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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선을 넘는 온도(1)

작가: 유리구슬
last update 게시일: 2026-06-26 11:00:51

제13화 선을 넘는 온도(1)

청담동의 프라이빗 다이닝 레스토랑.

고급스러운 샹들리에 조명 아래, 갤러리 아르테 팀원들의 회식 자리가 이어지고 있었다. 최고급 한우 오마카세와 한 병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이 세팅된 테이블.

평소라면 우아한 예술계의 가십이나 다음 분기 전시 기획에 대한 고상한 대화가 오갔을 자리였다.

하지만 오늘따라 프라이빗 룸의 공기는 숨이 막힐 듯 무거웠다.

원인은 단 한 사람.

테이블 가장 끝자리에 삐딱하게 앉아 있는 남자, 이안 때문이었다.

"……."

서아는 와인잔을 만지작거리며 미간을 미세하게 좁혔다.

신진 작가 발굴 기획전. 서아는 심사위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안의 그림을 메인 홀에 거는 것을 밀어붙였다. 그 기괴하고 폭력적인 붉은 캔버스가 갤러리에 가져올 파격을 확인하고 싶다는, 큐레이터로서의 오만함 혹은 호기심 때문이었다.

전시를 앞두고 작가와 실무진이 얼굴을 트는 자리. 서아는 분명 비즈니스 차원에서 그를 이 자리에 불렀다.

하지만 이안은 이 정제된 공간에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불청객이었다.

"이안 작가님. 고기 더 안 드세요? 입에 안 맞으신가……."

옆에 앉은 어시스턴트 윤지수가 눈치를 보며 물었다.

이안은 턱을 괸 채 제 앞에 놓인 최고급 안심스테이크를 나이프로 대충 쑤적거리고 있었다. 물감이 채 지워지지 않은 손톱 밑이 하얀 접시 위에서 유독 이질적으로 보였다.

"됐어. 피 질질 흐르는 고기 씹는 취미 없으니까."

"아…… 네에."

지수가 멋쩍게 웃으며 슬그머니 몸을 뒤로 뺐다.

이안은 와인잔을 옆으로 밀어내고, 웨이터를 불렀다.

"여기, 소주 한 병 줘요."

웨이터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죄송합니다만, 손님. 저희 레스토랑에는 소주가 구비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신 비슷한 증류주로는……."

"아, 그래? 그럼 그냥 맹물이나 줘."

이안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겼다. 그 거친 행동 하나하나에 테이블의 대화가 뚝뚝 끊겼다.

서아는 차갑게 식은 눈으로 이안을 응시했다.

"이안 작가님. 불편하시면 먼저 일어나셔도 좋습니다. 억지로 앉아 계실 필요 없으니까요."

"누가 불편하대? 나름 재밌는데."

이안이 픽 웃으며 서아와 눈을 맞췄다.

"그쪽이야말로 나 때문에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르는 표정이네. 안 그래, 수석님?"

노골적인 도발.

서아는 속으로 끓어오르는 불쾌감을 억누르며 우아하게 미소 지었다.

"착각이 지나치시네요. 저는 그저 작가님이 우리 갤러리의 분위기에 잘 적응할 수 있을지 우려될 뿐입니다."

"적응이라. 이 가짜로 점철된 온실에 말이지."

이안이 혀를 쯧 차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의자가 바닥을 긁으며 불쾌한 소음을 냈다.

"담배나 한 대 피우고 오지."

이안이 룸 밖으로 나가자,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공간의 긴장감이 그제야 탁 풀렸다.

"하아…… 진짜 숨 막혀 죽는 줄 알았어요."

지수가 가슴을 쓸어내리며 투덜거렸다.

"수석님. 저 작가님 진짜 컨트롤 가능하신 거 맞아요? 그림 좋다는 건 알겠는데, 행동이 너무…… 날것이잖아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아요."

"신경 쓰지 마세요. 전시 시작되면 얼굴 마주칠 일도 거의 없을 테니까. 제가 알아서 통제합니다."

서아는 단호하게 선을 그으며 남은 와인을 한 번에 비워냈다.

통제.

그렇다. 그녀의 삶에서 통제되지 않는 변수란 없어야 했다. 남편 도진과의 완벽한 결혼 생활처럼, 커리어 역시 한 치의 오차 없이 흘러가야 했다.

하지만 서아는 방금 전, 이안과 눈이 마주쳤을 때 자신의 심장 박동이 미세하게 빨라졌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어느덧 밤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다들 고생했어요. 내일 갤러리에서 봅시다."

"네, 수석님! 조심히 들어가세요!"

레스토랑 밖으로 나온 팀원들은 저마다 대리기사를 부르거나 택시를 잡아타고 서둘러 흩어졌다. 이안이라는 불편한 존재가 여전히 레스토랑 입구 한쪽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에, 다들 도망치듯 자리를 피한 것이다.

순식간에 텅 빈 청담동의 밤거리.

차갑고 건조한 가을바람이 불어왔다.

서아는 트렌치코트의 옷깃을 여미며 휴대폰 화면을 확인했다. 대리기사 호출 앱에는 '기사님이 배정되었습니다. 도착 예정 시간 15분'이라는 알림이 떠 있었다.

'15분이나 기다려야 한다고…….'

서아는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피곤했다. 완벽한 큐레이터의 가면을 쓰고 있는 것도, 팀원들의 눈치를 살피는 것도, 그리고 무엇보다…… 저 남자의 시선을 견디는 것도.

"다들 도망치듯 가버리네."

등 뒤에서 낮고 긁히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아의 어깨가 흠칫 굳었다.

고개를 돌리자, 레스토랑 벽에 삐딱하게 기대어 있던 이안이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져 구둣발로 비벼 끄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아래 드러난 그의 얼굴은 피곤해 보이면서도, 묘하게 나른하고 위험한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내가 어지간히 불편했나 봐. 당신네 팀원들."

"알면 다음부터는 이런 자리에 굳이 참석하지 마시죠. 작가님 환영회도 아닌데 굳이 따라와서 분위기 망칠 필요 없지 않습니까."

"당신이 불렀잖아."

이안이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서아를 향해 느릿느릿 걸어왔다.

"기획전에 내 그림 걸려면 실무진들하고 얼굴은 터야 한다며."

"그건 비즈니스 차원이었고요."

"비즈니스. 참 편리하고 좆같은 단어야."

"말조심하세요."

서아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었다. 서아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아 제자리에 꼿꼿하게 버티고 섰다.

가을밤의 서늘한 공기 사이로, 그날 지하실 작업실에서 맡았던 지독한 냄새가 훅 끼쳐왔다.

싸구려 연초 냄새. 옅은 테레빈유 냄새. 그리고 남자의 짙은 체취.

서아는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대리기사 불렀습니까?"

서아가 시선을 피하며 사무적으로 물었다.

"아니. 걸어갈 건데."

"여기서 연남동까지 걸어간다고요? 미련한 짓 하지 말고 택시 타세요. 택시비 정도는 갤러리 경비로 처리해 드릴 테니."

서아가 지갑을 꺼내려 핸드백을 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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