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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화

주문 완료 화면이 뜨자, 영이는 화면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받는 사람 이름 유영, 그 아래에 적힌 선명한 집 주소까지.“기다릴 게 생겼어.”“컵?”“응. 내일이 조금 빨리 와도 좋을 것 같아.”기대감이 잔뜩 담긴 말투와 표정이 얼마나 귀엽던지. 하루하루 달라지는 영이의 모습에 ‘키울맛이 난다’는 생각이 스치자, 준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앞으로 필요한 건 이렇게 쇼핑하면 돼.”“난 오빠랑 마트 가는 게 더 좋은데.”“응, 당연히 마트도 가고.”영이가 눈을 반짝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러더니, 컵이 올 자리를 이미 머릿속에 그려둔 사람처럼 주방 쪽을 힐끔 바라보았다.“오빠, 새 컵 오면 내가 커피 타줄게.”“엄청 기대되네?”“응. 엄청 엄청 맛있게.”***다음날 오후, 회의를 막 마치고 한숨을 돌리던 중 주머니 속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화면을 확인하자 영이에게 문자메시지 한 통이 와 있었다. - 오빠, 새 컵 왔어. 예쁘지?방금 막 도착한 머그컵 사진까지 첨부한 게, 이제는 핸드폰도 제법 능숙하게 쓰는 모양새였다.심지어 사진의 각도도, 초점도 나쁘지 않았다. - 응. 영이가 고른 거니까. - 근데 인터넷 보니까, 저녁에 마시는 커피는 안 좋대. 커피는 내일 아침에 타줄게.자꾸만 웃음이 났다. 별것 아닌 문장 하나가 하루를 가볍게 만드는 기분.그리고, 내일 아침이라는 말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오가는 게 언제부터였나 싶어서.결국 재킷을 챙겨 자리에서 일어났다.오늘은 집에 조금 더 빨리 가고 싶어졌다. 커피는 내일이지만, 그냥 이유 없이 그래야 할 것 같았다.사무실을 나서자, 태블릿을 손에 든 석현이 다가왔다.당당했던 준호가 깜짝 놀랄만큼 정확한 타이밍.“대표님, 어디 가십니까?”“농땡이.”“야! 다음 주에 중요한 미팅 있는 거 몰라?”“알지. 근데 어여쁜 영이가 집에 혼자 있잖아.”지금의 신준호를 누가 말릴 수 있을까.아무것도 몰랐던 석현은 결국 직원이 아닌, 친구로서 봐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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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화

아무리 좋아 죽겠어도, 당장이라도 침실로 달려가고 싶어도.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확한 설명이 필요했다.“맞아. 어떤 일은 정말 시간이 해결해 주기도 해. 근데, 이 말이 상처가 되는 건 타이밍 때문이야.”“타이밍?”“응. 들은 사람이 하필 가장 아픈 순간일 때. 그때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혹은 아무것도 해주지 않겠다는 뜻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까.”“뭔지 알겠어. 위로가 아니라 미루는 말이라 그런 거구나.”“맞아.”영이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생각에 잠긴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준호를 올려다봤다.“나한테 이 말이 지금 괜찮았던 건, 힘든 순간이 다 끝난 다음이라서 그랬었나 봐.”마음이 묵직하게 내려앉았다. 왠지 모르게 영이의 말이 준호에게도 위로가 됐다. 이미 끝난 아픔을 돌아보며 덤덤한 말로 내뱉는 것.도망치지 않고, 미화하지도 않고, 그냥 그랬다고 인정하는 것. 그것보다 확실한 치유가 또 어디 있을까.“영아. 너 혹시 천재야?”“응?”“우리 영이 천재야. 천재가 분명해.” 영이는 당황한 듯 눈만 깜빡였지만, 준호는 확신했다.남들이 뭐라고 하든 상관없다.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은 팔불출이다. 영이 한정, 꽤나 지독하고 평생 바뀌지 않을 그런 팔불출.“오빠, 가짜 오빠는 또 안 와?”“왜. 보고 싶어?”“그냥. 가짜 오빠 덕분에 노트북이 많은 걸 알려주니까.”“영이가 직접 전화해 봐.”핸드폰 잠금을 풀어 건네주자, 손가락이 화면 위에서 어색하게 미끄러졌다.그리고 주소록을 여는 순간, 화면을 가득 채운 이름들에 두 눈이 동그래졌다.“왜 이렇게 많아?”“검색창에 이름 적어 봐. 영이가 직접.”“이름이.... 아 맞다. 강석현이랬어.”석현의 이름이 뜨자, 영이는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눌렀다. 준호는 살짝 손을 뻗어 스피커폰으로 설정을 바꿨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익숙한 목소리가 집 안에 울렸다.“왜. 농땡이 씨.”“가짜 오빠. 저 영이에요.”이번에도 석현의 목소리가 단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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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화

식탁에 둘러앉아 식사를 이어가던 중, 영이가 석현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시선이 너무 노골적이라 석현이 먼저 눈치를 챘다.“영아? 혹시 내 얼굴에 뭐 묻었어?”그 순간이었다. 영이의 입꼬리가 스르륵 올라갔다.아니, 스르륵이 아니라 활짝이었다. 입이 귀에 걸릴 듯한, 숨길 생각조차 없는 웃음. 처음이었다. 영이가 그렇게 웃는 건.“축하해요.”“응? 그게 무슨 소리야?”갑작스러우면서도 알 수 없는 말에 준호와 석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영이는 자꾸만 웃기만 했다.마치 지금 이 순간이 너무 재미있고, 기분 좋아서 어쩔 줄 모르겠다는 얼굴로.“기분 좋은 물벼락.”“물벼락?”“여기까지만요.”준호는 알았다. 영이가 방금 무언가를 봤구나.그 미래라는 것. 석현에게 조만간 닥칠 일. 그걸 본 것이 틀림 없었다.하지만 분명히 나쁜 기척은 아니었다. 그래서 별다른 의미를 부여하지 않기로 했다. “강석현, 복받은 줄 알아라.”“이게 다 무슨 소리인데!”“영이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아.”순간, 석현의 머릿속에도 준호가 했던 말이 스쳐 지나갔다. 영이는 미래를 본다고. 그게 산속에 갇힌 이유 같다고. 어느 날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지. 기분 좋은 물벼락이 뭔지는 하나도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 역시도 자세히 묻고 실지 않았다. 지금은 그게 맞는 것 같았다. “와~ 영아! 웃으니까 더 예쁘네.”그제야 영이의 미소가 조금씩 옅어졌다. 자신도 모르게 지었던 미소가 갑자기 민망해진 탓이었다. 문제는 준호는 석현의 입에서 튀어나온 예쁘다는 말이 신경쓰여 죽겠다는 것.“예쁘다는 말 금지다.”“야, 진짜 남매처럼 굴어. 보통은 눈깔이 삐었냐고 반응하는 게 정상이야.”진짜 남매. 그 말에 준호는 입이 다물렸고, 영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남매 아닌데요?”생각지도 못한 말에 석현은 당황한 듯 준호를 바라보았고, 준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상황을 무마했다.“영, 영아. 물 줄까?”영이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식탁 위에는 다시 젓가락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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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4화

그때, 영이가 무언가 생각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러고는 주방으로 향해 머그컵을 가지고 자리로 돌아오더니, 석현을 향해 내밀며 이리저리 움직였다.“이거 봐요. 인터넷으로 처음 산 물건이에요.”“컵이네? 영이 거야?”“아니요. 준호 오빠 거요. 오빠가 손이 커서 손잡이가 큰 컵이 필요했거든요.”“야.... 신준호... 좋겠다..... 부럽다.”준호는 괜히 컵을 들어 올려 손에 쥐어봤다.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들어갔고, 힘을 줄 필요도 없었다. 영이가 말한 그대로였다. 딱 맞는다는 말이 이렇게 정확할 수 있나 싶을 정도로.“마음껏 부러워하거라.”“얄미워 죽겠네.”투덜대는 석현을 두고, 영이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눈동자가 바쁘게 오가는 게, 꼭 상황을 파악하려는 얼굴이었다.“오빠도 필요해요?”“오빠도 사 줄 거야?”준호의 목소리가 버럭, 평소보다 훨씬 크게 튀어나왔다.“안 돼!”석현이 준호를 향해 눈을 좁혔다.저 속 좁은 자식 같으니라고. 저 치사한 자식 같으니라고. 영이는 눈이 동그래졌다. “왜? 석현 오빠는 사주면 안 되는 거야?”“어, 저 자식은 집에 컵이 100개나 있어. 나보다 손도 훨씬 더 작고.”스스로가 생각해도 유치한 질투심. 다행히도 석현은 별다른 의심이 없어 보였다.“와,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이런 식으로 쪼잔하게 굴 줄은 진짜 몰랐다.”“미안해요. 준호 오빠가 안된다면 안 되는 거예요.”석현이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됐다, 됐어.”한숨처럼 웃고는 이내 자리에서 일어났다.“이만 간다.”영이가 곧바로 따라 일어났다.“오빠... 화났어요?”“아니 아니, 저녁도 먹었고 끝내주는 타자 구경도 했으니까. 오빠도 이제 집에 가야지.”“정말 화난 거 아니죠?”“조금 삐치긴 했는데, 괜찮아.”그 말에 영이의 표정이 시무룩해졌다. 금방이라도 죄를 지은 사람처럼,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 번졌다.“강석현, 적당히 해라. 괜히 영이 신경 쓰이게.”“뭐! 삐친 거 맞거든?”“어떡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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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화

영이의 솔직한 반응과 표현은 준호에게는 전부 흥분의 기폭제였다.순식간에 벌거벗은 두 사람의 나체가 맞닿았고, 준호는 영이의 젖꼭지를 부드럽게 핥으며 손으로는 음부를 간지럽혔다.“으으응.. 오빠아... 아..”등허리를 타고 소름이 돋았다.양쪽 젖꼭지를 번갈아 핥아먹는 걸로도 모자라 음핵까지 모조리 자극받고 있으니. 애액이 흐르지 않는 게 이상한 상황이었다.준호는 제 손을 진득하게 적신 애액의 느낌에 검지 하나를 조심스레 밀어넣었다.순간, 영이의 눈이 크게 떠졌다.“아읏...!”“아파?”“아, 아니, 좋, 좋아아...”부드럽게 질구 안을 들락날락 거리는 손가락.영이는 눈앞이 하얘지고 온몸이 달아올랐다. 아랫배는 찌릿거리다 이내 뜨겁게 들끓으며 요의감이 몰려왔다.“쌀, 쌀 것 같아아.. 오빠...”“괜찮아, 싸도 돼.”“흐으...흐.. 으으으응..!”허리를 들어올리며 절정을 표현하는 나신.준호는 한층 짙어진 애액의 농도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내려 입을 벌렸다.“흐앙, 앗, 으읏!”마치 이성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정신없이 혀를 놀리며 보드라운 가슴을, 허리를, 골반을 차례대로 쓰다듬었다.큼지막한 손이 온몸을 휘감고, 아래쪽에서는 음탕한 소리가 자꾸만 울렸다.“으흑, 어, 어떡해, 오빠, 아, 이상해, 아, 나 정말...”엉덩이가 자꾸만 들썩거렸고, 발가락이 주먹을 쥐듯 곱아들었다.그러다 통통해진 음핵을 혀끝으로 굴려주자, 꽤 많은 양의 애액이 뭉근하게 흘러나왔다.준호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영이를 내려다봤다.파들파들 떨리는 몸, 흐릿하게 풀려버린 눈동자.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임이 틀림 없었다.“영아, 오빠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건 영이 하나뿐이야.”“으응... 응... 나도... 나도야 오빠....”쿠퍼액을 뚝뚝 흘리는 귀두가 구멍을 벌리기 시작하자, 영이는 숨을 꺽꺽대며 허리를 비틀었다.빈틈없이 조여무는 질벽의 감각이 여전히 믿어지지 않을 만큼 짜릿했다.“하, 미치겠다.”어느새 완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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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화

넥사이드 회의실.오늘 회의는 준호와 석현, 그리고 TF팀 팀장. 세 사람만이 참석했다. 팀장이 파워포인트 자료를 하나하나 넘기며 보고를 시작했다. “그날 이후 수락산을 찾은 VIP는 없습니다. 다만 문의 전화가 몇 통 걸려왔습니다. 내용은 비슷합니다. 얼마든 지불할 테니, 그동안 자택을 찾았던 영상을 전부 지워달라는 요청들이요.”석현이 코웃음을 쳤다.“이제 와서? 당당하게 찾아갈 땐 언제고?”준호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앞으로의 응대도 달라지면 안 돼. 그들 중 누구도 법적인 조치는 취할 수 없을 테니까.”팀장이 고개를 끄덕이며 조심스레 물었다.“다음 플랜은 어떻게 준비할까요?”“이대로만 유지해.”“알겠습니다.”고소장은 준비됐고, 이제 제출만이 남았다.모든 증거를 쥐고 있음에도 섣불리 나설 수 없는 이유는 분명했다. 그 순간 영이의 존재가 세상에 드러나니까. 그건 어떤 카드보다 위험하고, 어떤 승리보다 값비싼 대가다. 다행히 VIP들은 제각기 끙끙대기만 할 뿐, 공개적으로 움직일 용기는 없어 보였다. 아버지 역시 전역은 하셨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아직 읽히지 않았다.하지만 이대로 포기하실 분이 아니라는 것쯤은 이미 알고 있었다.“신태호 중장 뒤는 더 바짝 따라붙고.”“예. 걱정 마십시오.”회의가 끝나고 공기가 한결 느슨해지자, 석현이 갓 뽑아온 커피 한 잔을 내밀었다.“가족들 분위기는 좀 어때.”준호는 무심한 손길로 커피를 받아들었다. “알 턱이 있나.”“뵙기는 해야지. 아들한테 고소장부터 덜컥 받으시면 또... ”“역겨워. 너무 역겨워서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어.”“신준호. 그래도 찾아뵙고 진지하게 대화라도...”말이 끝나기 전, 준호가 그 말을 끊었다. “아버지는 내가 알아. 가진 걸 빼앗기고도 가만히 계실 분이 아니야.”“대화는 아예 네 선택지에 존재하지도 않는 거구나.”“대화? 한 인간의 삶을 박살내놓고?”사실은 이러고 싶지 않았다. 그토록 보고 싶던 영이를 찾았으니, 이제는 숨을 고르며 평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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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7화

회의실 안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미국에서 꽤나 큰 투자회사와 화상 미팅이 잡힌 날, 준호와 석현이 눈빛을 교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의 응원이었다. “연결됩니다.”스피커에서 안내 음성이 흘렀고, 화면이 전환됐다. 상대의 얼굴들이 떠올랐고, 각자의 미소는 예의 바른 선에서 멈춰 있었다.준호는 숨을 한 번 고르고 입을 열었다.“Good morning. Thank you for your time.”말투는 차분했고,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다. 석현은 바로 옆에서 자료 화면을 넘길 타이밍을 맞췄다. 숫자, 그래프, 그리고 위험 요소 관리에 대한 슬라이드들. 이 판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성장보다도 통제력이라는걸 둘은 이미 알고 있었다.그때, 투자자의 목소리가 나직하게 흘러나왔다.“투자 조건은 간단합니다. 넥사이드가 가진 안면 인식 프로그램의 라이선스. 그게 다입니다.”준호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그건 상업용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아닙니다.”“저희 역시 상업용으로 사용할 목적이 아닙니다. FBI와 협업하여 귀중한 곳에 사용할 예정입니다.”“한국에도 필요한 부처가 많죠. 그리고, 보시다시피 저는 자랑스러운 한국인이고요.”선은 분명했다. 기술의 주도권과 사용 권한은 애초부터 거래의 대상이 아니라는 뜻. 화면 속 투자자가 웃음을 지웠다.“국적의 문제로 보긴 어렵지 않겠습니까?”“국적의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입니다. 필요하다면 협업은 고려할 수 있습니다.”“아쉽습니다. 이 정도 규모의 투자를 단번에 거절하시다니.”그때, 석현이 다음 슬라이드를 띄웠다.야심 차게 준비한 인공지능 서비스. ‘N-Hub’.“다른 제안을 드려볼까 합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N-Hub는 기본적인 사고는 물론, 세계 최고 수준의 이미지 생성이 가능합니다.”데모 이미지가 빠르게 전환됐다. 동일한 프롬프트였지만 결과는 전혀 달랐다.빛의 각도, 재질의 밀도, 배경의 맥락까지 읽어낸 이미지들. 생성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해석에 가까운 작품들이었다.석현이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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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화

마지막으로 계약서 초안을 검토하고 회의실 문을 여는 순간, 소식을 전해 들은 직원들이 파도처럼 몰려들었다.모두의 표정이 밝았다. 누군가는 두 손을 번쩍 들었고, 누군가는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했다. 박수 소리가 회사 안을 가득 채웠다.“축하드립니다!”“넥사이드 가즈아!”“엔 허브도 가즈아!”퐁!누군가의 손에 들린 샴페인이 터지며 두 사람의 얼굴을, 셔츠를, 웃음을 잔뜩 적셨다.그 순간,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했다. 물벼락.영이가 말했던 기분 좋은 물벼락이 바로 이거였구나. “아씨, 이거 맞지?”“어. 제대로 기분 좋은 물벼락이네.”젖은 소매를 털어내던 준호가 문득 생각에 잠겼다. 영이는 유독 자신의 미래만은 보지 못했다. 그래서 당연히 석현에게 축하할 일이 생길 거라 여겼다. 하지만 결국 영이가 봤던 건, 한 개인의 성공이 아니었다.모두가 함께 견뎌온 시간, 반드시 지키고자 했던 원칙,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선. 그 모든 것이 보상받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그렇게나 활짝 웃었구나 넌.지금 이 감정의 밀도를 고스란히 느껴서, 그래서 그렇게 환하디 환한 미소를 뿜었던 거구나. “신준호. 오늘 밤은 파티다! 영이도 잔뜩 적셔줘야지?”“우리 집에 또 오겠다고?”석현이 고개를 갸웃거렸다."왜? 안 되냐? 나 좀 서운하네?""아니, 그런 게 아니라.""파티는 함께 해야 제 맛이지."***그날 저녁, 도어락이 해제되는 소리가 들리자 영이가 곧장 현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이 열리고 준호와 석현이 동시에 들어섰다.그리고, 퐁, 퐁!경쾌한 소리와 함께 샴페인 두 병이 터지며 영이의 온몸을 가득 적셨다.차갑고 달큼한 거품이 액체가 되어 얼굴과 목선, 쇄골을 타고 흘러내렸다.“아...?”영이는 당연히 처음 겪는 상황에 단단히 얼어붙었다. “서프라이즈!”“기분 좋은 물벼락!”“오, 오빠들.... 이게 왜.... 이게 무슨....”석현이 준호의 옆구리를 툭, 찌르자 준호가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오늘 되게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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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화

며칠 뒤 청와대 접견실, 차분한 공기 속에서 문이 열렸다. 대통령 ‘이호국’과 비서실장이 나란히 모습을 드러내자, 준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초대해 주셔서 영광입니다. 넥사이드 대표, 신준호입니다.”호국이 다가와 악수를 건넸다. 미소는 온화했고 악수는 짧았다.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이리 귀한 인재가 대한민국에 있다는 사실이 말입니다.”“감사합니다.”“앉죠.”서로 마주 앉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질문을 던지는 쪽은 늘 서두르지 않는다는 듯. 역시나 먼저 입을 연 건, 이호국이었다. “기사 잘 봤습니다. 특히, 윤리를 전제로 한 선택이 인상 깊더군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네. 하지만 필요한 결정이었습니다.”준호는 미리 준비해 온 서류철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안면 인식 프로그램의 기술 개요, 소스 구조, 운영 프로토콜까지. 국가 이관을 전제로 정리한 완전한 패키지. 서류를 넘겨보던 호국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얘기는 들었습니다. 이 라이선스만큼은 어디에도 넘기지 않았다고.”“맞습니다. 상업적인 목적을 떠나, 국가적으로 큰 자산이라 판단했습니다.”“그 뜻은 그럼...”“대통령님. 이 기술은 전부 국가 소유로 넘기겠습니다.”순간 비서실장의 펜이 멈췄고, 호국은 서류에서 눈을 떼고 어느새 준호를 바라보고 있었다.“조건은요?”“단 하나입니다.”“말씀해 보시지요.”“신태호 중장이 국방부 장관 자리에 오르지 않는 것. 그뿐입니다.”비서실장의 숨이 눈에 띄게 멎었다. 호국은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대신 서류를 덮고 손가락을 맞물렸다. 마치 판단에 들어갈 때의 습관처럼. “부자 사이라 들었는데.”“맞습니다.”“감정의 골이 깊어 보이는군요. 하지만 인사 문제는 개인의 요청으로 다룰 사안이 아닙니다.”“알고 있습니다. 다만, 이건 감정의 골이 아닙니다. 사적인 원한도 아닙니다.”“그럼 뭐죠?”“공적인 위험에 대한 판단입니다.”또다시 침묵이 흘렀다.비서실장은 펜을 다시 들었지만, 아무것도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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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화

너무나 걱정스레 묻는 순진무구한 표정에 준호는 문득 장난기가 발동했다.“글쎄? 칠칠 거리다 잃어버리면 아마 큰일 날 걸?”“큰일?”“경찰 50명이 몰려와서는 막 잡아갈지도 몰라.”순간 영이의 얼굴이 새하얘지더니, 카드를 쥔 손을 가슴께로 끌어올렸다.“나 절대 안 잃어버려. 절대.”아씨, 어떡하지? 귀여워 미치겠는데? “오빠는 한 번 잃어버려서 감옥도 다녀왔어.”“정말? 언제? 많이 혼났어?”“응. 얼마나 혼났는지 몰라.”“어떡해. 엄청 무서웠겠다.”결국 참아왔던 웃음이 폭소처럼 터지고야 말았다.“풉, 장난이야. 잃어버리면 재발급 받으면 돼.”“오빠! 놀리지 말랬잖아.”“미안. 귀여워서 그랬어. 자꾸 놀리고 싶어서.”“씨이.”영이가 볼을 살짝 부풀리자, 준호가 타이밍 좋게 다른 손을 들어 보였다.“짜잔!”이번엔 곱게 포장된 종이상자 하나가 눈앞에서 보란듯이 흔들렸다. “또 뭐야?”“주민등록증 넣을 지갑.”상자를 열자 작은 카드지갑 하나가 단정하게 놓여 있었다.노트북과 비슷한 연한 핑크색에 디자인도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아무것도 넣지 않았는데, 이미 카드 하나도 꽂혀있었고.“오빠. 안에 뭐가 들어 있어.”“응, 사고 싶은 거 있으면 언제든 그걸로 사면 돼.”“나 이거 알아. 신용카드.”참나, 이제는 별 걸 다 알고 있네. “얼른 주민등록증이나 끼워 넣어.”카드 지갑에 신분증을 끼워 넣는 손길은 영 어색했지만, 표정은 잔뜩 들떠 보였다. “됐다. 이거 이제 내 거야.”“응. 맞아. 영이 거.” 영이가 활짝 웃었다. 그 웃음이 퍼지듯이 번져서 준호의 입가에도 비슷한 곡선이 걸렸다. “오늘 저녁은 나가서 먹을까?”“좋아.”“계산은 영이가 카드로 직접 하고.”“좋아.”외투를 챙겨 입고 현관을 나서며, 영이는 몇 번이나 주머니 속에 손을 넣어 지갑이 잘 있는지 확인했다.***식당은 집 근처의 작은 가게였다. 번잡하지도 조용하지도 않은 적당한 저녁의 소음.주문을 마치고 음식이 나오는 동안에도 영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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