 나를 가지고 노는 겁니까?”시윤이 길게 한숨을 내쉬더니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었다.“직접 진위를 확인해 보셔도 됩니다.”시윤이 태연하게 대답했다.“필요하다면… 제가 도와드릴 수도 있고요.”한쪽 눈썹을 치켜올린 그의 입가에는 비꼬는 듯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준현은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들린 갈색 서류철을 바라보았다.서류철 안에 들어 있던 문서들이 테이블 위에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원래라면 접시와 잔이 놓여 있어야 할 테이블 위에는 지금 비밀과 위험으로 가득한 서류들이 펼쳐져 있었다.도심 한가운데 자리한 고급 레스토랑이 두 사람의 만남을 지켜보고 있었다. 외부와 철저히 차단된 곳, 사적인 공간이었다. 애초부터 아무의 눈에도 띄지 않도록 일부러 이곳을 선택했다. 특히 종범에게는 절대로 알려져서는 안 되는 만남이었다.서영의 아버지는 평범한 남자가 아니었다. 교활했고, 단련되어 있었으며, 자신과 가족을 위해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얻어내기 위해 언제나 함정을 준비하는 사람이었다.“모든 일을 아주 조심스럽게 처리하십시오.”시윤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을 이었다.“장인어른이 직접 만들어 놓은 새장에 갇히고 싶지 않다면 말입니다.”준현이 얼굴을 들었다.“그리고 그 대가로.”시윤이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였다.“제가 원하는 건 딱 하나입니다.”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준현의 시선이 완전히 자신에게 향했는지 확인했다.“하랑입니다. 하랑이가 온전히 제 딸이 되었으면 합니다. 사람들 앞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받는 딸로 말입니다.”준현의 입술 사이로 긴 한숨이 흘러나왔다. 마치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이 정말 시윤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그것 말고는.”준현이 무덤덤하게 물었다.“더 없는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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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0장

“대표님…”지아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준현이 가늘고 긴 그녀의 목을 따뜻하면서도 집요한 입맞춤으로 계속 훑어 내려가자, 그 목소리는 금방이라도 사라질 듯 희미해졌다.남자의 숨결이 피부를 스칠 때마다 지아의 심장은 불규칙하게 뛰었다.준현의 입술은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목선을 따라 흔적을 남기며 가슴 쪽으로 향했고, 그의 손은 지아의 재킷과 셔츠 단추를 능숙하게 풀어냈다. 마치 그녀에게 거절할 틈조차 주지 않으려는 듯한 움직임이었다.“대표님, 이러다 누가 우리 소리 들으면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요?”지아가 끊어지는 숨 사이로 말했다. 어떻게든 남아 있는 이성을 붙잡으려 애쓰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인데다, 아주버니와 제수 사이잖아요.”하지만 준현은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처럼 보였다. 그는 자신의 안에 그동안 묻어두었던 무언가를 분명하게 드러내려는 사람처럼, 아무 말없이 계속 행동을 이어갔다.지아의 피부에 붉은 흔적이 하나둘 드러나기 시작했다. 결국 지아는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준현의 가슴을 밀어냈다.“제발… 그만해요.” 지아가 나직하게 애원했다. 거의 빌다시피 한 목소리였다. “여기서 선을 넘으면 저 정말 화낼 거예요.”마침내 준현이 한 걸음 물러났다. 그의 시선이 지아의 얼굴을 단단히 붙잡았고, 입가에는 비뚤어진 미소가 걸렸다. 늘 그렇듯 위험하면서도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준현 특유의 미소였다.“그렇다면.” 준현이 한쪽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지금 내 사무실로 돌아가면 좀 더 자유롭게 해도 되는 건가?”그 목소리에 지아의 등줄기를 따라 소름이 돋았다. 눈앞에 서 있는 준현은 평소의 차갑지만 다정하고 세심한 남자가 아니었다.그의 눈빛에는 낯설고 두려운 무언가가 자리하고 있었다. 평소 그가 보여주던 공감과 배려마저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듯한 눈빛이었다.“왜 여기까지 따라왔어요?” 지아가 가슴속 떨림을 감추려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저랑 수현 오빠의 결혼을 지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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