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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박제된 천재의 비명(2)

作者: 유리구슬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6-25 11:01:32

제12화 박제된 천재의 비명(2)

"하하하! 역시 강 작가님. 후배 아끼는 마음이 각별하십니다."

"태경 작가, 대선배님 조언 새겨들어야지."

류태경은 자존심이 상한 듯 얼굴이 붉어졌지만, 차마 도진의 압도적인 아우라 앞에서 더 이상 대꾸하지 못하고 고개를 숙였다.

도진은 잔에 남은 샴페인을 비워냈다.

싸움에서는 이겼지만, 입안이 모래를 씹은 것처럼 까끌까끌했다.

'다들 나를 지켜보고 있어. 내가 언제 추락할지, 언제 밑천이 드러날지.'

숨이 막혀왔다. 목 끝까지 채운 와이셔츠 단추가 밧줄처럼 느껴졌다.

"죄송하지만, 화장실 좀 다녀오겠습니다."

도진은 정중하게 양해를 구하고 사람들의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연회장을 벗어나 긴 복도를 걷는 동안 도진의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여유롭고 부드럽던 가면이 벗겨지고, 신경질적이고 피폐한 본래의 얼굴이 드러났다.

그는 화장실이 아니라 비상구 계단으로 향했다.

무거운 철문을 밀고 들어가자, 퀴퀴한 시멘트 냄새와 서늘한 공기가 훅 끼쳐왔다.

철컥,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도진은 벽에 기대어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하아... 하아..."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도진은 재킷 주머니에서 신경안정제가 들어 있는 작은 약통을 꺼냈다. 알약 두 개를 입에 털어 넣고 침으로 억지로 삼켰다.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쓴맛.

그는 넥타이를 거칠게 풀어헤치며 눈을 감았다.

어둠 속에서 깜빡이는 커서.

텅 빈 백지.

아무리 키보드를 두드려도 모래알처럼 흩어지는 활자들.

'나는 끝났어.'

절망감이 해일처럼 도진을 덮쳤다.

자신이 쌓아 올린 견고한 성이, 사실은 썩은 기둥 위에 세워진 모래성이라는 것을 매일 밤 확인하는 끔찍한 고문.

그는 평생을 통제와 완벽 속에서 살았다.

그의 소설 속 세계도 마찬가지였다. 모든 변수는 철저하게 그의 계산 아래 있었고, 인물들은 그가 부여한 운명대로 움직였다.

하지만 지금의 도진은 그 무엇도 통제할 수 없었다. 자신의 영감조차도.

"이대로 가다간 미쳐버릴지도 모르겠군."

어두운 계단에 앉아 마른세수를 하던 도진의 주머니에서, 짧은 진동이 울렸다.

휴대폰 액정에 뜬 이름.

[내 아내]

도진은 멍한 눈으로 액정을 내려다보았다. 홀드 화면을 밀어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늘 갤러리 일 때문에 늦을 것 같아요. 먼저 주무세요.]

건조하고 사무적인 문장. 서아다운 문자였다.

도진은 답장을 쓰려다 말고 화면을 물끄러미 응시했다.

그의 아내, 윤서아.

대한민국 최고의 갤러리 수석 큐레이터. 티끌 하나 없는 완벽한 여자.

도진은 그녀를 사랑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가 가진 그 '완벽함'을 사랑했다.

자신의 옆에 세워두기에 가장 잘 어울리는 최고급 예술품. 감정의 동요도 없고, 흠잡을 데 없는 매너와 교양을 갖춘 여자.

서아와의 결혼 생활 역시 도진의 소설처럼 철저하게 통제되고 완벽했다. 단 한 번의 언성 높임도, 지저분한 다툼도 없었다.

하지만.

도진의 머릿속에 어제 아침의 서아가 떠올랐다.

외출 준비를 하던 아내의 뒷모습. 항상 뿌리던 랑방의 향수가 아니라, 어딘가 낯설고 이질적인 무화과 향.

그리고 오늘 아침 식탁에서 그녀가 아주 미세하게 보였던 멍한 표정.

'최근 들어 서아의 텐션이 묘하게 흔들리고 있어.'

도진의 날카로운 관찰력이 아내의 아주 작은 균열을 잡아내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일시적인 스트레스나 피로 때문이라고 넘겼을 일이다. 하지만 3년 동안 활자에 굶주려 있던 소설가의 뇌는, 그 작은 균열을 다른 시각으로 분석하기 시작했다.

만약.

그 완벽하고 견고한 내 아내의 세계에, 내가 모르는 불순물이 섞여 들어간 것이라면?

티끌 하나 없는 하얀 실크 블라우스에 시커먼 먹물이 튀어버린 상황이라면?

"......"

도진은 비상구 계단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숨을 죽였다.

그의 머릿속에서 아주 기묘하고 불길한 상상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통제된 삶은 지루하다. 완벽한 일상은 소설의 소재가 될 수 없다.

소설이 되려면 갈등이 필요하고, 파괴가 필요하며, 피비린내 나는 파멸이 필요하다.

'만약 내 가장 완벽한 피사체인 서아가, 추악하게 망가지는 모습을 눈앞에서 보게 된다면.'

도진의 심장이 아주 천천히, 그러나 무겁게 뛰기 시작했다.

소설 속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바보처럼 속아 넘어가는 역할이 아니다. 아내의 몰락을 가장 가까운 특등석에서 지켜보며, 그 배덕감과 수치심을 모조리 활자로 기록하는 철저한 관찰자.

그 생각이 뇌리를 스치는 순간.

"아."

도진의 입술 사이로 짧은 탄식이 흘러나왔다.

전율이었다.

3년 동안 그토록 갈구해도 단 한 방울도 솟아나지 않던 영감의 샘이, 미친 듯한 속도로 꿈틀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손끝이 짜릿하게 저려왔다. 당장이라도 노트북을 열고 미친 듯이 타자를 치고 싶은 파괴적인 창작욕이 그의 온몸의 혈관을 타고 역류했다.

"미친놈."

도진은 텅 빈 계단실을 향해 낮게 읊조리며 실소를 터뜨렸다.

자신의 아내가 불륜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아니 어쩌면 이미 무언가 엮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하며 흥분하는 꼴이라니.

스스로가 생각해도 구역질 나는 변태 같았다.

하지만 도진에게 도덕 따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단 하나, 다시 '글'을 쓸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도진은 휴대폰을 들어 서아에게 답장을 보냈다.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와요. 기다리고 있을게.]

전송 버튼을 누르는 도진의 입가에 짙은 호선이 그려졌다.

조금 전 연회장에서 류태경을 짓밟을 때 지었던 가짜 미소가 아니었다. 포식자가 먹잇감을 발견했을 때 짓는, 순수하고 서늘한 환희의 미소였다.

그는 비상구 철문을 열고 다시 화려한 빛이 쏟아지는 연회장 복도로 걸어 나갔다.

흐트러진 넥타이를 단정하게 고쳐 매고, 옷깃을 정돈했다.

도진은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응시했다.

'서아. 나의 완벽한 아내.'

도진은 속으로 중얼거렸다.

'부디 나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만약 네가 선을 넘는다면, 나는 그 선을 넘는 너의 발목을 가장 아름다운 문장으로 박제해 주리라.

도진의 눈동자 속에서, 3년 동안 죽어 있던 소설가의 미친 광기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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