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물줄기가 정수리를 타고 흘러내렸다. 짙은 수증기 속에서 서아는 샤워기 아래에 웅크린 채, 이안의 손길이 남은 곳을 짧고 거칠게 훑어 씻었다. 이미 몇 번이나 비누 거품을 헹궜는데도 손목과 허벅지에 남은 감각만은 사라지지 않았다."하아… 아앗…."결국 울음이 터졌다. 물소리가 그 소리를 삼켰다.두 시간 전. 이안의 낡은 소파 위에서 헐떡이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구역질이 치밀었다. 바닥에 뒹굴며 반지를 찾던 그 비참하고 추악했던 순간들. 짐승처럼 자신의 몸을 탐하던 이안을 밀어내기는커녕, 들킬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질려 오히려 그에게 매달렸던 자신의 밑바닥.'쓰레기. 백서아, 넌 진짜 쓰레기야.'수치심에 숨이 막혔다. 하지만 서아를 더욱 미치게 만드는 것은, 거실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남편 도진의 존재였다."서아야. 다 씻었어?"불쑥, 욕실 문 너머로 도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아는 흠칫 놀라며 급하게 울음을 삼켰다."어, 응! 다 씻었어. 금방 나갈게."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가다듬은 서아는 급하게 샤워기를 끄고 가운을 걸쳤다.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창백하게 질려 있었고, 두 눈은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서아는 심호흡을 크게 내쉬며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보았다. 어색하고 기괴한 미소였다.달칵. 욕실 문을 열고 나가자, 도진이 침대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서아가 나오는 소리에 책을 덮고 환하게 웃으며 다가왔다."머리 안 말리고 나왔네. 이리 와, 감기 걸려."도진의 손에는 헤어드라이어와 부드러운 수건이 들려 있었다. 그는 서아를 화장대 앞 의자에 앉히고는, 익숙한 손길로 그녀의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감싸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내가 할게, 여보." "가만히 있어. 하루 종일 갤러리에서 시달리고, 작가 비위 맞추느라 피곤했을 텐데. 집에서라도 내가 챙겨야지."도진의 다정한 목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혔다. 드라이어의 따뜻한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었다. 서아는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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