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 뒤에서 이안의 나른하고 오만한 목소리가 옥탑방 벽을 타고 울려 퍼졌다."도망가도 소용없어, 큐레이터님."서아의 걸음이 멈칫했다."당신은 결국 내 그림에, 나한테 발목 잡히게 될 테니까. 당신 몸에 밴 그 가짜 향수 냄새가 다 지워질 때까지."서아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돌아볼 수 없었다.얼굴이 불덩이처럼 달아올라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옷자락을 움켜쥐고 도망치듯 가파른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녹슨 철문을 밀고 밖으로 나오자, 쨍한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시야를 하얗게 태웠다."하아, 하아……."작업실을 나온 뒤 서아는 곧바로 차에 오르지 않았다. 골목 끝에 세워 둔 자신의 차까지 걸어가며 손목과 소매를 차례로 살폈다.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지워질 것 같은 물감 자국은 생각보다 집요하게 남아 있었다. 향도 마찬가지였다. 차 문 앞에 선 그녀는 휴대전화 전면 카메라를 켜 머리카락과 입술, 목깃을 확인했다. 누구에게 들키지 않기 위한 행동이라고 인정하는 대신, 단정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위한 정리라고 생각했다. 손목 자국은 소매 끝을 끌어내려 가리고, 재킷은 안쪽이 보이지 않게 접었다. 이전까지 비밀은 머릿속의 감정에 가까웠다. 그날 처음으로 비밀은 차에 오르기 전부터 관리해야 하는 물리적인 흔적이 되었다. 서아는 그 변화의 의미를 끝까지 생각하지 않았다.차에 올라탄 서아는 문을 잠그고 운전대에 얼굴을 파묻은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에어컨을 최대로 틀었지만, 얼굴에 오른 열기는 도무지 가라앉지 않았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백미러 속 자신의 얼굴을 확인했다.단정하게 묶었던 머리는 미세하게 흐트러져 있었고, 창백할 정도로 하얗던 뺨은 수치심과 알 수 없는 열기로 붉게 물들어 있었다.무엇보다, 그녀를 미치게 만든 것은 냄새였다.그녀의 말끔한 포르쉐 실내에 맴돌던 은은한 디퓨저 향은 온데간데없고, 옷자락과 머리카락에 깊게 배어버린 독한 물감 냄새와 수컷의 땀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미쳤어. 백서아, 미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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