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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3화 완벽을 허무는 감각(1)

Author: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6 11:00:51

오후 4시 20분.

해방촌의 비좁고 가파른 골목길.

서아의 하얀색 포르쉐 파나메라가 불법 주차된 트럭과 전봇대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통과하고 있었다.

빠지직-.

타이어가 바닥에 널브러진 깨진 소주병 조각을 밟고 지나가는 소리가 불쾌하게 신경을 긁었다.

"하아……."

서아는 운전대에 얹은 손가락으로 가볍게 가죽을 두드리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내비게이션이 가리키는 붉은색 점은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다고 알리고 있었지만,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은 그녀가 아는 세계와는 너무도 달랐다.

페인트가 벗겨진 낡은 빌라들, 얽히고설킨 시커먼 전깃줄, 그리고 골목 구석에 쌓인 쓰레기봉투들.

최고급 대리석으로 마감된 한남동의 자택과 먼지 한 톨 허용하지 않는 청담동의 갤러리만을 오가던 서아에게, 이곳은 흡사 다른 차원의 빈민가처럼 느껴졌다.

'내가 지금 여기서 무슨 미친 짓을 하고 있는 거지.'

서아는 조수석에 던져둔 구겨진 명함을 곁눈질했다.

[해방촌, B동 옥탑]

그 무례하고 오만한 남자, 이안이 남기고 간 종이 쪼가리.

어제 갤러리에서 그 수모를 겪고도 결국 이 불결한 골목까지 차를 몰고 온 스스로가 서아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그냥 확인만 하는 거야. 그 그림들이 우연인지, 아니면 정말로 우리 갤러리에 걸 만한 가치가 있는 원석인지. 관장으로서의 의무일 뿐이야.'

서아는 애써 스스로에게 합리적인 변명을 늘어놓으며 시동을 껐다.

차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서자, 훅 하고 미지근하고 습한 공기가 그녀의 온몸을 덮쳤다. 정제되지 않은 매연 냄새와 하수구 냄새가 뒤섞인, 도무지 통제되지 않는 날것의 냄새.

또각.

10센티미터 높이의 지미추 스틸레토 힐이 금이 간 아스팔트 바닥에 닿았다.

티끌 하나 없는 크림색 실크 블라우스와 정교하게 재단된 차콜색 슬랙스. 서아의 차림새는 이 허름한 골목길과 지독할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 불협화음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지나가는 동네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을 무시하며, 서아는 명함에 적힌 B동을 찾아 골목 안쪽으로 걸었다.

"여기네."

서아의 걸음이 멈춘 곳은, 붉은 벽돌이 군데군데 떨어져 나간 낡고 우중충한 다세대 주택 앞이었다.

건물 안쪽으로 난 좁고 가파른 계단. 4층을 지나자 녹이 슬어 붉은 물이 줄줄 흐른 철문이 나타났다. 옥상으로 이어지는 입구였다.

서아는 코끝을 찡그렸다.

계단 위쪽에서부터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스멀스멀 내려오고 있었다.

그녀는 손수건을 꺼내 입가를 가볍게 막고, 옷자락이 벽에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어두컴컴한 계단을 한 칸씩 올라갔다.

옥상에 가까워질수록 공기는 점차 서늘하고 축축해졌다.

그리고 곰팡이 냄새 사이로, 전혀 다른 종류의 냄새가 날카롭게 찌르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독한 테레빈유(기름)와 아마인유의 냄새, 겹겹이 칠해져 마르지 않은 유화 물감의 비릿한 향.

서아의 심장이 이유 없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옥상 한구석의 조립식 패널 옥탑방 앞에 선 서아는 잠시 망설였다.

문을 두드릴까, 아니면 그냥 돌아갈까. 이 문을 여는 순간, 자신이 평생 동안 공들여 쌓아 올린 견고하고 우아한 세계에 돌이킬 수 없는 오물이 튈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손은 머리보다 먼저 움직였다.

쾅, 쾅.

서아가 철문을 두드렸다.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이안 작가님. 저 갤러리 도아의 백서아입니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서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손잡이를 잡고 돌렸다. 잠겨 있지 않았던 문이 기분 나쁜 마찰음을 내며 스르륵 열렸다.

끼이익-.

문이 열리자마자, 응축되어 있던 거대한 냄새의 덩어리가 서아의 전신을 강타했다.

"읏……."

서아는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며 숨을 멈췄다.

물감 냄새, 독한 싸구려 연초 냄새, 그리고…… 짙은 땀 냄새. 누군가의 살갗에서 뿜어져 나오는 노골적이고 원초적인 수컷의 체취가 좁고 폐쇄적인 공간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었다.

마치 한 마리 거대한 짐승의 뱃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듯한 압도감.

서아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작업실 내부를 살폈다.

정리라는 개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공간이었다.

여기저기 처박혀 있는 빈 소주병과 맥주 캔들. 바닥에는 굳어버린 물감 튜브와 부러진 붓들이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고, 벽면에는 기괴하고 폭력적인 붉은 색채를 띤 캔버스들이 아무렇게나 세워져 있었다.

형광등 한 개가 위태롭게 깜빡이는 칙칙한 조명 아래.

그 혼돈의 한가운데에, 이안이 있었다.

그는 문이 열린 것도 모른 채 캔버스 앞에 서서 미친 듯이 나이프를 휘두르고 있었다.

물감이 잔뜩 튄 낡은 회색 민소매 티셔츠. 그마저도 땀에 흠뻑 젖어 그의 등 근육에 달라붙어 있었다. 그가 팔을 움직일 때마다, 탄탄한 어깻죽지와 팔뚝의 핏줄이 노골적으로 꿈틀거렸다.

사각, 사각, 푹!

캔버스를 긁고 찌르는 나이프의 소리가 마치 살을 저미는 소리처럼 소름 끼치게 작업실을 울렸다.

서아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멈춰 섰다.

압도당했다.

그의 등에서 뿜어져 나오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에너지. 자신이 속한 상류층의 우아하고 점잖은 남자들에게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폭력적일 만큼 펄떡이는 생명력이었다.

남편 도진이 깔끔한 서재에 앉아 고급 만년필로 글을 쓰는 모습과는 너무도 선명하게 대비되는 풍경.

서아의 호흡이 점차 얕아지고 빨라졌다.

"……이안 작가님."

서아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내 불렀다.

나이프를 휘두르던 이안의 움직임이 뚝 멎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서아를 바라보았다.

헝클어진 흑발 아래로 드러난 맹수 같은 눈동자가 서아를 꿰뚫었다. 그의 뺨에는 붉은 물감이 핏자국처럼 묻어 있었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 그의 가슴팍이 크게 오르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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